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며칠 동안 강지찬과 장형준은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두 경찰이 강지호를 데려왔다.주연지는 집에 없었고 세 집에는 하인들만 남아 있었다.안주인 정유진이 가정부더러 강지호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다.평소에 활발했던 아이는 많이 놀랐는지 집에 돌아오자 열이 났다.정유진은 강씨 집안의 의사를 불렀고 한참 후에야 강지호의 열도 내렸다.마당에 돌아오자마자 집사가 다가오더니 어색한 얼굴로 있다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어르신이 나를 찾는다고?”정유진이 먼저 물었다.강홍식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며느리 앞에서 한껏 폼을 잡았다.“방금 셋째 집안사람이 돌아왔다고?”“예, 지호가 병이 났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강홍식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임미연의 뱃속 아기가 강원훈의 것이야?”강홍식이 알아맞히는 것이 정유진에게도 의외였지만 숨기지 않았다.“네.”강홍식은 분개하는 얼굴로 말했다.“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이렇게 큰일을 왜 나한테 숨겼어? 옆에 숨어서 내 우스운 꼴을 보고 싶었던 거야?”옆에 있던 집사조차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참지 못하고 설득했다.“어르신, 임미연 씨 일을 대표님이 숨기는 데는 분명 일리가 있을 겁니다. 사모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어떻게 상관이 없어? 본인만 착한 척하고. 셋째 집안일에 네가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뛰는데?”어르신이 감히 강지찬을 찾지 못해 그녀에게 화풀이하러 왔음을 정유진은 알아챘다.기왕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맞장구치기 귀찮았다.“어르신, 지찬 씨가 돌아오면 직접 설명하라고 할게요. 나도 잘 모릅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강홍식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잠시 멍하니 있던 강홍식은 정유진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저, 저게 무슨 태도야?”또 하루가 지나고 강지찬이 돌아왔다. 임미연도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만 많이 놀라 병원에서 쉬고 있었다.주연지도 돌아와 자기와 아들을 마당에 가두고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강지찬은 어디도 다치지 않은 채 집
강씨 일가는 며칠째 온 가족이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강지찬과 정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강원훈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강지찬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나빠졌다.자세한 내막을 알든 모르든 강지찬 얘기만 나오면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감히 건드릴 수도 미움을 살 수도 없었다.둘째 집안의 유선이 방금 감옥에 갇힌 상태에 강원훈도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첫 재판이 진행될 때는 이미 8월 중순이 되었고 주연지는 법정에서 강원훈과의 파혼을 요구했다.수갑을 찬 강원훈은 마지막 결과를 태연하게 받아들인 듯했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강지찬을 바라봤다.다만 무기징역이라는 말에 강원훈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강원훈은 항소하지 않았고 주연지는 K그룹 주식을 강지찬에게 전부 팔아 재산을 처분한 뒤 돈을 챙겨서 강지호와 함께 출국했다.아주 깔끔하게 떠났기에 서울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예전부터 강씨 집에서 투명인간처럼 산 강원훈이었지만 셋째 집이 비자 고택은 더 휑뎅그렁해 보였다.고세연은 강홍식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한탄했다.“지찬이가 정유진과 함께 있은 이후로 강씨 집안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어요. 둘째 셋째 집안이 차례로 일이 생겨 모두 감옥에 들어갔잖아요. 어르신 그거 모르죠? 바깥에서 지금 얼마나 듣기 거북한 말이 도는지.”이 점은 강홍식도 잘 알고 있다. 사람들과 차를 마시러 나갈 때마다 옆에 노인들은 그가 오는 것을 꺼렸다.강홍식은 따돌림을 당했다고 느꼈지만 그 사람들은 감히 강지찬의 미움을 살 수가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외출도 하지 않았다.“흥, 다른 사람들은 좋은 아내를 맞으면 집안이 더 잘 나간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어디서 그렇게 불운한 사람을 데려왔는지. 딸도 다른 사람의 성을 따르게나 하고!”고세연은 능청을 떨며 달랬다.“어르신, 더 이상 참견하지 마세요. 부자 관계가 더 틀어지면 안 되잖아요. 지금 지찬이는 그 여자에게 완전히 빠졌어요. 정유진이 아직도 K그룹에서 안 나가고 있잖아요
임미연이 강원훈과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강홍식은 그 후부터 그녀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얼굴도 보기 싫었다.결국 고세연이 임미연 만나러 나와 그녀의 배를 훑었다.평범한 사람처럼 평탄한 배를 보니 아이가 없어진 게 분명했다.경찰을 본 임미연은 깜짝 놀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했다고 했다.아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임미연만이 잘 알 것이다.“여긴 왜 왔어?”고세연은 통쾌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강씨 저택에 올 면목이 남아 있어? 지찬이를 찾으러 온 거야, 아니면 강원훈을 찾으러 온 거야? 강원훈을 찾는 거면 장소를 잘못 찾았어. 강원훈은 이제 강씨 집안 사람이 아니야.”임미연은 살이 좀 빠진 상태였다. 