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김예훈은 아무 말 없이 백종혁을 발로 걷어찼다.“김 대표님!”하은혜는 재빨리 김예훈을 말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흥분하지 마세요!”하은혜는 오래전부터 김예훈은 모르는 백종혁이라는 이름을 익히 들었다.부산 용연옥 1팀 팀장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정도로 독한 사람이라고 했다.하은혜의 뺨을 때린 것은 김예훈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만약 김예훈이 먼저 참지 못하고 나선다면 수십 대의 총이 동시에 발사될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리 대단한 김예훈이라고 해도 목숨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하은혜가 말리자 김예훈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할 뿐이다.“은혜 씨를 때렸겠다? 그 뺨은 기억해둘게요. 언젠간 후회할 날이 올 거예요.”“왜요? 저를 때리게요?”백종혁은 표정이 사납기만 했다. 그의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김예훈을 자극하는 것이었다.“어디 때려보시죠? 그러면 바로 쏴버릴 테니까!”짝!백종혁은 또 김예훈이 보는 앞에서 하은혜의 뺨을 때렸다.하도 빨라 차마 피할 수도 없었다.쨍한 소리와 함께 하은혜의 얼굴에는 뺨 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백종혁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더니 총으로 김예훈의 머리를 툭툭 쳤다.“왜요? 저를 때리시게요? 어디 때려보시든가요. 마침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하은혜는 또 한 번 재빨리 김예훈을 말리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김 대표님, 저 괜찮으니까 절대 흥분하시면 안 돼요!”김예훈은 아무 말 없이 냉랭하게 백종혁을 주시했다.“쳇! 어딜 봐서 세자님, 대표님이야? 그냥 강약약강에 능한 겁쟁이 같은데.”김예훈이 꿈쩍하지 않자 백종혁은 실망한 눈치였다.“이 기회를 틈타 죽이려고 했는데 이렇게 약해빠진 겁쟁이일 줄은 몰랐네! 우리 용연옥에 수감되는 순간 죽기보다 못할 거야! 당장 체포해!”백종혁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었다.“백 팀장님, 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이렇게 바로 체포하는 거예요? 용연옥이 언제부터 이렇게 막 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누가 부산에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권력을 줬는데
비록 우현아의 신분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백종혁은 그래도 미간을 찌푸리면서 할 말을 했다.“우 대표님, 우 이사장님. 이것은 용연옥 내부의 일입니다. 외부인으로서 이렇게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지금 이렇게 이방인을 도와주는 거 우용건 어르신께서는 아시나요?우현아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할아버지께 굳이 보고할 필요도 없어요. 김예훈 씨는 저희 남자친구로서 김예훈 씨의 일은 저의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 이 일은 저희 우씨 가문에서 참견해야겠어요!”하은혜가 팔을 꼬집자 김예훈은 천장만 쳐다볼 뿐이었다.‘내 와이프도 아니면서 왜 꼬집는대?’우현아의 기세에 백종혁은 그녀의 분노를 느꼈는지 눈을 파르르 떨었다.우씨 가문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하지만 백종혁의 배후자도 만만찮은 사람이라 미션을 완수하지 않으면 전체 대전 백씨 가문이 화를 입을지도 몰랐다.대전 백씨 가문과 자신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자 순간 용기가 솟았다.백종혁은 우현아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우 대표님께서는 비록 JK 그룹 이사장님도 겸임하고 계시지만 결국엔 비즈니스맨인 거잖아요. 이야기나 나누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만 잘하시고 사건조사, 증거 찾기, 범인체포는 잘 모르실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건 저희 용연옥의 일입니다. 이 사건에 개입했다가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으세요?”백종혁은 팀원에게 체포하라고 명령했다.“김예훈 씨와 하은혜 씨를 체포해!”순식간에 수십 명의 특수제복을 입은 남성들이 살기가 가득한 채 수갑을 꺼냈다.이때 우현아가 피식 웃고 말았다.“백 팀장님, 상황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아니면 저희 우씨 가문을 우습게 보는 거예요?”이때 우씨 가문 보디가드 몇 명이 차가운 표정을 한 채 앞으로 나섰다.하지만 백종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우 대표님, 계속 공무집행을 방해할 시에는 다 함께 체포할 수밖에 없어요! 용연옥에 수감되면 어떻지 상상이나 해보셨어요? 우씨 가문도 잘못 엮여서 후회할지도 몰라요!”이미 당겨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할 때, 임시아는 아무렇지 않게 백종혁 앞으로 다가가 그를 아래위로 훑더니 냉랭하게 말했다.