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약을 끓이느라 바삐 맴돌았다. 첫 3일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에 약을 끊을 수 없었다.조금 전 도윤의 행동 때문에 지아는 하마터면 요물처럼 자신의 원래 모습을 드러낼 뻔했다.그녀는 마스크를 벗고 조심스럽게 말리는 동안 자신도 옷을 갈아입었다.도윤의 뒤틀린 성격을 생각하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치료하는 게 나았다. 앞으로 몸을 검사할 때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까.지아는 만약을 대비해 다른 약을 특별히 준비했다.마스크를 얼굴에 다시 끼운 지아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동굴로 들어가는 지름길을 택했다.약을 기다리는 동안 지아는 과일 몇 개를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피로를 조금이나마 달랬다.“제가 몸을 보는 걸 원하지 않으니 그쪽이 본 다음 설명해 주세요.”지아는 진봉에게 말했다.“알겠습니다.”지아가 없는 동안 진봉과 도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진봉은 심각한 얼굴로 지아에게 말했다.“몸에 새겨진 선이 많이 옅어지긴 했습니다. 위로는 쇄골, 아래로는 배꼽 아래 3센티미터까지, 등 뒤는 엉덩이까지 내려왔어요.”도윤은 진봉을 노려보았고 진봉은 가볍게 기침했다.“둔부요.”“색의 선명함, 굵기, 모양을 명확하게 설명해 줘요.”“그건...”진봉은 반나절을 생각해도 마땅한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아 휴대폰으로 부분적인 사진 몇 장 찍었다.“자, 직접 보시죠, 선생님.”중요 부위를 피해서 찍었지만 도윤의 몸이 좋다는 건 아무 사진에서나 다 알 수 있었다.깎은 듯이 야윈 턱, 섬세한 쇄골, 거친 선이 드러난 복근의 윤곽, 움직이지 않아도 단단한 근육이 드러난 허벅지까지.지아가 붉은 선을 살펴보니 대충 10% 정도 옅어진 모습이었다.“네, 알겠습니다.”다음날이 지나고 도윤의 몸 상태는 조금 나아졌지만 땀을 많이 흘려서 기운이 없었다.진봉이 그를 부축해 목욕 가운으로 감싸주니 더 이상 이틀 전처럼 틈틈이 몸을 적시고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었다.도윤은 과일을 먹고 몸이 너무
아니, 이건 또 무슨 전개야?지아는 도윤이 자신을 보면 검사할 수 있도록 순순히 몸을 내어줄 줄 알았는데 보자마자 입을 맞추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게다가 전에 진환이 약을 먹인 입술이라 지아는 거부감이 들었다.왠지 자신이 자초한 일에 대한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도윤 씨, 이거 놔!”도윤은 코알라처럼 지아를 꼭 껴안고 손을 놓지 않았다.“지아야,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널 찾았는지 알아? 매일 밤낮으로 네 생각만 했어. 내가 멍청했어. 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줄 알았다면 애초에 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지아는 멈칫했다. 어쩐지 유난히 순조롭게 떠날 수 있더라니.자신이 가자마자 누군가 쫓아왔지만 도윤은 처음부터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막을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그녀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도 있었다.“왜 놓아주려고 했어?”도윤은 꿈속이라고 생각했는지 망설임 없이 지아에게 말했다.“내가 과거에 너한테 못된 짓을 많이 했으니까 보상해 주고 싶었어.”지아는 도윤의 눈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붉은 자국이 있었지만 원래도 잘생긴 얼굴에 붉은 핏줄이 더해지자 추한 게 아니라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는 불멸의 군주 같았다.도윤은 아직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아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볼 수 없었다.“죽어도 놓아주지 않겠다고 했잖아.”“나도 너를 억지로 곁에 붙잡아두고 있으면 영양분을 잃은 화분처럼 언젠가는 시들어 버릴 거라는 걸 잘 알아.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널 떠나보내기로 했어. 네가 떠나더라도 가끔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아예 소식이 끊길 줄은 몰랐지.”도윤은 지아의 숨결을 느끼며 목에 깊게 입을 맞추었다.“후회했어. 밤마다 네 생각만 하면 후회가 밀려왔어. 널 보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괴로웠어.”지아는 도윤의 입술을 떼어냈다.“이러지 마.”도윤은 손을 뻗어 지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지아야, 그거 알아? 며칠 전에 나 진짜 죽을 뻔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이대로 죽
