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상처는 다행히 잘 회복되어 인제는 일어나 앉거나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게 되었다.요 며칠 강지찬은 병원을 사무실처럼 거의 살다시피 했고 정유진의 곁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원래는 간병인도 있었지만 간병인에게 실력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모처럼 두 사람은 며칠 동안이나 아무런 탈 없이 조용히 지냈다.“새언니, 오빠는요?”강지아가 고개를 내밀고 들어왔다.“옆 칸에서 회의 중이야.”“그럼 내가 언니와 같이 있을게요.”요 며칠 강지아가 와서 많이 도와줬다. 아침저녁으로 연우를 데려다주고 일이 없으면 병원에 와서 정유진을 돌봤다.“쇼 디자인 때문에 바쁘잖아요. 볼일 보세요. 전 괜찮아요.”“시안은 주최 측에 보냈어. 그쪽 피드백을 기다리는 중이야.”강지아는 옆 방의 닫힌 문을 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새언니, 언니가 모르는 일이 하나 있어요.”“뭔데?”“강지현이 매일 오는데 장형준이 밖에서 막고 있어요.”강지아는 말을 하며 눈짓을 했다.“우리 오빠가 지금 언니를 보물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강지아는 예전에 강지현을 둘째 오빠라고 불렀다.하지만 두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은 정유진은 말머리를 돌렸다.“경찰에서는 별 연락이 없어?”“오빠가 말 안 했어요?”사실 요즘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다. 대부분 강지찬이 ‘배고프지 않아?’ ‘목이 마르지 않아?’ ‘힘들지 않아’ 등 묻는 것이 전부였다.“오빠는 김주환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의심해요. 경찰더러 고세연을 여러 번 조사하라고 했지만 소득이 없어요. 김주환은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고요. 경찰이 아무리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아요.”김주환을 떠올린 강지아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오빠가 그러는데 김주환더러 평생 바깥의 빛을 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대요.”정유진도 김주환이 강지찬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하려 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이때 장형준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조예원이 아래층에서 기다린다고
눈빛은 차분했지만 말투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강지찬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부족하지.”말을 마친 뒤 또다시 다가갔다.이번에는 입만 맞추고 놔주는 게 아니라 깊은 키스를 나눴다.하지만 상대방의 건강을 생각해 힘을 쓰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입술만 물고 이리저리 거칠게 뒤척였다.정유진은 심장이 떨렸다. 몸에 힘이 없어서인지 강지찬을 밀어내지 않았다.일주일간 병원에서 휴식을 취한 정유진은 끝내 퇴원했다.이명자와 정명학은 그녀가 걱정되어 같이 부경원으로 갔다. 정유진의 몸이 완전히 나으면 돌아가겠다고 했다.그동안 최의현은 성원을 완전히 인수했고 연우 인테리어도 노을빛 프로젝트를 따내게 되었다.이런 결과는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정유진은 운명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모든 운명의 굴레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에이프릴 홀, 강지찬은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한규진이 전화를 여러 통 걸지 않았더라면 마누라와 아이를 두고 달려와 술을 마시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 강 대표님은 이제 정말 가정적인 남자가 다 되었어, 전화를 여러 번 하지 않으면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니 말이야.” 강지찬은 아무도 없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가족이 없는 것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최의현도 장난기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우리는 당연히 급이 안 되지. 만약 어떤 여자가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면 매일 집에 두고 황제처럼 모실 거야.”강지찬도 이 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한규진이 물었다.“결혼식 한다고 하지 않았어? 날짜는 정했어?”“아직. 유진이의 몸이 회복되지 않았어. 하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어.”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실 때 강지찬도 기회를 봐서 언급할 생각이다.결혼은 반드시 성대하게 할 것이다. 급해서는 안 된다.화장실에서 나온 최의현은 낄낄대며 말했다.“내가 누굴 봤는지 알아맞혀 볼래?”“누군데?”최의현은 강지찬을 보며 말했다.“고남준. 우리가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
