강지아는 세날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오자마자 화령을 만나 명품백을 선물했다.“저번에 나 때문에 새로 산 핸드폰이 박살 났잖아. 보상의 의미로 이 명품백을 선물하는 거야.”화령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어머, 정말이야? 이건...”“오랫동안 탐냈던 거지?”친구가 좋아하니 강지아도 따라서 기분이 좋아졌다.“좋으면 됐어.”“너무 좋아! 너무 비싸서 차마 못 샀거든. 고마워. 사랑해. 지아야.”마음에 드는 명품백을 선물 받은 의미로 커피 갚은 화령이 내기로 했다.“내가 밥 사줄게. 한우 어때?”화령은 무안하기만 했다.“커피 한잔으로 되겠어? 밥도 사고 싶은데.”하지만 강지아가 거절했다.“다음에. 조카를 오랫동안 못봐서 보고 싶어서 그래.”연우는 개학해서 이미 어엿한 초등학생이었다. 강지아는 연우를 위해 예쁜 머리핀을 한 아름 사 왔다.연우는 물론, 정유진, 그리고 강지찬 선물도 있었다.강지찬의 선물은 브로치였고 정유진의 선물은 목걸이였다. 커플용이었다.정유진이 말했다.“아가씨 선물만 사면 될 걸. 왜 우리 선물까지 샀어.”“쇼핑에 재미를 붙여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강지아는 저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아직 선물 많아요. 고모랑 가을이 선물도 있어요.”정유진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온씨 가문 선물이 다 있는 거야 아니면 고모랑 가을이 선물만 있는 거야?”“당연히 고모랑 가을이 선물만 있는 거죠.”강지아는 정유진과 똑같은 커피를 마시면서 입을 삐쭉거렸다.“올케언니, 제가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어차피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을 텐데 뭐 하러 돈 낭비해요.”정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만 좋으면 됐어. 아무튼 나랑 오빠는 아가씨 편이니까.”이 말에 감동한 강지아는 정유진을 꽉 끌어안았다.다음날, 강지아는 온미정 집으로 찾아갔다.온씨 가문은 일 있을 때만 갔고 평소에는 밖에서 지내고 있었다.도착했을 때, 검은색 차량 한 대가 온미정의 마당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검
강지아가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매번 귀국하기 전이면 강지찬, 최의현, 그리고 온유한에게 미리 연락했었고 누가 시간 있으면 공항으로 픽업 갔었다.강지찬과 최의현은 늘 바빴기 때문에 제일 많이 데리러 간 사람은 온유한이였다.매번 가다 보니 아예 바로 온유한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할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강지아가 귀국한다면 온유한이 제일 먼저 알았다.그런데 이제는 집에 돌아왔는데 언제 돌아왔는지도 몰랐다.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최의현이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우리 지아 안목 높은데? 이 브로치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았더니 보석이 박힌 전갈 모양의 브로치였다.[지아 언제 돌아왔는데?][어제 돌아왔잖아. 아, 맞다. 너한테는 무슨 선물을 했는데? 보여줘 봐.]온유한은 또 술을 한 모금 마셨다.‘어제 돌아왔다니...’이때 최의현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빨리. 지아는 늘 너를 더 좋아했잖아요. 너한테 한 선물은 무조건 제일 좋고, 제일 비싸고 제일 특별한 걸 거야. 이미 물어봤는데 지찬이도 똑같이 브로치였어. 형수님이랑 고모는 목걸이였고. 애들은 머리핀.]온유한은 나머지 술을 꿀꺽 다 마셔버렸다.‘돌아온 사실을 제일 늦게 안 것도 나고, 유일하게 선물을 받지 못한 것도 나네?’다음날 온유한은 아침을 들고 강지아를 찾아갔다.한참 동안 벨을 눌러서야 하품하면서 나오는 것이다.“오빠,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야?”온유한이 아침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돌아왔다길래 보러왔지.”강지아가 소파를 짚으면서 말했다.“마침 잘 왔어. 오빠 것만 남았어. 알아서 가져가.”온유한은 눈이 번쩍 떠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뭔데?”“나가서 놀면서 선물 사봤어.”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온유한은 식탁 위에 아침밥을 내려놓고는 선물 박스를 뜯었다.사실 특별한 포장이 없어 뜯어볼 필요도 없었다.온유한은 열어보고서 입꼬리가 내려가고 말았다.선물은 다름아닌 나뭇잎 모양
