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빡빡이 머리 경비원의 뺨을 수십 대나 때렸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로 걷어차이는 바람에 그는 한참 동안 얼어서지도 못했다.이때, 드디어 달려온 조효임이 이 장면을 보고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김예훈, 내 말 우습게 들려? 내 말 안 들리냐고! 청현 도장님의 친척분을 건드리면 어떡해!”어느샌가 몰려온 구경꾼들은 김예훈이 평소에 거들먹거리던 경비원들을 교육시키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깨 고소해했다.청현 사찰은 외진 곳이라 주차장 자리가 많지 않았다.경비원들이 돈을 뜯어내고, 여자 신도들을 희롱하려고 일부러 주차장 자리를 줄이는 바람에 많은 신도들이 피해를 보았다.하지만 신성한 곳이라고 여겨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못 본 척한 것이다.심지어 어떤 신도들은 이 경비원들에게 일 년에 몇백만 원을 바치기도 했다.그런 사람들이 맞아대는 걸 보니 환호할 뿐이다.바로 이때, 누군가 실성한 듯 소리쳤다.“큰일 났어요. 청현 도장님께서 아셨어요!”“오신대요?”“네?”“청현 도장님께서 정말 이곳에 오신대요?”“어떻게 이런 후진 곳을 오실 수가 있대요?”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움과 두려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김예훈을 불쌍하게 쳐다보았다.‘이런 사소한 일로 청현 도장님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좋은 꼴을 보지 못하겠군...’청현 도장의 천하무적이라는 타이틀은 괜히 붙여진 타이틀이 아니었다.밑에 제자들을 많이 두고 있는 청현 도장님을 건드렸다간 김예훈이 열 명이라도 꼼짝하지 못할 수 있었다.조효임이 두려운 마음에 중얼거렸다.“김예훈,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도망갈 생각하지 마! 어차피 도망가봤자 청현 도장님이 끝까지 쫓아가실 거야! 그냥 무릎 꿇고 용서 빌어. 다른 수 없을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도망가지 않을 거니까.”김예훈은 휴지로 두 손을 닦을 뿐이다.“청현 도장님은 나한테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아야 할 거야.”김예훈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내가 청현 도장한테 너무 예의를 갖췄나?
“변우진?”“소문으로만 듣던 격투기 리그전 챔피언?”“왜 이곳에 있는 거지?”“MZ한테 인기 많은 사람이잖아. 실력도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어!”변우진이라는 말에 주위가 떠들썩했다.그는 평소에 유명 플랫폼에 손으로 벽돌을 부수고, 가슴으로 대리석을 부수는 등 동영상을 업로드해 인기가 많았다.청현 도장이 두려웠던 조효임은 변우진이 나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은혜 씨,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번 사찰에서도 변 도련님께서 저희를 보호해 줬잖아요! 이번에 사고를 크게 저지르긴 했지만 청현 도장님께서 그래도 변 도련님 체면을 세워 드릴 거예요. 그런데 김예훈 저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죽든 살든 그냥 내버려 두죠 뭐!”조효임은 한껏 우쭐거리는 표정이었다. 변우진만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아무리 충고해봤자 듣지 않는 김예훈이 무슨 결말을 맞이하든 모두 자초한 짓이었다.“청현 도장님 오셨어요!”조효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청현 도장 일행이 이쪽으로 걸어왔다.앞장서던 청현 도장은 청색 도포를 입은 채 심상찮은 포스를 풍겼다.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뒷짐을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현 도장이 설명을 내놓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사실 김예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청현 도장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청현 도장의 자존심이 짓밟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변우진 같은 사람이 나선다고 해도 이대로 마무리될 분위기가 아니었다.조효임도 무의식결에 파르르 떨고 말았다.비록 변우진 실력이 대단하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천하무적이라고 불리는 청현 도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일에서 직접 나선 적이 없었다.그렇게 그가 나서겠다고 하면 아무도 말릴 자가 없었다.아무리 변우진이 대단하다고 해도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청현 도장을 꺾을 수가 없었다.조효임이 어이없다고 느끼는 것은 김예훈도 똑같이 뒷짐을 쥐고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현 도장은 제자더러 이 경비원들을 챙기라고 하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변우진을 쳐다보았다.“내 사람들 때린 사람이 자넨가?”“그게 뭐 어때서요. 안 돼요?”변우진은 뒷짐을 쥔 채 담담하게 말했다.