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기사를 재촉했다. 비록 밤이 이미 깊었지만 그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 장본인만 잡으면 앞으로 지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단 생각에 도윤은 지체없이 인해로를 향했다.차는 어두운 밤에서 질주했다. 수십 대의 차와 수백 명의 경호원이 인해로를 향해 달려갔고 그 장원을 물샐틈없이 둘러쌌다.도윤은 급히 차에서 내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짜고 떫은 바닷바람은 피비린내와 뒤섞여 덮쳐왔고 곳곳에서 도윤의 사람을 찾아볼 수 있었다.“상황은?”도윤이 다급하게 물었다.염경훈은 군중 속에서 걸어 나오며 대답했다.“대표님, 그 사람은 부상을 입은 후 궁지에 몰려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진봉은 이미 사람을 데리고 쫓아갔습니다.”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 이렇게 많은 준비를 했지만 결국 의외의 일이 발생했다.“어디야.”마치 운명이 장난치는 것처럼, 지난번에는 지아가 핍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사람이었다.“그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못 봤어?” 도윤이 묻자 염경훈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안색이 많이 안 좋았다.“그동안 저희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겨우살이는 사실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습니다.”“여자라고?”“네, 그리고 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겨우살이의 뒷모습은…….”“뒷모습이 왜?”“아가씨의 뒷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도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뭐라고?”“물론 그 사람이 바로 아가씨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키와 몸매로 판단하면 아가씨와 많이 비슷했는데, 얼굴은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도윤은 두 주먹을 꽉 쥐었고, 손등에 핏줄이 드러났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은 온통 지난번 산에서 이예린과 헤어진 장면이었다.이예린은 도윤을 등진 채 말했다.“이제 그냥 나란 동생이 없다고 생각해. 난 이미 돌아갈 수 없으니까.”‘대체 왜?’‘전에 청소부로 위장하여 내 곁에 있었던 것은 날 지켜주기 위해서였는데. 만약 정말 이예린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면, 나까지 죽이고 싶었던 거야?’도윤은
심예지는 지아에게 자신과 같은 스타일의 예복을 골라주었다. 그녀가 입은 하엽색과 달리, 달빛처럼 하얀 드레스에 주얼리는 진주, 그리고 또 이씨 가문 며느리를 상징하는 팔찌까지 매치해 무척 우아했다.그리고 처음으로 여주인의 신분으로 이씨 가문 만찬에 참가한 임수경은 마치 주얼리를 홍보하는 모델처럼 차려입었는데, 행여나 사람들이 그녀에게 돈이 많다는 것을 모를까 봐 팔찌와 목걸이를 줄줄이 달아 자신의 재력을 과시했다.이씨 가문은 아직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소문은 이미 널리 퍼졌다.심예지는 버림받은 후, 줄곧 이씨 가문에서 휴양하고 있었는데, 지금 어르신은 연세가 있어서 자신의 아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그럼 임수경은 이 집안 진정한 며느리와 다름없었고, 심예지는 비록 명분이 있는 이씨 가문의 며느리였지만 결국 이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심예지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홀에는 이미 각종 사람들이 모였다.임수경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부를 받고 있었다. 비록 최근 몇 년간 어르신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임수경은 밖에서 여전히 자신을 이씨 가문 사모님이라고 사칭했다.다만 전에 사람들은 모두 뒤에서 그녀를 남의 가정이나 파괴하는 내연녀라고 비웃었다.이제 진정한 사모님으로 ‘승진하니’ 임수경은 그야말로 갖은 위세를 부렸다. 심지어 전에 그녀가 꼴 보기 싫던 사람들도 모두 진심으로 탄복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을 했으니 이제 결국 출세를 한 셈이었다.“이 부인, 대체 그동안 관리를 어떻게 했대? 어쩜 이렇게 젊은 거지? 우리는 다리미로 다려도 주름이 사라지지 않잖아, 호호호.”임수경은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다.“장 부인, 겸손하긴. 왜 말을 그렇게 과장하게 하는 거야? 사실 나도 그냥 항상 유쾌함을 유지하고 또 자주 운동을 해서 그래. 그럼 자연히 혈색이 좋아질 거야. 난 얼굴에 손대는 거 제일 싫다니깐. 주사 같은 거 많이 맞으면 얼굴이 굳어지잖아.”“그래, 우리 이 부인은 원래 미모가 타고난 데다 이 선생님의
시간은 마치 이 순간 멈춘 것 같았다. 정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하다니.하나는 봄꽃처럼 부드러웠고, 하나는 가을의 달빛처럼 차갑지만 고귀했다.샴페인을 들고 있던 이남수는 손가락에 힘을 주더니 이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가 바로 내가 아는 그 심예지라고?’머릿속에는 심예지가 물건을 부수며 울부짖는 소리, 가지 말라고 떼를 쓰며 임수경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장면이 나타났다.지금의 심예지는 도도하고 차가웠고, 마치 하늘의 여신처럼 여유롭게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유독 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 그녀는 이미 남이 된 것 같았고, 심예지의 눈빛은 무척 낯설었다.그리고 이유민은 거의 지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이 여자가 아주 예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간단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정말 몰랐다. 