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김예훈이 갑자기 정소현의 이마에 입맞춤하는 것을 목격한 백요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은 살기로 가득 찼다.백요한은 어떤 인물인가? 대전 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아닌가!대전 백씨 가문은 대전 제일의 명문가로 부산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그의 친형 백기영 또한 서울 4대 도련님, 진주 4대 도련님 과 부산 6대 세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다!백요한이 점 찍어 둔 여자라면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탑급 여자 연예인이든 유명 크리에이터든 그의 마음에 들었다면 언제든지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그런 그가 오늘 정소현에게 크게 한 방 먹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보다 그가 가장 분노하는 일은 김예훈이 경고를 무시하고 모두의 앞에서 그를 망신시킨 것이다!개미만도 못한 놈이 어디서 끼어들려고? 주제도 모르고! 설쳐 대다니!백요한을 화나게 만든 대가는 엄중하다고 하지 않았는가!한편 차문설과 여자애들도 분노로 가득 찼다.그녀들은 김예훈이 방패막이인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방패막이인 줄은 몰랐다! 이건 차문설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 격이다!정소현은 잠시 멍하더니 이내 볼이 발그레해졌다.갑작스러운 김예훈의 애정 행각에 그녀는 복잡한 마음보다도 부끄러움이 더 컸다. 아무리 이런 애정 행각을 기대했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러다니! “이제 소현이 내 여자친구라는 걸 믿겠어요? 한마디 더 하자면, 내 아내가 소현이 언니예요. 그래도 못 믿겠으면 더 증명해 줄 수도 있어요!”김예훈은 웃는 얼굴로 계속 그들을 자극했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바짝 붙어 누가 봐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소현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화가 나 보였지만 정작 정소현은 행복에 겨워했다!만약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정소현은 알고 있다. 형부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나쁜 의
이 대머리 남자가 김예훈을 도발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작 데릴사위인데 어떻게 몇조 원이나 되는 돈이 있을 리가? 만약 그렇다면 진즉에 일류 클럽에 한자리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문제는 김예훈은 누가 봐도 일류 클럽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몇조 원?”김예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난 돈에 관심이 없어서 통장에 얼마 있는지도 몰라요. 아마 못해도 몇십조는 있을거예요.”김예훈의 말에 몇몇 여자애들은 한심하다는 듯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비웃었다.몇십조? 우리 눈에는 십만 원도 없을 것 같은데!이 정도 농담이라면 개그맨을 해보지? 이만하면 개그맨으로 누구보다 잘 나갈 것 같은데?한편 옆에서 지켜보던 정소현은 멈칫하더니 안색이‘싹’ 바뀌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형부가 능력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몇십조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했다. 형부에게 몇십억 정도는 있을 줄 알았지만 몇십억과 몇십조의 ‘0’의 개수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재벌 집 도련님이네...”백요한은 김예훈을 바보 취급하듯 쳐다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몇십조 자산?아마 성남의 김세자도 이 정도 재산은 없을 텐데? 진주 4대 도련님, 부산 6대 세자들의 명문가 배후 정도면 그만큼의 돈은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자와 도련님 자신들에게는 이렇게까지 큰돈은 없었다. 김예훈이 만약 정말로 몇십조 자산이 있다면 성남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제멋대로 다닐 수 있었다.“재벌 집 도련님이었네!”대머리인 남자가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놀란 척했다. 그러고는 굽신거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제가 큰 인물을 몰라뵈었네요. 김 도련님 잘 부탁드립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잘 봐 줄 생각 없어요.”피식!김예훈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이들은 더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참 웃기는 데릴사위네! 비위 맞춰 주니까 진짜로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아직도 모른다니! 백요한이 정색하며
