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혁도 화가 나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 작은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주혁은 입으로는 지윤을 도련님이라 부르면서, 이곳 아이들이 대부분 고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지윤을 자극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아이가 잘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니, 주혁은 지윤을 집중적으로 괴롭혀 다른 아이들 앞에서 권위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윤은 더욱 완강했고, 싸울수록 저항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이 고집스러운 녀석은 도대체 뭐지? 정말 까다로운 상대였다.’“이 녀석, 넌 죽었다.”주혁은 진지하게 지윤을 때리려 했고, 주먹을 들어 지윤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그만둬!” 이때 지아가 소리쳤다. 지윤은 절망적이라는 듯 눈을 감았는데 지윤의 작은 몸으로는 저항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주혁의 손목을 붙잡았다.모든 이들이 그 방향을 바라보았고, 지아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다행히 지아가 제때 도착했다. 사실 지아는 몰랐지만, 멀리서 감독관이 마취총을 들고 있었고, 지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주혁은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지윤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지윤은 오랫동안 지아를 보지 못했고, 어릴 적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다.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사랑한다면 왜 자기의 곁에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지윤은 지아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항상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윤이 다시 지아를 볼 때, 지윤은 첫눈에 지아를 알아보았다. 그 순간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 환상이 아닐까? 어머니가 여기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분명 지아는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이 들었다.이에 주혁도 놀랐다. 여기에 여자가 나타났다니. 이 여자는 분명 지윤 때문에 온 것이었고 지아는 이지윤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괜찮아? 아이야?”지윤은 멍하니 서서 크게 눈을 떴다. “누구세요?” 지아는 지윤의 얼굴에 난 상처
지아는 아이의 눈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떨림을 보았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자식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다니.’“미안해, 미안해.” 지아는 아이를 품에 안고 거듭 사과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 여, 여긴 어떻게 왔어요?”“아가, 엄마가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엄마?”지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아가 정말 자신을 알아본 걸까?“아들, 엄마가 전에 오해한 줄도 모르고 널 이제야 찾아왔어. 엄마가 다 미안해.”지아는 아이를 꼭 껴안은 채 눈물이 턱을 타고 지윤의 목까지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지금은 포옹만이 최고의 위로였다. 도윤은 사람을 시켜 약을 가져오게 했다.“지아야, 애 약부터 발라주자.”지아는 그제야 아이를 놓아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폈다.“많이 아팠지?”“괜찮아요.”지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까 멍하니 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가 자신의 상처에 약 발라주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아빠, 진짜 엄마예요?”도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코를 툭 건드렸다.“바보야, 진짜지 그럼.”도윤의 말을 들은 지윤이는 지아가 약을 발라줄 때도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얌전히 있었다.자기 때문에 지아가 놀라서 가버릴까 봐.예전에는 그래도 가끔씩 말썽을 부렸는데, 지금은 정말 성질 한 번 안 부릴 정도로 얌전한 아이가 되어서 지아는 그 모습이 더더욱 안타까웠다.“지윤아 배고프지, 엄마가 밥 해줄까?”“좋아요.”아이가 이렇게 클 때까지 한 번도 직접 밥을 해 먹인 적이 없었다.그러고도 엄마라고 할 수 있는지 참 부끄럽기 그지없었다.과거 나쁜 생각으로 지윤이를 안고 배에서 뛰어내렸을 때만 생각하면 지아는 무척 후회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도윤은 모자를 안방으로 데려갔다. 그는 평소 할 일이 없을 때면 산에 가서 몰래 지윤이 곁을 지키곤 했었다.남자아이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단호하게 굴었지만 그렇
지아는 지윤이가 매우 예민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늘 걱정에 시달리며 힘들게 얻은 걸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지아는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진정시키며 얼마나 사랑하는지 거듭 말해주었다.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주었는데 지윤이는 배가 터질 듯이 많이 먹더니 도윤이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가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아이는 엄마의 요리가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윤아, 이리 와.”지아는 창가에 앉아 아이를 향해 손짓했고 지윤이는 서둘러 순순히 올라와 지아의 품에 안겼다.여기선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는데 지윤이는 엄마가 함께해서인지 평소와 다른 각도에서 훈련장을 바라보자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지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네 이름도 내가 지은 거야. 엄마 아빠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지. 넌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태어났어.”“엄마는 그때 아빠를 많이 사랑했나 봐요.”“응, 많이 사랑했지.”지아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아빠에 대한 엄마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너는 내가 임신해서 낳은 아기야. 그때 네 아빠가 손을 써서 널 데려가면서 우린 헤어졌고 엄마는 네 존재도 몰라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놓쳐버린 거야. 엄마는 매일 널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너를 생각했어. 