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원의 주량은 강지현보다 좋았고 강지현은 정말 취해버렸다.호텔로 도착해서도 강지현은 깨지 않았다.오늘 그녀는 성원에서 회의에 참석하느라 강지현이 정유진을 찾으러 간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가 정유진을 찾아간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을 했다.방안의 등불은 어두웠지만 강지현의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했다.조예원은 영원히 강지현을 처음 보았을 때의 장면을 잊지 못했다.그는 인테리어를 마치지 않은 마당에 서있었는데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을 길게 늘어뜨린 채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에서 걸어 나오는 신사 같았다.잠시 침대 머리맡에 서있다가 그녀는 욕실로 가 샤워를 했다.저번에 그녀는 해도 되냐고 물었다가 무정하게 거절당하고 이번에는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처음에 아예 반응이 없다가 한참 지나서야 강지현이 그녀의 키스에 잠에서 깼다.정신이 말짱해진 것은 아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깬 것이었다.그는 유진 씨라고 하며 조예원에게 키스를 퍼부었다.조예원은 처량하게 웃었지만 마음속으로 조금은 기뻤다.다음날 조예원이 먼저 눈을 떴다. 온몸이 욱신거렸다.강지현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얼굴이 약간 창백해 보였는데 어젯밤 마신 술 때문일 것이다.조예원은 혹시라도 그가 깰까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샤워를 하러 갔다.샤워를 마친 후 침대 머리맡에 앉아있었던 강지현의 시선과 부딪혔다.조예원은 나름 침착했고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이 단지 잠깐 멈칫한 것뿐이었다. 그리고서는 쇼파의 옷을 주어서 강지현의 앞에서 하나씩 입었다.그녀가 옷을 다 입고 나서 강지현이 말했다.“나한테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알고 있어요.”조예원은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의 마음속에는 정유진이 있고 집에서는 명문가의 따님들을 소개해 주죠. 저는 당신의 마음속이든 신변이든 제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잘 알고 있으면 다행이고.”조예원은 핸드폰과 가방을 들고 불편함을 참으며 자리를 떠났다.이날 정유진은 현 변
현 변호사와 대화를 나눈 후 정유진은 약간 혼란스러웠다.그보다 더 어이없었다.그녀는 항상 마음속으로 강지찬이 놓지 않는 한 이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한참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강민아의 전화가 걸려 왔다.민아는 그녀의 부모님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방문하고 싶었다.정유진은 감히 그녀를 집으로 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부부가 친척 집에 잠깐 가있어서 집에 없다는 핑계로 강민아를 막았다.강민아도 요즘 주얼리 쇼의 디자인을 맡을 정도로 바빴다. 정유진과 그녀는 대화를 오랫동안 나누며 전화로 한바탕 토론을 했다.정유진은 쇼 디자인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쇼를 본 적이 있고 다지인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강민아에게 여러 가지 귀중한 조언을 해주었다.통화가 끝나고 3시가 조금 넘었을 때 또 다른 전화가 걸려 왔는데, 낯선 번호였다.정유진이 전화를 받자 저번에 한규진의 생일파티에서 한번 뵌 부 사모님이었다.솔직히 그날 정유진이 알게 된 사람이 너무 많이 어떤 사람들은 미처 연락처도 저장하지 못했다. 부 사모님의 집은 문장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정유진은 부 사모님이라는 분이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부 사모님이 전화한 목적은 집에 인테리어를 하는 작은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마침 정유진의 인테리어 회사가 생각나서 연우 인테리어와 협력하고 싶다는 것이었다.요즘 정유진은 업계에서 여러 주문을 받으니 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부 사모님은 그녀와 공사장에서 만나서 얘기하고 저녁에 다른 동업자들과 식사를 하자고 요청했다.정유진은 시간을 보고 키키를 불러 함께 갔다.가는 길에 키키는 매우 신나 보였다. 요즘 받는 주문의 질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이 프로젝트를 잘 끝낸다면 올해 실적은 반드시 좋을 것이라 했다.목적지는 외곽에 있어 조금 멀었다. 다행히도 아직은 낮이 길어 5시라도 어둡지 않았다.하차 후 키키는 어리둥절했다.“대표님, 저희... 잘못 온 건 아니죠?”눈앞에 실제로 건물이 있긴 했지만 짓다 만 폐건물처
