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집사는 민연주가 꼬리 자르려는 것을 알았다. 이 여자가 어르신과 도련님께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 줄 몰랐다.이대로 있다간 민연주까지 엮이게 생겼는데 그녀까지 끌어내릴 바에야 혼자 죽는 게 나았다.오 집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부부니까 어르신이 화를 내더라도 화해하겠지만 자신이 사모님을 들추면 부씨 가문 전체에 밉보이며 때가 되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오 집사는 곧바로 모든 혐의를 자백했다.“네, 사모님께서는 분명히 전달했고 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방에 난방이 없어서 수리공에게 연락했는데 오늘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건 제가 어쩔 수 없었던 일입니다. 제 태도가 나쁘고 아가씨께 함부로 대한 건 천벌 받아 마땅하지만 어르신과 도련님께서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예상대로 민연주의 표정이 한결 나아지며 그 대신 선처를 호소했다.“오 집사가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오늘 일은 잘못했어도 앞으로 고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죠.”미셸도 중얼거렸다.“그러게, 고작 난방이 없는 것뿐이잖아요?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이 난리를 부려요? 집사님도 우리 가족처럼 열심히 일하는데, 아빠, 오빠가 너무 심했어요. 때리고 욕도 했는데 이젠 해고까지 해요?”“별일이 아니야?” 부남진이 비웃었다.“그래, 좋아. 오늘 밤 사모님과 아가씨 방에 난방 끊어. 별일인지 아닌지 두고 보면 알겠지. 난방 설비가 고장 나면 다른 방으로 바꾸면 되는데, 이 집에 빈방이 없나? 나머지 방이 다 고장 났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면 안 되는 거야? 굳이 사람을 찬 방에 재워야 해? 늙은 것이 눈이 멀어서 제멋대로 하는 걸 보니 이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것 같네. 지금 당장 재무팀에 가서 이번 달 월급 챙겨가고 배상할 건 배상해 주면 되지. 부씨 가문에선 당신 못 써.”오 집사는 완전히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민연주의 다리를 껴안으며 선처를 빌었다.“사모님, 무슨 말씀 좀 해주세요. 전 부씨 가문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민연주 역시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 얘기를 꺼내자 민연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아빠한테는 금기 사항인 거 잘 알면서 입 다물어.”“금기라니, 아빠가 그때는 명예와 돈을 위해 아내와 자식을 버렸다가 나중에 엄마랑 만나고 나서야 서서히 올라간 거잖아. 아빠도 따지고 보면 쓰레기야.”“말도 안 돼, 누가 그런 말을 했어?”미셸은 혀를 홀라당 내밀었다.“외할머니가.”“네 할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서 민씨 가문이 네 아빠한테 붙어야 처지야. 제 아빠 성격 잘 알잖아. 그 사람 앞에서 이런 얘기 꺼냈다가 너 따귀 맞을 각오해야 해.”“알아요, 그냥 그렇다는 거죠. 저 여자는 생긴 것도 평범하고 아빠 닮지도 않았으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그래, 오늘 일 너도 봤겠지만 네 아빠와 네 오빠가 그년한테 너무 잘해줘. 오 집사도 쫓아낼 정도니까 앞으로 그 여자 앞에서 조심해. 걘 똑똑해서 넌 상대하지 못해.”미셸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아무리 똑똑해도 결국 가족도 없는 고아에 평생 나를 따라잡을 수 없는 천민일 뿐이잖아요!”“됐어, 그만하고 앞으로 이틀 동안 아빠 앞에서 얌전히 굴고 그 여자랑 말썽 일으키지 마.”“알겠어요 엄마. 집사님은...”“아빠가 지금 화가 나 있으니까 오 집사가 조금 참아야지. 그 여자는 오래 못 버틸 거야.”민연주의 눈빛에 악독한 기색이 역력했다.지아는 부남진과 함께 다실로 돌아갔고 부남진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얘야, 내가 또 억울한 일을 만들었구나.”오늘 일을 누가 시작했는지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민연주는 자기 아내였고, 사람들 앞에서 민연주의 체면을 낮출 수 없어 그냥 참으며 모든 잘못을 집사 탓으로 돌렸다.“괜찮아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어요.”“넌 너무 물러.”지아는 웃으며 휠체어를 놓고 할아버지에게 차를 끓여드리러 다가갔다.“할아버지, 저 무르지 않아요. 정말 물렀다면 부장경 씨도 부르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 큰일 내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한번 참으면 앞으로
