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김청미는 이미 하얀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그래서인지 여느 때와 달리 지적인 느낌이었다.김예훈은 그제야 알고 지내던 익숙한 김청미라는 느낌이 들었다.“장 옥주님은 역시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네. 내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선배를 데려온 걸 보면.”김예훈이 나타나자 김청미의 표정은 감정 기복이 심했다.“용연옥 감방장님 외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평생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김예훈은 표정 변화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날 왜 불렀는데? 마음껏 욕하려고? 아니면 내 모습을 기억해 뒀다가 귀신이 되어서까지 내버려두지 않으려고?’김예훈이 말했다.“우리가 혈연관계가 있는 점을 봐서 10분만 줄게. 10분 뒤에 바로 갈 거야. 추하린 씨와 함께 진주·밀양 용전을 다스리려면 바빠.”진주·밀양 용전을 다스린다는 말에 김청미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정민아, 하은혜, 우현아, 방수아, 추하린 같은 여자한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거 알아. 아무리 그래도 나도 선배라고 불러주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 정도로 냉정할 수 있어?”김예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할수 없지 뭐. 네가 날 한두 번 죽이려고 했어? 그러고도 너를 잘해달라고? 내가 뭐 바보야? 솔직히 말해서 용연옥에 유용한 사람이 아니라면 진작에 목을 졸라 죽여버렸어.”“역시나 김 세자님은 다르네.”김청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사실 계속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 선배가 소문으로만 듣던 당도 부대 총사령관이 맞아?”“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은데?”김예훈이 냉랭하게 물었다.“난 잘 모르겠어.”김청미의 표정은 이상하기만 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김현민이야말로 당도 부대 총사령관이라고 했어. 곧 대한민국 9대 국방부 총사령관직을 맡게 될 사람이라고 하잖아.”김예훈은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무슨 자격으로?”김청미가 담담하게 말했다.“김현민은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 이 정도로 칼 같다니. 김청미한테 모든 죄를 떠넘겼다고? 진주·밀양 용전을 잃어버렸다고 분풀이하나 보네. 안동 김씨 가문과 용전한테는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겠지만 김청미한테는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이야. 안동 김씨 가문과 용전에서 보호해 줬다면 어쩌면 다시 해 뜰 날을 맞이할지도 모르는데...’“이 모든 것이 불공평하고, 억울하다고 느껴지면 배후자인 김현민을 불어내.”김예훈은 그림과도 같은 김청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네가 증거를 내놓으면 용문당과 용연옥에서 너의 안전을 책임져 줄 거야. 나머지 인생을 해외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해줄게.”“김현민을 불라고?”김청미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현민은 선배랑 만난 적도 없고, 선배를 타깃으로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어. 비록 김현민이 배후자인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는 모두 의미 없는 일이야. 심지어 내가 혼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볼 수 있지. 김현민이 한 의미심장한 말에 내가 알아서 움직였거든.”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냥 잘못을 인정하려고 오늘 나를 부른 거라면 이 만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봐.”“당연히 의미 있는 일이지. 이렇게 된 이상 난 용연옥을 떠날 수 없어. 나랑 함께 지옥에 갈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 사실 알려줄 것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 김현민이 선배를 짓밟으려고 한 진짜 이유이기도 하지.”김예훈은 김청미더러 계속해서 말해보라고 했다.”“선배와 나를 포함한 전체 경기도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일부분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족보를 봤을 때 우리 모두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선배 때문에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어르신이 경기도 김씨 가문을 여겨보기 시작했어.”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내가 수장 자리를 빼앗을까 봐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김청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이 모든
