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강지현은 정유진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혼자예요? 아니면...““지찬 씨와 지아랑 같이 왔어요.““그렇군요.“강지현은 웃으며 깨끗한 찻잔을 들어 자신에게 한 잔 따랐다.“친척들이 많은데 왜 혼자 여기 앉아 있어요?“사실 정유진은 여기에서 강지현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언제부터인가 강지현과 함께 있는 것을 마음속에서 거부하고 있었다.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오늘 또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갑자기 강지찬이 생각났다. 가끔 정말 짜증 나고 화가 나서 물어뜯어 죽이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은 항상 대놓고 당당하게 말했다.“지아는 대나무 숲 쪽으로 갔어요. 금방 올 거예요.“강지현이 물었다.“다친 데는 괜찮아요?““네, 다 나았어요.“분위기가 어색해졌다.정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강지현의 눈빛이 점점 뜨거워졌다.“유진 씨,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보러 갔는데 강지찬이 못 만나게 했어요.“정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방의 눈빛이 너무 불편했다.“고마워요.“정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곧 생일잔치가 시작되니 지아 찾으러 가야겠어요.“강지현이 따라 일어서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놓고 물었다.“왜 대신 칼을 맞은 거예요?“정유진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내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예요. 사고가 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이것은 강지현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소리쳤다.“분명 이혼했다고 했잖아요. 잊었어요?““어떤 일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정유진은 강지현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그만 해요.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아요. 진작 말했잖아요. 지찬 씨가 있든 없든 나와 지현 씨는 불가능해요. 나에게 지현 씨는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진짜로 사랑하게 된 거예요?“강지현이 나지막이 물었다.강지찬 대신 칼을 맞은 게 사랑일까?이 문제를 정유진은 줄곧 회피했다. 깊이 생각하
강지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유진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힘이 너무 세서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안돼, 왜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데? 내가 안 보여요? 몇 년 동안 줄곧 유진 씨의 곁에만 있었어요. 감히 한 발자국도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못했다고요. 강지찬 곁에서 떠나 내 품으로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진짜 몰라서 그래요?“이곳은 남의 집 마당이다. 손님이 많기에 언제든지 사람이 올 수 있다.여자들이 수다를 떨던 장면이 떠오른 정유진은 긴장했다.“강지현 씨, 이거 놔요.““안 놓을 거예요. 유진 씨, 사랑해요!“말을 마친 강지현은 갑자기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입을 맞췄다.정유진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그 가운데 강지찬도 있었다.강지찬은 굳은 얼굴로 다가오더니 강지현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두들겨 맞은 강지찬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가십 가득한 눈빛으로 정유진을 바라보기도 했다. 눈빛은 경멸스럽기 그지없었다.“어머머머, 인터넷에 뜬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인제 보니...““남의 정원에선 껴안고 키스하고, 우리 지찬이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정말 체면이 없네! 집안을 망치겠어!““지찬아, 저런 여자는 빨리 집에서 쫓아내. 그렇지 않으면 또 무슨 창피한 짓을 저지를지 몰라.“오늘 생신 잔치에는 친척들뿐만 아니라 사회 인사들도 참석했다. 지금 정유진과 강지현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껴안고 키스한 일은 금방 소문이 날 것이다.당당한 강씨 집안의 권력자인 K그룹 오너의 마누라가 시동생과 이런 사이라니! 서울 전체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정유진은 아무런 설명 없이 눈앞의 모든 것을 차갑게 바라봤다.강지찬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차가운 눈빛을 그녀의 입술을 바라봤다. 눈빛은 섬뜩했다.“조금 전의 일은 끝까지 따질 거예요. 눈으로 본 것만 진실일 수는 없어요. 저는 제 아내를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
정유진은 강지찬이 얼마나 화가 나는지 느낄 수 있었다.그녀와 강지현의 일 앞에서, 이 사람은 줄곧 성격을 컨트롤하지 못했다.예전 같았으면 진작 화를 냈을 테지만 오늘은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이 행동에 정유진도 좀 놀랐다.어르신은 얼른 자신이 어른임을 강조하며 강지찬을 꾸짖은 후 다시 정유진을 꾸짖었다.“조금 전의 일은 모두가 똑똑히 봤어. 너도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지찬의 아내이자 강씨 집안의 며느리로서 남편의 사업을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체면을 구기다니! 너 같은 여자는 누구와 결혼해도 남편이 불행할 거야.”강지현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어르신을 저지했다.“고모님, 유진 씨 탓이 아니에요.”할머니는 강지현을 가리키며 말했다.“세상에 여자는 많아? 이 여자는 네 형의 아내야. 인제 됐어, 내일이면 서울 전체가 네가 한 일을 다 알게 될 텐데 네 형의 체면은 어떻게 해? 우리 강씨 집안의 체면은 또 어떻게 하고?”강지현을 비판하는 말이었지만 구구절절이 강지찬의 신경을 자극했다.지금 당장 강지현을 죽일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임미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할머니, 오해예요.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믿지 마세요. 언니와 지찬 오빠의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요.”할머니는 정유진을 향해 ‘퉤' 하고 말했다.“오해라니. 사람들이 다 봤잖아.”“그만!”강지찬은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억누르고 어르신을 향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생신 선물은 이미 보냈으니 잔치는 참석하지 않겠습니다.”어르신에게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상대방이 윗사람이든 아니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지아야, 새언니와 먼저 돌아가.”그리고 장형준을 보며 말했다.“사모님과 아가씨를 모시고 가.”정유진의 손을 놓은 후에야 너무 꼭 잡은 탓에 그녀의 손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볼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유진과 강지아가 떠났다. 임미연은 일이 이렇게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이어 강지현과
