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는 서둘러 말했다.“미안해요, 그냥 무심코 물어본 거예요.”장경 역시 싸늘한 기운을 거두어들였다.“제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그 후 두 사람은 다시는 말하지 않았고, 지아는 처음 결혼했을 당시의 도윤보다 더 꼿꼿한 남자의 뒤를 얌전히 따랐다.무서운 사람이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심지어 차에서 내릴 때는 직접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춥고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요.”장경의 눈에 여자는 늘 약한 존재였기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바르면서도 선을 그었다.돌아온 지아를 보자 부남진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다시 나타났다.“얘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지난번에 만들어 주기로 한 대추 앙금 케이크도 안 만들어줬잖아.”지아는 미소를 지었다.“그럼 지금 만들러 갈게요.”“서두를 거 없어,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으니까 좀 쉬면서 차나 끓여줘.”“알았어요.”민연주의 시선이 지아에게 향했다. 늘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고 거리를 두는 부남진도 유독 이 의사만은 다르게 대했다.처음에는 부남진을 죽음에서 살려준 지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곧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이 부자는 정체불명의 여자에게 너무 관대했고 심지어 부남진은 무척 의지하고 있었다.지아가 떠난 후 이틀 동안 부남진의 식욕이 현저히 떨어졌고, 자신이 직접 만들어준 약식도 지아가 만들어준 것과 맛이 다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여자로서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나.특히 장경은 아직 미혼인데 부남진이 자칫 잘못해서 이 여자를 장경과 결혼시키면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했다.그래도 민연주는 미셸보다 나이가 많아서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지아가 돌아왔을 때도 매우 열성적이었다.“당신도 참, 이제 막 집에 왔는데 일단 쉬게 해야지 차를 끓여달라니요. 그건 제가 할게요, 제 전문이니까.”지아도 더 나서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는 저녁 약식 준비하러 갈게요. 그리고 각하의 검진 결과지를 보고 몸 상태에 따라 약
부남진은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결혼이 무슨 밥 먹는 건 줄 알아?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 상해도 기껏해야 설사 몇 번 하면 괜찮지만 도윤이가 싫다는데 억지로 둘을 붙여놨다가 애정 없는 결혼에서 결국 속상한 건 우리 딸이야. 그래서 지금까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은 거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집착을 버릴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감정을 쏟은 것 같아.”민연주는 조금 화가 난 듯 침대에 앉았다.“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우리 딸은 어려서부터 보배처럼 귀하게 자랐는데 이제 와서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는데 그럼 어떡해요?”“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이혼남이랑 결혼해?”부남진은 더 깊이 생각했다.“결혼을 몇 번 하든 우리 딸이 좋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이 이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내 방식대로 할 거예요.”민연주가 결심을 굳히자 부남진은 불쾌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도대체 뭘 그렇게 서둘러?”“엄마로서 뭘 서두르겠어요? 당신 딸도 이제 20대인데, 이대로 뒀다가 남들 농담거리로 만들 생각이에요?”부남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도윤이와 다시 얘기해 볼게.”“알았어요.”불쾌함이 가득한 부남진의 얼굴을 본 민연주는 다시 자세를 부드럽게 고쳐 앉았다.“여보, 나는 우리 딸 위해서 그러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건 과부와 뭐가 달라요. 똑같이 불행하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낫죠.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그리고 예전에는 다 집에서 맺어준 사람과 결혼하지 어디 자기 좋아하는 사람이랑 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도 다 결혼하고 감정 키운 거잖아요.”“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 도윤이한테 전화해, 내가 얘기해 볼게.”“알았어요.”연락을 받고 온 도윤은 그다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고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남진이 본론을 꺼냈다.“눈 깜짝 할 사이에 너도 이렇게 컸네. 그때 네 결혼식에 참석 못 한 게 한이었어. 넌 내 손으로 키운 애고 네 성격을 잘 아니까
