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식은 정말 늙을수록 더 머리가 어떻게 되나 봐요. 자기가 그 여자와 결혼을 못 했다고 자기 아들더러 그 여자 딸과 결혼하게 하다니요! 이것보다 더 못난 아비가 어디 있어요?”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며 다독였다.“뭐가 그리 화가 난 거예요? 강씨 집안에 황당한 일이 어디 한두 개에요?”물론 겉으로는 이렇게 말을 하지만 그도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다. 여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참는 듯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지찬이 저기 오네요. 한번 잘 물어봐요. 몇 마디 하다가 또 싸우지 말고요.”남자는 침착한 얼굴로 ‘알겠다’라고 하더니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강지찬을 보고 억지웃음을 끄집어내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다. 하지만 본인도 어색했는지 결국에는 더 어두운 얼굴빛이 되었고 조금 전보다 더 진지해졌다. 강지찬은 꼿꼿이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외삼촌, 외숙모, 오셨어요.”최효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오랜만이야. 아주 바빴어?”강지찬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삼촌다운 친밀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아니요, 별로.”말을 마친 강지찬은 외삼촌 경우성을 쳐다보았다.경우성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계속하지 않았고 대신 미간만 점점 더 심하게 찌푸렸다. 최효진은 참지 못하고 그를 잡아당기자 경우성의 안색은 점점 더 엄숙해졌다.‘하... 이 사람 정말!’최효진은 경우성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계속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대신 입을 열었다. “나와 너의 외삼촌은 얼마 전에 외지에 시찰을 나갔다가 어젯밤에야 돌아왔어. 그런데 너의 외삼촌이 청첩장을 보고 화가 많이 났어. 녀석아, 이렇게 큰일은 진작에 우리에게 말했어야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너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야. 절대 네가 이 여자와 약혼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너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얘기도 할 거고.”그러자 옆에 있던 경우성이 호통을 쳤다.“네 마
경씨 집안 역시 서울에서 유명한 엘리트 가문이었다.강지찬의 외할아버지는 과거 서울 시립박물관 관장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를 역임했고 유명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삼촌인 경우성과 숙모 최효진 역시 고고학자 겸 서울대 교수인 데다 경우성은 서울대 역사대학 부학장을 맡고 있었다.나름 명문가라고 불릴 만한 강씨 가문이 아주 오래전 집안 어른들끼리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던 가문이 바로 최씨 가문이었다. 이때 류선이 고세연의 손목을 잡아끌며 소개를 시작했다.“세연아, 여기 와봐. 내가 소개해 줄게. 이쪽은 지찬이 삼촌이랑, 숙모. 얼른 인사드려. 이제 한 가족이 될 사이잖아.”지금 이 순간, 고세연은 살짝 흥분되면서도 조금씩 밀려드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경우성과 최효진의 안색을 보아하니 두 사람은 고세연이 마음에 들기는커녕 상당히 혐오스러운 모양이었다.그 대단한 교양으로도 터져 나오는 경멸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으니까...하지만 강지찬의 가족은 곧 그녀의 가족이다. 절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외삼촌, 외숙모, 안녕하세요. 고세연이라고 합니다.”이에 경우성은 아예 고개를 돌렸다.상대가 어린 여자아이라 차마 악담을 던질 수는 없어 아예 무시하기로 한 것이다.반면 최효진은 도도한 표정으로 고세연의 표정을 자세히 훑어보다 무덤덤하게 말했다.“어머니랑 많이 닮았네요. 그래도 호칭은 그렇게 편하게 부르지 말아요. 아직 약혼식 시작 안 했으니까.”차가운 목소리에 고세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오늘의 약혼식은 온전히 고세연의 강요로 진행되는 것, 순순히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진작 예상하고 있었다.‘괜찮아. 오늘만 지나면 난 강씨 가문의 예비 안주인이 되는 거니까.’한편, 류선은 어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렇다. 애초에 고세연을 경우성, 최효진 부부에게 소개해 준 것도 일부러 한 행동이었다.경씨 가문이 강홍식과 강씨 가문을 증오할수록 짜릿했으니까.“최 교수님은 참 기억력도 좋아.”이때 류선이 불쑥 끼어들었다.
