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현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여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눈이 충혈되었다.원래 몸이 좋지 않은데 이렇게 괴롭힘당하니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고 당금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유진 씨, 그들과 얘기해서는 쓸모없어요. 얼른 절 묶어요.”정유진도 같이 다급해졌다.“다칠 거예요.”“전 괜찮아요. 당신이...”강지찬은 몸에서 퍼져 나오는 욕망을 힘겹게 억눌렀다. 그는 호흡마저 뜨겁게 불타는 것만 같았다.“빨리 절 묶어요. 제가 나중에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고 당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요.”정유진은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문을 세게 두드렸다.“전태연, 회사를 돌려줄게, 강지현은 내보내!”전태연이 웃으며 말했다.“정유진, 무슨 농담이에요. 그딴 회사 하나에 제가 당신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겠어요?”정유진은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생각 잘하세요. 당신이 지금 건드린 것은 강지찬 한 사람뿐만이 아니에요. 강지현도 건드렸어요. 당신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 이 일이 끝나면 강지찬과 강지현이 당신의 가문에게 어떻게 복수할지는 생각해 줬어요?”전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강지찬의 수단은 이미 맛보았지만, 강지현이라는 남자는 보기에는 순해 보이지만 소리 소문 없이 강지찬 몰래 성원이라는 대기업을 육성해 낸 사람이다. 쉬운 사람은 아닐 것이다.전태연은 은근히 화가 났다. 그래서 고세연이 숨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구나.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패를 내어주었다.정유지은 또 얘기를 꺼냈다.“저는 당신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확실히 좋은 의도가 아니라 당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태연 씨, 강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전씨 가문인데, 만약 전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건드린다면 여전히 예전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세요?”문밖의 전태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발걸음은 서서히 멀어져갔다.사실 전태연은 불려 간 것이었다. 고세연은 마음속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백번도 넘게 욕을 했다.
정유진은 밧줄을 든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십 년?강지현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제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영원히 모를 거예요!”강지현은 흥분하기 시작했다.“그해 학교 축제에서 당신과 함께 춤을 췄던 사람 아직도 기억해요? 저예요! 저라고요!”“그 짧았던 4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그날 지옥에서 저를 구해줬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해줬어요.”“그런데 당신은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한빈 그 쓰레기 새끼가 어떻게 당신과 사귈 자격이 있는 거예요?”“그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강지찬을 만나지도 않았을 거고, 그가 아니었다면 저는 당신과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빗겨나가지 않았겠죠.”정유진은 머릿속이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어렴풋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났다.“지현 씨 말은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절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네!”강지현은 갑자기 덮쳐왔다.“유진 씨, 제가 스스로 얼마나 자책하는지 알아요? 그때 왜 제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는지, 왜 가서 물어보지 않았는지, 왜 한빈에게서 당신을 빼앗지 않았는지?”강지현은 정유진을 너무 꼭 잡은 탓에 정유진의 어깨가 조금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그의 상태가 걱정되었다.“먼저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요...”“진정 못 해요!”강지현의 목소리가 커졌다.“왜 강지찬의 곁으로 돌아가고, 왜 강지찬이랑 자는 거예요? 당신 이혼하려던 거 아니었어요?”이 일은 정유진에게 정말 낯부끄러운 일들이었다.그녀는 강지현의 손을 떼려 했지만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절 밀어내지 마요, 유진 씨. 제발 절 밀어내지 마요!”강지현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그와 잤다는 건 상관없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잘 알아요. 유진 씨, 좋아해요. 제가 이혼 소송 도와드릴게요, 평생 잘해줄게요...”“놔줘요!”정유진은 깜짝 놀랐다. 목에 닿은 뜨거운 키스에 두피가 마비될 정도였다.강지현은 몸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키
