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연주는 자신의 아들딸이 춤 파트너를 찾지 못한 모습에 속이 탔다. 분명 자신의 아들딸을 위해 준비된 자리였건만 둘 중 누구 하나 제대로 민연주의 뜻대로 구는 이가 없었다. 이에 민연주가 직접 나섰다. 음악이 끝난 뒤 도윤은 매우 아쉬워하며 지아를 놔주었고 이때 민연주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번에 우리 집 바깥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다 도윤이와 바네사 씨 두 사람 덕분이야. 내가 두 사람에게 한잔 올리지.” “사모님, 이건 제가 응당 했어야 할 일입니다. 은사님의 위해 나서고 고충을 해결하는 건 제 본직이니 말입니다.” “넌 참 너무 겸손해서 탈이야. 이 잔은 둘 다 무조건 마셔야 해.” 민연주는 시종을 향해 손을 흔들자 얼른 세 잔의 술을 가져왔고 민연주가 먼저 한 잔을 들자 도윤과 지아도 어쩔 수 없이 잔을 들었다. “자, 바네사 씨 전에 우리 딸이 예의 없게 굴었던 건 제가 엄마 노릇을 잘 못한 탓이예요.” “평소에 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버릇이 잘못 들어서는,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대신 사과를 드리죠. 그리고 우리 바깥 사람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사모님,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아는 민연주의 이 말이 분명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충 맞장구를 쳤다. “그럼 오늘부터 지난 날의 나쁜 기억들은 전부 씻어내는 거로 합시다. 짠!” 도윤과 지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잔 안의 술을 비워냈다. 그리고 멀리서 도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미셸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설아 동생, 뭐가 그렇게 기뻐?” 하용이 다가오자 미셸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별 거 아니야. 오빠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사실 미셸도 하용의 타입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계속 미셸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매번 거절당하는 상황에 하용도 슬슬 화가 났다. “설아 동생, 왜 다른 사람에겐 눈길도 안 주는 거야? 내가 널 좋아한 지도 여러 해가 되었는데 넌 오로지 도윤만 쫓아다니고 있고 말이
도윤은 미셸이 뭘 원하는 지 잘 알고 있었고 방금 민연주가 술을 건넬 때부터 이미 다 눈치를 챘다. 도윤은 속으로 냉소했고 이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 있는 방법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미셸 같은 명문가의 딸이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에 도윤은 약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미셸이 자기만의 계획이 있는 것처럼 도윤 또한 그만의 방법이 있었다. 이때 미셸과 함께 걸어가던 도윤은 걸음을 멈췄고 이에 미셸이 물었다. “왜 그래?” “나 핸드폰을 방금 연회장의 소파에 두고 온 것 같아.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좀 있다가 찾으러 갈게.” 미셸은 썩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오빠가 다시 안 오면 어떻게 해?” 그러자 도윤이 되물었다. “네가 지아에 관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안 가겠어? 그녀는 나에게 있어 전부야.’ 도윤의 이 말을 들은 미셸은 마음이 약간 씁쓸했지만 다시 돌아올 거란 그의 말에 안심을 했다. “그럼 방에서 기다릴게.” “응.” 도윤이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그는 온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약효과가 올라온 것이다.그렇지만 민연주가 건넨 그 술이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마신 도윤에겐 그만의 해결방법이 있었다. 이때 미셸은 잠시 후 도윤이 다시 올 거란 생각에 너무 흥분되어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고 얼른 방으로 달려가 섹시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게다가 미셸은 자신의 모습을 본 도윤이 놀라 도망칠 까봐 방 안의 불까지 꺼버렸다. 암흑 속에서 술기운과 약기운이 더해진 도윤이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달려들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일단 내일 날이 밝게 되면 모든 것은 미셸의 원하는 대로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생각에 미셸은 저절로 웃음이 났다. 드디어 그녀가 바라고 바라던 그 날이 온 것이다. 심지어 미셸은 격동한 나머지 약간 눈물까지 나려고 했는데 몇 년에 거친 도윤에 대한 짝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을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미셸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고 도윤이 들어오기
먼저 방으로 돌아온 지아는 몸이 약간 불편하다고 느꼈고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온몸에 맴돌았다. ‘설마 아까 술에 약이라도 탄 걸까?’ 잠시 생각에 잠긴 지아는 방금 민연주가 건넨 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민연주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 이런 추잡한 수작을 부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정말 미셸을 도윤과 결혼시키기 위해 체면 따윈 다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아는 욕조에 물을 받았고 반신욕으로 몸 안의 뜨거운 그 기운을 가시려고 했다. 하지만 욕조의 물이 뜨거운 탓인 건지 지아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수록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지아는 몸을 일으켜 샤워 가운을 걸쳤고 스스로 주사를 놓아 약효를 가시려 했다. 그리고 도윤과 자신이 동시에 술잔을 받고 민연주가 첫 잔을 가져갔던 장면을 떠올렸다. 분명 민연주가 든 첫 잔은 약을 타지 않았을 것이고 100%의 성공률을 위해 나머지 두 잔에 모두 약을 탄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도윤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괴로울 게 분명했다. 민연주의 목적은 도윤과 미셸을 이어놓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럼 지금 도윤은 어디 있는 거지?” 똑똑똑-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지아가 경계하듯 물었다. 그래도 손님인 자신에게 민연주가 설마 수작을 부렸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지아의 귀에 꽂혔다. 이 목소리는 의외이면서도 또 그렇지 않았다. 지아가 문을 열며 말했다. “네가 어떻게?” 하지만 지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윤은 그녀를 안아 벽으로 밀쳤고 곧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도윤의 숨소리가 지아의 목덜미에 느껴졌는데 그의 숨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거칠었다. 역시 도윤도 방금 민연주가 건넨 술의 약효가 올라온 게 틀림없었다. “지아, 너 냄새 엄청 좋아.” 방금까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냄새가 안 좋을 리가? “너 괜찮아
