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연이 강원훈과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강홍식은 그 후부터 그녀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얼굴도 보기 싫었다.결국 고세연이 임미연 만나러 나와 그녀의 배를 훑었다.평범한 사람처럼 평탄한 배를 보니 아이가 없어진 게 분명했다.경찰을 본 임미연은 깜짝 놀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했다고 했다.아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임미연만이 잘 알 것이다.“여긴 왜 왔어?”고세연은 통쾌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강씨 저택에 올 면목이 남아 있어? 지찬이를 찾으러 온 거야, 아니면 강원훈을 찾으러 온 거야? 강원훈을 찾는 거면 장소를 잘못 찾았어. 강원훈은 이제 강씨 집안 사람이 아니야.”임미연은 살이 좀 빠진 상태였다. 예전엔 얼굴에 어린 티가 좀 났었는데 지금은 성숙해졌고 더 요염해졌다.“강지찬을 찾으러 왔는데 지금 없다니 굳이 그쪽하고 얘기할 필요는 없겠네요.”임미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나를 못마땅해하는 거 알지만 나는 그쪽과 많이 달라요. 어쨌든 강지찬은 나에게 목숨을 빚졌어요. 이것만으로도 평생 나에게 빚진 것이고요.”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고세연은 ‘퉤’하고 침을 뱉었고 손바닥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강지찬과 정유진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까지 임미연은 아직 가지 않았다.연우는 길에서 잠이 들었고 강지찬은 아이를 핑계로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정유진에게 맡겼다.“지찬 오빠, 볼일이 있어요. 지찬 오빠?”“나와 얘기해.”정유진의 말에 임미연이 한마디 했다.“지찬 오빠와의 일이지 그쪽하고는 상관없어요.”정유진이 웃었다.“장형준 씨, 손님 배웅해드려요.”임미연이 미처 발작을 일으키기도 전에 장형준이 그녀를 강제로 내보냈다.정유진은 조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샤워를 했고 밖으로 나왔을 때 강지찬은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다.강지찬은 그녀를 보자마자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 정 대표님은 점점 더 기백이 넘치시네.”정유진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그의 얼굴에 던지며 말했다.“어떻게든 임미연을 단념시키는 게 좋을
주유정의 작업실도 곧 인테리어가 완성되어 최신애와 함께 액세서리를 고르러 온 것이다.최신애 생일잔치 이후 강지아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고 오늘 이렇게 만난 이상 못 본 척할 수는 없어 최신애를 향해 걸어갔다.“아주머니, 유정 씨, 이런 우연도 있네요.”주유정이 웃으며 말했다.“지아도 공예품 보러 온 거야. 우연이네.”최신애는 싱겁게 ‘응’이라고 외쳤지만 강지아를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동안 밖에서 생활하던 온유한은 지난번 그녀가 감기에 걸린 말을 듣고서야 그녀를 보러 갔다.강지아도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예의만 차렸다.“그럼 방해하지 않을 테니 천천히 보세요.”말을 마치고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한쪽으로 갔다.“제가 주문한 작품 다 적어주세요. 다 살 테니.”점원에게 당부하자 점원은 서둘러 공책과 펜을 챙겨오더니 눈을 반짝이며 강지아를 바라봤다.강지아는 흰 사슴 조각상 앞에 서서 조금 고민했다.이 사슴은 모양과 공예가 모두 훌륭하고 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름답다.이 디자인이 매우 마음에 들지만 그녀의 작업실 스타일과 좀 어울리지 않았다.이때 주유정과 최신애도 사슴을 발견했고 순간 주유정은 눈이 번쩍 뜨였다.“이 사슴은 영기가 넘치네요.”점원이 서둘러 영업 멘트를 날렸다.“이건 저희 사장님이 새로 내놓은 작품입니다.”주유정은 하얀 장갑을 낀 채 사슴뿔 애지중지 만지작거리다가 뒤따르던 점원에게 말했다.“이 사슴 제가 살게요.”두 점원이 눈을 마주치자 주유정은 그제야 반응했다.“아 미안. 지아가 찜한 거야?”강지아는 이 사슴이 마음에 들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주유정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양보하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최신애가 말했다.“방금 장 보듯 한 뭉치 샀는데 그거 하나쯤은 없어도 돼. 유정아, 이 사슴은 재물을 뜻해. 문을 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 사슴 한 마리가 뛰어든다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말을 마치자마자 점원을 향해 한마디 했다.“이 사슴 우리가 살게요.”이에