예전엔 얼굴에 어린 티가 좀 났었는데 지금은 성숙해졌고 더 요염해졌다.“강지찬을 찾으러 왔는데 지금 없다니 굳이 그쪽하고 얘기할 필요는 없겠네요.”임미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나를 못마땅해하는 거 알지만 나는 그쪽과 많이 달라요. 어쨌든 강지찬은 나에게 목숨을 빚졌어요. 이것만으로도 평생 나에게 빚진 것이고요.”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고세연은 ‘퉤’하고 침을 뱉었고 손바닥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강지찬과 정유진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까지 임미연은 아직 가지 않았다.연우는 길에서 잠이 들었고 강지찬은 아이를 핑계로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정유진에게 맡겼다.“지찬 오빠, 볼일이 있어요. 지찬 오빠?”“나와 얘기해.”정유진의 말에 임미연이 한마디 했다.“지찬 오빠와의 일이지 그쪽하고는 상관없어요.”정유진이 웃었다.“장형준 씨, 손님 배웅해드려요.”임미연이 미처 발작을 일으키기도 전에 장형준이 그녀를 강제로 내보냈다.정유진은 조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샤워를 했고 밖으로 나왔을 때 강지찬은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다.강지찬은 그녀를 보자마자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 정 대표님은 점점 더 기백이 넘치시네.”정유진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그의 얼굴에 던지며 말했다.“어떻게든 임미연을 단념시키는 게 좋을
주유정의 작업실도 곧 인테리어가 완성되어 최신애와 함께 액세서리를 고르러 온 것이다.최신애 생일잔치 이후 강지아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고 오늘 이렇게 만난 이상 못 본 척할 수는 없어 최신애를 향해 걸어갔다.“아주머니, 유정 씨, 이런 우연도 있네요.”주유정이 웃으며 말했다.“지아도 공예품 보러 온 거야. 우연이네.”최신애는 싱겁게 ‘응’이라고 외쳤지만 강지아를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동안 밖에서 생활하던 온유한은 지난번 그녀가 감기에 걸린 말을 듣고서야 그녀를 보러 갔다.강지아도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예의만 차렸다.“그럼 방해하지 않을 테니 천천히 보세요.”말을 마치고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한쪽으로 갔다.“제가 주문한 작품 다 적어주세요. 다 살 테니.”점원에게 당부하자 점원은 서둘러 공책과 펜을 챙겨오더니 눈을 반짝이며 강지아를 바라봤다.강지아는 흰 사슴 조각상 앞에 서서 조금 고민했다.이 사슴은 모양과 공예가 모두 훌륭하고 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름답다.이 디자인이 매우 마음에 들지만 그녀의 작업실 스타일과 좀 어울리지 않았다.이때 주유정과 최신애도 사슴을 발견했고 순간 주유정은 눈이 번쩍 뜨였다.“이 사슴은 영기가 넘치네요.”점원이 서둘러 영업 멘트를 날렸다.“이건 저희 사장님이 새로 내놓은 작품입니다.”주유정은 하얀 장갑을 낀 채 사슴뿔 애지중지 만지작거리다가 뒤따르던 점원에게 말했다.“이 사슴 제가 살게요.”두 점원이 눈을 마주치자 주유정은 그제야 반응했다.“아 미안. 지아가 찜한 거야?”강지아는 이 사슴이 마음에 들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주유정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양보하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최신애가 말했다.“방금 장 보듯 한 뭉치 샀는데 그거 하나쯤은 없어도 돼. 유정아, 이 사슴은 재물을 뜻해. 문을 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 사슴 한 마리가 뛰어든다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말을 마치자마자 점원을 향해 한마디 했다.“이 사슴 우리가 살게요.”이에
사실 강지아는 그동안 온유한을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 사람은 요즘 많이 바쁜지 보름 동안 외국에 있다가 귀국 후에는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느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그저 잠깐 시간을 내 강지아와 밥을 몇 번 먹었을 뿐이다.두 사람의 관계는 줄곧 매우 어색했다. 예전처럼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했다.그런데 최신애의 입에서 남자를 꼬시는 여자가 되다니?“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강지아는 완강하게 말했다.강홍식처럼 억지를 부리는 아버지가 있는 그녀로서 비슷하게 억지를 부리는 어른을 대할 때 늘 대립각을 세웠다.“한 번도 먼저 유한 오빠를 찾아간 적이 없어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아주머니도 아들을 잘 돌보시면 되겠네요.”집에서 고집이 센 최신애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이렇게 말할 줄 몰랐다.게다가 말하는 사람 역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강지아이니 기절할 뻔했다.주유정은 불난 집에 부채질은 차마 하지 않았고 그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지아야, 그만해. 이 사슴 내가 양보하면 되잖아.”강지아는 그 말에 구역질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양보라니요? 원래 내가 먼저 찜한 거예요.”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최신애는 화를 벌컥 냈다.“오늘 이 사슴은 내가 사야겠어. 유정아, 이 사슴은 내가 사서 너의 개업 선물로 줄게.”말을 마친 후 직접 손을 들어 옮기려고 하자 두 영업사원이 깜짝 놀라 얼른 다가가서 막았다.‘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사슴이 바닥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강지아는 눈썹을 치켜떴고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어리둥절해졌다.가장 빨리 반응한 사람은 주유정이다.“죄송해요. 우리가 배상할게요.”“뭐 하는 겁니까?”콧수염을 기른 40대 중반의 남자가 와서 바닥에 파편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이것은 지난 3개월 동안 겨우 만들어 낸 만족할 만한 작품인데 깨버리다니요!”주유정은 서둘러 배상하겠다고 말했다.“누가 당신들의 더러운 돈을 원한대요? 이것은 나의 피와 땀으로 만든 거라고요.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
