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이 돌아간 후 조예원은 그 안에서 한동안 즐기다가 자리를 떠났다.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는 그 세 명의 여자들 말고는 조예원의 이런 성격은 반에서 꽤 인기가 많다.그녀는 끝까지 그들과 함께했고 결국 마지막에 취한 사람은 강지현이었다.서정호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우리가 술을 별로 권하지도 않았어. 강 선배도 얼마 안 마셨는데 이렇게 취하네...”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강지현은 가까스로 조예원의 차에 타자 강지현은 친구들에게 한마디 했다.“강 선생님이 몸이 안 좋아서 평소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것 같아.”서정호는 조예원을 보며 물었다.“예원아, 내가 도와줄까?”조예원은 강지현의 차 열쇠를 대리운전 기사에게 주었고 자신의 차 열쇠도 다른 대리운전 기사에게 주며 서정호에게 말했다.“괜찮아, 강 선생도 우리 스튜디오 고객이야. 내가 바래다주면 돼.”이번에도 그녀는 서정호를 거절했다. 서정호는 멋쩍은 듯 허허 웃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오늘은 강 대표가 한턱낸 거니까 네가 우리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 전해줘. 나중에 또 시간이 나면 다시 모이자.”조예원은 다시 모이자는 제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강지현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갔고 두 명의 대리운전기사가 그녀를 도와 침대 위로 눕혔다.대리비용을 건네고 기사들을 보낸 조예원은 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용기를 내어 침실로 들어갔다.강지현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조예원은 그를 도와 신발과 코트를 벗겼다.그의 셔츠 단추에 손을 댄 조예원은 순간 망설여졌다.강지현은 워낙 마른 체형인 데다가 키까지 커서 정말 긴 막대기 같았다. 만약 이 남자와 자버리면...여기까지 생각한 조예원은 다시 손을 움츠렸고 채 끝내 셔츠에 손을 대지 않고 이불을 잡아당겨 그에게 덮어줬다.그녀는 정유진이 전에 살던 방에 들어가서 잤다.다음날 일어났을 때 강지현은 이미 떠났다.문에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여져 있었는데 그 위에 네 글자가 쓰여 있었
회의가 끝난 후 강지현은 강지찬의 사무실로 갔다.강지찬은 그의 손에 든 서류를 힐끗 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강지현은 서류를 펼쳐 강지찬에게 내밀며 말했다.“이 돈은 결제할 수 없을 것 같아요.”강지찬이 살펴보니 서류에 빨간 펜으로 체크된 항목이 있었고 그것은 강원훈이 청구한 업무비용이었다.강지현이 알고 있는 계좌 리스트는 이미 각급 품의를 거쳤고 재무와 업무를 총괄하는 최의현도 모두 서명을 한 상태였다.“강 부장 의견은 뭔데?”강지찬이 물었다.사실 이 리스트에 있는 돈은 적은 편이 아니었다. 4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회사에 취직했지만 일을 안 하고 아무런 실권이 없는 강원훈이 이런 비용을 청구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아빠 오늘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청구한 업무비용이 프로젝트 매니저나 대표님보다 더 많아요. 지난달에는 3천6백만 원, 이번 달에는 5천 6백만 원이에요. 저는 이게 너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강지찬은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그럼 왜 지난달에는 말하지 않았어?”“지난달에 재무팀 일을 인수인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최 부사장 서명이 이미 있어서 별 생각하지 않았고요.”강지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인펜을 가져다 강원훈이 요청한 업무비용에 칸을 긋고는 다시 서류를 강지현에게 던졌다.“더 할 일 있어?”강지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에게 물었다.“형, 유진 씨와 올해 만난 거예요?”유진 씨, 유진 씨, 약혼자보다 더 다정하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꽤 귀에 거슬렸다.강지찬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의 형수님이야.”두 사람은 몇 초 동안 서로 눈을 마주쳤고 잠시 후 강지현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가지고 대표실을 나갔다.최의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에 강지현이 나오는 바람에 두 사람이 바로 마주치게 되었다.“하하, 강 부장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강지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냥 가버렸다.최의
