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를 떠난 후 정유진은 아무 병원이나 찾아서 들어갔다.원래 태안병원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이혼 증명서를 받고 나니 가고 싶지 않았다.공립 병원은 사람이 많아 등록 후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정유진은 머리가 어지러워 벽에 기대있었는데 내뿜는 호흡마저 뜨거운 것만 같았다.의사는 그녀가 너무 불편해하자 링거를 놓아주었다.링거를 맞고 나자, 열은 내렸지만, 여전히 몸이 불편했다. 뼛속마저 심하게 아프고 어깨는 마치 수백 근이나 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그때쯤 이미 회사로 갈 시간도 없었고 마침 유치원 하원 시간이 되어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그녀는 가는 길에 동네 마트를 들러 노인과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고 집으로 돌아갔다.연우도 있으니, 이명자는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녀의 안색이 괜찮은듯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기는 아직 낫지 않았기에 정유진도 감히 아이와 오래 있지 않고 연우는 밤에 할머니와 함께 자게 되었다.꼬맹이가 잠든 후, 이명자는 물을 한 잔 들고 정유진의 방으로 향했다.“엄마, 저 이혼했어요.”이명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이미 이혼했으니, 서로 볼일 없이 잘 지내면 되는 거야.”정유진은 머리를 끄덕였다.“맞아요. 열심히 돈 벌어서 효도할게요.”이명자는 웃으며 말했다.“나랑 네 아빠 멀쩡해. 연우만 잘 키우면 돼.”엄마로서 딸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위로보다는 격려가 더욱 필요했다.그녀는 곧 이 관계에서 멀어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자현거에서.“정말 정유진이랑 이혼했어?”최의현은 다소 믿기지 않았다. 4년 전만 해도 강지찬이 정유진을 죽을 듯이 미워하면서도 이혼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요즘 잘 지내더니 갑자기 이혼했다고?강지찬은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앉아 차갑고 매정한 얼굴로 말했다.“나는 정유진과 강지현이 별일 없었을 거라고 믿어. 근데 강지현은 그렇다 쳐도 정유진은? 그녀가 감정적인 면에서 좀 무딘 것 같지 않아? 전 남자 친구도 있고 전남편도 있는데
경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어떻게 비에 젖고 물에 빠졌대요?”강지찬은 정유진과 강지현을 찾게 된 날 밤에 확실히 비가 내렸던 것이 생각났다.하지만 그날 밤 둘이 같은 침대에서 자지 않았나?어떻게 물에 빠지고 비에 맞은 거지?정유진의 안색이 안 좋은 것도 이 때문인가?온유한이 말을 꺼냈다.“강지현을 병원에 보낸 날 형수가 강지현과 함께 물에 빠져 비를 맞았다고 말하더군요. 강지현은 원래 그곳의 기후로 인해 폐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열도 나고 호수에 빠지기까지 해서 증세가 더 악화했어요.”강지찬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잔에 든 와인을 마셨다.경은우는 그를 흘끗 보았다.“내일 증거를 제출할 건데, 만약 류선이 체포되면 강지현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좀 그렇지 않을까요?”강지찬이 대답했다.“걔가 죽든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경은우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알겠어요.”강지찬은 결국 다시 술에 취해 다음 날 점심이 돼서야 잠에서 깼다.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그는 음식 냄새를 맡고 잠깐 멈칫했다.그저께 정유진이 왔을 때 손에 장거리를 들고 있던 것 같았는데?발걸음을 재촉하며 주방으로 가니 꽤 큰 실루엣이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장형준은 발걸음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며 순박하게 웃었다.“대표님, 일어나셨어요? 냉장고에 장거리가 있길래 간단하게 몇 가지 만들었어요. 죽도 이미 다 되었으니 바로 식사 준비하세요.”강지찬은 말을 하지 않았다.식탁에는 이미 세 가지 요리나 놓여 있었다.“요리도 할 줄 알아?”강지찬은 할 말이 없어 아무 말이나 늘어놓았다.장형준은 마지막 요리를 접시에 담았다.“취사반에서 3개월 정도 있어서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압니다.”강지찬이 또 술에 취했기 때문에 그는 흰쌀죽을 끓였다.그가 죽 한 그릇을 덜어내는 것을 보고 강지찬은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앉아서 같이 먹어.”장형준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의 것을 뜨러 갔다.밥을 먹으니, 위가 많이 편해졌다.그는 장형준에게 지시했다.“그날 밤에