김예훈이 떠난 지 얼마 안 지나 장덕수가 심문실로 들어오면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김청미를 쳐다보았다.“지옥으로 가기 전에 이렇게 큰 비밀을 알려준 거, 김현민과 치고받는 꼴을 보고 싶어서야?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야.”“그런거 아니에요.”김청미의 말투는 담담하기만 했다.“김현민이 저를 버렸는데 굳이 비밀을 간직할 이유는 없잖아요. 선배가 김현민을 죽일 순 없어도 괴롭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장덕수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 들어 진주 태산 쪽을 바라보았다.김현민이 김예훈을 건들지 않았더라면 이 많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김현민이 먼저 건드렸고, 김예훈도 진실을 알아버렸으니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그런데 김현민은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을 맡을 사람인데 김 회장님이 그의 상대가 될수 있을까?”...용연옥 감옥을 벗어난 김예훈은 밀양 송산 빌라로 향했다.오늘은 추하린과 함께 진주·밀양 용전을 인수·인계받으러 가기로 했다.한참을 기다렸는데 추하린 대신 불청객 한명이 찾아왔다.김예훈은 보디가드가 건넨 배첩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줘도 된다고 했다.그러고는 마당으로 가 롤스로이스 한대가 세워지기를 기다렸다.“도박왕께서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을 찾으셨을까요.”차 문이 열리는 순간, 사면팔방에서 정장을 입은 보디가드 수십 명이 나타났다.이어 백발의 노인이 김예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환갑이 넘는 나이었지만 정정한 모습으로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겼다.이 사람은 다름아닌 도박왕 허순재였다.“김 회장님, 안녕하세요.”허순재는 김예훈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처음 보는 도박왕의 모습에 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상대방이 찾아온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애써 모른 척하기로 했다.김예훈이 허씨 가문과 관계가 안 좋긴 해도 그렇게 원한이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최소한 소문으로만 듣던 도박왕 허순재한테는 악한 감정이 없었다.“어제 뵈러 오고 싶었는데 김 회장님께
두 사람은 천천히 송산 꼭대기에 있는 화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밀회하기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열몇 명의 허씨 가문 보디가드들이 따라서 화원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허순재가 손을 흔들면서 말렸다. 김예훈과 상의할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김 회장님,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걷고 있는데 허순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첫째, 제 불효자식들이 김 회장님 여인을 의도적으로 해치려고 한 것도, 김 회장님을 모함한 것도,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김예훈은 멈칫도 잠시 담담하게 말했다.“도박왕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와 허씨 가문의 모순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는 아닙니다. 허씨 가문에서 저를 건들지만 않으면 저도 따라서 찾을 일도 없습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허씨 가문은 그 정도로 눈치 없는 가문은 아닙니다.”허순재는 피식 웃고 말았다.“오늘 아침 찾아오기 전에 제 불효자식들을 통해 전에 있었던 일을 들었는데 다 저희 허씨 가문의 잘못이더라고요. 사과드리는 의미로 제 막내아들인 허준서가 갖고 있는 도박패를 드리려고요. 그리고 부산 팰리스의 모든 지분도 김 회장님의 명의로 돌리려는 생각입니다. 저희 허씨 가문의 자그마한 성의이기 때문에 꼭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거절하시면 저희 허씨 가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이 됩니다. 두번째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추하린 씨한테 진주·밀양 용전 전주 자리를 내어주신 건 저희 진주·밀양 명문가에 기회를 주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늘 공평 공정한 추씨 가문의 추하린 씨가 전주 자리를 맡으면 안동 김씨 가문을 잘 다스릴 것이기 때문에 저희한테는 좋은 일이거든요. 한 마리의 호랑이보다 두 마리가 낫지 않을까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저 말고 김서하 사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요? 저는 용문당과 함께 강제적으로 진주·밀양 용전을 쳐들어가려고 했거든요.”허순재는 웃으면서 아예 화제를 돌렸다.“아, 그리고 세 번째로는 저희 허씨 가문의 풍수를 봐
