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장민호와 한 음악회를 함께 보기로 했는데 장민호가 이 음악회의 음악가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어렵게 알아내고 도윤을 통해 티켓을 구했던 것이다. 지아는 집으로 돌아가 예쁘게 단장을 했고 장민호가 지아를 만났을 때 그녀는 한 나무 밑에 서 있었다. 아마 서 있은 지 꽤 된 듯 보였는데 지아의 머리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머리를 들고 청초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자신이 언제 그녀의 곁에 왔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뭘 보는 겁니까?” 순간 지아는 토끼처럼 깜짝 놀랐다. “민호 씨, 저 방금 다람쥐 한 마리 봤어요.” 지아의 눈빛은 아주 티 없이 맑았고 장민호는 지금까지 이런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때로는 순진하고 또 때로는 끝없이 매혹적이었으니 말이다. “설마 그래서 이 눈밭에 그렇게 오래 서 있은 거예요?”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도시에서 저런 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게 엄청 희귀하지 않아요?” “희귀하긴 하죠. 갑시다, 음악회가 곧 시작할 겁니다.” “좋아요.” 지아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고 장민호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했다. 장민호는 친구가 거의 없었고 평소 혼자 다니는 것이 익숙했다. 심지어 매번 외출할 때마다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지아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치 무슨 마법에 걸린 듯 장민호는 평소 두 사람의 메시지 대화 기록을 보며 멍을 때리곤 했다. 전에는 단지 허상의 인물이었지만 그 상대가 지아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장민호는 경계하던 데로부터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제 스스로도 자신이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매번 지아가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상상이 갔고 그 말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까지도 눈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알게 모르게 장민호의 감정은 점점 더 깊어져 갔고 그가 스스로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요 며칠 많이 바빴나 봅니다?” 심지어 장민호가 먼저 지아에게
지아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부장경과 두 사람은 이미 착석했다. 돌아보지 않아도 지아는 뒷사람이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마치 누군가 그녀의 뒤통수에 총구를 대고 있는 듯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장민호는 말수가 적었지만 지아는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장경 오빠, 이번에는 여기에 얼마나 있어요?” 여자의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는 남자들의 보호욕을 자극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부장경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음악 감상할 때는 조용히 해.” 지아는 속으로 할 말을 잃었다. 철벽남, 완전히 철벽남이었다. ‘그러니 30이 넘도록 아직도 혼자지.’ 지아는 비록 차가운 면도 있었지만 자신에게만은 다정했고 절대 부장경 같은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았던 그때의 도윤을 떠올리며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뒤의 부장경과 선을 본 그 여자가 상처를 받지 않았 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마 그와 함께 선을 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그 뒤로 부장경과 함께 온 그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무대 위의 연주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부장경은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앞은 앉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지만 그가 돌아보았을 때 그 여인은 이미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부장경은 자신을 쳐다본 그 여인의 뒤에 자리 잡았지만 단지 그녀의 뒤통수와 귀의 진주로 된 리본 귀걸이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되지 않아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풍겨왔다. 순간 부장경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바로 약재의 냄새였고 바네사의 몸에서 나던 냄새였다.‘그녀도 여기에 있는 걸까?’ 부장경은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그의 앞뒤 양옆 모두 여자가 있었지만 바네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설마 바네사 몸에서 나던 냄새는 아주 희귀한 향수 냄새였던 건가? 줄곧 남자들 무리에서만 지내왔던 부장경은 그 독특한 냄새
지아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고개를 돌려 애써 당황하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부장경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고 지아는 긴장되기 시작했다. 만일 그녀의 신분이 발각된다면 혹시 도윤도 같이 피해를 보진 않을까? 그들은 무조건 자신을 도윤이 심어놓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때 의외로 부장경은 스카프를 건넸다. “여기 물건이 떨어졌습니다.” 지아는 그의 손에 들린 스카프를 보았는데 원래 가방에 묶어 놓았던 게 떨어졌던 것이다. 순간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감사합니다.” 지아는 급히 밖으로 나갔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장민호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지아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옛 지인을 만났어요. 얼른 가요.” 지아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에 장민호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화제를 돌렸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지아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정신이 딴 데 팔린 듯 말했다. “다 좋아요.” “그럼 제가 알아서 고를게요.” 