강지아는 공예품 선택을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갔다.여기서 정유진의 연우 인테리어와 K그룹과 멀지 않다.직원 휴게실을 조정하기 위해 근로자들과 상의하고 있는데 서원준에게서 전화가 왔다.“바보야, 같이 밥이나 먹자꾸나.”“너야말로 바보야, 온 집안이 바보야.”그러고는 한쪽에 있던 근로자를 향해 말했다.“어쨌든 여기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해. 미리 남겨둔 책장 자리 외에 소파 두 개도 추가할 테니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인테리어 근로자가 말했다.“차라리 탕비실과 휴게실을 개방형으로 만드는 게 어때요.”강지아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래요. 그렇게 하죠.”이 스튜디오는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지만 실내 인테리어에 익숙하지 않아 인테리어를 하면서 계속 수정했다. 그래도 정유진이 관리해 준 덕분에 현재 큰 효과를 보고 있었다.서원준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몰라 한마디 물었다.“기다려, 데리러 갈게.”“이제 팔을 쓸 수 있어? 쉬어. 주소 보내면 내가 직접 갈게.”강지아는 그제야 서원준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연예계와 패션계의 유명인사들도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잠깐 소개 후 안경을 쓴 기질이 강한 여자가 강지아를 향해 앉으라고 손짓했다.“강지아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전에 런웨이에서 봤는데 업계에서 평판이 높아요.”이에 서원준이 강지아를 소개했다.“에이미 누나, 애먼 편집장이야.”‘애만’은 국내 최고의 패션잡지 회사로 현재 발전이 매우 빠르며 해외 패션계에도 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높은 반열에 올랐다.강지아도 에이미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실물을 본 적은 없다.“에이미 언니, 안녕하세요.”강지아는 얌전히 다가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주위에는 모두 프로듀서, 감독님들이 앉아 있었다.에이미는 강지아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듯했고 대화도 잘 통하는 듯했다.모임이 끝난 지 열 시가 넘은 시간, 술을 좀 많이 마신 강지아를 서원준이 집에 데려다주었다.서원준도 처음으로 강지아를 여기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고
강지아는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내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술기운이 올라온 상태에서 바로 온유한의 품에 안겼다.온유한이 서원준을 싸늘하게 바라보자 서원준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 눕더니 온유한에게 손을 뻗었다.“온 선생, 나도 잡아줘.”온유한이 그도 잡아당겼다.강지아도 사람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고 손으로 온유한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왜 또 왔어?”온유한은 그녀를 껴안고 안으로 들어가며 서원준에게 정중히 말했다.“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시간이 늦었으니 배웅하지 않을게요.”서원준은 온유한을 향해 손을 펴 보이더니 적대적인 시선으로 말했다.“그래요, 참. 숙취해소제를 가져 왔으니까 지아에게 한 알 먹여줘요.”약을 받아든 온유한은 문을 ‘쾅’ 닫았다.코를 만지작거리던 서원준은 옆집 문을 바라봤다.방금 강지아와 입씨름을 할 때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이 건물에 집이 두 개밖에 없으니 온유한은 강지아의 옆집에 산다!하지만 강지아는 이 일을 모르고 있다.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서원준은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인 줄 알고 언제 진도가 나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보다 더 고민인 건 온유한이다. 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문 안, 강지아가 윙크하며 말했다.“서원준 왜 갔어? 나와 술을 마셔야 하는데.”말을 하면서 문을 열려고 하자 온유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내가 같이 마실게.”강지아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는 오빠와 같이 마시고 싶지 않아.”하루 종일 짓눌려 있던 안 좋은 마음이 이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강지아는 상대방의 손을 뿌리치고는 신발을 벗고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온유한은 한숨을 내쉬며 힐을 신발장에 넣어주고 슬리퍼를 들고 쫓아갔다.“슬리퍼를 신어야지. 바닥이 차가워.”“차갑기는 뭘!”한여름엔 맨발이 편하다.하지만 생리할 때마다 죽을 듯이 아파하는 사람은 강지아다.온유한은 슬리퍼를 한 손에 들고 다가가