강지찬은 실검에 오른 사실을 모른 채 집에 들어갔다. 샤워한 뒤 정유진이 방문을 잠그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흐뭇해하며 슬그머니 침대에 올라가 사람을 끌어안고 잤다.다음날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장형준이 난처한 표정으로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어젯밤 미키 씨와 함께 실검에 오르셨습니다.”강지찬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장형준이 계속 말했다.“못된 소리를 하는 패거리들이 있어요.”강지찬에게 캡처 사진을 몇 장 보여주자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이런 스캔들이 아무렇게 떠도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여론의 움직임이 확실히 잘못되었다.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정유진과 미키를 비교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심지어 정유진의 개인 정보까지 낱낱이 파헤쳤다. 대학 시절 사진까지 인터넷에 떠돌았다.그녀가 평범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운이 좋네. 역시 얼굴만 반반하면 인생 승리라니까. 재벌 집에 시집갈 수도 있고 말이야.”“원래 남자친구가 있었대요. 그런데 강지찬과 어울린 후에 전 남자친구를 바로 차버렸대요.”“미키와 비교할 수 없죠. 우리 미키는 자신의 실력으로 한 걸음씩 걸어 여기까지 왔어요. 남의 침대에 기어올라 재벌 집에 들어간 여자와는 다르죠.”어떤 사람은 연우와 정유진이 출국한 4년간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네티즌들의 추측이 난무했고 심지어 연우는 외국에서 다른 남자와 만나 낳은 아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강지찬은 정유진에 대해 불만이 많아 결혼식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누군가 정유진이 아이를 안고 유치원에 가는 사진을 올렸다. 아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강지찬은 인상을 찌푸렸다.“실검을 내리지 않고 멍하니 뭐해?”장형준이 얼른 대답했다.“이미 홍보팀에서 연락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강지찬은 어두운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세수를 마친 정유진은 2층 거실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강지찬이 올라온 것을 보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힐끗 바라봤다.그녀의 눈
강지찬이 집에 온 이유는 어르신의 헛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아이는 내 아이예요. 와이프도 내 와이프이고. 결혼 준비 중이에요. 날짜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확정되면 알려드릴게요.”이 말은 내 결혼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없으니 때가 되면 제시간에 결혼식에 참석하라는 뜻이다.테이블을 치는 소리가 또 들렸다. 이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손바닥이 아팠는지 강홍식의 얼굴이 좀 어색해 보였다.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영감탱이가 또 무슨 일을 꾸미려는지 궁금했다.“이 결혼 허락할 수 없어. 정유진 그 아이, 강지현과의 사이도 불분명해. 강씨 집안이 그런 사람 때문에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어!”강지찬이 말했다.“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 거예요, 아니면 고세연이 싫다고 하는 거예요?”강홍식의 표정이 변했다.아들 앞에서 줄곧 나약한 사람이었다. 방금 책상을 치는 것으로 모든 용기를 다 써버렸다. 강지찬의 차가운 눈빛에 강홍식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이런 모습을 보면 몰래 엿보던 고세연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다.고세연이 아무리 구슬리고 달래도 강홍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약해 빠졌으니 이렇게 큰 가업을 아들에게 빼앗겼겠지... 그저 황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 불과했다.“그게, 그게 세연이와 무슨 상관인데?”강홍식의 얼굴이 빨개졌다.“너의 아버지는 나야. 결혼에 대해 충분히 발언권이 있어. 오늘 똑똑히 얘기할게. 정유진 같은 여자를 우리 집에 들일 생각 마, 난 허락할 수 없어.”말을 마친 후, 빠른 걸음으로 위층에 올라갔다. 혹시라도 강지찬이 화를 낼까 봐 겁이 났다.강지찬은 화가 나서 저녁도 먹지 않고 갔다.며칠 후 강홍식은 강지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본인은 몸이 좋지 않다며 강지찬더러 친척의 생신 잔치에 대신 참석하라고 했다.강지찬이 집안의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는 일은 모두 강홍식이 도맡아 했다. 강지찬은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참에 정유진을 친척들에게
