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치 이 순간 멈춘 것 같았다. 정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하다니.하나는 봄꽃처럼 부드러웠고, 하나는 가을의 달빛처럼 차갑지만 고귀했다.샴페인을 들고 있던 이남수는 손가락에 힘을 주더니 이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가 바로 내가 아는 그 심예지라고?’머릿속에는 심예지가 물건을 부수며 울부짖는 소리, 가지 말라고 떼를 쓰며 임수경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장면이 나타났다.지금의 심예지는 도도하고 차가웠고, 마치 하늘의 여신처럼 여유롭게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유독 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 그녀는 이미 남이 된 것 같았고, 심예지의 눈빛은 무척 낯설었다.그리고 이유민은 거의 지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이 여자가 아주 예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간단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정말 몰랐다. 마치 여신 비너스처럼 도도하게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남자의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어르신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며느리가 등장하는 순간,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지금의 심예지는 모두들이 생각하는 그 미친 여자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어르신 곁에 서 있으니 마치 자신이야말로 이씨 가문의 며느리라고 선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모님이라고 사칭하던 임수경은 어르신의 곁에 다가가지도 못했다.임수경은 화려하게 차려입었고 심지어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다듬었지만 심예지가 등장하자, 재벌 집 큰 아가씨의 타고난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그녀의 모든 것을 깔아뭉갰다.심예지를 마주하니, 가장 비싼 예복을 입고 몸에 여러 가지 주얼리를 차고 있던 임수경은 마치 지나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았다.어르신이 나타나자, 모두들 순간 입을 다물었다.임수경은 이남수가 심예지를 보자마자 넋을 잃은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질투에 이를 갈았다.자신이 바로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임수경은
이유민인 것을 보고 지아는 고개를 들어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지?”남자는 오늘 새하얀 양복을 입었는데, 잘생긴 외모까지 더하니 남들은 그를 성격이 훈훈한 재벌 집 도련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직 지아만이 이유민의 얼굴 아래에 감춰진 마음이 얼마나 악랄한 지를 알고 있었다.“왜 이렇게 쌀쌀맞게 굴어? 지금 형수님 관심하고 있잖아.”“앞으로 또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네 턱을 부수겠다고 했을 텐데?”이유민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만졌다.“형수님은 차분해 보이지만 꽤 성질이 있어. 그런데 나도 너무 궁금한 게 있는데, 형수님은 침대에서도 이런 반전 매력이 있는 거야?”말이 떨어지자, 지아는 컵에 든 뜨거운 물을 이유민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비록 그녀는 큰 소란을 피우지 않았지만, 그들 몇 사람은 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줄곧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그렇게 물을 뿌리자마자, 사람들은 즉시 의론을 하기 시작했고, 임수경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지아야,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내 아들이 뭘 어쨌길래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를 난처하게 하는 거지?”임수경은 전에 날뛰는 모습을 감추더니 억울한 기색을 드러냈다.“엄마, 형수님 탓하지 마세요. 형수님의 안색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걱정되는 마음에 관심을 좀 했는데, 형수님이 무슨 오해를 한 것 같아요.”지아는 원래 위가 아팠는데, 이 사람들이 또 쇼를 하자 그녀는 위가 더 아팠다.“거짓말!”“그게 관심이 아니라면 뭐지? 설마 내가 또 무슨 다른 말을 했나?”이유민 역시 억울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아가 자신이 한 말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뻔뻔했지만, 지아는 여전히 이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해야 했다.지아는 마침내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도 흐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민은 임수경의 수단을 그대로 배웠고, 일부러 연약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동정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임수경은 즉시 울며 하소연하
지아는 아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심예지는 원래 앉아서 임수경이 쇼하는 것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 모자가 뜻밖에도 지아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보아하니 그들은 이 기회를 틈타 지아 등 사람을 쫓아내려는 것 같았다.“이남수, 그렇게 사과받길 좋아한다면 앞으로 네 무덤 위에 사과나무 하나 심지 그래?”이남수는 불쾌해하며 심예지를 바라보았다.“당신과 상관없는 일이니 입 다물어.”심예지는 지아를 뒤로 감싸더니 이남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너나 입 닥쳐, 이 미친 X자식아!”순간 이남수와 임수경, 그리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멍해졌다.이때, 유독 어르신이 간단하게 목청을 가다듬었다.“며늘아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말조심해. 네 시어머니는 속이 좁아서 오늘 저녁 무덤에서 나와 널 때릴 것 같구나.”