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충격을 여러 번 겪은 사람은 비슷한 일이 생길 때 자동으로 자기 보호 본능이 생긴다.강지현의 차가운 말에 조예원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지현의 의자를 끌어당기며 말했다.“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요.”강지현은 찌푸린 얼굴로 케이크를 바라보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생일 챙기는 거 싫어요.”강지현이 말했다.“알아요.”조예원은 그가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본인이 생각할 것이다. 그의 생일날을 사람들은 늘 음모가 있고 모욕적이라고 했다.오늘 생일을 함께 한 사람이 정유진이라면 강지현이 절대 이런 표정을 짓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하지만 개의치 않다.“아들을 낳아줬으니 나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조예원의 말에 강지현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이거 다 내가 만든 건데 이따가 먹어봐요.”조예원 앞에 놓인 와인을 들며 말했다.“내가 직접 만든 포도 주스예요. 한 잔만 마셔줘요.”그러고는 잔을 들고 말했다.“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니까 다른 말로 대체할게요. 여보, 밸런타인데이 축하해요.”생일이든 밸런타인데이든 그는 쇠고 싶지 않은 강지현은 술잔을 들지 않았다.조예원은 혼자 술을 마신 뒤 알아서 잔을 채웠다.강형원이 모유를 먹지 않으니 술을 끊을 필요가 없다.강지현은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늘 그렇듯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저녁을 먹은 후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조예원이 하루 내내 만든 케이크는 식탁 한가운데 그대로 놓여있다.그녀는 일어나 케이크를 통째로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케이크는 정말 아름다웠다. 케이크 위의 붉은 것들은 장미 꽃잎으로 한 장 한 장 붙여 놓은 것이다.초를 꽂고 강지현 대신 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빌며 생일 축하 노래를 혼자 부른 뒤 촛불을 불고는 혼자 케이크를 먹었다.강지현에게 사람이 너무 진실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
연우의 생일이 다가오자 강지찬은 강홍식의 마당에서 올해 연우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줄지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연우가 울면서 뛰어 들어왔다.그 뒤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이올린 선생님과 어쩔 줄 모르는 임미연이 따라왔다.강지찬이 임미연을 싸늘하게 힐끗 쳐다보았다.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강홍식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울긴 왜 울어, 엄마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어?”깜짝 놀란 연우는 어리둥절해 했고 작은 입을 벌렸지만 울지도 못했다. 까만 눈동자에 눈물만 가득 고인 모습은 강지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강지찬은 딸을 품에 안더니 강홍식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말을 할 줄 모르면 말하지 마세요.”그리고 하인이 건네준 깨끗한 수건을 받아 조심스럽게 딸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말해봐. 누가 괴롭혔어.”겁에 질린 연우는 울지도 못하고 훌쩍거리기만 했다.“아빠, 저... 저 이모가 낳은 동생은 필요 없어요. 엄마가 낳은 동생만 필요해요.”강지찬의 매서운 시선이 임미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보아하니 내 딸에게 헛소리했구나!”이내 고개 숙이더니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연우에게 말했다.“이모가 낳은 남동생은 당연히 네 동생이 아니지. 연우야, 동생이 필요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저스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아주 귀여워요. 아빠, 우리가 엄마더러 동생을 낳으라고 할까요?”이 말에 강지찬은 마음이 아팠다. 요즘 강지찬은 최선을 다해 연우를 돌보고 있었지만 정유진은 늘 연우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늘 녀석에게 빚지고 있다고 여겼다.지금 연우가 이렇게 얘기하니 저녁에 정유진과 잘 얘기해 봐야겠다.“응, 아빠가 빨리 내 소원 들어줘요.”그 말에 강홍식은 또 불만이었다.“미연이 배 속의 아이가 왜 네 동생이 아니야. 꼬맹이가 엄마만 닮아서...”강지찬은 이내 그의 말을 끊었다.“유 선생님, 연우 좀 데리고 가서 물 좀 마시게 해주세요.”여기 서서 재벌가 집안의 싸움을 구경하고 싶지 않은 바이올린
임미연은 확실히 강홍식이 불렀다.K그룹이 정유진의 손에 넘어갈까 봐 일부러 임미연을 불러 강지찬 앞에 내세웠던 것이다.“어르신,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찬 오빠가 저에게 집을 사준 이후로 점점 더 저를 차갑게 대해요. 지금은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요.”강홍식은 얼른 위로했다.“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몸조리 잘해.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너에게 돌아올 거야. 아니면 나부터 저 자식 용서할 수 없어.”하지만 이 말은 임미연에게 전혀 위로되지 못했고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았다.본가를 떠난 임미연은 커피숍에 갔고 강원훈을 무려 30분이나 기다려서야 그가 차에서 기다렸다.만약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차의 조수석에는 예쁜 아가씨가 타고 있다.거리가 멀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절대로 주연지는 아니었다.강원훈과 마주 앉자 임미연은 자신도 모르게 속이 메스꺼웠다.“또 무슨 일인데?”