정신을 차린 정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귀국한 후로부터 늘 운이 안 좋은 것 같았다. 단지 이번에는 누가 자신을 아니꼬와하는지 모를 뿐이었다.손이 너무 단단히 묶여 있어서 반나절 동안 풀지 못하고 고군분투하였다.금방 앉았는데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정유진은 눈을 부라리고 싶은 충동을 참고 말했다.“또 너야?”전태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맞아요. 당신이 아직 명성을 잃지 않고 멀쩡히 있는데 제가 당신을 그렇게 그냥 둘줄 알았어요?”정유진은 콧방귀를 뀌었다.“그 부 부인은 당신이 찾은 거예요?”“좋아, 이번엔 강지찬이 당신을 어떻게 구할지 두고 볼게요.”전태연은 이번 행동에 매우 만족했다.사실 문을 파는 부 부인은 진짜였지만 정유진에게 전화를 건 “부 부인”은 가짜였다.정유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전태연 씨, 이번 사태는 아마 회사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 같네요.”이 일만 말하면 전태연은 화가 났다. 정유진에게 넘겨준 인터넷 라이브 회사는 원래 전태연이 연습을 하기로 한 회사였다. 그런데 회사를 넘겨받지는 못하기는커녕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도 났다.전태연이 불쌍한 척 매달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외국에 처박혀있었을 것이다.전태연은 속으로 정유진이 죽기를 바랐다.“오만하지 마요!”전태연이 악랄하게 말했다.“이번에는 전씨 가문을 통째로 잃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철저히 파멸에 이르도록 할 거예요!”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마치고 다시 방을 나갔다.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이 방의 조명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밖은 매우 조용했다. 마치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한두 번 들리는 것 같은 아주 낯선 고요함이었다.정유진은 그가 지금 외곽이나 시골에 갇혀있다고 의심했다.키키는 어떻게 됐을까. 전태연은 자기를 겨냥하는 것이니 키키는 괜찮겠지?이렇게 생각하니 조여오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놓을 수 있었다.정유진 앞에서 한참 과시하던 전태연은 더욱 화가 났다.옆방에는 고세연이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전태연은 그녀를 보면
강지현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찰나에 의문의 사진을 받았다.사진 속 정유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묶여있었다.사진에는 주소와 함께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됩니다. 혼자 오세요. 큰 깜짝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강지현은 그 문장을 잠시 생각한 후 문자 메시지의 주소로 곧장 달려갔다.다행히도 밤에는 차가 막히지 않아 9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이곳은 도시의 외곽에 있는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강지현의 차는 한적한 마을로 들어섰는데, 대부분의 집은 어두웠고 마을에는 가로등도 없었다.그는 이 지역에 대해 잘 몰랐다. 아마 이런 마을은 거의 대부분이 철거되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가서 살고 과부와 노인 몇 명만 마을에 남아있을 것이다.차가 마을로 들어선 후, 그는 정유진이 어디 있는지 몰라 속도를 늦췄다.한참을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있던 사람이 손전등을 들고 흔들자 강지현은 차를 돌렸다.차는 한 마당에 섰다. 방안에는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차를 내리자 마당에는 젊은이가 몇 명 서있었다.“강지현?”아까 손전등을 들고 있던 젊은이가 시시한 어조로 물었다.“네.”“핸드폰 꺼내.”강지현은 눈썹을 찌푸렸다.“정유진 씨는 안에 있어요?”“안에 있어. 그녀를 만나려면 쉬워. 핸드폰 꺼내.”강지현은 핸드폰을 상대방에게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그 사람은 핸드폰의 통화기록을 확인했다.“신고 안 했지?”“아니요.”강지현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거실이었다. 집은 허름했고 소파와 테이블도 너덜너덜했다.강지현은 바로 왼쪽으로 꺾어 옆에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유진이 손을 묶인 채 침대에 앉아 초조하게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여긴 왜 왔어요?”정유진은 깜짝 놀라며 강지현의 뒤를 바라보았다.“혼자 왔어요?”강지현은 급히 달려왔다.“유진 씨, 괜찮아요? 다치지는 않았어요?”정유진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혼자 왔어요? 신고 안 했어요?”강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저녁밥을 넣어주었다.이미 한밤중이 되어 정유진은 배가 고팠지만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강지현이 도시락을 열어보자 꽤 깔끔하고 냄새도 좋았다.그는 젓가락을 정유진에게 건네며 말했다.