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의 생일이 다가오자 강지찬은 강홍식의 마당에서 올해 연우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줄지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연우가 울면서 뛰어 들어왔다.그 뒤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이올린 선생님과 어쩔 줄 모르는 임미연이 따라왔다.강지찬이 임미연을 싸늘하게 힐끗 쳐다보았다.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강홍식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울긴 왜 울어, 엄마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어?”깜짝 놀란 연우는 어리둥절해 했고 작은 입을 벌렸지만 울지도 못했다. 까만 눈동자에 눈물만 가득 고인 모습은 강지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강지찬은 딸을 품에 안더니 강홍식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말을 할 줄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그리고 하인이 건네준 깨끗한 수건을 받아 조심스럽게 딸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말해봐. 누가 괴롭혔어.”겁에 질린 연우는 울지도 못하고 훌쩍거리기만 했다.“아빠, 저... 저 이모가 낳은 동생은 필요 없어요. 엄마가 낳은 동생만 필요해요.”강지찬의 매서운 시선이 임미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보아하니 내 딸에게 헛소리했구나!”이내 고개 숙이더니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연우에게 말했다.“이모가 낳은 남동생은 당연히 네 동생이 아니지. 연우야, 동생이 필요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저스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아주 귀여워요. 아빠, 우리가 엄마더러 동생을 낳으라고 할까요?”이 말에 강지찬은 마음이 아팠다. 요즘 강지찬은 최선을 다해 연우를 돌보고 있었지만 정유진은 늘 연우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늘 녀석에게 빚지고 있다고 여겼다.지금 연우가 이렇게 얘기하니 저녁에 정유진과 잘 얘기해 봐야겠다.“응, 아빠가 빨리 내 소원 들어줘요.”그 말에 강홍식은 또 불만이었다.“미연이 배 속의 아이가 왜 네 동생이 아니야. 꼬맹이가 엄마만 닮아서...”강지찬은 이내 그의 말을 끊었다.“유 선생님, 연우 좀 데리고 가서 물 좀 마시게 해주세요.”여기 서서 재벌가 집안의 싸움을 구경하고 싶지 않은 바이올린
임미연은 확실히 강홍식이 불렀다.K그룹이 정유진의 손에 넘어갈까 봐 일부러 임미연을 불러 강지찬 앞에 내세웠던 것이다.“어르신,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찬 오빠가 저에게 집을 사준 이후로 점점 더 저를 차갑게 대해요. 지금은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요.”강홍식은 얼른 위로했다.“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몸조리 잘해.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너에게 돌아올 거야. 아니면 나부터 저 자식 용서할 수 없어.”하지만 이 말은 임미연에게 전혀 위로되지 못했고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았다.본가를 떠난 임미연은 커피숍에 갔고 강원훈을 무려 30분이나 기다려서야 그가 차에서 기다렸다.만약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차의 조수석에는 예쁜 아가씨가 타고 있다.거리가 멀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절대로 주연지는 아니었다.강원훈과 마주 앉자 임미연은 자신도 모르게 속이 메스꺼웠다.“또 무슨 일인데?”강원훈이 짜증 난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은 임미연은 바로 본론을 말했다.“강지찬이 왜 점점 나를 차갑게 대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배 속의 아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딸의 생일 파티만 신경을 쓰고 있어요.”“나에게 그 얘기를 왜 하는데?”“나는 어떻게든 강씨 집안 사모님 자리에 앉아야 해요!”강원훈이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임미연은 지금 전혀 방법이 없다. 돈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강원훈을 찾아 말할 수밖에 없었다.“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요?”“내가 왜 너를 도와야 하는데?”“잊지 마세요. 우리는 한배를 탔어요.”강원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임미연을 바라봤다.“설마 내가 너를 못 잊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여자들이란 정말, 내가 왜 강지찬의 등잔 밑에서 이렇게 오래 숨을 수 있었는지 알아? 참을 줄 알기 때문이야. 네가 날 가지고 놀 수 있을 것 같아? 강지찬에게 가서 혼수상태일 때 내가 죽이려 했다고 말해. 그 사실을 알고도 너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켜줄까