장형준은 이내 동창회 날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확실한 것은 그날 정유진 씨와 둘째 도련님이 같은 파티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마주쳤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들 가면을 쓰거나 화장을 해서 만나봤자 얼굴도 몰랐을 테고 누군지는 더더욱 몰랐을 겁니다.”강지찬은 강지현의 표정을 떠올리며 말했다.“서울 대학교 가면무도회, 대체 뭐 하는 거야? 춤추는 거야?”그의 물음에 장형준이 대답했다.“정유진 씨가 그때 학교 퀸카여서 개교기념일에 공연했습니다. 저녁에 있는 가면무도회에서도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참, 대표님. 가면무도회가 의외로 재미있는 구석도 있더라고요. 조명이 무작위로 파트너를 선택하고 같은 색의 조명이 비친 사람이 같이 춤을 춰야 한대요.”순간 강지찬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장형준은 강지찬의 기색을 살피며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그런 우연이?’ 강지찬은 진짜로 그 우연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 강지현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정유진은 강지현에게 확실히 임팩트를 준 것은 분명해 보였다.다만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몇 년 후에 다시 만났을 때 강지현이 정유진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그리고 지난 동창회에서 강지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게 틀림없었고 그제야 그는 정유진이 그해 개교기념일 가면무도회에서 만났던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원래부터 눈썰미가 좋은 강지찬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참, 대표님. 어르신께서 본가에 다녀오시라고 하셨습니다.”순간 강지찬은 얼굴을 찌푸렸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 강씨 집안 식구들이 고향에 가서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니 4시가 다 되어갔다.강지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 들고 대표이사실을 나오며 말했다.“유진 씨에게 가.”장형준은 가는 이유에 대해 감히 더 묻지 못했다.한창 디자인에 몰입하고 있던 정유진은 강지찬이 오는 것을 보고 컴
외출 한 번에 정유진은 미혼에서 기혼으로 변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그저 어이없게만 느껴졌다.하지만 강지찬은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결혼식도 성대히 치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솔직히 결혼식이니 뭐니 정유진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지찬이 오늘 갑자기 혼인신고서를 한 것에 많이 놀랐다. 어떤 집에서는 애들은 여러 명 낳고도 혼인 신고를 안 하고 산다는데 자기는...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런 상황이 너무 의외라 그녀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또 어디 가요?”차가 한참을 달려서야 그녀는 지금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강지찬은 그녀의 손을 꾹꾹 주무르며 말했다.“이제 봤어요? 그러다 내가 유진 씨 납치라도 해서 밖에 내다 팔면 어쩌려고.”그 말에 정유진이 대답했다.“파세요. 나중에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K그룹 대표이사가 아내 팔았다고 나오게.”강지찬은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한마디 했다.“굿 아이디어. 그 생각 계속 유지하고요. 유진 씨는 강지찬의 마누라라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돼요.”“지찬 씨 마누라를 뺏으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네요.”그때 익숙한 길인 것을 발견한 정유진이 물었다.“본가로 가는 거예요?”“역시 내 아내는 똑똑하다니까.”이틀 뒤에 곧 제사를 지낼거라 장남인 강지찬은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그래서 그가 급하게 혼인 신고를 한 목적이 자기를 정정당당하게 그의 본가에 데려가려고? 여기까지 생각한 정유진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정유진은 이 남자가 항상 자기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그녀에게 난처한 일이 없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쩌면 사랑받는 느낌이 아닐까?누군가가 당신의 근심을 덜어주고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묵묵히 해준다정유진은 7년 동안 연애를 했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것도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었다.강지찬이 저녁에 본가로 갈 거라고 미리 본가에 연락하는 바람에 강씨 집안 사람들은 저녁을 같이 먹기
