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놀라워 아주!”그 순간, 김예훈의 반응에 종성우도 자극받은 모양새다. 지금까지 종성우가 대구 공씨 가문을 내세웠을 때, 아무리 신분 있는 이들도 어느 정도 예의를 갖췄었기에 김예훈 같은 깡다구는 난생처음이었다.종성우는 어이없는 듯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이봐, 김 씨. 죽고 싶어 날뛰는 것 같네. 딱 기다려. 사는데 경각심을 좀 가져야 할 거야.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김예훈이 먼저 체면이고 뭐고 없었으니, 종성우 입장에서는 예의 차릴 것 없었다. 성남시 세력을 동원해서라도 눈앞의 인간을 생매장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서서 그들을 보고 있는 여자 일행들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고 비아냥거리듯 수군거렸다.그녀들의 눈에는 김예훈 같은 허풍만 가득한 루저는 백요한이나 종성우 같은 명문가 도련님들 빵셔틀 하기에도 한참 모자라 보였다.“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딴에 남자라 허세 피우기는.”“그러게, 뭔 생각하는 거야!?”굳이 백요한이 나서지 않아도 종성우가 김예훈을 매장하려고 마음먹으면 그는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했다. 곧 좋은 구경을 할 것 같은지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종우성과 김예훈 양측은 서로 불꽃 튀는 눈빛이 오갔지만, 정소현이 있는 관계로 잠시 피 튀기는 주먹다짐을 뒤로하고 자리했다.김예훈 곧장 정소현의 옆자리로 향했고 전혀 백요한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곧 보기에도 예쁜 음식들이 식탁에 올랐고 호주산 양주가 메인 자리를 차지했다. 그냥 봐도 꽤 가격 나가 보이는 양주는 따는 순간 향이 확 풍기여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백요한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가 입도 뻥긋하지 않아도 종성우가 알아서 다 움직여 줬다. 종성우는 이내 술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학생이 술은 무슨. 선배, 저는 술 못 해요. 사양할게요. 술 대신 사이다로 할게요.”정소현의 앞에 술이 따라지자, 그녀는 바로 거절했다.“소현 후배. 오늘 우리가 모두 여기서 만난 게 인연도 인연인데,
김예훈은 담담하게 받아쳤다.“그쪽에서 이렇게 예의를 보이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야 없죠. 그런데 소현이는 강요하지 말죠.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는데 애 힘들게 하지 맙시다. 대신 소현이 몫은 내가 다 마실 터이니, 그렇게 하죠. 내가 형부기도 하고 남자 친구이기도 하니까 대신 마시는 건 불만 없겠죠. 다들?”얘기를 하던 김예훈은 바로 술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백요한, 종성우 둘과 시선을 마주했고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종성우가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이끌었다.“예훈 씨 보기랑 다르게 시원시원하네. 뭐 아까는 우리가 오해한 것 같네요. 자자, 사과의 의미로 먼저 한잔 올리죠. 같이 한잔해요.”말과 함께 종성우는 김예훈에게 술 한 잔을 따랐다. 옆에 있던 정소현은 표정이 달라지더니 이내 김예훈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술 싸움 하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든 백요한 무리의 호의적이지 않은 숨은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정소현이 눈치를 줬음에도 김예훈은 별다른 반응 없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이분이 사회생활을 잘하시네. 한잔하죠.”말을 마치더니 김예훈은 곧 술잔을 비웠고 그 모습을 본 백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서 가늘게 실눈을 뜨며 한잔 술을 더 권했다.“예훈 씨, 성격이 호쾌하네요.”백요한은 겉으로 말은 정중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진작에 김예훈을 바보로 정의했다.이런 자리에서 우리랑 술로 대적한다고? 여기서 취해서 기절하기만 하면, 내가 정소현을 손에 넣는 방법은 수백 개도 되는걸.’이내 백요한의 눈짓에 한 무리 사람들이 김예훈에게로 다가와서 술을 권했다.“예훈 씨, 우리도 얼굴을 텄으니 한잔합시다.”“예훈 씨, 정말 멋있네요. 자, 한잔 들어요.”“술잔을 채워요!”김예훈은 빼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고 술잔을 한잔 두잔 다 비웠다.“형부, 그만 마셔요. 더 마시다가 큰일 나겠어요.”술로 당하는 김예훈의 모습을 본 정소현은 속이 타들어서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로 계
