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는 상황이 틀린 것을 보고 재빨리 해석했다.“난 그 자료들을 보고 문제를 발견했거든. 그 자료들은 우리 아빠가 네 동생을 죽였단 것을 직접 증명할 수 없어. 증거가 없으니 그저 우리 아빠가 범죄동기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도윤은 책상 위의 모든 그릇과 접시를 땅바닥에 던졌다.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기가 없었고, 그 대신 싸늘한 3개월 전의 이도윤이 다시 나타났다.소지아가 설명하기도 전에 이도윤은 일어나 높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강한 압박감이 밀려왔다.“첫째, 난 이미 그 시체에게 DNA 검사를 시켰어. 그녀는 내 여동생이 맞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지. 둘째,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시체를 소계훈과 대조한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이 친자 관계라는 것을 증명했지.”“그리고, 나는 예린의 생전 활동을 조사한 적이 있어. 그녀의 통화 기록이든 다른 기록이든 가장 많이 연락한 사람도 소계훈이었고.”“마지막으로, 그녀가 생전에 유일하게 본 사람은 역시 소계훈이었어. 그가 아니면 범인은 또 누구일까? 증거? 넌 네 아빠가 기적적으로 일어나길 원하는 거야, 아니면 죽은 사람이 다시 입을 열게 하고 싶은 거야?”소지아는 이도윤의 그 차가운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예린은 여전히 영원히 그의 앞에서 언급할 수 없는 존재였다.소지아는 이도윤와의 관계가 좀 완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의 마음속에서의 자신의 지위는 백채원보다도 못하며 이예린보다도 못했다.소지아는 묵묵히 말하려고 했던 사실을 삼켰다. 지금은 말해도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었고, 이도윤은 조금도 마음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소계훈을 위해 핑계를 대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며, 소지아는 자신의 예전의 진심과 이도윤과의 산산조각이 난 혼인생활을 떠올렸다.소지아는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어쨌든 나는 우리 아빠를 믿어.”이 말은 이도윤을 격노시켰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소지아는 답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위치 추적기를 살펴보았는데, 이는 바로 그녀가 그 5명의 비서에게 준 위치 추적기였다.다른 네 사람은 모두 금당 아파트에 있었다. 소지아는 이곳이 고급 직원들에게 배치한 아파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지밀은 한 술집에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고급 비서였고 밤에는 파티의 여왕이었다.하지만 오가희의 책상에 놓은 위치 추적기의 행방은 비교적 복잡했다. 이는 거의 전반 구역을 돌아다니다 마지막에는 쓰레기 처리센터에 멈추었다.소지아는 이마를 짚었다.‘역시 오가희란 사람이 좀 수상해.’돈을 싫어하는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이 보낸 브로치를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니.전효 쪽에서 조사 결과가 나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지아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고객님의 전화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소지아는 좀 불안해졌다. ‘전효에게 사고가 난 건 않겠지?’그의 신분은 신비롭고 특별해서, 소지아는 그동안 전효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그 배후의 사람도 그를 알 수 없었다.그리고 전효는 항상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비밀을 지키기 위해 전원을 껐을 수도 있다고 소지아는 자신을 설득하며 머릿속의 좋지 않은 생각을 떨쳐버렸다.범위를 확정하고 소지아는 될수록 빨리 오가희의 자료를 얻으려 했다.이날 밤, 그녀는 편안하게 자지 못했고, 눈을 감으면 이도윤이 갑자기 포효하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마치 쇠사슬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난 짐승이 어두운 밤에 격노한 것 같다.소지아의 인상에서 이도윤은 언제나 냉정하고 자제했다. 마치 그때 자신이 본 서류처럼, 아무도 그의 진정한 취향을 몰랐고, 그의 심정을 추측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방금 이도윤은 매우 이상했다. 보아하니 이예린의 죽음은 그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준 것 같았다.이 일을 거쳐 소지아는 더는 이도윤 앞에서 이예린의 일을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자신에 의지해서라도 반
소지아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보았는데, 짧은 머리에 매우 세련된 여자였다.그 두 사람은 그녀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더는 방자하게 굴지 못했다.“팀장님.”B팀의 팀장 손승옥이었다.손승옥은 차갑게 그들을 훑어보았다.“일은 다 했어? 기획안은 통과되었고?”“아니요.”“그럼 빨리 가서 계속해!”“네, 팀장님.” 두 사람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도망갔다.손승옥의 눈빛은 소지아의 얼굴에 떨어지더니 비꼬며 말했다.“젊은 사람이, 이런 가장 더러운 방식으로 올라갈 필요는 없지. 설령 기어올랐다 하더라도 바로 다른 사람에게 차일 텐데, 그때 난감한 것은 여전히 너뿐이야.”소지아는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어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알겠어요, 손 팀장님.”그녀는 이 일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C조가 계약을 얻었다고 해도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할까?