장민호는 지아를 데리고 고급 커플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사실 전이었다면 그는 이런 곳에는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아를 몇 번 만난 뒤로 그는 무슨 일인지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보기도 하고 특별히 기억해 두기도 했다. 오늘 온 이 레스토랑은 그 중에서도 평가가 가장 높고 환경이 제일 좋은 곳이었다. A의 야경은 아주 예뻤고 온통 눈으로 뒤덮인 도시 전체는 마치 동화에 나올 법한 한 장면 같았다. 지아가 마침 메뉴를 다 골랐을 때 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설마 혹시? 또 부장경과 그의 맞선 상대였던 것이다. 다행히 부장경은 지아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고 지아는 장민호와 몇 마디 나누었는데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던 장민호가 안색이 급변하고 말았다. 지아는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더니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민호는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지금 당장 가
첫 해 지아는 장민호의 출신을 조사했고 그가 사생아라는 것을 발견했다. 때문에 그가 평생 가장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인 고심옥이었다. 당시 젊고 예뻤던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정실 부인을 쫓아내려다 되려 그에 의해 얼굴이 망가졌고 심지어 장민호까지 가문에서 버려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장민호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여우 같은 첩의 자식이라고 놀림을 당하곤 했다. 고심옥은 줄곧 장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으려 했고 그로 인해 정신 상태까지 좋지 않아졌다. 장민호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청해 그녀를 보살피도록 했고 적어도 그녀가 먹고 지내는 면의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는 매번 집으로 올 때마다 멀리서 어머니를 지켜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가진 않았다. 장민호는 마음에 이 어머니란 존재를 품고 있는 동시에 그녀의 과거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아는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늘 같은 카페에서 두 잔의 커피를 사러 간다는 걸 알고 미리 준비를 해두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를 넘어지게 하는 것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당시 장민호가 강미연을 이용하여 지아를 해치려 했을 때는 분명 자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지아에게 당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 집은 300평이 넘고 온통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장민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꽤 잘해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때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도련님, 제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사모님께서는 전처럼 커피를 사러 나가셨는데 돌아오시는 길에 넘어지신 것 같아요. 일단 친구 분의 방법대로 임시 처치를 마친 상태이고 지금 안정을 많이 되찾으셨어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고심옥은 안방의 침대에 누워있었고 오른쪽 얼굴에는 큰 흉터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 당시 정실 부인이 남긴 것으로 보였다. “좀 어때요?” 고심옥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장민호를 보지 못했기에 그녀는 장민호가 원래 이렇게 생긴 줄 알
장민호는 지아를 바깥의 거리까지 데려다 주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두 사람의 몸을 스치고 있었다. 이때 지아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연고는 제가 내일 아침 퀵으로 보내 드릴게요. 민호 씨...” 지아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무언가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앞으로 더 이상 만나지 말아요.” “왜요?” 장민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아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저 두려워서요.” 장민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뭐가 두려운 거죠?” “그러니까 저는...” 지아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이때 차량 한 대대가 지아 앞에 멈췄고 그제야 그녀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가 민호 씨를 좋아하게 될까 봐서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가볼게요.” 지아는 부랴부랴 차에 탔고 엄청난 속도로 떠나 버렸다. 장민호는 그대로 멍하니 눈밭에 서서 지아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머릿속은 온통 새하얘졌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날 좋아한다고?’ ‘그녀의 집안을 부숴버린 나 같은 쓰레기가 뭐가 좋다고?’ 하지만 장민호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왔다. 장민호는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그의 몸에 우수수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이 집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지아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품에 안겼고 도윤은 그녀의 귀를 깨물며 물었다.“또 사람 꼬시러 간 거야?” 그녀는 귀걸이를 뺐고 두 손으로 도윤의 목을 감싸 안아 입을 맞추었다. “화 났어?” “어떨 것 같은데?” “그냥 장민호 어머니의 병을 봐주러 그의 집에 간 것뿐이야. 이제 한 단계만 있으면 그는 날 완전히 사랑하게 될 거야.” 지아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도윤, 이제 장민호가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무슨 표정을 지을까? 난 그가 강미연의 무덤 앞에서 무릎 끓고 후회할 모습이 벌써 너무 기대돼.” “죄악을 저지른 자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도윤은 지아가 이틀 동안 휴가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자신도 하루 휴가를 냈다. 