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남진은 지아에게 애정을 쏟고 있을 뿐 며느리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지아가 무슨 쓰레기라도 되는 것처럼 반발하는 민연주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바네사는 명성 높은 의사인데 뭐가 어때서?”“미셸이 애까지 낳았다고 한 거 못 들었어요? 눈도 초록색이래요. 남편이 다른 인종일지도 모르는데 내 아들을 그런 하자 있는 여자 뒤치다꺼리나 시킬 수 없어요.”탁-부남진이 탁자를 세게 때렸다.“민연주, 말 가려서 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단지 내 목숨을 구해주고 가족도 없는 아이라 안쓰러웠을 뿐이야. 게다가 그 아이는 지금 명성으로 돈도 부족하지 않은데 걔 말이 맞지. 돈 많은 사람도 아프면 수술할지 말지 걔 눈치를 보잖아.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그만이야, 걔가 원해서 여기 있는 게 아니라고.”민연주는 남편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여보,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죠. 안 그렇다니 안심이 되네요. 화내지 마요. 우린 부부인데 내가 당신 성격 모르겠어요? 설마 정말 날 오늘 밤 그런 얼음 창고에서 지내게 할 거예요?”“당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앞으로 당신 딸도 사람 존중할 줄 몰라.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할 말 없어. 이미 뱉은 말 되돌릴 마음도 없고.”민연주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부남진의 마음을 돌릴 수 없자 결국 차갑게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부남진 씨, 대단하네요!”문을 쾅 닫고 나가는 그녀를 미셸이 그대로 본받은 것 같다.그동안 사람들 앞에서는 온화하고 너그러운 척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오만한 아가씨였다.부남진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책상 앞으로 걸어가 안쪽의 어두운 캐비닛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수묵화로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흑백으로만 그려져 있었지만 그림 속 인물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한 어린 소녀가 나뭇가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장난스럽고 귀여웠다.부남진이 부드럽게 말했다.“누나, 아직 살아 있어? 그때 누나를 일부러
“무슨 파티인데?”“아마 짝을 간택하는 자리가 아닐까.” 도윤은 지아를 빤히 보았다. “빨리 보고 싶어.”지아는 전화를 끊고 저 모녀가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궁금했다.부남진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할 줄이야.강제로 난방을 끄게 된 민연주 모녀는 벌써 지쳐가기 시작했고 미셸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아빠 미친 거 아니에요? 저년 때문에 우리가 얼어 죽으라고?”“그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이번 일은 내가 미처 생각 못 했어. 저 물건이 일을 크게 벌일 줄이야.”민연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몰래 수작을 부려 지아에게 한 방 먹이려고 했는데 작은 일로 지아가 부남진에게까지 알리며 부남진에게 해명해달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가장으로서 부남진이 이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딸이 직접 나서야 할 수밖에 없었다.“망할 년이 꽤 똑똑하네.”“엄마, 외부인이 우리 머리 위에 올라타서 괴롭히는 걸 그냥 용납할 수 있어요?”“흥, 못 참아도 참아야지. 네 아버지와 네 오빠가 지금 그 여자를 구세주로 삼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 여자랑 부딪히지 말자.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아니라 도윤이야.”민연주는 가득 채운 온수 주머니를 이불 밑에 넣고 히터 두 개를 최대로 돌리자 서서히 방 안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어쨌든 부남진은 난방을 켜면 안 된다는 말만 했지 다른 걸로 온기를 취하는 게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민연주는 히터를 감싼 채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네 결혼 문제도 해결할 때가 됐어.”“엄마, 내가 결혼하고 싶어도 오빠가 싫다면서 일부러 때리기까지 해요. 나랑 결혼하기 싫은 거야!”미셸은 도윤에 한해서만 고개를 숙였다.“그렇다고 납치해서 가둘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멍청하긴, 남자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다 방법이 있지.”“무슨 방법?”민연주가 손을 내밀자 미셸이 귀를 쫑긋 세웠다.“엄마, 가르쳐 줘요.”“남자는...”민연