강원훈이 짜증 난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은 임미연은 바로 본론을 말했다.“강지찬이 왜 점점 나를 차갑게 대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배 속의 아이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딸의 생일 파티만 신경을 쓰고 있어요.”“나에게 그 얘기를 왜 하는데?”“나는 어떻게든 강씨 집안 사모님 자리에 앉아야 해요!”강원훈이 코웃음을 쳤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임미연은 지금 전혀 방법이 없다. 돈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강원훈을 찾아 말할 수밖에 없었다.“나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요?”“내가 왜 너를 도와야 하는데?”“잊지 마세요. 우리는 한배를 탔어요.”강원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임미연을 바라봤다.“설마 내가 너를 못 잊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여자들이란 정말, 내가 왜 강지찬의 등잔 밑에서 이렇게 오래 숨을 수 있었는지 알아? 참을 줄 알기 때문이야. 네가 날 가지고 놀 수 있을 것 같아? 강지찬에게 가서 혼수상태일 때 내가 죽이려 했다고 말해. 그 사실을 알고도 너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켜줄까
연우의 생일 파티는 강지아가 모두 맡았다.최근에 별일이 없었고 모든 잡념을 버리기 위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은 강지아가 도맡았다.강지찬과 정유진이 처음으로 같이 쇠는 딸의 생일 파티인 만큼 당연히 성대하게 치렀다.연회 장소는 강씨 집안 명의의 한 회관이며 강씨 집안의 가까운 친척과 친구 및 일부 사업 파트너를 초대했다.생일 파티 당일 패밀리 룩을 입은 가족 3명이 나타났다. 강지찬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한 손으로 와이프의 손을 잡고 나타나면서 그동안의 불화설을 일축했다.“이혼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다시 만나잖아? 그 여자만 우습게 되었지 뭐!”“정유진이라는 여자 역시 수완이 남달라요. 지난번에 사람들 앞에서 강지찬의 얼굴에 술을 뿌렸는데도 아무 일 없잖아요.”“그러니까 여자는 역시 능력이 있어야 해요. 본인 회사도 아주 잘 된다고 들었어요.”“지금 K그룹에서 대표이사 권한대행으로 일하고 있잖아요. 강지찬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 두 사람 정말 평범하지 않다니까요.”남들이 어떻게 보든 간에 강지찬과 정유진 부부의 파경설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되었다.연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송지윤과 강홍택도 외국에서 급히 돌아왔다.강원훈의 가족 3명도 참석했고 값비싼 선물까지 준비했다.강홍식은 나타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강지현과 조예원도 나타나지 않았다.조예원 강지현이 갈 줄 알았는데 그날 그는 방에서 전혀 나오지도 않았다.약을 들고 올라가서 한마디 했다.“옷은 준비했어요. 파티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강지현은 약을 마신 후 말했다.“안 갈 거예요. 굳이 가서 방해할 필요 있어요.”조예원은 그제야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았다. 불치병에 걸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나 조예원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강지현이 집착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정유진이라는 그 이름이 그의 뼛속까지 박혔기 때문이다.그동안 정유진과 함께하기 위해 모든 음모를 다 꾸몄고 결국 강지찬과
강지아는 임미연을 한 번도 상냥하게 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말투를 온유한에게 들켰다.특히 임미연은 임산부이다.하지만 강지아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들킨들 그 사람이 본인을 신경 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임미연은 사람이 오자 신이 났다.“안녕하세요. 저는 임미연이라고 합니다. 강씨 집안의 친척이에요.”온유한은 임미연을 힐끗 쳐다봤다. 이 여자의 정체와 강지찬의 속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주유정에게 말했다.“차에 뭐 가지러 가야 한다며? 가자.”그러나 임미연의 배를 발견한 주유정은 관심조로 물었다.“임신했어요? 밖이 추우니 빨리 들어오세요.”임미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더니 이내 배를 움켜쥐고 회관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강지아가 손을 뻗어 막았다.“거기 서, 내가 언제 들어가라고 했어?”임미연의 얼굴이 굳어졌고 주유정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임미연 씨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친척이잖아. 그런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직설적인 강지아는 빙빙 돌려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몸을 홱 돌려 주유정에게 다가가 말했다.“아까 말다툼하는 거 못 들었어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왜 혼자 착한 척해요? 여긴 무슨 일로 왔는데요?”“그런 뜻이 아니야.”주유정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돼서 그래. 홀몸도 아니잖아.”순간 강지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래요? 걸어 다니는 천사 나셨네요? 나는 악마고? 주유정 씨? 그 정도 연기했으면 됐어요. 여기 일은 당신과 상관없으니까!”“지아야!”온유한이 경고하듯 불렀다.본인 스스로를 그렇게 비꼬아 낮추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만 부른 타이밍이 이상해 강지아의 귀에는 그녀를 향한 호통으로 들렸다.강지아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바깥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말했다.“오늘 임미연이 한 발짝이라도 우리 회관에 들어오면 당신들 다 잘릴 줄 알아요!”