청현 도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던 제자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변우진을 째려보았다.변우진은 인플루언서에 격투기 리그전 챔피언이긴 해도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운 이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알량한 실력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기회만 된다면 변우진을 짓밟아 놓고 싶었다.변우진이 멋있게 모든 책임을 지는 순간까지도 김예훈이 전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서 있는 모습에 조효임이 화가 나서 말했다.“청현 도장님,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변 도련님의 억울함을 씻겨드리려고 합니다. 저분들 변 도련님이 아니라 김예훈이 때린 거예요. 도장님 친척분이든 다른 경비원들이든 모두 김예훈이 때렸습니다. 변 도련님은 그저 이 상황을 수습하려던 참이었습니다.”좋은 사람으로 될 수 있는 나이스 타이밍에 변우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슬쩍 발을 빼려고 해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부담 없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청현 도장님, 이 일은 확실히 은혜 씨와 연관된 일이라 제가 대신 책임지려고 합니다. 언짢으신 부분이 있으시면 저한테 화풀이하시면 됩니다. 제가 눈 하나 깜빡하면 이제부터 격투기 리그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내놓겠습니다.”청현 도장을 주위를 살피다 포르쉐 차량 타이어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아마도 빡빡이 머리 경비원이 하은혜의 미모에 이끌려 희롱하려다 김예훈한테 된통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김예훈이 본때를 보여준 모습에 청현 도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잘 때리셨어요! 전부터 저의 못난 조카가 다른 경비원을 데리고 사람을 괴롭힌다는 클레임을 받았었는데 제 앞에서는 하도 잘 숨겨서 딱히 증거를 못 찾았거든요! 오늘 보니 정말 파렴치하네요! 그저
“이대로 마무리 짓는다고?”모든 사람들이 혼란 끝에 상황이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 변우진이 갑자기 콧방귀를 뀌면서 앞으로 나섰다.“청현 도장님, 사실의 경과는 확인해 보셨어요? 오늘은 도장님 조카분이 은혜 씨한테 시비 거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고요. 이대로 다쳤으면 다예요? 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청현 도장은 거들먹거리는 변우진을 무시하고 하은혜 앞으로 다가갔다.“은혜 씨, 오늘 제 못난 조카가 은혜 씨한테 실례가 많았습니다. 맞아댄 것도 응당한 도리입니다. 사과드리는 의미에서 제가 직접 교육하도록 하겠습니다.”이때, 청현 도장의 손짓하나에 한 제자가 빡빡이 머리 경비원에게 다가가더니 나머지 손목마저 부러뜨렸다.“아악!”처참한 비명이 들려오자 청현 도장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본능적으로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았다.김예훈이 화낼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이 모습에 하은혜는 어리둥절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청현 도장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셨는데 오늘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하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청현 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은혜 씨,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부터 청현 사찰을 잘 다스리겠습니다. 딴마음을 품은 놈들은 모조리 쫓아내겠습니다. 저희 사찰은 마음을 비우는 곳이지 소란을 피우는 곳이 아닙니다.”곧이어 청현 도장의 손짓 하나에 제자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경비원들을 끌고 갔다.조효임은 이 장면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다.‘역시 변 도련님이야! 정말 대단해!’이 사건에 엮인 이상 아버지한테까지 피해갈까 봐 두려웠지만 변우진의 몇 마디에 청현 도장이 더는 캐묻지 않을 줄 몰랐다.그것도 모자라 조카의 손목을 부러뜨려?역시 체면도, 포스도 장난 아니야!조효임은 속으로 더 이상 변우진과 하은혜를 엮어놓을 것이 아니라 자기 남자로 만들이라 다짐했다.변우진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만 한다면 부산 상류사회 중에서도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그녀와 달리 하은혜는 청현 도장이 변우진이 아니라 김예훈의 체면
