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남양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내가 들은 소식이 맞긴 맞는구나. 신대호 도련님이 너한테 살해당했다는 거.”남양파는 아침부터 신대호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것도 모자라 그 범인이 며칠간 진주·밀양에서 피바람을 일으킨 김예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남양파의 우두머리는 사람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김예훈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남양파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사수를 보낸 것이다.하지만 사수는 김예훈이 바로 살인한 사실을 인정해 버릴 줄 몰랐다.“이렇게 빨리 내 앞에 나타난 건 의외긴 하네.”비록 신대호를 죽인 사람은 허순재였지만 그가 죽게 된 이유도 김예훈 때문이었기 때문에 굳이 부인할 생각도 없었다.“뒤에서 시키는 사람이 있나 보네. 그 배후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또 무릎 꿇고 사과하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거로 할게. 없었던 일로 해줄 테니 각자 갈 길 가자고. 어때?”김예훈은 피식 웃으면서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겼다.사수는 김예훈이 이 정도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일 줄 모르고 멈칫하고 말았다.늘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남양인은 김예훈을 보고 겁을 먹긴 했지만 이렇게 냉랭하게 말했다.“사람을 죽이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 몰라? 신대호 도련님께서 너의 손에 죽었으면 너도 똑같이 목숨을 내놔야 하는거야. 그리고 우리 남양파는 우리 조직원을 죽이면 상대방의 온 가족을 죽이는 경향이 있거든. 김예훈, 내가 너 며칠만 더 살 수 있도록 며칠 뒤에 찾아가려고 했는데 제 발로 찾아올 줄 몰랐네? 마침 잘됐네. 오늘 너를 죽이고 부산에 가서 너의 온 가족을 죽여버리면 되겠네.”사수는 김예훈이 만만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주친 이상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온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면 그래도 겁먹을 줄 알았다.이때 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난 너 같은 놈을 죽일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우리 온 가족을 죽이겠다고?”김
신서후가 냉랭하게 말했다.“우리 남양국은 비록 국방력이 약하다고 해도 대한민국과 한판 붙어볼 용기는 있었다고. 섬라국이었다면 그런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야.”“하긴.”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배시시 웃었다.“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너희 남양국이 리카 제국을 등에 업고 우리 대한민국을 침략하려고 할때, 나 때문에 쫓겨난 거 알아? 그때 군대를 데리고 나타난 사람이 신씨 가문의 무신이라고 했나? 이름은 그럴싸해도 실력은 그저 그렇더라고. 내 뺨 한 대로 그 자리에서 죽었지, 뭐야. 아, 그때 그 사람도 단검 두 개를 지니고 있던데 너랑 어떤 사이야? 너희 형이라도 돼?”“너 도대체 누구야...”남양국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별로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신서후는 표정이 확 굳어버리고 말았다.신씨 가문의 무신이라는 사람은 남양 젊은 층에서 유일한 무신이자 신서후의 큰형이기도 했지만, 대한민국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그때 그를 죽인 상대는 젊은 사람이라고 했고, 나중에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고 했다.“어떻게 이 비밀을 알고 있는 거야. 설마 당도 부대의 사람인 건 아니지? 아니지, 우리 큰형을 죽인 사람이라면 설마...”이때, 신서후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식은땀을 흘렸다.만약 눈앞에 서 있는 김예훈이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오늘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다.“말도 안 돼!”신서후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긴 했지만 이를 꽉 깨문 채 마지막 용기를 다 해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덮쳤다.샤샤샥!단검을 휘두르자, 공중에 밝은 불빛이 떠올랐다.김예훈이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 그의 뺨을 때리려던 순간, 재빠르게 옆으로 피하는 것이다.“풉!”뺨을 피하긴 했지만, 몸이 굳어버리면서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그렇게 붉게 물든 신서후의 얼굴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남양의 제1 킬러라... 뭐, 실력이 괜찮긴 하네.”지금까지 김예훈의 뺨을 피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실력을 인정해 줄 만했다.신서후
김예훈이 덤덤한 표정으로 모든 총알을 피해버리자, 신서후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뒤로 물러서면서 계속 방아쇠를 당겼지만, 탄창이 비어버리자 김예훈을 죽일 좋은 기회를 놓친 그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바로 이때, 김예훈이 어느샌가 신서후의 앞에 다가와 주먹을 뻗었다.신서후는 아무렇지 않게 뻗은 이 주먹에서 피비린내를 맡아버리고 말았다.남양 제1 킬러인 그는 피할 겨를도 없이 총을 든 채 제자리에 굳어버렸다.퍽!김예훈은 손아귀에 힘을 담아 아예 총을 박살 내버렸다.제대로 한 방 먹은 신서후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날아갔고, 이때 김예훈은 또 손바닥을 들어올렸다.쨕!신서후는 피하지도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피를 토해냈다.다시 일어서려고 했을 때, 어마어마한 힘이 자기 몸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이제 겨우 일어섰는데 자기도 모르게 창백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 꿇고 말았다.그러다 정말 살아있는 전설을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신서후가 움직이기도 전에 김예훈은 그를 발로 걷어차 바닥에 눕히고는 머리를 짓밟았다.“이제는 알려줄 수 있겠지? 누가 보냈는지.”신서후는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결국엔 한숨을 내쉬었다.“말할게.”...저녁 8시, 호화롭기 그지없는 진주 남양 회관.무법 지대로 유명한 구룡성 부근에 자리 잡은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랐다.마음껏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곳이긴 했지만, 이곳만의 규칙이 있었다.남양의 상류 인사, 그리고 진주의 부자들도 이곳을 드나들기 좋아했다.이곳은 재미있고, 안전하고, 정보가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정장으로 갈아입은 김예훈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하지만 김예훈은 민첩하게도 이곳에 알게 모르게 고수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이들은 예리한 눈빛으로 이곳에 나타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눈빛에 살기는 장착하고 있지 않아 일반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김예훈은 로비를 쭉 둘러보더니 바로 8층
