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전국영은 정민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있었다.정민은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현아 아가씨는 견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야. 그러니 우린 아가씨 곁에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 머리를 굴려야 해.”“그 새끼는 꺼리낌 없이 너희들을 괴롭혔어. 너희들은 그 새끼를 그저 물고기 먹이로나 만들려 하고, 너무 현재만 보는 건 아니냐?”“만약 현아 아가씨가 알게 된다면 견 세자에 대한 불만만 더 커질 뿐이야.”“현아 아가씨가 견 세자를 받아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견 세자가 일 처리를 너무 악독하게 해서야, 비겁한 일 처리 방식이지.”“그러니 그 새끼를 처리하려면 완벽하게 해야 해. 그러나 비겁한 수단은 금물이야. 다만 그 자리에서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어야 해...” 정민은 잠깐 고민하는 듯 싶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 새끼가 그렇게도 싸움을 잘한다고?”“요즘 최산하랑 진윤하 둘이 연맹을 맺어서는 우 부회장님께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나?”“너희 기회를 봐서 김예훈더러 우 부회장님의 싸움꾼을 하라고 꼬드겨봐.”“좋기는 그들이 맞서는 링 위에서 김예훈이 진윤하를 때려죽인다면 일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맞아요, 맞아요, 알겠습니다!”전국영과 박미아는 서로 마주 보며 끊임없이 고개만 끄덕여 동감을 표했다.역시 정민은 정민이다. 직접 자기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이 말 한마디로 김예훈을 죽일 수 있다니.하지만 전국영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 입을 열었다.“형님, 비록 아이디어는 좋지만, 만약 그놈이 실력이 좋아 진윤하마저 넘어뜨리면 어떡하죠?”정민은 덤덤히 말했다.“진윤하는 부산 용문당의 탑급으로서 나도 감히 그녀를 쉽게 건드리지 못해. 그런데 경호원 따위가 이길 수 있겠냐?”“한 발짝 물러선다고 쳐. 만일 그가 정말 진윤하를 이긴다고 해도 외부인 따위가 부산 용문당의 내부 투쟁에 경솔하게 개입한 것만으로도 용문당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 그렇네요. 현명합니다. 형님!”전국영은 그제야 정민의
포레스트 1호 별장정소현은 핫팬츠를 입고 거실 바에 앉아있었다.그녀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아침부터 김예훈한테 따지기 시작했다.김예훈은 그녀의 말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으며 한편으로 가스 불을 붙이더니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소현아, 국수 끓여줄까?”“먹고 싶지 않아요!”정소현은 흥 하고 뾰로통해서 입을 열었다.“아직 나한테 제대로 설명도 안 했잖아요. 현아 씨와 형부는 도대체 무슨 사이예요? 그날 현아 씨를 여자 친구로 삼다니? 우리 언니가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고개를 들더니 조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른들 일에 끼는 거 아니야, 꼬맹아.”“너 계속 바에 앉아있으면 확 들어서 엉덩이 때릴 거야.”“아직 해명도 제대로 안 했잖아요.”“형부, 현아 씨랑 별일 없는 거 맞죠?”김예훈은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아니라면 믿어줄 거야?”“네! 믿을 거예요!”정소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저한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세요. 아니면 너무 불안하잖아요.”“형부가 안 알려주면 엄마아빠한테 이를 거예요. 언니한테도 이를 거고!”“곧 부산에 온다고 했어요. 부산이 뭐 얼마나 멀다고, 형부를 관계 못 할 줄 알았어요?”정소현의 말을 듣자 김예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그래, 대충 말해줄게. 하지만 절대 퍼뜨려서는 안 된다고 맹세해.”“맹세할게요!”정소현은 흥분한 나머지 하마터면 자신의 혀까지 깨물뻔했다.김예훈은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번에 내가 부산에 온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부산 용문당을 정리하는 거야.”“부산 용문당? 바로 현아 씨 가문? 용문당 말하는거죠? 현아 씨 아빠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그래, 바로 그거야.”김예훈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이미 일은 어느 정도 해결했어. 하지만 우현아의 아버지가 꼰대인지라 말을 안 들어서 문제야. 그래서 우현아에게 접근해서 부산 용문당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려