강지현이 고통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정유진은 만감이 교차했다.유리 조각이 상처에 꽂혀있는 탓에 피가 덜 나긴 했지만, 조각을 빼면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정유진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먼저 말하지 마요.”그녀는 이런 상태의 강지현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이봐요, 강 대표님이 다쳤어요.”그녀는 문을 세게 두드렸다.“전태연, 정말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어?”전태연 쪽은 강지현이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정유진에게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당신이 저 둘 사이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고 했잖아요? 이제 어떡해요?”고세연은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났다. 정유진이 대체 뭐가 좋다고 남자들이 그녀에게 그렇게 충성인 걸까?“강지현이 정유진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냥 가야죠.”전태연은 어이가 없어서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네? 그냥 간다고요? 제가 갖은 수를 써서 사람을 잡아 왔는데, 지금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저희는 그냥 간다고요?”고세연은 경멸의 눈빛으로 전태연을 흘겨보았다.“의심병이라는 게 뭔지 알아요? 강지찬은 강지현과 정유진의 관계를 의심해서 둘 사이에 계속 모순이 생기는 거예요. 이번엔 정유진을 패가망신으로 몰고 가지는 못하지만, 강지찬이 오면 강지현이 정유진에게 흠뻑 빠진 모습을 보고 또다시 의심병이 도지지 않겠어요?”전태연의 눈이 반짝였다.“맞네요! 서로 물고 뜯게 만드는 게 더 재밌죠!”고세연은 대답조차 하기 귀찮았다.강지찬에 의해 강홍식과 억지로 결혼하게 된 후, 그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경우의 수를 남겨두려고 했다.정유진은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떠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마당 밖에서 자동차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그들이 떠난 것 같아요.”정유진은 이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지현은 매우 허약하게 숨을 헐떡였다.“전태연과 한통속인 그 사람은
문이 쾅 하고 열리자 강지찬이 먼저 들어와 정유진을 품에 꼭 껴안았다.이미 새벽이 되었다. 정명학이 정유진의 핸드폰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무려 5시간을 찾았다.이 5시간 내에 그들은 정유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정유진! 날 죽이고 싶으면 그냥 말해!”강지찬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녀의 목을 꽉 깨물어주고 싶었다.다른 사람들은 감히 들어오지 못했고 정유진은 아직도 강지현의 상처를 신경 쓰며 강지찬을 세게 밀어냈다.“먼저 날 놔줘요.”강지찬은 약간 화를 내며 그녀를 놓아주었고, 다시 한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다.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키키는 찾았어. 바로 밖에 있었어.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고.”강지찬은 말을 하면서도 화가 났다.“정유진, 넌 정말 생각이 있긴 해? 내가 프로젝트 주겠다고 할 때는 내가 널 해치려는 것처럼 기를 쓰고 거절하더니, 밖에서 어중이떠중이가 하는 말은 덥석 믿고. 나 화나게 하려고 작정했어?”정유진은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먼저 소리치지 마요, 여기 사람이 다쳤어요. 안 보여요?”강지찬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장님도 아닌데 어떻게 못 봤을 리가 있겠는가?그런데 정유진은 대체 무슨 태도지?그가 정유진을 걱정하는 게 보이지 않나?정유진은 밖에 있는 장형준 등 사람들에게 소리쳤다.“몇 명 들어와서 도와요.”키키가 가장 먼저 뛰어 들어왔다.그는 구타를 당해 얼굴에 멍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유진이 강지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왔다.강지현이 키가 커서 정유진이 부축하는 데 조금 힘이 들었다.강지찬은 장형준 등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었다.“다 죽은 사람이야? 와서 도울 줄 몰라?”덩치가 큰 경호원 두 명이 몰려와 강지현을 직접 차에 태웠다.“상처에 닿지 않게 조심해요.”정유진은 긴장하면서 따라 탔다.강지찬은 그녀를 흘끗 보고 장형준을 향해 소리쳤다.“곳곳이 둘러봐.”경호원들이 즉시 해산했다.