쨍!김예훈이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을 튕기자, 단검은 바로 천장에 꽂히고 말았다.상대방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다음 순간 두 손을 교차하면서 김예훈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남양의 남극권이었다.비록 섬라국의 택견처럼 살상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기술은 아니었다.하지만 김예훈을 만났으니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죽을 목숨이었다.김예훈은 덤덤한 표정으로 뒤로 반 발짝 물러서더니 옆에 놓여있는 꽃병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가격했다.퍽!머리가 박살 난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뒤로 휘청거렸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김예훈의 발에 차여 바닥에 널브러진 후였다.“풉!”피를 토해낸 그는 표정이 말도 아니었다.일어서려고 발버둥 쳤지만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었다.“잠깐만 쉬고 있어. 반시간뒤에야 일어설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병신이 될지도 몰라.”김예훈은 8층에 있는 유일한 방의 문을 발로 걷어차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문이 자동으로 양옆으로 스르륵 열리는 것이다.시야가 바로 넓어지는 느낌이었다.이때 앞에 원피스를 입고 수려한 미모를 지닌 한 여인이 가야금을 켜고 있었다.가늘고 하얀 손으로 가야금의 현을 튕기자,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김예훈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뼉을 쳤다.“실력이 대단하네요. 그런데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가야금을 켤 기분은 있으신가 봐요? 대단하다고 말씀드려야 할까요?”몸매를 드러내는 원피스를 입고 우아하게 고개를 드는 상대방의 모습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이 사람은 바로 진주·밀양에서 홍성파와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남양파 우두머리인 양유선이었다.김예훈을 보자 잠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표정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전혀 티가 안 났고, 그저 물끄러미 김예훈을 쳐다볼 뿐이다.무언의 기싸움 중인 이 둘은 상대방이 약점을 보이는 순간 바로 덮칠 것만 같았다.잠시후 양유선이 천천히 일어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이건 제가 큰돈을 들여 대한민국에서 공수한 가야금이거든요
김예훈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양유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하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이면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바로 이때,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면서 총을 들고 있는 수십 명의 남녀가 서서히 접근했다.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 외로 파란빛을 뿜어내는 활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열몇 명 있었다.김예훈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양유선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휘저었다.그러자 부하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김예훈이 자신을 죽이려고 마음먹기만 한다면 수십 명의 부하들이라고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일단은 뒤로 물러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양유선은 직접 차를 따라 김예훈한테 건네고는 자기도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세 가지를 알려주려고 찾아왔다고요? 저랑 일면식도 없는 김 도련님께서 저한테 알려줄 게 뭐가 있을까요?”“첫째, 신대호는 제가 죽였어요.”김예훈은 허순재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쓰려고 마음먹었다.“도박왕님을 죽이려고 하던데, 저를 만난 것이 최대 실수였죠.”“정말 운이 안 좋았네요.”양유선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그런데 도박왕님을 죽이려는 건 제 생각이 아니었어요. 비록 신대호 씨가 남양회관의 사람이긴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을 관리할 권력이 없거든요. 그가 한 짓이 저랑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제가 대신 한은 풀어줘야 하지 않겠어요?”양유선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당연하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두번째 일과는 연관이 있으시겠죠. 신서후도 이미 죽은 목숨이에요.”“이미 짐작하고 있었어요.”양유선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김 도련님께서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아무리 생각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예상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너무 방심했나 봐요. 김 도련님의 능력과 실력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네요. 이제야 김 도련님께서 진주·밀양 용전을 접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네요. 전에는 용문당, 용연옥과 용의 부대를 믿고 막 나가는 줄 알았는데 제가 김 도련님