강지아는 씩씩거리며 회의실로 돌아갔고 미처 감정정리를 하기 전에 정유진의 눈에 띄었다.“또 온 선생 때문에 화난 거야?”강지아는 딱 잡아뗐다.“아니요. 임미연이 와서 내쫓았어요.”정유진은 웃으며 말했다.“화내지 마. 그럴 필요 없어. 오늘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연우 고모야.”정유진이 화를 내지 않자 강지아는 무척 서운해했다.“새언니, 우리 오빠를 왜 이렇게 쉽게 용서해요? 그 여자 배가 나날이 커지는데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아요?”“오빠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진짜 너의 오빠 아이일까?”정유진이 되물었다.“당연히 안 믿죠.”“그럼 됐어. 나도 안 믿어.”강지아는 강지찬에 대해 잘 모른다. 오빠의 그늘이 너무 큰 보호막이 되어주기에 사건 뒤에 어떤 위험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새언니가 오빠를 믿는다는 말에 강지아는 너무 기뻤다.“언니 오빠만 저 여자 영향을 안 받으면 돼요. 두 사람만 안 싸우면 돼요. 싸우면 왠지 내가 부모 없는 아이가 된 것 같아요.”이때 마침 온유한이 다가오자 정유진은 강지아의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유한 씨 왔어요? 그럼 두 사람이 얘기해요.”위로 올라갔던 강지아의 입꼬리는 다시 내려갔다.그녀는 온유한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또 자신의 성격을 컨트롤 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지아가 걸으면 온유한도 따라온다.“왜 따라와, 주유정에게 안 가봐도 돼?”“조금 전에 너를 원망할 생각은 아니었어.”온유한의 말에 강지아는 멈칫했지만 이내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상관없어, 내가 거칠고 악랄하다고 생각해도 그건 오빠 생각이 그런 것이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니까.”강지아가 스스로를 비꼬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온유한은 이내 반박했다.“그렇게 말하지 마.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나 그런 사람 맞아.”강지아는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내가 임미연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옥상에서 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야. 보면
연우의 생일 파티는 성공적이었고 무엇보다 연우도 즐거워했다.유치원생들을 모두 초대해 강지아가 특별히 설계한 실내 동화 나라 안에서 신나게 놀았고 마지막 헤어질 때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강지찬은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오늘 파티룸은 안 뜯을 테니까 나중에 놀러 오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빠와 같이 오자.”그러자 녀석은 아빠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아빠, 고마워.”강지아는 정유진에게 한마디 했다.“새언니, 우리 오빠가 딸바보가 다 된 거 맞죠?”부녀의 사이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본 정유진은 자연스럽게 말했다.“부녀가 4년 만에 만났으니 그동안 못 했던 거 보충하는 셈 치지 뭐.”“그렇게 오빠 편만 들면 어떡해요? 지금 새언니 얼마나 바빠요. 두 회사 모두 돌봐야 하고 K그룹에 프로젝트도 많잖아요. 그 밑에 있는 자회사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요.”“그럼 와서 날 도와줄래?”“제가요?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절대 도움이 될 리가 없어요. 내가 아는 것도 없는데.”가족들이 문 앞에서 손님을 배웅하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연우는 진작 강지찬의 어깨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온유한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고 같이 있던 주유정이 와서 강지찬에게 말을 건넸다.“선배, 저 기억하죠? 계속 바쁜 것 같아서 이제야 인사를 드려요. 날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강지찬은 혹시라도 딸아이가 깰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기억해. 유한이를 쫓아다니던 애 아니야? 미안해, 오늘 너무 미안해서 신경 쓰지 못했네.”“괜찮아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나중에 시간 나면 선배와 형수님을 저의 연극 초대하고 싶어요.”주유정이 다시 강지아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지아야, 너도 와.”강지아가 못 들은 척하자 정유진이 얼른 대답했다.“꼭 갈 테니까 유한 씨더러 우리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세요”주유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네.”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한 주유정은 스튜디오를 오픈할 예정인지라 정유진과 인맥을 쌓게 되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가 당신을 왜 찾아?”강지찬은 조예원에게 좋은 인상이 없었다. 늘 조예원이 정유진을 배신한 것을 기억했지만 그 당시 본인도 정유진에게 나쁜 놈이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정유진은 화장대 앞에 앉아 귀걸이를 정리하며 말했다.“강지현에게 해외치료를 권유하래요.”강지찬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결국 삼켰다.정유진이 액세서리를 치우자 그는 곧장 욕실로 사람을 메고 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 미쳤어요?”강지찬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잊었어? 연우에게 남동생을 낳아주기로 했잖아.”