“네가 청현 도장님 조카분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어! 변 도련님께서 나서지 않았다면 네가 여기 멀쩡하게 서 있었을 것 같아?”조효임은 괘씸한 표정으로 김혜운을 쳐다보았다.“김예훈, 정말 상황 파악 안돼? 정말 청현 도장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청현 도장님은 한 손으로 너를 날릴 수 있는 분이야. 못 믿겠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너희 변 도련님한테 물어봐. 과연 누구 때문에 청현 도장님을 말릴 수 있었는지. 참 염치도 없긴.”조효임은 김예훈의 말에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김예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설마 청현 도장님의 발걸음을 돌린 사람이 너라고 생각해? 너야말로 염치없는 거 아니야?”이때 변우진이 손을 흔들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효임 씨, 이런 사람이랑은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여름벌레가 어찌 겨울을 알겠습니까. 자기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따졌다간 저희만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한테서 사과를 받아도 아무런 의미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조효임은 더욱더 변우진을 우러러보게 되었다.‘젊은 나이에 큰 업적을 이뤘으면서 허세 부리지도 않고, 성격마저 완벽하다니. 정말 내 이상형이나 다름없어! 1호 팬님, 죄송해요. 이제부터 저도 사랑을 찾아가려고요!’조효임의 표정을 보더니 김예훈이 한숨을 내쉬었다.변우진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면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봤자 조효임이 듣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결국 조인국을 봐서라도 혼수를 준비해 준답시고 몰래 핸드폰을 꺼내 후원금을 보냈다.핸드폰 진동 소리에 화들짝 놀란 조효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이제 막 변 도련님이랑 잘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 타이밍에 1호 팬님이 후원금을 보내와? 나 어떡하지?’...김예훈은 변우진과 조효임의 어두운 표정을 무시한 채 하은혜와 함께 포르쉐 차량에 올라탔다.차량이 앞으로 달려 나가자 변우진은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김예훈은 핸드폰을 꺼내 하은혜에게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여기로 갑시다.”며칠 전, 심정효가 누군가에 의해 한 빌딩으로 잡혀간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이 빌딩을 보더니 하은혜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성수당 원장님?”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부산 버뮤다에 있는 성수 빌딩이 아마도 심씨 가문과 연관 있는 것 같아요.”하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성수당은 노성수이라는 분이 지은 한의원인데 겉으로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의원 같아도 실제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성수당이 오랫동안 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 배후자가 심옥연이였기 때문이죠... 심옥연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부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예요. 심씨 가문은 10대 명문가도 아니고, 사업하는 집안이라 무술이 뛰어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노성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저도 엄마가 성수 빌딩에 갇혀있는 줄 몰랐어요. 분명 그 빌딩은 심씨 가문의 소유인데...”하은혜는 걱정되는 표정이었다.비록 심씨 가문과 성수당의 관계를 봐서는 큰일이 없을 테지만 밖으로 구해내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 같았다.김예훈은 백미러로 하은혜의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예의만 갖춘다면 순순히 풀어줄 거예요.”하은혜는 멈칫하고 말았다. 김예훈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는 몰랐다.‘예의만 갖추면 순순히 풀어줄 거라고? 아무리 그래도 부산 지하 세계에서 꽤 영향력 있는 사람인데?’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노성수 씨가 부산에서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성수당이 명의로는 한의원인 거 맞죠?”하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한의원이면 정상적으로 영업해야죠! 어차피 장사하는 사람인데 말이 통하지 않을 리가요.”하은혜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비록 김예훈에게 아이디어가 있어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기만 했다.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계획대로라면 어머님을 성수 빌딩에서 구해내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풀려나서가 문제에요. 그들이