사실 전에 심예지는 화가 날 때 임수경을 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응석받이로 자란 아가씨였기에 욕을 해도 더러운 말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더욱 용맹해졌고 무슨 말이든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이남수, 네 코에 달린 그 두 구멍은 대체 뭐 하는데 쓰이는 거지? 호흡 전용? 눈이 없으면 그래도 머리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내 며느리는 멀쩡하게 여기에 앉아서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고, 이 녀석이 먼저 와서 건드렸는데. 아무도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한 상황에서 넌 네 아들의 편을 들다니. 내 며느리는 미치지도 바보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지켜보는 이런 자리에서 물을 뿌렸을까?”심예지의 말에 이남수는 매우 뻘쭘해져서 눈썹을 찌푸렸다. ‘하늘의 달은 무슨, 이 여자의 성질은 분명히 예전보다 더 거칠어졌는데!’“유민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저 간단하게 관심을 했겠지. 심예지, 나도 네가 나를 미워한다는 거 알고 있지만 우리가 돌아왔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들의 자리를 빼앗지 않을 거야. 네 아들은 영원히 이 집안의 도련님이니 당신들 굳이 수경과 유민이를 상대할 필요가 없어.”지아는 심하게 아픈
임수경은 울먹이며 말했다.“여보, 난 오빠가 언니와 이혼한 후, 내가 유민이를 잘 키우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기만 하면 언젠가는 아버님께서 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나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아버님은 여전히 우리를 남이라 여기시다니, 우리 그냥 가자. 여기는 우리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심예지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남수는 이미 임수경의 말에 자극을 받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유민을 부축하며 입을 뗐다.“당신이 왜 가? 떠나야 할 사람은 이 사람들이야!”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심예지가 요 몇 년 동안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실 이남수는 그녀를 쫓아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심예지가 원한다면 여기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도 그는 상관이 없었다.그러나 화가 치밀어 오르자, 이남수는 자신이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정말 몰랐다.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기만 하면, 이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남의 가슴을 쿡 찌를 것이다. 심지어 그 칼을 뽑아도 피가 끊임없이 흘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하지만 이남수는 이미 습관이 되었기에 설령 자신이 좀 과분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는 사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더니 나중에 심예지에게 보상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어르신은 또 한 번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난 아직 죽지 않았으니 아직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차례가 아니야. 여긴 원래 우리 며늘 아가의 집인데, 지금 어디로 내쫓으려는 게야?”“아버님, 화 좀 푸세요.”심예지는 심지어 침착하게 어르신에게 물을 따라주며 그를 위로했다. 그녀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차갑게 비웃었다.“그 사람은 아마 제가 이미 심씨 집안과 관계 끊은 것을 잊었을 거예요.”이 말은 마치 뺨처럼 이남수의 얼굴을 호되게 내리쳤고, 과거의 기억이 엄습했다.그렇다, 당시 심예지가 손목을 베고 나서 심씨 집안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했지만 그녀는 기어코 떠나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심씨 집안은 그녀로
도윤이 죽었단 말에 이남수는 깜짝 놀라서 이유민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소리야?”“아버지, 형은 공장 폭발 사건에 휘말려 행방불명이 되었어요. 아마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요.”이유민은 담담한 말투로 놀라운 말을 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입을 쩍 벌렸다. 비록 도윤은 줄곧 A국에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그의 신분과 지위를 의심하지 못했다.지금 그가 죽었다면 모든 재산과 상속권은 이유민에게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르신이 임수경 모자를 집안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이남수는 요 며칠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시종 누군가 일부러 꾸며낸 기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멀쩡한 아이가 어떻게 죽을 수 있지?’그러나 이유민까지 이렇게 말하자, 이남수는 불안해졌다.“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넌 무슨 근거로 도윤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거지?”“아버지, 며칠 전 폐기 공장이 폭발했다는 뉴스 보셨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형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이유민은 오히려 되물었다.이남수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고 표정은 더욱 차가웠다.어르신은 심예지의 위로에 점차 냉정을 되찾더니 다시 휠체어에 앉아 담담하게 이유민과 임수경을 바라보았다.“다들 그만 좀 떠들어. 네 형수님한테 사과해, 그럼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마.”이유민은 눈을 반쯤 뜨더니 왜 상황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났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임수경은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따지기 시작했다.“아버님, 분명히 지아가 유민이에게 물을 뿌렸는데, 왜 오히려 유민이더러 사과하라고 하시는 거죠?”“그게 궁금해? 내가 지아와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난 이 아이가 얼마나 착하고 훌륭한 사람인지 알아서 그런다. 그리고 네 아들은 정말 음험하고 교활하지!”임수정은 요 며칠 위세를 부리는 것에 습관이 되어 그들이 이미 이씨 집안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지금 어르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아들을 비난하니 임수경은 참을 수