정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남동생을 낳는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죠. 요즘 고객 접대가 많아서 술도 많이 마셨는데.”하지만 이런 것을 신경 쓸 강지찬이 아니었다. 이내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더니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다음날 정유진은 태안 병원을 찾았다.봄옷으로 멋을 낸 그녀는 얇은 베이지색 모직 코트 차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검사를 마친 강지현은 그녀를 보자마자 멍해졌다.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불지 않은 날씨라 두 사람은 병원 정원의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강원훈 쪽에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장형준이 아직 계속 파는 중인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정유진의 말에 강지현이 대꾸했다.“강원훈이 투자한 술집은 알아봤어요?”정유진이 대답했다.“사람 시켜 알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요즘 강원훈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어요.”햇볕이 약간 눈이 부시는지 강지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형은 항상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이라 잘 조사하면 조만간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정유진은 그의 말에 비아냥거림이 없는 것을 느끼고 진심 어린 칭찬으로 받아들였다.이때 강지현이 말했다.“내가 죽게 된 게 벌 받은 거라고 생각하죠?”“해외에 폐암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니 한번 가봐요.”강지현이 물었다.“예원 씨가 부탁한 거죠?”“지현 씨 아직 젊잖아요.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되죠. 자기 자신을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제일 앞에 서 있던 강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뒤따라오던 최의현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저 사람 현채영 아니야? 저 남자는 누가야? 낯이 익네.”한규진은 호텔 로비에 막 들어선 최신애를 보고 한마디 했다.“쯧쯧, 볼거리가 생겼네.”현채영은 그 남자와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최신애가 뒤따라가자 최의현 일행도 따라갔다.“미친, 생각났어.”최의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 그 지씨 가문 셋째 아니야? 추호와 친하던 애 있잖아. 지씨 가문에서 꽤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지씨 가문 셋째?”한규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에서 지씨 가문은 명성이 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구설수는 꽤 많다.예전에 지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밖에서 데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생아이지만 정실 마누라가 낳은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틀림없이 지씨 가문 셋째 아들 지태주일 것이다.지태주와 현채영이 만난다고?생각보다 재미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최의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신애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스위트룸 방문 앞에 멈춰선 최신애는 노크를 하는 대신 손목시계만 계속 들여다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20여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유한은 강지찬 일행과 마주쳤다.온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찬을 슬쩍 쳐다봤다.강지찬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온유한을 시크하게 흘겨보았다. 화가 난 건지 짜증 난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최의현이 온유한 앞에 다가가더니 턱으로 스위트룸 방향을 가리켰다.“어떻게 된 일이야? 현채영이 왜 지태주와...”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온유한의 말에 강지찬 일행은 온유한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남자와 여자가 한밤중에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철학 토론이라도 하겠는가?하지만 온유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본인
“지찬아, 유한이가 미친 거 아닐까? 임유희를 집에서 쫓아내고 현채영을 온씨 저택에 데려갔어. 최신애가 엄청 화를 낼 것 같은데?”최의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현채영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몰랐네... 그때 지아를 신경 쓰는 것보다 더...”강지찬이 힐끗 바라보자 최의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임유희 때문에 온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이도 안 좋아졌어. 임씨 가문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잖아. 아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복수하려 할 거야. 그 임씨 부부도 생각이 있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온유한이 임유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온씨 가문에 바싹 달라붙어 가문의 지위를 올리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최신애만 그걸 모르고 어떻게든 유한이와 임유희를 엮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지. 