사실 강지아는 그동안 온유한을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 사람은 요즘 많이 바쁜지 보름 동안 외국에 있다가 귀국 후에는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느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그저 잠깐 시간을 내 강지아와 밥을 몇 번 먹었을 뿐이다.두 사람의 관계는 줄곧 매우 어색했다. 예전처럼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했다.그런데 최신애의 입에서 남자를 꼬시는 여자가 되다니?“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강지아는 완강하게 말했다.강홍식처럼 억지를 부리는 아버지가 있는 그녀로서 비슷하게 억지를 부리는 어른을 대할 때 늘 대립각을 세웠다.“한 번도 먼저 유한 오빠를 찾아간 적이 없어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아주머니도 아들을 잘 돌보시면 되겠네요.”집에서 고집이 센 최신애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이렇게 말할 줄 몰랐다.게다가 말하는 사람 역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강지아이니 기절할 뻔했다.주유정은 불난 집에 부채질은 차마 하지 않았고 그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지아야, 그만해. 이 사슴 내가 양보하면 되잖아.”강지아는 그 말에 구역질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양보라니요? 원래 내가 먼저 찜한 거예요.”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최신애는 화를 벌컥 냈다.“오늘 이 사슴은 내가 사야겠어. 유정아, 이 사슴은 내가 사서 너의 개업 선물로 줄게.”말을 마친 후 직접 손을 들어 옮기려고 하자 두 영업사원이 깜짝 놀라 얼른 다가가서 막았다.‘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사슴이 바닥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강지아는 눈썹을 치켜떴고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어리둥절해졌다.가장 빨리 반응한 사람은 주유정이다.“죄송해요. 우리가 배상할게요.”“뭐 하는 겁니까?”콧수염을 기른 40대 중반의 남자가 와서 바닥에 파편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이것은 지난 3개월 동안 겨우 만들어 낸 만족할 만한 작품인데 깨버리다니요!”주유정은 서둘러 배상하겠다고 말했다.“누가 당신들의 더러운 돈을 원한대요? 이것은 나의 피와 땀으로 만든 거라고요.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
강지아는 공예품 선택을 마치고 다시 작업실로 갔다.여기서 정유진의 연우 인테리어와 K그룹과 멀지 않다.직원 휴게실을 조정하기 위해 근로자들과 상의하고 있는데 서원준에게서 전화가 왔다.“바보야, 같이 밥이나 먹자꾸나.”“너야말로 바보야, 온 집안이 바보야.”그러고는 한쪽에 있던 근로자를 향해 말했다.“어쨌든 여기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해. 미리 남겨둔 책장 자리 외에 소파 두 개도 추가할 테니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인테리어 근로자가 말했다.“차라리 탕비실과 휴게실을 개방형으로 만드는 게 어때요.”강지아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래요. 그렇게 하죠.”이 스튜디오는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지만 실내 인테리어에 익숙하지 않아 인테리어를 하면서 계속 수정했다. 그래도 정유진이 관리해 준 덕분에 현재 큰 효과를 보고 있었다.서원준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몰라 한마디 물었다.“기다려, 데리러 갈게.”“이제 팔을 쓸 수 있어? 쉬어. 주소 보내면 내가 직접 갈게.”강지아는 그제야 서원준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연예계와 패션계의 유명인사들도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잠깐 소개 후 안경을 쓴 기질이 강한 여자가 강지아를 향해 앉으라고 손짓했다.“강지아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전에 런웨이에서 봤는데 업계에서 평판이 높아요.”이에 서원준이 강지아를 소개했다.“에이미 누나, 애먼 편집장이야.”‘애만’은 국내 최고의 패션잡지 회사로 현재 발전이 매우 빠르며 해외 패션계에도 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높은 반열에 올랐다.강지아도 에이미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실물을 본 적은 없다.“에이미 언니, 안녕하세요.”강지아는 얌전히 다가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주위에는 모두 프로듀서, 감독님들이 앉아 있었다.에이미는 강지아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듯했고 대화도 잘 통하는 듯했다.모임이 끝난 지 열 시가 넘은 시간, 술을 좀 많이 마신 강지아를 서원준이 집에 데려다주었다.서원준도 처음으로 강지아를 여기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고
