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박은 서둘러 현장에 도착했다. 비록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떠나지 않고 폭발 중심을 향해 달려갔다.문청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제 떠나야 해요. 앞은 매우 위험하다고요.”“안 돼, 그가 직접 왔단 말이야. 난 마음이 놓이지 않아. 레오는 그를 몹시 증오했으니 틀림없이 기회를 봐서 그를 기습할 거야!”닥터 박의 손바닥은 이미 땀투성이였고, 어느새 몸도 떨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녀가 최선을 다해 달려왔을 때, 마침 혼자 남은 남자가 총알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안 돼!”그녀가 소리를 짖자 문청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고 바로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가지 마요, 우리는 이제 가야 해요.”그러나 여자는 쓰러진 도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이때 그녀는 무서운 포화를 신경 쓸 새가 없었고, 눈에는 오직 비 속에 쓰러진 사람만 보였다.그렇게 여자는 마침내 도윤의 앞에 이르렀고, 줄곧 결벽증이 있던 그녀는 진흙탕에 두 무릎을 꿇었다.눈물이 빗물과 뒤섞여 도윤의 두 눈을 꼭 감은 얼굴에 떨어지자,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 넌 죽을 수 없어, 난 널 죽지 못하게 할 거야!”여자는 도윤의 부상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다음 순간, 큰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고 닥터 박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이때 땅에 누워있던 남자가 눈을 떴다. “드디어 당신을 잡았군.”닥터 박은 눈을 드리웠고, 그의 가슴에 피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여자는 그제야 도윤이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허울일 뿐, 그 진짜 목적은 바로 자신을 잡는 것이란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도윤은 진면목으로 나타났고, 혼자 여기에 남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닥터 박이 나올 것이라고.여자는 분노가 극에 달해 도윤의 가슴을 한 대 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방탄 조끼를 입고 있었다.그녀도 화를 참지 못했다.“죽고 싶은 거야? 만약 심장이 아니라 머리를 맞았다면, 당신은 이미 죽었어!”도윤은 멍해졌다. 이것은 청
진봉은 전화를 끊고 사실대로 보고했다.“대표님, 독충은 뜻밖에도 사모님이 섬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백 선생님은 우리가 준 소식인 줄 알았고요. 지금 사모님은 그의 손에 있으니 가서 사모님을 데려올까요?”“아니야, 골수가 일치한지 검사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지금은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진봉은 이도윤이 무엇을 확인하려는 건지 몰랐다. 그가 줄곧 신경을 쓰던 소지아까지 잠시 내려놓았다니.도윤의 현재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의 이마에는 촘촘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핸들을 잡은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도윤이 이런 큰 반응을 보이다니.‘설마 대표님과 무슨 갈등이 있었던 옛 애인?’아무튼 오늘 밤의 도윤은 너무 이상했다. 차는 줄곧 폭주했고, 진봉은 참지 못하고 손잡이를 꽉 잡고 자신이 날아가지 못하게 했다.차는 곧 시내로 돌아왔고, 진봉은 머릿속으로 도윤이 갈 수 있는 곳을 생각해 보았다.그러나 차가 묘지에 도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아니, 이 한밤중에 대표님은 설마 할머님께 제사를 지내러 가려는 건가?’밖에는 광풍과 폭우가 내리쳤고, 천둥이 울렸다. 번개가 치자, 진봉은 빽빽한 묘비들을 바라보았다.전에 죽음을 겪었던 그라도 이런 장면을 보니 등골이 좀 오싹했다.차는 오솔길 앞까지 달려서야 멈추었고, 진봉은 허둥지둥 우산을 들고 내려와 도윤에게 비를 막아주려 했다.도윤은 우산을 받치기는커녕 마치 넋이 나간 듯 비틀거리며 산을 향해 올라갔다.진흙은 큰비에 푹신푹신해졌고, 발로 밟으면 큰 구덩이가 생겼는데, 미끄러우면서도 더러웠다.도윤은 아주 빨리 걸었고, 두꺼운 워커힐은 고인 물을 밟아 물보라를 튀겼다.산에는 오직 희미한 불빛 만이 묘비를 비추고 있어 이를 더욱 음산하고 무섭게 만들었다.광풍은 주위의 나뭇가지를 일으키더니 소리를 냈다.사방은 아무도 없었고, 오직 도윤의 발소리와 심장박동소리만 들렸다.그는 마치 통제력을 잃은 짐승처럼 재빨리 앞으로 달려갔다.그렇게 도윤은 단숨에
