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개인 수영장인 데다 강사나 안전요원도 없어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서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다.그때 도윤이 불쑥 나타나 한 손으로 아이를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지아의 허리를 감쌌다.아이를 물가에 내려놓고 지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아 씨, 괜찮아요?”“다리, 다리에 쥐가 났어. 잠시만요.”“알았어요, 날 안아요.”지아는 그 순간 이성이라는 것도 잊고 도윤의 목을 두 손으로 꼭 감싸며 다리의 불편함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도윤은 서두르지 않고 아이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후 조용히 지아를 기다렸다.10초 정도 지나자 종아리에 있던 경련이 서서히 사라졌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의 몸에 몸을 밀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리가 심하게 욱신거려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기댄 것이었다.설상가상으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이 도윤의 가슴에 눌려 있었다.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에 그녀가 힘을 주어 바싹 붙어있자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났다.남자는 그녀가 미끄러질까 봐 한 손으로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허리를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도윤의 뜨거운 체온이 지아에게 계속해서 전달되었다.두 사람은 누가 봐도 야릇할 정도로 은밀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지아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손을 놓았다.하지만 물속이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이윽고 그녀의 몸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도윤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다행히도 물은 2미터 남짓으로 깊지 않았고, 도윤은 재빨리 팔로 지아의 허리를 감싸서 위로 끌어올렸다.지아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몸부림치는 대신 순순히 남자의 몸에 달라붙어 일단 위험에서 벗어나길 기다렸다.도윤은 얇은 긴팔 셔츠만 입고 있었는데 지아가 손을 뻗을 때 얼떨결에 남자의 탄탄한 허리와 복부에 닿았었다.지난번 바다에서 도윤에게 구조됐을 때도 몸이 괜찮다고 느꼈지만, 이번엔 더 가까이 닿아보니 괜찮은 정도가 아
다 씻은 지아의 기분도 서서히 진정되었다.한편으로는 도윤과 오래전에 이혼했고, 지금 재혼을 한다고 해도 도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조금 닿은 게 뭐가 문제야, 평생 과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지아가 소망이를 데리고 함께 나가는데 소망이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있는 연보라색 액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엄마, 이거 봐요.”지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야?’오디즙 같아 보이는데 그들은 오늘 오디를 먹지도 않았다.청소부가 아침 일찍 청소를 끝냈을 텐데 왜 문에 이런 흔적이 남아있지?문을 열어보니 문 앞 바닥에 물걸레질을 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직원은 바닥이 미끄럽다며 조심해서 걸어가라고 당부했다.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평소에는 아침저녁으로 청소했는데 오늘은 왜 한낮에 청소하세요?”“좀 전에 직원이 음식을 나르다가 실수로 넘어졌어요. 여기저기 다 묻어서 저희가 다시 청소했어요.”“네, 알겠어요.”지아는 다른 사람이 실수로 주스 몇 방울 흘린 거라고 생각했다.도윤은 오후 내내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지아도 그를 찾지 않았다.아이와 함께 해변의 일몰을 바라보는데 누가 봐도 아이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왜 기분이 안 좋아?”소망은 하늘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오빠 보고 싶어요.”둘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자랐고, 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항상 자신을 잘 돌봐줬었다.전효와 함께 도망 다니다 보면 가끔 먹을 것이 떨어지기도 했는데, 전효가 물고기나 산토끼를 잡으면 오빠는 자신에게 가장 부드러운 부위만 주곤 했다.대도시에 도착해서 어떤 맛있는 음식을 사더라도 늘 자신에게 먼저 주곤 했다.아빠는 오빠는 태양이고 자신은 달이라며, 달은 태양의 빛을 빌리는 존재이니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라고 했다.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면서도 소망은 하루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빠의 존재를 잊은 적이 없었다.지아는 아기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그녀도 아들이 그리웠다.섬에서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지아가 시간을 계산해 보니 강욱과 함께 시간을 보낸 지도 거의 반년이 되었다. 처음엔 조심스러워하던 두 사람도 강욱이 아빠가 되어 불평 없이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지아는 경계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그게...”지아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괜찮아요. 저 입 무거워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지아는 아이를 흘끗 쳐다보았다.“이따 얘기해요.”“그래요.”도윤도 서두르지 않았다. 지아가 자신에게 털어놓기까지 반년 넘게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아이가 낮잠을 잘 때까지 도윤은 바깥 정원에 앉아서 기다렸다.지아가 나오자 도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아가씨.”“아니에요. 앉아서 얘기해요.”“네.”도윤은 친절하게도 주스를 준비해 주었고, 두 사람은 바닷바람이 살랑이는 파라솔 아래 앉아 있었다.지아는 갓 짜낸 레몬 감귤 주스를 한 모금 마셨는데,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는 아주 상큼한 맛이었다.“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저를 믿고 얘기해주시는 건 영광입니다.”지아는 주스를 내려놓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모든 이야기는 저기 바닷가에서 시작됐죠...”도윤은 처음으로 지아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듣게 되었고, 지아가 자신이 그녀를 구해준 순간부터 남몰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오히려 도윤이 자신에게 한 나쁜 짓은 일일이 얘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얘기를 듣고 난 도윤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분명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인데 지아의 입으로 들으니 다시 한번 그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 자신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전 그 사람과 이혼했지만, 전남편은 무척 고집스러운 사람이라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려고 할 거예요. 제 존재를 들키면 아이와 함께 감금될지도 몰라요.”지아는 날카로운 단어를 썼다. 감금이라니...도윤은 고심해서 말을 꺼냈다.“얘기를 들어보면 전남편이 아가씨를 많이 사랑했을 것 같은데, 어쩌면 당신을 보호하고 싶