“먼저 뭐라도 먹어요.”“걱정 안 돼요?”그가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정유진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강지현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는 다른 도시락도 열고 슬쩍 웃었다.“뭘 걱정해요? 당신만 괜찮으면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어요.”정유진은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태연이 보낸 음식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 여자는 미쳤다. 그녀가 밥에 무엇을 넣을지 누가 알고?강지현은 그녀의 걱정을 보고 다시 도시락을 닫고 먹지 않았다.밖은 매우 조용했고 강지현이 온 지 꽤 되었지만 전태연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제일 안절부절못하는 전태연은 원래대로라면 와서 한바탕 조롱했을 것이다.강지현은 문을 두드리며 바깥을 향해 외쳤다.“물 있어요?”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잠시 후 누군가가 문틈을 통해 물 두 병을 던졌다.강지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사장 불러와요.”물을 갖다주던 문신남이 웃었다.“우리 사장님이 당신이 오라면 오는 사람이야? 가만히 있어.”말을 끝내자마자 다시 문을 잠갔다.강지현은 정유진에게 물을 한 병 건네며 말했다.“사람이 적지는 않네요. 제가 들어올 때만 해도 대여섯 명은 봤어요. 이 마을에는 사는 사람도 적어서 찾기 힘들었을 거예요.”정유진은 걱정에 가득 찼다.“그들이 키키를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어요.”강지현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었지만, 그는 손을 뻗던 도중에 멈췄다.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자연스럽기만 하던 행동마저도 가볍게 할 수가 없었다.정유진의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웠다.강지현은 물을 두 모금 먹고 위로를 했다.“아버님, 어머님도 이쯤이면 당신이 사고가 난 줄 알고 신고를 했을거예요.”정유진이 걱정하는 것
강지현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여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눈이 충혈되었다.원래 몸이 좋지 않은데 이렇게 괴롭힘당하니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고 당금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유진 씨, 그들과 얘기해서는 쓸모없어요. 얼른 절 묶어요.”정유진도 같이 다급해졌다.“다칠 거예요.”“전 괜찮아요. 당신이...”강지찬은 몸에서 퍼져 나오는 욕망을 힘겹게 억눌렀다. 그는 호흡마저 뜨겁게 불타는 것만 같았다.“빨리 절 묶어요. 제가 나중에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고 당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요.”정유진은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문을 세게 두드렸다.“전태연, 회사를 돌려줄게, 강지현은 내보내!”전태연이 웃으며 말했다.“정유진, 무슨 농담이에요. 그딴 회사 하나에 제가 당신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겠어요?”정유진은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생각 잘하세요. 당신이 지금 건드린 것은 강지찬 한 사람뿐만이 아니에요. 강지현도 건드렸어요. 당신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 이 일이 끝나면 강지찬과 강지현이 당신의 가문에게 어떻게 복수할지는 생각해 줬어요?”전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강지찬의 수단은 이미 맛보았지만, 강지현이라는 남자는 보기에는 순해 보이지만 소리 소문 없이 강지찬 몰래 성원이라는 대기업을 육성해 낸 사람이다. 쉬운 사람은 아닐 것이다.전태연은 은근히 화가 났다. 그래서 고세연이 숨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구나.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패를 내어주었다.정유지은 또 얘기를 꺼냈다.“저는 당신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확실히 좋은 의도가 아니라 당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태연 씨, 강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전씨 가문인데, 만약 전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건드린다면 여전히 예전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세요?”문밖의 전태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발걸음은 서서히 멀어져갔다.사실 전태연은 불려 간 것이었다. 고세연은 마음속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백번도 넘게 욕을 했다.