김예훈은 정신 차리려고 찬물로 세수하고 싶은 정도였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미인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정말 타고난 것일 수도 있었다.이 세상에서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는 1%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김예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양유선을 쳐다보았다.“세 번째 일이나 이야기해 보시죠. 남양파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대호가 도박왕님을 죽이려고 목숨까지 잃었는데 또 신서후까지 보내 저를 죽이려고 했었죠. 결국 실패하긴 했지만 습격한 건 사실이잖아요. 한번도 모자라 두 번이나 그랬으면 제가 남양파를 싹쓸이해도 너무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오늘 기회를 한번 드리려고요.”김예훈은 찻잔에 담긴 차를 꿀꺽 삼켜버렸다.“제가 따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부터 제 사람을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진주·밀양 용전이든, 밀양 허씨 가문이든, 밀양 추씨 가문이든... 가능하시죠?”김예훈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아무렇지않게 말했다.하지만 양유선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신대호가 움직였던 것은 김현민이 시켜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리고 김현민의 목적은 알다시피 허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아 오는 것이다.그걸 방해하는 자는 모조리 죽어야만 했다.남양파가 이 일에 개입한 이유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 너무 강대해서였다.김현민이 하고 싶은 일을 감히 거역할 자가 있을까?아무리 홍성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남양파라고 해도 절대 김현민의 뜻을 어길 수가 없었다.진주·밀양은 시종 안동 김씨 가문의 천하였기 때문이다.진주 4대 명문가나 밀양 허씨 가문은 결국 안동 김씨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그렇다면 고작 남양파 주제에 그의 뜻을 어길 수가 있겠는가?진주·밀양에서 유일하게 김현민을 상대할 만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김예훈이 아닐까 싶다.양유선은 똑똑한 사람이라 김예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다름아닌 중립이었다.김예훈은 실질
김예훈은 한참동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양유선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양유선 씨, 설마 잊었어요? 진주·밀양 용전은 이제 제 것이라 정보를 빠삭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거. 신대호가 남양 남씨 가문의 사람인 건 맞지만, 양유선 씨의 신분도 평범하지만은 않잖아요. 진주·밀양 용전에서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양유선 씨는 남양파의 우두머리이자 남양 3대 가문 중의 하나인 양씨 가문의 장손녀잖아요. 신대호보다도 훨씬 대단한 신분을 가지고 있잖아요. 만약 양유선 씨께서 저랑 친구를 맺게 된다면 모든 결정권을 가지게 될 거예요.”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양유선을 쳐다보면서 계속해서 말했다.“아니면 제가 진주·밀양에서 사방이 적이라 저랑 끝까지 해볼 생각인가요?”김예훈은 오늘 화해할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남양파의 태도를 보고싶어서였다.만약 상대방이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하면 지금 상황에서 또 남양파를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었다.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등지겠다고 하면 남양파를 없애버릴 마음도 있었다.“저를 너무 난처하게 만드시는데요?”양유선은 한숨을 내쉬더니 피식 웃었다.“그런데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제가 명확한 답변을 드리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도 없겠죠. 이러시죠. 저도 허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는데 김 도련님께서 풍수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면서요. 그래서 말인데 저를 도와 사람 한 명을 살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을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신대호의 죽음은 없었던 일로 해드릴게요. 앞으로 어떠한 남양인도 이것을 핑계로 김 도련님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심지어 필요하다면 저희 남양파는 김 도련님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성의로 200억 원도 드릴게요.”양유선이 김예훈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어떻게 생각하세요?”“제가 풍수 대가는 아니라는 사실은 미리 말씀드려야겠어요. 그런데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한번 고민해 봐야겠어요. 살려줬으면 하는 사람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200억 원으로는 부족할 텐
양유선은 아무 말 없이 김예훈을 남양회관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김예훈도 쭈뼛거릴 마음도 없이 바로 따라갔다.양유선이 함정을 파놓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김예훈은 그녀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똑똑한 사람은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이 둘은 경비가 삼엄한 작은 골목을 지나 남양 풍의 마당에 도착하게 되었다.하지만 이 둘이 도착하자마자 검은 피부에 얼굴이 차갑기만 한 여자가 김예훈의 앞길을 막는 것이다.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근육질 몸매가 한 마리의 치타 같은 느낌이었다.우두커니 서 있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다음 순간, 그녀가 한숨을 내쉬자, 주위에서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수만 마리의 벌레가 동시에 김예훈을 향해 덮쳐오기 시작했다.김예훈 역시 피식 웃으면서 전쟁터에서 단련된 어마어마한 살기를 뿜어냈다.