부남진은 부드럽게 지아를 바라보았다.“네 성격이 내 마음에 쏙 드는 데다, 네 눈은...”“제 눈이요?” 지아는 신기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아무것도 아니야. 잘해, 널 야박하게 대하지 않을 테니까.” 부남진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단지 눈만 닮았을 뿐, 사람까지 닮은 건 지아였다.당시 도윤이 비공개로 결혼할 때는 신부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시상식에 도윤이 지아와 함께 나타났을 때 부남진은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당시 몰래 알아본 결과 지아의 아버지가 소계훈이고, 소씨 가문은 A시 출신으로 그 여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지아는 항상 부남진이 뭔가 숨기는 것 같았지만 도저히 입을 열지 않았다.밖에 눈이 내리자 지아는 부남진 곁에서 약식, 차, 과자 등을 만들어 주었다.처음엔 전효와 도윤을 위해 부남진에게 다가가며 거들 생각이었다. 곁에 있으면 몰래 손을 쓸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그런데 진심으로 부남진을 돌보게 되면서 어릴 때부터 소계훈의 애정밖에 몰랐던 탓인지 할아버지뻘 되는 노인에게 관심이 갔다.왠지 모를 친근감이 있었는지 그게 아니었다면 미셸의 거듭되는 무례를 보며 이곳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해질 무렵, 장경이 직접 마련한 방은 부자의 방과 가까운 안뜰에 있었는데 넓을 뿐 아니라 청소도 아주 잘 되어 있었다.지아가 잠이 들려고 할 때 미셸이 미쳐 날뛰는 소리가 들렸다.“아빠, 왜 제 방 난방을 꺼요?”부남진이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부남진의 목소리가 차갑게 흘러나왔다.“하룻밤 난방을 안 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한번 겪어보는게 어때서? 남은 없어도 되는데 너희들은 안돼?”미셸은 황급히 반박했다.“저 여자가 대체 뭔데 우리랑 비교해요?”“부설아!” 부남진의 낮은 목소리에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아는 미셸이 난방이 있든 없든 그건 더 이상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문을 닫았다.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그 시각 부남진의
부남진은 지아에게 애정을 쏟고 있을 뿐 며느리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지아가 무슨 쓰레기라도 되는 것처럼 반발하는 민연주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바네사는 명성 높은 의사인데 뭐가 어때서?”“미셸이 애까지 낳았다고 한 거 못 들었어요? 눈도 초록색이래요. 남편이 다른 인종일지도 모르는데 내 아들을 그런 하자 있는 여자 뒤치다꺼리나 시킬 수 없어요.”탁-부남진이 탁자를 세게 때렸다.“민연주, 말 가려서 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단지 내 목숨을 구해주고 가족도 없는 아이라 안쓰러웠을 뿐이야. 게다가 그 아이는 지금 명성으로 돈도 부족하지 않은데 걔 말이 맞지. 돈 많은 사람도 아프면 수술할지 말지 걔 눈치를 보잖아.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그만이야, 걔가 원해서 여기 있는 게 아니라고.”민연주는 남편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여보,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죠. 안 그렇다니 안심이 되네요. 화내지 마요. 우린 부부인데 내가 당신 성격 모르겠어요? 설마 정말 날 오늘 밤 그런 얼음 창고에서 지내게 할 거예요?”“당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앞으로 당신 딸도 사람 존중할 줄 몰라.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할 말 없어. 이미 뱉은 말 되돌릴 마음도 없고.”민연주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부남진의 마음을 돌릴 수 없자 결국 차갑게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부남진 씨, 대단하네요!”문을 쾅 닫고 나가는 그녀를 미셸이 그대로 본받은 것 같다.그동안 사람들 앞에서는 온화하고 너그러운 척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오만한 아가씨였다.부남진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책상 앞으로 걸어가 안쪽의 어두운 캐비닛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수묵화로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흑백으로만 그려져 있었지만 그림 속 인물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한 어린 소녀가 나뭇가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장난스럽고 귀여웠다.부남진이 부드럽게 말했다.“누나, 아직 살아 있어? 그때 누나를 일부러