욕실에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은 온유한의 팽팽했던 몸이 드디어 풀렸다.강지아보다 거의 열 살이나 많은 그는 방금 자신이 강지아에게 할 뻔했던 일을 생각하면 자신이 정말 짐승처럼 느껴질 정도로 술렁거립니다.냉장고에 가서 맥주 한 캔을 가져와 몇 모금 마셨더니 차가운 식감이 그를 점점 냉정하게 만들었다.강지아가 술을 마셨다는 생각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유한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기다렸다.예전에 강지아의 병이 낫지 않아 그들은 그녀를 어린애처럼 총애했다.그러다 보니 나중에 병이 나은 후에도 그를 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강지아가 그를 남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방금 그 에피소드가 없었다면 온유한마저도 자신이 강지아를 성숙한 여자로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강지아의 침대에 앉아 있는 게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물소리가 그치고 잠시 후 강지아가 나왔다.하얀 가운에 드라이 헤어캡으로 머리를 감싼 그녀는 온유한을 본 순간 어리둥절해 했다.“아직 안 갔어?”말투에 짜증 나는 기색이 역력했다.목욕하고 난 강지아는 머리가 많이 맑아졌는지 온유한을 보면 짜증이 났다.“가, 빨리 가.”말을 하면서 온유한을 잡아당겼지만 온유한은 침대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고 손에 힘을 살짝 주며 오히려 강지아를 품에 안았다.“어디 가라고?”“어디를 가든 가!”“오늘 밤은 여기서 잘 거야.”강지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여기서 자겠다고? 지금 뭐 하는 거야?”강지아는 무의식적으로 가운을 움켜쥐었다.온유한을 오해하는 말에도 그는 해명하려 하지 않았고 렌즈 뒤의 눈동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윽하고 애매모호했다.“지아야, 시간이 늦었는데 정말 나를 쫓아낼 거야?”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지아는 저도 모르게 그녀가 미쳤을 때를 떠올렸다.그때도 그는 지아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지아야, 괜찮아. 다 괜찮아, 유한이 오빠가 있으니까.”온유한이라는 사람은 강지찬과 최의현보다 존재감이 떨어진다. 세 사람의 역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제일 앞에 서 있던 강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뒤따라오던 최의현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저 사람 현채영 아니야? 저 남자는 누가야? 낯이 익네.”한규진은 호텔 로비에 막 들어선 최신애를 보고 한마디 했다.“쯧쯧, 볼거리가 생겼네.”현채영은 그 남자와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최신애가 뒤따라가자 최의현 일행도 따라갔다.“미친, 생각났어.”최의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 그 지씨 가문 셋째 아니야? 추호와 친하던 애 있잖아. 지씨 가문에서 꽤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지씨 가문 셋째?”한규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에서 지씨 가문은 명성이 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구설수는 꽤 많다.예전에 지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밖에서 데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생아이지만 정실 마누라가 낳은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틀림없이 지씨 가문 셋째 아들 지태주일 것이다.지태주와 현채영이 만난다고?생각보다 재미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최의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신애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스위트룸 방문 앞에 멈춰선 최신애는 노크를 하는 대신 손목시계만 계속 들여다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20여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유한은 강지찬 일행과 마주쳤다.온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찬을 슬쩍 쳐다봤다.강지찬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온유한을 시크하게 흘겨보았다. 화가 난 건지 짜증 난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최의현이 온유한 앞에 다가가더니 턱으로 스위트룸 방향을 가리켰다.“어떻게 된 일이야? 현채영이 왜 지태주와...”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온유한의 말에 강지찬 일행은 온유한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남자와 여자가 한밤중에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철학 토론이라도 하겠는가?하지만 온유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본인
“지찬아, 유한이가 미친 거 아닐까? 임유희를 집에서 쫓아내고 현채영을 온씨 저택에 데려갔어. 최신애가 엄청 화를 낼 것 같은데?”최의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현채영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몰랐네... 그때 지아를 신경 쓰는 것보다 더...”강지찬이 힐끗 바라보자 최의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임유희 때문에 온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이도 안 좋아졌어. 임씨 가문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잖아. 아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복수하려 할 거야. 그 임씨 부부도 생각이 있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온유한이 임유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온씨 가문에 바싹 달라붙어 가문의 지위를 올리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최신애만 그걸 모르고 어떻게든 유한이와 임유희를 엮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지. 온유한은 임씨 가문의 속셈을 알았을까?”