“하인이 사라졌다고요?”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경찰에는 신고하셨나요?”허순재는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솔직히 말해서 저희 허씨 가문은 규모가 큰 만큼 말하지 못할 비밀도 많은지라 경찰에 신고하기 어려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지는 못해도 진주·밀양에서 유명한 사설탐정 세 명을 모셔 왔지만 크게 발견한 점이 없었습니다. 하인들이 갑자기 증발된 느낌이에요. 하인들의 거처마저 없었더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의심될 정도라니까요. 이 일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태인데 김 회장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도박왕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조용한 곳에 가서 맥을 한번 짚어봐도 될까요?”허순재는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럼요. 김 회장님 하고 싶으신 대로 하면 돼요.”두둥!바로 이때, 김예훈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허순재를 밀쳐내고 앞구르기를 했다.다음 순간, 갑자기 검은색 법장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면서 바닥에 큰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허순재의 옆으로 다가갔다.샤샤샥!이순간 주위에서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세 명의 승포를 입은 섬라인이 나타났다.허순재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말했다.“섬라 3대 마승?”“어디서 온 사람들이에요?”김예훈은 이 정도의 피습으로 당황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신분만큼은 확인해야 했다.“섬라 대불사의 마승이요.”허순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용전과 비슷한 조직이지만 또 달라요. 대한민국의 용전은 나라를 위해 일하지만 섬라 마승은 돈만 주면 해서는 안 될 짓도 하거든요. 섬라왕이 도박패 지분을 갖고 싶다길래 거절한 적이 있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폭군 같은 섬라왕이 체면이 깎여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걸 거예요.”허순재가 침착하게 분석에 나섰다.김예훈은 그제야 이 섬라 마승들이 자신이 아니라 허순재를 타깃으로 찾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오랫동안 허순재를 감시해 오던 이들은 마땅히 나
“이런 제기랄!”3대 마승은 분노하더니 동시에 법장을 꺼냈다.이때 허순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나한테 덮치는 건 괜찮아. 죽기 살기로 붙어보는 거지, 뭐.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이분은 아무 잘못도 없어. 너희랑 아무 원한도 없는데 그냥 보내줘. 이분이 가시면 천천히 붙어보자고. 경기도 세자님이자 부산 용문당 회장님이라 목숨을 잃으시면 너희들도 큰 화를 입을 거거든. 너희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허순재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지 담담한 표정이었다.하필 오늘 김예훈과 만나자고해서 피해를 줄까 봐 어떻게든 먼저 보내고 싶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도박왕님께서 제 실력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제가 실력 없다고 해도 어떻게 도박왕님을 혼자 두고 가겠습니까.”김예훈은 3대 마승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손바닥만 한 섬라가 감히 우리 대한민국을 건드려? 내 체면을 뭐로 보는거야!”3대 마승은 피식 웃더니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허순재, 저놈 신분이 심상치 않다고? 그러면 몸값도 어마어마하겠네? 저놈을 생포하기만 하면 큰돈을 얻을 수 있겠네? 허순재, 네 놈만 죽이려고 했는데 이제 할 일이 하나 더 생겼어. 우리 섬마왕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곱상하게 생기고, 몸값이 어마어마한 사람이거든.”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섬라도 어떻게 보면 동남 해역의 강국 중의 하나인데 어떻게 깡패 같은 말만 내뱉지? 벌써 잊었어? 그때 혼자서 칼 한 자루만 든 총사령관님을 상대로 참패한 것도 모자라 너희 섬라왕이 무릎 꿇고 다시는 대한민국에 발을 내딛지 않겠다고 했던 거. 왜, 이제는 약속을 어기려고? 총사령관님이 또 본때를 보여줄까 봐 두렵지도 않아?”총사령관님 언급에 3대 마승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잠시 후 한 마승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예훈이라고 했나? 총사령관님을 이용해서 겁줄 생각하지 마. 총사령관님은 이미 3년 전에 전역했다고 들었어. 3년이나 실종된 사람을 언급해서 우리한테 겁주
마승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김예훈은 또 한 번 앞으로 튕겨 나가면서 그의 뺨을 때리려고 손바닥을 내밀었다.깜짝 놀란 마승은 피해 보려고 했지만 차마 법장을 들어 올릴 새도 없이 주먹을 내밀뿐이다.퍽!손바닥과 주먹은 마치 망치가 서로 맞닿은 듯이 거대한 소리와 함께 눈 부신 스파크를 일으켰다.빠직!살짝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마승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손에 쥐고 있던 법장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김예훈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했다.파바박!하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김예훈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기세로 마승의 오른쪽 뺨을 노렸다.샤샤샥!마승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발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그림자도 쫓아 못 오는 김예훈의 스피드보다는 빠르지 못했다.그는 어떻게든 마승의 얼굴을 때릴 작정이었다.쨕!