진봉은 다리에 힘이 풀렸고 말까지 더듬었다.“그 뭐지, 대표님, 비록 귀신을 믿지 않으시지만, 이 한밤중에 고이 잠들고 있는 아가씨를 방해하는 것은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만약 아가씨가 화가 나서 관에서 기어나오면 어떡하죠?”도윤은 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진봉은 확실히 진환보다 똑똑하지 못했다.“사람을 불러서 지금 당장 무덤을 파라고!” 도윤의 말투는 강경했다.“예.”진봉은 평생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적지 않게 했는데, 유독 이렇게 부적절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그는 무덤을 파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아가씨,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저도 단지 대표님의 명령대로 행동하고 있는 거뿐이에요. 억울하시다면 아가씨의 오빠를 찾아가세요. 그는 저보다 용감하니까요.’도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동작은 누구보다도 빨랐고, 진봉은 그에게 비를 피하라고 했지만 도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심지어 후에 관이 파손될까 봐 도윤은 무릎을 반쯤 꿇고 손으로 흙을 팠다.진봉은 이렇게 낭패한 모습의 도윤을 처음 보았는데, 그도 가슴을 졸이며 도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몰랐다.완전한 관이 드러나자, 진봉은 도윤의 표정이 아주 복잡한 것을 발견했다.두려움과 공포 속에 또 기대가 들어있었다.‘이 관 안의 시체가 이상한 건가?’“대표님, 지금 바로 관을 여실 겁니까?”도윤은 한순간 망설이다가 결국 결심을 굳혔다.“응.”“네, 대표님 좀 멀리 서 있으세요.”관례에 따르면 이예린이 죽은 후, 화장을 해야 했지만 도윤은 당시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여동생은 죽기 전에 그런 학대를 받았으니 도윤은 그녀를 더 이상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시체를 그대로 보존하게 했다.그리고 이 2년 동안 시체는 이미 썩었다.그래서 지금 관을 열어도 기껏해야 시체만 보일 뿐, 진봉은 도윤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관을 여는 순간,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울렸고, 진봉의 삽을 잡은 손이 떨렸다.도윤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열어.”못이 박힌 관
이도윤은 겨우 한 모금 마신 컵을 탁자에 놓으려 했지만 제대로 놓지 못하고 바로 바닥에 떨어졌다.컵은 카펫에 떨어져 깨지지 않았고, 물은 모두 카펫에 흡수되었다.진환은 촉촉하게 젖은 카펫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대표님은 왜 이렇게 당황하시는 것일까?’순간, 도윤은 이미 일어섰고 얼굴에는 조금도 숨기지 않는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진봉이 무엇을 가져왔길래 뜻밖에도 대표님이 이렇게 초조한 것일까?’진봉은 비를 무릅쓰고 왔고, 품에 안고 있던 서류에는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차가운 손으로 재빨리 도윤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그는 뛰어 들어와서 머리에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대표님, 견본 추출로부터 검사,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저는 줄곧 따라다녔고 눈 하나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았으니 이번 결과는 아주 정확하며 그 어떤 거짓도 없을 겁니다.”도윤은 서류를 들고 있었고, 분명히 무척 안달이 났지만 또 감히 열어보지 못했다.진환은 도윤의 갈등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그렇지 않으면 제가 대신해서 확인할게요.”도윤은 두 눈을 뜨고 숨을 깊이 쉬었는데 눈빛은 이미 확고해졌다.“필요 없어.”그는 서류 봉투를 천천히 열었다.진환은 도윤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봉투를 열자, 도윤은 검사보고서를 꺼냈다.그리고 무엇을 보았는지 도윤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흥분, 기쁨, 슬픔.그는 웃다가 또 다시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진환은 호기심이 생겨 서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검사 보고서에는 DNA 불일치 정도가 높아 혈연관계가 아니란 결과를 표시했다.“이것은…….”진환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바보인 진봉도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다.“우리 그동안 줄곧 속고 있었어요. 2년 전, 바다에서 건져낸 시체는 아가씨가 아니었어요.”진환은 바로 부인했다.“그