지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도윤을 말문이 막히게 했다.그렇다. 자신이 그녀에게 그토록 많은 상처를 주었는데, 어떻게 감히 마음을 돌려 재결합 하기를 바랄 수 있겠나.전부 헛된 꿈이었다.도윤이 침묵하자 지아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미안해요. 내가 좀 이성을 잃었죠.”“아니요. 전남편 같은 사람은 백번 죽어도 아가씨의 상처를 보상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그냥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나지 않고 이대로 늙어 죽었으면 좋겠어요.”도윤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알겠어요. 이제 그 사람 몰래 A시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네. 그래서 전에 아저씨를 따라 몰래 돌아가려 했는데 해적을 만나 어쩔 수 없게 됐어요. 이제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죠.”“걱정 말고 이 문제는 저한테 맡겨요.”단지 그에게 해결책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려던 지아가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어요?”“오랜 세월 여러 나라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니 차마 말 못 할 부분까지 알게 되더라고요.”도윤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가씨, 저를 믿어도 돼요.”마주 보는 두 눈에서 지아는 도윤의 진지함을 느꼈다.렌즈를 껴서 원래의 동공 색을 덮은 탓에 지아의 눈에 그는 노란 눈동자였다.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지아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도윤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들어 올리는데, 경박함 대신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이었다.꼭 중세기 기사 같았다.“절대 배신하지 않을게요.”그것은 마치 주종 관계 이상의 다짐 같았다.당황한 지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사람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무슨 뜻일까?’지아가 추측하기도 전에 도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준비할 테니 아마 며칠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지아는 그의 손길이 닿은 곳과 뺨이 어렴풋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고백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예전이었다면 지아도 자신감을 가졌을
그런 방법이어야만 강욱의 이미지에 더 부합하고 지아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다.“그 배는 안전한가요?”“친구랑 미리 얘기했습니다. 우린 방에만 있고 그 사람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요. 배에서 그 어떤 행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저 배만 타는 겁니다.”지아는 무의식적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배를 타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돌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좋아요.”“걱정하지 마요, 아가씨. 내가 지켜줄 테니까.”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한 신뢰가 차츰 깊어졌다.섬에서 마지막 3일을 보내고 도윤은 지아를 위해 가발과 가면을 준비했다.“아가씨, 배에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의심을 살까 봐 걱정이니까 부부인 척하는 게 좋겠어요. 소망 아가씨는 어쩔 수 없죠.”도윤이는 잠시 머뭇거렸다.“저런 배에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없을 텐데... 화물이면 모를까.”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지고 구석진 곳은 더럽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며 지아가 이마를 찡그렸다.“알아서 준비해요.”출발 당일, 두 사람은 요트를 타고 거대한 호화 유람선으로 향했다.소망이는 캐리어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지아는 긴 머리 가발을 쓴 채 도윤과 함께 멋지게 차려입고 가면을 썼다.도중에 몇 명의 승객과 마주쳤는데, 가면 속 감춰진 두 눈으로 지아의 몸을 물건 살피듯 훑어보았다.가면으로 얼굴만 가릴 수 있을 뿐 인간성까지 감춰지지 않았다.지아는 당연히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노려보려는 순간, 갑자기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싸며 그대로 도윤의 단단한 품에 안겼다.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지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실례할게요.”지아는 그가 자신을 위해 이러는 걸 알았다. 상대에게 임자가 있다는 걸 알리는 행동이었다.단순하고 거친 방법에 상대는 흥미를 잃은 듯 눈을 돌렸다.그 와중에 몇몇 뻔뻔한 사람들이 다가와 음흉한 눈빛으로 지아를 훑어보며 말했다.“어이 형님, 오늘 여럿이