정유진은 강지찬의 차에 탔다.그녀는 강지찬이 분명히 비아냥거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차를 탄 지 꽤 지났는데도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게다가 강지현에 대해서 구시렁거리지도 않았다.정유진을 집으로 데려다준 후 강지찬은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물론 정유진이 그를 초대하지 않은 탓도 컸다.“오늘...”“오늘 내가 또 한 번 너를 구한 거야.”강지찬은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시선이 그녀의 목을 매섭게 쓸어내렸다.하얀 피부에 의심스러운 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 자국이 어떻게 남았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강지찬이 내뱉은 말은 전처럼 각박하지 않았지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양심도 없는 여자.”그의 차가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정유진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말 양심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그러나 그녀는 강지찬이 말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계속해서 극단의 상황이 발생해서야 그의 선행이 그녀에게 대했던 모진 순간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병 주고 약 주는 그런 양심은 그녀에게 없었다.집으로 들어서자 정명학과 이명자가 나왔다. 노부부는 그녀가 걱정되어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머리까지 하얘질 뻔했다.그녀가 무사한 것을 보자 노부부는 마음을 놓았다.이명자가 밖을 보고 물었다.“혹시... 강지찬 씨가 데려다준 거니?”“네, 그이가 다른 일도 있어서 먼저 갔어요.”정유진은 이명자를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와서는 미안해하면서 말했다.“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정명학은 뒤에서 얘기했다.“네 휴대폰이 연락이 안 돼서 바로 강지찬에게 연락했어. 그가 밤새 30분마다 우리한테 상황 보고도 해줬어.”정유진은 멈칫했다. 이 일은 그녀가 아예 모르고 있었다.이명자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지찬이 걔가... 마음은 착해.”정유진도 뭐라 하기 애매해서 대충 둘러댔다.“오늘 그이가 빨리 와서 다행이에요. 제대로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어요.”그 말을 듣고 노부부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차에 탄 강지찬의 표정은 차가웠다
강원훈은 야행성이라 주로 새벽이나 동이 터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아무도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강홍식은 곧바로 얼굴을 굳히고 고세연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어젯밤에 집에 없었어? 어디 갔었어?”언제인지 생각을 하던 그는 갑자기 식탁을 내리쳤다.“어제 이상하게 계속 친구 만나러 가라고 꼬시더라니. 날 밖으로 내몰기 위해서였군! 말해, 어떤 남자 만나러 간 거야!”많은 사람 앞에서 강홍식에게 혼이 나니 고세연은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고세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분명히 돌아올 때 조심했었고 경호원들 입단속도 잘 시켰는데 강원훈을 놓치다니.이런 젠장!마음속으로는 죽도록 싫었지만 고세연은 내색을 하지 않고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제가 남자가 어디 있어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전 정말 억울해요. 하인들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어제저녁 식사를 마치고 몸이 안 좋아서 병원으로 갔었어요.”강홍식은 집사를 힐끗 쳐다보았고 집사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끄덕였다.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의심이 많아지는 법이었다.“어디가 불편한데? 전화해서 의사를 부르면 되지 않나. 날도 어두워졌는데 혼자 병원으로 가고, 얼마나 위험해.”고세연은 배를 어루만지며 두려운 표정으로 강지찬을 흘끗 쳐다보았다.“저, 저는 배가 아파서 혹시 아이가 잘못될까 봐 걱정이 되어서... 병원에는 초음파가 있어서 검사하러 갔었어요. 의사가 태아가 조금 움직였다면서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라고 하셨는데, 병원 침대가 불편해서 배가 좀 나아지고 다시 돌아왔어요.”