술이 술을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예훈도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요한은 연신 냉소를 지어 보였다.‘인해전술에 걸린 줄도 모르고 저리 즐기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은 인간이야. 경험상 여기서 몇 잔 더 들어가면 김예훈 분명 못 버틸 게 뻔해. 지금같이 마시면 목숨은 여기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 죽지는 않아도 병원에는 실려 가겠어.’옆에 있던 종성우는 백요한이 잘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듯 한 기색이다. 피 보지 않아도 쉽게 이기는 법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니 말이다. 김예훈 같은 바보한테 제격인 방법이지 않나 싶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종성우는 다시 술잔을 채우고서 김예훈을 찾아갔다.곧 자리의 양주가 바닥이 났고 정소현은 김예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형부. 이젠 그만 마셔요. 집으로 가요. 네?”“여자가 뭘 알아! 우리 사내들의 술잔치니까. 껴들지 마.”김예훈은 제대로 몸을 겨누지 못했고 눈동자가 몽롱해 보였고 눈도 풀리기 시작했다.“맞아, 맞아. 예훈 씨 말이 맞아요. 오늘 밤새워 마시고, 마음껏 마시자고.”“여기 술 줘요.”곧 고량주 한 박스가 새로 들어왔다. 백요한 등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양주에 다른 술을 섞어 마시는 게 더 빨리 취하는 지름길이니 김예훈이 좀 더 일찍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생각 외로 김예훈은 곧 잘 술을 들이켰고,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백요한 등 일행과 쉬지 않고 마셨다.정소현은 속이 타들어 가듯 급했고, 계속하여 김예훈을 말렸다. 하지만 김예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취기 어린 상태로 상대방과 술을 계속 들이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량주 한 박스도 거덜이 났고 소란하던 이들도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조용해졌다.백요한을 비롯한 사람들은 술기운이 오르는지 기색도 좋지 않았고 다들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몸도 비틀거리고 의식도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상태가 그렇기에 아직 버티고 있는 김예훈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더 이상
털썩그 술을 마신 뒤, 백요한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거의 같은 시각, 자리에 있던 모두가 엎어졌고 김예훈과 정소현만 살아남았다. 김예훈은 그제야 손에 든 술잔을 집어 던졌고 그의 표정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형부, 괜찮아요? 봤어요? 지금 혼자서 이 많은 사람을 술로 다 쓰러 눕혔어요.”정소현은 충격받은 얼굴로 걱정스레 물었고 김예훈은 웃어 보였다.“나 아직 멀쩡해. 더 마실 수 있어.”“그러니까, 저번에 언니랑 고객 접대하러 갔을 때 그건 취한 척한 거네요. 그때 내가 막아서지 않았으면 형부한테 속아서 언니를 그냥 넘겨줄 뻔한 거네요. 형부 속셈대로 우리 언니랑 잤겠네요, 맞죠?”정소현은 번뜩 눈을 굴리더니 문득 그때 일이 떠오른 듯 다그쳐 물었다. 김예훈은 하도어이가 없어서 정소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쿵 밀었다.“무슨 그런 말을 해. 난 네 형부야. 언니랑 같이 자는 게 정상이지.”“아무튼, 안 돼요.”정소현은 무섭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어린 게 참 영특해.”김예훈은 그런 처제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 같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이제 소현이 너는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여기 정리하고 나갈게.”정소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밖으로 걸어 나갔고, 그제야 김예훈의 눈동자가 무섭게 변했다.김예훈은 백요한을 일으켜 세워 그의 주머니에 든 무색의 액체가 든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백요한이 지니고 다니면서 맘에 드는 여자를 취할 때 쓰던 물건이었다.김예훈은 곧바로 그 액상의 물건을 백요한의 입에 부어 넣었다. 그리고 난 뒤 종성우를 끌어 들고 화장실에 처넣고는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프라이빗 클럽을 나선 김예훈은 정소현을 데리고 프리미엄 가든으로 향했고 며칠 묵게 했다.김예훈은 백요한 무리가 감히 다시 나타나면 밟아 죽일 생각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북악산 기슭에 있는 별원.인도 태권도 일인자 박용진이 잠시 별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는 박영