마치 여신 비너스처럼 도도하게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남자의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어르신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며느리가 등장하는 순간,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지금의 심예지는 모두들이 생각하는 그 미친 여자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어르신 곁에 서 있으니 마치 자신이야말로 이씨 가문의 며느리라고 선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모님이라고 사칭하던 임수경은 어르신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했다.임수경은 화려하게 차려입었고 심지어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다듬었지만 심예지가 등장하자, 재벌 집 큰 아가씨의 타고난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그녀의 모든 것을 깔아뭉갰다.심예지를 마주하니, 가장 비싼 예복을 입고 몸에 여러 가지 주얼리를 차고 있던 임수경은 마치 지나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았다.어르신이 나타나자, 모두들 순간 입을 다물었다.임수경은 이남수가 심예지를 보자마자 넋을 잃은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질투에 이를 갈았다.자신이 바로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임수경은
이유민인 것을 보고 지아는 고개를 들어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지?”남자는 오늘 새하얀 양복을 입었는데, 잘생긴 외모까지 더하니 남들은 그를 성격이 훈훈한 재벌 집 도련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직 지아만이 이유민의 얼굴 아래에 감춰진 마음이 얼마나 악랄한 지를 알고 있었다.“왜 이렇게 쌀쌀맞게 굴어? 지금 형수님 관심하고 있잖아.”“앞으로 또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네 턱을 부수겠다고 했을 텐데?”이유민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만졌다.“형수님은 차분해 보이지만 꽤 성질이 있어. 그런데 나도 너무 궁금한 게 있는데, 형수님은 침대에서도 이런 반전 매력이 있는 거야?”말이 떨어지자, 지아는 컵에 든 뜨거운 물을 이유민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비록 그녀는 큰 소란을 피우지 않았지만, 그들 몇 사람은 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줄곧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그렇게 물을 뿌리자마자, 사람들은 즉시 의론을 하기 시작했고, 임수경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지아야,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내 아들이 뭘 어쨌길래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를 난처하게 하는 거지?”임수경은 전에 날뛰는 모습을 감추더니 억울한 기색을 드러냈다.“엄마, 형수님 탓하지 마세요. 형수님의 안색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걱정되는 마음에 관심을 좀 했는데, 형수님이 무슨 오해를 한 것 같아요.”지아는 원래 위가 아팠는데, 이 사람들이 또 쇼를 하자 그녀는 위가 더 아팠다.“거짓말!”“그게 관심이 아니라면 뭐지? 설마 내가 또 무슨 다른 말을 했나?”이유민 역시 억울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아가 자신이 한 말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뻔뻔했지만, 지아는 여전히 이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해야 했다.지아는 마침내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도 흐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민은 임수경의 수단을 그대로 배웠고, 일부러 연약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동정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임수경은 즉시 울며 하소연하
지아는 아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심예지는 원래 앉아서 임수경이 쇼하는 것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 모자가 뜻밖에도 지아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보아하니 그들은 이 기회를 틈타 지아 등 사람을 쫓아내려는 것 같았다.“이남수, 그렇게 사과받길 좋아한다면 앞으로 네 무덤 위에 사과나무 하나 심지 그래?”이남수는 불쾌해하며 심예지를 바라보았다.“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 입 다물어.”심예지는 지아를 뒤로 감싸더니 이남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너나 입 닥쳐, 이 미친 X자식아!”순간 이남수와 임수경, 그리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멍해졌다.이때, 유독 어르신이 간단하게 목청을 가다듬었다.“며늘아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말조심해. 네 시어머니는 속이 좁아서 오늘 저녁 무덤에서 나와 널 때릴 것 같구나.”사실 전에 심예지는 화가 날 때 임수경을 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응석받이로 자란 아가씨였기에 욕을 해도 더러운 말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더욱 용맹해졌고 무슨 말이든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이남수, 네 코에 달린 그 두 구멍은 대체 뭐 하는데 쓰이는 거지? 호흡 전용? 