진환은 한숨을 쉬었다.“나는 지금 아가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사모님이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그러게, 처음에 사모님은 이 모든 것을 전혀 몰랐고, 그냥 대표님이 백채원 아가씨 때문에 자신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2년 동안 사모님은 그렇게 열심히 재결합하려고 애를 썼고, 또 아가씨의 일을 알게 된 후 심지어 목숨으로 갚으려고 했잖아. 만약 지금 사실이 폭로된다면, 파산 당한 소씨 집안, 교통사고를 당한 소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조차도 온통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그녀는 누굴 찾아 하소연해야 할까?”진실은 마치 붕대를 찢고 피투성이인 상처를 드러내는 것처럼 추악한 과거를 암시하고 있었다.만약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면, 도윤은 여전히 일심전력으로 이예린을 찾으려 했을까?처음부터 끝까지 불쌍한 것은 오직 소씨 집안이었고, 억울하게 그의 모든 분노를 당해내야 했다.이 2년 동안 지아는 그들의 감정을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갈라졌다.그리고 지금, 도윤은 가까스로 모든 원한을 내려놓고 무너진 믿음을 다시 만들어가며 지아와 원래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제 또 진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알 리가 없어.”쉰 목소리가 울렸다.두 사람은 동시에 도윤을 바라보았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줄곧 깔끔하게 빗은 머리카락은 지금 헝클어졌고,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축 처져 도윤의 이마를 가렸다.날카로운 기운은 좀 줄었지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견고해졌다.“너희들이 입을 다물기만 한다면, 그녀는 영원히 모를 거야.”진봉은 침을 삼키고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대표님, 비록 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지만,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이 일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니 그래도 사모님과 털어놓고, 사모님이 일찍 용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거짓말은 들통나기 마련이니 만약 나중에 사모님이 진상을 알게 되고, 또 대표님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발견
백정일의 목소리에 소지아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멈추었다.‘참, 지금 가장 관건적인 일은 골수 기증이지.’지아는 바삐 침대에서 내려왔다.비록 그녀는 변진희에게 골수를 기증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지아는 도망갈 수 없었고, 또한 기증할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백정일은 침실의 불을 켰고, 갑자기 밝아진 방에 지아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빛에 적응한 후에야 지아는 백정일이 손에 서류를 든 채 엄숙한 표정으로 거기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지아야, 너와 얘기 좀 하고 싶은데.”지아는 그의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고 한동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맞힐 수 없었다.‘골수가 일치하지 않는 건가?’“좋아요.”지아는 백정일의 말에 따라 소파에 앉았고 백정일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아저씨, 표정이 무거운 것을 보니…… 골수가 맞지 않는 건가요?”백정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 봉투를 지아 앞으로 밀었다.“네가 스스로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지아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골수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설마 나한테 위암 있다는 것을 알아냈나?’그렇다고 백정일은 이런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지아는 의혹에 잠겨 천천히 서류를 열었다. 안에는 두 개의 보고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골수의 검사결과였다.아니나 다를까, 지아는 변진희와의 골수가 일치하지 않았다.이 결과는 백정일의 표정을 통해서 이미 알 수 있었다.지아는 또 두 번째 보고서를 꺼냈는데, 그것은 친자 확인 보고서였다.‘이게 뭐지?’그러나 눈빛이 천천히 아래로 이동하자, 지아는 자신과 변진희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았고, 마지막에 친자 감정 결과가 여전히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지아는 그만 어리둥절해졌다.그녀는 이예린의 일을 생각하느라 자신과 변진희는 친모녀가 아니란 가능성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마치 머리 위에서 큰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지아는 어리둥절해졌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단 듯이 입을 열었다.