“아버지, 보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그만하세요. 괜히 남의 웃음거리로 되겠어요.”이유민은 즉시 입을 열어 그를 제지했다.“할아버지, 저를 이토록 무시하시는 이상, 저도 엄마와 이곳에 남아 방해가 되고 싶지 않네요. 하지만 앞으로 절대로 후회하시지 않았으면 해요. 엄마, 가요.”너무나도 뻔한 협박이었다.이남수는 두 사람의 손을 잡아당겼다.“오늘 내가 있으니 절대로 너희들이 쫓겨나게 하지 않을 거야. 아버지, 이 일은 이 아이 때문에 일어났는데, 유민이에게 사과하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인가요?”“사과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이 선생님의 아들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 속에서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지아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바로 전에 공항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임건우였다.그의 옆에 서 있던 소녀는 그의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이런 집안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임건우는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걸어왔다. 그는 의사였기에 가장 먼저 지아의 몸을 걱정했다.“괜찮은 거야?”그해 겨울에 지아와 헤어진 후, 그들은 거의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지아의 상태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종양은 아마 통제됐을 거야.’그러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후 5년은 여전히 위험했기에 지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건우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지아는 강제로 정신을 차렸다.“괜찮아요. 관심해 줘서 고마워요.”“넌 여전히 강한 척하길 좋아하는구나. 끝나면 얼른 병원에 가 봐.” 건우는 부드럽게 일깨워 주었다.두 사람의 대화에 이유민은 또다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이분은……. 형수님, 우리 형이 떠난 지 며칠 됐다고 벌써 다른 남자를 찾은 거야?”건우는 기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웠고, 천천히 대답했다.“안녕하세요, 초면이니 자기소개부터 할게요. 난 의사이고 이미 약혼한 사람이 있어요. 오늘은 미래 내 아내가 될 사람과 함께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러 왔으니 말을 똑바로 했으면 좋겠네요. 어린
이유민은 누군가 이 장면을 찍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심지어 이씨 가문의 위엄까지 무시하고 직접 영상을 폭로하여 그를 난처하게 할 줄은 더욱 몰랐다.이유민을 짝사랑하던 현장의 소녀들도 저마다 충격을 받았다. 점잖아 보이는 사람이 뜻밖에도 이런 짐승이었다니.심예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망설임 없이 샴페인 한 병을 들더니 이유민의 머리를 찧었다.요 며칠 그들 모자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그녀를 자극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이유민의 말 한마디 때문에 심예지는 철저히 이성을 잃었다.“사생아 주제에 감히 그딴 말을 지껄여, 죽여버릴 거야!”이유민의 머리는 맞아서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렸다.임수경도 더 이상 연기할 겨를이 없었고 같은 방법으로 심예지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지만 집사가 제때에 막았다.“여보, 우리 아들은 단지 농담 한 마디 했을 뿐, 설령 그가 틀렸다 하더라도 언니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잖아! 유민이를 죽여버리다니. 이 집은 우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구나. 유민아, 엄마랑 같이 가자!”“그래, 꺼지려면 빨리 꺼져! 알짱거리지 말고.” 어르신은 호통을 쳤고, 자신이 가서 이유민의 머리를 찧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전에 너희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런 줄 알아! 너처럼 심술이 나쁜 사람은 우리 집안의 자손이 될 자격이 전혀 없다.”이 말을 듣자 이유민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빛은 마치 어두운 구석의 뱀처럼 원망으로 가득 찼다.“할아버지, 그 말씀 진심이세요?”이유민의 머리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새빨간 피가 이마를 따라 흘러내리자, 그의 얼굴을 더욱 음험하게 돋보이게 했다.“오늘 모두들 여기에 모인 이상, 나도 솔직하게 말하겠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증인으로 됐으면 하구나. 나 이정진이 오늘 여기서 선포하는데, 이유민, 넌 평생 우리 집안으로 들어올 생각하지 마라. 기왕 가려고 하는 이상, 그래, 그 소원을 들어주마. 오 집사, 그들의 물건을 잘 싸서 전부 밖으로 던져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정문에는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진봉과 진환의 얼굴에는 모두 아주 선명한 상처가 있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엄숙했고 공손하게 도윤의 뒤에 서 있었다.도윤은 키가 훤칠했는데, 눈썹뼈에 흉터가 하나 더 생겼지만 차가운 기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강한 카리스마가 연회장을 뒤덮었다.이유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고,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그, 그럴 리가, 넌 이미…….”도윤은 성큼성큼 걸어왔고 잘생긴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 그는 점점 빠르게 걷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민의 앞으로 왔다.