눈이 없으면 그래도 머리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내 며느리는 멀쩡하게 여기에 앉아서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고, 이 녀석이 먼저 와서 건드렸는데. 아무도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한 상황에서 넌 네 아들의 편을 들다니. 내 며느리는 미치지도 바보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지켜보는 이런 자리에서 물을 뿌렸을까?”심예지의 말에 이남수는 매우 뻘쭘해져서 눈썹을 찌푸렸다. ‘하늘의 달은 무슨, 이 여자의 성질은 분명히 예전보다 더 거칠어졌는데!’“유민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저 간단하게 관심을 했겠지. 심예지, 나도 네가 나를 미워한다는 거 알고 있지만 우리가 돌아왔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들의 자리를 빼앗지 않을 거야. 네 아들은 영원히 이 집안의 도련님이니 당신들 굳이 수경과 유민이를 상대할 필요가 없어.”지아는 심하게 아픈
임수경은 울먹이며 말했다.“여보, 난 오빠가 언니와 이혼한 후, 내가 유민이를 잘 키우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기만 하면 언젠가는 아버님께서 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나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아버님은 여전히 우리를 남이라 여기시다니, 우리 그냥 가자. 여기는 우리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심예지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남수는 이미 임수경의 말에 자극을 받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유민을 부축하며 입을 뗐다.“당신이 왜 가? 떠나야 할 사람은 이 사람들이야!”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심예지가 요 몇 년 동안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실 이남수는 그녀를 쫓아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심예지가 원한다면 여기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도 그는 상관이 없었다.그러나 화가 치밀어 오르자, 이남수는 자신이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정말 몰랐다.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기만 하면, 이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남의 가슴을 쿡 찌를 것이다. 심지어 그 칼을 뽑아도 피가 끊임없이 흘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하지만 이남수는 이미 습관이 되었기에 설령 자신이 좀 과분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는 사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더니 나중에 심예지에게 보상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어르신은 또 한 번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난 아직 죽지 않았으니 아직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차례가 아니야. 여긴 원래 우리 며늘 아가의 집인데, 지금 어디로 내쫓으려는 게야?”“아버님, 화 좀 푸세요.”심예지는 심지어 침착하게 어르신에게 물을 따라주며 그를 위로했다. 그녀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차갑게 비웃었다.“그 사람은 아마 제가 이미 심씨 집안과 관계 끊은 것을 잊었을 거예요.”이 말은 마치 뺨처럼 이남수의 얼굴을 호되게 내리쳤고, 과거의 기억이 엄습했다.그렇다, 당시 심예지가 손목을 베고 나서 심씨 집안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했지만 그녀는 기어코 떠나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심씨 집안은 그녀로
도윤이 죽었단 말에 이남수는 깜짝 놀라서 이유민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소리야?”“아버지, 형은 공장 폭발 사건에 휘말려 행방불명이 되었어요. 아마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요.”이유민은 담담한 말투로 놀라운 말을 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을 쩍 벌렸다. 비록 도윤은 줄곧 A국에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그의 신분과 지위를 의심하지 못했다.지금 그가 죽었다면 모든 재산과 상속권은 이유민에게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르신이 임수경 모자를 집안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이남수는 요 며칠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시종 누군가 일부러 꾸며낸 기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멀쩡한 아이가 어떻게 죽을 수 있지?’그러나 이유민까지 이렇게 말하자, 이남수는 불안해졌다.“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넌 무슨 근거로 도윤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거지?”“아버지, 며칠 전 폐기 공장이 폭발했다는 뉴스 보셨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형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이유민은 오히려 되물었다.이남수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고 표정은 더욱 차가웠다.어르신은 심예지의 위로에 점차 냉정을 되찾더니 다시 휠체어에 앉아 담담하게 이유민과 임수경을 바라보았다.“다들 그만 좀 떠들어. 네 형수님한테 사과해, 그럼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마.”이유민은 눈을 반쯤 뜨더니 왜 상황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났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임수경은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따지기 시작했다.“아버님, 분명히 지아가 유민이에게 물을 뿌렸는데, 왜 오히려 유민이더러 사과하라고 하시는 거죠?”“그게 궁금해? 내가 지아와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난 이 아이가 얼마나 착하고 훌륭한 사람인지 알아서 그런다. 그리고 네 아들은 정말 음험하고 교활하지!”임수정은 요 며칠 위세를 부리는 것에 습관이 되어 그들이 이미 이씨 집안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지금 어르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아들을 비난하니 임수경은 참을 수