지아는 애써 도윤의 복근에서 눈을 떼고 주의 깊게 살피며 청진기를 꺼내 심박수를 점검했다.“지아야, 뭐가 이렇게 차가워?”도윤은 중얼거리며 물었다.“꿈인데 왜 현실 같지.”“쉿, 말하지 마.”지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청진기로 들은 다음 눈을 벌려 상태를 관찰했지만 동공에 초점이 없어 살펴볼 수 없었기에 해독한 다음 밖에 나가 기기로 검사해야 했다.일단 독을 해독하면 다른 장기들도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다.도윤은 꿈인 걸 알면서도 조금만 더 지아를 붙잡아두면 떠올릴 기억이 더 많아질 것 같아 서둘러 눈을 감았다.“엎드려 봐.”“응.”도윤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본 지아는 지난 이틀 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았다.남자의 타고난 체질이 보통 사람보다 좋았기에 다쳐도 신체가 스스로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다.“됐어, 다시 돌아누워.”잘 회복된 것을 확인한 지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윤의 엉덩이를 툭 쳤다.그런데 그 행동이 도윤의 몸에 불을 붙일 줄이야.“검사 끝났으면 이제 내가 확인할 차례인가?”도윤은 몸을 뒤집어 지아를 덮쳤고 지아는 두 손으로 도윤의 가슴을 밀어냈다.“뭐 하는 거야?”도윤은 다시 입을 맞추었다.“지아야, 그동안 내 생각 한 번이라도 했어? 잠깐이라도.”지아는 떠나는 날 이번 생에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떠올렸다.이번에 도윤을 살려준 건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이었지, 그와 화해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다면 도윤을 더 차갑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아니, 생각한 적 없어. 당신 곁을 떠나 잘 살았어. 하루하루가 행복했어.”도윤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전효를 사랑하게 된 거야?”이 가능성을 떠올리자 도윤은 폭발한 사자처럼 지아의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지아야, 정말 잔인하다. 이번 생에 나만 사랑하겠다고 했잖아.”지아는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도윤 씨, 이거 놔. 우린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차라리 이런 말을
지아는 처음 도윤과 결혼했을 때를 떠올렸다. 늘 말이 없었던 그는 침대에서도 행위에만 집중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는커녕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다.매번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정도로 괴롭혀대는 게 아니었다면, 지아는 도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아했을 것이다.도윤은 항상 자신의 모든 감정을 마음속에 숨겼다.오랜 세월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두 사람은 서로 바뀐 것 같았다.지아가 감정을 감추기 시작하니 이젠 도윤이 비굴하게 들러붙었다.그는 더 이상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사람에게 칭얼거리며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도윤은 지아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건드렸다.촉촉한 입술이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며 물기를 묻혔다.“지아야, 보고 싶었어. 미쳐버릴 정도로 보고 싶었어.”지아는 곧 진환이 들어와 도윤의 밑에 깔린 도윤을 자신을 보면 뒤집어질 거라고 생각했다.하여 방법을 생각해 낸 지아는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도윤 씨, 나도 당신 보고 싶었지만 이제 곧 돌아갈 시간이야.”“어디로 돌아가?”“꼭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말하며 지아는 도윤에게 먼저 입을 맞추었고, 수동적이던 그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도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의심하지 않았다.지아는 키스로 도윤의 정신을 쏙 빼놓고 그 틈을 타 도망쳤다.도윤만 제자리에 남은 채 지아를 불렀다.“지아야, 지아야...”지아는 빠르게 옷매무시를 다듬고 동굴을 빠져나왔다.일행은 오래전에 떠났고 동굴 밖에는 커다란 붉은 뱀만 남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무무는 산에서 열매를 따고 있었고, 커다란 붉은 뱀이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주고 있었다.산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지아의 가슴 속 열기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지아는 큰 나무에 올라가 머리 뒤로 손을 얹었다.나무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온몸에 스며들고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날아가는 새 떼를 바라보며 도윤과 함께했던 시간이 천천히 떠올랐다.행복하고
