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씨 본가강홍식은 웃는 얼굴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예쁘구나, 우리 세연이는 참 예뻐.”고세연이 입은 빨간색 드레스는 그녀의 굴곡이 뚜렷한 몸매를 완벽하게 받쳐 주었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매혹했다.이 드레스는 복고풍이었으나 아주 단정하고 기품이 넘쳤다.강홍식은 그녀를 보니 자신의 첫사랑이 떠올랐다.예전에 그는 첫사랑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남자가 여자의 손에 결혼반지를 끼울 때 그녀의 눈은 줄곧 강홍식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후 고세연의 부모님은 서울을 떠났고, 십여 년이 지난 후 다시 들은 첫사랑의 소식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고세연은 다가와 강홍식의 팔을 잡았다.“아저씨, 그럼, 약혼식 날에 이 옷을 입을 까요?”강홍식은 그제야 추억에서 빠져나왔다.“예, 예쁘구나.”고세연은 한창 제일 예쁠 나이고 엄마보다 미모가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애교까지 넘치니 그녀가 뭐라 하던 강홍식은 좋다는 말뿐이었다.약혼식에 필요한 드레스와 액세서리 등은 모두 강홍식이 준비한 것이었다. 쏟아부은 돈은 두 번째 부인이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고세연은 드레스 피팅을 마치고 액세서리가 담긴 상자를 하나 골라 두 번째 부인의 집으로 갔다.류선은 상자를 열어보고 기쁨에 겨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너도 참, 뭘 이런 걸 주고 그래. 너와 지찬이가 결혼하면 우리는 한 가족이잖니, 지현이는 몸이 안 좋으니까, 네가 강 씨 가문의 여주인이 되고 나면 꼭 잊지 말고 이 아줌마를 잘 챙겨 줘.”고세연이 말했다.“아줌마는 피부가 하얗고 얼굴도 예쁘셔서 이 레드 사파이어 목걸이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지찬 오빠와 약혼할 수 있는 이유는 아줌마가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신 덕이 많아요.”류선은 목걸이를 바로 목에 걸고 하인에게 거울을 가져오라고 했다.그녀가 목에 거니 역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넌 내 친 딸과 다름없으니까 난 당연히 네가 지찬이한테 시집가는 걸 바라지.
“와, 씨, 질투나, 너무 질투나.”조예원은 과장이 가득 섞인 말투로 말했다.“난 지금 질투의 화신이야.”그녀는 말하는 한편 눈은 정유진의 손목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유진아, 말로만 듣던 외제 차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기분이란 어떤 거야? 알려줘!”정유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예원한테 손목을 내밀었다.“너 가져.”조예원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쳇,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나 조예원은 언젠가 손목에 집 한 채를 차고 다닐 거야. 그때가 되면 난 이렇게 걸을 거야.”말을 마치고 그녀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거만하게 걸었다.조예원은 가끔 바보 같았다. 정유진은 그녀가 디자인 전공보다 연기 전공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정유진은 그녀의 장난을 무시하고 진지하게 물었다.“나도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조예원은 바로 대답했다.“남자한테 줄 선물은 사실 별로 없어. 비싼 차나 시계는 살 형편이 안 되고, 펜은 너무 시시하고, 차라리 직접 옷을 사 주는 건 어때?”“옷?”정유진은 강지찬이 입고 다니던 옷을 떠올리며 머뭇거렸다.“지찬 씨는 개인 디자이너가 있어. 매 분기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옷을 가져와. 심지어 매장에 가서 직접 고를 필요조차 없어.”조예원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재벌들은 직접 쇼핑할 필요도 없는 거였어? 우리가 쇼핑하러 가는 이유는 옷을 사는 게 다가 아니라 거리를 돌아다니는 재미도 있잖아. 그러니까, 돈이 어느 정도 있으면 옷은 정말 그저 몸을 가리고 따뜻하게 해주는 작용뿐인 거네?”이 말을 비록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듯했다.정유진이 말했다.“그러니까, 옷은 필요 없지 않을까?”조예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어휴, 이런 멍청이! 네가 직접 고른 옷은 강 대표님한테 더는 몸을 가리는 작용뿐이 아니라는 뜻이야, 알겠어?”정유진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하여 퇴근 후, 그녀는 조예원과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다.정유진이 친구와