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멈칫하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서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이때, 그녀의 왼쪽 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더니 주위에서 들려오던 벌레 울음소리마저 그치면서 바닥에 벌레 사체가 후두두 떨어졌다.“남양 주술? 재미있네.”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벌레들을 가루가 될 정도로 힘껏 짓밟았다.“내 앞에서는 이런 기술을 선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창피하기만 할 거니까.”상대방은 멈칫하더니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또다시 공격하려고 했다.“나리야, 됐어. 그만해.”양유선은 나리가 갑자기 공격할 줄 몰랐는지 진지하게 말했다.“이분은 할아버지를 구해주러 온 분이야. 함부로 대하지 마.”나리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물러섰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양유선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김 도련님, 죄송해요. 할아버지 보디가드인데 어릴때부터 거칠게 자라서 조금 막무가내인 경향이 있거든요.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마음에 두지 말아 주세요.”김예훈이 아무렇지않게 말했다.“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를
“쓰레기”라는 세 글자에 김서하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김예훈 씨, 당신 말 대로 우리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끼리 당신이 반격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확실하게 현민이 잘못이 맞으니 제가 돌아가면 반드시 단단히 교육시켜서 직접 사과하게 할게요. 그러니 김예훈 씨도 성의를 보여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우리 모두 오해를 풀고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필경 현민이도 그렇고 김예훈 씨도 모두 큰 일을 할 사람인데 이렇게 싸우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거잖아요.”김예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성의를 보여달라고요? 그럼 먼저 멀리도 말고 바로 어제 용문도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야밤에 오륜 사찰의 선재 스님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말로는 오해를 풀자고 하면서 매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요? 심지어 저를 박연서 사모님 댁으로 가게 만든 것도 당신들이 꾸민 거잖아요.”김예훈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삑!”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김서하는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고 김예훈을 노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이 메시지는 누가 보낸 건가요?”김서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김현민의 부하일 거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만약 정말로 그녀의 추측이 맞는다면 안동 김씨 내부에 김현민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순간 김서하는 오늘 자기가 직접 김예훈을 찾아온 것은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김예훈은 비웃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이쯤 되면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이 메시지는 당연히 김현민이 보낸 것이고 저를 임수민 구하러 가게 해서 박연서 사모님을 만나게 하려는 계획이었잖아요. 당신들이 박연서 사모님의 손을 빌려 저를 죽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저의 손을 빌려 박연서 사모님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당신들의 계
“사모님이 초대하시는데 제가 왜 거절하겠어요?”김예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김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김서하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했다.김예훈이 차에 타자 김서하는 가볍게 웃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페라리 488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맹수와 같이 순환고속도로를 향해 질주했다.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김예훈이 고개를 돌려 김서하에게 물었다.“사모님, 정말로 저와 함께 비를 구경하면서 드라이브하려고 오신 건 아니죠? 저는 사모님과 함께 비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러니 이제 솔직하게 말씀하시죠.”김서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김예훈 씨가 우리 넷째 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서요. 그리고 그 대가로 조건을 걸었다고 들었어요.”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모님, 역시 소식이 빠르시네요. 저의 조건이 무엇인지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건 바로 김현민을 양자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였어요.”김예훈의 말에 들은 김서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주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실제로 그 조건 때문에 김현민은 정정당당하게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가 될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그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마음마저 짓밟는 격이다.“김예훈 씨, 잘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안동 김씨 가문의 일에 간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김서하가 계속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현재 권력 교체의 중요한 시기예요. 외부 사람들에게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내부적으로 엄청 치열하거든요. 아무리 진주·밀양 두 도시의 거물이라 할지언정 안동 김씨 가문의 싸움에 끼어들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혼자서 거기에 끼어들겠다는 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김서하는 말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았다.그녀의 오른쪽 다리의 치맛자락이 살짝 흩날리더니 보는 사람이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김서하의 적나라한 유혹
