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정유진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천천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니 강지아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 “새언니, 다시는 언니와 오빠를 엮으려고 노력하지 않을게요.”정유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아를 바라봤다. ‘이 계집애가 또 무슨 꿍꿍이인 거야?’강지아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정유진 앞에 다가오더니 손에 든 휴대전화를 그녀 앞에 내보이며 말했다.“자선 행사 날 밤, 지찬 오빠가 안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와도 같이 있었어요.”사진은 먼 곳에서 찍어 흐릿하고 어두웠지만 정유진은 한눈에 강지찬의 맞은편에 서 있는 여자가 조예원임을 알아챘다.조예원이 사적으로 강지찬을 만났다고?정유진은 아침밥도 먹지 않고 휴대폰과 가방을 들고 곧장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조예원의 사무실로 향한 정유진은 그녀의 책상 위에 바로 강지찬과 찍힌 사진 기사가 있는 휴대폰을 놓았다.사실 조예원도 그날 강지찬을 찾아간 것이 찍혔을 줄 몰랐다.하지만 찍힌다고 해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정유진은 차가운 얼굴로 조예원을 보며 말했다.“나에게 할 말이 없어?”조예원은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무슨 말?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강지찬 씨가 너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떠보기 위해 찾아간 거야.”정유진은 그날 밤 강지찬이 한밤중에 갑자기 집에 찾아와 소란 피웠던 것이 생각났다.사실 그날 정유진은 강지찬이 술 마시고 술주정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제 보니 두 사람은 이미 그 전에 따로 얘기가 오갔던 것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정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도대체 너는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조예원, 너의 지금 행동이 그때의 한빈과 뭐가 다른데?”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또 한 번 배신당한 정유진은 그저 자기 인생이 우습다고 생각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진짜로 단지 남교 프로젝트 때문이야?”조예원은 진지한 얼굴로 정유진을 빤히 쳐다봤다.정유진의 미모는 정말 이루
집에 도착한 정유진은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나오지 않았다.강지아가 그녀에게 배달음식을 시켜줬지만 정유진은 한 입도 먹지 않았다.오후가 되어도 방안에 아무런 기척이 없자 덜컥 겁이 난 강지아는 서둘러 강지찬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지찬은 평소 회의 중일 때 다른 사람의 전화는 절대 안 받는다. 하지만 강지아가 건 전화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꼭 받았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불만 가득한 강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다 오빠 탓이야! 오빠 때문에 새언니가 화가 나서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잖아.”강지찬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오빠가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을 보자마자 새언니가 오전에 외출하고 오더니 지금은 방에 틀어박혀서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있단 말이야. 방안에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오빠, 빨리 와. 새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겁난단 말이야.”순간 강지찬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이사회에 참석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뒤로한 채 회의실을 나왔다.정유진 집에 도착한 후, 강지아가 강지찬에게 문을 열어줬다.강지아는 겁에 질린 듯, 강지찬을 보자마자 바로 그를 붙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은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하지만 강지찬은 자기가 다른 여자와 사진 찍힌 것 때문에 정유진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정유진에게 조금이라도 그런 감정이 남아 있었더라면 두 사람은 절대 지금의 이런 사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무슨 사진을 보여준 건데? 봐봐.”강지아는 바로 아침의 그 사진을 찾아냈다.처음에 강지찬은 안나와 찍힌 사진인 줄 알았다. 파파라치가 조예원과 같이 서 있는 사진을 찍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다행히 조예원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별다른 이슈룰 일으키지 않았다.사진을 본 강지찬은 그제야 정유진이 왜 온종일 밥도 안 먹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지 이해가 됐다.그는 바로 정유진의 방문을 두드
강지찬은 사실 이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오면 먼저 주도하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 그녀에게 키스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녀에게 취해 있었다. 정유진 이 여자는 마치 마약 같았다. 강지찬은 진작 이 마약에 깊이 취해 있었다.“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건데?”빨간 셔츠를 벗긴 강지찬은 그녀의 하얀 어깨를 물어 이빨 자국을 남겼다.그동안 정유진에 대한 원망까지 모두 담아서 힘껏...살짝 아파 보였지만 다행히 피부는 벗겨지지 않았다.꾸물거리기 싫었던 정유진은 바로 손을 올려 그의 바지 지퍼를 열었다.“짜고 치는 고스톱에 놀아나는 내가 굳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강지찬에게 밀쳐 침대에 눕혀진 정유진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약속 지켜요, 남교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한 거.”그러자 강지찬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나와 이혼하겠다고 한 건?”정유진은 이 순간 자신이 마치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한 번 더 자야 한다면 기꺼이 맞춰 줄게요.”순간 강지찬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정유진의 손목을 꽉 잡고 있는 강지찬은 조금 전 불타오르던 욕망마저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정유진, 나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왜 항상 당신을 원망하게 만드는 건데?”그 말에 정유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서로 피차일반이잖아요. 뭐해요? 빨리 시작해요.”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강지찬은 정유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복수하면 통쾌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왜 이렇게 서둘러? 안 본 사이에 더 능숙해졌네? 당신은 이제 창피한 것도 없나 봐?”강지찬이 계속할 생각이 없는 듯하자 정유진은 살짝 당황스러웠다.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조예원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그러다가 연우 일이 강지찬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정유진은 비아냥거리는 강지찬의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그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뭐가 창피한데요? 우리 아직 이혼 안 했어요.”
