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경은 목소리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말했다. “정말 괜찮으신 거 확실하시죠?” “부 선생님, 전 의사예요. 제 몸은 제가 가장 잘 알아요. 걱정 마십시오. 날이 추우니 얼른 돌아가세요.” 그렇게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나서야 도윤은 지아의 어깨에 툭 기댄 채 말했다. “부장경이 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동료로 함께 해온 도윤은 한 눈에 부장경이 지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지아는 그럴 가능성이 극히 적다고 생각했고 단지 부장경이 자신에 대해 너무 신경을 많이 쓴다고만 여겼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도대체 이성의 감정인지 아니면 감격의 마음인지 잠시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도윤은 바로 지아를 번쩍 안아 침대로 향했다. “지아, 넌 아직도 이렇게 순진하네. 이 세상에 아무 이유도 없이 잘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잘해주는 건 이성의 감정 말곤 절대 아무것도 없어.” 이때 베개에 곱게 흐트러진 지아의 머리를 보던 도윤은 냉큼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넌 내 꺼야. 오직 나 한 사람 것이란 말이지.” 이날 밤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었다. 민연주는 부남진 앞에 물을 떠오더니 지아가 만든 약재들을 넣고 그의 발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여보, 날을 계산해보니 우리가 안 지도 수십 년이 다 되어 가네. 몇 년간 그 많은 풍파들을 함께 겪었는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빨라.” 부남진은 민연주의 턱을 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난 이젠 늙었어.” 민연주는 원래도 부남진보다 열 몇 살 어렸는데 줄곧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부남진은 근 몇 년간 더욱 빨리 늙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반대로 민여주는 매일 집에서 얼굴을 가꾸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얼굴만 보면 부부보다는 부녀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민연주는 부남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나 늙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내가 당신에게 시집온 건 내 평생에서
아직 부남진이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기에 이 충격은 너무 세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민연주의 얼굴에는 서서히 빨갛게 손바닥 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신이 날 때려? 감히 날? 이 모든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 때문이잖아!” 민연주는 눈물을 흘리며 불쌍하게 말했다. “나도 당신이 줄곧 도윤 그 아이를 좋게 보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당시 그 아이는 너무 강했고 우리 아들은 줄곧 밖에서 돌고 있었으니 당신이 하용이를 채용한 거겠지.” “지금까지 당신이 도윤이에 대한 감정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그런데 만약 그를 우리 사위로 삼을 수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 되잖아.” “그러니 이건 단지 내가 설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안과 두 가문을 모두 위한 일이야. 더 나아가서는 우리 후대 자손을 위해서이기도 해.” “하지만 당신, 수단이 너무 비열하잖아. 내일 도윤이가 우릴 어떻게 생각 하겠어?” “어떻게 생각해? 우리 딸을 이미 결혼 한 번 해본 사람에게 주는 것도 아까운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우릴 마다해?” 부남진은 차를 한 잔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더니 말했다. “그래도 당신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여보, 당신이 이런 방법 싫어한다는 거 알아. 확실히 이런 수단이 정당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이거 말고 다른 방법 있어?” “일이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 여보, 우리 이젠 같은 배를 탄 사이라고.” 민연주는 부남진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보, 모든 후폭풍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내 뜻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기만 하면 돼.” “난 당신의 이런 수단은 영원히 인정하고 지지할 수 없어.” 부남진은 몸을 일으키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민연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도윤이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아이였으면 내가 이렇게 몇 년을 낭비하지도 않았겠지.” “무슨 뜻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단지 이 일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
똑똑똑- 시종이 방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에서는 미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악! 너가 왜 여기 있어!” 민연주는 미셸이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얼른 방 안으로 쳐들어갔다. “설아, 무슨 일이야?” 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 미셸은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눈물을 머금은 채 이곳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남자를 짚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너가 왜 여기 있어!” 부장경은 유일하게 모든 내막을 모르는 자였기에 일시에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때 부남진은 어두운 얼굴로 원래 도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난 하용을 보면서 예상 밖이기도 또 예상했던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정말 도윤이 그렇게 순순히 속아넘어갔다면 그건 정말 너무 지루한 전개였을 것이다. 민연주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은 하용을 보면서 미셸보다 더욱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부장경은 곧장 달려들어 하용의 얼굴을 내리쳤다. “네가 어떻게 내 동생 방에 있어!” 