두 사람은 꼭 안은 채 단잠에 빠졌고 지아가 눈을 떴을 때는 도윤이 곁에서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안 바빠?” “네가 오늘 휴가인 걸 알고 미리 오늘 우리의 일정을 안배해 두었지. 다 잤어?” “응, 무슨 일정?” “서프라이즈야.” 지아는 도윤이 도대체 뭘 준비한 건지는 몰랐지만 일단 준비를 마친 뒤 함께 헬기에 탔다. 헬기는 약 2시간에 거쳐 한 섬에 도착했다. “여기서 휴가를 보내자는 거야?” “아니.” 도윤은 지아의 손을 잡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숲 속에서는 총소리가 들려왔고 도윤은 그녀를 데리고 한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아는 곧바로 도윤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는데 한 아이가 숲속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그건 바로 지윤이었다. 지윤을 발견한 지아는 순간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윤이야.” “오늘 훈련이 끝나는 날이야. 네가 계속 지윤이 어떻게 지내는 지 물어보길래 어떻게 지내는 지 보여주려고 널 여기 데려온 거야.” “지윤은 아주 훌륭해. 이번 야외 훈련에서 또 1등을 했어. 조금 있다가 네가 가서 그 애에게 시상을 해줘.”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지아는 지윤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지윤은 키가 훌쩍 커버렸는데 분명 아직 9살도 안 되는 아이가 170m가 거의 되어 보였다. 지아는 꿈 속에서 지윤을 자주 보곤 했는데 매번 볼 때마다 그는 눈밭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반나절이 지난 후 모든 사람들이 숲속에서 나왔고 지아는 지윤 곁에 있는 아이들이 바로 전에 그를 괴롭히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의외인 것은 몇 년 사이에 그 아이들이 전부 지윤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지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굴복한 모양이다. 도윤은 지아에게 가면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가자, 아들에게 시상할 차례야.”지아는 한 손에는 훈장을,
지윤은 지아의 품에 안긴 채 눈물을 흘렸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엄마야? 엄마!” 지아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아이를 안은 채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이제야 보러 왔어.” “엄마, 엄마가 나 버린 줄 알았잖아요. 이 섬에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고요.” 매년 벚꽃이 필 때마다 지윤은 섬에 가곤 했고 벚꽃이 만개할 때부터 질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도 지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윤은 줄곧 도윤에게서 엄마를 찾지 못했단 소식만 들었고 한 해 또 한 해가 반복될 록 지윤은 설마 엄마가 자신을 버렸기에 보러 오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미안해. 이렇게 오랫동안 보러 오지 않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어떻게 내 새끼를 버렸을 리 있겠어?” 만약 지윤이 맏아들만 아니었다면 지아도 자신이 이 아이를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윤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울지 마, 엄마는 영원히 널 사랑해.” 분명 훌쩍 커버린 지윤이었지만 울 때는 여전히 아이 같았다. “우리 지윤이 키가 이제 엄마와 비슷해졌네. 시간 참 빨라.” “아빠가 말하길 엄마가 아프셔서 멀리 치료하러 가야 한다고 했는데 다 나았어요?”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위험한 고비는 이제 다 넘겼어. 엄마가 네 몸 좀 봐도 될까?” 지윤은 여전히 망설였지만 지아는 순식간에 그의 옷을 벗겼고 지윤이 몸에는 여러 군데의 상처가 있긴 했지만 다행히 전부 치명상은 아니었다. “엄마, 걱정 마세요. 아빠가 절 위험한 곳으로 보내진 않아요. 단지 훈련을 열심히 하라고 할 뿐이죠. 그래야 커서 엄마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지윤은 자신의 근육을 보여주며 말했다. “보세요, 저도 이제 남자라고요.” “우리 아들 제일 멋져.” 지아는 이렇게 건강하게 큰 아들을 보면서 아주 기뻤다. “엄마, 아빠가 말하길 여동생 한 명 더 나았다면서요? 눈은 초록색이고요.” 지아는 핸드폰 안의 무무의 사진을 지윤에게 보여주
다음날, 지아는 퀵으로 고심옥에게 연고를 보냈고 자신은 부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이틀 동안 부씨 가문은 꽤 조용했다. 미셸은 하용에게 이끌려 다녔는데 비록 그녀는 하용이 죽도록 싫었지만 부모님과 한 약속이 있었기에 억지로 하용과 협조할 수밖에 없었고 이틀 동안 줄곧 밖에서 그와 데이트를 했다. 미셸이 없는 부씨 가문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왔느냐? 여기 내가 쓴 글을 좀 보거라.” 부남진이 지아를 향해 손짓했다. 지아는 웃으며 다가갔고 주동적으로 먹을 갈며 입을 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것이 각하께서 글을 이렇게 잘 쓰시는 보니 분명 그림도 잘 그리시겠죠?’ 부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좀 그릴 줄 안단다.” “각하, 정신 상태도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다 네 덕분이지.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을 하련다. 안전을 위해 네가 내 곁에 있어줄 수 있겠지?” “전에 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적 있는데 전 상관없습니다. 각하의 부상이 다 낫기 전까지 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다행이야. 얘야, 네가 이틀 동안 없으니 꽤 그립더구나.” 지아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각하께서는 제가 옆에서 말동무를 해드리는 게 익숙해진 게 아닐까요?” “그런 것 같구나. 내 지위가 높다 보니 나를 쫓아다니며 아부하는 사람은 적지 않아.”“하지만 난 내 베갯머리에 함께인 자와도 할 말이 없어진 지 오랜데 네가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내가 몇 마디 할 수 있으니 말이야.” 지아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그러다 제가 정 들어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 “얘야, 너 정말 꼭 가야 하는 거냐? 네가 남을 수만 있다면 난 어떤 조건이든 다 만족시켜줄 수 있어.” “할아버지의 부상이 다 나으면 저에겐 남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이해 부탁드릴게요.” 지아가 장난스레 말했다. “전 아직 젊은데 벌써 한 곳에만 평생 머무르고 싶진 않아요. 넓고 큰 세상을 구경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도움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