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이게 무슨 상황이야?」「멍청하긴, 무슨 상황인지 보면 몰라? 이성준이 잘못해서 백아영이 찬 거잖아. 이제 와서 용서를 빌고 있는 거고.」「뭐야? 커플 싸움이야? 이렇게 싸우다가 화해하겠네.」「이성준처럼 패기 넘치는 사람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쩔쩔매는구나? 먼저 용서를 빌 줄은 상상도 못 했네.」「이제 누구 편을 서든 의미가 없지 않아? 앞으로 백아영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네. 괜히 건드렸다가 저세상 갈라.」「빚이 50조? 그게 대수야? 100조라도 갚아줄 수 있겠구먼.」「그러니까 지금까지 사랑싸움을 보고 있었던 거네? 우리만 바보 된 거야?」「그런데... 이성준 너무 멋있지 않아? 매력적이야.」「맞아.」채팅창은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서로 물고 뜯을 줄 알았던 재판은 커플의 사랑싸움으로 돌변했다.암암리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세력들은 선우 일가를 공격하지 않은 자신의 현명한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왜! 도대체 왜! 헤어졌다면서? 그런데 왜 법정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거냐고! 그룹 대표면서 이미지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을 왜 하냐고!”백채영은 홧김에 테이블을 뒤집었고 얼굴은 악마가 씐 것처럼 일그러졌다.그녀는 매번 죽음의 문턱에서 잘 빠져나가는 백아영을 원망하고 질투하고 증오했다.컴퓨터 앞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백승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얼굴에는 석연치 않은 의혹이 가득했다.백승구는 백아영과 헤어진 이성준이 왜 굳이 법정으로 갔는지, 왜 스스로의 명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백아영을 지켜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가 모르는 사적인 뭔가가 또 있단 말인가?...이성준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인해 재판은 흐지부지하게 끝났다.백아영은 충격을 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이성준의 의도를 깨달았다. 재판 5분 전에 50조의 빚이 폭로됐다는 건 누군가 이 기회를 이용해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계획을 세운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면 백아영은 물론이고 선우 일가까지
검은 가면 아래 반쯤 드러난 그의 하얀 피부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실핏줄이 가득했고 마치 1km를 달린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는 모습에 백아영은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배 아파서 계속 화장실에 있었어요.”이성준은 자연스레 백아영 옆에 앉더니 온화한 말투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재판 못 봐서 미안해요.”분노는커녕 백아영은 그가 걱정되어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이성준의 손목을 잡아당겨 맥을 짚었다. 위가 불편하다는 걸 직접 확인하자 마음속의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고 되레 일찍 발견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얼른 돌아가요. 제가 약 달여 줄게요.”이성준은 웃으며 답했다.“알겠어요.”...백아영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경 허씨 일가의 연락을 받았다.그들은 백아영의 빚 상환 능력을 우려한다는 핑계로 한 달 안에 50조를 갚을 것을 요구했고 갚지 못한다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협박했다.“1년에서 한 달로 시간 단축하는 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가만 보면 허씨 일가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를 골탕 먹이려는 것 같아.”선우경진은 분노에 찬 욕설을 퍼부었고 잘생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이러는 법이 어딨어! 진짜 얍삽한 인간들이네.”백아영도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혈옥을 연구하고 있지만 신약 연구는 매우 어려워서 생각보다 진전이 더뎠기에 한 달 안에 신약을 연구하고 50조의 빚을 갚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50조는 워낙 큰돈이라 이 정도의 금액을 한 번에 빌려줄 수 있는 그룹은 거의 없어요...”이성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하며 선우경진을 바라봤다.“막대한 재력을 소유한 가문이면 모를까.”그의 의도를 알아챈 선우경진이 재빨리 옆에서 맞장구쳤다.“솔직히 넌 허씨 일가와 아무런 원한이 없잖아. 그 사람들이 이렇게 난처하게 만드는 건 이성준 씨 외할머니에 대한 악감정일 가능성이 커. 성준 씨가 아무리 재판에서 널 지켜줬다고 해도 대신 돈까지 갚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거지
백아영은 이성준이 건넨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고 따뜻한 물이 그녀의 목을 촉촉하게 적셨다.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그냥 그 사람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아요.”“왜요?”이성준의 질문에 백아영은 컵을 깨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백아영은 한태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고 미래를 꿈꿨지만 이성준의 존재가 그녀의 가슴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아 아직은 온 힘을 다해 억누르고 숨기는 단계이다.그녀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한태윤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심지어 애써 모른척하고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이 법정에서 이성준을 마주한 순간 물거품이 되었다.백아영조차도 자신의 마음속에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 잡은 게 믿기지 않았다.아무리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를 피하고 도망치고 그와 엮이지 않으려 애쓴다면 언젠가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다.‘웅웅웅.’백아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성준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사장님, 알아냈습니다. 허씨 일가 최근에 심은아 씨와 연락을 취했습니다.”