소지아는 오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샀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아무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소지아는 화장실에 가서 지난번에 만난 청소 아주머니에게 알아보고서야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았다.그 핸드크림을 봐서라도 청소 아주머니는 자신의 단톡방에 뜬 사진을 소지아에게 보여주었다.그것은 사진 두 장이었는데, 첫 번째 사진은 소지아가 이은리와 함께 들어간 사진이었다. 당시 그녀는 오피스룩을 입고 있었다.두 번째 사진은 그녀가 호텔을 떠나는 사진인데, 그때 소지아는 이미 옷을 갈아입었다.이 두 장의 사진을 보고 모두들 상상하기 시작했다.“아가씨, 혹시 누구에게 미움을 샀어요? 오늘 아침 이 두 장의 사진이 여러 단톡방에서 퍼졌어요. 우리 청소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이 일을 얘기하고 있었고요. 별의별 말을 하는 사람 다 있다니까.”“알려줘서 고마워요.”“나도 아가씨가 마음이 좋아서 이렇게 알려주는 거예요. 직장은 전쟁터와 같지. 아가씨처럼 예쁜 사람은 더더욱 조심해야 해요.”소지아가 몸을 팔아먹고 계약을 따냈다는 소식은 이미 회사에 널리 퍼졌다.소지아는 이은리의 사무실 문을
이은리는 소지아가 만만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이렇게 똑똑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작에 자신을 대처할 생각을 했다니.“지아야, 내가 잘못 눌러서 그래.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이렇게 하자, 이번 프로젝트 업적에 네 이름 넣어줄게.” 이은리는 즉시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소지아는 원래 떠보고 싶었다. 이은리보다 그녀는 그 주모자가 이 일을 했다고 의심했다.상대방은 마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눈처럼 시시각각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내가 그 업적을 원한다고 생각해요?”“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일은 이미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고, 지금 설명해도 너무 늦었어.”“또 뭐 찍었는데요?” 그것보다 소지아는 지금 그녀와 이도윤이 찍혔는지에 대해 더 신경이 쓰였다.“또 뭐가 있겠어? 이 두 장의 사진일 뿐이야, 다른 거 있었다면 나도 진작에 올렸겠지.”이은리는 한숨을 쉬었다.“나는 단지 복수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아니면 내가 지금 해명해 줄까?”“해명?” 소지아는 냉소했다.“쓸모가 있나요? 모두들 내가 마음이 찔려 당신과 한통속이 됐다고 생각하겠죠. 지금 당신의 사람더러 그 사진들 모두 나에게 보내라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이야말로 오 사장의 침대에 올라간 그 사람이라는 것을 폭로할 거예요.”“이건…… 또 무슨 사진이 있다는 거야? 있으면 벌써 올렸지.”소지아는 이은리에게 접근했다.“없는 거예요 아니면 꺼낼 수 없는 거예요?”“지아야, 그게 무슨 뜻이야?”“사진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줘요.”이도윤의 곁에 이렇게 오랫동안 있으면서 소지아는 그의 카리스마를 조금 따라배웠다.소지아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가뜩이나 마음이 찔린 이은리는 더욱 반격할 힘이 없었다.그녀는 분명히 매우 긴장되었는데, 소지아에게 어디서 이런 박력이 났는지 몰랐다.“난…….”“나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요. 이 팀장은 날 망신하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소지아에게는 그런 영상이 없었다. 그것은 다만 이은리에게 겁주기 위해서 지어낸 말뿐이었다. 이은리는 겁이 많았고, 바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이 이른바 증거가 있으면 이은리는 한동안 조용해질 것이다.그리고 그 강진도 분명 그 사람의 도구일 뿐이었다.비록 주모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지만, 소지아는 적어도 한 가지 일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제대로 찾아왔다.그 사람은 분명 회사에 숨어 있었고, 그녀의 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방향을 정한 후, 소지아도 조사할 사람이 생겼다.‘그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 상세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아.’C팀이 오 사장의 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C팀은 하루 종일 즐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때, 불청객이 방문했다.“세상에, 정말 사모님이 오셨어.”사모님이란 세 글자를 듣자 소지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은 이미 문 쪽으로 달려가 맞이했고, 입으로 계속 중얼거렸다.“사모님은 특별히 케이크를 만들어서 각 부서에 나누어 주었어. 방금 화장실에 갔을 때 멀리서 한 번 봤는데, 정말 부드럽더라.”“당연하지, 대표님은 카리스마가 넘친 사람이었으니 틀림없이 부드럽고 대범한 여자를 찾을 거야.”백채원이 오자 소지아의 첫 반응은 도망가는 것이었다.그녀는 백채원에게 자신이 이도윤을 꼬시러 왔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신을 회사에서 내쫓는다면, 조사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지금 이 상태로는 소지아도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았기에 기회를 잘 잡아야 했다.소지아는 얼른 일어나 옆문으로 떠났지만 백채원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마침 그녀와 부딪쳤다.“아가씨, 잠시만요.”소지아는 그 가식적인 소리를 듣자마자 더 빨리 도망갔다.하지만 박금란은 백채원 앞에서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단번에 소지아를 잡아당겼다.“뭘 그렇게 뛰어? 사모님이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소지아는 마음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는 정말 눈치가 없군.’굳이 자신을 백채원 앞으로 끌