온유한은 임씨 가문의 속셈을 알았을까?”한규진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그 자식 계속 약속 펑크내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을 것 같아.”경은우가 말했다.“유한이 형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 거야. 유한이 형이 절대 함부로 누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최의현이 말했다.“며칠 전 만났을 때 임씨 가문 얘기를 몇 마디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루 종일 잠을 잔 현채영은 가방을 들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잠깐!”거실에 앉아 있던 최신애는 현채영의 화려한 차림을 보고 화를 냈다.온유한이 석식이 있어 집을 비우니 현채영은 한밤중에 외출을 하려 했다.현채영이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어디 가는 거야?”“친한 여자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오늘 밤엔 안 들어올 거예요.”그 말에 최신애는 바로 화를 냈다. “친한 여자친구들?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밖에 안 하는 날라리 여자들?”현
임유희도 온유한에게 쫓겨난 후 몸져누워 열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임유희는 이제 주위에서 웃음거리가 됐다.이 때문에 임씨 부부와 임유희 오빠는 온씨 가문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바쁜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온유한은 문 앞에서 온혁진과 최신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때 임유희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온유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에서 최신애가 병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그럼 내 탓이란 말이에요? 당신 하나뿐인 아들이 현채영 그 여자와 엮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강지아가 어때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최신애, 우리 온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온혁진의 말을 들은 최신애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평생 사랑한 이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내가 그런 거라고요? 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온혁진은 더 이상 이 일로 최신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유한이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이 기어코 유한이와 지아를 갈라놓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강씨 가문과 원수가 되었고 임씨 가문의 미움도 샀어. 만약 임씨 가문이 그때 강지찬처럼 작정하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도와달라고 할 거야?”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도 바짝 긴장했다.“투자자들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하는데 임씨 가문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당신이 뭘 알아?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보다 우수한 의료 회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경쟁업체에서 얼마 전에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했다고 들었어. 우리가 올해 주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는데...”온혁진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봤자 당신이 뭘 알겠어.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씨 가
강지아도 명성 빌딩에 오래 묵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서원준과 함께 집을 나섰다.현관문 너머로 서원준의 목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그제야 어젯밤에 서원준도 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한편 기분이 좋아진 서원준은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지아야, 이 집 어차피 비어 있는데 우리가 이사 오는 게 어때?”강지아는 서원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꿈 깨.”서원준이 일부러 다가가서 강지아를 품에 꽉 껴안자 강지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뭐 하는 거야?”서원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에게 뭘 하겠어?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걸 못했네.”강지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함부로 행동하기만 해 봐!”강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무언가를 기대하던 서원준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분명 저도 모르게 끌려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갔을 것이다.놀라움만 가득한 눈빛으로 서원준을 바라보는 순수한 강지아에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하긴 강지아가 왜 고백을 받았는지 서원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온유한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서원준은 아쉬운 마음에 강지아의 볼을 꼬집은 뒤 말했다.