며칠 못 본 사이 강지현은 더욱 야위었다. 원래 그윽하던 눈이 지금은 더욱 깊게 패어 들어갔다.그는 면도도 하지 않은 채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뼈만 앙상한 채로 누워있었다.정유진도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굳이 이렇게까지 자기를 망쳐가면서 무엇을 바라는 걸까?“왔어요?”강지현은 입을 열자마자 기침했고 폐는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정유진은 가서 물을 한 잔 따라주었다.“앉을래요?”강지현이 머리를 끄덕였다.정유진은 그를 도와 병원 침대의 손잡이를 돌려주었다.뜨거운 물을 마신 강지현은 상태가 조금 좋아진 것 같았다. 조금 전에 한참 기참을 한 덕인지 그의 얼굴에 핏기가 조금 돌았다.“형님이 짓궂게 굴지는 않았죠?”강지현이 물었다.정유진은 눈썰미를 찌푸리며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강지현처럼 가면을 쓰고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도 싫었다.“그날 밤 제가 왜 당신 품에 안겨있던 거예요?”정유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자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도 않고 잠버릇이 늘 좋은 사람이었다.특히 그날 밤은 춥고 피곤해서 평소대로라면 깊게 잠든 후 전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원래 이불 밖에서 자고 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강지현의 품에 안겨있고 이불을 덮고 있었다.그녀는 강지현의 의도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자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강지현은 마치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 예상이라도 한 듯,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없이 씁쓸한 표정만 지어 보였다.“제가 한 짓이에요.”그가 말했다.“당신이 깊게 잠든 틈을 타 제가 수작을 부린 거예요. 특별히 형님한테 보여주려고요.”정유진은 마음이 아파졌다.“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나요?”그녀가 물었다.강지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장유진이 되물었다.“4년 전에는요?”강지현이 입을 열었다.“4년 전도, 4년 후에도요.”정유
정유진은 온미정의 사무실로 향했다.온미정은 마침 2건의 수술을 마치고 쉬고 있었다.“표정이 왜 그래? 강지찬 그놈이랑 싸웠어?”정유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왜 저한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안 물어요?”온미정은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뭘 물을 게 있어? 분명 강지현 그놈이 벌인 짓이겠지. 그놈도 미친놈이야. 굳이 그런 짓을 뭐 하러 벌려?”정유진은 온미정에게 강지찬과의 이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저는 인간으로서 실패한 사람이에요.”그녀는 스스로 조롱이라도 하는 것처럼 웃었다.온미정은 눈을 야리며 말했다.“네가 뭐 성모 마리아라도 되냐? 굳이 남의 잘못을 네가 떠맡게?”말하며 온미정은 혀를 찼다.“근데, 혹시 강지찬 그놈이 너랑 싸우면 네가 좀 참아. 둘이 이렇게 오랜 시간 지지고 볶으면서 걔가 입이 방정이고 가끔 너무 이기적이기도 한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니? 흠흠. 걔 편을 들려는 건 아니지만 그날 그놈이랑 연우가 내 사무실에서 만나면서 요즘 계속 이런 생각을 해. 만약 걔가 연우가 자기 딸인 걸 알았다면 분명 엄청나게 예뻐했을 거야. 그놈이 보기에는 인정사정도 없는 냉혈한이지만 사실 가족을 매우 소중히 여겨.”정유진은 예전에 둘이 작은 아파트에 살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때가 그들의 결혼 생활 중 가장 행복하고 평온한 나날들이었다.커피가 다 되자 온미정은 정유진에게 한잔 따라주었다.온미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그놈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걔가 계속 널 손에 넣고 싶어 한다는 건 그만큼 마음속에 널 두고 있다는 뜻이야. 다만 방법이 조금 틀렸을 뿐이지.”여기까지 말하자 온미정은 한숨을 내쉬었다.“이 문제는 걔만 탓할게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걔 친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니. 젊을 때는 지금보다 더 얄미웠어. 경윤미같은 여자랑 결혼한 거로 모자라 만날 그 여자만 생각하고 있었지.”‘그 여자’는 아마 고세연의 어머니를 가리키겠지.정유진은 조금 놀랐다.“고모님의 뜻