그러자 하용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젯밤 설아 동생이 저에게 할 말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왔는데 방에 들어와보니 불은 꺼져 있었고 설아 동생이 저에게 덮쳤습니다. 저에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당시 저도 술을 많이 마셔 머리가 어지러웠고 더군다나 전 몇 년 동안 설아 동생을 짝사랑해왔던 지라 순간 참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미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난 널 부른 적 없어. 네가 혼자서 들어온 거잖아!” “설아 동생, 그럼 내가 널 강제로 그랬단 말이야?” “은사님, 사모님, 여긴 부씨 가문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곳에서 그런 일을 벌이겠습까? 만일 설아 동생이 원한 게 아니었다면 전 절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퍽- 미셸은 하용의 뺨을 때렸다. “헛소리하지 마. 다 네가 계획한 일이면서!” 부장경은 격동했던 감정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땅에 흐트러진 옷과 엉망이 된 방 안을 보면서
미셸은 하용의 몸을 미친 듯이 때렸고 자신이 당했다며 엉엉 울었다. 하용은 미셸의 구타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녀가 계속 때리도록 두었다. 한편 부남진은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했던 것 같았다. 부남진은 도윤이 이 함정에 당연히 넘어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반면, 하용이 감히 겁도 없이 부씨 가문에서 자신의 딸을 건드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하필 미셸이 주동적으로 원한 거고 하용은 피동적인 쪽이었으니 말이다. “각하,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제가 설아 동생을 책임지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셸은 더욱 미칠 지경이었고 하용에게 버럭 화를 냈다. “뭐라고? 누가 너 책임지래?” “설아 동생, 나 하용은 남자로서 절대 그런 무정한 인간이 아니야.” 미셸은 더욱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고 하용 얼굴을 또 한번 후려쳤다. “그만 해!” 부남진이 참다 못해 소리쳤다. “옷부터 제대로 입고 말해.” 미셸은 눈물 범벅이 되어 고개를 돌렸고 마침 자신을 구경하던 지아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베개를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미친년, 누가 너 구경 하라고 했어. 꺼져!” 이때 팔짱을 끼고 있던 지아는 바로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며 미셸이 뿌린 베개를 피했다. 그리고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설아 아가씨의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그런데 무슨 일 났나요? 혹시 제가 도울 건 없어요?” 미셸은 지아의 이 말이 전혀 진심이 아니고 자신의 웃음거리를 대놓고 구경하러 온 거라고 생각했다. “꺼져!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으니까.” 이에 부장경이 미셸을 향해 소리쳤다. “닥쳐!” 부장경은 미안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집안에 일이 좀 생겼어요. 못 볼 꼴 보이네요.” 지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각하, 아직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으니 절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이때의 부남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부씨 가문에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했고 완전히 하용의 손에 놀아
지아도 부남진과 한 식탁에 마주 앉았고 뜨끈한 국수를 먹고 난 뒤 몸은 한결 따뜻해졌다. “지금 기분 좀 나아지셨나요? 아직이시면 한 그릇 더 하셔도 돼요.” 지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에 부남진은 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사람 위로하는 방식도 참 특이하구나.” “설아 아가씨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 할아버지께서 몸이 상하지 않길 바랄 뿐이예요.” 부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아는 이미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를 챘다. 역시 지아는 똑똑했다. “얘아, 네 능력은 의술뿐이 아닌 것 같구나. 내 곁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 부남진이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자 지아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전 여러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더 적성에 맞아요. 할아버지가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전 아마 떠날 거예요.” “참, 전 이제 약 좀 지으러 가볼게요. 밖에 설아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부진남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는 지아를 보면서 그녀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저 아이 참 인재라니까!’ 일행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셸의 두 눈은 새빨개져 있었고 하용의 얼굴에는 미셸이 때린 흔적들이 가득했다. 민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고 부장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장경은 처음부터 하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전에 암살 사건 또한 명확하게 밝혀진 게 아니었기에 더욱 찜찜한 마음이 컸다.만일 도윤과 하용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이라면 부장경은 하용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때문에 하용을 자신의 매부로 들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미셸이 이런 일을 벌였으니 늘 차갑던 부장경은 더더욱 아무 말도 안하고 싸늘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민연주 또한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후회되었고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자신의 딸을 계획에도 없던 이에게 주게 생겼으니 말이다. 부남진은 찻