강지찬은 임미연의 말을 못 들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장형준을 쳐다보았다.“사모님과 아가씨는?”“밖에 있습니다.”옆에 있던 고모할머니는 강지찬의 안색이 안 좋아지자 서둘러 말했다.“숙모한테 저쪽 꽃집에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시라고 했어.”강지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여기 친척들 대부분 유진이가 모르는 사람이에요. 오늘 얼굴을 익힐 겸 소개해주기 위해 데리고 온 것이고요.”말을 마친 뒤 다른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꽃집으로 정유진을 찾아갔다.임미연은 너무 난처했다. 어르신이 옆으로 끌고 가 호통쳤다.“얼굴이 왜 빨개져? 네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지. 지찬이가 먼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야?”임미연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할머니, 지찬 오빠가 정말 저를 좋아할까요?”“그건 장담할 수 없어. 전에 지찬이 아버지도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줬는데 만나러 가지도 않았어. 지찬이 정도면 주변에 어떤 여자든 다 있어. 너는 아들 낳을 생각만 하면 돼. 그러면 지찬이 아버지가 알아서 할 거야. 강씨 집안에 자연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하지만, 지찬 오빠가 저 여자와 이혼하지 않았어요.”“흥, 지찬이가 너를 좋아하게 된다면 저 여자는 바로 강씨 집안 사모님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어르신은 임미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부했다.“오늘 잘해. 쉽지 않은 기회니까 잘 잡아야 해.”임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 알겠어요.”정유진과 강지아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열정적으로 대했고 어떤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얼마 전 실검에 오늘 내용 봤어요?”“봤어요. 정말 듣기 싫은 말들이었어요. 시어머니가 물어봤는데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결혼했으면 조신하게 살 것이지 이렇게 망신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나 봐요.”여자 몇 명이 모여 잡담을 나누며 정유진을 쳐다봤다.강지아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아이고 지아야,
임미연에게 외숙모라고 불리던 여자가 뭔가 말하려다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강지찬은 전화 한 통을 받고 오는 바람에 한발 늦었다.임미연은 강지찬이 바로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대담해졌다.“외숙모가 원래 직설적인 사람이잖아요. 화내지 말아요. 언니와 아이 모두 지찬 오빠에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인터넷에 떠도는 것들은 모두 헛소문이잖아요. 절대 믿지 마세요.“외숙모는 어색한 듯 하하 웃었다.“이 계집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인터넷에 떠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연히 안 믿지. 지찬아, 왔어? 어서 앉아.“임미연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지찬이 뒤에 있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어깨를 움츠린 채 옆으로 다가섰다.강지찬은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차갑게 말했다.“유진이가 친척분들에게 인사를 못 드렸는데 잘 적응하고 있는지 보려고 왔어요.“말을 마친 뒤, 정유진 옆에 서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안색이 왜 이렇게 어두워? 피곤해?“이제 막 퇴원한 상태라 강지찬은 그녀가 힘들까 봐 걱정되었다.정유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강지아는 콧방귀를 뀌었다.“여기 하나도 재미없어. 오빠, 우리 언제 가?“강지아가 가겠다고 아우성치자 임미연이 얼른 다가와 말했다.“곧 생신 잔치가 시작될 거야. 지아야, 언니, 밥 먹고 가세요.“정유진은 임미연을 유심히 쳐다봤다. 소녀 같던 여자아이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5년 전과 다른 느낌이었다.도리를 잘 알고 있는 정유진도 강지찬에게 말했다.“밥 먹고 가요. 방금 왔는데 친척들에게도 아직 인사를 못 드렸어요.“임미연은 웃으며 말했다.“지찬 오빠, 오빠는 볼일 봐. 내가 언니와 지아랑 같이 정원에 있다가 생일잔치 시작되면 돌아올게.“강지찬은 그제야 임미연을 바라봤다. 다만 힐끗 보는 데 그쳤다. 임미연은 눈빛에 겁먹은 듯 정유진을 향해 걸어갔다.“그래. 그럼 나는 먼저 인사하고 있을 테니 조용한 곳에서 쉬고 있어.“말을 마친 후, 다시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강지현은 정유진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혼자예요? 