”견천룡!”정소현은 말했다.“부산 6대 세자 견천룡?”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맞아요. 바로 그 사람이에요. 현아 씨를 엄청나게 따라다닌다고 들었어요. 현아 씨한테 접근하는 그 어떤 남자든 견천룡한테 여지없이 깨졌다고 해요.”“현아 씨가 지금까지 싱글이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형부가 만약 현아 씨를 건드린다면 아마 견 세자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엷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가만히 안 두면 더 좋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밟아버려야 네 언니가 부산에서 더는 걸리는 게 없을 거야.”“아니라면 견씨 가문이 계속 위에서 누르고, 밟고 하면 재미없거든.”“네 언니가 부산에서 더 크게 펼치길 바랄 뿐이야. 누구한테 밟히길 바라지 않아.”정소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가 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교묘히 짠 판인지 알 수가 없었다.마침 정소현의 핸드폰이 올렸다.그녀는 전화를 받더니 놀라운 표정으로 대답했다.“한번 말해볼게요.”정소현은 전화를 끊고서 김예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형부, 곧 일이 닥치겠네요.”“음?”김에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금방 미아 씨가 전화 왔어요. 어젯밤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쳤다고.”“만나서 직접 형부한테 사과하고 싶대요.”“하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여요. 진짜 사과하고 싶을 리가 없을 거잖아요.”“형부, 갈래요? 말래요?”정소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김예훈은 되물었다.“내가 안 간다면 너 동의할 거야?”“당연히 동의 안 하죠.”정소현은 제자리서 풀쩍 뛰면서 말했다.“형부, 아까 금방 현아 씨에게 접근해서 부산 용문당을 처리한다고 했잖아요?”“마침 용문당의 무도관에서 만나재요.”“형부,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잖아요. 어서 해결하시죠.”“형부랑 현아 씨가 계속 엮이는 것도 싫어요.”분명히 정소현은 김예훈의 감정에 신심이 가득했지만 오래 우현아랑 엮이다 보면 혹시라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싹틀까 봐 은근히 걱정되었다.곁
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야마자키파 검도관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언젠가 이 도장을 짓 밝으려고 했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정소현 따라 용문당 검도관에 들어서자 내부는 옛 모습 그대로 우아하기 그지없었다.부산 용문당은 모든 용문당 중에서 실력이 제일 막강한 곳이었고 돈을 쓸어 담는 오산그룹 외에 부산에 근 100개의 검도관을 차렸다.지금 있는 이곳이 바로 제1관이었다.그 검도관들은 평일에 부산 용문당 자제들이 검도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 쓰이는 것 외에 대외적으로도 오픈되어 있어 각 부잣집 도련님들과 부잣집 아가씨들이 한 달에 회비를 몇백만 원이나 들이면서 다니고 있었다.근처에 있는 일본 검도관이며 인도 태권도장들 역시 이런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부산 용문당에는 비록 십만 명의 제자가 있다지만 그중 7만 명 정도는 그저 심심풀이로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3만 명 정도만이 핵심적인 제자로서 용문당의 각종 사무에 참여하고 있었다.정소현이 김예훈을 데리고 검도관에 들어섰을 때 안에서는 도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실력을 겨루고 있었다.이때 전국영과 박미아 일행이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김 도련님, 안녕하세요! 어제 일은 저희의 잘못입니다. 저희가 사과드리죠. 사과의 뜻으로 점심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 아, 저희 다이아 반지 찾았어요. 차에 놓고 내렸더라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 도련님, 넓은 마음으로 저희에게 사죄할 기회를 주시죠. 이제부터 저희는 동고동락하는 친구처럼 지내시는 거 어떤가요?”전국영 등은 김예훈을 한없이 열정적으로 대했으며 심지어 굽석거리기까지 했다.이 모습을 본 정소현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이러고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근데, 또 무슨 수작 부리려고 이러는 거지?’하지만 이때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 잘못을 제때 뉘우치기만 한다면 친구 사이로 남을 수도 있죠.”“하하하, 잘됐네요. 그러면 정