“아버지, 보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그만하세요. 괜히 남의 웃음거리로 되겠어요.”이유민은 즉시 입을 열어 그를 제지했다.“할아버지, 저를 이토록 무시하시는 이상, 저도 엄마와 이곳에 남아 방해가 되고 싶지 않네요. 하지만 앞으로 절대로 후회하시지 않았으면 해요. 엄마, 가요.”너무나도 뻔한 협박이었다.이남수는 두 사람의 손을 잡아당겼다.“오늘 내가 있으니 절대로 너희들이 쫓겨나게 하지 않을 거야. 아버지, 이 일은 이 아이 때문에 일어났는데, 유민이에게 사과하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인가요?”“사과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이 선생님의 아들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 속에서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지아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바로 전에 공항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임건우였다.그의 옆에 서 있던 소녀는 그의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이런 집안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임건우는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걸어왔다. 그는 의사였기에 가장 먼저 지아의 몸을 걱정했다.“괜찮은 거야?”그해 겨울에 지아와 헤어진 후, 그들은 거의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지아의 상태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종양은 아마 통제됐을 거야.’그러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후 5년은 여전히 위험했기에 지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건우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지아는 강제로 정신을 차렸다.“괜찮아요. 관심해 줘서 고마워요.”“넌 여전히 강한 척하길 좋아하는구나. 끝나면 얼른 병원에 가 봐.” 건우는 부드럽게 일깨워 주었다.두 사람의 대화에 이유민은 또다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이분은……. 형수님, 우리 형이 떠난 지 며칠 됐다고 벌써 다른 남자를 찾은 거야?”건우는 기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웠고, 천천히 대답했다.“안녕하세요, 초면이니 자기소개부터 할게요. 난 의사이고 이미 약혼한 사람이 있어요. 오늘은 미래 내 아내가 될 사람과 함께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러 왔으니 말을 똑바로 했으면 좋겠네요. 어린
지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봉을 바라보며 물었다.“성형?” “예, 성형수술이요.”지아는 그제야 소시월이 왜 자신과 닮았는지, 혹시 소임호와 관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았다.소시월은 13살에 처음 성형수술을 했고, 이후 매년 한 가지씩 성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게다가 20대 중반 이후로는 유지와 보수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그 시절 소시월은 기숙 학교에 다녔기에, 사람들은 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를 닮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의술의 힘으로 얼굴을 바꿨다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아마 그들이 당시에 지아를 해치지 않은 이유도 그녀의 얼굴을 복제하려 했기 때문일 터.그 후, 지아가 쓸모없어지자 암살 계획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지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가짜 얼굴을 한 꺼풀씩 다 벗겨내 주겠어!”“사모님, 만약 그 여자가 사모님을 계속 암살하려던 배후라면, 그 여자의 등에는 분명히 총상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 때, 그 여자는 도망치면서 총을 한 발 맞았었죠.” “당장 알아봐!”지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는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생지옥 같은 나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비록 도윤이 한때 지아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누군가가 뒤에서 지아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소시월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따듯함을 즐겼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지옥 속으로 처참히 몰아넣었다고!’지아의 분노는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모든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그 여자를 감시할 사람을 찾아. 최근 움직임이 많아졌으니,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예.”지아는 머리를 짚으며