“무슨 파티인데?”“아마 짝을 간택하는 자리가 아닐까.” 도윤은 지아를 빤히 보았다. “빨리 보고 싶어.”지아는 전화를 끊고 저 모녀가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궁금했다.부남진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할 줄이야.강제로 난방을 끄게 된 민연주 모녀는 벌써 지쳐가기 시작했고 미셸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아빠 미친 거 아니에요? 저년 때문에 우리가 얼어 죽으라고?”“그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이번 일은 내가 미처 생각 못 했어. 저 물건이 일을 크게 벌일 줄이야.”민연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몰래 수작을 부려 지아에게 한 방 먹이려고 했는데 작은 일로 지아가 부남진에게까지 알리며 부남진에게 해명해달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가장으로서 부남진이 이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딸이 직접 나서야 할 수밖에 없었다.“망할 년이 꽤 똑똑하네.”“엄마, 외부인이 우리 머리 위에 올라타서 괴롭히는 걸 그냥 용납할 수 있어요?”“흥, 못 참아도 참아야지. 네 아버지와 네 오빠가 지금 그 여자를 구세주로 삼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 여자랑 부딪히지 말자.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아니라 도윤이야.”민연주는 가득 채운 온수 주머니를 이불 밑에 넣고 히터 두 개를 최대로 돌리자 서서히 방 안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어쨌든 부남진은 난방을 켜면 안 된다는 말만 했지 다른 걸로 온기를 취하는 게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민연주는 히터를 감싼 채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네 결혼 문제도 해결할 때가 됐어.”“엄마, 내가 결혼하고 싶어도 오빠가 싫다면서 일부러 때리기까지 해요. 나랑 결혼하기 싫은 거야!”미셸은 도윤에 한해서만 고개를 숙였다.“그렇다고 납치해서 가둘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멍청하긴, 남자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다 방법이 있지.”“무슨 방법?”민연주가 손을 내밀자 미셸이 귀를 쫑긋 세웠다.“엄마, 가르쳐 줘요.”“남자는...”민연
지아는 이날 밤,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의 방은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방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서 눈송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유리창은 천장까지 높게 뻗어 있었고, 커튼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여기서 바깥에 하얀 눈이 흰 벽과 검은 기와에 조용히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고대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들곤 한다. 지아는 간단히 씻은 뒤 다시 가면을 쓰고 나와 부남진을 위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문 밖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몰려왔고 이에 지아는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 추운 겨울이 다가왔고 온도도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지아는 먼 곳을 바라보았고 마음 속엔 지윤이 떠올랐다. 도윤의 말로 그 아이는 해도로 훈련을 떠났고 자신 또한 한동안은 지윤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 봄쯤, 지윤은 한 달의 휴가가 있을 것이라 한다. ‘그 아이, 아마 많이 컸겠지?’ “좋은 아침이예요.” 부장경은 얇은 반팔 차림으로 정원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몸에 딱 붙은 타이트한 운동복에 그의 완벽한 몸매가 드러났다. 게다가 부장경의 준수한 얼굴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부 선생님, 일찍하네요.” “이젠 익숙해져서요.” 지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부장경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참, 바네사 씨. 내일 저녁 부씨 가문에 연회가 있습니다.” 부설아에 비해 부장경은 이제 젊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그의 혼사가 더욱 중요했다. 때문에 내일 연회에는 명문가의 유명 인사들을 불러 부장경에게 선을 보게 할 지도 모른다. “네, 그럼 제가 자리를 피해 드리면 되나요?” “아니요, 오해하셨습니다. 이번에 저희 아버지가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건 전부 바네사 씨 덕분입니다.” “게다가 이번 연회는 저희 아버지의 완쾌를 축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니 꼭 참석해 주셔야 합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지난 번의 교훈으로 요 며칠