“나 임시아 정도면 체면을 세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딴 건 모르겠고 그냥 뺨이나 한 대 맞자고!”짝!임시아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뺨 한 대로 백종혁을 때려눕혔다.이때 수십 명의 특수제복을 입은 남성들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팀장님!”“팀장님?”임시아가 담담하게 말했다.“예전에는 너희들 팀장님이었겠지만 지금부터는 아니야! 임 어르신께서 이미 직접 용연옥 소장님께 연락드렸는데 지금부터 백종혁 씨는 용연옥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이 한마디에 배후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임시아의 뜻은 바로 임강호의 뜻과 다름없었다.부산 최강자인 임강호가 뒤에서 든든하게 김예훈을 받쳐주고 있었다.그제야 현실을 자각한 백종혁은 창백한 얼굴로 아득바득 바닥에서 일어났다.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도 모자라 대전 백씨 가문에게 영향이 갈지도 몰랐다.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상대방이 임시아였기 때문에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그녀는 바로 부산 최강자인 임강호의 양딸로서 부산 제1 금수저였기 때문이다.부산에서는 절대적으로 6대 세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백종혁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임시아 씨, 저희 대전 백씨 가문을 봐서라도 저에게 기회를 한번 주시는 게...”임시아가 냉랭하게 말했다.“만약 네가 잘못 건드린 사람이 나 혹은 임 어르신이었다면 대전 백씨 가문을 봐서라도 용서했을 것이야. 이 바닥에서는 돌고 돌아 서로 아는 사이니까. 그런데 네가 잘못 건드린 사람은 다름 아닌 김 도련님이야! 너 말고도 대전 백씨 가문의 어르신이라고 해도 임 어르신께 무릎 꿇어야 할 정도라고!”이 말에 하은혜와 우현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아무리 생각해도 김예훈이 부산에 며칠 오지도 않았는데 임강호가 아무 조건 없이 뒤를 봐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심지어
임시아의 말 공격에 백종혁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철수!”실력이로든 도리로든 김예훈이 압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계속 버텼다간 목숨마저 구제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백종혁이 팀원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려고 할 때, 김예훈이 뒷짐 지고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백 도련님, 제가 언제 가도 된다고 했어요?”백종혁은 잠깐 멈칫하더니 홱 뒤돌아 김예훈을 째려보더니 이를 갈면서 말했다.“김예훈, 그만 안 해? 자기가 어떤 주제인지 몰라서 그래? 강서 임씨 가문만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짝!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백종혁의 뺨을 때렸다.그렇게 잘생긴 백종혁의 얼굴에 시뻘건 손바닥 자국이 생기고 말았다.“내가 어떤 주제인지 너랑 무슨 상관인데?”짝!“내가 강서 임씨 가문을 믿고 이러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냐고!”짝!“네가 용연옥을 등에 입고 나를 협박하는데 나는 임 어르신을 믿고 이러면 안 돼?”짝!“너는 되고 나는 안돼?”짝!“감히 내 앞에서 은혜 씨 뺨을 때려? 날 뭘로 보는 거야!”짝!“용연옥의 사람이면 나라의 기둥과도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칠 수 있을지나 생각할 것이지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힘이 약한 자들을 괴롭혀? 이 제복을 입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짝! 짝! 짝!김예훈은 연이은 열 몇 대의 뺨으로 백종혁을 날려 보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얼굴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랐다.뒤에서 하은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김 대표님, 그만하세요. 더 때리다간 죽겠어요.”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부산이었기 때문에 용연옥의 팀장을 때려죽였다간 파장이 일수도 있었다.백종혁은 얼굴을 감싸쥔 채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 이를 갈면서 말했다.“김예훈, 정말 너 때문에 창패해 죽겠어! 사내라는 놈이 여자들의 힘을 빌려 잘난 척하다니! 밖에 있는 기생오라비와 무슨 별다른 점이 있어!”백종혁도 물론