“내가 김예훈을 설득해 볼게. 그런데 계속해서 제멋대로 행동하면 죽여버릴 수밖에.”김서하는 어떻게든 김현민을 수장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비록 큰 피해를 준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양보하기만 한다면 진주·밀양 용전을 내놓을 마음도 있었다....시즌 호텔.하늘에서는 가랑비가 쏟아졌고, 호텔 전체가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토요타 프라도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들어가려던 김예훈 뒤로 갑자기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그의 앞에 페라리 488 한대가 멈춰 섰다.창문이 내려가면서 백옥과도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샤넬 드레스를 입고 구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요정 같은 얼굴이 보이자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상대는 바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서하였다.갑작스러운 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김병욱이 이 큰일을 꾸민 걸 보면 무조건 박연서가 1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하려는 것을 김현민에게 알려줬을 것이고, 이 타이밍에 김서하가 찾아온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은 싸우러 총이나 칼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홀몸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김예훈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의외였다.김서하도 의문스러운 그의 표정을 감지했는지 핸들을 잡고 창가에 기대어 김예훈을 향해 피식 웃었다.“김예훈 씨, 저랑 대화 좀 나눌까요?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풍경이 꽤 볼만한데 한번 보실래요?”침착하고 여유로운 표정, 무심하면서도 약간의 유혹이 담겨있는 말투였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이 둘이 꽤 괜찮은 사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이순간 김예훈은 두 손을 창문에 갖다 대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사모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저희 둘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가요? 그것도 깊은 원한이 있는 그런 관계 말이에요. 언제부터 저희가 비 오는 날 같이 드라이브하는 사이가 된 거죠? 말도 안 되잖아요.”김예훈은 그녀의 손에서 진주·밀양 용전을 빼앗아 왔는데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
김서하는 김현민의 말을 듣고서야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맞아. 그깟 임수민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을거야. 그런데 이런 사람을 살려두는 건 위험 요소가 될 수밖에 없어. 기회를 봐서 일본인한테 처리해달라고 해.”김서하는 단 한마디로 임수민의 생을 마감시켜 버렸다.바로 이때, 김병욱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구석에 가서 전화를 받더니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기 시작했다.이어 그는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김현민한테 말했다.“도련님, 큰일 났어요. 방금 별장에서 전해온 소식인데 박연서 사모님께서 10년 전 사건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하네요. 김예훈이 설득하기도 했고, 임수민의 증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아요.”쨍그랑.김서하는 표정이 다시 창백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김현민도 표정이 변하면서 앞으로 걸어가 무릎 꿇고 있는 김만태를 발로 걷어찼다.“이런 병신. 너 같은 병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안 돼. 박연서가 10년 전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해서는 안 돼.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다 죽을 수도 있고 나까지 수장 자리에 앉지 못할 수 있어.”김서하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현민아, 흥분하지 마. 그때 그 사건 흔적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했어. 박연서가 아무리 대단해도 증거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할 거야. 어차피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다 죽었어.”김서하는 이어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곽영현 일행을 쳐다보았다.필요하다면 이 사람들도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김현민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다 내가 신뢰하는 부하들인데 아쉽더라도 정말 죽여야 하는건가? 하지만 정말 그랬다간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 자리도 지킬 수 없을텐데?’다음 순간, 김현민은 억지로 냉정을 취하면서 말했다.“고모, 저희끼리 알고 있는 건 괜찮을 거예요. 기껏해 다 같이 잘되거나 다같이 망하는 거겠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죽었는데 아무것도