연우의 생일 파티는 강지아가 모두 맡았다.최근에 별일이 없었고 모든 잡념을 버리기 위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은 강지아가 도맡았다.강지찬과 정유진이 처음으로 같이 쇠는 딸의 생일 파티인 만큼 당연히 성대하게 치렀다.연회 장소는 강씨 집안 명의의 한 회관이며 강씨 집안의 가까운 친척과 친구 및 일부 사업 파트너를 초대했다.생일 파티 당일 패밀리 룩을 입은 가족 3명이 나타났다. 강지찬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한 손으로 와이프의 손을 잡고 나타나면서 그동안의 불화설을 일축했다.“이혼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다시 만나잖아? 그 여자만 우습게 되었지 뭐!”“정유진이라는 여자 역시 수완이 남달라요. 지난번에 사람들 앞에서 강지찬의 얼굴에 술을 뿌렸는데도 아무 일 없잖아요.”“그러니까 여자는 역시 능력이 있어야 해요. 본인 회사도 아주 잘 된다고 들었어요.”“지금 K그룹에서 대표이사 권한대행으로 일하고 있잖아요. 강지찬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 두 사람 정말 평범하지 않다니까요.”남들이 어떻게 보든 간에 강지찬과 정유진 부부의 파경설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되었다.연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송지윤과 강홍택도 외국에서 급히 돌아왔다.강원훈의 가족 3명도 참석했고 값비싼 선물까지 준비했다.강홍식은 나타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강지현과 조예원도 나타나지 않았다.조예원 강지현이 갈 줄 알았는데 그날 그는 방에서 전혀 나오지도 않았다.약을 들고 올라가서 한마디 했다.“옷은 준비했어요. 파티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강지현은 약을 마신 후 말했다.“안 갈 거예요. 굳이 가서 방해할 필요 있어요.”조예원은 그제야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았다. 불치병에 걸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나 조예원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강지현이 집착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정유진이라는 그 이름이 그의 뼛속까지 박혔기 때문이다.그동안 정유진과 함께하기 위해 모든 음모를 다 꾸몄고 결국 강지찬과
강지아는 임미연을 한 번도 상냥하게 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말투를 온유한에게 들켰다.특히 임미연은 임산부이다.하지만 강지아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들킨들 그 사람이 본인을 신경 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임미연은 사람이 오자 신이 났다.“안녕하세요. 저는 임미연이라고 합니다. 강씨 집안의 친척이에요.”온유한은 임미연을 힐끗 쳐다봤다. 이 여자의 정체와 강지찬의 속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주유정에게 말했다.“차에 뭐 가지러 가야 한다며? 가자.”그러나 임미연의 배를 발견한 주유정은 관심조로 물었다.“임신했어요? 밖이 추우니 빨리 들어오세요.”임미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더니 이내 배를 움켜쥐고 회관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강지아가 손을 뻗어 막았다.“거기 서, 내가 언제 들어가라고 했어?”임미연의 얼굴이 굳어졌고 주유정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임미연 씨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친척이잖아. 그런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직설적인 강지아는 빙빙 돌려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몸을 홱 돌려 주유정에게 다가가 말했다.“아까 말다툼하는 거 못 들었어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왜 혼자 착한 척해요? 여긴 무슨 일로 왔는데요?”“그런 뜻이 아니야.”주유정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돼서 그래. 홀몸도 아니잖아.”순간 강지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래요? 걸어 다니는 천사 나셨네요? 나는 악마고? 주유정 씨? 그 정도 연기했으면 됐어요. 여기 일은 당신과 상관없으니까!”“지아야!”온유한이 경고하듯 불렀다.본인 스스로를 그렇게 비꼬아 낮추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만 부른 타이밍이 이상해 강지아의 귀에는 그녀를 향한 호통으로 들렸다.강지아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바깥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말했다.“오늘 임미연이 한 발짝이라도 우리 회관에 들어오면 당신들 다 잘릴 줄 알아요!”