“기관 측의 핑계요?”박용진은 실눈을 뜨고 물었다.“네.”이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상대의 신원은 밝혀진 게 있나요?”“확인 한 바로, 내 사람들에게 손을 댄 이가 김예훈이라고 합니다. 진주 곽 씨 측에서 전해 온 소식에 따르면 김예훈의 정체가 아무래도 경기의 일인자인 김세자 같다고 하네요. 김세자면 CY그룹을 장악한 인물이고 CY에서는 이미 리카 제국 임씨가의 자산과 저희 청별 그룹의 경기 자산을 융합해서 틀어쥔 상태입니다. 지금 CY는 상장 준비를 하고 있고요.”“빌어먹을!”박용진은 눈빛이 확 변해서는 욕을 하고는 잠시 뒤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입을 열었다.“나는 또 무슨 대단한 신분인 줄 알았네. 고작 별거 아닌 세자쯤이야. 우리 인도가 김세자든 박세자든 세자 하나 상대 못 할까요? 기관에서 뒷배까지 서준다고 하니, 우린 우리 방식대로 상대해 주죠. 이 대표가 김세자를 아예 밟아줬으면 하네요. CY그룹도! 내가 CY그룹을 상장 못 하게 할 것이고 김세자를 완전히 거지로 만들어 버려야겠네요. 우리 둘이 같이 성남으로 가죠.”박용진의 말에 이대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미 박용진이 말을 뱉은 이상, 그는 청별 그룹의 한국에서의 더 많은 자금과 인맥을 동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원을 나선 이대정은 곧 성남으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곽 씨 도련님?”...같은 시각, 로열 가든 그룹.최근 들어 업무로 바쁜 정민아는 그에 더해 로열 가든 그룹 임원 정리로 더 바빠졌다. 회사 모든 업무가 그녀 한 사람의 몫이었다. 어떨 때는 중요한 클라이언트마저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야 만날 수 있을 지경이었다.저녁 끼니를 때우려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던 차에 정민아의 핸드폰이 울렸다.“정 대표님, 대전 백씨 가문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백운 별장 건으로 세부 사항을 논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분들 올려보내도 되는지요?”프런트에서 걸려 온 전화는 정중하게 그녀의 의사를 물어왔다.정민아는 잠깐 고민하더니 답했다.“그 사람들 회사
백요한이 말을 마치자마자 백요한 뒤에 있던 그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노골적인 시선으로 정민아를 훑어보았다.정민아는 표정이 조금 굳어졌지만 여태까지 여러 일을 겪어온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할 정도로 성장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정민아가 담담하게 얘기했다.“보잘것없는 제 남편이 혹시 백요한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린 적이 있나요?”“보잘것없다고?”백요한은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당신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보잘것없다니. 감히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니 진짜 대단하지 않으면 진짜 멍청한 사람이겠지.”“제 남편이 도대체 뭘 한 건가요?”정민아가 담담하게 물었다.그 질문에 백요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멀지 않은 곳의 종성우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부여잡고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다 유명한 도련님이고 그중에서도 악독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어젯밤 김예훈 때문에 그런 수모를 겪었으니. 게다가 수치스러워서 다른 사람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얼마나 억울한가.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했다.정민아가 그 일을 물어보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정민아가 그 일에 대해 물어보자 백요한은 금방이라도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어두워진 얼굴로 백요한이 얘기했다.“정 대표, 우리 짧게 얘기하자고. 오늘 정 대표를 부른 건 시킬 일이 있어서야.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야. 첫 번째, 당신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곳으로 오게 해. 내가 직접 당신 남편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두 번째, 당신 여동생도 불러. 이 두 가지 일을 해주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과 김예훈은 다 죽게 될 거야!”그 말을 들은 정민아의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백요한 도련님, 도련님과 예훈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우셔야 할 것 같네요.”“존중?”백요한은 차갑게 웃고 입을 열었다.“내가 대전 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야. 내 뒤에는 부산 용문당
