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호 그룹과의 계약도 매우 순조롭게 끝났다. 상대 쪽에서도 성의가 가득하고 계약 조건이 매우 좋아 법무부 쪽 사람들이 확인하고 별문제가 없자 정유진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그 후 정유진은 전심전력으로 일에만 몰두했다.“정 대표님, 제호 그룹의 추 도련님이 또 찾아오셨습니다.”“안 만나.”소미는 목소리를 낮추며 투덜거렸다.“대표님의 신분을 알면서도 매일 꽃 보내주는 거 보면 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정유진은 마음속으로 확실히 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이미 추호에게 자기와 강지찬은 부부 사이라고 말했지만, 추호는 믿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프런트에서 꽃을 건네주며 추호가 돌아갔다고 전했다.정유진은 프로젝트 방안을 생각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후에 퇴근할 무렵, 조예원이 갑자기 찾아왔다.두 사람은 매번 좋게 헤어지는 법이 없었는데 왜 자꾸 자기를 찾아오는지 정유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무슨 일이야?”그녀의 모습을 보자 조예원은 바로 알아차렸다.“꼴을 봐서는 모르는 것 같네.”“내가 뭘 알아야 하는데?”“강지현의 엄마가 15년 전 강씨 집안의 그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됐어. 추후에 재판이 열릴 예정이야.”“뭐라고?”이 일은 정유진이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밤낮없이 바삐 돌아치느라 강씨 집안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언제 일어난 일인데?”“어제.”조예원은 조용히 정유진을 바라보았다.“강지찬 참 무자비한 사람이네. 강지현이 아직 아픈데 이렇게 나오는 건 죽이려는 거지.”정유진은 예전에 강지찬이 15년 전의 사건에 대해 말하던 것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류선과 연관이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류선이 체포되었으니 경찰 쪽에서도 이미 관련된 증거를 확보했다는 뜻이겠네. 법은 억울한 사람을 심판하지 않아.”정유진은 태연하게 말했다.조예원은 조금 놀랐다.“너는 이 일로 강지현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되지도 않니?”이번에는 정유진이 의아할 차례였다. 그녀는 조
“당신이 여길 왜 와요?”강지현의 말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조예원은 그가 자기를 보고 싶어 하든 아니든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말을 꺼냈다.“오늘 성원 앞에 기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아직도 안 갔어요. 사람을 더 늘려야 되지 않겠어요? 기자가 들어갈까 봐서 걱정이에요.”“괜찮아요.”태안의 보안은 매우 믿음직스러웠고 강지현은 VIP 병실에 머물고 있어 아무나 올라올 수 없었다.다만 그의 차갑고 딱딱한 태도 때문에 한동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꽤 오래 지나서야 조예원이 말했다.“정유진을 찾으러 갔었는데 당신과 강지찬 사이의 일은 자기와 상관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계속 아무런 표정도 비치지 않던 강지현의 얼굴에 마침내 금이 갔다.“정유진을 찾아갔어요? 왜 찾아갔어요?”“정유진이 강지찬을 설득해서 당신의 어머니를 놔주길 바라서요.”강지현은 온몸을 떨며 분노에 휩싸여 옆의 캐비닛에 놓여있던 컵을 들어 조예원을 향해 내리쳤다.그는 사람에게 던지지는 않아 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큰 소리에 조예원이 몸을 떨었다.“누가 정유진을 찾으러 가랬어요? 누가 제멋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녀가 어떻게 강지찬을 설득해요? 가서 빌기라도 하게 하려고요?”그는 눈을 부라리고 있었는데 화를 내는 탓에 또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조예원은 화를 내는 강지현을 본 적이 없었다. 또 이렇게 심하게 화난 상태는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모습에 놀랐다.“그들은 부부예요. 강지찬이 정유진을 그렇게 아끼는데 정유진의 말이라면 강지찬이 들을 것 같았어요.”기침을 심하게 하는 강지현을 본 조예원은 그런데도 앞으로 나섰다.“어머님이 체포된 일이 성원에 대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요즘 회사가 초긴장 상태예요.”조예원은 강지현의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당신과 정유진은 친구잖아요? 그때도 당신이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 정유진이 당신을 좀 돕는 게 뭐가 문제예요? 참 아쉽게도 정유진이 싫다네요.”“꺼져!”강지현