허씨 일가와 오씨 일가는 오랫동안 경쟁 관계를 유지해 왔고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평소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줄곧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 온 허씨 일가가 갑자기 백아영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하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조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배후에서 누군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심은아. 도망치고 나서 지금껏 잡지 못했는데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거 보니 이제 손쓸 때가 된 것 같다.심은아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백아영을 생각하자 이성준은 순식간에 싸늘함을 풍기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오씨 일가더러 공격하라고 해. 돈과 권력은 내가 제공한다.”위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사장님, 오씨 일가와 엮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 않습니까?”오씨 일가는 이성준 어머니의 친정이지만 이성준은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들
백아영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약물 비율을 알아내는 건 제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시시각각 모니터링하고 분석해야만 정밀한 측정값을 알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이성준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상처에 붕대를 감은 후 백아영이 계속하여 약을 달이려고 하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상처 회복할 때까지 쉬어요.”“조금 다쳤을 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게다가 시간도 얼마 없으니까...”백아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성준은 강제로 그녀를 침실 쪽으로 끌어당겼다.비틀거리며 뒤따라가던 그녀는 남자의 거대한 아우라와 패기 넘치는 모습에서 이성준이 보이는듯한 착각이 들었다.순간 정신을 번쩍 차린 백아영은 재빨리 손을 놓으며 몸부림쳤다.“태윤 씨, 솔직히 쉴 시간도 없고 많이 다친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것보다 신약을 제때 연구하지 못하면 빚 못 갚을 수도 있어요.”“한씨 일가를 팔아서라도 내가 갚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요.”백아영은 당연하듯 말하는 그의 단호함에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장난삼아 하는 말이 아닌 정말로 그렇게 하려는 듯 확고함이 보였다.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것보다도 꿀 바른 듯 달콤한 기분이 들면서 설렘이 밀려왔다.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백아영은 이성준에게 이끌려 침실로 들어갔고 그는 큰 체구와 함께 명령하듯 입을 열었다.“얼른 씻고 자요.”강한 기세 눌린 백아영은 순순히 그의 말에 복종했다.욕실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자 이성준이 뒤따라오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도와줄까요?”‘도와준다니? 뭘?’백아영은 순식간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당황하며 그대로 얼어붙었다.“아니, 괜찮아요.”이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래...”말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깜짝 놀랐고 방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이성준은 백아영과 눈이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잔인한 장면이 떠오른 백아영은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관자놀이를 짚더니 곧바로 그에게 쓰러졌다.이성준은 표정이 어두웠지만 본능적으로 백아영을 안았고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는 한층 수그러졌다.“왜 그래요?”“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요.”백아영은 허약한 목소리로 답했다.안쓰러운 그녀의 모습을 보자 이성준의 화는 눈 녹듯이 사라졌고 마지못해 한숨을 쉬며 그녀를 안고 연구실의 간이침대로 향했다.“여기서 좀 쉬고 있어요.”당장이라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연구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경진이 크고 작은 약재 가방을 들고 부랴부랴 달려오며 물었다.“아영아, 나왔어. 무슨 문제 있어?”아침 일찍 약재 사러 나선 선우경진은 도와달라는 백아영의 문자를 받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그동안 선우경진은 밤낮으로 연구에 전념하는 백아영을 보며 마음이 아팠으나 그가 유일하게 도움 줄 수는 있는 일을 이성준에게 뺏겼으니 그저 멀뚱멀뚱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선우경진은 그녀의 문자를 받고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설렘이 밀려왔다.하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집으로 돌아왔고 그 탓에 백아영이 깨어나자 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선우경진은 섬뜩함에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마음속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오빠.”백아영은 그토록 기다리던 선우경진이 돌아오자 곧바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와 함께 약재를 달이고 있는 난로로 향했다.“여러 가지 비율로 배합해 봤지만 전부 실패했어요. 약효가 없거나 폭발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약재 배합은 오빠가 저보다 훨씬 능숙하잖아요. 혹시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 있어요?”일어난 지 일 초 만에 연구에 전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이성준은 허탈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연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약재 배합에 성공한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말린다고 해도 소용없어요.”“지금은 신사인 척할 때가 아니라고요. 결정을 존중하기는 무슨,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선우경진은 화가 나서 발만 동동 굴렀지만, 이성준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결국,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연신 심호흡하더니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았다.“어차피 설득은 물 건너갔으니까 회유는 어때요? 