이 핑계는 아주 매끄럽게 짜여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당당히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병원 쪽도 말을 다 마쳐서 조사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뜻이었다.강홍식은 역시 그 말을 믿고 혹시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을 쏟아부었다.강지찬은 계속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온 강씨 집안이 그가 고세연 뱃속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정유진이 병원으로 도착할 때쯤, 병원에는 이미 강소원과 조예원이 있었다.강지현은 병원 침대에 기대있었고 조예원과 강소원은 각각 침대의 양측에 서있었다.조예원은 아마도 금방 도착했을 것이다. 옆에 있는 식탁에 도시락통이 쌓여있었다.입구에 서있던 정유진은 이명자가 손수 만들어준 국을 들고 다소 머쓱했다.“유진 씨 왔어요?”강지현이 웃으면서 인사했다.강소원도 이내 얼린 일어서서 정유진에게 인사를 했다.“언니, 오셨어요.”‘언니’라는 말에 정유진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와 강지찬은 부부 사이이고 강지현은 그녀를 형수님이라고 불러 마땅했다.그러나 구소원은 지금 아직 명분이 없었다. 진짜 여자친구도 아니었기에 올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강 부인이라 부르자니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 같아 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언니라는 호칭이 좀 친한 느낌이 들었다.“이건 저희 엄마가 끓여준 국이에요. 식사하셨어요?”정유진은 강지현을 보지 않고 구소원을 향해 물었다.구소원은 정유진의 손에 들려있던 보온병을 얼른 받아서 들며 웃었다.“저희는 아직 안 먹었는데 밥 시켰어요.”그녀의 말을 듣자 하니 강지현에게 조예원이 가져온 점심 식사를 먹게 할 생각이 없었다.“지현 씨, 먼저 국부터 드실래요?”구소원이 강지현에게 물었다.강지현은 머리를 끄덕였다.정유진은 다소 어색한 듯이 서있었는데 집으로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상태는 좀 어때요? 상처는 아직 아파요?” 강지현의 안색은 아직 조금 창백했지만 정신상태는 좋아 보였다.“전 괜찮아요. 겉만 조금 다친 것뿐이라 금방 나을 거예요. 앉아요.”구소원도 강지현에게 국을 떠주며 정유진에게 앉으라 손짓했다.정유진은 곁눈질하며 조예원을 쓱 보고는 말했다.“아니에요. 회사에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서 가봐야 해요. 몸조리 잘하세요.”강지현의 표정이 옅어졌다.그는 오전 10시쯤에 깼는데 일어나자마자 구소원만 보았고 정유진은 없었다.그런데 지금 병실의 분위기는 확실히 좀 어색해서 정유진을 보낼 수밖에 없
“대표님, 고 부인이 간 곳은 개인병원이고 확실이 내원 기록과 퇴원 기록이 있습니다.”장형준은 사진 더미를 건네며 말했다.“고 부인은 요즘 집을 나서면 보통 산모와 아기용품점과 요가 스튜디오에 갔으며 스케줄은 전부다 정상적인 것입니다.”강지찬은 그 사진을 받지 않았고 장형준은 손을 거두었다.“그 남자를 찾을 수 없다면 친자 확인 검사로 가.”강지찬이 말했다.장형준은 망설였다.“대표님, 혹시 그 아이가 정말 어르신의...”강지찬은 냉정하게 코웃음을 쳤다.“그럼 어때? 만약 아니라면 내가 손 쓸 필요도 없이 깨끗하게 끝나는 거지.”장형준은 이해했다. 만약 고세연 배 속의 아이가 강홍식의 아이가 아니라면 무사히 태어날 수나 있겠는가?어차피 강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 강지찬과도 상관이 없었다.만약 맞다면...“고 부인이 요즘 치밀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전태연 씨와 한통속인지 확인하려면 아무래도 전태연 씨 쪽부터 착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강지찬은 덤덤히 말했다.“증거는 필요 없어. 확실히 그 여자야. 최대한 빨리 친자 확인서를 받아와.”“네.”말이 끝나기 바쁘게 집사가 다급하게 찾아와 어르신과 고세연이 다투다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강홍식은 태안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세연은 허리를 부추기며 울먹거렸다.“지찬아, 네 아빠가 날 오해해. 자기가 날 믿지 않아서 화가 나서 쓰러진 거야. 난 정말 미안할 짓 한 적 없어. 내가 예전에 너한테만... 네 아빠와 결혼하고 나서는 그런 마음은 싹 다 버렸는데 지금 내가 외도를 한다고 의심을 하잖니... 나도 억울해...”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강홍식이 고혈압이 도졌다고 했다. 강지찬은 고세연의 헛소리를 듣기 귀찮아 침울한 얼굴로 병실을 나갔다.강홍식은 아직 깨지 않았다. 듣기로는 강지현도 태안으로 병원을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형으로서 병문안을 갈 생각이었다.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지찬은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마침 다들 병원에 있으니 친자 확인 진행해.”장형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