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있는 동안, 강지현은 정유진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의 집에 자주 드나들곤 했다. 그러면서 강지현도 정명학과 이명자에게서 요리를 좀 배웠다.하지만 딸인 정유진은 부모님의 요리 솜씨를 하나도 물려받지 못했다.한편,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정유진의 집에 온 조예원은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강지현이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정유진은 강지현의 옆에서 요리하는 것을 거들 뿐이었다.강지현이 가스 불을 끄며 말했다.“다 됐어요.”정유진이 접시를 건네자 강지현이 우선 먼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그녀의 입안에 넣어줬다.“간이 잘 됐는지 한번 먹어봐요.”사실 해외에 있을 때도 자주 있었던 일이라 정유진은 별생각 없이 강지현의 손을 잡고 한입 먹었다.그러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너무 맛있어요. 예원이도 싱겁게 먹는 편이라 이 정도면 딱 좋은 거 같아요. 지현 씨의 요리 솜씨가 우리 엄마를 거의 따라잡았어요.”강지현은 그녀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유진 씨의 어머니에게서 이렇게 오래 배웠는데 따라잡기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겠네요.”접시에 옮겨 담은 음식을 들고 뒤돌아선 정유진은 그제야 조예원이 이미 집에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조예원은 냉장고에 기대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깜짝이야! 환풍기를 켜놓는 바람에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었어. 깜짝 놀랐잖아.”정유진은 조예원에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와서 지현 씨의 요리 솜씨 좀 맛봐, 아직 못 먹어봤지?”조예원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지현 오빠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강지현은 허리에 두른 앞치마를 벗으며 조금 전보다는 살짝 옅어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 씨의 어머니 옆에서 요리 몇 개 좀 배웠을 뿐이에요. 조예원 씨, 앉으세요. 여기 주방 정리만 마치고 나갈게요.”주방에서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강지현의 모습은 마치 그가 이 집의 또 다른 주인인 것처럼 보였다.그런 그의 모습에 조예원은 마음이 좀 답답했다.밥상
정유진은 한 번도 조예원과 싸운 적이 없다.조예원도 방금 자기가 그렇게 말한 후 깜짝 놀랐는지 멍해졌다.하지만 이미 꺼낸 말, 회수할 수도 없다.조예원은 더 이상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자리에 얼어붙은 정유진은 한참 후에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 기분 나쁘게 헤어진 탓에 그 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은 만나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도 절친인 두 사장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누나, 조 대표와 싸웠어요?”키키와는 4년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늘 정유진을 따랐다. 정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의견이 좀 갈린 것뿐이야. 별일 아니야.”두 사람과 몇 년 동안 함께 지내온 키키는 두 사람의 사이가 보통의 친자매들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상대조차 하지 않는 거로 봐서 분명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조 대표님이 겉으로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은 여리다는 거 알잖아요. 조 대표님과 똑같이 행동하지 마세요.”정유진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정말 아무 일도 아니야. 나가서 일 봐.”강지아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기에 정유진은 오전 근무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조예원이 키키를 보며 물었다.“너의 누나가 어디 간대?”“누가 같이 점심 먹자고 했대요.”조예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회사 맞은편의 레스토랑에서 강지아가 한창 정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정유진이 자리에 앉자마자 강지아가 강지찬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새언니, 우리 오빠 진짜 너무해요!”메뉴판을 집어 든 정유진은 강지아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대부분 주문했다.조금 전까지 뾰로통한 얼굴로 강지찬의 흉을 보던 강지아는 이내 애교를 부렸다.“역시 우리 새언니밖에 없다니까. 내 입맛까지 다 기억해주고.”정유진은 그런 강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비행기 좀 그만 태워. 말해봐, 무슨 일 있는 거지?”강지아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강지아는 저녁에 퇴근한 정유진과 같이 그녀의 집까지 따라갔다. “새언니,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살아요?”강지아는 자기 집처럼 집안 아래 위층을 뛰어다녔다. 사실 그녀의 목적은 집안에 남자와 관련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강지아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강지찬과 정유진 사이에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유진은 그녀를 3층 객실로 안내했다.강지아는 2층에 묵고 싶었지만 그 방은 전에 조예원이 묵었던 곳이었고 또 방 안에 그녀의 물건이 남아 있었다.“목이 마르면 알아서 내려가 마셔. 나는 운동 좀 하고 올게.”정유진은 어느새 요가복으로 갈아입었다. 3층에는 운동할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었다.강지아는 그녀를 따라가 휴대전화로 몰래 영상을 찍었다.하얀색 요가복을 입고 있는 정유진의 몸매는 그녀의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촬영을 마친 강지아는 바로 그 영상을 강지찬에게 보냈다.이내 강지찬에게서 답장이 왔다.[새언니에게 간 거야? 그럼 다시 오지 마.]강지아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 강지찬에게 답장했다.[안 갈 거야, 안 간다고!]강지찬이 타고 있는 차는 이미 멈춰 섰지만 그는 내릴 생각이 없는 듯 정유진의 요가 영상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두 사람이 함께 있을 그때 당시, 정유진은 임신 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배가 불러왔다. 하지만 영상 속의 정유진은 유연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그 누구든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할 것이다.강지찬은 한참을 보고 난 후에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 밤, 그는 여자 파트너 안나와 함께 자선 파티에 참석하러 왔다. 한편 집에서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를 본 강지아는 어이가 없어 핸드폰을 옆으로 내던졌다.“강지찬, 정말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새언니가 오빠를 싫어하지!”때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정유진이 그녀의 핸드폰을 주워주다가 밝은 화면에 뜬 실시간 검색어를 보았다.정유진이