“비록 10년이나 지난 사건이긴 하지만 밝히려고 하면 분명 단서가 보일 거예요. 굳이 증거가 필요할까요? 제가 증거를 보여주면 안동 김씨 가문 수장님이 과연 믿어줄까요?”박연서의 표정은 더욱더 어두워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김 도련님, 오늘은 이만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빨리 답변드릴게요. 만약에 진짜라면 그 조건이 아니더라도 김현민은 절대 수장 자리에 앉을 수 없어요.”김예훈은 일어나 연락처를 남긴 후에 추하린을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김윤후 등은 휘둥그레한 모습으로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이들은 김예훈이 뺨 몇 대와 말 몇 마디로 안동 김씨 가문, 심지어 진주·밀양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퍽.김예훈이 안동 김씨 가문 별장을 떠났을 때, 빅토리아 항구에 있는 한 건물에는 김서하가 일그러진 얼굴로 테이블을 내리쳤다.안동 김씨 가문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서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김현민, 네 부하들은 어쩜 다 병신들밖에 없어. 어떻게 임수민 그년한테 우리 대화 내용을 듣게 할수 있냐고. 심지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에 들어서게 하다니. 걔가 박연서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었다는 거 몰라? 그년이 살아있기만 하면 들은 거 전부 다 박연서한테 전할 거라고. 그때되면 네가 수장 자리에 앉는 것도 문제일 거야. 김현민, 요즘 너무 편해서 그래? 아랫사람도 잘 간수하지 못할 정도로?”김병욱, 곽영현, 남지훈은 맞은편에 서서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김만태는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까지 박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제 잘못이에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쫓아갔다면 그년을 죽였을 거예요. 그러면 김예훈과 추하린이 기회를 틈타 별장으로 몰래 들어갈 일도 없고요.”“고모, 그만 탓해요.”김현민은 김서하에게 차를 건네면서 웃으며 말했다.“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임수민 그년이 중요한 순간에 박연서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만태도 최선을 다했어요
“멈춰. 아무도 움직이지 마.”바로 이때, 다시 평온을 되찾은 박연서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일어났다.“김 도련님께서는 지금 내 병을 치료하는 중이야. 너무 무례하게 대하지 마.”김윤후가 멈칫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이 새끼가...”“괜찮아. 정말 내 병을 치료해 주는 중이니까.”박연서는 처음에는 김예훈이 건방지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검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순간 그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였다.김윤후 등은 그녀의 표정을 보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맨날 우울하고 차갑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야 되살아난 것 같네. 그래. 바로 이래야지.’김예훈이 뺨으로 박연서의 가슴 한쪽에 고여있던 묵은 피를 뚫어낸 것이다.이건 또 무슨 치료법이람?김윤후 등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진주 10대 명의, 유럽 의학 대가, 일본 왕실 어의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이 김예훈이라는 놈이 뺨으로 바로 해결했다고? 믿을 수가 없어.’“사모님, 제가 뺨으로 사모님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분노를 깨워드린 거예요. 10년 동안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을 토해내게 한 거죠. 앞으로 한 달 동안은 편히 잠들 수 있을 거예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려 매일 밤 아들을 잃었던 그날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그런데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에요.”박연서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훨씬 개운해진 느낌이었다.이순간 그녀는 더 이상 김예훈을 의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젊은 나이에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님이 되고, 경기도 토박이인 이일매, 김병욱을 하룻밤 사이에 해결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네요. 전에는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조건을 들어줄게요.”박연서의 말에 보디가드들은 표정이 확 변하고 말았다.김예훈의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 곧 피바람이 불 것임을 의
얼굴이 창백해진 박연서는 잠시 후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김 도련님은 역시나 대단한 분이시네요. 김 도련님께서 알아차렸다면 굳이 저도 숨기지 않을게요. 10년 전 저한테 아들이 있었던 건 맞지만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이 세상을 떠났어요. 이것이 바로 저를 우울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죠. 그동안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이 일을 언급한 적도 없는데 김 도련님께서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물을게요. 제 병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제 아들을 돌려주기라도 할 거예요?”박연서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아들이 다시 살아나야만 이 병이 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아니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이때 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제 요구만 들어주시면 그 병을 치료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어요.”박연서는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천천히 말했다.“제가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해결하지 못하면요?”“사모님께서 동의하기만 하면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제가 무슨 능력으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인 사모님을 속이겠어요. 아무튼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인데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요?”박연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김 도련님, 이 조건을 들어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나 해요? 제가 김현민, 심지어 전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사람들과 등을 돌리는 거나 다름없어요. 즉 이 세상과 등지는 거죠. 제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제가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절대 후회하게 안 할 자신도 있고요.”박연서는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그 조건을 들어주긴 하겠지만 효과가 있는지부터 봐야겠어요. 제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아니면 며칠동안 먼저 조용히 쉬고 있을까요?”“필요 없어요.”김예훈은 고개를 흔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박연서의 뺨을 때렸다.쨕!뺨