정유진은 밧줄을 든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십 년?강지현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제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영원히 모를 거예요!”강지현은 흥분하기 시작했다.“그해 학교 축제에서 당신과 함께 춤을 췄던 사람 아직도 기억해요? 저예요! 저라고요!”“그 짧았던 4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그날 지옥에서 저를 구해줬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해줬어요.”“그런데 당신은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한빈 그 쓰레기 새끼가 어떻게 당신과 사귈 자격이 있는 거예요?”“그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강지찬을 만나지도 않았을 거고, 그가 아니었다면 저는 당신과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빗겨나가지 않았겠죠.”정유진은 머릿속이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어렴풋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났다.“지현 씨 말은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절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네!”강지현은 갑자기 덮쳐왔다.“유진 씨, 제가 스스로 얼마나 자책하는지 알아요? 그때 왜 제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는지, 왜 가서 물어보지 않았는지, 왜 한빈에게서 당신을 빼앗지 않았는지?”강지현은 정유진을 너무 꼭 잡은 탓에 정유진의 어깨가 조금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그의 상태가 걱정되었다.“먼저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요...”“진정 못 해요!”강지현의 목소리가 커졌다.“왜 강지찬의 곁으로 돌아가고, 왜 강지찬이랑 자는 거예요? 당신 이혼하려던 거 아니었어요?”이 일은 정유진에게 정말 낯부끄러운 일들이었다.그녀는 강지현의 손을 떼려 했지만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절 밀어내지 마요, 유진 씨. 제발 절 밀어내지 마요!”강지현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그와 잤다는 건 상관없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잘 알아요. 유진 씨, 좋아해요. 제가 이혼 소송 도와드릴게요, 평생 잘해줄게요...”“놔줘요!”정유진은 깜짝 놀랐다. 목에 닿은 뜨거운 키스에 두피가 마비될 정도였다.강지현은 몸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키
강지현이 고통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정유진은 만감이 교차했다.유리 조각이 상처에 꽂혀있는 탓에 피가 덜 나긴 했지만, 조각을 빼면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정유진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먼저 말하지 마요.”그녀는 이런 상태의 강지현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이봐요, 강 대표님이 다쳤어요.”그녀는 문을 세게 두드렸다.“전태연, 정말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어?”전태연 쪽은 강지현이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정유진에게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당신이 저 둘 사이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했잖아요? 이제 어떡해요?”고세연은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났다. 정유진이 대체 뭐가 좋다고 남자들이 그녀에게 그렇게 충성인 걸까?“강지현이 정유진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냥 가야죠.”전태연은 어이가 없어서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네? 그냥 간다고요? 제가 갖은 수를 써서 사람을 잡아 왔는데, 지금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저희는 그냥 간다고요?”고세연은 경멸의 눈빛으로 전태연을 흘겨보았다.“의심병이라는 게 뭔지 알아요? 강지찬은 강지현과 정유진의 관계를 의심해서 둘 사이에 계속 모순이 생기는 거예요. 이번엔 정유진을 패가망신으로 몰고 가지는 못하지만, 강지찬이 오면 강지현이 정유진에게 흠뻑 빠진 모습을 보고 또다시 의심병이 도지지 않겠어요?”전태연의 눈이 반짝였다.“맞네요! 서로 물고 뜯게 만드는 게 더 재밌죠!”고세연은 대답조차 하기 귀찮았다.강지찬에 의해 강홍식과 억지로 결혼하게 된 후, 그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경우의 수를 남겨두려고 했다.정유진은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떠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마당 밖에서 자동차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그들이 떠난 것 같아요.”정유진은 이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지현은 매우 허약하게 숨을 헐떡였다.“전태연과 한통속인 그 사람은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