강지현과 싸운 후, 강지찬은 사람을 불러 술을 마셨다.한규진과 최의현은 그의 얼굴 가득 상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얼마 전까지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 갑자기 왜 이래?”한규진은 혀를 끌끌 찼다. 마치 얼굴의 상처가 본인에게 난 것처럼 아픈 표정으로 말이다.온유한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강지찬을 훑어보고 말했다.“어디 아픈 곳은 없어?”“없어.”강지찬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그와 강지현은 서로 미워하는만큼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강지찬의 얼굴이 이 지경이니 강지현은 더 심각할 것이다.온유한은 한숨을 쉰 후 말했다.“다쳤으니 술은 조금만 마셔.”속에 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강지찬은 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셨다.부경원으로 돌아온 후, 장형준은 그를 부축하여 안방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는 기어코 게스트 룸으로 가겠다고 했다.문을 쾅쾅 두드렸다.정유진은 아이가 깰까 봐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여보...헤헤, 우리 마누라...”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한쪽 팔을 부축하며 물었다.“이 사람,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예요?”장형준은 난처한 듯 말했다.“한규진 씨와 만났습니다. 마시다 보니 이 지경까지...”기분이 나빠서 많이 마셨다고 장형준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상처투성이가 된 그의 얼굴을 보고 정유진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강지찬을 겨우 방에 데려왔다. 장형준이 신을 벗겨줄 때, 강지찬은 정유진을 잡아당겨 침대에 눕혔다.장형준은 재빨리 신발을 벗긴 후, 밖으로 나갔다. 문까지 꼭 닫아줬다.강지찬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유진만 노려봤다. 입술을...이미 샤워를 마친 정유진은 자다가 깨난 상태라 입술이 깨끗한 핑크색이었다.이 사람이 노려보는 눈빛에 바짝 긴장되었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잠시 후, 강지찬은 발끈하더니 손으로 정유진의 입술을 거칠게 닦았다.술 취한 사람이라 행동이 아주 거칠었다. 정유진은 입술이 아플 지경이다.하지만 강지찬은 닦을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저도 모
정유진은 더위에 깼다.날씨는 점점 따뜻해졌다. 하지만 에어컨을 켤 정도는 아니다. 밤새 ‘화로’에 둘러싸인 기분은 좋지 않았다.허리에 걸친 팔을 치우고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발이 땅에 닿는 순간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빠져 곤두박질칠 뻔했다.겨우 욕실로 갔다. 온몸에 키스 마크가 잔뜩 남아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차마 볼 수 없었다.어젯밤의 강지찬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칠었다. 정유진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다른 건 몰라도 침대 위에서 두 사람이 잘 맞는 건 사실이다.다만 목에 흔적이 너무 많아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다. 결국 스카프로 가릴 수밖에 없었다.강지찬이 잠에서 깼을 때는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정유진은 일찍 출근했다.주말에 강지아는 아래층에서 연우와 함께 놀았다.강지찬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빠, 싸웠어요?”“응.”강지찬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이겼어요?”“이겼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최고.”“고마워.”얼굴이 상처투성이라 강지찬은 출근할 수 없었다. 임우연에게 저녁 술자리도 미루게 했다.어젯밤 일에 대해 강지찬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필름이 끊겨서 아주 자극적인 몇 개의 선정적인 장면만 어렴풋이 기억났다.“새언니는?”“회사에 일이 좀 있다고 나갔어.”강지찬은 연우를 옆에 앉히고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보러 갈래?”“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어요.”“아빠가 데려다줄게.”그리고 강지아를 보고 말했다.“너는 혼자 놀아.”이렇게 K그룹 대표이사는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채 아이를 데리고 장모님 댁에 갔다. 장인어른과 장모는 깜짝 놀랐다.“이 상처가 다 뭐야?”“한바탕 싸웠어요.”강지찬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이명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강지찬 같은 사람이 손을 쓸 정도면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이다.사적인 일이라면...이명자는 계란 몇 개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멍든 얼굴
정유진의 친정에서 저녁을 먹은 강지찬은 바로 마누라와 아이를 데리고 부경원으로 돌아갔다.강지찬이 어젯밤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을 보고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정유진은 생각했다.샤워하고 연우를 재우니 입구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강지찬은 실내복을 입은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침대에 있는 와이프를 바라보고 있었다.정유진은 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외면하지 않고 연우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왔다.가까이 다가갔을 때 강지찬은 한쪽 팔로 사람을 끌어당기더니 허리를 휘감아 안방으로 갔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에 정유진을 눌렀다.강지찬은 그제야 목에 아찔한 키스 마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을 타고 내려오니 옷 속에는 더 많았다.“여보, 어젯밤에 내가 꿈을 꾼 게 아니야?”“아니에요.”“나와 결혼해 줄래?”정유진은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싫다고 하면 안 할 거예요?”강지찬은 눈썹을 치켜올렸다.“흥, 당신 생각은?”