그리고 그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이유민의 목을 졸랐다.도윤에 비해 이유민은 많이 홀쭉해 보였다. 도윤의 공격에 그는 마치 도마 위의 물고기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이유민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도윤의 발걸음은 갈수록 빨라졌다. 뒤에 샴페인 타워가 있는 것을 보고 임수경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그만해, 당장 그만하라고.”그녀는 목청이 찢어지도록 외쳤지만 도윤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집사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오 집사, 빨리 이도윤 좀 막아!”집사는 몸을 곧게 펴며 냉담하게 말했다.“도련님께서는 지금 쓰레기를 처리하고 계십니다.”이 말에 임수경은 하마터면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녀는 이남수의 팔을 흔들며 애걸복걸했다.“여보, 빨리 우리 아들 살려야지.”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이미 늦었어.”말이 떨어지자마자 귓가에 갑자기 ‘펑'하는 큰 소리가 들려오더니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언덕처럼 높은 샴페인 타워가 와르르 무너졌고 샴페인은 폭포처럼 두 사람 머리 위에서 쏟아지더니 술잔까지 와르르 깨졌다.이유민은 기둥에 뒤통수를 심하게 부딪혀 머리가 어지러웠고 눈앞이 침침했다. 그렇게 미처 반응하지 못할 때에, 귓가에 도윤의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보아하니 내 경고를 마음에 두지 않은 모양이군.”도윤은 닥치는 대로 받은 샴페인 잔을
소임호는 눈가가 붉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며 울고 있는 시월을 바라보았다.그 소녀는 한때 소임호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빠,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아빠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시월은 병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어서 마음속에 의문을 품었다. “아빠...?”시언은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증오를 억누르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월아, 아버지는 지금 많이 허약하셔.”“아빠,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집안일은 제가 잘 챙길게요.”시월은 한참 동안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소임호는 단지 짧게 ‘그래’라는 대답만 했다. 다만, 시월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침대를 꽉 잡은 소임호의 손등에는 불거진 핏줄이 선명했다. 소임호는 시월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하지만 과거 시월이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면, 소임호는 결코 마음이 평온할 수 있었다. ‘우리 시영이는 이 냉혈한 때문에 죽임을 당했어. 시영이는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심지어 시신을 거둘 사람도 없었다고.’소임호는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소임호는 눈을 감고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지금은 참아야 해. 지아의 계획이 아직 진행 중이니, 절대로 폭발해서는 안 돼.’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과 기회를 제공했는지를 소임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시월은 이미 보통 사람이 백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할 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월은 전혀 만족하지 못했고, 끝까지 탐욕을 부렸다. “큰오빠, 할 말이 있어요.”“잘됐네, 나도 마침 할 말이 있던 참이야.”두 사람은 한 명씩 방을 나섰고, 시후는 거실 소파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오빠랑 연락이 안 되는 동안 우리 소씨 가문에 더
시후는 약간 놀랐다. 조경선을 모든 게 들통나자마자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는데, 오히려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고 시후에게 전화를 걸었으니 말이다. ‘지아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독하기만 한 게 아니라, 야망도 끝이 없었던 거라고.’ 시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래, 오빠야, 무슨 일이야?] “오빠, 그동안 연락이 안 돼서 정말 걱정했어요. 괜찮은 거예요?” [난 괜찮아.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노력 중이었거든.]“그럼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구했어요?”시월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만약 시후가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시월의 태도와 과거의 일을 연결 짓지 못했을 것이었다. ‘정말 무서운 여자였구나.’ ‘나이는 어리지만, 보통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망과 담력을 가지고 있었어.’ ‘이런 사람을 그냥 죽여버리는 건, 너무 가벼운 처벌이야!’ 시후는 지아가 미리 알려준 대로 대처했고, 시월은 즉시 소임호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직 안전하지 않으니, 올 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 괜히 문제를 더 키울 수도 있으니까.] “오빠,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후, 시후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아야, 역시 네 말이 맞았어. 소시월은 도망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 계획을 진행하려고 하는 중이었다고.” “소시월은 아주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왔어요. 저는 죽이려 한 것만 봐도, 소시월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잖아요. 그 여자는 절대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할머니의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소시월한테 속고 있었을 거예요. 그 여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을 거라고요!” “그렇게 독한 사람은 죽이는 것도 아까워!”시하는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내 다리, 내가 잃어버린 지난 세월이 다 소시월 때문이었어! 그리고 시영이의 죽음도... 다 그 여자 때문이었다고! 나는 그 여자를 죽이
