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지고! 극악무도하고! 냉정하기까지!이런 생각에 노성수는 호흡이 가빠지면서 가슴이 들썩거렸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는 김예훈을 자극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분통하기만 했다.성수당 3,000명 제자가 동시에 덮치면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놓을 수 있었다.아직 제대로 된 실력도 보여주지 못한 채 인질로 잡혔으니 화가 나서 피를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무리 그래도 부산 지하 세계 일인자라는 사람이 이름도 모를 사람의 손에 죽으면 한 많은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지도 몰랐다.김예훈이 한숨을 내쉬었다.“난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야. 3초만 더 줄게. 그래도 안 풀어줄 거면 지옥에 보내줄게.”이 장면을 지켜보던 하은혜는 넋이 나갔다.김예훈이 이곳에 온 목적이 엄마를 살려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절대 이렇게 강하게 나갈 줄은 몰랐다.노성수는 아픔도 모르고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풀어줘? 심 세자님께서 이 모든 걸 계획했는데... 풀어주면 날 용서해 줄까? 안 풀어주면 김예훈 이 자식이 날 바로 죽여버리겠지?’“잘 생각해 봤어?”김예훈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3, 2, 1...”이때,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저승사자를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땀을 뻘뻘 흘리던 노성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심옥연이 용서해 주지 않아도 목숨만은 구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대로 심정효를 풀어주지 않으면 정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할지도 몰랐다.“풀어줘!”노성수가 명령했다.“심 여사님 데려와!”얼마 지나지 않아, 우아한 모습이 지하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바로 심정효였다.비록 얼굴이 초췌해지긴 했지만 별로 큰 고문은 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엄마!”하은혜는 엄마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심정효는 노성수에게 총을 겨눈 김예훈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손 머리 위로! 아무도 움직이지 마!”바로 이때, 밖에서 경찰차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열몇 명의 완전무장한 경찰이 뛰어
부산 경찰서 심문실.김예훈은 여유적적 TV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오늘 오후 부산 버뮤다에서는 한차례 납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범인은 다름아닌 성수당이었고 피해자는 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심씨 가문의 따님이었습니다.”비록 피해자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건 현장 성수당을 바로 봉쇄해 버렸다.가해자 노성수는 이미 감옥으로 끌려들어 갔고 김예훈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실 뿐이다.그러고는 맞은편에 있는 유홍기를 향해 피식 웃었다.“서장님,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유홍기가 어색하게 웃었다.“아닙니다. 김 도련님은 심 여사님을 구출해 낸 용감한 시민입니다. 그전의 일도 그렇고, 감사패를 하나 드려야겠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저한테 미리 언질이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게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가끔은 사소한 일 때문에 전체에 영향 주기도 하지요. 제가 미리 언질을 드렸다면 구출 작전에 실패했을 수도 있었습니다.”유홍기가 멈칫하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성수당의 배후자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이번에는 하은혜 모녀가 심택연의 손을 빌려 심옥연을 짓밟아 놓은 것과도 같았다.차마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할 속사정이었다.김예훈은 또 차 한 모금 마시더니 피식 웃었다.“서장님, 너무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나머지 일은 프로세스대로 처리하시죠.”유홍기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피식 웃었다.“김 도련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김 도련님 말씀대로 진행하시죠. 여기 사건기록에 사인해 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비록 유홍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김예훈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일부러 시민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유홍기 서장 무조건 이 일에 개입했어.’모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긴 했어도 사람을 구출해 낸 건 사실이었다.그건 그렇고.경찰의 총을 빼앗고, 노성수까지 때린 점을 봐서는
“암튼 보기에는 충동적이었지만 심 여사님의 안전을 확보한 거나 다름없죠. 상대방의 견제를 이겨낼 정도면 잘한 거 아니겠습니까?”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서장님, 과찬입니다.”유홍기가 계속해서 말했다.“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 도련님께 두 번째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그래요?”김예훈은 유홍기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유홍기가 계속해서 말했다.“일부러 충동적으로 행동하여 배후자가 착각하게 만드는 거죠. 김 도련님의 행동을잘못 판단하게 되면 앞으로 실수하기 마련이고요. 조그마한 실수로 인해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고나 할까요? 최소한 현재 김 도련님의 태도를 봤을 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거 맞죠?”유홍기는 김예훈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했다.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역시 부산 경찰서 서장이네요. 명탐정만큼 예리하세요.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김 도련님, 과찬입니다!”유홍기가 말했다.“가끔 당사자보다 제삼자가 더 잘 아는 법입니다. 제가 제삼자라서 이렇게까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끝날 때까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김예훈은 웃을 뿐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오늘 이 일은 제가 서장님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고맙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김 도련님, 정말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유홍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저희 둘 사이에 그런 예의 갖추실 필요 없습니다.”유홍기의 눈빛은 진실하기만 했다. 이 위치에 오르기까지 부산 6대 세자는 물론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그중에 김예훈처럼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없었다.이것은 착각이 아니라 김예훈한테서 흘러넘치는 자신감 때문이었다.“하하, 제가 너무 예의를 갖췄네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오늘은 볼 일이 있어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서장님을 찾아뵙겠습니다.”유홍기가 피식 웃었다.“김 도