그런데 예상외로 김예훈은 정소현의 손을 잡은 채 제 자리에 서서 흥미지진한 얼굴로 말했다. “투자금 1조 원으로 1년에 4,000억 원의 수익이라면 나름 괜찮은데요? 그럼 이렇게 해요. 프로젝트 사업 계획서를 보내주면 저희 팀에서 분석해 볼게요. 만약 시행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번 프로젝트에 1조 원을 투자할지를 고민해 보죠. 물론 원금 보증서도 포함해서요.”비록 백요한이 뻔한 수법으로 골탕 먹이려고 했지만 김예훈은 이런 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약 놀이공원 프로젝트가 돈벌이가 된다면 정소현에게도 지분을 나눠 줄 생각도 있었다.“사업 계획서?”“투자금 1조 원?”“원금 보증서?”현장의 모든 사람이 배를 끌어안고 웃느라 배가 아파 날 지경이었다. 오늘 밤 파티는 유독 별미가 있었다. 정소현처럼 아름다운 여신급 미녀가 있는가 하면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김예훈 같은 광대도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재미있는 건 백요한이 그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오히려 선처를 베푸는 모습까지, 이런 거짓말을 본인조차 정말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얼굴이 뜨거워 난 정소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부, 우리 집에 가요! 제가 번거롭게 했네요. 미안해요.”“시원시원한 예훈 님 성격에 감사드려요! 그럼, 내일 제가 사업 계획서를 준비하라고 하죠! 이따가 제대로 된 주소를 남겨주시면 제가 내일 직접 찾아갈게요!”백요한은 비열한 웃음을 짓고는 끝내 참지 못한 채로 뒤돌아서 말했다.“얼른! 재벌가 예훈 님에게 인사드려! 성남에서 이제는 예훈 님께서 우리 뒤를 봐주신다!”“예훈 님, 저희 쪽에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저기, 예훈 님, 며칠 뒤에 투자 연회가 열리는 데 참석하시나요?”“예훈 님, 명함이라도 주시겠어요. 시간 되시면 식사라도 같이하시죠?”가증스러운 웃음을 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목적은 단순했다. 김예훈으로 하여금 최대한 광대가 되어 체면을 더 깎아내리기 위해서였다.
그 말을 들은 백요한과 종성우를 포함한 현장의 모든 사람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네. 사전에 친구랑 말 맞춰놓고 전화 걸어 연기한 거지?”“그런 거라면 완전 인정이야!”“아쉽지만 몸에 걸친 싸구려 옷이며 어딜 봐도 재벌 집 도련님은 아니야!”“능력 있으면 자기가 김세자라 하지 그래? 이 좁은 성남 바닥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꺼냈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는데.”“그러게.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어디 감히 재벌 집 도련님을 사칭하려 드는지. 재산이 몇십조라고?”“십조 원에 동그라미가 몇 개나 붙는지는 알고나 하는 소리야?”“요한님이나 성우님께서 맞장구쳐 주니까 자기가 정말로 높은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봐!?”백요한 곁에 있던 한 무리의 똘마니들과 여자애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자극적인 말들로 김예훈을 비웃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마치 이 가난뱅이 루저에게 놀아날 뻔한 것처럼 말이다! 김예훈은 흥미진진하게 이들이 날뛰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우리 형부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고 정말 40조가 있어요! 형부가 진짜로 CY그룹의 김세자라고요!”정소현은 더 이상 김예훈이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참지 못하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파티의 모든 이들의 비웃음뿐이었다.‘CY그룹의 김세자라고!?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다들 그만 해요. 소현 후배가 여기 예훈 님이 김세자라고 하니까, 소현이 봐서라도 그가 김세자라고 해두자고요!”정소현이 화내려고 하자 차문설은 그가 파티를 떠날까 봐 백요한 쪽 사람들에게 눈치를 줬다.“소현이가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저희 먼저 파티에 입장하죠. 식사하면서 천천히 얘기합시다!”백요한은 알겠다는 듯 차문설을 쳐다보고는 정중하게 말했다.“여러분, 제가 오늘 밤 파티장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시키시고 마음껏 즐기세요!”현장의 여자애들은 환호했고 차문설은 특별히 정소현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당기며 가장 앞자리에 앉혔다. 백요한은 미소를 띠며 걸어