당시 일은 증거가 없는 데다 류선이 자기 절로 넘어지는 바람에 아들을 조산하여 몸도 허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출산 능력을 상실하였기에 경씨 가문은 줄곧 류선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 류선이 강지찬의 생일을 이용하여 강홍식과 경윤미 부부의 불화를 풍자하는 것을 듣고 최효진은 바로 화를 냈다.“류선아, 그 당시 지찬과 너의 아들이 왜 조산했는지 너는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야. 지금 경윤미가 없으니 나는 그때의 추악한 일을 폭로하는 것을 개의치 않아.”“네가 외삼촌인 우리를 꼬드겨 외 조카를 잊게 하다니, 그럼 나는 친 숙모가 또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에게 보여주지.”“나는 우리가 지찬에게 한치의 미안함도 없다고 하늘에 맹세할 수 있다. 너는 맹세할 수 있어?”“나는 내 아들로 맹세할 수 있는데, 너는 네 아들로 맹세할 수 있어?”최효진이 미친 듯이 계속 질문하자 류선은 마음에 찔렸다.그녀에게는 강지현이라는 아들 하나밖에 없었기에 당연히 맹세할 수 없었다.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른 사람으로서 그녀는 마음속으로부터 맹세하는 이런 일을 거부하였고, 죄의 대가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였다. 최효진도 바로 그녀의 이 점을 알고 한걸음 한 걸음 몰아붙였다.그녀가 계속 말했다.“네가 이간질하지 않았더라면 내 여동생은 조산하지 않았을 것이며 몸도 상하지 않았을 것이야. 그들 부부는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서로를 원망하는 부부는 되지 않을 것이야.”“줄곧 궁금한 게 있었어. 강지현의 조산 원인은 진짜로 넘어진 거야? 아니면 장손자리 때문에 일부러 넘어진 거야?”“말솜씨가 좋은 거로 알고 있는데, 해명하지 않을 거야?”오늘 온 사람들은 모두 강가의 친척들이었고 부근의 사람들은 이미 이곳의 기척에 끌렸다. 비록 겉으로는 이쪽을 보지 않았지만 한쪽 귀를 이쪽에 대고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류선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강지현의 조산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었다.외부인이 줄곧 이렇게 의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강홍택
빨간 드레스를 입은 정유진을 본 고세연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강지찬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것도 감쪽같이 그에게 속았다!강지찬, 어떻게 감히?류선이 먼저 낌새를 알아채고 정유진을 보며 말했다.“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 경비! 여기 빨리 내쫓아요! 오늘은 지찬이 좋은 날인데 누가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요.”경비가 움직이려고 할 때 입구 쪽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누가 감히?”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최의현이 있었고 그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입구에 서 있는 그는 밖에 있는 사람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고 그러자 밖에 있던 두 사람이 들어왔다.정유진은 바로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엄마, 아빠, 여기 어떻게 왔어요?”최의현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당연히 초대받고 왔지. 우리 강 대표가 말했어. 이런 곳에 부모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것부터 지금까지의 확신에 이르기까지 정유진은 오늘의 이 모든 것을 강지찬이 계획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강지찬은 최의현에게 부탁해 그녀의 부모님을 모시고 오게 했다. 원래는 강지찬과 고세연의 약혼식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약혼녀를 바꾸려고 했다.최의현은 아침 일찍 정씨 집으로 가서 정명학과 이명자를 겨우 설득해 데려왔고 두 사람은 꽤 침착한 얼굴이었다.정유진은 늘 두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부모님은 늘 상냥한 분이었다. 정유진이 아무리 많은 비난을 받아도 늘 딸 편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이 이들에게 꽂혔을 때 평생토록 강단에 섰던,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데 익숙했던 정명학의 표정조차 굳어 있었다.이명자는 두 손을 꼭 쥐고 안절부절못했다. 정유진은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엄마 아빠, 죄송해요.”이명자는 괜찮다며 그녀를 다독여줬다.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고세연의 얼굴이 진작에 창백해졌다.강지찬이 정유진의 부모님까지 모셔왔다고?강지찬, 미친 거 아닐까?그때 사람