박연서의 명령에 보디가드들은 잠시 망설이다 하나둘씩 주저하며 총을 내려놓았다.그들은 한편으로는 박연서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김 도련님이라고 하셨죠? 미안해요. 저희 윤후가 너무 충동적이었죠? 착한 아이예요. 저를 보호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게요.”이때 박연서가 표정이 좋지 않은 김윤후를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김윤후, 얼른 김 도련님께 사과해.”김윤후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저희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외부인이 김 도련님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까요...”박연서는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있다면 있는 거야. 얼른 사과해!”김윤후는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어렵게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김 도련님, 죄송해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윤후 씨도 사모님을 보호하느라 그런거 알아요. 윤후 씨를 탓할 마음 없어요. 그런데 아랫사람으로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저는 성격이 좋아서 이대로 넘어가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윤후 씨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요.”원래 불만이 많았던 김윤후는 김예훈이 방금 자신을 쉽게 제압한 장면이 떠올라 눈꺼풀이 떨렸다.아무리 김예훈의 나이가 어려 보이고 사기꾼처럼 보인다고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총격전에서 임수민을 구한 것도 모자라 박연서 앞에서 소신 있게 할 말을 다 하는 것만으로도 능력 있는 사람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최소한 진주·밀양에서 김현민 외에는 박연서 앞에서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젊은이는 없었기 때문이다.“아랫사람을 잘 가르치지 못한 저의 잘못도 있죠.”박연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가 대신 사과의 말씀을 드릴게요.”“괜찮습니다.”김예훈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의 잘못도 있죠. 의사도 아니면서 치료해 드릴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믿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죠.”박연서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쳐다보면서 김예훈에게 앉으라
두둥!김예훈이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모든 사람의 얼굴이 변하고 말았다.몇몇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보디가드들도 하나같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이들은 앞으로 걸어 나와 김예훈의 이마에 총을 갖다 대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이런 제기랄.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우리 사모님과 김현민 도련님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 사모님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치료해 주겠다고 할수 있어? 얼마나 많은 의사가 속수무책이었는지 알아? 머리털도 제대로 안 자란 놈이 우리 사모님을 치료해 주겠다고? 어디서 잘난 척이야.”그는 김예훈이 박연서의 심리 질환을 알아채서 놀라운 모양이다.하지만 그래도 김예훈이 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리고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누군가 시켜서 일부러 박연서와 김현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로 보였다.이곳이 피를 보면 안 되는 박연서의 휴양지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이 새끼가.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여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이라고. 이곳에서 헛소리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봤어? 눈치 있는 사람이면 얼른 사모님께 사과하고 꺼져. 아니면 어떻게든 너를 죽여버릴 거니까.”이순간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보디가드는 탑 장병급 실력자로 보였다.김예훈은 박연서의 보디가드마저 탑 장병급 실력자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박연서의 신분으로 탑 장병급 실력자를 보디가드로 들이는 것도 정상이었다.계속 기운을 모으는 중이던 보디가드는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김예훈이 사과하지 않거나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총을 쏠 기세였다.이때 김예훈은 총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팅.탑 장병급 실력자인 보디가드는 반응할 틈도 없이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고 총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그는 깜짝 놀라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전부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그리고 그가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