그 청년을 보았을 때 정소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는 바로 제1 장군 우충식의 부하 송성훈이었다!송성훈은 용문당의 한 원로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아 실력이 뛰어났고 그 실력이 젊은 일대 중 진윤하 다음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배경으로 보든, 실력으로 보든 부산 상류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그는 검도관에서 사람들과 실력을 겨루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전국영 이들은 송성훈파와 계속 마찰이 있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송성훈, 네가 뭔데 우리를 건드려?”전국영은 한껏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뭐? 나를 도발해?”이제껏 정민의 힘을 빌려서야 겨우 자신을 마주하던 전국영이 오늘따라 거들먹거리자 송성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했다.전국영 등 자들을 아래위로 훑더니 결국 시선이 정소현에게 꽂히면서 눈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재밌군. 오늘은 여자를 선물하러 왔나 보네! 이 여자를 내가 가지고 놀 수 있게 남겨둔다면 오늘 때리지 않기로 약속하지!”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정소현을 가리켰다.정소현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지고, 전국영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송성훈, 네가 뭔데? 오늘은 우리 형님이 계시거든? 우리 형님은...”전국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김예훈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쏜살같이 무리 속으로 달려가더니 손으로 힘껏 송성훈의 뺨을 후려쳤다.짝!송성훈은 피할 틈도 없이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난 채로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푸!”그는 결국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전 도련님, 걱정 마세요. 오늘은 제가 이겨드리죠!”전국영 등은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김예훈의 속도가 하도 빨라 반응할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바로 이때, 송성훈은 얼굴을 부여잡은 채 분노한 말투로 외쳤다.“가서 죽여버려!”순식간에 기술을 연마하던 몇십 명의 제자들이 동작을 멈추고
“전 도련님, 뒤 조심하세요! 누군가 습격하려고 해요!”“우 도련님, 몸을 숙이세요!”“미아 씨, 뛰어서 왼쪽으로 뺨 하나, 그리고 머리로 박아보세요! 아주 완벽해요!”쌍방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김예훈은 손쉽게 몇몇 사람을 걷어차 내고 정소현을 입구로 끌고 가 구경하기 시작했다.전국영 등은 부잣집 도련님이긴 해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 너무 비참하게 맞아대진 않고 있었다.더욱이 김예훈의 코치로 전국영 등은 송성훈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였다.전국영 등은 속으로 김예훈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그의 코치로 우세에 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김예훈을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형부, 보고만 있는 거 괜찮을까요? 가서 도와줄까요?”정소현이 무의식 결에 입을 열었다.“너 바보야?”김예훈이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저 사람들이 죽는다고 해도 우리랑 무슨 상관있어? 설마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우리를 정말 자기 사람으로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정민아는 잠깐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혀를 날름거렸다.‘전국영 이 자들이 오늘 좋은 마음을 품지도 않았는데 형부가 가서 도와줄 게 뭐 있어?’그렇게 두 사람은 입구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 시작했고 무슨 변고라도 발생하면 바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이런!”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김예훈과 정소현의 모습을 본 전국영은 싸움 중에 기가 찼다.‘이 정도로 파렴치할 줄 몰랐네!’김예훈은 전국영의 표정을 못 본 척하더니 다시 코치하기 시작했다. 전국영 등은 그의 코치로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하더니 송성훈 파한테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원래대로라면 3~5분 만에 전국영 등의 참패로 끝날 싸움이 김예훈의 코치 아래 10분 가까이 이어졌고 아직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평소 같았으면 개 코피 터졌을 테지만 오늘은 상대방이 만만하게 느껴지는지 전국영 등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개새끼가!”그제야 정신 차린 송성훈은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고 김예훈이 먹인 한방으로 제 실력의 30