정유진은 아무 말 없이 밥만 묵묵히 먹었다. 옆에 있는 강지아는 겁에 질려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강지아는 식탁까지 치우며 부지런히 움직였다.물 한 잔을 손에 들고 있는 정유진은 창가에 서서 넋이 나간 듯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강지아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새언니, 왜 그래요?”강지아를 향해 돌아선 정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너 이제 짐 싸. 나 요즘 혼자 있고 싶어.”정유진의 얼굴은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해 보였다. 강지아는 그런 그녀를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 정유진의 말을 안 들을 수 없었던 강지아는 그저 주섬주섬 짐을 싼 후 현관 앞에 섰다.“새언니, 기분 좀 풀어요. 저 이제 갈게요, 집에 도착해서 전화할게요.”강지아는 정유진이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정유진 또한 강지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부모님과 딸을 남겨두고 어떻게 쉽게 떠날 수 있겠는가? 절친 한 명을 잃었을 뿐이다. 절대 죽을 수도 죽을 필요도 없다. 강지아는 약속대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에게 전화했다.정유진은 자기가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가 이내 끊었다.온종일 잔 정유진이 저녁때쯤 일어났을 때 조예원이 집으로 찾아왔다.정유진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조예원은 알아서 문을 열고 집안까지 들어왔다.그러다가 때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는 정유진과 마주쳤다.“저녁 좀 사 왔어. 조금이라도 먹어.”조예원이 가져온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았다.그녀는 지금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리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조예원이 먼저 정유진의 시선을 피했다. “일단 밥부터 먹어. 일은 내일 회사에 도착하고 다시 얘기해.”조예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한편, 정유진은 그녀가 가져온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직접 주방에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끓여 먹었다
K 그룹 내부의 이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지분을 갖고 있는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렇다고 강지찬에게 뭐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최의현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여러분,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저 양로원 하나일 뿐입니다. 저희가 양로원에 가서 지낼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그러자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이 책상을 ‘탁’치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지찬 씨, K그룹 회장으로서 이사회에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강지찬은 입을 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이때 최의현이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한마디 했다.“급해 하지 마시라니까요. 강 대표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프로젝트로 여러분들께 보답하면 되지 않습니까?”이때 전태연의 아버지 전수호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강 대표님, 혹시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그러자 강지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들은 소문에 의하면 시청이 북쪽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순간 회의실 모니터에 서울의 지도가 나타났다. 임우연은 빨간색으로 북쪽 어딘가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사람들은 남교 프로젝트의 시작을 기점으로 정부에서 분명 동서로 횡단해 있던 서울을 이제 남쪽으로 개발하기 위해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했다.그러다 보니 남쪽의 땅값은 진작 엄청나게 폭등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강지찬의 입에서 시청이 북쪽으로 옮겨질 거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전수호는 유난히 더 흥분한 것 같았다. 이것은 사업가로서 돈 냄새를 맡아 기분이 한껏 상기된 것도 있었지만 미래의 사위가 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들어 도저히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 대표, 진짜 믿을 만한 소식인가요?”그러자 최의현이 대답했다.“당연히 믿을만한 정보입니다. 서울의 동서 양쪽은 이미 충분히 핫한 지역입니다. 남쪽은 지금 양로원 등 노후를 책임질 기지로 개발이 되
강지찬은 눈앞의 이혼 합의서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정유진이 앉아 있었다.넥라인에 있는 단추를 풀자 그녀의 하얀 목에 남겨진 키스 마크가 그대로 드러났다. 강지찬이 눈썹을 찡그리자 정유진이 물었다.“지금 시간 있어요? 아니면 밥 먹고 호텔로 갈까요?”순간 강지찬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여자는 이혼을 위해서라면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말이다.“정유진, 이리 천박한 사람이었어?”그런 말 따위에 더 이상 흔들리고 상처받을 정유진이 아니었다. 그녀는 심지어 미소까지 살짝 지으며 말했다.“한 번 자나 여러 번 자나 별 차이가 있을까요?”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의 눈에는 그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나와 자는 여자일 뿐이지 않겠는가? 