종성우 등 사람들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백요한 도련님이 대단했다.짝.정민아가 갑자기 종성우의 뺨을 후려치면서 차갑게 얘기했다. “백요한 도련님, 제발 사람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우고 오세요.”“존중?”백요한은 갑자기 정민아의 팔을 잡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나는 침대 위에서만 상대방을 존중해 줘. 아, 그리고 알려줄 게 있는데, 오늘 아침 최종호 님께서 연락이 왔어. 곧 성남으로 와서 나의 배후가 되어주겠다고. 정민아, 당신이 김세자를 배후로 뒀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런 김세자도 우리 최종호 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그냥 순순히 내 말을 따르겠어. 혹시 알아? 내가 좀 부드럽게 대해줄지?”쾅.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룸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백요한,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바로 꿇겠어. 그래야 죽지 않을 수 있거든.”차가운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오정범을 데리고, 김예훈이 차가운 표정으로 들어섰다.얼마 전, 오정범은 몰래 정민아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정민아와 백요한이 만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래서 김예훈이 바로 달려왔다.“너 이 자식, 드디어 나타났구나!”백요한은 정민아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김예훈을 훑어보며 차갑게 얘기했다.“우리,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잖아?”아침에 깨나서부터, 백요한은 미친 듯이 김예훈의 행적을 알아보았지만 여전히 찾았다는 소식이 없었다.정민아를 이용해서 김예훈을 부르려던 것은 그저 가벼운 생각이었지만 인제 와서 보니 매우 성공적인 방법이었다.종성우는 그를 보자마자 얼굴이 벌게졌다. 아직도 길을 걸을 때 엉거주춤하며 걷고 있는 종성우에게 이런 수모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이 김예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잠깐일 뿐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김예훈을 죽이는 것이었다.김예훈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정민아 앞으로 걸어가서 가볍게 얘기했다.“괜찮아?”“난 괜찮아. 넌 어쩌
정민아와 그가 데려온 경호원들이 함께 룸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김예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백요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오늘 성남에서 죽지 않을까 걱정되지도 않아?”“성남에서 죽어?”백요한은 크게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얘기하는 거야? 네가 대전 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내 배후는 무시하지 못할 거야. 용문당이 무섭지도 않아? 네 배후가 양정국이라고 해도 용문당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용문당은 한국 기관의 지하 세력이었다.전설에 의하면 용문당의 당주는 서울에서 온 사람인데 지위가 하늘을 찌를 만큼 높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국의 9대 장관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퇴직한 후, 용문당을 만들었다.용문당은 각 지역에 다 존재했다. 그중, 부산 용문당의 회장이 바로 최종호였다. 이렇게 봤을 때, 백요한은 확실히 건드리면 안 되는 신분이었다.“용문당?”김예훈은 가볍게 웃었다.“용문당 당주가 오더라도 내 앞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있을 거다. 그런데 고작 부산 용문당의 회장으로 날 상대하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에게 있어서 널 죽이는 건 지나가는 개를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야.”종성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화를 내며 물었다.“너 이 새끼, 뭐라고 했어! 내가 지금 당장 널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몰라?!”백요한은 손을 저으며 화를 내는 종성우를 제지했다.“급해하지 말아요.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고 그 대단하신 김예훈 도련님도 바로 눈앞에 있잖아요. 어디 한번 우리에게 손을 써보라고 하죠. 김예훈, 네가 오늘, 날 건드리지 못한다면 오늘 네 아내와 처제는 다 내 침대에서 울게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또 사람을 시켜 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다 죽여버릴 거야. 어때, 어디 한번 날 건드려 봐. 그러지 못하겠으면 네 아내를 다 벗겨서 내 침대로 보내. 나도 기다리기 힘들거든.”백요한 옆의 따까리들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