강지아는 씩씩거리며 회의실로 돌아갔고 미처 감정정리를 하기 전에 정유진의 눈에 띄었다.“또 온 선생 때문에 화난 거야?”강지아는 딱 잡아뗐다.“아니요. 임미연이 와서 내쫓았어요.”정유진은 웃으며 말했다.“화내지 마. 그럴 필요 없어. 오늘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연우 고모야.”정유진이 화를 내지 않자 강지아는 무척 서운해했다.“새언니, 우리 오빠를 왜 이렇게 쉽게 용서해요? 그 여자 배가 나날이 커지는데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아요?”“오빠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진짜 너의 오빠 아이일까?”정유진이 되물었다.“당연히 안 믿죠.”“그럼 됐어. 나도 안 믿어.”강지아는 강지찬에 대해 잘 모른다. 오빠의 그늘이 너무 큰 보호막이 되어주기에 사건 뒤에 어떤 위험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새언니가 오빠를 믿는다는 말에 강지아는 너무 기뻤다.“언니 오빠만 저 여자 영향을 안 받으면 돼요. 두 사람만 안 싸우면 돼요. 싸우면 왠지 내가 부모 없는 아이가 된 것 같아요.”이때 마침 온유한이 다가오자 정유진은 강지아의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유한 씨 왔어요? 그럼 두 사람이 얘기해요.”위로 올라갔던 강지아의 입꼬리는 다시 내려갔다.그녀는 온유한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또 자신의 성격을 컨트롤 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지아가 걸으면 온유한도 따라온다.“왜 따라와, 주유정에게 안 가봐도 돼?”“조금 전에 너를 원망할 생각은 아니었어.”온유한의 말에 강지아는 멈칫했지만 이내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상관없어, 내가 거칠고 악랄하다고 생각해도 그건 오빠 생각이 그런 것이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니까.”강지아가 스스로를 비꼬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온유한은 이내 반박했다.“그렇게 말하지 마.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나 그런 사람 맞아.”강지아는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내가 임미연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옥상에서 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야. 보면
연우의 생일 파티는 성공적이었고 무엇보다 연우도 즐거워했다.유치원생들을 모두 초대해 강지아가 특별히 설계한 실내 동화 나라 안에서 신나게 놀았고 마지막 헤어질 때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강지찬은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오늘 파티룸은 안 뜯을 테니까 나중에 놀러 오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빠와 같이 오자.”그러자 녀석은 아빠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아빠, 고마워.”강지아는 정유진에게 한마디 했다.“새언니, 우리 오빠가 딸바보가 다 된 거 맞죠?”부녀의 사이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본 정유진은 자연스럽게 말했다.“부녀가 4년 만에 만났으니 그동안 못 했던 거 보충하는 셈 치지 뭐.”“그렇게 오빠 편만 들면 어떡해요? 지금 새언니 얼마나 바빠요. 두 회사 모두 돌봐야 하고 K그룹에 프로젝트도 많잖아요. 그 밑에 있는 자회사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요.”“그럼 와서 날 도와줄래?”“제가요?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절대 도움이 될 리가 없어요. 내가 아는 것도 없는데.”가족들이 문 앞에서 손님을 배웅하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연우는 진작 강지찬의 어깨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온유한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고 같이 있던 주유정이 와서 강지찬에게 말을 건넸다.“선배, 저 기억하죠? 계속 바쁜 것 같아서 이제야 인사를 드려요. 날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강지찬은 혹시라도 딸아이가 깰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기억해. 유한이를 쫓아다니던 애 아니야? 미안해, 오늘 너무 미안해서 신경 쓰지 못했네.”“괜찮아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나중에 시간 나면 선배와 형수님을 저의 연극 초대하고 싶어요.”주유정이 다시 강지아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지아야, 너도 와.”강지아가 못 들은 척하자 정유진이 얼른 대답했다.“꼭 갈 테니까 유한 씨더러 우리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세요”주유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네.”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한 주유정은 스튜디오를 오픈할 예정인지라 정유진과 인맥을 쌓게 되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가 당신을 왜 찾아?”강지찬은 조예원에게 좋은 인상이 없었다. 늘 조예원이 정유진을 배신한 것을 기억했지만 그 당시 본인도 정유진에게 나쁜 놈이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정유진은 화장대 앞에 앉아 귀걸이를 정리하며 말했다.