변우진은 눈살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까 사촌 형 변장우에게 전화한 적은 있지만 사실 김예훈이 평생 풀려나지 못하게 부탁한 것이다.그런데 생각 밖에도 김예훈이 바로 풀려날 줄이야.김예훈이 무슨 말을 할 건지 궁금해서 그저 아무 말 없이 아래위로 훑어볼 뿐이다.“김 대표님, 괜찮으세요?”하은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정효도 이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고 감탄했다.“김 대표, 지난날은 내가 자네를 오해했네. 오늘 정말 고마웠어.”김예훈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별말씀을요. 오늘 이 일로 더는 아주머니를 건드릴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리고 안심하시고 심씨 가문에 돌아가셔도 좋아요.”심정효는 멈칫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소식 듣고 급히 달려온 인플루언서들이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말했다.“김예훈, 무슨 뜻이야? 분명 변 도련님께서 너를 구해줬는데 그 공을 네가 뺏어가? 정말 염치도 없긴. 뒷수습한다고 변 도련님과 조효임 씨가 얼마나 애를 먹은 줄 알아? 하은혜 씨만 아니었다면 너를 구해내지도 않았어!”조효임이 힘을 쓴 것은 사실이었다. 그저 김예훈이 풀려나지 않으면 조인국이 개입했다가 조씨 가문에 피해가 갈까봐서였다.아니면 변우진에게 부탁했을 일도 없었다.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웃으면서 말했다.“그래요? 정말 고맙네요. 특히 변 도련님께.”조효임은 김예훈의 태도에 차갑게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저 은혜 씨를 봐서 도와준 것뿐이니까. 별로 힘쓰지도 않았는데, 뭘. 그런데 변 도련님은 달라. 귀한 몸으로 이런 일 때문에 나서서 사람한테 부탁하는 거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알아? 정말 변 도련님께 고마워해야 할 거야!”변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사촌 형이 아무리 그래도 소대장인데 용의자 한 명 풀어주는 건 아무 일도 아니겠지. 거기다 주동적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으니 더 별일 없었겠지.’변우진은 이런 생각에 뒷짐을 쥐면서 태연하게 말했다.“김 도련,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하은혜가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조효임은 그녀도 김예훈이 싫어서 피하는 줄 알았다.“김예훈, 들었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변 도련님께서 다시는 안 도와줄 거라고! 경고하는데, 너 때문에 우리 조씨 가문이 이미 풍비박산이 났어! 당장 짐 싸고 부산에서 꺼져! 다시는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마!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아빠는 왜 이런 거지 같은 친척을 성남에 데려와서는! 그것도 분수에도 맞지 않게 나랑 잘해보려고?”조효임은 한껏 싫증 난 표정이었다.몇몇 인플루언서들도 김예훈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김예훈은 이쯤에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바로 이때, 조효임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녀가 곧 흥분하면서 말했다.“변 도련님, 혹시 소식 접하셨어요? 경상 재벌 심현섭 씨가 생일파티를 연다고 해요! 부산 각계 인사들도 초대한다고 해요!”변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심현섭?”조효임이 그의 표정을 보더니 설명했다.“저도 방금 접한 소식이에요. 경상 재벌 심현섭 씨는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고요. 이번 생일파티에서 계승자를 결정한다는 소문도 있어요! 각계 인사들을 초대한다고 하니 변 도련님께서도 곧 초대장을 받을 거예요. 혹시... 저 좀 구경할 수 있게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조효임과 인플루언서들은 한껏 흥분된 표정이었다.아무리 상류사회에 갓 발을 내디딘 조효임이라고 해도 이런 레벨의 생일파티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변우진과 함께 갈 수 있다면 SNS에 자랑할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조효임은 하은혜의 진짜 신분을 몰랐다. 그저 심씨 가문의 먼 친척이라고만 알고 있었다.엄마가 깡패한테 납치당한 걸 봐서는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본능적으로 변우진에게 부탁하게 된 것이다.“경상 재벌 심현섭의 생일파티?”변우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뒷짐을 쥐고 있었다.“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나를 생일파티에 초대할 자격이나 있을까요?”조효임과 인플루언서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역시 변 도련님이야!’지금
변우진의 멋진 모습에 조효임과 인플루언서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러다 결국 김예훈에게 경고를 날렸다.“김예훈, 내가 말해주는데 우리한테 빌붙을 생각하지 마! 절대 너를 심현섭 씨 생일파티에 데려가지 않을 거니까!”김예훈은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갑자기 이런 소식이 들려오는 바람에 분위기 반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심옥연의 짓이라는 예감에 급히 하은혜와 상의해 봐야 했기 때문에 변우진과 따질 시간이 없었다....반 시간 뒤, 토요타 알파드 차 안.심정효는 오성급 호텔에 배정되었고, 그녀의 옆에는 안전을 책임지는 한석범이 있었다.차 안에는 김예훈과 하은혜, 단둘밖에 없었다.기다란 다리를 꼬고 있는 하은혜가 기재를 키면서 말했다.“김 대표님, 오늘 정말 놀랐잖아요! 다음에는 저한테 미리 말씀해 주세요.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게.”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원래 타겟이 노성수 씨이긴 했지만 갑자기 경찰서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상의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전 은혜 씨를 믿었어요. 