강지찬의 말에는 분명히 다른 의미가 담겨있었고 강홍식은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안색이 변했다.“이 개자식이, 말은 막 내뱉는 거 아니야!”옆에 있던 장형준이 강홍식에게 친자 확인서를 건네는 동안 강지찬은 자리에 앉았다.“이건...”강홍식은 그 결과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어디서 난 거니?”장형준이 설명했다.“이건 고 사모님이 저번에 산부인과 검진에서 양수 검사를 받던 중, 제가 사람을 시켜 샘플을 채취해서 감정을 받은 것입니다.”“진짜니?”강홍식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화가 난 나머지 얼굴에 살마저 떨리고 있었다.강지찬은 담담히 말했다.“안 믿기세요? 그럼, 아이가 태어나면 당신이 직접 친자 확인하러 가면 되잖아요?”그는 차갑게 웃었다.“만약 진짜 당신 씨였다면 정말 가만둘 생각 없었어요. 저희 강씨 집안 씨도 아니니까 저랑은 상관없게 됐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요.”후레자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원래 의심을 하던 강홍식은 갑자기 믿게 되었다. 그는 친자확인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경우성과 최효진은 강제로 명문가의 추한 스캔들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최효진이 강지찬에게 물었다.“진, 진짜 아니야?”“아니에요.”강지찬은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친자확인서를 받은 지는 꽤 되었지만 그는 이 사람들이 소란을 피울 때를 기다려 계속 공개하지 않았었다.경우성이 말했다.“네 아빠 일은 네 아빠가 처리하게 해. 괜한 오해 살 수도 있으니 네 손 더럽히지 말거라.”강지찬은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외삼촌은 좋은 마음에 말해주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손을 대면 그가 가족의 재산을 위해 무자비하게 배다른 형제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헛소문이 돌 수도 있었다.곧 위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집안의 하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다.경우성과 최효진도 강홍식 집에 머무르지 않고 강지찬의 마당에서 얘기를 나누다 떠났다.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
류선은 구치소에서 몇일을 기다렸지만, 아들과 남편을 보지는 못했다.아들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느라 그렇다 쳐도 강홍택조차도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화가 났다.눈앞에 있는 변호사를 보며 류선은 손을 거의 그의 코에 갖다 댈 정도였다.“돌아가면 강홍택한테 말해. 안 오면 내가 좋은 꼴 구경시켜 주겠다고. 내가 지금 들어왔다고 해서 송지윤 그 천한 년한테 자리 내주는 게 아니니까 딱 기다리라고 전해줘.”변호사는 강홍택이 그녀의 소송을 위해 고용한 사람인데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욕만 가득 들었다.변호사의 말을 듣고 강홍택은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얘졌다.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부부로 지내왔기 때문에 류선이 어떤 성격인지 강홍택은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아직 조금 겁이 났다. 특히 류선이 낯짝도 버리고 소란을 피울 때면 아예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강홍택의 뒤에 서 있던 송지윤이 말을 꺼냈다.“그녀가 만나자니 한번 만나죠. 제가 어르신과 함께 가겠습니다.”강홍택은 갑자기 송지윤이 배려가 깊다고 느껴졌다. 이런 여자들의 전쟁은 여자가 나서야 마땅했다. 그는 정말 류선과 같은 억센 아줌마와 엮이기 싫었다.강홍택은 날을 잡고 송지윤과 함께 구치소로 향했다.류선은 그들이 같이 온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했다.“감히 천한 년을 데리고 날 조롱하러 와? 강홍택, 너 류씨 집안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날 무시하다니.”강홍택은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가고 싶었다.옆에 있는 송지윤이 우아하고도 단정하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형님, 어르신 욕하지 마세요. 어르신이 그래도 형님에게 변호사도 구해주시는데, 류씨 집안 사람은요?”류선은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류씨 집안 사람?류씨 집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보러오지 않았다. 요 몇 년 사이에 류씨 집안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어디 감히 강지찬을 등지겠는가?지금쯤 아마 그녀와 선을 긋기 바쁠 것이다.그래서 류선은 요즘 화가 나서 구내염까지 생기고 말았다.