백채원이 지금 과시하는 모든 것은 소지아가 갖지 못했던 것이다.이도윤은 소지아에게 모든 사랑을 주었지만 백채원에게는 충분한 체면을 세워주었다.많은 사람들 속에서 소지아는 조용히 물러났다.오후의 햇빛은 약간 따가워서 선물에 쏟아지니 무척 눈부셔 보였다.선물 위의 두 만화 캐릭터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열 손가락을 꼭 잡고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키스를 하며 말할 수 없는 로맨스를 띠고 있었다.사실 소지아도 이런 생각을 했었고, 심지어 자신이 직접 몇 가지 버전의 선물 포장을 설계하기도 했다.그녀가 흥미진진하게 이도윤에게 보여주었을 때, 이도윤은 눈을 드리우며 그다지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이도윤은 소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미안해 지아야, 나는 결혼식을 할 생각이 없어서, 이것들은…….”“왜?”소지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너도 알잖아, 내 신분이 좀 복잡해서.”그 한마디 말은 모든 희망을 날려보냈다.소지아는 자신이 세계일주여행을 하다 바다에 떨어졌을 때,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는 가면이 있었고, 피비린내가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이도윤에겐 다른 신분이 있었지만, 소지아는 감히 묻지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조금도 따지지 않았다.“좋아,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어차피 난 너만 있으면 되니까.”“미안해 지아야, 몇 년의 시간을 줘, 내가 완전히 청산하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나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할 거야.”소지아는 그 L이란 문자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끝내 그를 기다리지 못했지만, 백채원은 성공했다.선물을 뜯자 안에는 가지런한 수입 초콜릿이 놓여 있었고, 또 비싼 향수 한 병과 영생화가 들어 있었다.‘백채원은 통이 참 크군.’얼마 지나지 않아 백채원과 이도윤의 약혼식 기념품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네티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으며 분분히 백채원의 대범함을 칭찬했다.실시간 검색어를 보며 소지아는 가볍게 웃었다. 백채원은 정말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의 신분을
예전 같으면 소지아는 이미 다가가서 이도윤의 상처를 살펴보거나 그의 머리를 주물렀을 것이다.그러나 오늘, 소지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설사 그들이 헤어진 것이 다른 사람의 음모라 하더라도, 소계훈의 입원은 그와 무관하더라도, 눈앞의 남자는 결국 전남편으로 되었다.소지아는 앞으로 이도윤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소지아는 공손하게 한쪽에 서서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대표님, 기획안 가져왔어요.”이도윤은 눈을 뜨지 않고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다.“이리 와.”소지아는 방안을 들고 그의 곁으로 걸어갔다.“만약 대표님이 너무 피곤하시다면 내가 읽어줄게요.”전에 이도윤이 바쁠 때, 소지아는 항상 이랬다. 그가 휴식하면 그녀는 한쪽에서 서류를 읽어주었고, 이도윤은 결정을 소지아에게 알려주며 처리하게 했다.이도윤은 눈을 들어 소지아의 손목을 잡아당기더니 그녀의 부드러운 몸은 그의 품에 안겼다.소지아는 작은 소리로 외쳤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화를 내며 그녀더러 꺼지라고 하던 남자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다니.자료가 바닥에 흩어지자 소지아는 가느다란 손목으로 이도윤의 단단한 가슴을 받쳤다.백채원은 아직 다른 부문에서 사모님의 위엄을 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윤은 사무실에서 전처를 껴안고 있었다.소지아는 이 관계가 너무 혼란스럽다고 느꼈다.“대표님, 지금 뭐 하자는 거죠?”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방금 뜬 검은 눈동자를 마주쳤다. 안에는 증오도 사랑도 없었고, 호수처럼 평온해서 그녀는 그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듣자니 너 오늘 회사 단톡방에 떴다며.”“그것도 당신이랑 관계가 있지.”그 주모자는 자신과 오 사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텔에 들어간 것을 찍었을 뿐, 소지아가 오 사장과 접촉한 사진은 없었다. 이는 소지아가 이 일이 이은리와 무관하다고 추측한 원인이기도 하다.만약 이은리가 찍은 사진이라면, 적어도 식사 자리에서의 사진이어야 하는데 그 사진들은 그저 문 앞에서 찍은 사진일 뿐이었다.만약 이도윤이 자신을 꼭대기층에 데