백종혁은 순간 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용문당과 용연옥은 한국의 기둥과도 같은 존재 중 하나였다. 서로 다른 계통에 속하여 있었고 하는 일은 달랐지만 지위는 같았다.백종혁은 부산 용연옥 1팀 팀장일 뿐이었다. 비록 신분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부산 용문당의 회장인 김예훈과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간단히 말해서 만약에 김예훈이 백종혁을 죽이려고 한다면 용문옥에서 백종혁을 지켜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김예훈 때문에 직접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모두 데리고 나가서 한 손씩 잘라버려. 그리고 이놈은 당장 죽여.”김예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를 건드린 순간부터 백종혁 등 사람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십여 명의 용문당의 제자들이 들어와 백종혁 등 사람들을 붙잡고 밖으로 나갔다.이 과정에서 아무도 감히 저항하지 못했고 잠시 후 마당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김예훈은 뒷짐을 지고 한숨을 내쉬더니 임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시아 씨, 정말 미안하게 됐네요. 어르신께서 저에게 주신 별장에서 이딴 일이 일어나다니. 별장이 다 아깝네요.”그러자 임시아는 웃음을 머금고 김예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부산에 온 지 불과 며칠 만에 부산의 용문당을 통합해서 우리 부산의 분란을 끝내 줬어요. 이건 예훈 씨가 큰 공을 세운 거고, 어르신께서도 예훈 씨에게 신세를 졌다고 했어요.”임시아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부산은 한국에서 중요한 관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해외 세력들이 이곳을 통해 한국을 침략하려 하는지 몰랐다.용문당의 존재는 해외의 암흑 세력을 막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하지만 분열되어 있던 용문당은 그런 역할은커녕 오히려 해외 세력들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김예훈이 부산의 용문당을 신속하게 통합한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공로였다.김예훈은 부끄러운지 화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시우 씨, 이런 작은 일에 직접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임시아는 별장에 올 때도 갑자기 왔고 떠날 때도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얼굴이 개구리 상이었던 닌자의 시체도 가지고 갔다.우현아와 하은혜 두 사람은 서로 번호를 교환한 뒤 곧 언니 동생 하며 친해졌다.하지만 우현아는 지금 이사장 겸 대표였기에 매일 너무 바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별장에는 김예훈과 하은혜 두 사람만 남았다.하은혜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그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조효임이었다.조효임은 하은혜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줄곧 수다를 떨며 자기 할 말만 했다.그녀는 변우진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오늘 밤에 연회를 준비했다고 하은혜에게 알려줬다.하은혜는 오늘 밤 연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기에 조효임은 그녀가 꼭 참석하기를 원했다.조효임이 열정적으로 말하자 하은혜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조효임이 변우진에게 자신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은혜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만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김예훈은 자연스럽게 하은혜의 경호원이 되어 그녀와 함께 집 문을 나섰다.전에 이미 한 번 습격당했으니, 김예훈은 자기가 따라가지 않으면 하은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30분 후, 김예훈과 하은혜는 백낙당에 도착했다.조효임 등 사람들은 이미 안에서 오랫동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백낙당을 본 김예훈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이 바로 백낙당에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는데 조효임이 저녁 연회를 바로 이곳으로 안배했다니, 세상이 좁다고 생각했다.김예훈은 원래 별로 오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하은혜와 함께 얼굴만 비추고 돌아갈 계획이었다.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오후에 이미 오정범과 도적구자를 시켜 백낙당을 인수하게 했다.이제 백낙당도 그가 부산에서 가지고 있는 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이곳은 별장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전했다.방호철과 야마자키 파는 감히 이곳에서 그와 하은혜에게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멀지 않은 곳에서