소씨 가문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고, 시월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비록 지금은 소임호의 신분을 입증할 절대적인 증거가 없었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에 따라 소임호의 혈통은 소씨 가문 내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시월과 조경선의 원래 계획은 소씨 가문을 후손 없이 무너뜨려 소씨 가문의 대부분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재산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게다가 소씨 가문 사람들이 시월은 아무리 아껴주어도, 결국 시월은 시집가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시월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몫의 축의금뿐이었고, 그것마저 심씨 가문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었다.게다가 결혼한 뒤에는 시월이 남자의 부속물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시월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는 단지 조경선을 위해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월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는데, 조경선처럼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과는 달리, 시월은 훨씬 더 영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사랑이야.’ 물질적인 안정만이 시월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조경선은 시월이 친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월은 이미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파헤쳤다. 조경선은 평생 소임호만을 사랑하며 집착했기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사실, 시월은 생모는 깊은 산골에 살던 농부의 아내였다. 시월은 집안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마음이 약해진 시월의 생모는 시월을 산에 버렸고, 마침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조경선이 그녀를 발견해 데려간 것이었다. 조경선은 그 순간부터 복수를 위한 계획을 마음속에 세웠다.시월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난 후 더욱 노력했고, 조경선이 자신을 산속에서 데려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시월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노력으로 부족함을 메웠다. 게다가 소씨 가문의 풍부한 자원과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무사히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 도윤은 혼란스러운 예린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예린은 총알에 스쳐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표정은 마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처럼 공허하고 무기력했다. 예린은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몸이 부서질 듯한 상태였다. 진실이 주는 충격은 예린에게 너무도 컸다. 그녀의 마음은 죄책감과 혼란으로 가득 찼는데, 고개를 들어 도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그때 날 죽이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구나? 이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과라는 걸 알았으니까.” 예린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나도 이렇게 되길 원치 않았어. 나는 소 선생님을 돕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소 선생님의 여동생을 죽일 뻔했어. 나는 죽어야 해!” 도윤은 스스로를 질책하는 예린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신도 아니고, 미래를 내다볼 능력도 없어. 내가 네 목숨을 살려둔 건,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었어.”도윤이 예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린아, 우리는 원래부터 정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했잖아. 우리 부모님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에게도 왜곡된 마음을 심어줬어. 그래서... 우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게 된 거지. 오빠도 과거에는 너처럼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 지아가 어떤 벌을 내리든,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야.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서거든.”“잘못은 잘못이고, 그걸 변명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계속 괴로워한다면, 소 선생님이 널 구할 필요가 있었겠어?” 예린은 시후의 이름이 언급되자, 눈동자에 희미한 생기가 돌았다. “그분의 선의를 배신하지 마. 넌 살아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과거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볼 수 있을 거야.” “예린아, 앞으로는 반듯하게 살아가야 해.” “오빠