“내일 나 출장 가. 저녁 비행기인데 같이 갈래? 꽤 재미있는 곳인데.”서원준은 연예계 활동 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강지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거기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안 가. 요즘 작업실에서 현지 수주를 받은 게 있어서 자리 비우면 안 돼.”“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올게.”두 사람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는 없었다.오늘 서원준은 석식 약속이 있었고 내일도 바쁘기에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야 강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차에 타기 전에 서원준은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여기
오늘 기분이 좋은 서원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강지아는 진수혁의 도움을 받아 서원준을 명성 빌딩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여기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진수혁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모두 옮겨갔기에 집은 예전 상태로 되었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두 사람은 서원준을 게스트 룸, 즉 진수혁이 묵었던 방에 데려다 눕혔다.이불을 끌어안은 서원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지아야... 나 너무 좋아... 정말 기뻐...”강지아는 진수혁에게 말했다.“이 집 어차피 비워둘 건데 그냥 있어도 되는데.”“여태까지 묵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진수혁은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전기와 가스 카드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놓아뒀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말을 마친 진수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진수혁은 온유한에게 명성 빌딩에서 이사를 했기에 더는 가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온유한은 휴대전화를 힐끗 본 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최신애는 최씨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이 자식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야. 우리 온씨 가문과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니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러나 봐. 내가 죽어야 본인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내 팔자야! 힘들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까지 멀쩡했는데 지금은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어. 하느님, 제가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얘기하고 계세요. 야식 좀 사 올게요.”황은숙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고 최신애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들으니 지칠 대로 지쳤다.“됐어. 나도 금성이 집에 가봐야 해. 유한아,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잘 모셔.”황은숙과 최금성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병실에는 온씨 모자만 남아 있었다.최신애의 얼굴에 있던 슬픔이 어느새 원망으로 변했다.“왜, 나와 같이 있기도 싫은 거야?”온유한이 말했다.“채영이 집
강지아의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화령이 차를 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강지아의 다도 실력도 선보이게 되었다.녹화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화령이 강지아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얼마 전에 온씨 집안이 떠들썩했던 거 알아?”강지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령이 말을 이었다.“나도 금성 씨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국물을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화령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두 가지 일이 일어났어. 첫 번째는 최신애가 온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줄 가보를 현채영이 훔쳤다면서 누명을 씌웠지. 그래서 경찰까지 불렀대. 온유한이 최신애와 싸우고 나서 경찰이 갔고 현채영은 별일 없었대. 두 번째 일은 어젯밤 온유한이 현채영을 위해 최신애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임유희를 온씨 저택에서 쫓아냈고 최신애는 한밤중에 화를 내며 병원에 입원했대.”강지아는 국물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 사람 다 힘든 것보다 낫네. 적어도 현채영 씨는 힘들지는 않으니까.”강지아가 별 반응이 없자 화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유한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강지아가 말했다.“좋은 사람을 만났나 보지 뭐. 현채영 씨, 괜찮잖아.”화령은 온유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작업실로 돌아온 강지아는 커피 한 잔을 끓였다.서랍을 열어보니 서원준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아직 전달하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려서 수신자를 보니 진수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새집을 찾았기에 명성 빌딩에서 묵지 않겠다고 했다.월세도 내지 않고 강지아의 집에 산 것에 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남자친구 데려가도 돼?”“당연하지. 단골 술집에서 만나. 사장님더러 십몇 년 동안 간직해온 술을 오픈하라고 해야겠네.”“그래.”강지아