강지아는 눈앞이 캄캄해졌고 이내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술기운이 올라온 상태에서 바로 온유한의 품에 안겼다.온유한이 서원준을 싸늘하게 바라보자 서원준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 눕더니 온유한에게 손을 뻗었다.“온 선생, 나도 잡아줘.”온유한이 그도 잡아당겼다.강지아도 사람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고 손으로 온유한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왜 또 왔어?”온유한은 그녀를 껴안고 안으로 들어가며 서원준에게 정중히 말했다.“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시간이 늦었으니 배웅하지 않을게요.”서원준은 온유한을 향해 손을 펴 보이더니 적대적인 시선으로 말했다.“그래요, 참. 숙취해소제를 가져 왔으니까 지아에게 한 알 먹여줘요.”약을 받아든 온유한은 문을 ‘쾅’ 닫았다.코를 만지작거리던 서원준은 옆집 문을 바라봤다.방금 강지아와 입씨름을 할 때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이 건물에 집이 두 개밖에 없으니 온유한은 강지아의 옆집에 산다!하지만 강지아는 이 일을 모르고 있다.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서원준은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인 줄 알고 언제 진도가 나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보다 더 고민인 건 온유한이다. 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문 안, 강지아가 윙크하며 말했다.“서원준 왜 갔어? 나와 술을 마셔야 하는데.”말을 하면서 문을 열려고 하자 온유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내가 같이 마실게.”강지아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는 오빠와 같이 마시고 싶지 않아.”하루 종일 짓눌려 있던 안 좋은 마음이 이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강지아는 상대방의 손을 뿌리치고는 신발을 벗고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온유한은 한숨을 내쉬며 힐을 신발장에 넣어주고 슬리퍼를 들고 쫓아갔다.“슬리퍼를 신어야지. 바닥이 차가워.”“차갑기는 뭘!”한여름엔 맨발이 편하다.하지만 생리할 때마다 죽을 듯이 아파하는 사람은 강지아다.온유한은 슬리퍼를 한 손에 들고 다가가
욕실에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은 온유한의 팽팽했던 몸이 드디어 풀렸다.강지아보다 거의 열 살이나 많은 그는 방금 자신이 강지아에게 할 뻔했던 일을 생각하면 자신이 정말 짐승처럼 느껴질 정도로 술렁거립니다.냉장고에 가서 맥주 한 캔을 가져와 몇 모금 마셨더니 차가운 식감이 그를 점점 냉정하게 만들었다.강지아가 술을 마셨다는 생각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유한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기다렸다.예전에 강지아의 병이 낫지 않아 그들은 그녀를 어린애처럼 총애했다.그러다 보니 나중에 병이 나은 후에도 그를 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강지아가 그를 남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방금 그 에피소드가 없었다면 온유한마저도 자신이 강지아를 성숙한 여자로 여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강지아의 침대에 앉아 있는 게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물소리가 그치고 잠시 후 강지아가 나왔다.하얀 가운에 드라이 헤어캡으로 머리를 감싼 그녀는 온유한을 본 순간 어리둥절해 했다.“아직 안 갔어?”말투에 짜증 나는 기색이 역력했다.목욕하고 난 강지아는 머리가 많이 맑아졌는지 온유한을 보면 짜증이 났다.“가, 빨리 가.”말을 하면서 온유한을 잡아당겼지만 온유한은 침대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고 손에 힘을 살짝 주며 오히려 강지아를 품에 안았다.“어디 가라고?”“어디를 가든 가!”“오늘 밤은 여기서 잘 거야.”강지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여기서 자겠다고? 지금 뭐 하는 거야?”강지아는 무의식적으로 가운을 움켜쥐었다.온유한을 오해하는 말에도 그는 해명하려 하지 않았고 렌즈 뒤의 눈동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윽하고 애매모호했다.“지아야, 시간이 늦었는데 정말 나를 쫓아낼 거야?”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지아는 저도 모르게 그녀가 미쳤을 때를 떠올렸다.그때도 그는 지아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지아야, 괜찮아. 다 괜찮아, 유한이 오빠가 있으니까.”온유한이라는 사람은 강지찬과 최의현보다 존재감이 떨어진다. 세 사람의 역