시후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괜찮아. 일단 진정 좀 해봐.” 시후가 도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많이 흥분한 것 같은데, 어서 데려가서 좀 쉬게 해줘.” 도윤의 입장에서 계속 이곳에 머무는 것은 이미 불편한 일이었다. 소씨 가문의 남자들이 맹수처럼 당장이라도 도윤을 물어뜯을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도윤의 목적은 예린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예린은 고집이 세고 완고했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장인어른, 몸조리 잘하세요.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도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소임호는 도윤에게 베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소임호의 얼굴은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자기 딸이 밖에서 고생하며 학대받을 때, 도윤이 그저 방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지아가 급히 다가가 소임호를 달랬다.“아빠, 진정하세요. 아직은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이름이 지아라고 했나?”소임호는 지아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아는 환희와 많이 닮아 있었지만, 눈매와 이목구비는 소임호와 조경숙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네, ‘지혜 지’에 ‘맑을 아’예요.”“아주 훌륭한 이름이구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겠니... 너를 잘 키워주신 양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내가 직접 방문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구나.” “제 양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저를 가족들과 만나게 해 주신 것을 아주 기뻐하실 거예요.” 지아는 이 방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지만, 가장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가족을 만나던 순간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빠, 제가 처방전을 써드릴게요. 그대로만 복용하시면 곧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아가 처방전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다들 소시월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지아는 무심한 듯 물었지만, 소시월은 소씨 가문 사람
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이번 생에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해요.” “지아야, 소시월이 그렇게 악랄한 사람인 줄 몰랐어. 그 X은 너를 몇 번이고 암살하려 했고, 우리 가족을 산산조각 냈어!” “전에 오빠가 너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걸 용서해 줄 수 있겠어?” “여러분이 제 가족이라는 걸 몰랐을 때도, 저는 한 번도 오빠들을 원망한 적 없어요.”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고,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지만, 이예린만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충격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소지아가 날 속였다니, 어떻게 날 속인 거지?”예린은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시후는 예린이 아직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 이만 일어나.”예린은 시후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고, 지아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모든 게 내 잘못이에요.” 본래 예린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도윤이 그녀의 손과 발의 힘줄을 끊었을 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예린은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머리를 몇 번 조아리자, 예린의 이마에서는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고, 머리뼈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이야기해.” 하지만 시후의 말은 예린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예린은 지아의 손목을 붙잡은 채, 피와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언니, 미안해요. 저도 속아서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예요. 용서는 바라지도 않을게요. 그냥 저를 죽여주세요. 제발 죽여주세요!” 예린은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고,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지아는 예린을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후회로 가득 찬 예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너는 분명히 죽어 마땅하지만,
지아는 예린과 시후 사이에 얽힌 사연을 알지 못했기에, 예린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 다소 놀라웠다. 하지만 예린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지아는 특별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예린의 정체를 고려하면, 지아의 입장에서는 예린이 죽는 게 마땅했겠지만, 도윤의 입장에서 예린이 죽었다면, 그는 분명히 괴로웠을 터였다. 그래서 지아는 예린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예린의 등장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지아가 방금 던진 말의 의미를 되새기던 찰나, 시후가 예린에게 물었다.“괜찮은 거야?”예린은 상처를 입은 곳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나, 지아는 공기 중에 희미하게 풍기는 피비린내를 감지했다. “전 괜찮아요.” “아버지, 이 사람이 아버지를 구한 사람이에요. 만약 이 사람의 전폭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저도 손쓸 수 없었을 거예요.” 소임호는 지금 모든 관심이 지아에게 쏠려 있었지만, 예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워요. 꼭 보답하겠습니다.” 예린은 소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유난히 어색해 보였고, 손을 연신 내저을 뿐이었다.