“죽어!”종래로 진 적이 없는 송성훈은 이미 눈이 돌아간 채 전국영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곧게 날렸다.살기를 느낀 전국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이때 김예훈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왼쪽으로 반보, 오른손 주먹을 곧게 펴보세요!”짧고 간단한 한마디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전국영의 귀에 꽂히자 마치 생명줄을 잡은 듯 본능적으로 그의 코치대로 반응했다.퍽!왼쪽으로 반보 움직이자 마침 송성훈의 필살 일격을 피하게 되었고 또 주먹을 날리자 마침 그의 가슴 중심자리를 타격하게 되었다.푸!송성훈은 피를 뿜어내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뒤로 휘청휘청 물러났다.전국영이 한방으로 송성훈과 같은 무술 고수를 피를 토해내게 한 장면을 본 우지환 등은 그만 놀라고 말았다.다른 사람들도 이 광경에 그만 동작을 멈추고 눈이 휘둥그레 쳐다보았다.그야말로 놀라울 정도의 장면이었다.하지만 우지환 등은 조금은 어이없었다.원래 계획대로라면 김예훈과 송성훈이 결사적으로 싸우는 것이었지만 갑자기 전국영과 송성훈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이게 아닌데?’하지만 이미 팽팽하게 당겨진 활을 이대로 놓을 수가 없었다.사람을 바꿔치기하고 싶어도 김예훈이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미 눈이 뒤집힌 송성훈이 절대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전국영! 죽고 싶어?”피를 뿜어낸 송성훈의 표정은 흉악할 따름이었다.전국영과 몇십 번 대결하면서 손쉽게 그를 비참하게 무너뜨렸지만, 오늘은 피까지 뿜어내자 눈이 돌아갔던 것이다.이때 송성훈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총알처럼 앞으로 튕겨 나갔다.박미아는 걱정된 표정으로 소리쳤다.“전 도련님, 조심하세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앞으로 세 발자국, 오른발로 힘껏 발차기!”물러날 곳이 없는 전국영은 그의 코치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퍽!두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위기일발의 순간 전국영은 송성훈의 일격을 피한 동시에 발로 그의 허리를 걷어찼다.“아악!”송성훈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에 몸무림 치더니 한참
송성훈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전국영과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한테 한 번이고 두 번이고 계속 맞아댈 정도로 체면이 구겨지고 말았다.그는 부산 용문당에서 진윤하 다음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고, 그 사부님은 권위가 부산 용문당 회장을 넘어선 원로회 원로였다.오늘 이깟 부잣집 도련님한테 패배하는 것은 벽에 머리 박아 죽는 것보다도 못했다.‘절대 그럴 수 없어!’“제기랄! 죽어!”바로 이 순간, 송성훈은 장식용으로 진열되어 있던 일본 검을 꺼내더니 전국영을 향해 겨누면서 달아갔다.자신감 폭발상태인 전국영은 송성훈의 실력이 예전만은 못하다는 생각에 이제 더이상 김예훈의 코치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몸을 피해 송성훈 앞으로 다가가더니 한 손으로 검을 단방에 빼앗아 힘껏 휘둘렀다.“푸!”전국영은 검이 반짝거림과 동시에 송성훈의 목을 베고 말았다.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고 송성훈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아악!”박미아는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고 김예훈은 이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하게 정소현의 눈을 가렸다.현장은 고요해지고 말았다.기고만장하던 전국영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지더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한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망했어!’계획대로라면 이 모든 것을 저지른 사람은 김예훈이어야 했지만 사실은...전국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김예훈은 정소현을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짝!“미친 거 아니야!?”짝!“말로만 듣던 바보 아니야!?”짝!“송성훈이 누군지 몰라?”짝!“송성훈이 우충식 밑에 있는 제1 장군인 건 몰라도 그 사부님이 용문당 원로회 원로란 말이야! 공개적인 살인으로 부산 경찰서에서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백낙당 지하 3층, 늘 온화하고 부드럽던 정민은 전국영의 뺨을 수십 번 때렸다.자기 말로는 우아한 사람이라 기품이 떨어질까 봐 이런 악독한 모습은 사양한다고 했지만 전국영이 어리석게도 부산 용문당 검도관에서 살인을 저지를 줄 몰랐던 것이다.이 일을 아무리 수습해보려고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