정유진은 원래 추호가 장난을 친다고만 생각했다. 그와 같은 금수저 2세는 몇 번 장난치다가 반응이 없으면 멈출 것이었다.그런데 그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이날 추민해는 아들을 데리고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러 왔는데 추호는 아버지 앞에서 대놓고 정유진에게 꽃다발을 건넸다.추민해는 이 불효자식이 궁리를 정유진에게 돌릴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해 놀라서 몸을 돌려 추호를 발로 걷어찼다.“정 대표님이 네가 그,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얼른 사과해!”추호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유진을 바라보며 웃었다.추민해가 서둘러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매를 덜 맞아서 그래요. 제가 집에 돌아가서 관리 똑바로 시키겠습니다.”정유진은 이 아버지와 아들을 신경 쓰지 않고 회의실로 가서 프로젝트 기획서를 검토했다.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정유진은 인근 호텔에서 추 씨 부자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추민해는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벼락부자였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매우 열성적이며 정유진에 대해 경외와 숭배의 마음을 갖고 있어 함께 일함에 있어 매우 잘 맞았다.정유진이 제시한 디자인에 대해서도 군말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다고만 했다.식사를 마치고 정유진은 추민해에게 대리운전을 불러주었는데 추호는 함께 가지 않았다.“제 직감이 말해주는데 당신 이미 이혼한 것 같은데요.”차가 이미 떠난 것을 확인한 정유진은 어쩔 수 없이 소미더러 추호에게 택시를 한 대 잡아주라고 했다.“제 혼인상태가 어떤지는 그쪽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추 도련님 얼른 집으로 가세요. 추 대표님 화내실라.”추호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갑자기 다가와 정유진을 덥석 안았다.키키와 다른 사람이 이를 보고 달려와 그를 끌어당겼다.추호는 손을 휘적거렸다.“뭘 긴장해요. 저희 누님이랑 대화 좀 나누게요.”남자에게 이렇게 안긴 정유진은 온몸이 불편했다. 그녀는 발을 들어 추호의 한정판 운동화를 세게 밟아버렸다.추호는 소리를 질렀지만, 손을 놓아
정유진은 강지찬이 자신을 차 안으로 끌어당길 줄 알았지만 강지찬은 의외로 차 옆으로 온 후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아까 그분은 협력사의...”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강지찬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요즘 외출할 때 사람 데리고 다녀.”강지찬은 분명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고 그는 정유진 앞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한입 깊게 들이켰다.정유진이 마침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서 있던 터라 담배 연기가 그녀의 얼굴에 날아와 기침했다.“무슨 일 생겼어요?”그녀는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눈시울이 젖었지만 강지찬은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마치 오랫동안 그녀를 못 보았다는 듯이.담배 연기를 사이로 보이는 정유진은 예전의 정유진과 사뭇 달라진 것 같았다. 더 이상 그에 대한 방어와 경계가 선명하지 않았다.하하, 이혼이 그녀에게는 정말 해방인가 보네.“고세연이 도망갔어. 그녀가 너한테 해가 될까 봐.”정유진은 멍해졌다.“고세연이 또 무슨 짓을 했는데요?”강지찬은 일부러 날카롭게 말했다.“이건 강씨 집안의 일이야.”그 말의 뜻은 넌 이미 강씨 집안의 사람이 아닌데 뭘 그리 많이 묻느냐는 것이었다.말을 끝낸 후 강지찬은 차에 탔다.정유진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방금 그녀는 강지찬이 추호에 관해 캐 물을 줄 알았다.알고 보니 그녀가 괜한 생각을 한 것이다.강지찬이 간 것을 보자 키키와 소미는 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미는 술을 마시지 않아 정유진의 차를 운전해 지엘 별장으로 모셔다 주었다.소미는 출근을 편하게 하기 위해 연우 인테리어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정유진은 소미가 밤길에 혼자 가는 것이 걱정되어 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강씨 집안은 요즘 바람 잘 날 날이 없었다. 정유진도 지금쯤 강지찬이 둘째 집안이랑 이미 끝장을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고세연의 사건도 터질 줄은 몰랐다.하지만 이것은 강씨 집안의 문제였고 그녀는 더 이상 강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캐묻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소