지아의 목소리는 모든 우울함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산들바람 같았고 부남진의 이마 주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부남진은 지금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아는 사람은 눈치껏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심지어 민연주조차도 그가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 감히 다가오지 않았다.지아에게 나가 있다가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가 말했다.“들어와.”문을 열고 들어간 지아는 도윤을 모른 척했다. “이도윤 씨도 오셨네요. 다행히 많이 만들어서 같이 드시면 되겠어요.”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들어온 이 여우가 일부러 자신에게 난처한 상황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연기 실력이 점점 늘고 있다.“전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 각하 쉬시는데 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지아는 대추떡을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놓고 차 테이블로 걸어갔다.“어르신, 어떤 차 마시겠어요?”부남진은 물 흐르듯 차 도구를 닦는 지아의 움직임을 보며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오랜 세월 먼지가 쌓여 있던 과거의 일들이 다시 한번 그의 가슴을 때렸고 그는 더욱 복잡한 표정으로 대추떡 한 조각을 먹었다.대답을 듣지 못한 지아는 서둘러 부남진을 돌아보며 물었다.“어르신?”그제야 부남진은 정신을 차렸다.“미안하다, 내가 잠깐 넋을 잃었어.”고작 그 사람을 닮은 눈을 가진 아이 때문에 이처럼 넋을 잃다니, 아마도 대추떡 맛이 너무 익숙해서 이미 지나간 옛사람이 떠오른 것 같다.“용정차 어때요?”“좋지.”부남진은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지아가 그를 도와주려고 일어나려 하자 손을 들어 지아의 움직임을 막았다.“아니, 내가 알아서 할게.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뼈만 남겠어.”“네,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으시니 젊은 사람 몸도 아니니까 조심하세요.”“얘야, 가족은 있니?”지아는 고개를 저었다.“글쎄요,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르신 안 드세요? 제가 맛없게 만들었나요?”이는 할머님에게
지아는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부남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냐, 먹어.”부남진은 굳이 지아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아무도 없는 틈을 타 지아는 작게 불렀다.“할아버지.”“착하지, 착하지.” 부남진은 손을 들어 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천하를 호령하는 그가 어떻게 지금처럼 친절하고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일 수 있을까.그의 손이 지아의 머리에 닿았을 때 지아도 마음속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가족들과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의외로 마음속에는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며칠 후 부남진은 퇴원했고 이제 그의 전담 주치의가 된 지아는 그를 따라 부씨 가문으로 향했다.호송대가A시 한 정원으로 들어섰고 밖에는 다섯 걸음에 한 명씩 사람들이 서 있었으며 전부 훤칠한 대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지아는 마당에 멈춘 차에서 내려 얼른 다가가 부남진을 부축했다.미셸과 민연주는 뒤에 있는 차에 앉았는데 내리자마자 미셸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저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아빠와 같은 차에 타, 웃겨 진짜.”장경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고 미셸은 전처럼 오만하게 굴지 못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아 역시 못 들은 척 어르신을 도와 부씨 가문으로 들어갔다.들어서자마자 마당에 대추나무 몇 그루가 보였는데 겨울이라 대추가 다 떨어지고 나무줄기에 하얀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마당에 쌓인 눈은 깨끗하게 쓸려 있었고 매실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부씨 가문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풍스러운 건물로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부남진은 옷을 벗어 지아에게 건넸고 옷을 걸 곳을 찾던 지아에게 마침 집사가 다가왔다.“저한테 주세요.”부남진이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와주는데 민연주가 옆에서 지시했다.“특별히 남편 돌봐주러 온 친구야. 오 집사, 부엌 구경 좀 시켜줘.”지아는 민연주가 점점 자신에게 거리감을 두는 것을 느꼈고 마치 잡일을 하러 온 사람 취급했다.지아는 별다