“사모님은 먼저 강지현을 만나러 갔는데, 몇 분도 머무르지 않고 바로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툰 것 같습니다. 그리고서 온 의사님 쪽으로 갔습니다. 온 의사님과는 안 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은데 그날 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온 의사님이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장형준은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쓱 보았는데 그자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그리고 말을 이어갔다.“강지현이 저희가 찾으러 간 것을 알아채고 배를 저어 떠나려고 했다고 합니다. 사모님은 가고 싶지 않아 그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날 밤 비가 오자 사모님은 강지현의 손에서 노를 빼앗아 직접 노를 저어 돌아가려 했지만 노를 저을 줄 몰랐기 때문에 강지현 씨와 함께 차례로 호수에 빠지게 되었답니다.”강지찬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내가 본 것은 모두 강지현이 일부러 나한테 보여주려고 한 거라고?”장형준이 대답했다.“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사모님은 그때 대표님께 해명하지 않았을까요?”강지찬은 콧바람을 뀌면서 말했다.“왜겠어? 그 여자는 나랑 이혼을 그렇게도 바라던 여잔데. 내가 오해한 김에 자연스레 이혼하려는 마음이었겠지.”말하며 강지찬은 마음속으로 그녀가 너무나도 미웠다. 정유진은 정말 양심도 없어!양심이 없는 정유진은 지금쯤 비즈니스에 몰두하고 있었다. 상대는 제호 그룹의 대표님인 추민해와 그의 아들 추호였다.그들은 정유진과 강지찬의 이혼 소식을 몰랐기 때문에 추민해는 정유진에게 매우 예의를 차렸다.“저는 정 대표님의 디자인을 매우 높이 삽니다. 정 대표님만 기꺼이 협력해 주신다면야 돈은 충분히 쳐 드리겠습니다.”추민해의 하얗고 통통한 얼굴에는 아첨이 가득했고 심지어 약간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도 있었다.이 사람은 전형적인 벼락부자인데 그들은 돈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큰돈을 들여 땅을 샀을 뿐만 아니라 서울 최고의 부자 동네를 구축하고 싶어 했다.만약 정유진과 협력을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K그룹 사모님의 지위를 둘째치고 그녀의
제호 그룹과의 계약도 매우 순조롭게 끝났다. 상대 쪽에서도 성의가 가득하고 계약 조건이 매우 좋아 법무부 쪽 사람들이 확인하고 별문제가 없자 정유진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그 후 정유진은 전심전력으로 일에만 몰두했다.“정 대표님, 제호 그룹의 추 도련님이 또 찾아오셨습니다.”“안 만나.”소미는 목소리를 낮추며 투덜거렸다.“대표님의 신분을 알면서도 매일 꽃 보내주는 거 보면 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정유진은 마음속으로 확실히 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이미 추호에게 자기와 강지찬은 부부 사이라고 말했지만, 추호는 믿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프런트에서 꽃을 건네주며 추호가 돌아갔다고 전했다.정유진은 프로젝트 방안을 생각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후에 퇴근할 무렵, 조예원이 갑자기 찾아왔다.두 사람은 매번 좋게 헤어지는 법이 없었는데 왜 자꾸 자기를 찾아오는지 정유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무슨 일이야?”그녀의 모습을 보자 조예원은 바로 알아차렸다.“꼴을 봐서는 모르는 것 같네.”“내가 뭘 알아야 하는데?”“강지현의 엄마가 15년 전 강씨 집안의 그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됐어. 추후에 재판이 열릴 예정이야.”“뭐라고?”이 일은 정유진이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밤낮없이 바삐 돌아치느라 강씨 집안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언제 일어난 일인데?”“어제.”조예원은 조용히 정유진을 바라보았다.“강지찬 참 무자비한 사람이네. 강지현이 아직 아픈데 이렇게 나오는 건 죽이려는 거지.”정유진은 예전에 강지찬이 15년 전의 사건에 대해 말하던 것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류선과 연관이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류선이 체포되었으니 경찰 쪽에서도 이미 관련된 증거를 확보했다는 뜻이겠네. 법은 억울한 사람을 심판하지 않아.”정유진은 태연하게 말했다.조예원은 조금 놀랐다.“너는 이 일로 강지현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되지도 않니?”이번에는 정유진이 의아할 차례였다. 그녀는 조