“그래. 놀라워 아주!”그 순간, 김예훈의 반응에 종성우도 자극받은 모양새다. 지금까지 종성우가 대구 공씨 가문을 내세웠을 때, 아무리 신분 있는 이들도 어느 정도 예의를 갖췄었기에 김예훈 같은 깡다구는 난생처음이었다.종성우는 어이없는 듯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이봐, 김 씨. 죽고 싶어 날뛰는 것 같네. 딱 기다려. 사는데 경각심을 좀 가져야 할 거야.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김예훈이 먼저 체면이고 뭐고 없었으니, 종성우 입장에서는 예의 차릴 것 없었다. 성남시 세력을 동원해서라도 눈앞의 인간을 생매장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서서 그들을 보고 있는 여자 일행들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고 비아냥거리듯 수군거렸다.그녀들의 눈에는 김예훈 같은 허풍만 가득한 루저는 백요한이나 종성우 같은 명문가 도련님들 빵셔틀 하기에도 한참 모자라 보였다.“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딴에 남자라 허세 피우기는.”“그러게, 뭔 생각하는 거야!?”굳이 백요한이 나서지 않아도 종성우가 김예훈을 매장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는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했다. 곧 좋은 구경을 할 것 같은지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종우성과 김예훈 양측은 서로 불꽃 튀는 눈빛이 오갔지만, 정소현이 있는 관계로 잠시 피 튀기는 주먹다짐을 뒤로하고 자리했다.김예훈 곧장 정소현의 옆자리로 향했고 전혀 백요한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곧 보기에도 예쁜 음식들이 식탁에 올랐고 호주산 양주가 메인 자리를 차지했다. 그냥 봐도 꽤 가격 나가 보이는 양주는 따는 순간 향이 확 풍기여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백요한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가 입도 뻥긋하지 않아도 종성우가 알아서 다 움직여 줬다. 종성우는 이내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학생이 술은 무슨. 선배, 저는 술 못 해요. 사양할게요. 술 대신 사이다로 할게요.”정소현의 앞에 술이 따라지자, 그녀는 바로 거절했다.“소현 후배. 오늘 우리가 모두 여기서 만난 게 인연도 인연인데,
김예훈은 담담하게 받아쳤다.“그쪽에서 이렇게 예의를 보이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야 없죠. 그런데 소현이는 강요하지 말죠.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는데 애 힘들게 하지 맙시다. 대신 소현이 몫은 내가 다 마실 터이니, 그렇게 하죠. 내가 형부기도 하고 남자 친구이기도 하니까 대신 마시는 건 불만 없겠죠. 다들?”얘기를 하던 김예훈은 바로 술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백요한, 종성우 둘과 시선을 마주했고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종성우가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이끌었다.“예훈 씨 보기랑 다르게 시원시원하네. 뭐 아까는 우리가 오해한 것 같네요. 자자, 사과의 의미로 먼저 한잔 올리죠. 같이 한잔해요.”말과 함께 종성우는 김예훈에게 술 한 잔을 따랐다. 옆에 있던 정소현은 표정이 달라지더니 이내 김예훈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술 싸움 하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든 백요한 무리의 호의적이지 않은 숨은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정소현이 눈치를 줬음에도 김예훈은 별다른 반응 없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이분이 사회생활을 잘하시네. 한잔하죠.”말을 마치더니 김예훈은 곧 술잔을 비웠고 그 모습을 본 백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서 가늘게 실눈을 뜨며 한잔 술을 더 권했다.“예훈 씨, 성격이 호쾌하네요.”백요한은 겉으로 말은 정중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진작에 김예훈을 바보로 정의했다.이런 자리에서 우리랑 술로 대적한다고? 여기서 취해서 기절하기만 하면, 내가 정소현을 손에 넣는 방법은 수백 개도 되는걸.’이내 백요한의 눈짓에 한 무리 사람들이 김예훈에게로 다가와서 술을 권했다.“예훈 씨, 우리도 얼굴을 텄으니 한잔합시다.”“예훈 씨, 정말 멋있네요. 자, 한잔 들어요.”“술잔을 채워요!”김예훈은 빼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고 술잔을 한잔 두잔 다 비웠다.“형부, 그만 마셔요. 더 마시다가 큰일 나겠어요.”술로 당하는 김예훈의 모습을 본 정소현은 속이 타들어서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로 계