안타깝게도 지아가 이미 진실을 알아낸 상태였기에, 장민호의 소식은 늦은 셈이었다.“지금 어디에 계세요?”지아가 급히 물었다.‘민호 씨가 이 일에 연루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Z국에 있어요. 최근 소씨 가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틈을 타서 지아 씨에게 위협이 되는 소시월을 제거할 테니까요.]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아는 처음에 장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을까 봐 걱정했지만, 장민호는 아직 그녀가 Z국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죽이면 안 돼요.”[왜요? 그 여자는 지아 씨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런 위험한 존재를 살려두면 지아 씨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거예요.]지아는 핑계를 댔다.“저는 이미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암살당할 뻔했고, 그 소씨 가문의 여섯째 딸이라는 사람과도 만났어요. 우리는 나이도 비슷하고, 국적도 달라서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저를 죽이려고 했겠어요?” “제 생각엔 누군가 소시월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단지 이용당하는 말일 뿐인 거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 배후의 사람이 진짜 목표니까요...” 지아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장민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강인했다.[제가 도울게요.]“위험하지 않겠어요? 너무 위험하다면 하지 마세요. 저는 민호 씨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요.” [지아 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겁니다.]장민호는 마지막으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속죄라고 생각해 주세요.]전화를 끊은 후에도 지아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건이 윤곽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특히 소씨 가문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지아가 신분을 밝히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소임호와 조경숙이 자기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아
병원에서 사고를 당한 시언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아는 일찍이 자신과 시후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았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시후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고, 시언이 대외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즉, 두 사람이 안팎에서 호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 게다가 소임호 또한 차근차근 사건을 조사하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배후의 흑막이 조경선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경선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로 소임호와 시후의 연락이 끊겼고, 시언은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초조해했다. 그런데 조금 전, 다행히도 소임호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었다.시언은 즉시 이 소식을 지아에게 알렸다. 지아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자, 시언의 목소리를 듣고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순간적으로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래, 지아야?”시언은 지아의 침묵에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지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그냥...]하지만 말을 꺼내자 목소리에 눈물 섞인 떨림이 묻어나왔다.시언이 더욱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숨기지 마. 우리는 이미 네 의형제가 됐어. 우린 가족이라고. 소씨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난 널 지킬 거야.”시언의 ‘지킨다’라는 말이 지아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시언은 지아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다정하고 따듯하게 대해주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유대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왜 소씨 가문 사람들은 내 존재 자체를 몰랐을까?’ 현재 지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경숙은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은 후 과다출혈로 크게 몸이 상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가족이 내 존재를 모를 리가 없는데.’ ‘게다가 시영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건 소시월 뿐이야.’‘소시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