“어차피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잖아요?”“당연히 상관있지.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니까.”강지찬이 그녀를 흘겨보았다.“어제 일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마음에 두지 마.”강지현의 속임수를 강지찬은 진작 알고 있었다. 화도 강지현에게 냈다.정유진은 그의 아내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맹세할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과 강지현을 의심하지 않을게.”정유진의 눈에 물이 고인 듯했다.“그래요. 결혼식을 올려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결혼식을 해서 사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단념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강지찬과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싶었다.“여보!”강지찬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정유진은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안방 분위기는 다시 달아올랐다. 원래 있던 키스 마크가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더 많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한 번 또 한 번 고조에 다다랐다.강지찬은 아주 빨리 결혼식의 프로세스와 리스트를 정리했다.임우연은 정유진
정유진은 결혼식 준비가 두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강지찬의 모든 것들을 최고급으로 할 줄은 몰랐다.일찍부터 준비에 착수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늦었을지도 모른다.정유진은 그저 얼굴만 내밀면 된다.보름 뒤 두 사람은 유럽으로 날아가 아름다운 웨딩사진을 찍었다.두 사람이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집사가 공항에 마중 왔다.“도련님, 사모님, 어르신이 본가에 오라고 합니다.”강지찬은 한 손으로 정유진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청첩장은 다 보냈나요?”집사는 난감한 듯 말했다.“아니요. 친척들 쪽은 어르신이 보내지 말라고 해서...”강지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쩔 수 없이 강씨 저택으로 돌아갔다.고개를 돌려 정유진에게 물었다.“나와 같이 갈래? 안 가도 상관없어. 내가 가서 해결할게.”솔직히 말해서 정유진은 강홍식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강지찬은 장형준에게 지시했다.“사모님을 데려다줘. 운전 조심하고.”정유진은 그의 손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오며 말했다.“말다툼할 필요 없어요. 안 보내주면 우리가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면 되잖아요.”강지찬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일리가 있는 말이네.”그는 정유진의 비굴하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저택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강홍식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강지찬이 결혼하는데 친아버지인 자신이 전혀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강씨 집안 친척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일을 맡았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버지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다.“돌아오긴 했네?”강지찬은 옆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오라고 했잖아요?”“너...”강홍식이 미처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강지찬이 말을 끊었다.“만약 나를 도와 청첩장을 안 보낼 거면 내가 직접 할게요. 그러다가 누구를 빠뜨려도 친척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어쨌든 그 사람들을 초대할 생각이 없었으니까.”“개자식!”강홍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까운 친척들도 지금 초대하지 않겠다는 말
임미연은 강지찬의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데려갈 줄 알았지만 차는 호텔 앞에 멈춰 섰다.모든 환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임미연은 짐을 질질 끌며 그를 따라 호텔로 들어섰다.호텔은 K그룹 근처에 있고 직선거리로 50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강지찬은 임미연에게 방 하나를 잡아주며 말했다.“방값은 상관하지 마. 내일 K그룹에 가서 임우연 비서를 찾으면 돼. 너에게 자리 하나 마련해 줄 거야.”말을 마치자 임미연이 대꾸도 하기 전에 서둘러 갔다.임미연은 강지찬이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둘 줄은 몰랐다.“지찬 오빠...”강지찬이 부경원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바로 돌아온 거예요?”정유진은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올 줄 알았다.강지찬은 옆에 누가 있든 상관하지 않고 다가가 볼에 입을 맞췄다.“일이 있어서 좀 늦었어. 그렇지 않으면 더 일찍 돌아왔을 텐데.”그렇게 말하고는 연우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췄다. 연우가 낄낄거리며 웃었다.녀석은 원래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귀엽다. 지금은 더더욱 장난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정유진은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청첩장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시아버지가 보낼 거라는 말에 정유진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몇 년 전 K그룹이 진행한 두 프로젝트는 곧 기공식을 앞두고 있다. 밤에 잠자리에 들자 강지찬은 정유진을 끌어안고 다시 K그룹으로 옮기라고 강요했다.“사무실은 항상 남겨뒀어. 연우 인테리어와도 가깝잖아. K그룹에 있어도 5분이면 갈 수 있고. 여보, 옮겨. 응?”정유진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깔려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다.K그룹에 출근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몇 년 전의 두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올해 K그룹에 곧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예정이다. 큰 프로젝트이기에 정유진도 회의에 자주 참석해야 했다.결혼식은 전문인이 담당하기에 강지찬과 정유진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이날 그녀는 소미를 데리고 K그룹에 회의하러 갔다. 로비에 들어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