강지아의 작업실은 이미 준비가 마무리된 상태였다.온유한과 함께 먼저 도착해서 아래위층을 둘러보았는데 나름대로 완벽해 보였다.뒤늦게 온 서원준은 품에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바보 멍청이 씨, 작업실 오픈한 거 축하해.”강지아가 째려보면서 말했다.“바보 멍청이라고 부르지 마.”“우리 지아.”“내가 나이가 몇인데.”“그러면... 강 선생?”강지아는 새로운 호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온 선생님도 계셨네요. 다 둘러보았어요?”온유한은 꽃다발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마침 오늘 쉬는 날이라 지아랑 함께 보러왔어요. 인테리어 잘된 것 같아요.”“그러게요. 강 선생 안목이 괜찮긴 하죠.”서원준이 시간을 체크하면서 말했다.“점심 식사 시간인데 제가 점심 살게요. 마침 강 선생한테 할 말도 있고. 온 선생님도 함께 봐주세요.”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일식집으로 향했다.“우리 회사가 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했거든. 에이미 누나한테 연락해 봤는데 쇼 녹화에 참여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강 선생, 도전해 볼 생각 있어?”“예능프로그램?”강지아는 본능적으로 온유한을 쳐다보았다.늘 그랬듯이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강지찬이 아니라 온유한이였다.온유한은 그나마 위안을 받게 되었다.서원준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시그널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온유한이 말했다.강지아가 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서원준과 교류가 더 많아질 것이 뻔했지만 온유한은 속 좁은 남자가 되기 싫었다. 강지아가 일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뒤에서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 주기로 했다.강지아가 조금 망설이면서 말했다.“잘 못했다간 국민 앞에서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니야?”서원준이 피식 웃었다.“라이브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 그리고 우리 회사가 투자한 프로그램이라 많이 도와줄 거야. 강 선생, 자신감 가져. 이건 이름을 날릴 좋은 기회야. 인기 많은 연예인도 출연할 거니까 이
온유한은 강지아와 서원준이 떠나고 나서야 차에 올라탔다.이때 최신애가 전화 와서 쉬는 날인데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했다.그런데 꼭 싸울 것만 같아 안 가겠다고 거절했다.“강지아가 돌아왔다며? 그래서 바로 만나러 간 거야? 인기 검색어를 못 봤어?”최신애는 전화기 너머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걔랑 호텔로 들어간 남자가 누군데. 연예인이야? 정말 눈 뜨고 볼 수가 없네.”온유한이 태양혈을 문지르면서 말했다.“어머니,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는 다 믿으면 안 돼요. 서원준은 성유 엔터테인먼트 대표에요. 쇼 보러 간 건데 당연히 호텔에서 지내겠죠. 그리고 다른 연예인들도 있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이슈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은 모자이크 처리한 것뿐이에요. 잘 모르시면 함부로 단정 짓지 마세요. 지아가 너무 억울하잖아요.”최신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온유한은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데 강지아는 매니저는 물론 스타일리스트도 알아보기로 했다.스타일리스트는 다름아닌 정유진의 스타일을 맡았었던 송민욱이었다.송민욱은 자기만의 숍이 있었고 일찍 이름을 날려 제자만 해도 열몇 명이 되었다.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안 송민욱이 강지아의 스타일을 맡기로 했다.강지아는 한동안 바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작업실에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일손이었다.그래도 정유진과 조우민 덕분에 점차 직원이 모이기 시작했다.추호와 양수아가 결혼하던 날, 강지찬은 외국에 출장을 가 있어서 대신 강지아, 정유진과 연우가 참석했다.추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서로 겹치는 사람이 많아 결혼식장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다들 강지아를 넘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씨 가문과 사돈을 맺는 것보다 더 솔깃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예쁘기도 하고 털털해 보이는 강지아의 모습에 부잣집 사모님들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정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다들 아시겠지만 지찬 씨 유일한 여동생이라 어릴때부터 무척 아꼈어요. 아가씨가 일찍 철들고 똑똑하긴 해도 아직 어려서