엄마가 이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한다는 걸 알아줘.”지윤이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엄마, 나도 엄마를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해요.”“착하다.”지아는 아이의 이마 위에 턱을 얹으며 말했다.“엄마는 아빠의 결정에 간섭할 수 없어. 넌 여기선 항상 조심하고 위험하면 제일 먼저 도움을 청해야 해, 알았지? 넌 아직 어린애니까 자신을 보호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거야.”“엄마 걱정 마세요. 아빠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요. 전에도 몇 번 버티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이 저를 구해줬어요. 그렇지만 아빠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버틸 수 있으면 버티면서 피를 흘리되 눈물은 절대 흘리면 안 된다고 했어요.”“쯧,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듣
지윤이는 엄마가 도윤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좋았다. 세상에서 도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아뿐이었다.기껏해야 도윤이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도윤을 기쁘게 해줄 방법을 찾으라는 말만 하던 백채원과는 달랐다.“하지만 아빠가 그렇게 나쁜데 엄마는 어떻게 아빠를 좋아했어요?”지아가 독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땐 내가 눈이 멀었지. 아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쫓아다녔는지 알아? 큰 강물 속 물고기만큼 많았어. 네 아빠 그 얼굴에 엄마가 속아 넘어간 거지.”“엄마가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나도 없고 동생들도 없었어요.”아이가 실망스럽게 말하자 지아는 즉시 말을 돌렸다.“네 아빠도 예전엔 꽤 인간적인 사람이었지. 엄마한테 잘해줄 때도 있었어. 그래서 널 임신하기 전에는 엄마가 매일 행복해하며 네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단다.”“그럼 지금은요?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잘해주고 있고 대부분 아빠가 했던 일은 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걸 전 알아요.”“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엄마가 약속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지금처럼 너를 사랑한다는 거야.”지윤이가 작게 속삭였다.“엄마, 그 사랑하는 마음을 아빠에게 조금만 나눠줄 수 있어요? 아빠 정말 불쌍해요.”“이 세상에는 네 아빠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서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하지만 아빠에게 엄마는 물고기에게 필요한 산소와 같아서 산소가 없으면 물고기는 죽을 거예요.”지윤이가 지아의 품에 파고들었다. 학습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이는 금방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난 아빠도 좋고 엄마도 좋은데 엄마랑 아빠가 같이 있는 게 제일 좋아요.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데 엄마도 날 사랑한다면서요? 어차피 지금 혼자인데 아빠가 전에 했던 행동들 용서해 주면 안 돼요? 동생들도 나처럼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지윤이는 생각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어린 두 아이와 달리 그래도 컸다고 생각한 바를 논리적으로 말했다.지아
“엄마, 저 얌전히 말도 잘 듣고 다신 엄마 화나게 하지 않을게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요?”변진희가 지아를 뿌리치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하지만 그래도 절뚝거리며 쫓아가면서 변진희가 탄 차 뒤에서 돌아와 달라고 계속 애원했다.그때 지아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변진희가 평소 차갑게 대해도 그래도 엄마인데, 그녀가 떠나면 자신은 엄마가 없는 아이가 될 것 같았다.변진희가 남아서 예전처럼 차갑게 굴어도 곁에서 매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좋았다.변진희가 떠난 후, 지아는 밤낮으로 그녀가 돌아오길 빌었다.매일 학교가 끝나면 밖에서 아이를 데리러 오는 엄마들, 아이들 밥을 챙겨오는 엄마들, 학부모 활동에 참여하는 부모들, 놀이터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부모들, 아이가 넘어지면 마음이 아픈 듯 품에 안아주는 엄마들을 보며 자신은 나중에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가정을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지금의 자신이 그때 변진희와 다를 게 있을까? 자신도 아이를 버려둔 채 완벽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했다.“지윤아.”지아는 아이를 껴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엄마, 난 미안하다는 말 대신 챙김 받고 싶어요. 옛날에는 내 존재를 몰라서 그랬지만 이제 알았는데도 날 떠날 거예요?”지윤은 역시 도윤을 닮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짧은 시간안에 지아가 자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파악한 아이는 단번에 약점을 잡고 아이의 순진한 눈물을 협상 카드로 삼아 지아를 붙잡고 있었다.그러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세상 어떤 부모가 사탕을 달라고 우는 아이를 외면하겠나.특히 이 아이에겐 빚진 것이 많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하늘의 별과 달이라도 따주어야 했다.하지만 아이는 별이나 달 대신 그저 지아가 곁에 있어 주길 바랄 뿐이었다.“난...”“엄마, 전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저와 동생들을 사랑하잖아요. 저에겐 완전한 가족이 없었지만 동생들도 한창 뭘 해야 할지
지아는 지윤이의 머리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었다.“아가, 엄마도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가끔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게 아니야. 네가 한 가족을 원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지만 엄마랑 아빠가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지윤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지아를 바라보았고 지아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엄마도 어렸을 때 너처럼 한 가족이 단란하길 원했어. 그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매일 우리에게 차갑게 대했어. 사람이 매일 기분이 좋지 않으면 결국에는 어떻게 될까? 우울해하고, 짜증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만 줘. 혹시 새를 키워본 적 있어?”