강지찬은 정유진을 끌고 곧바로 단상에 올랐고 고세연의 질문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나에게 왜 이러냐고요?”고세연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류선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있었다. 강지찬의 뜻대로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돼! 절대 강지찬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류선은 자기 아들이 건강이 안 좋기는 하지만 모두 다 강씨 집안 손주로 왜 강지찬만 강씨 집안의 사업을 물려받고 자기 아들은 재무팀에서만 일해야 하는지 늘 이해할 수 없었다. 왜?!“강...”류선이 강지찬을 막 부르려고 할 때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엄마, 그만 해요.”강지현은 류선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어느새 그녀 옆에 와 있었다. “아... 아들, 아까 친구와 저쪽에서 얘기 중이지 않았어?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강지연은 아무런 표정 없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아까 최 교수가 엄마더러 맹세하라고 할 때.”류선은 흠칫 놀란 얼굴로 말했다.“아들, 그 여자 헛소리 듣지 마. 엄마는 그때 정말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어. 진짜 고의가 아니었어.”그 말에 강지현은 귀찮은 듯한 어조로 말했다.“그만해. 이유 따위 알고 싶지 않아.”그는 류선을 보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오늘은 그만 떠들어 좀. 엄마, 강지찬이 엄마가 뒤에서 수작 부리는 거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 같아?”순간 류선은 흠칫 놀란 얼굴로 말했다.“아들, 그게 무슨 뜻이야? 혹시, 강지찬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지?”강지현은 그녀의 말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단상 위로 시선을 돌리더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돌아가서 얘기해. 오늘은 형 약혼식이야.”류선은 이 아들을 죽도로 사랑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강지현이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유일한 아들이었고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이었다.한편,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강홍식은 그제서야 단상 위의 며느리가 바뀐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 나서 기절할 뻔했다.그런데 이쪽
정유진은 자신이 강지찬에게 별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그저 아이 때문에 함께 있기로 했고 이런 관계도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하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는 강지찬을 본 그녀는 순간 가슴이 찡해지더니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방금 강지찬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도 다 똑똑히 들었다.그들은 강지찬이 부른 이름과 청첩장의 이름이 달라 그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모두들 단상을 주시하며 어떤 사람은 분분히 토론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손가락질하고 있었다.이들은 모두 강지찬의 친지들로 정유진에게는 낯선 사람들이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 전혀 난감해하지 않았다. 난감해할 사람은 사실 강지찬뿐이었다.오늘이 지나면 그는 분명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오늘의 행동은 강씨 집안의 체면을 구겼고 나중에는 분명 강씨 가문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손에는 그 하찮게 생각하는 반지를 들고 있었다. 강지찬은 이 반지가 너무 작아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강지찬은 정유진과 결혼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질타를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의 굳은 눈빛을 보며 정유진은 이 남자를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이 순간 강지찬만큼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녀는 ‘좋아요.’라는 세 글자 대신 손을 내밀었다.강지찬은 한 번 눈을 찡긋하더니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 준 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최의현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넘겨받았다.“오늘 유진 씨와의 약혼식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네, 여러분들이 들은 게 맞아요. 제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오늘 저의 약혼녀 정유진입니다.”말을 마친 강지찬은 마이크를 최의현에게 건넸다.최의현은 자기를 진짜 약혼식 사회자 취급하는 강지찬에게 순간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약혼식 분위기를 띄웠다.“저희 강