깊은 잠이 들었던 정유진은 갑자기 침대 옆 협탁에서 울린 휴대전화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정유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야.”익숙한 목소리에 정유진은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강지찬?”늦은 밤, 귓가에 들리는 강지찬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순간 잠이 확 깬 정유진은 휴대폰 위에 뜬 시간을 봤다. 거의 한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이 인간은 왜 한밤중에 전화하는 거지? “문 열어.”정유진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강지찬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정유진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문이요?”“지금 대문 밖이야.”그 말에 정유진은 깜짝 놀랐다. 졸음이 완전히 가신 정유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여기는 왜 왔어요? 지아 데리러 왔어요? 지아는 내일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정유진 앞에만 서면 늘 인내심을 잃는 강지찬은 바로 말했다.“나더러 계속 밖에서 기다리라고? 다친 곳 아직 다 안 나았어.”강지찬의 말에 정유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예쁜 여자와 저녁 술자리까지 같이 가놓고 인제 와서 연약한 척은?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러 온 거 아니면 이만 가요. 나도 자야 하니까.”그러자 강지찬은 바로 협박하기 시작했다.“안 나오면 장형준더러 여기에서 계속 경적을 울리라고 할 거야. 셋 셀게. 하나, 둘...”“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잠시만요. 정말 당신! 너무 못됐어!”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강지찬의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그는 여유롭게 차에서 내려 대문 앞에 섰다.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정유진은 대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긴 그림자를 발견했다.강지찬이 집안에 들어가자 정유진이 현관 앞에 그가 갈아신을 슬리퍼를 놓았다.새것처럼 보이는 남자 슬리퍼였지만 강지찬은 분명 누군가가 한 번 신었을 거라 의심했다.그는 슬리퍼를 쳐다보기만 할 뿐 갈아신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정유진은 그제야 그의 버릇
에이프릴 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바로 한 룸으로 안내되었다.매우 큰 룸 안에는 남녀노소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예원아, 대체 누구를 만나러 온 거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유진은 사람들 속에 있는 강지찬을 발견했다.다른 사람과 같이 앉는 것을 싫어하는 강지찬이었지만 오늘은 안나가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그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한창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정유진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정유진이 바로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조예원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유진아, 너와 이번 프로젝트, 둘 중 강지찬에게 어떤 게 더 중요한지 알고 싶다고 했잖아?”정유진은 의아한 얼굴로 조예원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그럼 알고 싶지 않은 거야?”정유진은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응, 알고 싶지 않아.”“연우를 위해서라면? 그래도 알고 싶지 않아?”딸 연우만 언급하면 정유진의 마음은 한없이 약해졌다. 지금까지 연우는 자기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정유진의 주위 사람들이 연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연우는 한 번도 자기 아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철이 많이 든 연우는 그녀 앞에서 아빠를 내놓으라며 떼쓰지도 않았다. “내가 연우를 두 배로 사랑해 줄 수 있어.”“네가 아빠 사랑까지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정유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은 조예원은 저 멀리 있는 강지찬을 가리키며 말했다.“너의 남편이고 아이 아빠야. 강지찬이 너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정말 알고 싶지 않아?”정유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예원은 그녀의 팔을 이끌고 강지찬 앞으로 갔다.갑자기 나타난 두 여자에 같이 떠들던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정유진을 보고 있는 강지찬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무표정이었다.“강 대표님, 이쪽에 계셨네요. 술 한 잔 따라 드리러 왔어요.”조예원의 말에 정유진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녀가 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은 이상 이런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