진환은 힘없이 대답했다.“보스, 저예요.”도윤은 손을 뻗어 더듬었다.“지아는 어딨어?”“또 꿈을 꾸셨나 보네요.”“꿈?”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지아의 피부의 탄력과 촉감, 온도가 생생하게 느껴지고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네, 사모님은 수천, 수만 리나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여기 나타나요.”도윤의 마음은 허탈했다. 힘겹게 보물을 얻었는데 결국 한낱 꿈이었다.고개를 숙인 그는 입꼬리를 내리며 힘없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하긴, 어떻게 만날 수 있겠어.”“깼으면 뭐 좀 먹어요.”지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윤은 그제야 진환 외에 그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전 잠꼬대를 하지는 않았을까?“저 여자도 여기 계속 있었던 거야?”진환이 서둘러 대답했다.“아니요, 바네사는 계속 밖에 있다가 저랑 같이 들어왔는데 왜 그러세요?”“아무것도 아니야.”도윤은 진환이 건네주는 과일을 받아먹었다.지난 며칠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과일과 채소만 먹었고, 몸이 허약한 도윤은 특별히 몸에 좋게 재배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몇 개 더 먹었다.단백질이나 지방 보충은 없었지만 과일들로 허기를 달래니 그다지 괴롭지는 않았다.“가서 물통에 물 좀 갈아줘요. 이따 약을 바꿔서 남은 독을 빼내면 내일부터 안 써도 돼요.”지아가 지시했다.“네.”오직 도윤의 건강을 위해 진환은 빠르게 움직였다.지아는 하품을 하며 약을 계속 끓였고, 이날은 그녀와 도윤은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하루가 지나자 육안으로도 도윤의 상태가 호전된 게 보였다.진봉도 데리러 달려왔다.“선생님, 우리 보스 다 나았나요?”“당연히 아니죠. 아직 3일밖에 안 됐고 독소는 절반 정도 사라졌어요. 남은 독소를 빼려면 6일은 더 걸릴 거예요. 다만 이제는 뜨거운 찜질할 필요 없이 매일 한 시간씩 여기 약탕에 머물면 돼요. 앞으로는 약도 하루에 세 번으로 줄일 거고요.”지친 지아의 얼굴에서 지
진환이 설명했다.“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유명한 의사에요. 보스가 가면을 쓰지 않았으니까 아는 것도 이상하진 않죠.”도윤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래?”“뭐, 유명한 의사들은 좀 거만하긴 하죠.”진환이 덧붙였다.“그래도 보스 독 치료하느라 애썼어요.”도윤은 어딘가 그 의사가 자신을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괜한 생각이겠지.’미셸은 도윤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자 눈을 붉히며 달려왔다.“오빠, 걱정 많이 했어.”도윤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포옹을 피했다.“괜찮아, 너도 나 때문에 오래 여기 있었네. 난 남아서 치료할 테니까 넌 돌아가.”미셸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힘들게 달려왔는데 깨어난 도윤이 제일 먼저 건넨 건 떠나라는 말이었다.“오빠 눈이 안 좋아서 내가 돌봐줘야 하잖아. 휴가 냈으니까 괜찮아.”“됐어. 진봉이랑 진환이도 있는데 넌 여자라 불편하잖아.”미셸은 발을 굴렀다.“뭐가 그렇게 불편해, 나도 오빠도 미혼이고 예전에 같이 작전 나갈 때도 서로 챙겨줬잖아?”조원주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이 말을 듣고 미셸이 일방적으로 들러붙는다는 걸 알았다.시선을 옮겨 미셸을 위아래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아니꼬움이 가득했다.“요즘 아가씨들은 어린 나이에 참 뻔뻔하네. 거절하는 것도 모르고 들러붙는 게 얼마나 싸 보이는지.”자신에게 소변을 뒤집어씌운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미셸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오빠랑 나는 다정한 사이인데 결혼도 못 한 노처녀라서 질투하는 거예요?”“미셸!”이 말을 듣고 막 밖으로 나온 우서진이 미셸을 꾸짖기도 전에 하얀 그림자가 날아왔다.미셸의 얼굴에 따귀가 날아들었다.짜악-아주 선명한 울림이 숲에 울려 퍼졌다.식사를 마치고 나온 지아는 언제나처럼 거만한 미셸의 목소리를 듣고 빠른 속도로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미셸은 당황한 나머지 멍하니 지아를 쳐다보며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너, 날 때렸어?”지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