“강지현에게 해외치료를 권유하래요.”강지찬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결국 삼켰다.정유진이 액세서리를 치우자 그는 곧장 욕실로 사람을 메고 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 미쳤어요?”강지찬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잊었어? 연우에게 남동생을 낳아주기로 했잖아.”정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남동생을 낳는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죠. 요즘 고객 접대가 많아서 술도 많이 마셨는데.”하지만 이런 것을 신경 쓸 강지찬이 아니었다. 이내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더니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다음날 정유진은 태안 병원을 찾았다.봄옷으로 멋을 낸 그녀는 얇은 베이지색 모직 코트 차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검사를 마친 강지현은 그녀를 보자마자 멍해졌다.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불지 않은 날씨라 두 사람은 병원 정원의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강원훈 쪽에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장형준이 아직 계속 파는 중인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정유진의 말에 강지현이 대꾸했다.“강원훈이 투자한 술집은 알아봤어요?”정유진이 대답했다.“사람 시켜 알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요즘 강원훈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어요.”햇볕이 약간 눈이 부시는지 강지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형은 항상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이라 잘 조사하면 조만간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정유진은 그의 말에 비아냥거림이 없는 것을 느끼고 진심 어린 칭찬으로 받아들였다.이때 강지현이 말했다.“내가 죽게 된 게 벌 받은 거라고 생각하죠?”“해외에 폐암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니 한번 가봐요.”강지현이 물었다.“예원 씨가 부탁한 거죠?”“지현 씨 아직 젊잖아요.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되죠. 자기 자신을
“유진이가 오늘 나에게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눴어요.”강지현이 조예원에게 물컵을 건넸다.이 남자의 생각을 모르는 조예원은 남자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앞으로 혼자 결정하지 말아요.”강지현의 목소리는 기복이 없었지만 분명 경고의 의미였다.조예원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요?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빤히 보고만 있을까요?”강지현의 얼굴에는 점점 냉기가 돌았다.“내 병은 악화되지 않았어요. 치료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요. 감기처럼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요.”“하지만 외국에 더 좋은 약과 치료방법이...”“안 간다니까요!”강지현이 콜록거렸다.“외국 의사가 폐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국내보다는 효과가 좋을 거예요.”강지현은 조예원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난 조만간 죽을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이 하루빨리 죽든 하루 늦게 죽든 뭐가 문제인데요?”조예원은 눈물을 흘렸다.“차이가 있죠. 원하는 사람 곁에 못 있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죽으면 그만큼 덜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죠?”강지현은 그녀의 눈물에도 아무런 동요가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쩌면 그녀의 말에 동요한 셈이다.그렇다.평생 정유진을 얻지 못한 그는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소식에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말이다.단지 정유진에게 가증스러운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려놓기로 했다.조예원이 그의 정곡을 찔러도 강지찬은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그녀에 대해 그 어떤 애정도 없었다.그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그만 울어요. 싸 보이니까.”조예원은 강지현의 서재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팔다리가 마비된 듯했고 심장은 그런 그의 모습에 마비된 지 오래다.이날 정유진은 휴가를 내고 연우와 함께 마당에서 놀았다.잠시 후 조예원도 강형원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왔다“동생, 동생.”연우는 얼른 달려가 유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