방금 정명학과 이명자가 들어왔을 때 경우성과 최효진은 그들을 바로 알아봤다. 하지만 조금 전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그들은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동료가 사돈을 맺는 것도 인연이다.게다가 정유진은 임신까지 했기에 경우성과 최효진은 바로 그녀를 받아들였다.그때 최효진이 미안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일이 갑자기 이렇게 돼서 미안해요. 지찬이 이 자식이 미리 우리에게 말도 안 하다 보니 인사치레 할만한 선물조차 갖고 오지 못했네요. 준비는 외숙모가 진작에 다 했으니 나중에 꼭 드릴게요.”정유진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고마워요. 외삼촌, 외숙모.”그러자 옆에 있던 정명학이 말했다.“저희도 아침에 알았어요. 지찬이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탓하지 맙시다.”최효진은 정씨 집안에서 강지찬에게 불만을 말할까 봐 일부러 그들이 말하기 전 불만이 많은 척했다.“왜 탓하지 않아요? 이렇게 큰일은 먼저 어른들께 보고해야 하는 게 도리죠. 예쁜 유진이는 한눈에 봐도 철이 들고 교양 있는 아이인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조카며느리를 절대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되죠. 정 교수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꼭 더 큰 다이아몬드 반지로 꼭 보상해 드릴게요. 그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결혼식은 제가 직접 성대하게 준비할게요.”체면치레 말을 못 하는 경우성은 그저 아내가 뭐라고 하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거들었다.“그럼요, 그럼요. 꼭 그렇게 해야죠.”최효진은 내친김에 정유진과 이명자를 이끌고 자리를 잡고 앉아 배 속의 아이가 몇 달이나 되었는지, 병원에 가서 검사는 했는지 등을 물었고 정유진은 그녀의 답변에 일일이 답변했다.처음에 류선과 최효진의 대화를 듣고 정유진은 강지찬과 외삼촌의 사이가 별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속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이명자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찬이 아버님도 오늘 여기 계시나요?”그 말에 최효진은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사돈댁, 솔직히 말씀드리면 강씨 집안의 현재 주인은
최효진은 강홍식을 위해 숨기지 않을 것이다.사실 강홍식은 체면이 구겨지는 일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최효진은 당당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이봐, 고세연 씨, 조용히 지내면 강씨 집안에서 부모님을 잃은 걸 봐서라도 네가 결혼할 때 혼수는 넉넉히 준비해 줄 거야. 하지만 우리 지찬이에게 들러붙으려 한다면 꿈 깨! 어림도 없으니까!”강지찬이 걸어오더니 방금 뺨을 맞은 정유진의 볼을 살폈다.정유진은 한쪽 얼굴은 이미 빨갛다 못해 손가락 자국까지 선명했다.“괜찮아요?”강지찬은 차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정유진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사람들 앞에서 뺨을 한 대 맞았는데 그녀가 뭐 종이 인형도 아니고 맞는다면 그냥 맞아야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절대 괜찮을 리 없다! 고세연의 뺨은 정유진에게 망신을 줬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다른 남자나 빼앗는 여자라는 오명까지 씌웠다.하지만 오늘 같은 자리에서는 강지찬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내가 알아서 할게요.”고세연은 강지찬을 보며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지찬 오빠, 여자를 속이는 게 얼마나 비겁한 건지 알아요? 절대 좋은 결과가 없을 거라고요.”강지찬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는 나를 자꾸 도발하는 사람이 절대 좋은 결과가 없다는 것은 알아.”강지찬의 말뜻을 알아챈 고세연은 순간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만약 오늘 이대로 물러난다면 그녀는 평생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강홍식이 그녀를 쫓아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더 이상 서울에서 상류층의 생활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고세연을 다시 용기를 얻고 계속 말했다.“지찬 오빠, 정말 후회 안 해요?”그녀는 정유진을 힐끗 보더니 계속 말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이 여자 지금 내보내면 그냥 오빠가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없던 일로 할게요.”옆에 있던 최의현은 그녀의 말에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고세연 씨, 지금 여기서 혼자 나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