또 한 번 뺨 소리가 들려오더니 마승은 공중에서 머무르다 바닥에 떨어진 순간, 얼굴이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올랐다.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말았다.첫 번째 뺨은 피습이라면 두번째 뺨은 진정한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재밌군. 섬라 마승이 장병급 실력을 갖추고 있다니. 좀만 더 연마하면 무신 급이 되겠어.”김예훈은 휴지로 손바닥을 닦았다.“그런데 이깟 실력으로 자칭 마승이라고 하는 거야? 무슨 염치로? 우물 안의 개구리라 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야?”“너!”김예훈에게 손가락질하던 마승은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피를 토해냈다.섬라 3대 마승은 최근 몇 년 동안 동남 해역을 헤집고 다니면서 천하무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들 체면을 지켜주었다.3대 마승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김예훈한테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이순간 3대 마승은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지금까지 이렇게 짓밟힌 적도, 무시를 당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3대 마승은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볼 뿐이다.섬라왕 특유의 전통 무술을 연마한 이 세 명은 누구나 다
“그래서 오늘 우리 위대한 섬라를 위하여! 위대한 섬라왕을 위하여 너랑 허순재는 죽어야겠어!”대마승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정의로운 말투로 말했다.김예훈은 휴지를 바닥에 툭 던지고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한 명씩 달려들 거야? 아니면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 거야?”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허순재는 이미 김예훈의 실력을 예상했기 때문에 전혀 놀라운 표정이 아니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 된 것만 봐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허순재가 마승을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김 회장님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 분이신지 알겠지? 그러니까 그냥 보내는 것이 좋을거야. 나를 죽이는 것이 너희들 주요 목적이 아니었어? 굳이 다른 사람한테 힘 뺄 필요는 없지 않아?”“꺼져!”허순재의 청산유수에 마승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허순재,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거야. 네가 한 번이고 두 번이고 우리 섬라왕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우리 섬라에서도 대단한 젊은이들을 만들어 냈다고. 그러면 우리 셋이 굳이 나설 필요도 없이 섬라는 세계 강국 중의 하나로 거듭났겠지. 그런데 네가 감히 우리를 무시해? 이런 제기랄!”대마승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나머지 두 마승의 표정도 어두워지고 말았다.섬라는 동남 해역의 강국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냥 이 정도의 범위에서만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젊은 인재를 배양해 낼 자금도 부족해서 도박왕 허순재에게까지 손 벌릴 정도였으니 말이다.허순재는 한때 도박왕인 만큼 재산이 어마어마했다.이들은 도박왕 같은 사람은 무조건 섬라를 모시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밀양도 동남 해역 범위에 있었기 때문에 밀양의 돈은 섬라의 돈과도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정정당당하게 강도질하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이때 김예훈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허순재를 힐끔 쳐다보았다.“섬라왕이 도박왕님과 손잡는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너무 궁금해서요.”허순재
순식간에 1분이 지나가고, 34명의 금 레벨의 인원은 모두 다 남기로 했다.용전의 지위와 연봉이 아까워서인지, 추하린이 이 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는지는 몰랐다.추하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들을 쳐다보면서 자기만의 진주·밀양 용전의 규칙을 내세우기로 했다.이 규칙을 어기는 자가 나타나면 바로 법에 따라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추하린은 앞으로 진주·밀양 용전의 규칙을 진일보 세부화하여 어기는 자가 있으면 피도 눈물도 없이 바로 처단하겠다고 했다.어느정도 부담을 느낀 34명의 금 레벨의 인원들은 추하린이 만만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래도 용전 본부의 도움 없이 진주·밀양 용전은 오래 못 갈 거로 생각했다.기껏해 한 달도 안 되어 울며불며 용전 본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예상했다.추하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원을 재배치하여 원래의 조직도를 갈아엎었다.내부 규칙을 세부화한 덕에 진주·밀양 용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흔들림 없이 잘 운영될 수 있었다.