“아빠가 준 고양이가 있는데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고 했어요.”“새는 고양이와 달라. 고양이는 집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지만 새의 세상은 새장 한 평에 불과해. 매일 새장 입구에 서서 평생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분명히 가까이 있지만 평생 닿을 수 없지. 새를 너무 사랑해서 매일 최고의 먹이를 주지만 그 새가 정말 행복할까? “엄마 말은 아빠가 엄마한테 새장이고 엄마가 새라는 뜻인가요?”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엄마가 조금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가, 엄마도 한때 결혼에 대한 큰 기대를 품었던 어린 소녀였고 미래를 동경하면서 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어. 그토록 너를 만나서 너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사해 주길 고대했지만 세상은 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아. 엄마도 여기까지 오길 원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렇게 됐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를 계속 사랑하고 남은 인생 동안 너에게 보상해 주는 것뿐이야. 네 아빠와는 화해할 수 없어. 넌 착한 아이니까 엄마를 이해해 줄 거야. 엄마도 엄마가 원하는 인생이 있어.”“엄마, 알겠어요. 전 엄마의 결정을 응원해요.”어린아이는 지아와 도윤의 얽히고설킨 갈등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딱 하나, 자신이 엄마를 사
지아는 이런 식으로 아이를 설득했다. 지윤은 나이가 어리지만 도윤만큼 고집스럽지 않았다.아이는 모든 걸 지아 중심으로 생각했다.외모는 도윤과 매우 닮았지만, 성격만은 지아를 닮아 배려심이 넘쳤다.하지만 늘 자기 이익대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힘들고 마음 아픈 일이 많았다. 이날 밤, 아이는 지아의 품에 꼭 안겨 작은 손으로 지아의 잠옷 옷깃을 불안하게 움켜쥐었다.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피던 지아는 심장이 저릿했다.이 상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앞으로 지아가 걸어갈 길 역시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아이를 떠나야 하는 지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하지만 지아가 딱 한 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건, 지금이나 앞으로도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도윤도 지윤도 줄곧 자신을 지켜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자칫 남에게 잡혔다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자신에게 남은 삶은 단 하나뿐인데 강해지지 않으면 미셸 같은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때릴 수 있을 것이다.도윤의 힘이 줄어들면 지아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게 된다!게다가 도윤은 자신의 정체까지 드러냈기 때문에 더 이상 도윤과 함께 있는 것도 안전하지 않았다.지아는 도윤과의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눈앞의 일만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여러 아이들도 생각해야 했다.아이가 잠에 들자 도윤이 조용히 다가왔고, 도윤의 단단한 가슴이 지아의 등에 닿자 지아는 순식간에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뭐 하는 거야”지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고 도윤은 팔로 지아의 허리를 감싸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겁내지 마, 그냥 안고만 잘게.”지아는 도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하지만 도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지아의 허리를 안은 채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내일 떠날 생각이야?”지아가 낮게 대답했다.“어차피 붙잡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도윤은 한숨을 쉬었다.“난 상처 회복을 위해 한동안
지아가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떠났고, 문이 살며시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부자는 조용히 눈을 떴다.지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아빠, 정말 못 붙잡아요?”“미안해.”도윤의 눈은 안타까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지아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깥의 찬바람이 얼굴을 칼로 찌르는 듯 얼굴 전체가 따갑고 아팠다.도윤의 말대로 누군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사모님, 비행기가 준비됐으니 이제 가셔도 돼요.”“고마워요.”“근데 활주로가 좀 멀어서 힘드시겠지만 좀 걸으셔야 해요.”“괜찮아요.”지아가 손을 내저었다.지아는 두꺼운 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모자 속에 얼굴 전체를 파묻었다.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았지만 감히 뒤돌아보지 못했다.한번 뒤돌면 다시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지아는 뒤 돌아보지 말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쳤다.도윤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커튼 뒤로 숨었고,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지아의 옷깃을 잡으려는 듯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아빠, 엄마 보내기 싫어요. 날 버리면 어떡해요?”“그럴 리가, 엄마가 널 그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널 버리겠어? 그저 잠깐 우리와 떨어져 지내는 것뿐이야.”지윤이 흐느꼈다.“아빠는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보고 싶지, 미친 듯이 보고 싶지. 차라리 네 엄마를 가둬두고 평생 곁에 두고 싶지만...”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빠는 이미 한 번 잘못했고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네 엄마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어. 과거에는 아빠가 엄마를 억지로 붙잡아 두면서 엄마의 꿈과 행복, 미래를 빼앗아 갔어. 엄마는 새장 속의 새였는데 이제 아빠가 새장을 열어 더 넓은 하늘로 날게 해주는 거야.”“그럼 아빠는 엄마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새 삼촌과 가정을 꾸리는 게 두렵지 않아요?”도윤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강욱의 모습으로 지아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삶과 죽음을 겪었고 지아가 가장 약할 때 곁을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