아니면...““지찬 씨와 지아랑 같이 왔어요.““그렇군요.“강지현은 웃으며 깨끗한 찻잔을 들어 자신에게 한 잔 따랐다.“친척들이 많은데 왜 혼자 여기 앉아 있어요?“사실 정유진은 여기에서 강지현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언제부터인가 강지현과 함께 있는 것을 마음속에서 거부하고 있었다.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오늘 또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갑자기 강지찬이 생각났다. 가끔 정말 짜증 나고 화가 나서 물어뜯어 죽이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은 항상 대놓고 당당하게 말했다.“지아는 대나무 숲 쪽으로 갔어요. 금방 올 거예요.“강지현이 물었다.“다친 데는 괜찮아요?““네, 다 나았어요.“분위기가 어색해졌다.정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강지현의 눈빛이 점점 뜨거워졌다.“유진 씨,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보러 갔는데 강지찬이 못 만나게 했어요.“정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방의 눈빛이 너무 불편했다.“고마워요.“정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곧 생일잔치가 시작되니 지아 찾으러 가야겠어요.“강지현이 따라 일어서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놓고 물었다.“왜 대신 칼을 맞은 거예요?“정유진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내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예요. 사고가 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이것은 강지현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소리쳤다.“분명 이혼했다고 했잖아요. 잊었어요?““어떤 일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정유진은 강지현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그만 해요.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아요. 진작 말했잖아요. 지찬 씨가 있든 없든 나와 지현 씨는 불가능해요. 나에게 지현 씨는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진짜로 사랑하게 된 거예요?“강지현이 나지막이 물었다.강지찬 대신 칼을 맞은 게 사랑일까?이 문제를 정유진은 줄곧 회피했다. 깊이 생각하
강지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유진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힘이 너무 세서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안돼, 왜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데? 내가 안 보여요? 몇 년 동안 줄곧 유진 씨의 곁에만 있었어요. 감히 한 발자국도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못했다고요. 강지찬 곁에서 떠나 내 품으로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진짜 몰라서 그래요?“이곳은 남의 집 마당이다. 손님이 많기에 언제든지 사람이 올 수 있다.여자들이 수다를 떨던 장면이 떠오른 정유진은 긴장했다.“강지현 씨, 이거 놔요.““안 놓을 거예요. 유진 씨, 사랑해요!“말을 마친 강지현은 갑자기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입을 맞췄다.정유진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그 가운데 강지찬도 있었다.강지찬은 굳은 얼굴로 다가오더니 강지현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두들겨 맞은 강지찬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가십 가득한 눈빛으로 정유진을 바라보기도 했다. 눈빛은 경멸스럽기 그지없었다.“어머머머, 인터넷에 뜬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인제 보니...““남의 정원에선 껴안고 키스하고, 우리 지찬이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정말 체면이 없네! 집안을 망치겠어!““지찬아, 저런 여자는 빨리 집에서 쫓아내. 그렇지 않으면 또 무슨 창피한 짓을 저지를지 몰라.“오늘 생신 잔치에는 친척들뿐만 아니라 사회 인사들도 참석했다. 지금 정유진과 강지현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껴안고 키스한 일은 금방 소문이 날 것이다.당당한 강씨 집안의 권력자인 K그룹 오너의 마누라가 시동생과 이런 사이라니! 서울 전체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정유진은 아무런 설명 없이 눈앞의 모든 것을 차갑게 바라봤다.강지찬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차가운 눈빛을 그녀의 입술을 바라봤다. 눈빛은 섬뜩했다.“조금 전의 일은 끝까지 따질 거예요. 눈으로 본 것만 진실일 수는 없어요. 저는 제 아내를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