민연주는 이를 악물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에게 이런 식으로 당하다니, 이번 일은 아마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용은 처음부터 자신이 꾸민 일임에도 전부 다 실수였던 척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미셸은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부남진과 부장경은 비록 모든 것이 다 하용의 꾀임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가 집안 어른들까지 끌어 들인 이상 절대 쉽게 넘어갈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게 분명했다. 만일 오늘 부남진이 혼사를 거절하면 이 일은 널리 소문날 게 분명했고 그러면 미셸의 명예조차 완전히 망가지는 것이었다. 미셸의 명예를 둘째 치고 더 중요한 부씨 가문의 명예까지 말이다. 때문에 하용의 짠 이 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응접실로 가자. 손님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잖아.” 부남진이 몸을 일으켰고 하용이 뒤따랐다.미셸은 부장경의 손을 잡은 채 애원했다. “오빠, 살려줘. 제발 살려줘. 이제 날 살려줄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 “네가 널 살려? 어젯밤 일은 어떻게 해명할 건데? 너 저 자식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왜 아무런 거부도 하지 않았는데?” 이건 부장경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미셸이 원했던 게 아니고 강제로 당한 것임을 걸 증명할 수만 있어도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자 미셸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너 계속 이런 식으로 꾸물대면 내가 도대체 널 어떻게 도와?” 이에 미셸은 부장경의 귓가에 대고 어젯밤 일의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했고 듣고 난 부장경의 안색은 크게 어두워졌다. “너 정말! 어떻게 그런 방법을 쓸 수 있어? 도윤이 대체 어떤 사람인 지 아직도 몰라?” “약을 타는 것도 너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한테나 먹히는 거야. 너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는 절대 널 다칠 리 없는 거고 말이야.” “오빠, 이제 잘못한 거 알아. 그런데 일이 이 지경까지 됐으니 나 이제 어떻게 해?” 부장경은 긴 한숨을 내쉬며
미셸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필경 그녀가 어젯밤 도윤에게 하려던 짓이 들통나면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윤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설마 너희 무슨 사고라도 쳤어?” “난, 난 당시 그인 줄 몰랐어. 오빠가 온 줄 알았다고!” 미셸은 눈을 딱 감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만일 내가 어젯밤 갔다면 오늘 이 상황의 주인공은 나겠네?” 미셸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랐고 침묵했다. 이때 도윤이 냉랭하게 말했다. “어쩐지 어제 내 몸이 약간 이상하더니, 게다가 넌 지아의 소식으로 날 유혹했고 말이야. 설마 어제 그 술에 약이라도 탔던 거야?” “도윤 오빠, 이건 다 내가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야. 그런데 오빠가 계속 날 받아주지 않으니 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네 오늘이 바로 다행히 발생하지 않은 내 미래였네. 이제 만족해?” 미셸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 말했다. “나도 알아. 전부 내 잘못이야.” “하용도 아마 너에게 사과를 했겠지? 그런데 소용 있었어?” 도윤이 냉소했다. “만일 소용 있었다면 네가 울면서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겠지. 부설아, 이 세상엔 자신이 하기 싫은 건 남에게도 강요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어.” “네가 날 속이려 할 때 그게 나에게 불공평하다는 건 생각 안 해봤어?” 미셸은 너무 운 나머지 숨이 찰 지경이었다. “나 지금 미치도록 후회해. 그러니까 도윤 오빠 나 좀 살려줘.” “부설아, 네가 벌인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게다가 내가 미쳤어? 내가 멍청한 것도 아니고 날 속으려던 사람을 내가 왜 도와야 하는데?” 도윤의 싸늘한 목소리가 미셸의 귓가에 꽂혔다. “너희들 결혼식에 선물은 섭섭치 않게 할게. 미리 결혼 축하해.” 그렇게 전화는 끊겼고 미셸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안 돼!” 미셸은 뼈 속 깊이 후회가 되었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도윤의 품 속에 있던 지아가 물었다. “너 하용이 손을 쓸 거라는
도윤은 지아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은 채 말았다. “지아,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이씨 가문의 재력은 몇 대가 놀고먹어도 충분해. 그리고 권력이라면 난 저 머리 위의 하늘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두려울 없어. 하용이 애를 쓰며 탐 내는 것들이 나에겐 아무런 매력도 없다는 말이야.” “나에게 권력은 오로지 이씨 가문과 널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니까. 미셸이 아니어도 나에겐 다른 방법은 많아. 그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너 하나뿐이야.” 도윤은 지아의 귓가에 한번 또 한번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니까 지아, 날 더 이상 쫓아내지 마. 넌 내 전부야.” 이에 지아는 도윤의 딱밤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아이고, 제발 진정 좀 해. 여긴 부씨 가문이야. 네가 내 방에 있는 게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네가 지금 날 쫓아내면 그건 바로 내가 어젯밤 부씨 가문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셈인 거야.” 지아가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 “밤이 어두워지면 내가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를 통해 알아서 나갈게.” “밖에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는데?” “나에게 방법이 있어.” 지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지아, 나 지금 배가 무지 고파.” “뭐 좀 먹을래? 내가 주방 가서 만들어 올게.” 이때 도윤은 지아를 소파에 눕히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해결해.” 응접실 안. 하용의 전화 한 통으로 올해 85세인 하씨 가문의 큰 어르신까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고 주위에는 하용의 둘째 삼촌, 셋째 삼촌을 포함한 많은 어른들이 수두룩했다. 하씨 가문은 원래도 정계 쪽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하용의 할아버지는 부남진의 전 상사이기도 했다. 부남진은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그게 다른 누구였을 지라도 절대 남이 짠 판에 속수무책으로 질질 끌려가는 기분은 아주 별로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부남진은 억지 미소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그를 본 하씨 큰 어르신은 바로 몸을 일으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