임미연은 어린아이한테 말문이 막힐 줄 모르고 억지웃음을 지었다.“저번에는 농담이었어. 정말 믿었던 거야? 연우야, 아빠는 왜 안 왔어?”연우가 임미연을 쳐다보면서 말했다.“이모, 무슨 일 있어요? 일 있으면 저희 엄마를 만나보세요. 저희 집은 엄마가 모든걸 결정하거든요.”임미연은 할 말을 잃었다.‘정말 정유진 아이가 맞네. 똑같이 얄미워.’“하하. 볼일이 있긴 한데.”임미연은 6살짜리 어린 아이한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연우야,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면 안 돼?”그러면서 연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연우는 그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힘써도 꿈쩍하지 않았다.푸드 코너 쪽을 바라보았는데 강지아가 어떤 부유해 보이는 할머니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연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알겠어요.”호텔은 워낙 컸기 때문에 걷다 보니 생각지 않은 길로 가게 되었다.“이모, 우리 엄마 여기 없어요.”임미연이 웃으면서 말했다.“아까 직원분한테 물어봤는데 여기 있다고 했어.”임미연의 눈을 쳐다보고 있던 연우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사실 이제는 유치원생이 아니라 이쪽으로 가면 호텔을 벗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화장실을 지났을 때, 연우가 손을 빼면서 말했다.“이모,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아까 고모가 저한테 주스를 너무 많이 먹였거든요.”표정이 어두워진 임미연은 이 녀석을 안고 바로 가고 싶었지만 울고불고 난리를 칠까 봐 함께 화장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연우는 옆 칸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핸드폰을 꺼내 강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정유진 핸드폰이 들어있는 핸드백은 보디가드한테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고모, 지금 바로 저 구하러 오지 않으면 이 나쁜 여자한테 잡혀갈지도 몰라요. 저 지금 화장실에 있으니까 오실 때 그것도 갖고 오세요.]이제 문자를 다 보냈는데 임미연이 밖에서 재촉하는 것이다.“연우야, 다 됐어?”‘이모, 저 찬 걸 마셔서 배탈이 났나 봐
양수아는 새로 친해진 친구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는지 뻘쭘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형부가 유부남인 거 알면서 일부러 꼬셔보려고 했다고? 그리고 내 결혼식 날에 지금 뭐하는 짓이야. 절대 용서 못 해.’“언니.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할게요.”불같은 성격의 양수아는 결혼식 날 개판 날지언정 아예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연우를 유괴하려고 했는데 이대로 넘어갈 수 없어.”양수아는 임미연을 힘껏 째려보았다.임미연은 절망하고 말았다.“난 연우를 유괴하려던 거 아니야. 난 그저...”“뭔데?”양수아는 임미연 같은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옆에 늘 이런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연우를 빼돌려서 우리 형부를 꼬시려던 작전이었겠지.”정유진은 그제야 형부라는 사람이 강지찬이라는 것을 눈치챘다.흰 드레스를 입고있는 양수아가 한껏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그깟 속셈을 모를 것 같아?”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수작치곤 어린이를 유괴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임미연이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난 연우를 다치게 할 마음이 없었어. 하늘에 맹세해.”정유진은 연우를 강지아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어린이가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대화였기 때문이다.연우가 떠나고, 정유진은 그제야 진지하게 말했다.“똑같은 말 하기 싫어요. 아무리 그래도 한때는 친척 사이였는데 지찬 씨 목숨을 구해준 의미로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할게요. 하지만 또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양수아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언니, 이대로 끝이에요?”“끝이에요.”정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오늘은 기분 좋은 날인데 이런 일로 기분 상하게 할 순 없잖아요. 다들 물러가시죠.”자신을 속인 것도 모자라 추호 앞에서 망신까지 당했으니 화가 난 양수아는 아예 임미연을 쫓아냈다.구경꾼들이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문내는 바람에 임미연은 다시는 상류사회에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연우를 또 잃을뻔했다는 사실에 강지아는 자책하기 시작했