소지아와 이도윤의 관계는 전보다 더욱 복잡해졌다. 이도윤은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때로는 그녀를 귀찮게 하고 또 때로는 그녀더러 꺼지게 했다.하지만 소지아는 아직 이도윤과 싸울 수 없었다.소지아는 주모자가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린 이유가 바로 자신을 회사에서 쫓아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느꼈다.결국 그 두 장의 사진은 아무런 내용이 없었고, 기껏해야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지만, 백채원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만약 소지아의 예상이 맞는다면 백채원은 이 사진 때문에 찾아왔고, 그녀가 입을 열기만 하면 이도윤은 자신을 회사에서 내쫓을 것이다.주모자도 소지아가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백채원의 손을 빌어 그녀를 쫓아내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이도윤은 소지아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지푸라기였다.소지아는 손가락으로 이도윤의 가슴에 살짝 기대어 표정은 좀 더 우울해졌다.“내가 원하면 뭐가 달라지겠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백채원이 말 한 마디만 하면 너도 버릴 수 있는 거잖아?”이도윤은 소지아의 아름답고 정교한 작은 얼굴을 응시했다. 전에 흔히 볼 수 있던 웃음이 적어졌을 뿐만 아니라 혈색도 사라졌다.소지아의 안색은 지금처럼 줄곧 창백했고,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았다.긴 속눈썹을 드리우자, 은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왠지 모르지만 이도윤은 소지아가 코피를 흘리던 그날을 생각했다.“네 몸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3개월 전, 소지아가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을 때부터 오늘까지 이도윤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소지아의 안색이 좋은 것을 보지 못했다.소지아는 깜짝 놀랐다.‘그는 무엇을 눈치 챘을까?’“내 건강검진 보고서 봤잖아?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겠어?”이도윤은 이마를 짚었다.“정말 없어?”“만약 내가 아파서 곧 죽는다면, 넌 전에 나에게 한 짓을 후회할 거야?” 소지아는 흥미진진하게 이도윤을 바라보았다.이도윤은 심장이 무거워졌지만, 소지아가 은근히 웃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단지 농담을 하고 있단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
시월도 소영수의 침상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그러셨어요... 저희가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는 너무 갑작스럽게 가셨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마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시하가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집사님, 소식을 철저히 숨겼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신 거죠? 대체 누굽니까? 누가 전화를 한 겁니까?”“이미 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해외에서 걸려 온 가상번호였습니다. 발신자의 신원은커녕 구체적인 IP 주소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한 모양입니다.” 양준철의 두 주먹은 떨리듯 꽉 쥐어졌고, 붉게 충혈된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그놈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뼈까지 갈아버려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40년 전만 해도 양준철의 수법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양준철은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갔고,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질렀다. 소영수가 양준철을 부하로 삼은 것도 그의 잔혹함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양준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릴 정도였다.하지만 그런 양준철이 지켜야 할 은인이 눈앞에서 허망하게 떠나버렸다. 이는 양준철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빠, 지금은 큰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결단을 내려야 해. 할아버지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시하는 피눈물을 머금은 듯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입관하고 조용히 묻어 드리자. 최소한... 할아버지께서 편히 잠들도록 해드려야지. 양 집사님, 장례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시하는 소영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평생을 할머니 곁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제야 소원을 이루셨네요.”“하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시다니... 다 제 잘못입니다.
시월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지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아가씨, 멀리 떨어지세요. 감정 상태가 아주 불안정한 것 같아요. 아가씨까지 다칠 수도 있어요.”“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까지 된 거예요?” 장덕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방금 어르신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비행기 사고로 연락이 안 되고, 시언 도련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친 터라, 지금 집안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시하 도련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시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할아버지가 왜요?” “집안에 닥친 변고를 들으신 순간 심장 발작으로...” “거짓말!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시하는 옆에 있던 신발을 장덕수에게 집어 던졌고, 깜짝 놀란 장덕수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다 끝났어요, 시하 도련님도 미쳐버리셨다고요!” 