밤이 된 후, 경찰차들이 앞에서 길을 텄고 국연의 요리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아는 자신이 국연의 요리를 먹어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꽃을 손으로 잡으며 7년 전 암에 걸렸던 때가 떠올랐다.새삼 그때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고풍스러운 홀에서 지아는 각양각색의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지아는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예쁘고 착한 아이들까지 여러 명 낳았다. 오늘 이 자리는 비록 지아가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되었다.미셸도 매우 단아하고 고급지게 단장했는데 온몸의 보석들이 빛나고 있는 것이 부잣집 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타이트한 이 검은색 드레스는 몸매가 아주 좋아야만 소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검은색 드레스의 포인트는 바로 가슴 튜브탑 부분에 장식으로 되어 있는 검은색 솜털과 악세사리로 따라온 길게 늘어진 귀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지아는 끝없은 매력을 발산해냈다. 지아의 등장으로 방금까지 미셸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지아의 곁으로 향했다. “당신이 바로 바네사 의사인가요?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네요.” “바네사 씨, 갑작스러운 건 알지만 저의 할아버지가 엄중한 심장병을 앓고 있어 제가 당신을 1년 넘게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혹시 저희 할아버지 진료를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명의님, 전부터 명성이 자자하여 당신의 이름은 익히 들어본 적 있습니다. 제 어머니의 병은 의사들이 전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부디 명의님께서 살려주면 안 되겠습니까?” 지아의 곁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전부 그녀에게 병을 보이려는 사람들이었고 모두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한편 미셸은 자신이 아무렇게 던져준 그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지아가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샘이 났다. 지아의 피부는
하용이 미셸을 대하는 것은 마치 미셸이 도운을 대하는 모습과 같았다. 자신이 호감을 가지는 상대가 본인에게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말이다. 미셸은 심드렁하여 대충 대답했다.“고마워.” 말을 마친 미셸은 다시 도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무시를 당한 하용은 조용히 주먹을 꽉 잡았다. 도윤은 정장 차림에 반쪽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가면을 뚫고 나오는 잘생김과 신비감으로 많은 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빠.” 미셸은 드레스를 들고 얼른 도윤의 곁으로 뛰어왔다. 지아는 손에 잔을 든 채 흔들고 있었는데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며 마치 동화 같은 이 장면을 쳐다보았다. 미셸은 키가 컸기에 5cm밖에 되지 않는 힐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 도윤에게로 달려가는 순간 발이 삐끗했고 당장 넘어져 도윤의 품에 안길 것 같았다. 이런 자리에서 만약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온 연회장의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 분명 자신이 완전히 넘어지게 두진 않을 거라 미셸은 생각했다. 하지만 도윤은 뒤에 있던 진봉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고 이건 미셸이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진봉도 속으로는 수만 번 원치 않는 마음이 더욱 컸지만 이 상황에서 정말 미셸이 그대로 넘어지게 둘 수 없었다. 진봉은 두 손으로 미셸을 받아냈다. “미셸 아가씨, 괜찮아요?” 미셸은 싸늘한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보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기에 겨우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다니 다행입니다.” 진봉은 얼른 미셸에게서 손을 뗐다. 이때 도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를 떴고 부장경이 다가와 미셸의 어깨를 잡으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미셸, 괜찮아?” 미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빠, 나 괜찮아.” 부장경은 그대로 미셸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드레스 어떻게 된 거야?” “이거? 바네사가 이 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길래 나랑 바꿨어. 지금 저 여자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