지아는 사람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당신들 신분이 무엇이든 이 마을에 왔으면 이곳 규칙을 지켜요. 그게 싫으면 당장 나가요.”우서진은 격앙된 미셸을 제지했다.“얘야, 그만해. 여긴 A시가 아니야. 저 자식 안 구할 거야? 유일하게 구해줄 수 있는 의사에게 밉보여야겠어?”미셸은 도윤을 생각해서 마지못해 조원주에게 다가가 말했다.“할머님, 다 제 잘못이에요. 지난 며칠 동안 오빠의 독 때문에 불안해서 그랬어요. 용서해 주세요.”여든 살인 조원주는 어린 계집의 사소한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어린 게 주제넘게 굴지 마.”지아는 조원주를 부축하며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미셸은 지아의 뒤통수를 매섭게 노려보며 따귀를 맞고 붉게 물든 얼굴을 만졌다.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우서진은 이런 미셸의 모습을 보며 겁이 났다. 미셸은 신분이 비범했고 도윤이 수혈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데려온 것이다.미셸과 도윤이 크는 것을 지켜보며 둘의 성격을 잘 아는 그는 이대로라면 미셸이 분명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됐어 미셸, 이 자식은 이제 큰 고비를 넘겼고 여자인 네가 있는 것도 그러니까 사람 보내서 밖으로 데려다줄게.”“선생님, 저 안 가요. 전 남아서 오빠 돌볼 거예요!”미셸은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선생님 걱정 마세요. 오빠를 위해서라도 충동적으로 멍청한 짓 안 할게요.”도윤의 독이 풀리는 날은 저 여자와 노파가 죽는 날이다!저 멀리 대나무 건물 위에 서 있던 무무가 미셸의 불길한 눈빛을 포착했다.무무의 마음은 3살짜리 어린애처럼 마냥 유치하지 않고 조숙했다.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마음을 더 잘 이해했던 아이는 미셸의 눈가에 담긴 감정이 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스윽 손을 들어 올리자 독수리 한 마리가 앞 난간에 내려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무무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이 장면을 우연히 진환이 포착했는데,
지아는 샘물가에 엎드린 채 손을 들어 무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착하지, 엄마 좀 잘게.”무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디밭에 누워 지아의 볼에 뽀뽀를 했다.두 사람 주위에는 작은 나비 몇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카메라가 있다면 기록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지아는 며칠 밤을 새운 탓에 너무 피곤해서 엎드리자마자 곧장 잠에 들었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지아의 하얀 얼굴은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무무도 지아를 귀찮게 하지 않고 근처에서 약초를 뜯었다.산속의 작은 동물들도 무무를 좋아했고, 자주 보러 오던 사슴은 무무 앞에 누워 쓰다듬는 손길을 받아들였다.참 단조롭고도 아름다운 일상이었다.도윤은 허약한 몸인 데다 문제는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다.진환은 그를 데리고 익숙한 방으로 갔다. 크지 않은 방에는 대나무로 만든 가구가 있었고 창문을 열면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오빠, 천천히 가. 여기 작은 테이블에 물 있어. 목마르면...”도윤은 도와주려는 미셸의 손을 뿌리쳤다.“미셸, 여기 있을 필요 없다고 했잖아. 사람 보내줄 테니 가.”“하지만 오빠, 난...”도윤은 손을 흔들며 진환과 진봉을 내보냈고 방에 두 사람만 남자 그때야 도윤이 말을 꺼냈다.“미셸, 넌 이미 결혼 적령기가 지났고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어. 나한테 눈길 돌리지 마. 3년 전에 난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고 그 여자와의 재혼이 아니면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소지아는 이미 오빠를 떠났어. 오빠가 그동안 계속 찾아다녔다는 거 알아. 정말 오빠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면 그렇게 단호하게 떠났을까? 시간이 지나서 이미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아이까지 가졌을지도...”쾅-큰 소리와 함께 도윤이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을 부쉈다.“내 앞에서 지아 욕보이는 말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미셸, 이번이 마지막이야. 내가 할 말은 끝났어. 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