“아니에요,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소임호의 시선이 다시 지아에게 향했다.“소 선생님, 방금 한 말이 사실인가요?” 그들은 조경선과 심세호를 의심했지만, 정작 그들이 오랫동안 사랑했던 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시월이 그들 앞에서 너무도 완벽한 연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윤은 예린을 한 번 힐끗 본 뒤 성큼성큼 걸어왔다.“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윤은 지금 지아의 감정이 아주 격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아를 먼저 의자에 앉힌 후 예린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무릎 꿇고 들어!” 그 순간, 예린은 긴장감에 휩싸였는데, 소씨 가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기에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었다. 도윤은 지아의 기구하고 복잡한 출생의 비밀과 그녀가 국내에서
지아는 뒤돌아 도윤을 한 번 바라보았고, 도윤은 지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조금 있다가 바로 갈게.” 지아는 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더는 따지지 않고, 시후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시언과 시후는 이미 소임호의 곁에 있었는데, 지아가 방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모두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만난 기쁨과 과거의 날들에 대한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그 많은 고난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 모양이었다.지아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그녀의 눈앞에는 소임호가 있었다. 소임호는 이전에 봤던 사진과 영상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지만, 몸 상태는 더 약해 보였고,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눈앞의 소임호가 바로 지아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아버지였다.소임호를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 지아는 그대로 멈춰 서버렸다. 마치 누군가 지아의 움직임을 봉인한 것처럼 말이다. 지아는 소계훈이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수없이 상상해 왔다.‘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실까?’‘그분들은 날 사랑해 주실까?“지아야, 왜 그래?”시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지아를 깨웠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분이... 소 대표님이신가요?”두 사람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겼고, 소임호는 지아를 보자마자 멈칫했다.시월은 지아를 본떠 성형했지만, 지아와 똑같이 될 수는 없었다. 지아의 얼굴은 환희와 너무 닮아 있었다. 하지만 환희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다른 자녀들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다만, 소임호만큼은 환희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가 환희와 함께 했던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그쪽은...”소임호가 지아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키려 하자, 시언이 부드럽게 설명했다.“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소지아 선생님이에요. 저희와 의형제를 맺기도 했죠.”“이번에도 지아 덕분에 많은 도움을
많은 일들은 한 번 실마리를 풀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기 마련이다.도윤은 살아남은 예린이 직접 진실을 듣기를 바랐다. 한편, 지아는 이미 부남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부남진의 기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 한 통도 없고, 너 때문에 걱정돼 죽을 뻔했구나. 그래도 도윤이가 너랑 있었다니 참 다행이었어.] 지아의 치료 덕분에, 부남진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목소리에서도 힘이 넘쳤다. 가족의 목소리를 들은 지아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할아버지, 정말 큰 소식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예요.” 부남진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좋은 소식이에요. 저, 친아빠를 찾았어요!” 쨍그랑!지아는 수화기 너머에서 컵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부남진이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놓친 것이 분명했다. [얘, 정말이니? 거짓말 아니지?]“더 일찍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복잡하던 상황이 이제야 조금 안정됐어요.”지아는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부남진은 감격에 겨워했다.부남진에게 있어서 이 소식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았다. 특히 지아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혈육이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소임호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 부남진의 표정에는 곧장 걱정이 어렸다.‘그 아이는 유일한 내 혈육이야!’[지아야, 네 아버지는 좀 어떠니? 많이 다친 게야?]“할아버지, 오빠가 방금 아빠를 구해냈어요. 지금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요. 남은 치료는 저한테 맡겨주세요.”지아의 차분한 목소리에, 부남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네가 있다니 안심이구나. 지아야, 네 아버지는 네가 잘 보살펴주길 바란다.]“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이만 들어가 봐라.]수화기 너머의 부남진은 기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