한규진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그 자식 계속 약속 펑크내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을 것 같아.”경은우가 말했다.“유한이 형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 거야. 유한이 형이 절대 함부로 누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최의현이 말했다.“며칠 전 만났을 때 임씨 가문 얘기를 몇 마디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루 종일 잠을 잔 현채영은 가방을 들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잠깐!”거실에 앉아 있던 최신애는 현채영의 화려한 차림을 보고 화를 냈다.온유한이 석식이 있어 집을 비우니 현채영은 한밤중에 외출을 하려 했다.현채영이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어디 가는 거야?”“친한 여자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오늘 밤엔 안 들어올 거예요.”그 말에 최신애는 바로 화를 냈다. “친한 여자친구들?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밖에 안 하는 날라리 여자들?”현
임유희도 온유한에게 쫓겨난 후 몸져누워 열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임유희는 이제 주위에서 웃음거리가 됐다.이 때문에 임씨 부부와 임유희 오빠는 온씨 가문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바쁜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온유한은 문 앞에서 온혁진과 최신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때 임유희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온유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에서 최신애가 병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그럼 내 탓이란 말이에요? 당신 하나뿐인 아들이 현채영 그 여자와 엮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강지아가 어때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최신애, 우리 온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온혁진의 말을 들은 최신애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평생 사랑한 이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내가 그런 거라고요? 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온혁진은 더 이상 이 일로 최신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유한이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이 기어코 유한이와 지아를 갈라놓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강씨 가문과 원수가 되었고 임씨 가문의 미움도 샀어. 만약 임씨 가문이 그때 강지찬처럼 작정하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도와달라고 할 거야?”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도 바짝 긴장했다.“투자자들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하는데 임씨 가문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당신이 뭘 알아?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보다 우수한 의료 회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경쟁업체에서 얼마 전에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했다고 들었어. 우리가 올해 주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는데...”온혁진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봤자 당신이 뭘 알겠어.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씨 가
강지아도 명성 빌딩에 오래 묵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서원준과 함께 집을 나섰다.현관문 너머로 서원준의 목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그제야 어젯밤에 서원준도 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한편 기분이 좋아진 서원준은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지아야, 이 집 어차피 비어 있는데 우리가 이사 오는 게 어때?”강지아는 서원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꿈 깨.”서원준이 일부러 다가가서 강지아를 품에 꽉 껴안자 강지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뭐 하는 거야?”서원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에게 뭘 하겠어?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걸 못했네.”강지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함부로 행동하기만 해 봐!”강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무언가를 기대하던 서원준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분명 저도 모르게 끌려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갔을 것이다.놀라움만 가득한 눈빛으로 서원준을 바라보는 순수한 강지아에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하긴 강지아가 왜 고백을 받았는지 서원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온유한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서원준은 아쉬운 마음에 강지아의 볼을 꼬집은 뒤 말했다.“내일 나 출장 가. 저녁 비행기인데 같이 갈래? 꽤 재미있는 곳인데.”서원준은 연예계 활동 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강지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거기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안 가. 요즘 작업실에서 현지 수주를 받은 게 있어서 자리 비우면 안 돼.”“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올게.”두 사람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는 없었다.오늘 서원준은 석식 약속이 있었고 내일도 바쁘기에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야 강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차에 타기 전에 서원준은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여기