다음날 강지아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에 잠에서 깼다.어젯밤에 별로 취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던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감싼 채 침대에서 뒹굴었다.잘생긴 얼굴만 보고 이렇게 쉽게 온유한을 용서하다니!게다가 집에 묵도록 내버려 뒀다.휴대전화를 보니 벌써 11시를 훌쩍 넘었다.천천히 일어나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꾸물거리며 나오니 온유한은 이미 점심을 다 차려 놓았다.이 인간은 외모로 그녀의 눈을 유혹할 뿐만 아니라 음식으로 그녀의 위마저 유혹했다.“능구렁이 같으니라고!”때마침 환풍기를 끄던 온유한이 그 말을 듣고 물었다.“누가 능구렁이인데?”이때 강지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전해 어색한 얼굴 없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온유한이 웃으며 말했다.“속이 안 좋을까 봐 죽을 끓였어. 새우와 옥수수를 넣고 야채도 조금 넣었으니 먹어봐.”테이블에 놓인 죽은 진하고 부드러워 강지아가 좋아하는 식감이었다.도도한 흉부외과 주임이 요리까지 잘하다니!밥을 먹는 강지아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이렇게 능글맞은 사람과 어떻게 어제 일을 따지냐 말이다.맞은편에 앉은 온유한은 강지아의 얼굴색이 이리저리 변하는 것을 보고 이 계집애가 분명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 있다고 짐작했다.“요즘 쉬는 김에 놀러 갈지 않을래?”“싫어. 요즘 바빠.”강지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거절했다.얼마 전까지 학생들과 같이 공부, 회의, 수술, 논문 등 일 때문에 바삐 돌아다녔던 온유한은 겨우 숨돌릴 시간이 났고 며칠 휴가를 내어 강지아와 같이 보내려 했다.“작업실이 거의 다 완성됐지? 내가 도울 건 없어?”“없어.”온유한도 그녀가 아직도 어제 일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경찰을 통해 어제 일의 경과를 알게 되었는데 완전히 그의 어머니가 일부러 트집을 잡은 것이었다.그는 여러 번 최신애에게 말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모자 둘은 결국 사이가 틀어졌다.뾰로통해 하는 강지아의 얼굴을 본 온유한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힘을 별로 쓰지
밥을 먹은 온유한은 다시 식탁과 부엌을 치우기 시작했다.이때 서원준이 강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바보야, 깼어?”“진작 깼어. 왜?”“어제 같이 술 마신 에이미 누나 기억나? 방금 나에게 전화가 왔는데 에이미 누나가 조만간 패션쇼를 열 거라면서 관심 있냐고 너에게 물어달래.”강지아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뭐? 에이미 언니 패션쇼 디자인을 나에게 맡기겠다고?”“왜? 못 하겠어?”강지아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그렇게 큰 패션쇼를 맡아본 적이 없어. 지금까지 그냥 작은 패션쇼만 했어.”전화기 너머의 서원준은 껄껄 웃었다.“겁쟁이, 그냥 평범한 패션쇼야. 에이미 누나도 네 예전 작품을 보고 네 능력을 믿어서 널 찾은 거지. 원래 외국 디자이너를 고용할 계획이었지만 그 사람은 태도가 너무 오만하고 우리나라 패션계를 너무 무시해서 에이미 누나가 그 사람과 협력하고 싶지 않대. 어젯밤에 밤새 너의 작품을 보고 네가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봐.”강지아는 너무 흥분되었다.애만 산하의 패션과 주얼리는 국내외 시장에서 평판이 아주 좋다. 다만 다른 글로벌 브랜드에 밀려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강지아는 당연히 애만과 협력할 의향이 있다. 단지 자신의 능력이 에이미의 기대를 저버릴까 봐 걱정되었다.“한번 해봐.”옆에 있는 온유한의 말을 들은 서원준은 순간 멈칫했다.이제 보니 온유한이 바로 옆에서 그녀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바보야, 겁먹지 마. 에이미 누나의 연락처 줄 테니까 얘기해 봐. 걱정하지 말고. 에이미 누나가 너를 많이 좋아해.”강지아는 긴장하고 설레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했다. 에이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온유한도 강지아를 따라갔고 그가 온씨 가문 사람이라는 말에 에이미는 조금 놀랐다.“이런 우연이. 우리 엄마도 며칠 전 태안 병원에서 아주 젊은 주임 의사에게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는데 설마 그 사람이 온 선생님이에요?”온유한은 웃으며 말했다.“인제 보니 장 교수님의 가족이셨군요.”에이미는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