술이 술을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예훈도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요한은 연신 냉소를 지어 보였다.‘인해전술에 걸린 줄도 모르고 저리 즐기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은 인간이야. 경험상 여기서 몇 잔 더 들어가면 김예훈 분명 못 버틸 게 뻔해. 지금같이 마시면 목숨은 여기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 죽지는 않아도 병원에는 실려 가겠어.’옆에 있던 종성우는 백요한이 잘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듯 한 기색이다. 피 보지 않아도 쉽게 이기는 법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니 말이다. 김예훈 같은 바보한테 제격인 방법이지 않나 싶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종성우는 다시 술잔을 채우고서 김예훈을 찾아갔다.곧 자리의 양주가 바닥이 났고 정소현은 김예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형부. 이젠 그만 마셔요. 집으로 가요. 네?”“여자가 뭘 알아! 우리 사내들의 술잔치니까. 껴들지 마.”김예훈은 제대로 몸을 겨누지 못했고 눈동자가 몽롱해 보였고 눈도 풀리기 시작했다.“맞아, 맞아. 예훈 씨 말이 맞아요. 오늘 밤새워 마시고, 마음껏 마시자고.”“여기 술 줘요.”곧 고량주 한 박스가 새로 들어왔다. 백요한 등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양주에 다른 술을 섞어 마시는 게 더 빨리 취하는 지름길이니 김예훈이 좀 더 일찍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생각 외로 김예훈은 곧 잘 술을 들이켰고,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백요한 등 일행과 쉬지 않고 마셨다.정소현은 속이 타들어 가듯 급했고, 계속하여 김예훈을 말렸다. 하지만 김예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취기 어린 상태로 상대방과 술을 계속 들이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량주 한 박스도 거덜이 났고 소란하던 이들도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조용해졌다.백요한을 비롯한 사람들은 술기운이 오르는지 기색도 좋지 않았고 다들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몸도 비틀거리고 의식도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상태가 그렇기에 아직 버티고 있는 김예훈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더 이상
털썩그 술을 마신 뒤, 백요한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거의 같은 시각, 자리에 있던 모두가 엎어졌고 김예훈과 정소현만 살아남았다. 김예훈은 그제야 손에 든 술잔을 집어 던졌고 그의 표정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형부, 괜찮아요? 봤어요? 지금 혼자서 이 많은 사람을 술로 다 쓰러 눕혔어요.”정소현은 충격받은 얼굴로 걱정스레 물었고 김예훈은 웃어 보였다.“나 아직 멀쩡해. 더 마실 수 있어.”“그러니까, 저번에 언니랑 고객 접대하러 갔을 때 그건 취한 척한 거네요. 그때 내가 막아서지 않았으면 형부한테 속아서 언니를 그냥 넘겨줄 뻔한 거네요. 형부 속셈대로 우리 언니랑 잤겠네요, 맞죠?”정소현은 번뜩 눈을 굴리더니 문득 그때 일이 떠오른 듯 다그쳐 물었다. 김예훈은 하도어이가 없어서 정소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쿵 밀었다.“무슨 그런 말을 해. 난 네 형부야. 언니랑 같이 자는 게 정상이지.”“아무튼, 안 돼요.”정소현은 무섭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어린 게 참 영특해.”김예훈은 그런 처제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 같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제 소현이 너는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여기 정리하고 나갈게.”정소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제야 김예훈의 눈동자가 무섭게 변했다.김예훈은 백요한을 일으켜 세워 그의 주머니에 든 무색의 액체가 든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백요한이 지니고 다니면서 맘에 드는 여자를 취할 때 쓰던 물건이었다.김예훈은 곧바로 그 액상의 물건을 백요한의 입에 부어 넣었다. 그리고 난 뒤 종성우를 끌어 들고 화장실에 처넣고는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프라이빗 클럽을 나선 김예훈은 정소현을 데리고 프리미엄 가든으로 향했고 며칠 묵게 했다.김예훈은 백요한 무리가 감히 다시 나타나면 밟아 죽일 생각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북악산 기슭에 있는 별원.인도 태권도 일인자 박용진이 잠시 별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는 박영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