사실 아무도 강지찬이 정유진을 데리고 혼인신고서를 하고 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 류선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강지찬에게 굽신거리며 말했다.“역시 지찬이는 자기주장이 확고한 아이야. 하고 싶은 건 확실하게 하고, 집안 어른들 걱정도 안 끼치고.”이 말은 사실 강홍식이라는 아빠가 그저 이 집안에서는 장식품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들이 그를 전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그에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강홍식은 한참 만에야 가까스로 화를 누그러뜨렸다.곧 제사를 지내야 했고 어쨌든 이 일은 강지찬이 해야 했기에 강홍식은 최대한 참을 수밖에 없었다.만약 지금 싸우다가 강지찬이 화가 나 가버리면 제사에 장손주가 없는 게 되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이 발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강지찬 대신 강지현을 내세울 수도 없지 않은가?일 년에 몇 번 없는 명절, 간만에 식구들이 한곳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가문의 큰일이다. 이것은 반드시 강씨 가문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주관해서 해야 했다. 늘 어리석은 강홍식이었지만 유독 이 일에서만은 집착이 심했다.어릴 때부터 강홍식이 아버지를 따라 여러 번 제사를 지냈고 그대로 물려받아 직접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강홍식이 강지찬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라 할 수 있으니 그래서 어쩌면 더 특별히 중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다들 앉아서 식사하세요.”강홍식이 손짓을 하자 하나둘씩 테이블에 앉기 시작했다.강홍식이 제일 센터에 앉고 한쪽에는 남자들이, 다른 한쪽에는 여자들이 앉았다.집안 규정에 따라 남자 쪽은 강홍택, 강지찬, 강지현 순으로 앉았고 여자 쪽은 류선, 고세연 순이었다. 류선은 일부러 고세연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는 척 말했다.“세연아, 요즘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요즘 웃는 얼굴도 통 못 본 것 같아.”그러고는 고세연의 팔을 끌어 당기며 빨리 앉으라고 했다.그때 강지찬이 한마디 했다.“잠깐.”류선과 고세연이 같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
지금의 강씨 집안의 모든 권력은 강지찬이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이 집안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고세연은 옆에 멍하니 선 채 주먹만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강지찬 앞에 서 있었지만 강지찬은 마치 그녀가 안 보이는 듯했다. 사실 강지찬의 눈에는 오직 정유진만 보였다.결국 보다 못한 강홍식이 한마디 했다.“세연아, 앉아서 밥 먹어.”고세연은 아무 말없이 정유진 옆에 앉았다.한참후 강원훈이 뒤늦게 들어왔다.강씨 집안의 혼외자로서 그는 자기가 어디에 앉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늦어서 죄송합니다.”그는 천천히 걸어와 강지현 옆에 앉았고 잠이 덜 깬 듯 하품을 하기도 했다.입을 벌려 하품하는 중에 그는 순간 눈에 띈 정유진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어머, 조카며느리가 왔네?”정유진은 굳이 누가 가르칠 필요 없이 알아서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작은 아버님, 안녕하세요.”이 집에서 그녀는 강홍식과 강원훈을 제외한 둘째 집 식구들에게 따로 호칭을 부르지 않았다.강홍택과 류선도 그걸 눈치챘는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한편 강원훈은 그런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찬이가 왜 왔나 했더니 조카며느리를 데리고 왔네. 환영해, 자주 와.”이 말에 강홍식도 그리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집안 하인들이 하나둘씩 음식을 내오자 강홍식이 제일 먼저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다들 들어. 먹으면서 제사 얘기나 하지.”원래부터 식구가 많지 않은 강씨 집안인 데다가 하나둘씩 다른 속셈과 꿍꿍이가 있다 보니 강지찬을 제외하고 모두 조용히 고개 숙여 밥만 먹었다. “여보, 그건 먹으면 안 돼요, 매워요. 여보 이거 먹어봐요, 영양가 있는 거라 태아에 좋아요. 여보, 이 닭국 시원해, 한 그릇 마셔봐요.”강지찬이 정유진의 앞에 놓인 접시에 음식을 집으려고 몸을 내밀었다. 옆에 있던 다른 식구들은 그저 이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정유진은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지찬 씨나