부장경은 목소리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말했다. “정말 괜찮으신 거 확실하시죠?” “부 선생님, 전 의사예요. 제 몸은 제가 가장 잘 알아요. 걱정 마십시오. 날이 추우니 얼른 돌아가세요.” 그렇게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나서야 도윤은 지아의 어깨에 툭 기댄 채 말했다. “부장경이 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동료로 함께 해온 도윤은 한 눈에 부장경이 지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지아는 그럴 가능성이 극히 적다고 생각했고 단지 부장경이 자신에 대해 너무 신경을 많이 쓴다고만 여겼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도대체 이성의 감정인지 아니면 감격의 마음인지 잠시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도윤은 바로 지아를 번쩍 안아 침대로 향했다. “지아, 넌 아직도 이렇게 순진하네. 이 세상에 아무 이유도 없이 잘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잘해주는 건 이성의 감정 말곤 절대 아무것도 없어.” 이때 베개에 곱게 흐트러진 지아의 머리를 보던 도윤은 냉큼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넌 내 꺼야. 오직 나 한 사람 것이란 말이지.” 이날 밤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었다. 민연주는 부남진 앞에 물을 떠오더니 지아가 만든 약재들을 넣고 그의 발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여보, 날을 계산해보니 우리가 안 지도 수십 년이 다 되어 가네. 몇 년간 그 많은 풍파들을 함께 겪었는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빨라.” 부남진은 민연주의 턱을 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난 이젠 늙었어.” 민연주는 원래도 부남진보다 열 몇 살 어렸는데 줄곧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부남진은 근 몇 년간 더욱 빨리 늙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반대로 민여주는 매일 집에서 얼굴을 가꾸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얼굴만 보면 부부보다는 부녀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민연주는 부남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나 늙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내가 당신에게 시집온 건 내 평생에서
아직 부남진이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기에 이 충격은 너무 세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민연주의 얼굴에는 서서히 빨갛게 손바닥 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신이 날 때려? 감히 날? 이 모든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 때문이잖아!” 민연주는 눈물을 흘리며 불쌍하게 말했다. “나도 당신이 줄곧 도윤 그 아이를 좋게 보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당시 그 아이는 너무 강했고 우리 아들은 줄곧 밖에서 돌고 있었으니 당신이 하용이를 채용한 거겠지.” “지금까지 당신이 도윤이에 대한 감정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그런데 만약 그를 우리 사위로 삼을 수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 되잖아.” “그러니 이건 단지 내가 설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안과 두 가문을 모두 위한 일이야. 더 나아가서는 우리 후대 자손을 위해서이기도 해.” “하지만 당신, 수단이 너무 비열하잖아. 내일 도윤이가 우릴 어떻게 생각 하겠어?” “어떻게 생각해? 우리 딸을 이미 결혼 한 번 해본 사람에게 주는 것도 아까운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우릴 마다해?” 부남진은 차를 한 잔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더니 말했다. “그래도 당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여보, 당신이 이런 방법 싫어한다는 거 알아. 확실히 이런 수단이 정당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이거 말고 다른 방법 있어?” “일이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 여보, 우리 이젠 같은 배를 탄 사이라고.” 민연주는 부남진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보, 모든 후폭풍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내 뜻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기만 하면 돼.” “난 당신의 이런 수단은 영원히 인정하고 지지할 수 없어.” 부남진은 몸을 일으키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민연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도윤이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아이였으면 내가 이렇게 몇 년을 낭비하지도 않았겠지.” “무슨 뜻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단지 이 일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
똑똑똑- 시종이 방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에서는 미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악! 너가 왜 여기 있어!” 민연주는 미셸이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얼른 방 안으로 쳐들어갔다. “설아, 무슨 일이야?” 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미셸은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눈물을 머금은 채 이곳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남자를 짚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너가 왜 여기 있어!” 부장경은 유일하게 모든 내막을 모르는 자였기에 일시에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때 부남진은 어두운 얼굴로 원래 도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난 하용을 보면서 예상 밖이기도 또 예상했던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정말 도윤이 그렇게 순순히 속아넘어갔다면 그건 정말 너무 지루한 전개였을 것이다. 