정유진은 사실 별말 없이 사실에 근거하여 도리만 설명했다.만약 임미연이 자기 발로 떠나지 않았다면 빈털터리로 서울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을 것이다.강지찬이 임미연에게 준거라곤 그 별장밖에 없었다.그런데 정유진과의 공동재산이라 정유진이 소송을 건다면 무조건 뺏어올 수 있었다.임미연이 양수아한테 따돌림당하는 바람에 서울에 친구마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할머니 댁에서도 나 몰라라 하고 강지찬도 만나주지 않는데 말이다.임미연도 서울에 있어봤자 좋은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집을 팔아서 번 돈을 가지고 얼른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임미연이 떠나고, 강씨 가문은 그제야 고요해졌다.저번에 연우를 데리고 나갔다가 강지현이 죽을 뻔했기 때문에 강홍식은 가만히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거기다 정유진이 또 임신하는 바람에 댈 핑곗거리도 없었다.아무리 강혹식을 지껄여봤자 미동도 없자 고세연은 화가 났다.시비 거는 사람이 사라지니 강지찬과 정유진의 세계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강지아 작업실이 오픈되는 날, 성대한 오픈식이 열렸다. 이 바닥에 친한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오픈식에 참석한 사람이 많았다.외제 차가 줄지어 서있는 작업실 앞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서원준은 회사 소속 연예인들을 데리고 오픈식에 참석했다. 강지아와 일했던 직원들, 그리고 모델들도 자리를 빛냈다. 심지어 의 메인작가인 에이미도 직접 축하해 주러 온 덕분에 순간 기가 살아나는 느낌이었다.강지찬과 정유진도 당연히 참석했고, 최의현과 한규진은 화환을 보내왔다.일찍 도착한 온유한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말로는 오픈식이었지만 결국엔 대형 파티였다.주유정도 화환을 보내왔지만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빛낸 오늘과는 달리 3일 뒤에 있을 자기 오픈식은 초라할 거라는 생각에 이를 꽉 깨물었다.강지아는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여기저기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흥. 오빠 덕에 잘나가면서.’“지아 씨, 축하드려요.”주유정이 축하를 보내왔다.“저희 작업실 오픈
특히 강지아가 보는 앞에서 주유정은 이렇게 어색한 적이 없었다.손을 거두고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그래, 몰라. 하지만 너를 알잖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 정말로...”에이미가 주유정의 말을 끊었다.“지아의 손님이죠? 모르면 사이니 지아가 소개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갑작스레 인사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서요. 주인인 지아를 안중에도 안 두는 것 같네요.”순간 어리둥절해진 주유정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확실히 강지아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강지아가 알고 지내는 사람을 나 주유정이 모르면 되겠는가?’에이미가 이렇게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줄 몰랐던 주유정은 난생처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강지아가 에이미에게 몇몇 모델들을 소개하는 모습에 주유정은 이를 악물었다.“유한 씨,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러는데 데려다줄래?”온유한은 시계를 바라봤다. 주위에 손님도 많고 연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사람 시켜서 데려다주라고 할게.”말을 마친 그는 장형준에게 가서 경호원 한 명을 붙여달라고 했다.주유정은 그저 어이가 없어 관자놀이만 주물렀다.“진짜로 몸이 안 좋아서 그래. 나 좀 병원에 데려다주면 안 돼?”“태안 병원으로 데려다주세요.”온유한이 그 경호원에게 말했다.“네, 온 선생님. 주유정 씨, 가시죠.”온유한이 돌아오자 최의현이 웃으며 말했다.“사람은 보낸 거야?”“응.”최의현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서원준이 있는 곳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저기 봐. 지아에게 인맥을 소개시켜주고 있어. 그런데 방금 주유정은 거기서 명함을 나눠주더라고.”최의현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너의 첫사랑이 외국에 오래 있다 보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네.”인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알지만 그 누구의 소개도 없이 명함을 무턱대고 나눠주는 것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보다 더 파렴치한 짓이다.이건 일부러 방해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강지아는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것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