지아는 이날 밤,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의 방은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방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서 눈송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유리창은 천장까지 높게 뻗어 있었고, 커튼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여기서 바깥에 하얀 눈이 흰 벽과 검은 기와에 조용히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고대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들곤 한다. 지아는 간단히 씻은 뒤 다시 가면을 쓰고 나와 부남진을 위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문 밖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몰려왔고 이에 지아는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 추운 겨울이 다가왔고 온도도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지아는 먼 곳을 바라보았고 마음 속엔 지윤이 떠올랐다. 도윤의 말로 그 아이는 해도로 훈련을 떠났고 자신 또한 한동안은 지윤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 봄쯤, 지윤은 한 달의 휴가가 있을 것이라 한다. ‘그 아이, 아마 많이 컸겠지?’ “좋은 아침이예요.” 부장경은 얇은 반팔 차림으로 정원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몸에 딱 붙은 타이트한 운동복에 그의 완벽한 몸매가 드러났다. 게다가 부장경의 준수한 얼굴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부 선생님, 일찍하네요.” “이젠 익숙해져서요.” 지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부장경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참, 바네사 씨. 내일 저녁 부씨 가문에 연회가 있습니다.” 부설아에 비해 부장경은 이제 젊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그의 혼사가 더욱 중요했다. 때문에 내일 연회에는 명문가의 유명 인사들을 불러 부장경에게 선을 보게 할 지도 모른다. “네, 그럼 제가 자리를 피해 드리면 되나요?” “아니요, 오해하셨습니다. 이번에 저희 아버지가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건 전부 바네사 씨 덕분입니다.” “게다가 이번 연회는 저희 아버지의 완쾌를 축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니 꼭 참석해 주셔야 합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지난 번의 교훈으로 요 며칠
밤이 된 후, 경찰차들이 앞에서 길을 텄고 국연의 요리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아는 자신이 국연의 요리를 먹어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꽃을 손으로 잡으며 7년 전 암에 걸렸던 때가 떠올랐다.새삼 그때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고풍스러운 홀에서 지아는 각양각색의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지아는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예쁘고 착한 아이들까지 여러 명 낳았다. 오늘 이 자리는 비록 지아가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되었다.미셸도 매우 단아하고 고급지게 단장했는데 온몸의 보석들이 빛나고 있는 것이 부잣집 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타이트한 이 검은색 드레스는 몸매가 아주 좋아야만 소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검은색 드레스의 포인트는 바로 가슴 튜브탑 부분에 장식으로 되어 있는 검은색 솜털과 악세사리로 따라온 길게 늘어진 귀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지아는 끝없은 매력을 발산해냈다. 지아의 등장으로 방금까지 미셸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지아의 곁으로 향했다. “당신이 바로 바네사 의사인가요?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네요.” “바네사 씨, 갑작스러운 건 알지만 저의 할아버지가 엄중한 심장병을 앓고 있어 제가 당신을 1년 넘게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혹시 저희 할아버지 진료를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명의님, 전부터 명성이 자자하여 당신의 이름은 익히 들어본 적 있습니다. 제 어머니의 병은 의사들이 전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부디 명의님께서 살려주면 안 되겠습니까?” 지아의 곁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전부 그녀에게 병을 보이려는 사람들이었고 모두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한편 미셸은 자신이 아무렇게 던져준 그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지아가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샘이 났다. 지아의 피부는