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추하린은 드디어 업무를 다 마치게 되었다.이때 부하가 국밥 두 그릇을 가지고 와 김예훈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경찰서 서열 2위를 하기에는 아까운 존재였네요.”김예훈은 수저를 들면서 감탄했다.추하린의 능력에 놀란 것도 있고, 다른 한 면으로는 이제부터 추하린 덕에 진주·밀양 용전을 전면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현민 곁에 스파이를 한 명 붙여놓은 것과도 같았다.김현민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김예훈도 선제공격으로 짓밟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이때 김예훈이 태산 뒤쪽을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진주·밀양 용전을 철저히 장악한 뒤에 해야 할 첫 번째 임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추하린은 멈칫하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을 감시하는 거겠죠. 특히 김현민 씨요. 어떻게 움직일지는 도련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김예훈이 피식 웃
진주·밀양 용전 고위층들은 추하린의 눈빛을 마주할 때 심지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비록 불만이 많았지만, 전주자리에 앉은 추하린이 그들의 명줄을 잡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전에는 나이 어린 추하린이 무슨 일을 해내겠냐고 똘똘 뭉쳐서 그녀를 쫓아내려고 했다.추하린이 겁먹고 그들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들의 권력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할 정도로 기가 센 사람일 줄 몰랐다.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바로 해고하겠다고 했다.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에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겁이 나긴 해도 금 레벨의 인원들은 나이 어린 추하린을 볼 때마다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금 레벨이라고.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고!’‘내가 너 같은 계집애를 무서워할 것 같아?’하지만 불만이 많아도 쉽게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은 없었다.갓 부임한 추하린이 가장 의욕이 넘칠 때 누구를 잡고 늘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김예훈이 그녀의 옆에 앉아 조용히 이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추하린은 쭉 둘러보다 빈자리 두 개를 발견하더니 말했다.“모든 업무를 내려놓고 무조건 용전으로 와야 한다고 했잖아요! 안 온 사람은 누구예요!”이때 단발머리의 한 여성이 말했다.“전주님, 백우석 씨와 채지민 씨입니다. 한 분은 몸이 편찮으시고 한 분은 일본에서 일을 해결하고 있어서 저보고 대신 전주님께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그녀 역시 추하린이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을 눈치채고 바로 나서서 설명했다.김예훈은 자료를 통해 이 두 사람이 이전 전주의 오른팔과 왼팔인 것을 알게 되었다.백서하와도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보면 충분히 반항할 만도 했다.“그래요.”추하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인사팀에서는 저 두 사람을 오늘부로 해고해 주세요. 잠시 저 두 분의 조수께서 업무를 맡아주시고, 잘하시면 한 달 내로 승진도 가능합니다. 저 두 사람이 받던 대우를 똑같이 받게 해드리겠습니다.”금 레벨의 인원들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
추하린은 김예훈의 표정을 무시한 채 진주에 들어서자마자 명령을 내렸다.진주·밀양 용전 금은동철 4급 인원은 얼마나 급한 일이 있든 간에 모두 다 내려놓고 무조건 10시 전에 진주·밀양 용전으로 모여야 했다.하지만 김예훈이 예상했던 대로 금 레벨의 36명 인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12명은 밀양에 출장 갔다고 했고, 12명은 할 일이 있다고 했고, 마지막 12명은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새로 전주 자리를 부임한 추하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이때 추하린은 차가운 표정으로 또 한 번 명령을 내렸다.10시 전에 진주·밀양 용전에 나타나지 않으면 영원히 자기 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이 36명의 금 레벨 인원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모든 업무와 권력을 넘기기로 했다.심지어 이 사람들이 진주·밀양 용전에서 쫓겨나서도 용전과 관련된 정보를 누설하는 순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그렇게 살기가 넘치는 명령이 전해지고, 추하린을 무시하던 36명의 금 레벨의 인원은 바로 말을 바꾸면서 10시 전에 무조건 도착하겠다고 말했다.이 사람들이 용전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저마다 어마어마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용전에서 받는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20억 원의 연봉 이외에 어마어마한 권력과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만약 정말 용전에서 쫓겨난다면 막대한 손실을 볼 것이다.