그 남자는 냄새 나는 양말을 입에 문 채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자극적인 걸 찾아 배에 올랐던 그는 마침 여자의 몸매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라 제안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어차피 배에 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더러운 놈들인데 뭣 하러 고결하게 구는 걸까.도윤이 입에 물었던 양말을 빼내자 그는 황급히 애원했다.“형님, 그냥 농담한 건데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십니까, 안 하면 그만이잖아요?”“허.”도윤은 차갑게 웃으며 그의 가면을 벗었다. “너랑 놀아줄게.”가면은 그들의 정체를 가리는 것이었고, 가면을 벗기는 순간 그들은 발가벗겨져 길거리에 내던져지는 것과 같았다.도윤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는 A시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 사업가였다.언론에서는 오랫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식들도 하나같이 성공했다.하지만 성공한 남자가 뒤에서 이런 추잡한 짓을 하는 게 역겨웠다.“내 가면! 돌려주세요.”가면은 도윤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발에 짓밟혔다.그의 위선을 짓밟아 산산조각 낸 것이었다.도윤은 발을 뗐다. 인간 본성의 추악함은 진작 알고 있었고, 돈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얼마나 추잡스럽게 노는지 잘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런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심지어 예전에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었다. 언론에서 좋은 사람으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도윤은 나름 예의있게 대했다.남자의 본성을 알게 되자 그는 상대를 밟는 것조차 더럽게 느껴졌다.품위 있어 보이던 그의 아내도 함께 역겨워 보였다.심지어 지아에게 추근거렸던 것을 떠올리자 도윤은 차갑게 말했다.“손 잘라버려.”“네, 보스.”진봉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다. 손에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갔다.“당신, 뭐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진봉은 장난스럽게 웃었다.“물론이죠, 장 대표님. 그렇게 못
도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근 들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면서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 빼면 진짜 아빠와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방금 만든 거야, 먹어 봐.”지아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너무 오냐오냐하지 마요. 단 거 너무 많이 먹으면 충치 생겨요.”“괜찮아요, 한 조각인데요 뭘.”다정한 모습은 밖에서 보는 것과 생판 다른 사람 같았다.지아는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강욱이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당연했다. 처음부터 속내를 다 드러내는 사람은 없으니까.“다 됐어요?”“네.”도윤이 당부했다.“참 아가씨, 여기 유람선 지도예요.”지아는 배를 탈 때만 해도 유람선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보통 큰 게 아니었다.맨 밑 1층은 대형 카지노였고, 2층은 출처가 없는 온갖 종류의 골동품 보물, 약초, 무기, 심지어 장기까지 돈만 있으면 못 사는 게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다.3층에는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4층은 세계 최고 음식이 가득한 푸드코트였다.그들이 있는 곳은 숙소 건물이었고, 맨 위층에는 부자들이 파티를 열고 불꽃놀이를 하는 거대한 인피니티 풀이 있었다.돈만 있으면 늙을 때까지 이 유람선에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지아의 시선이 2층에 향했다.“여기 약초가 많겠네요?”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약초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의사들도 있어요.”“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대신 가 볼게요. 어쨌든 아가씨는 외출하지 말고 여기 있어요.”“네.”지아의 병은 줄곧 도윤에게 큰 난제였다. 종양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전이되거나 퍼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게다가 단기간에 다시 재발하면 몸 상태가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때는 특별한 약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악의를 품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무법자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숨은 실력도 있었다.낮에는 대부분
진봉은 명품을 본 여자처럼 흥분해서 재잘댔다.“형, 저거 봐. 근접전 펼칠 때 진짜 멋있지 않아? 나 사줘. 이것도, 저것도.”“...”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진환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때 도윤이 여성용 권총을 집어 들자 가게 사장이 이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안목 참 좋으시네요. 이거 요즘 새로 나온 모델인데 반동이 작아 여성이 사용하기에 적합합니다.”“이거 주세요, 그리고 이것도.”도윤은 또 숨기기 좋은 작은 휴대용 비수 하나도 골랐다.그렇게 한참 동안 고르고 난 뒤, 도윤은 약재 구역으로 향했다.그곳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마치 배추 세일 현장을 방불케 했다.국가에서 많은 약재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지만, 무법천지인 이곳에는 그저 돈과 욕심만 있을 뿐이다.돈이 많다면 제 욕심을 모두 채울 수 있으니까.오늘은 경매가 없기에 도윤은 각종 코너를 돌며 물건을 골랐다.“사장님, 뭐 사실 겁니까? 우리 여기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그때 한 상인이 열정적으로 호객 멘트를 날렸다.물론 단속이 없어 배 위에 있는 물건은 다른 곳보다 몇 배는 비싸다. 하지만 희귀하기만 하다면 돈 많은 사장님들이 그깟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도윤이 한 약병을 들고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을 때,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사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정말 보는 눈이 있네요. 이게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물건인데, 밤새도록 해도 끄떡없거든요. 아무리 꼬시기 어려운 여자라도 이것만 있으면 아주 녹아내릴겁니다...”이게 그런 효과가 있는 약인지 알 리 없었던 도윤은 얼른 약을 제 자리에 내려놓고는 헛기침을 했다.“혹시 항암제는 있습니까?”“암요.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도윤은 눈앞의 40대 남성을 위아래로 쭉 훑어봤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웃기 좋아하며 웃을 때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딱 봐도 간사한 면상이었다.“모릅니다.”“제가 바로 그 유명한 활사인입니다.”“아하, 저 그거 알아요.”그때 진봉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