로비에 들어서자 김예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효임은 아마도 오늘 이곳을 통으로 빌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조효임이 기껏해야 테이블을 하나 정도 예약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곳은 장사가 잘되었다. 리듬감 넘치는 노래가 들렸고 늦은 밤이 아니었지만 손님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었다.공기 중에는 술과 담배 그리고 화장품 냄새가 섞여서 처음 맡으면 구역질이 났지만, 오래 맡으면 또 기분 좋게 느껴졌고 취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조효임 등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 도착했다. 그 테이블에서는 이미 몇몇 잘생기고 이쁜 남녀들이 앉아 있었다.김예훈이 테이블 쪽으로 들어가려 할 때, 갑자기 일본 기모노를 입은 남자가 굴러떨어져 그들의 앞에 쓰러졌다.김예훈이 반응하기도 전에 테이블 안쪽에 앉아있던 남자 몇 명이 걸어 나와 일본 남자를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다.선두에 선 사람은 바로 우지환이었다. 그는 술병을 들어 일본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쨍그랑!”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 남자의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그 모습을 보자 우지환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감히 내 우지환의 여자까지 희롱하다니, 죽여 버리겠어!”말을 마친 그는 손에 든 맥주를 일본 남자의 얼굴에 사정없이 퍼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멍청이 같은 자식!”“감히 내 쿠보 하루키를 건드리다니. 이제 두보 보자.”일본 남자의 말을 들은 우지환은 또 한 번 그를 걷어찼다. 그리고 조효임 등 사람들을 발견하자 눈이 반짝였다.“효임 씨, 오셨나요? 제가 효임 씨를 위해 킹 스탠더드 테이블을 예약했어요. 어때요?”그는 말하면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달려와 변우진과 악수를 하였다.우지환은 김예훈을 보았지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그를 무시했다.그 장면을 본 변우진은 냉정한 미소를 지었다. 김예훈을 무시하는 우지환이 마치 자기 동맹처럼 느껴졌다.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은 오산그룹의 경영진이었고 조효임과 꽤 친한 사이었다.조효임이 인기를 얻자 회사에서의 지위도 급상승했다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자리에 착석하자 현장에는 몹시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자리가 모두 꽉 차서 김예훈이 앉을 자리가 없게 된 것이다.“오, 우리 사업부 큰 공로자이신 김예훈 씨였군요! 여기 이렇게 서 있지 않으셨으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어요.”우지환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김예훈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김예훈 씨, 여기가 당신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초대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게다가 여긴 당신을 위해 준비한 자리가 없어요. 아니면 여기서 거슬리게 서 있지 말고 다른 데로 가는 게 어때요?”우지환의 말을 듣자 몇 명의 강남미인들은 갑자기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이 젊은 경비는 자기 주제도 모르나?백낙당 같은 고급스러운 곳에 자신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자리도 없다는데 얼른 썩 꺼지지 않고 아직도 여기서 등을 빳빳하게 펴고 서 있다니, 자신이 모델인 줄 아나봐?이때 하은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우지환 도련님이시죠? 김예훈 씨는 저의 경호를 책임진 사람입니다. 만약 여기에 예훈 씨 자리가 없다면 저도 그냥 가겠습니다.”“아, 하은혜 씨를 경호하시는 분이셨군요. 사업부 직원이 경호도 하시다니, 젊으신 분이 능력도 많으시네요.”누군가가 내뱉은 말을 들은 우지환 일행은 코웃음을 쳤다.이때 우지환은 그제야 전에 김예훈이 왜 그 많은 업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건지 알았다. 하은혜를 등에 업고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다른 사람들도 김예훈이 하은혜의 경호를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멸하듯 쳐다보았다.모두 김예훈이 여자에게 빌붙어 쉽게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김예훈이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진짜 능력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설마 김예훈은 자신 이외에 모두 눈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분명한 걸 모를 수가 있겠는가!이때 변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우지환 도련님, 김예훈 씨도 여기까지 와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