순간 임유희는 오늘 밤 온유한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천천히 다가가 온유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임유희였다.임씨 가문이 온유한을 몰아세우면 그녀는 온유한 앞에서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에게 점수를 딸 생각이었다.임근우와 장희수도 잘 협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고가 생겼다.“콜록... 유한 오빠... 그게...”“봤냐니까?”온유한은 다시 한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표정이 매우 사나워 보였다.“아니, 아니...”임유희는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렸다.“방금 본 건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네네, 알겠어요!”임유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순간 온유한의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다.온유한이 한참 후에야 손을 뗐고 임유희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졌다.하마터면 온유한의 손에 죽을 뻔했다.이 남자는 더 이상 3년 전 그녀를 설레게 했던 온유한이 아니었다.지금의 온유한은 강지아를 위해 미쳐버린 상태였다.그는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지'자를 문신했다.미친 거 아닐까?너무 무섭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온 목적은 분명했다.강지아를 위해서라면 친엄마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다.이런 남자를 그녀가 어떻게 옆에 둘 수 있겠는가?감히 엄두도 못 낼 것이다.임유희는 기다시피 하며 온유한의 방을 뛰쳐나갔다.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혹시라도 온유한이 따라올까 봐 서둘러 문을 닫은 뒤 방문을 잠갔다.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니 목에 빨간 자국이 생겼다.온유한이 진짜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침대에 몸을 웅크린 뒤 장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다.“엄마, 온유한이랑 결혼하기 싫어. 집에 가고 싶어.”장희수는 지금 한창 신이 난 상태였다. 최신애가 장희수와 친해지기 위해 카드도 많이 양보했다.“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장희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
“진짜 열받아 죽겠어. 정말!”화가 난 최신애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엄마인 나를 점점 안중에도 안 두는구나. 같이 지옥에 가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온혁진은 이런 최신애가 너무 귀찮았다. 낮에 임씨 가문 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은 온유한과 임유희의 혼사를 언제 치를 것이냐고만 물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온유한이 임유희와 약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애초에 임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우리가 오히려 발목이 잡혔어.”온혁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유한이 결혼에 대해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경고하는데 당신도 좀 똑똑하게 굴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지 말고. 임씨 가문 사람들도 속셈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최신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속셈이가 있어 봤자 무슨 속셈이가 있겠어요? 유희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것뿐이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유희가 유한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임씨 가문도 그저 말로만 재촉하는 것이니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나라고 상관하고 싶겠어요? 현채영 같은 여자가 강지아보다 훨씬 못한데 어떻게 우리 온씨 가문에 들이겠어요? 그런 여자를 들였다가는 서울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온혁진은 골치가 아팠다. 말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온유한이 진짜로 현채영과 결혼하려 한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래서 이 일은 최신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이날 오후 최신애는 장희수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대화가 잘 통했는지 저녁에는 카드 놀이하러 함께 갔다.온유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임유희만 있었고 현채영은 다른 일이 있어서 현씨 저택으로 돌아갔다.“유한 오빠, 아직 밥 안 먹었죠?”온유한이 ‘응’이라고 대답하자 임유희는 얼른 하인을 시켜 밥을 차리게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일이 있으셔서 밖에서 저녁 드시고 오겠대요. 아버님도 석식이 있으시다고 했고 현채영 씨도 저녁에 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