이 사람들의 약점을 건드리면 순순히 말을 잘 들을 것이 뻔했다.무언의 신경전이 오가고 있을 때, 추하린과 김예훈은 진주·밀양 용전에 도착하게 되었다.추하린이 차에서 내렸을 때, 통지를 받고 도착한 수백 명의 금은동철 4급 인원들이 전신 무장한 채 추하린을 맞이하고 있었다.금 레벨의 인원들은 안색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똑같이 공손하게 맞이하고 있었다.추하린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들을 무시한 채 전체 진주·밀양 용전을 순찰하기 시작했다.그녀의 옆에는 밀양에서부터 데려온 믿을만한 사람이 그녀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추하린은 진주·밀양 용전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한다고
“도박왕님, 소귀는 주인을 잃었기 때문에 3일 내로 폭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때되면 허씨 가문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 나갈 수도 있어요. 지금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 그때 가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니까요.”“당연히 해결해야죠!”허순재는 3분 동안 곰곰히 생각하더니 결국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저에게 하루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허씨 가문의 장로분들을 설득해야 김 회장님께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허순재가 허씨 가문의 권력을 잡고 있다고 해도 장로들의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조사와 연관된 일이라 어르신들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다간 나중에 큰 폭풍이 일어날지도 몰랐다.김예훈은 알겠다면서 이곳을 벗어나자고 했다.“요 며칠 저는 진주·밀양에서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연락처이기 때문에 결정하신 뒤에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최대한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마당에 흑구 피를 뿌려주시고, 가족분들한테 절대 집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세요. 지금 집을 떠나는 건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거든요.”김예훈은 말을 끝내고 뒤돌아 이곳을 떠났다.허순재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주영철이 말했다.“저 김예훈이라는 사람 말을 믿을 수 있겠어? 조사를 망가뜨렸다가 나중에 어떻게 수습하려고!”허순재가 담담하게 말했다.“지금까지 진주·밀양에서 한 행동을 보면 믿을만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래도 대안은 준비해야지. 오륜 사찰 장로님들을 모셔 와. 최대한 조사를 망가뜨리지 않는 방법이 없는지 확인해야지.”허순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허씨 가문을 벗어난 김예훈은 바로 추하린에게 연락하여 함께 진주 용전으로 가기로 했다.어제 이후로 진주 용전의 고위층들은 모조리 아웃당하고 말았다.그리고 이제부터 추하린이 새로운 전주라는 공고까지 공개되었다.진주 용전은 이제부터 용전 소속이 아니라 용문당, 용연옥, 용의 부대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김 회장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허순재는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고 한숨을 크게 들이마셨다.비록 당황하긴 했어도 한때 도박왕까지 한 사람이라 당황한 티를 내면 안 되었다.김예훈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했다.“도박왕님께서 동남 해역에 오래 계셨다면 남양음술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일은 섬라국의 3대 마승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까 보신 것은 남양음술에서 가장 음흉하기로 소문난 양소귀였습니다. 아마도 3대 마승이 키워낸 소귀인 것 같은데 일부러 허씨 가문의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죽어버렸으니 이 소귀들도 따라서 갈피를 잃은 거죠. 양소귀는 갓 죽은 아이의 영혼을 곁에 가두어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소귀는 매일 대량의 피와 살을 먹어야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씨 가문의 하인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도 이 소귀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허순재는 멈칫하더니 실성하고 말았다.“소귀가 사람을 먹는다고요? 말도 안 돼.”김예훈의 말이 믿기 어려운지 주영철 역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의 표정을 본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비록 저는 풍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양소귀는 솔직히 말해서 사람을 죽이는 음술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해결 방법을 알고 있고요.”유라시아 전쟁에서 겪어보지 못한 것이 없는 김예훈은 표정이 담담하기만 했다.일본의 닌자와 음양사, 리카 제국의 전사, 영국 제국의 신전 기사, 유럽의 위도우 등등.남양의 귀신을 전쟁터에서 천 마리는 안 되어도 800마리는 거뜬히 잡았기 때문에 양소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해결 방법을 알고 있다고요?”허순재가 겨우 입을 열었다.“김 회장님께서는 이 소귀를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인가요?”“구체적인 상황을 봐야 하므로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조사가 80%는 망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조사가 망가질 수 있다고요?”허순재는