성준 씨 신분으로 한씨 일가 지분을 처분해서 50조를 벌었다고 지원해주는 거예요.”그가 알기로 이성준은 백아영을 위해 오래전부터 50조를 준비했기에 언제든지 빚을 갚을 수 있었다.“아마 거절하지 않을까요?”백아영이라면 이성준은 훤했다. 어쨌거나 그녀의 자존심과 신념이 달린 일이라서 자신이든 한태윤이든 상관없이 금전적인 지원은 절대 받지 않을 것이다.선우경진은 펄쩍 뛰면서 말했다.“그럼 화를 자초하러 그렇게 위험한 곳에 제 발로 찾아가는 꼴을 마냥 지켜보겠다는 거예요?”이성준은 입을 꾹 닫고 시종일관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앞으로 다가가 방금 백아영이 챙긴 장비들을 자연스럽게 들어 올렸다.“저랑 같이 가요.”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하더니 즉시 거절했다.“위험하니까 태윤 씨는 안 돼요.”선우경진이 대뜸 눈을 흘겼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할 때는 귓등으로 듣더니 이제야 위험하다는 걸 알았단 말인가? “그래서 가는 거예요.”이성준은 가방을 뺏어가려는 백아영의 손을 피하며 등에 멨다.“설령 지옥이라도 함께 갈 테니까.”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그윽한 눈빛은 두려움이란 찾아보기 어려웠고, 단호하면서도 확신이 넘쳤다.흠칫 놀란 백아영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백아영도 고집이 세지만, 이성준도 만만치 않았기에 결국 두 사람은 자기주장만 내세우다가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지석은 깊은 산속에서 거의 은둔 생활하다시피 지냈다. 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7~8시간 돌고 돌아 그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산 중턱에 이르자 차도가 끊겼다. 눈앞에 한 사람만 겨
이성준은 다시 차를 향해 걸어가더니 트렁크를 열고 안에서 검은색 가죽 가방을 꺼내 침대 의자 위에 쿵 하고 올려놓았다.가방이 열리는 순간 지폐 뭉치가 떡하니 나타났다.이내 서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충분해요?”돈 가방을 내려다보는 간형준의 눈빛에 탐욕이 서서히 드러났고, 입술만 달싹였을 뿐 찍소리도 못 냈다.이는 누가 봐도 망설이는 표정이다.경멸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코웃음을 치던 이성준이 또 다른 가죽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순간 만면의 웃음을 띤 간형준은 벌떡 일어나 지폐 뭉치를 몇 개 챙겨서 세어 보더니 백지장처럼 하얗던 얼굴에 점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입을 헤 벌리고 웃는 모습은 마치 시궁창에서 키득거리는 쥐를 연상케 했다.“보조 역할로 들여보낼 수는 있지만 고분고분 행동하겠다고 약속해요. 아니면 쫓겨난다 한들 한 푼도 못 돌려받을 줄 알아요.”팻말 뒤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진흙탕 길이 이어졌고, 어젯밤에 비가 내려서 길이 질퍽질퍽하고 미끄러웠다.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간형준은 이미 익숙해진 듯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반면 백아영은 비틀거리며 힘겹게 뒤따라갔다.그녀가 다시 휘청하는 순간 커다란 손이 어깨를 덥석 붙잡더니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남자의 건장한 몸집이 등 뒤로 다가오자 익숙한 향기가 오감을 자극했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면서 온몸에 전율이 퍼졌다.이성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내가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네...”백아영은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이내 남자의 부축을 받아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위에서 돌아본 간형준은 상기된 얼굴의 백아영을 발견하고 몰래 입맛을 다셨다.‘참 예쁘게 생겼단 말이야, 얼른 맛보고 싶군.’1시간 남짓 걸어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산길을 겨우 지나서야 그들은 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산속에 지은 허름한 대나무 집인데, 한 채만 덩그러니 있었다.“여기가 그쪽이 묵을 곳입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20대 초반의 여성이
“저기요, 시트를 새로 갈았는데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네요. 만약 별로라면 다른 거로 바꿔줄게요.”얼굴을 가린 채 옆에 서서 바라보는 홍미주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이성준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그녀가 마침 이곳에서 기다릴 일은 없었기에 아마도 자신이 몰래 따라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려고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비록 뻔히 알면서도 그는 모른 척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산길은 안 그래도 걷기 힘들었는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힘까지 빠졌다. 게다가 뒤에서 밀어주던 이성준도 없는지라 백아영은 어렵게 발걸음을 옮겼고, 거의 한 걸음 걷다가 미끄러지는 식으로 조금씩 나아갔다.“부축해줄까요?”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백아영을 보고 간형준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한결 걷기 수월할 테지만, 백아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고마워요, 혼자서도 갈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간형준은 멋쩍게 손을 내렸다. 그러나 시선만큼은 백아영한테서 떠날 줄 몰랐고, 산을 타는 바람에 살짝 풀어헤쳐진 그녀의 옷깃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더 은밀한 곳까지 탐닉하고 싶었다.이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여기까지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 꽤 많은데 대부분 입문 전형 시험에서 떨어져 자리를 박차고 돌아갔죠. 아영 씨는 한약 치료에 능통한 것 같은데 정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시험을 통과하기 어려울 거예요.”백아영은 힘겹게 걸어 올라가며 말했다.“최선을 다할게요.”“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죠.”간형준은 일부러 안타까운 척 한숨을 내쉬었다.“아영 씨를 후배로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이대로 시험 보러 가면 떨어질 확률이 99.99%에요.”백아영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죠?”간형준이 히죽 웃었다.“나름대로 방법이 다 있다는 뜻이죠.”말을 마친 그는 대나무 집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총 서너 채가 되었는데, 그중 한 집에 백아영을 데려갔다.안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