지아가 침착하게 말했다.“두 분은 나가 있으세요. 시하 오빠는 제가 돌볼게요. 지금은 큰 충격을 받아서 안정할 시간이 필요해요.”“안 됩니다, 소 선생님, 그건 너무 위험해요.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선생님을 다치게 할지도 모릅니다.”“괜찮아요. 시하 오빠의 다리 상태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지아가 무무를 불러 문을 잠그자, 방 안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장덕수가 안절부절못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걸 어쩌죠... 도련님께선 원래도 심신이 불안정하셨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신 모양입니다. 이 와중에 어르신까지...”“본가로 갑시다!”목소리의 주인공은 시언이었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흉터를 감싼 붕대가 여기저기 엉성하게 드러났지만, 시언의 표정만큼은 이전과 다르게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오빠...”시
그 순간, 지아의 말에 시하의 눈빛이 굳어졌다.“그러니까... 아직 우리 가문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잘 생각해 보세요. 소명담의 부검 결과가 나왔잖아요. 그 사람이 죽은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즉, 심세호가 그 사람의 신분을 사용한 것도 몇 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죠.”“하지만 소씨 가문의 불행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잖아요. 족히 십여 년은 되었다고요! 내부에서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지아의 지적에 시하는 마침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아야, 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물론 오빠를 탓할 수는 없어요. 소씨 가문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 당사자는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없는 법이잖아요.”“상대는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판을 짰을 거예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란 뜻이죠.” 시하의 얼굴에 깊은 걱정이 스쳤다.“그럼 큰형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잖아?”조경숙이 끌려간 것도 끝이 아닐 수 있었으며, 어쩌면 그게 시작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돼, 큰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해. 지금 저렇게 나서는 건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라고!” 시하는 안절부절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형한테 당장 알려야겠어. 그리고 이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야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실 거야.” 지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하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야?!”시하의 얼굴에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불길하게 들리는 듯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또 장덕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나가 볼게요.”지아가 시하의
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절대 오빠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오빠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그래.”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나는 아버지 일부터 정리할게. 월아, 집안을 부탁해.”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떠나기 전, 시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덧붙였다.“그리고 월아, 소 선생님도 우리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소 선생님께 털어놓고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어요.”사람들 앞에서의 시월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월의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해졌다. “죽일 X! 그 X이 뭔데 나랑 같이 소씨 가문을 관리한다는 거야?” 심장후는 그런 시월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됐어, 우리 계획은 이미 반이나 성공했잖아. 이제 소씨 가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도 없을 거라고.” “그래도 분하단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소씨 가문을 접수하기 가장 좋은 기회인데...” “소시후도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걸 거야. 네가 혼란에 휩싸일까 봐 두려운 거지.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조급해할 거 없어. 조금만 진정해 봐.” 시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꺼내 들었는데, 심장후는 서둘러 그녀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빨간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월의 얼굴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소씨 가문의 인간들 따위는 두렵지 않아. 이제 남은 건 그 노친네 하나뿐이야. 그 인간만 죽으면 소씨 가문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한 명은 팔 하나를 잃었고, 하나는 절름발이가 됐잖아? 이제 별거 아닌 잡것들만 남았어.”“하지만 그 노친네는 만만치 않은 상대잖아.” “그래봤자 그 노친네의 시대는 가고, 우리의 시대가 왔어. 늙은 데다가 병까지 든 노친네가 무슨 힘을 쓰겠어? 내가 불쏘시개 하나만 더 던지면, 불길은