오후 두시 반.김예훈과 하은혜는 성수당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성수당은 명의상 한의원이었지만 이곳에 나타난 사람들은 죄다 밖에서 싸워서 상처를 입은 깡패들이었다.총상, 칼상을 입은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들어오는 대신 은밀하게 지하실로 향했다.그래서 김예훈과 하은혜가 나타났을 때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온 토끼마냥 쳐다보고 있었다.“고객님, 뭐 도와드릴 거 있을까요? 이곳은 전문적인 한의원입니다.”이때 한 빡빡이 머리 깡패가 하은혜를 희롱하려는 것처럼 기괴한 웃음을 지으면서 걸어왔다. 하지만 이때, 삼베옷을 입은 한 남자가 먼 곳에서 걸어오더니 그 남자의 뺨을 때렸다.“눈치도 없이 뭐 하는 짓이야! 심씨 가문의 큰 아가씨이자 심옥연 세자님의 조카이신 하은혜 씨잖아! 건드렸다가 책임질 수 있겠어?”심옥연 언급에 몇몇 깡패는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이때 하은혜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차갑게 물었다.“노성수 씨?”삼베옷을 입고있는 이 남자는 바로 부산 6대 세자 중의 한 명이자 심옥연의 오른팔 노성수였다.김예훈은 이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았다.부산에서 오랫동안 한의원을 경영했다는 것만 봐도 노성수의 인내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비록 심옥연이 뒤를 봐주고 있다지만 충분한 실력이나 감량이 없었다면 부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노성수는 아무렇지 않게 시가 한 대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이더니 짙은 연기를 뿜어냈다.“은혜 씨, 어떻게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어요? 상류사회 인사는 이곳이랑 어울리지 않으니 이만 가시죠.”이때 밖에 롤스로이스 차량이 세워지고, 조효임과 변우진이 터벅터벅 걸어들어왔다.심상찮은 분위기에 조효임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위험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변우진과 가까이했다.변우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어두운 표정으로 언제든지 싸울 기세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가 이름을 날렸던 이유는 바로 일당 10으로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10명보다 훨씬 많았다.하은혜는 노성수를
노성수가 시가 연기를 뿜어내면서 기괴한 표정으로 말했다.“은혜 씨 어머님이 사라지셨어요? 누가 감히 심씨 가문의 사람을 건드려요? 실종되셨다면 얼른 신고해야죠. 왜 이곳에서 찾으세요? 이곳은 한의원이지 흥신소가 아닙니다. 안 그래요?”이 말에 주위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하은혜가 냉랭하게 말했다.“노성수 씨, 꼭 그렇게 말해야 하겠어요? 우리 엄마가 이 성수 빌딩에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 거 아니에요.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내놔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하은혜는 차가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하지만 노성수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뭐, 신고하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하세요. 저희가 조사에 잘 임할 테니. 만약 아무것도 조사해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심씨 가문의 큰 아가씨라고 해도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손가락을 부러뜨릴까요? 아니면 얼굴에 흠집을 내줄까요?”심옥연이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에 노성수는 겁도 없이 하은혜를 협박하고 있었다.하은혜는 표정이 어두워졌다.‘정말 경찰까지 개입하게 되면 엄마를 못 찾을 수도, 심옥연과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겠네.’이런 결정적 순간에 심옥연과 등지면 엄마가 위험해질까 봐 걱정이었다.퍽!별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을 때, 김예훈이 앞으로 나서서 노성수를 걷어차 바닥에 눕혔다.“하인 주제에 주인 앞에서 으르렁대? 어디서 못돼먹은 버릇이야!”“너!”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에 노성수는 물론 옆에 있던 조효임과 변우진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그 아무도 김예훈이 성수당의 사람을 건드릴 줄 몰랐다.“어디서 온 놈이야! 당장 죽여버려!”노성수 역시 이런 관건적 시기에 하은혜와 시비가 붙고 싶지 않았지만 김예훈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다음 순간, 몇몇 깡패가 무기를 들고 덮쳐왔다.부산 버뮤다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 소란스러움은 순찰 다니던 경찰의 눈길을 끌었다.이때 한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달려왔다.“멈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