“당신이 여길 왜 와요?”강지현의 말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조예원은 그가 자기를 보고 싶어 하든 아니든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말을 꺼냈다.“오늘 성원 앞에 기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아직도 안 갔어요. 사람을 더 늘려야 되지 않겠어요? 기자가 들어갈까 봐서 걱정이에요.”“괜찮아요.”태안의 보안은 매우 믿음직스러웠고 강지현은 VIP 병실에 머물고 있어 아무나 올라올 수 없었다.다만 그의 차갑고 딱딱한 태도 때문에 한동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꽤 오래 지나서야 조예원이 말했다.“정유진을 찾으러 갔었는데 당신과 강지찬 사이의 일은 자기와 상관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계속 아무런 표정도 비치지 않던 강지현의 얼굴에 마침내 금이 갔다.“정유진을 찾아갔어요? 왜 찾아갔어요?”“정유진이 강지찬을 설득해서 당신의 어머니를 놔주길 바라서요.”강지현은 온몸을 떨며 분노에 휩싸여 옆의 캐비닛에 놓여있던 컵을 들어 조예원을 향해 내리쳤다.그는 사람에게 던지지는 않아 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큰 소리에 조예원이 몸을 떨었다.“누가 정유진을 찾으러 가랬어요? 누가 제멋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녀가 어떻게 강지찬을 설득해요? 가서 빌기라도 하게 하려고요?”그는 눈을 부라리고 있었는데 화를 내는 탓에 또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조예원은 화를 내는 강지현을 본 적이 없었다. 또 이렇게 심하게 화난 상태는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모습에 놀랐다.“그들은 부부예요. 강지찬이 정유진을 그렇게 아끼는데 정유진의 말이라면 강지찬이 들을 것 같았어요.”기침을 심하게 하는 강지현을 본 조예원은 그런데도 앞으로 나섰다.“어머님이 체포된 일이 성원에 대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요즘 회사가 초긴장 상태예요.”조예원은 강지현의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당신과 정유진은 친구잖아요? 그때도 당신이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 정유진이 당신을 좀 돕는 게 뭐가 문제예요? 참 아쉽게도 정유진이 싫다네요.”“꺼져!”강지현
강지찬의 말에는 분명히 다른 의미가 담겨있었고 강홍식은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안색이 변했다.“이 개자식이, 말은 막 내뱉는 거 아니야!”옆에 있던 장형준이 강홍식에게 친자 확인서를 건네는 동안 강지찬은 자리에 앉았다.“이건...”강홍식은 그 결과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어디서 난 거니?”장형준이 설명했다.“이건 고 사모님이 저번에 산부인과 검진에서 양수 검사를 받던 중, 제가 사람을 시켜 샘플을 채취해서 감정을 받은 것입니다.”“진짜니?”강홍식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화가 난 나머지 얼굴에 살마저 떨리고 있었다.강지찬은 담담히 말했다.“안 믿기세요? 그럼, 아이가 태어나면 당신이 직접 친자 확인하러 가면 되잖아요?”그는 차갑게 웃었다.“만약 진짜 당신 씨였다면 정말 가만둘 생각 없었어요. 저희 강씨 집안 씨도 아니니까 저랑은 상관없게 됐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요.”후레자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원래 의심을 하던 강홍식은 갑자기 믿게 되었다. 그는 친자확인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경우성과 최효진은 강제로 명문가의 추한 스캔들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최효진이 강지찬에게 물었다.“진, 진짜 아니야?”“아니에요.”강지찬은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친자확인서를 받은 지는 꽤 되었지만 그는 이 사람들이 소란을 피울 때를 기다려 계속 공개하지 않았었다.경우성이 말했다.“네 아빠 일은 네 아빠가 처리하게 해. 괜한 오해 살 수도 있으니 네 손 더럽히지 말거라.”강지찬은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외삼촌은 좋은 마음에 말해주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손을 대면 그가 가족의 재산을 위해 무자비하게 배다른 형제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헛소문이 돌 수도 있었다.곧 위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집안의 하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다.경우성과 최효진도 강홍식 집에 머무르지 않고 강지찬의 마당에서 얘기를 나누다 떠났다.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