시후도 맞장구쳤다.“역시 우리 월이가 생각이 깊구나.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왜요, 오빠?”“상대의 목표는 우리 부모님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연이어 위기에 처했고,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야. 그 사람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월아, 앞으로는 외출할 때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출발 전에 차량도 철저히 점거해야 해. 그리고 당분간은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도록 해.” 시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오빠, 저는 우리 소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아빠도 많은 걸 바치셨잖아요. 아빠가 심혈을 기울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 싫어요. 지금은 저만이 가문을 책임질 수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복잡해질까 봐 걱정된다고요!”“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월아, 넌 우리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야. 오빠들이 너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 게다가 아버지도 떠나시기 전에 시간을 벌 수 있는 준비를 해두셨을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든 나가면 안 돼, 알겠지?” 시후가 시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너 자신을 꼭 돌봐야 해. 오빠들은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이를 꼭 지킬 겁니다.” “그래.”시후가 고개를 돌려 심장후를 바라보았다.“장후야, 우리가 이 사건과 연관 있는 심세호라는 사람을 찾아냈는데, 혹시 심씨 가문의 사람일까?” 심장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심세호가 저희 할아버지의 사생아인지는 모르겠네요. 저희 아버지에게 큰아버지 이전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를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어요.”“하지만 그 술집 여자와 사생아 모두 우리 심씨 가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죠. 제 아버지조차 그 사람과 왕래가 거의 없었으니, 우리 같은 후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지아는 새로 등장한 인물이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소시월과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 보였다. 지아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시후가 차분히 설명했다.“심씨 가문의 장남, 심장후예요. 월이의 약혼자이기도 하죠.” ‘심씨 가문?’지아는 순간 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도윤의 어머니인 심예지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사랑을 택하며 심씨 가문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심씨 가문의 후계자가 소시월의 약혼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자, 심장후가 자연스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 “이분은...?”시월이 눈물을 훔치며 소개했다.“내가 얘기했던 뛰어난 의술을 갖춘 소 선생님이셔. 우리 시하 오빠가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 지아가 심장후의 손을 잡아끌며 지아 쪽으로 향했다.“소 선생님, 제 약혼자예요.” “안녕하세요.”지아가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인사했다. “소 선생님, 반갑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장후 역시 지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시후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께서는...” 지아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살짝 굳어지자, 시월이 급히 설명했다.“미안해, 오빠, 내가 이야기했어. 장후 오빠랑 전화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바람에...” 시후는 이런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시월과 장후의 사이를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원래 올해 두 가문이 결혼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모든 것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장후도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인 셈이니까.” 이미 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시후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끝은 마음속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타신 비행기가 폭발했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