지아는 집사를 올려다보았다.“부씨 저택이 이렇게 큰데 다른 방이 있지 않나요?”“부씨 가문에 손님이 온 적은 드물고 게다가 다른 방도 다 이래요. 오랜 시간 사람이 없어서 다 난방 설비가 고장 났죠. 하룻밤이니까 사람 시켜서 따뜻한 핫팩 가져오라고 할게요. 주무시는데 별로 춥지 않을 거예요.”지아는 오 집사를 향해 담담하게 웃었다.“그래요.”“전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서두를 것 없어요.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오 집사님 방은 어디죠?”“안마당요, 왜요?”“오늘 밤에 방을 바꾸죠, 그쪽이 여기서 자요.”오 집사는 얼굴을 붉혔다.“어떻게 그래요, 그건 너무 불편할 것 같은데요.”“뭐가 불편해요? 내가 그쪽 물건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만 자는 건데 저도 상관없어요. 핫팩은 그쪽이 쓰면 되겠네요. 그러면 별로 춥지 않을 거예요.”지아는 집사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되받아쳤다.“저와 아내가 제 아내가 한방을 쓰니까 불편할 것 같네요.”“그러면 더 편하죠. 아주머니와 전 다 여자니까요. 집사님께서 여기 있는 제 짐 방으로 옮겨주세요.”오 집사는 말문이 막혔다. 만만한 상대인 줄 알았는데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지아는 캐리어를 끌고 문 앞까지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말했다.“집사님처럼 착하신 분이 빈방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시진 않으시겠죠?”“물, 물론이죠!”지아는 오 집사를 향해 달콤한 미소를 드러냈다.“집사님께서 거짓말한 거면 저 어르신한테 절 못되게 대한다고 말씀드릴 거예요.”오 집사는 손등에 핏줄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나는 것을 참으며 억지로 말을 이었다.“아가씨께선 각하를 모시러 왔는데 설마 자기를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쪽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남 시중이나 드는 처지 아닌가요?”“오 집사님은 자신의 주제에 대한 인식이 정말 부족한 것 같네요.”지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첫째, 나는 이 댁 도련님께서 직접 찾아와 달라고 애원했던 전속 주치의로서 어르신 건강만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계약 위반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두렵지 않아?” 오 집사가 다급하게 말하자 지아가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 그 정도 돈은 감당할 수 있으니까.”“가면 안 돼! 난방되는 방을 원하는 거잖아, 바꿔주면 될 거 아니야.”민연주는 지아가 너무 편히 있게 하지 말라고 했을 뿐, 지아를 내쫓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만약 지아가 정말 떠난다면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집사의 속셈을 꿰뚫어 본 지아는 이렇듯 시답잖은 일로 텃세 부리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지아는 팔짱을 낀 채 오 집사를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다고 하더니 간다니까 이제 생겼어? 오 집사 지금 나한테 장난해? 아니면 내가 당신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 같았나?”오 집사는 불쾌한 듯 말했다.“고작 방 하나 가지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정말 자기가 아가씨라도 되는 줄 알아? 머물 곳만 있으면 되지 이것저것 따지기는...”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 인물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고 오 집사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장경은 바람을 일구며 손을 들어 오 집사의 얼굴을 때렸다. “네까짓 게 어디 감히 바네사에게 그런 말을 해?” 오 집사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창백해졌고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도, 도련님!”“어떻게 된 거야?” 장경은 몇 년 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손에 몇 명의 피를 묻혔는지 모른다.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살기 어린 기운에 오 집사는 발도 제대로 디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오 집사는 황급히 말했다.“도련님, 이 아가씨를 위해 좋은 방을 마련해 주었는데 방이 좋지 않다고 까다롭게 굴고 방을 바꿔 주겠다고 말했는데도 저를 모욕했습니다. 심지어 억대 부자도 자기 눈치를 본다며 부씨 가문이 뭐냐면서 자기가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머물기 싫으면 당장 나가겠다고 했습니다.”그의 말을 들은 지아는 하늘 아래 이런 파렴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지아를 본