이때 사무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경호원을 대동하고 들어온 전태연의 모습이 보였다. “강 대표님, 우리 엄마가 닭고기 수프 좀 끓였는데... 당신이 왜 여기 있어?”정유진을 발견한 전태연은 순간 멈칫했다. 그러자 정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강지찬 씨에게 이혼 도장 받으러 왔어요. 전태연 씨, 때마침 잘 왔네요. 강 대표님 좀 설득해 주시죠? 전태연 씨에게 유부남이나 만난다는 꼬리표를 붙일 수 없잖아요. 저는 얼마든지 강씨 집안 사모님 자리를 양보할 수 있으니 전태연 씨가 강지찬 씨 좀 설득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책상 위에 있는 이혼 합의서를 본 전태연은 정유진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 알았다. 전태연은 경호원에게 수프가 담긴 보온병을 내려놓으라고 한 다음 일단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경호원이 나간 후, 그녀는 강지찬의 옆에 다가와 말했다.“강 대표님, 제가 사적인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발목이 잡혀 대표님 인생을 허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말을 마친 전태연은 고개를 든 순간, 정유진의 목에 있는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 그녀는 정유진을 가리키며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유진은 오늘 취할 작정이었다. 취하기 전에는 어디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작정하고 취하려면 정신이 오히려 더 말짱해질 때가 있다. 정유진 또한 두 병이나 마셨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의식이 또렷했다. 그녀는 이내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중의 한 명이 강지찬의 사촌 동생인 경은우라는 것을 알아챘다.“형수님, 왜 혼자 술을 드시고 계세요?”정유진이 또다시 술병을 들자 경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에서 술을 빼앗았다.경은우의 직업이 머릿속에 떠오른 정유진은 그를 보며 물었다.“이혼소송 잘하는 변호사 좀 소개해 주실래요?”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간이 큰 사람이어야 할 거예요. 경은우 씨 형과 소송하려면.”그녀의 말에 경은우는 살짝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그건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그러자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한규진이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뭐가 어려워? 이혼소송이잖아. 내가 할게.”경은우는 어이가 없어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우리 형의 사적인 일이야. 우리 엄마 아빠도 감히 뭐라고 못하는데 참견하지 마.”하지만 한규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유진을 보며 말했다.“강지찬 씨와 진짜 이혼할 겁니까?”“네, 진짜로 이혼할 거예요.”정유진은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한규진을 쳐다보며 말했다.“그쪽도 변호사인가요?”그녀의 물음에 한규진이 대답했다.“네, 저도 변호사예요. 도와드릴 수는 있지만 제가 좀 비싸요.”한규진의 진지한 얼굴에 경은우는 어이가 없었다.“너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나는 우리 형의 손에 죽고 싶지 않으니까.”말을 마친 경은우는 얼른 강지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규진이 형수님의 이혼소송을 도와주겠대. 형이 와서 좀 어떻게 해봐.]한참 후, 경은우와 한규진도 술을 끊임없이 마시는 정유진을 막지 못했다. 강지현이 술집에 도착했을 때, 정유진은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지현이 형, 혹시 형수님... 데리러 온 거야?” 경은우는 그를 반겨
강지현은 이불을 잡아당겨 정유진에게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방에 가서 샤워를 마쳤을 때 문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도련님, 큰 도련님이 밖에 계십니다.”순간 강지현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강지찬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집사더러 가서 쉬라고 한 후 계단을 내려갔다.대문 밖에 서 있는 강지찬의 안색은 강지현보다 더 어두웠다.그는 정유진의 집에 찾아갔다가 그녀가 없는 것을 보고 여기에 왔던 것이다. 강지찬 또한 강지현이 정유진을 집에 바래다주지 않고 상록수 별장으로 데려왔을 줄은 몰랐다.이제는 아예 티를 내고 다니겠다는 것인가?이때 옆에서 장형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작은 도련님께서 나오셨습니다.”가운을 입고 나온 강지현은 금방 샤워를 마쳐 온몸으로 개운하고 산뜻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강지현의 모습을 본 강지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정유진은?”강지현은 강지찬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유진 씨는 이미 잠들었어.”가운을 입고 나온 강지현이 나와서 하는 말이 정유진이 잠들었다니! 이 말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두 남자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강지찬이 굵직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문 열어.”강지현이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늦었어. 형도 이만 돌아가.”강지현의 행동은 강지찬과 끝까지 맞서 보겠다는 것이 틀림없었다.강지찬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말했다.“강지현! 내가 이혼하지 않은 한, 정유진은 나 강지찬의 아내야!”정유진의 목에 난 키스 마크가 생각난 강지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래서 뭐? 두 사람은 원래부터 아무 감정이 없었잖아. 그리고 유진 씨의 마음에도 더 이상 형이 없어.”“그럼 너는 있어?”강지찬이 되묻는 물음에 강지현은 피식 웃었다.“내가 지금 유진 씨를 깨운다고 쳐. 그럼 유진 씨가 우리 집에 남으려 할까, 아니면 형과 같이 가려고 할까?”강지찬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