“성원은 어떻게 됐어?”정유진이 물었다.조예원은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강지현이 입원을 하고 그 후에 어머니까지 체포되고 지금은 한빈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어. 인터넷이 떠들썩해. 노을빛 프로젝트는 이미 절반쯤 진행됐는데 공사를 중단해야 할 수도 있어.”“성원 쪽에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거야?”정유진이 물었다.“강홍택이 나서기는 했지만, 무슨 쓸모가 있겠어? 아무리 지금 강지현이 퇴원을 한다고 해도 지금 성원이 마주한 인터넷 이슈만으로 무너지게 생겼는데. 강지찬이 한 짓이지?”조예원이 물었다.정유진은 이에 대답했다.“난 모르는 일이야.”조예원은 표정이 변했다.“네가 모른다고? 네가 어떻게 몰라? 네가 직접 둘이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그때 강지현이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넌 지금 강지현이 아픈 몸을 이끌고 성원에서 버티고 있는 꼴을 보기만 하고 있겠다고?”정유진은 조예원을 바라보았다.“그럼 내가 뭘 할까? 강지찬한테 가서 제발 강지현 좀 봐달라고 빌기라도 할까?”조예원이 대답했다.“아니면?”정유진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왜? 네가 뭔데? 강지현은 또 뭐고?”조예원은 얼어붙었다.“너...”정유진이 다시 말을 꺼냈다.“만약 류신이 정말로 과거의 납치 사건과 연관이 있다면 강지찬 어머니의 죽음과 수아가 몇 년 동안 미친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는데? 만약 마유구의 죽음이 한빈과 연관이 있다면…. 배후에 숨겨진 원한 관계에 대해서 너도 잘 알지? 애초에 K그룹도 여론 때문에 위기에 맞게 됐을 때, 그 배후에 있던 사람이 누군지. 난 경찰이 꼭 밝혀내리라고 믿어. 내가 강지찬에게 가서 빌라고? 미안해. 난 그 말은 도저히 못 하겠어. 그리고 난 지금 그에게 요구할 아무런 자격도 없어.”“난 이미 강지찬과 이혼했어.”정유진이 말했다.“뭐라고?”조예원은 조금 믿지 못하는 듯한 눈치였다.“언제 일어난 일인데?”“거의 한 달 됐어.”정유진이 정말로 강지찬과 이혼하게 됐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 당신은 뭘 원하는 건데요?”조예원은 강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분명 정유진의 마음속에는 당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위해 강지찬에게 등을 지고 심지어 자기가 힘들게 창립한 회사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강지현의 표정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나가요. 당신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조예원의 가슴이 아파졌다.그녀의 진심은 이 남자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녀의 헌신도 이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어쩌겠는가?그녀는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다.“아마 저는 당신이 언제쯤인가 눈을 뜨고 저를 바라봐주는 것, 그걸 바라겠죠.”조예원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사무실을 나가지 않았다. 이미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강지현은 밥을 먹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저는 가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나를 뻔뻔하다고 욕을 하든 나를 내쫓든 나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지현 씨, 뭐 먹고 싶어요?”강지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지 않았다.“그럼, 제가 알아서 시킬게요.”그가 몸이 허약하고 아직 아프다는 생각에 조예원은 소화가 잘되고 영양이 가득한 담백한 죽과 밑반찬을 시켰다.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강지현의 비서가 다급히 들어왔다.“강 대표님, 또 두 업체가 협력을 종료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 대표님 측의 사람이 내일 정산하러 오겠다고 하는데 재무부서가 정산해야 하는지 여쭙고 있습니다.”강지현은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정산해. 회사 장부에 있는 만큼 다 정산해 줘.”“네?”비서가 얼어붙었다. 강 대표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왜 어딘가 될 대로 되라는 느낌이지?조예원은 일어나서 말했다.“가서 재무부서 측에 양 대표님한테 잘 말씀드리라고 전해주세요. 보통 월말에 정산하지 않아요? 뭘 그리 급하대요? 성원이 절대 빚지지는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조예원의 말을 들은 비서는 약간 안도감을 느끼고 서둘러 일을 처리하러 갔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 사람들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