“내 귀로 당신이 한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이렇게 헛소리를 잘하는 줄 몰랐을 거야.”오 집사는 순식간에 무릎을 꿇고 일어나 자기 얼굴을 세게 때렸다.“제가 잘못했습니다, 아가씨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가 몰라뵀습니다. 도련님, 오랜 세월 열심히 일만 한 걸 봐서 용서해 주세요! 제가 늙어서 정신이 잘못됐나 봅니다.”“늙어서 노망이 났으면 집사직을 내려놔. 우리가 매일 높은 월급을 주는 건 집안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라고 하는 게 아니야.”집사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말을 듣고 오 집사는 더욱 울었다.부씨 가문 집사는 돈을 훨씬 더 많이 벌고 불로소득도 많은데 이렇게 좋은 직장을 어떻게 포기하겠나.뒤에서 민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야?”민연주는 지아를 바라보며 아주 따뜻한 표정을 지었다.“바네사, 우리 손님으로 오셨는데 아랫사람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오 집사한테 방을 보여주라고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죠?”지아가 예전의 그 순진한 소녀였다면 민연주가 분명 상냥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최근 가까이서 본 민연주는 미셸보다 훨씬 고단수였다.아마도 자신 때문에 미셸이 뺨 몇 대 맞는 걸 참지 못하고 이젠 어르신도 깨어났으니 이러는 것이겠지.속 검은 사람들은 자기 급할 땐 손이야 발이야 빌더니 필요 없을 땐 한쪽으로 내팽개친다.부씨 가문 부자가 자신을 눈여겨보니 똑똑한 민연주는 미셸처럼 대놓고 난리를 부리지 않고 오 집사에게 시켜서 몰래 손을 쓴 것이다.자신이 부남진 앞에서 보인 얌전한 모습을 보고 소란을 피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은데 이젠 오 집사가 난처하게 됐다.지아는 오 집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민연주까지 끌어내릴지 궁금했다.개들끼리 물고 뜯는 건 꽤 재미있을 것 같다.“사모님, 저는 오늘 이 집에 처음 왔는데 어쩌다 집사님께 밉보인 건지 모르겠네요. 저에게 난방도 안 되는 방을 주고 견디라네요. 저는 원래도 몸이 연약한 여자라 영하 20도의 밤 날씨는 견딜 수야 있겠지만
오 집사는 민연주가 꼬리 자르려는 것을 알았다. 이 여자가 어르신과 도련님께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 줄 몰랐다.이대로 있다간 민연주까지 엮이게 생겼는데 그녀까지 끌어내릴 바에야 혼자 죽는 게 나았다.오 집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부부니까 어르신이 화를 내더라도 화해하겠지만 자신이 사모님을 들추면 부씨 가문 전체에 밉보이며 때가 되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오 집사는 곧바로 모든 혐의를 자백했다.“네, 사모님께서는 분명히 전달했고 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방에 난방이 없어서 수리공에게 연락했는데 오늘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건 제가 어쩔 수 없었던 일입니다. 제 태도가 나쁘고 아가씨께 함부로 대한 건 천벌 받아 마땅하지만 어르신과 도련님께서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예상대로 민연주의 표정이 한결 나아지며 그 대신 선처를 호소했다.“오 집사가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오늘 일은 잘못했어도 앞으로 고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죠.”미셸도 중얼거렸다.“그러게, 고작 난방이 없는 것뿐이잖아요?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이 난리를 부려요? 집사님도 우리 가족처럼 열심히 일하는데, 아빠, 오빠가 너무 심했어요. 때리고 욕도 했는데 이젠 해고까지 해요?”“별일이 아니야?” 부남진이 비웃었다.“그래, 좋아. 오늘 밤 사모님과 아가씨 방에 난방 끊어. 별일인지 아닌지 두고 보면 알겠지. 난방 설비가 고장 나면 다른 방으로 바꾸면 되는데, 이 집에 빈방이 없나? 나머지 방이 다 고장 났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면 안 되는 거야? 굳이 사람을 찬 방에 재워야 해? 늙은 것이 눈이 멀어서 제멋대로 하는 걸 보니 이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것 같네. 지금 당장 재무팀에 가서 이번 달 월급 챙겨가고 배상할 건 배상해 주면 되지. 부씨 가문에선 당신 못 써.”오 집사는 완전히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민연주의 다리를 껴안으며 선처를 빌었다.“사모님, 무슨 말씀 좀 해주세요. 전 부씨 가문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민연주 역시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