백정일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소지아를 바라보았다.“그래, 내가 안배할게. 그러나 진희는 지금 매우 허약해서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길면 안 돼.”“주의할게요, 감사해요.”백정일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너를 강제로 끌고 왔고, 너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너에게 골수 검사를 진행했으니 너에게 사과하마. 미안하구나.”백정일의 초췌한 얼굴을 보고 지아는 원망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괜찮아요, 이렇게 보면 난 오히려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걸요. 만약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나는 줄곧 속아서 아무것도 몰랐을 거예요. 내가 사모님의 친딸이 아닌 이상 그 아이를 찾으면 사모님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그래, 진희의 병원으로 가자구나. 가서 그때의 일에 대해 알아보자.”백정일은 지아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일시에 너무 많은 일이 발생했기에 지아는 머리가 아팠고, 따라서 이예린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변진희가 내 친어머니가 아니라면, 우리 아빠는?’그는 자신의 아버지일까, 아니면 그녀의 아버지는 또 다른 사람일까?소계훈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 알고 있을까?어릴 때부터 소계훈과 함께 보낸 추억을 자세히 회상하면서 지아는 아무런 수상함도 찾지 못했다.바깥의 그 빽빽한 비를 바라보니, 마치 지아의 심정처럼 무척 난잡했다.차는 어느덧 병원에 도착했고, 지아는 급히 차에서 내렸는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백정일이 그녀를 부축했다.“조심해.”“네.” 지아는 담담하게 감사를 표시하며 얼른 따라갔다.이것은 변진희가 입원한 이후 지아가 처음으로 병문안을 하러 온 것인데, 지금 다시 그녀를 보니 지아의 마음속은 매우 복잡했다.‘그녀는 내가 그녀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날 이렇게 냉담하게 대했던 것일까?’만약 정말 그렇다면, 변진희는 확실히 자신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며칠 보지 못한 사이, 변진희에게 더 이상 전의 그 고귀하고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많이 야위
변진희는 아직 두 사람의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추억에 잠겼다.“기억 속에서 나는 종래로 너의 학습에 관심을 돌린 적이 없고, 네 취향에 관심을 돌린 적이 없지. 심지어 떠나는 동안 너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고 그렇게 어린 너를 내팽개쳤으니 너도 틀림없이 이 엄마를 엄청 원망했을 거야.”“난…….”지아는 코를 훌쩍이며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사실을 알려줄까 말까 망설였다.백정일은 망설이다 한숨을 내쉬었다.“진희야, 진정해. 그리고 내 말 잘 들어.”지아는 눈물을 닦고 손을 들어 변진희를 위해 눈물을 닦아주었다.변진희는 한순간 멍해졌다. 그녀와 지아는 다시 만났을 때부터 지아는 줄곧 냉담했고, 이는 지아가 처음으로 자신과 친해진 것이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백정일은 간단하게 설명했다.“나쁜 소식은 지아의 골수가 일치하지 않다는 거야.”“응,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됐어.”“좋은 소식은 지아가 당신 딸이 아니고, 당신에게 친딸이 또 하나 있다는 거야. 그녀의 골수가 당신과 일치할지도 몰라.”이 말은 마치 몽둥이처럼 변진희의 머리를 내리쳤고, 그녀는 어지러웠다.“뭐, 뭐라고?”변진희의 반응을 보니, 그녀도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백정일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직접 손에 든 증거를 내놓았다.“한 번 봐.”변진희는 친자확인 보고서를 보고 안색이 크게 변하여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지아가 어떻게 내 딸이 아닐 수 있어?”지아는 변진희의 감정을 달래며 말했다.“엄, 아주머니, 일단 흥분하지 마세요. 나도 방금 이 소식을 알았는데, 아주머니와 같은 반응이었어요. 이 보고서는 가짜일 리가 없으니 틀림없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예요. 잘 생각해 보세요, 확실히 임신한 건 맞나요?”변진희는 중얼거렸다.“나는 비록 네 아빠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내가 임신을 한 일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어. 그때 나는 입덧이 매우 심했고, 줄곧 몇 달 동안 토해서 엄청 짜증이 났거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