오늘 기분이 좋은 서원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강지아는 진수혁의 도움을 받아 서원준을 명성 빌딩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여기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진수혁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모두 옮겨갔기에 집은 예전 상태로 되었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두 사람은 서원준을 게스트 룸, 즉 진수혁이 묵었던 방에 데려다 눕혔다.이불을 끌어안은 서원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지아야... 나 너무 좋아... 정말 기뻐...”강지아는 진수혁에게 말했다.“이 집 어차피 비워둘 건데 그냥 있어도 되는데.”“여태까지 묵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진수혁은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전기와 가스 카드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놓아뒀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말을 마친 진수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진수혁은 온유한에게 명성 빌딩에서 이사를 했기에 더는 가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온유한은 휴대전화를 힐끗 본 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최신애는 최씨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이 자식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야. 우리 온씨 가문과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니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러나 봐. 내가 죽어야 본인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내 팔자야! 힘들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까지 멀쩡했는데 지금은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어. 하느님, 제가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얘기하고 계세요. 야식 좀 사 올게요.”황은숙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고 최신애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들으니 지칠 대로 지쳤다.“됐어. 나도 금성이 집에 가봐야 해. 유한아,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잘 모셔.”황은숙과 최금성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병실에는 온씨 모자만 남아 있었다.최신애의 얼굴에 있던 슬픔이 어느새 원망으로 변했다.“왜, 나와 같이 있기도 싫은 거야?”온유한이 말했다.“채영이 집
강지아의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화령이 차를 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강지아의 다도 실력도 선보이게 되었다.녹화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화령이 강지아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얼마 전에 온씨 집안이 떠들썩했던 거 알아?”강지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령이 말을 이었다.“나도 금성 씨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국물을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화령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두 가지 일이 일어났어. 첫 번째는 최신애가 온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줄 가보를 현채영이 훔쳤다면서 누명을 씌웠지. 그래서 경찰까지 불렀대. 온유한이 최신애와 싸우고 나서 경찰이 갔고 현채영은 별일 없었대. 두 번째 일은 어젯밤 온유한이 현채영을 위해 최신애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임유희를 온씨 저택에서 쫓아냈고 최신애는 한밤중에 화를 내며 병원에 입원했대.”강지아는 국물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 사람 다 힘든 것보다 낫네. 적어도 현채영 씨는 힘들지는 않으니까.”강지아가 별 반응이 없자 화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유한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강지아가 말했다.“좋은 사람을 만났나 보지 뭐. 현채영 씨, 괜찮잖아.”화령은 온유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작업실로 돌아온 강지아는 커피 한 잔을 끓였다.서랍을 열어보니 서원준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아직 전달하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려서 수신자를 보니 진수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새집을 찾았기에 명성 빌딩에서 묵지 않겠다고 했다.월세도 내지 않고 강지아의 집에 산 것에 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남자친구 데려가도 돼?”“당연하지. 단골 술집에서 만나. 사장님더러 십몇 년 동안 간직해온 술을 오픈하라고 해야겠네.”“그래.”강지아