“강 대표님께 술을 권하는 태도가 그렇게 성의가 없어서 되겠어요? 일단 벌주 석 잔부터 마시고 얘기하시죠.”눈치 빠른 사람들은 강지찬이 정유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채고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그 사람들의 말에 강지찬은 가만히 있었다. 그 말들을 묵인한 것과 다름없었다.화가 울컥 치밀어 오른 정유진은 바로 잔 세 개를 갖고 와 술을 전부 따랐다.술을 따르는 게 뭐가 대수라고? “강 대표님, 제가 이 바닥의 상황을 잘 몰라서요. 벌주는 제가 마시겠습니다.”말을 마친 정유진은 바로 도수 높은 술 세 잔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그러고는 다시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강 대표님께도 한잔 드리지요.”주위 사람들은 정유진을 바라보는 강지찬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이때 안나가 옆에서 말했다.“강 대표님, 저기 어여쁜 여자가 술 한잔 따르겠다는데 받으셔야죠?”그제야 강지찬이 입을 열었다.“정유진 씨, 이 술은 제가 마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로 마시기를 바라나요?”가만히 있던 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강 대표님과 아는 사이였군요?”강지찬과 정유진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안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알고 말고요. 그것도 아주 잘 알죠.”사실 정유진은 강지찬이 마시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다. 친구 조예원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술잔을 든 것일 뿐이었으니까...강지찬은 차가운 말투로 한마디 했다.“정유진 씨, 술 한 잔으로 저와 남교 프로젝트를 바꾸려는 것은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네?”주위 사람들은 강지찬의 말에 깜짝 놀랐다.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나온 비즈니스 얘기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잠자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봤다.여전히 잔을 들고 있던 정유진은 강제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강 대표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강 대표님과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을 뿐,
정유진은 눈앞에 있는 조예원이 자기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정유진이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조예원도 살짝 당황한 듯했다.“별다른 뜻은 없어. 하지만 우리에게 이번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잖아.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강지찬 씨가 아직도 너를 못 잊고 있다는 거, 몰랐어?”정유진은 속상한 얼굴로 대답했다.“지금 나를 모욕하는 거야? 지난번에 이혼 합의서에 사인 받으려고 저 사람을 찾아갔을 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사인할 수 있대, 대신 자기와 자재. 예원아, 지금 일부러 나 모욕하려고 그러는 게 안 보여?”조예원은 정유진이 자기 말을 믿지 않자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강지찬같이 비즈니스에 빠삭한 사람이 너를 모욕하기 위해 몇조 원짜리 프로젝트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너에게 그런 요구를 한다고 생각해? 정유진, 왜 강지찬이 너에 대한 마음을 계속 피하려는 건데? 아니면, 너의 마음속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는 거야?”정유진은 다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조예원에게 물었다.“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잠시 가만히 있던 조예원은 표정이 점점 더 안 좋게 변했다.“어쨌든 남교 프로젝트는 우리가 꼭 따야 해. 네가 안 하면 나라도 직접 강지찬 씨를 만나서 얘기할 거야.”정유진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네가 지찬 씨를 만나서 무슨 얘기할 건데?”“네가 생각하고 있는 거. 이미 예상한 거 아니었어?”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조예원과 정유진의 우정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예담 스튜디오를 위해서, 그리고 강지현을 위해서 조예원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했다.“물론 강지찬 씨가 아직은 연우의 존재를 모르지만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자기 딸이 외국에 있다는 거 알면 뭐라고 할지 너무 궁금하네.”정유진은 가장 친한 친구가 이런 말을 서슴지 않게 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지금 연우로 나를 협박하는 거야? 예원아, 연우는 너의 수양딸이나 마찬가지야. 연우는 너를 엄마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정유진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천천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강지아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 “새언니, 다시는 언니와 오빠를 엮으려고 노력하지 않을게요.”정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아를 바라봤다. ‘이 계집애가 또 무슨 꿍꿍이인 거야?’강지아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정유진 앞에 다가오더니 손에 든 휴대전화를 그녀 앞에 내보이며 말했다.“자선 행사 날 밤, 지찬 오빠가 안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와도 같이 있었어요.”사진은 먼 곳에서 찍어 흐릿하고 어두웠지만 정유진은 한눈에 강지찬의 맞은편에 서 있는 여자가 조예원임을 알아챘다.조예원이 사적으로 강지찬을 만났다고?정유진은 아침밥도 먹지 않고 휴대폰과 가방을 들고 곧장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조예원의 사무실로 향한 정유진은 그녀의 책상 위에 바로 강지찬과 찍힌 사진 기사가 있는 휴대폰을 놓았다.사실 조예원도 그날 강지찬을 찾아간 것이 찍혔을 줄 몰랐다.하지만 찍힌다고 해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정유진은 차가운 얼굴로 조예원을 보며 말했다.“나에게 할 말이 없어?”조예원은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무슨 말?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강지찬 씨가 너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떠보기 위해 찾아간 거야.”정유진은 그날 밤 강지찬이 한밤중에 갑자기 집에 찾아와 소란 피웠던 것이 생각났다.사실 그날 정유진은 강지찬이 술 마시고 술주정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제 보니 두 사람은 이미 그 전에 따로 얘기가 오갔던 것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정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도대체 너는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조예원, 너의 지금 행동이 그때의 한빈과 뭐가 다른데?”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또 한 번 배신당한 정유진은 그저 자기 인생이 우습다고 생각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진짜로 단지 남교 프로젝트 때문이야?”조예원은 진지한 얼굴로 정유진을 빤히 쳐다봤다.정유진의 미모는 정말 이루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