고세연은 강지찬과 10미터 정도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그녀가 일어서자, 강지찬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거기 있어.”다가오지 말라는 뜻이었다.고세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전에 거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저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강지찬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여자도 네가 시킨 거야?”고세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급히 손을 저었다.“아니, 아니에요, 전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몰라요, 사진도 다른 사람이 저한테 보낸 거예요.”사진 속의 여자는 뒷모습만 보일 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아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강지찬이 말했다.“누구?”고세연은 머리를 저었다.“저도 몰라요, 처음 보는 번호였어요.”강지찬은 고세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눈빛은 분명히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고세연은 사실 강지찬이 믿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찾아온 목적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내일 약혼식에 오실 거죠?”강지찬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따스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강지찬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 바로 배신과 기만 그리고 협박이기 때문이었다.“안 가면 어쩔 건데?”고세연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다.“지찬 오빠...”그녀는 강지찬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멈췄다.“전 16살 때 강 씨 가문에 왔어요, 첫눈에 오빠한테 반하고 그 후로 10년동안...”강지찬은 그녀의 이야기에 흥미가 없었다.“난 바빠, 중점을 말해, 싫으면 그냥 돌아가고.”고세연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강지찬은 여전히 무정하고 그녀의 말조차 들어주지 않았다.10년, 고세연은 강지찬을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짝사랑했다.마음이 정말 돌덩이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해도 이 정도 긴 시간이면 흔들려야 했다.“절 이런 방법까지 쓰게 만들지 마세요, 저도 우리가 난처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도 다른 방법이 없어요,
장형준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고세연이 떠나자 바로 들어왔다.강지찬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에이프릴 홀에 사람을 보내, 그리고 안나도 데려와.”장형준은 그의 말속에 담긴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강지찬은 화가 치밀어 서류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날 밤, 술자리를 만든 사람은 강원훈이었고 그 룸도 강원훈 전용이었다.사진의 각도로 보면 누군가가 사전에 룸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게 틀림없었다.강지찬은 그날 밤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렸다.혐의가 가장 큰 사람은 강원훈과 강지현뿐이었다.이때, 갑자기 강지찬의 휴대폰이 울렸다.강원훈이 걸어온 전화였다.“지찬아, 일 끝났어? 나와 한잔할래?”강지찬은 손에 든 펜을 문지르며 말했다.“어디로 갈까요?”강원훈이 전화 반대편에서 말했다.“오늘은 프라임 홀로 가자, 빨리 와.”“네.”그들은 프라임 홀에 자주 다니지 않았다.프라임 홀은 별의별 사람들이 다 가는 곳이었고 연예인들도 자주 드나들기에 파파라치도 많았다.에이프릴 홀은 상대적으로 은밀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비슷비슷한 것 같았다.장형준은 강지찬의 지시를 처리하러 가고 강지찬은 임우연과 함께 갔다.오늘밤 프라임 홀은 공연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안은 벌써 귀청을 째는 듯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그들이 들어가니 무대 위의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다. 폴 댄서가 뱀처럼 공중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비키니를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프라임 홀의 매니저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그를 강원훈의 룸으로 안내했다.강원훈은 파자마 파티를 열었다. 풀장에서 노는 사람들 외에는 전부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하여 슈트 차림의 강지찬과 임우연은 주위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왔어? 네 옷은 내가 준비했어, 빨리 가서 입어.”강원훈은 손에 술잔을 들고 말했다. 파티는 금방 시작했고 그는 아직 취하지 않았다.하지만 강지찬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심지어