순간 임유희는 오늘 밤 온유한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천천히 다가가 온유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임유희였다.임씨 가문이 온유한을 몰아세우면 그녀는 온유한 앞에서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에게 점수를 딸 생각이었다.임근우와 장희수도 잘 협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고가 생겼다.“콜록... 유한 오빠... 그게...”“봤냐니까?”온유한은 다시 한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표정이 매우 사나워 보였다.“아니, 아니...”임유희는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렸다.“방금 본 건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네네, 알겠어요!”임유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순간 온유한의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다.온유한이 한참 후에야 손을 뗐고 임유희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졌다.하마터면 온유한의 손에 죽을 뻔했다.이 남자는 더 이상 3년 전 그녀를 설레게 했던 온유한이 아니었다.지금의 온유한은 강지아를 위해 미쳐버린 상태였다.그는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지'자를 문신했다.미친 거 아닐까?너무 무섭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온 목적은 분명했다.강지아를 위해서라면 친엄마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다.이런 남자를 그녀가 어떻게 옆에 둘 수 있겠는가?감히 엄두도 못 낼 것이다.임유희는 기다시피 하며 온유한의 방을 뛰쳐나갔다.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혹시라도 온유한이 따라올까 봐 서둘러 문을 닫은 뒤 방문을 잠갔다.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니 목에 빨간 자국이 생겼다.온유한이 진짜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침대에 몸을 웅크린 뒤 장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다.“엄마, 온유한이랑 결혼하기 싫어. 집에 가고 싶어.”장희수는 지금 한창 신이 난 상태였다. 최신애가 장희수와 친해지기 위해 카드도 많이 양보했다.“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장희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
“진짜 열받아 죽겠어. 정말!”화가 난 최신애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엄마인 나를 점점 안중에도 안 두는구나. 같이 지옥에 가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온혁진은 이런 최신애가 너무 귀찮았다. 낮에 임씨 가문 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은 온유한과 임유희의 혼사를 언제 치를 것이냐고만 물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온유한이 임유희와 약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애초에 임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우리가 오히려 발목이 잡혔어.”온혁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유한이 결혼에 대해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경고하는데 당신도 좀 똑똑하게 굴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지 말고. 임씨 가문 사람들도 속셈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최신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속셈이가 있어 봤자 무슨 속셈이가 있겠어요? 유희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것뿐이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유희가 유한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임씨 가문도 그저 말로만 재촉하는 것이니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나라고 상관하고 싶겠어요? 현채영 같은 여자가 강지아보다 훨씬 못한데 어떻게 우리 온씨 가문에 들이겠어요? 그런 여자를 들였다가는 서울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온혁진은 골치가 아팠다. 말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온유한이 진짜로 현채영과 결혼하려 한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래서 이 일은 최신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이날 오후 최신애는 장희수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대화가 잘 통했는지 저녁에는 카드 놀이하러 함께 갔다.온유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임유희만 있었고 현채영은 다른 일이 있어서 현씨 저택으로 돌아갔다.“유한 오빠, 아직 밥 안 먹었죠?”온유한이 ‘응’이라고 대답하자 임유희는 얼른 하인을 시켜 밥을 차리게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일이 있으셔서 밖에서 저녁 드시고 오겠대요. 아버님도 석식이 있으시다고 했고 현채영 씨도 저녁에 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