민연주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은 하용을 보면서 미셸보다 더욱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부장경은 곧장 달려들어 하용의 얼굴을 내리쳤다. “네가 어떻게 내 동생 방에 있어!” 그러자 하용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젯밤 설아 동생이 저에게 할 말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왔는데 방에 들어와보니 불은 꺼져 있었고 설아 동생이 저에게 덮쳤습니다. 저에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당시 저도 술을 많이 마셔 머리가 어지러웠고 더군다나 전 몇 년 동안 설아 동생을 짝사랑해왔던 지라 순간 참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미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난 널 부른 적 없어. 네가 혼자서 들어온 거잖아!” “설아 동생, 그럼 내가 널 강제로 그랬단 말이야?” “은사님, 사모님, 여긴 부씨 가문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곳에서 그런 일을 벌이겠습까? 만일 설아 동생이 원한 게 아니었다면 전 절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퍽- 미셸은 하용의 뺨을 때렸다. “헛소리하지 마. 다 네가 계획한 일이면서!” 부장경은 격동했던 감정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땅에 흐트러진 옷과 엉망이 된 방 안을 보면서
미셸은 하용의 몸을 미친 듯이 때렸고 자신이 당했다며 엉엉 울었다. 하용은 미셸의 구타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녀가 계속 때리도록 두었다. 한편 부남진은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했던 것 같았다. 부남진은 도윤이 이 함정에 당연히 넘어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반면, 하용이 감히 겁도 없이 부씨 가문에서 자신의 딸을 건드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하필 미셸이 주동적으로 원한 거고 하용은 피동적인 쪽이었으니 말이다. “각하,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제가 설아 동생을 책임지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셸은 더욱 미칠 지경이었고 하용에게 버럭 화를 냈다. “뭐라고? 누가 너 책임지래?” “설아 동생, 나 하용은 남자로서 절대 그런 무정한 인간이 아니야.” 미셸은 더욱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고 하용 얼굴을 또 한번 후려쳤다. “그만 해!” 부남진이 참다 못해 소리쳤다. “옷부터 제대로 입고 말해.” 미셸은 눈물 범벅이 되어 고개를 돌렸고 마침 자신을 구경하던 지아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베개를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미친년, 누가 너 구경 하라고 했어. 꺼져!” 이때 팔짱을 끼고 있던 지아는 바로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며 미셸이 뿌린 베개를 피했다. 그리고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설아 아가씨의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그런데 무슨 일 났나요? 혹시 제가 도울 건 없어요?” 미셸은 지아의 이 말이 전혀 진심이 아니고 자신의 웃음거리를 대놓고 구경하러 온 거라고 생각했다. “꺼져!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으니까.” 이에 부장경이 미셸을 향해 소리쳤다. “닥쳐!” 부장경은 미안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집안에 일이 좀 생겼어요. 못 볼 꼴 보이네요.” 지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각하, 아직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으니 절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이때의 부남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부씨 가문에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했고 완전히 하용의 손에 놀아
지아도 부남진과 한 식탁에 마주 앉았고 뜨끈한 국수를 먹고 난 뒤 몸은 한결 따뜻해졌다. “지금 기분 좀 나아지셨나요? 아직이시면 한 그릇 더 하셔도 돼요.” 지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에 부남진은 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사람 위로하는 방식도 참 특이하구나.” “설아 아가씨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 할아버지께서 몸이 상하지 않길 바랄 뿐이예요.” 부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아는 이미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를 챘다. 역시 지아는 똑똑했다. “얘아, 네 능력은 의술뿐이 아닌 것 같구나. 내 곁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 부남진이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자 지아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전 여러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더 적성에 맞아요. 할아버지가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전 아마 떠날 거예요.” “참, 전 이제 약 좀 지으러 가볼게요. 밖에 설아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부진남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는 지아를 보면서 그녀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저 아이 참 인재라니까!’ 일행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셸의 두 눈은 새빨개져 있었고 하용의 얼굴에는 미셸이 때린 흔적들이 가득했다. 민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고 부장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장경은 처음부터 하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전에 암살 사건 또한 명확하게 밝혀진 게 아니었기에 더욱 찜찜한 마음이 컸다.만일 도윤과 하용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이라면 부장경은 하용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때문에 하용을 자신의 매부로 들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미셸이 이런 일을 벌였으니 늘 차갑던 부장경은 더더욱 아무 말도 안하고 싸늘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민연주 또한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후회되었고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자신의 딸을 계획에도 없던 이에게 주게 생겼으니 말이다. 부남진은 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