선재 스님이 김현민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 때, 김예훈은 허순재와 함께 허씨 가문을 한 바퀴 구경하고 있었다.허씨 가문 조사 앞에 도착했을 때, 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그러더니 허순재더러 다른 사람은 다 보내고 믿을만한 사람 한 명만 남기라고 말했다.김예훈이 왜 그러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말대로 집사 한 명만 남겼다.집사는 환갑이 넘는 나이였지만 기운이 넘쳐 보였고, 차가운 표정을 보면 왕년에 그래도 어마어마한 사람인 것을 느낄수 있었다.“김 회장님, 이분은 저희 허씨 가문의 집사님이신 주영철이라고 합니다. 저랑 함께 자라온 벗이며 함께 생사를 나눈 사이죠. 자식들보다 더 믿는 사람입니다.”허순재는 주영철이 자신한테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주고 있었다.“해야 하는 일이 위험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영철이는 저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사람이니까요.”주영철은 담담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인 것을 느낄수 있었다.허순재를 해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칼받이가 되어줄 사람이었다.“믿을만한 사람을 남기라고 한 것은 도박왕님을 보호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것입니다. 이따 저는 도박왕님을 보호해 드릴 겨를이 없을 거거든요.”김예훈은 두 사람더러 마당 정중앙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놓인 조사 앞에 서 있으라고 했다.“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햇빛이 비치는 곳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김예훈의 의미심장한 말에 허순재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김 회장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뭘 준비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저희 허씨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과 연관된 건가요?”타다닥!김예훈이 아무 설명 없이 돌멩이 하나를 튕기자, 조사 앞에 나란히 놓인 조상 비석들이 전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허순재는 표정이 굳어버렸고, 주영철 역시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허씨 가문 조상 비석을 깨뜨렸다는 것은 허순재의 체면을 짓밟아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하지만 허순재가 무슨
“김 회장님, 농담도 참.”허순재는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애써 화제를 돌려보려고 했다.“그런데 김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맞는 말씀도 있어요. 반년 동안 저희 허씨 가문은 정말 바람 잘 날이 없었거든요. 제 건강은 물론 제 불효자식들도 하나둘씩 김 회장님을 건드려서 병신이 되어서 돌아왔잖아요. 김 회장님 실력도 물론 대단하시겠지만, 저희 허씨 가문의 운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저는 김 회장님을 믿어보려고요!”허순재는 다른 각도에 서서 김예훈과 허씨 가문의 작은 원한을 언급하면서 자기 진심을 보여주기도 했다.커피를 마시고 있던 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마침 점심시간이 풍수지리를 보는 가장 적합한 시간인데 제 생각이 맞는지 한번 구석구석 확인해 볼까요?”허순재가 흔쾌히 대답했다.“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 얘들아! 현장 정리 좀.”...김예훈이 허씨 가문의 풍수를 봐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선재 스님은 토요타 알파드 차에 올라타 뒤따라오는 허유주를 아예 무시했다.밀양 송산 별장 구역을 벗어났을 때, 선재 스님은 그제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일은 잘 해결되고 있나요?”전화기 너머에서 중저음의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선재 스님은 김예훈 앞에서 기세등등하던 모습과는 달리 온화한 표정이었다.“현민 씨, 김예훈 그놈이 나타나는 바람에 변고가 생겼어요. 실력이 어마어마한 것도 모자라 풍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저희 구음술을 바로 알아버렸어요.”전화기 너머의 김현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알았어요.”선재 스님이 계속해서 말했다.“지금 제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은 김예훈이 구음술을 풀어버리고 허순재의 목숨을 구제해 주는 거예요. 허씨 가문 자식들은 현민 씨 손바닥 안에 있다지만 허순재 그 능구렁이는 현민 씨를 믿을 생각을 하지 않잖아요. 허순재가 권력을 쥐고 계속 살아있는 한 밀양 허씨 가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면 밀양 상류 인사