정유진은 강지찬에게 넥타이까지 포함한 슈트 세트를 사주었다.강지찬은 그녀 앞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기쁨이 가득한 얼굴은 마치 결혼하러 가는 신랑 같았다.“내일 이 옷 입어 야지.”그는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정리하는 한편 거울 속의 정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정유진은 강지찬이 내일 출근할 때 입겠다는 말로 이해하고 기분이 좋았다.“이제 내 신체 사이즈도 아는 거야? 여보 사랑해.”강지찬이 말했다.정유진은 여전히 강지찬의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이 습관 되지 않았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강지찬은 미소를 지었다.“마음에 들지, 여보가 직접 사준 옷인데 마음에 들고말고.”시간이 이미 늦었고 내일 출근해야 하니 정유진은 그와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벗어요.”강지찬은 몸을 돌려 그녀 앞에 서서 말했다.“여자가 남자한테 옷을 선물하는 이유는 직접 벗기고 싶어서 그런 거래. 자, 벗겨봐.”정유진은 거절했다.“싫어요.”강지찬은 또다시 농담을 던졌다.“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엄마와 날 돌보시던 아줌마를 제외하고 내 옷을 벗겨본 여자는 없어. 네가 처음이야.”그는 꼭 기다리고 말겠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고 정유진의 앞에 섰다.그녀는 벗기지 않으면 언제까지 실랑이질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벗기기 시작했다.강지찬은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눈썹에서부터 눈, 코의 순서대로 내려오다 맨 나중에는 입술에서 멈췄다.정유진의 입술은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먹음직스러웠으며 아주 예뻤다.그녀의 얼굴은 요염한 동시에 단아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두 가지 느낌은 전혀 충돌되지 않고 아주 잘 어우러졌다.정유진은 두 사람이 장난치는 내내 배 속의 아기가 다칠지 걱정되어 줄곧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었다.박지찬은 정유진이 아주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정유진은 그의 셔츠를 벗겨 옷걸이에 걸었다.“바지는 안 벗겨?”남자는 일부러 물었다.정유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온 사람은 온유한이었고 그는 혼자가 아니라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과 같이 왔다.남자는 매우 스타일리쉬한 차림이었다. 요즘 아이돌들이 자주 하는 긴 머리 리프 커트 머리 스타일에 몸에는 딱 달라붙는 블랙 셔츠와 블랙 팬츠, 그리고 앞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이 사람의 마른 체형을 본 정유진은 이 사람의 허리둘레가 어쩌면 자신과도 비슷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꽤 잘 생겼다는 생각도 들었다.그 옆에 있는 소녀는 남자보다 더 튼실해 보였고 얼굴은 토실토실 동그란 귀여운 상이었다. 그녀는 손에 가죽 상자를 하나 들고 있었다.정유진은 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온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온유한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한테 소개했다.“이분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송 선생님이에요. 그리고 옆에는 송 선생님의 어시스트 분이시고. 오늘 유진 씨한테 이분들이 화장을 해주실 거예요.”정유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화장을요? 저한테?”온유한은 머리를 끄덕였다.“네.”이때 그 송 선생님이라는 분은 정유진의 얼굴을 요리조리 훑어보더니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어머나! 너무 예쁘다, 얼굴이...”그러고 나서 그는 집안을 쓸어보며 살짝 꺼림칙해서 하면서도 놀라워하는 눈빛을 보였다.“이런 얼굴로 요 코딱지만 한 방구석에서 사는 거예요? 강 대표님이 무슨 잠행을 나왔어요? 아니면 뭐 서민 생활이라도 체험한다든가?”정유진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장형준은 밤새 잠을 설쳤지만 여전히 활기차 보였다.“대표님, 셋째 도련님의 룸에 확실히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이미 가져가서 없고요. 제가 이미 에이프릴 홀에 의심 가는 사람을 조사하라 시켰는데 카메라를 언제 가져갔는지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다 보니 조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강지찬은 손에 담배를 쥐고 차갑게 말했다.“그 사람 반드시 찾아야 해. 안나 쪽은 어떻게 됐어?”“안나 씨는 해외에 한 달간 촬영 일정이 잡혀 있어 이틀 전에 금방 갔어요. 거기에도