방에 들어서자 강지찬은 정유진을 벽에 밀치고 한참 동안 거칠게 키스를 했다.“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강지현과 식탁에서 눈짓을 주고받는 거예요?”정유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계속 나에게 눈짓했던 건 지찬 씨 아니에요?”강지찬은 눈에 힘껏 힘을 주더니 정유진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녀의 배를 만졌다. “여보, 아기가 다 컸어요.”정유진은 못 알아듣는 척하며 말했다.“음, 시누이가 그래도 조심하라고 했어요.”“오늘 우리 첫날밤이에요.”강지찬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조심할게요.”정유진이 손을 빼려고 하자 강지찬은 갑자기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유진은 저도 모르게 강지찬의 목을 꼭 껴안았다. 그러자 강지찬은 이내 그녀에게 입술을 갖다 댔다. 그동안 두 사람은 스킨십을 계속했지만 아이 때문에 강지찬이 계속 참고 있었다. 강지찬은 그녀에게 뜨겁게 키스를 하며 계속 ‘여보’라고 불러 정유진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오래 참아왔던 강지찬은 오늘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잠시 후 얼굴에 땀 범벅이 된 강지찬은 그래도 아쉬웠는지 한참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기 낳고 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강지찬은 정유진의 귓불을 깨물며 한마디 덧붙였다.“각오해요.”정유진은 그의 허리를 꼬집으려 했지만 손바닥에 힘이 다 풀려 힘주어 꼬집지 못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 시트를 간 후 다시 이불 속에 누운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방안의 구조를 눈여겨 볼 수 있었다.강씨 본가의 인테리어는 매우 전통적이며 온 집안의 가구를 봐도 확실히 ‘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샤워하고 나온 강지찬이 이불을 들추자 조금 전 강지찬의 셔츠로 갈아입은 그녀의 길고 하얀 다리가 눈에 띄었다.그는 하마터면 또 한 번 충동을 이기지 못 할 뻔했다.강지찬은 정유진을 꼭 끌어안더니 다시 그녀의 목에 거칠게 키스했다.“지금 무슨 생각 해요?”정유진은 앤티크 선반에 있는 앨범들을 가리
강홍식과 함께 바둑을 두고 나온 강지현은 마당에서 2층의 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고세연을 발견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올려다 보니 그곳은 바로 강지찬의 침실 창문이었다. 그 방은 아직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시간이 늦었으니 일찍 쉬세요.”강지현의 한마디에 고세연은 순간 눈물을 뚝뚝 흘렸다.“왜 나는 안 되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강지현도 그 창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시간이 길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고세연은 내키지 않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그럼 저 이제 어떡하죠?”강지현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포기해요.”하지만 고세연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혼인 신고했다고 해도 그게 뭔 상관인가?결혼이 있으면 이혼도 있는 거고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거니까!“죽기 전에는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고세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낯선 번호를 보고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세연 씨, 저예요...”흰색 승용차 한 대가 강씨 본가를 떠났고 30분 후, 집에 있던 강지찬은 장형준의 메시지를 받았다.「대표님, 김주환이 나타났어요.」순간 어리둥절해진 강지찬은 몇 초간 고민해서야 김주환이 누군지 떠올렸다.하마터면 지아를 추행할 뻔해 그에게 해고당한 경호원이었다.이 일은 강지찬이 경찰에게 부탁하기 미안해 장형준 더러 사람을 보내 김주환을 감시하게 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자식의 소식을 듣게 될 줄 몰랐다.정유진이 품에 안겨 잠든 것을 본 강지찬은 남은 한 손으로 장형준에게 답장했다. 그리고 곧 제사 지낼 준비를 해야 했기에 강지찬은 다음날 아예 하루 휴가를 냈다.예전에 제사 관련된 일은 대부분 류선이 담당했고 강지찬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달랐다. 강지찬은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