역시나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제때 경찰에 신고하더군요.”하은혜가 피식 웃더니 화제를 돌리면서 표정이 심각해졌다.“오늘 저희가 한 행동은 우리 삼촌을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절대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예요. 특히 저희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생일파티도 삼촌이 계획한 것일 수도 있어요.”김예훈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아마도 오래전부터 준비한 생일파티일 거예요. 생일파티에서 심씨 가문과 방씨 가문의 혼인을 선포하려고 했을 건데 제가 어머님을 구출해 드리고 은혜 씨도 심씨 가문을 떠나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생일파티를 앞당겨서 억지로 엮어놓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분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면 할아버지께서 무사하지 못할 수도...”이 말에 하은혜가 생각에 잠겼다.경상재벌 심현섭은 전에 윤청이 킬러조직 때문에 지금까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그런데 각계 인사들마저 초대하면서까지 생일파티를 여는 건 이상할 따름이다.하은혜
평소에는 온화하고 여유로워 보이던 심옥연은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심상찮은 분위기를 뿜어내 무서울 정도였다.그녀의 옆에 있는 심씨 가문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하은혜, 김예훈, 대단한데?”마지막 한 발을 쏘고 난 심옥연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하은혜가 심택연의 성격을 이용해서 직접 성수당을 찾아가 심정효를 구해내는 바람에 큰 손해를 입은 것이다.늘 전략을 세우는 심옥연에게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심정효라는 인질을 잃으면 하은혜를 통제하기 어려워 모든 계획이 뒤틀어지기 때문이다.“세자님, 몸을 사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이때 한 남자가 나타나서 말했다.“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총체적 흐름은 변하지 않습니다. 김예훈이라는 자를 없애버리면 하은혜 씨는 저희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말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김예훈에게 손이 짓밟혀 붕대를 감고 있는 심씨 가문의 집사 장문빈이었다.심옥연은 갑자기 총구를 돌려 장문빈의 이마에 갖다 댔다.장문빈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세자님께서 많이 화나신 건 알겠는데 화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김예훈부터 해결해야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던 심옥연은 총으로 장문빈의 머리를 내리쳤다. 결국 그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이때 심옥연이 말했다.“지금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 거야! 방호철이 우리 일을 그르치고 있는 김예훈을 해결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장문빈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세자님, 방 도련님도, 야마자키파도 여러 번 움직였는데 김예훈이라는 자가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사쿠라 씨 쪽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고 야마자키파에서 다시 나선다고 해도 특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단시간 내로 김예훈을 해결하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할 듯합니다.”심옥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야마자키파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는 것은 방호철이 부산에서의 병력도 많이 약
반 시간 뒤, 장문빈은 바닷가 별장 구역에 있는 등대 같은 건물에 도착하게 되었다.슬쩍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 보자 어지러워져 있어야 하는 방안이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30살 가까이 되는 한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무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이런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없었다. 장문빈 역시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빼앗기고 말았지만 애써 숨을 들이마시면서 마음을 감춰보려고 했다.잠시 후, 장문빈이 먼저 인사했다.“사모님.”그녀는 눈을 감고 있는 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사모님, 방금 세자님께서 독사파에서 한 이방인을 죽여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저희 쪽에는 병력이 부족하여 사모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실수 없이 잘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독사파!윤청이!이 선녀 같은 사람은 바로 심현섭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독사파 윤청이였다.그녀는 킬러 계에서 TOP3에 드는 킬러였다.아무도 심씨 가문을 없애고 싶어 하는 킬러가 심씨 가문 별장에 나타날 줄 몰랐다. 그것도 모자라 심옥연과 손을 잡았으니 말이다.장문빈의 말에 윤청이가 살며시 눈을 떴다.그녀의 살기가 가득한 눈빛에 이곳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윤청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심옥연이랑 손을 잡게 된 건 심현섭의 멱을 따기 위해서야. 다른 목적은 없어. 내가 부하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지?”장문빈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사모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세자님의 계획 중에 하은혜 씨가 심현섭 씨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 심현섭 씨를 죽이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 세자님의 목적과 같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하은혜 씨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은혜 씨를 손에 넣으려면 옆에 걸리적거리는 김예훈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모님께 이런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윤청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부산 6대 세자라는 사람이 이방인을 죽일 용기도 없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