“강홍식은 정말 늙을수록 더 머리가 어떻게 되나 봐요. 자기가 그 여자와 결혼을 못 했다고 자기 아들더러 그 여자 딸과 결혼하게 하다니요! 이것보다 더 못난 아비가 어디 있어요?”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며 다독였다.“뭐가 그리 화가 난 거예요? 강씨 집안에 황당한 일이 어디 한두 개에요?”물론 겉으로는 이렇게 말을 하지만 그도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다. 여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참는 듯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지찬이 저기 오네요. 한번 잘 물어봐요. 몇 마디 하다가 또 싸우지 말고요.”남자는 침착한 얼굴로 ‘알겠다’라고 하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강지찬을 보고 억지웃음을 끄집어내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다. 하지만 본인도 어색했는지 결국에는 더 어두운 얼굴빛이 되었고 조금 전보다 더 진지해졌다. 강지찬은 꼿꼿이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외삼촌, 외숙모, 오셨어요.”최효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오랜만이야. 아주 바빴어?”강지찬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삼촌다운 친밀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아니요, 별로.”말을 마친 강지찬은 외삼촌 경우성을 쳐다보았다.경우성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계속하지 않았고 대신 미간만 점점 더 심하게 찌푸렸다. 최효진은 참지 못하고 그를 잡아당기자 경우성의 안색은 점점 더 엄숙해졌다.‘하... 이 사람 정말!’최효진은 경우성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계속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대신 입을 열었다. “나와 너의 외삼촌은 얼마 전에 외지에 시찰을 나갔다가 어젯밤에야 돌아왔어. 그런데 너의 외삼촌이 청첩장을 보고 화가 많이 났어. 녀석아, 이렇게 큰일은 진작에 우리에게 말했어야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너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야. 절대 네가 이 여자와 약혼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너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얘기도 할 거고.”그러자 옆에 있던 경우성이 호통을 쳤다.“네 마
경씨 집안 역시 서울에서 유명한 엘리트 가문이었다.강지찬의 외할아버지는 과거 서울 시립박물관 관장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를 역임했고 유명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삼촌인 경우성과 숙모 최효진 역시 고고학자 겸 서울대 교수인 데다 경우성은 서울대 역사대학 부학장을 맡고 있었다.나름 명문가라고 불릴 만한 강씨 가문이 아주 오래전 집안 어른들끼리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던 가문이 바로 최씨 가문이었다. 이때 류선이 고세연의 손목을 잡아끌며 소개를 시작했다.“세연아, 여기 와봐. 내가 소개해 줄게. 이쪽은 지찬이 삼촌이랑, 숙모. 얼른 인사드려. 이제 한 가족이 될 사이잖아.”지금 이 순간, 고세연은 살짝 흥분되면서도 조금씩 밀려드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경우성과 최효진의 안색을 보아하니 두 사람은 고세연이 마음에 들기는커녕 상당히 혐오스러운 모양이었다.그 대단한 교양으로도 터져 나오는 경멸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으니까...하지만 강지찬의 가족은 곧 그녀의 가족이다. 절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외삼촌, 외숙모, 안녕하세요. 고세연이라고 합니다.”이에 경우성은 아예 고개를 돌렸다.상대가 어린 여자아이라 차마 악담을 던질 수는 없어 아예 무시하기로 한 것이다.반면 최효진은 도도한 표정으로 고세연의 표정을 자세히 훑어보다 무덤덤하게 말했다.“어머니랑 많이 닮았네요. 그래도 호칭은 그렇게 편하게 부르지 말아요. 아직 약혼식 시작 안 했으니까.”차가운 목소리에 고세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오늘의 약혼식은 온전히 고세연의 강요로 진행되는 것, 순순히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괜찮아. 오늘만 지나면 난 강씨 가문의 예비 안주인이 되는 거니까.’한편, 류선은 어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렇다. 애초에 고세연을 경우성, 최효진 부부에게 소개해 준 것도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경씨 가문이 강홍식과 강씨 가문을 증오할수록 짜릿했으니까.“최 교수님은 참 기억력도 좋아.”이때 류선이 불쑥 끼어들었다.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