야단법석 이후에 허도겸이 응급실로 실려 가는 바람에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심각해지고 말았다.허씨 가문 사람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조각들을 보고 하나같이 식은땀을 흘렸다.“여러분, 이제 믿으시겠어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이때 허유주가 여전히 고집을 부리면서 말했다.“김 세자님, 저희 셋째 오빠가 쓰러진 건 우연일 수도 있으므로 확실한 증거로 될수 없어요.”“확실한 증거가 필요해요?’김예훈은 바닥에서 수맥 탐지 봉 조각을 주워 마당으로 튕겼다.퍽!이때, 햇살을 맞은 조각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하늘에 순식간에 밀려온 먹구름은 귀실 얼굴로 변했고, 따라서 원망이 가득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햇빛이 비쳐오면서 다시 말끔히 사라졌다.빠직.음기가 흩어져 가는 순간, 유일하게 남은 조각이 가루로 변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이거면 확실한 증거가 될수 있겠어요?”김예훈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아까는 조각 하나뿐이지만 전체 수맥 탐지 봉을 만졌다간 재난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맥 탐지 봉으로 풍수를 본다고 해도 음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풍수로 현재 문제점을 해결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고요. 3년 정도 지났을 때 사람이 한 명씩 죽어 나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저도 그저 우연일 뿐 오륜 사찰에서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고 믿고 싶네요.”허순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선재 스님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말았다.“아빠, 어떻게 김 세자님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요?”허유주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요? 지금 허씨 가문과 오륜 사찰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거라고요!”허유주는 지금 당장 김예훈의 멱을 따서 죽여버리고 싶었다.‘내가 어떻게 오륜 사찰에 들어갔는데. 이러다 성녀분의 미움을 사면 어떡하지?’허순재는 진지하게 허유주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퍽!이때 선재 스님이 갑자기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자리에서 벌
김예훈의 의미심장한 말에 허씨 가문 사람들은 서로 쳐다볼 뿐이다.이때 허유주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김 세자님, 너무 없는 말을 지어내시는 거 아니에요? 최근 반년 동안 저한테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요?”김예훈이 허유주를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허유주 씨는 아직 공부할 나이라 평소에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어서 음기를 흡수할 기회가 없었겠죠.”허유주는 이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지 여전히 가소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지만 다른 허씨 가문 사람들은 잠깐 고민하더니 얼굴이 확 변하고 말았다.이때 허준서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맞는 말이야. 요즘 도박할 때마다 돈을 잃고 있어.”허성빈 역시 마른기침하더니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요즘 들어 예전보다 잔병치레가 많아진 허씨 가문의 여자들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약을 먹으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병은 아니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었다.다년간 보약이란 보약은 다 먹어본 허씨 가문 사람들의 체력을 봤을 때 10년에 한 번 아플까 말까, 한 병을 요즘 들어 몰아서 앓고 있으니 말이다.허순재 역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맞아요. 최근 들어 저도 몸이 많이 허약해진 느낌이에요. 기침을 할때 피까지 봤다니까요? 밖에서 도는 소문에 의하면 제가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어요.”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러면 맞네요.”선재 스님이 냉랭하게 말했다.“허씨 가문 사람들의 체내에 음기가 있다고 해도 저희 오륜 사찰 수맥 탐지 봉에서 흡수한 거라고 증명할 수 있어요? 저희 수맥 탐지 봉이 허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냐고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선재 스님, 이것마저 증명할 수 없다면 그야말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일인데 말이죠. 이 자그마한 조각을 봐도 수맥 탐지 봉에 음기가 가득했다는 것을 느낄수 있어요. 허유주 씨를 제외한 분들이 이 조각을 3초 이상 쥐고 있으면 무조건 기절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