하용이 미셸을 대하는 것은 마치 미셸이 도운을 대하는 모습과 같았다. 자신이 호감을 가지는 상대가 본인에게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말이다. 미셸은 심드렁하여 대충 대답했다.“고마워.” 말을 마친 미셸은 다시 도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무시를 당한 하용은 조용히 주먹을 꽉 잡았다. 도윤은 정장 차림에 반쪽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가면을 뚫고 나오는 잘생김과 신비감으로 많은 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빠.” 미셸은 드레스를 들고 얼른 도윤의 곁으로 뛰어왔다. 지아는 손에 잔을 든 채 흔들고 있었는데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며 마치 동화 같은 이 장면을 쳐다보았다. 미셸은 키가 컸기에 5cm밖에 되지 않는 힐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 도윤에게로 달려가는 순간 발이 삐끗했고 당장 넘어져 도윤의 품에 안길 것 같았다. 이런 자리에서 만약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온 연회장의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 분명 자신이 완전히 넘어지게 두진 않을 거라 미셸은 생각했다. 하지만 도윤은 뒤에 있던 진봉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고 이건 미셸이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진봉도 속으로는 수만 번 원치 않는 마음이 더욱 컸지만 이 상황에서 정말 미셸이 그대로 넘어지게 둘 수 없었다. 진봉은 두 손으로 미셸을 받아냈다. “미셸 아가씨, 괜찮아요?” 미셸은 싸늘한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보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기에 겨우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다니 다행입니다.” 진봉은 얼른 미셸에게서 손을 뗐다. 이때 도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를 떴고 부장경이 다가와 미셸의 어깨를 잡으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미셸, 괜찮아?” 미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빠, 나 괜찮아.” 부장경은 그대로 미셸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드레스 어떻게 된 거야?” “이거? 바네사가 이 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길래 나랑 바꿨어. 지금 저 여자 노
부장경도 지아의 몸이 굳었다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손을 뗐다. “죄송합니다. 방금 곁에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서요.” 지아는 한 걸음 물러나며 부장경과 거리를 뒀다. “네, 알고 있어요. 부장경 선생님도 얼른 다른 손님들 뵈러 가보세요.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럼 혼자 조심하세요. 무슨 일 있으시면 저 찾아오시고요.” 부장경은 지아를 빤히 쳐다보더니 자리를 떴다. 그리고 부장경은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며 방금 자신의 손에 닿았던 지아의 부드러운 피부를 다시 되새겨보았다. 순간 이상한 감정이 부장경의 마음속에서 솟구쳤다. 마치 한순간 타오르는 알 수 없는 불꽃처럼 말이다. 모두들 슬슬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은 약 30여 명 정도 되었는데 전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다를 매우 예의와 격식을 차리고 있었다. 이 중에는 부남진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연주는 부남진의 팔짱을 끼고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는데 밖에서 그녀는 영원히 인자하고 따뜻한 모습을 유지했다. 만일 오 집사 일만 아니었다면 지아도 민연주의 진짜 모습을 알진 못했을 것이다. 이때 부장경이 지아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 앉으라고 했다. “바네사 씨, 이쪽에 앉으세요.” 다른 테이블로 가 앉으려던 지아는 그대로 부장경에게 불려갔다. 삽시간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지아에게 주목되었는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전부 대단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기에 지아의 부담감은 매우 컸다. “각하, 이 분이 바로 명의 바네사 씨이죠?” 그러자 부남진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기 이 분은 절대 나이가 적다고 얕보면 안 됩니다. 이 자의 의술은 윤씨 어르신과 원씨 어르신도 전부 인정했답니다.” “전에 기사에서만 이름을 봐왔는데 오늘 드디어 실물을 영접하네요.” “이렇게 젊은 분이 그런 대단한 의술을 가졌다니, 참 놀랍습니다.” “여러분, 과찬입니다. 단지
도윤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바네사 씨가 전에 저를 치료해 줄 때 잠깐 가깝게 지냈었습니다. 그러니 이 분의 습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도윤의 이 대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부장경은 ‘가깝게’라는 말에 꽂혀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도윤은 말을 끝낸 후 지아에게서 눈을 뗐고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듯했다. 지아 또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불러올 까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경 국연은 큰 행사였기에 식사 자리는 매우 조용했고 들리는 건 오로지 각종 악기소리 뿐이었다. 지아는 마치 예술품 같은 각종 요리들을 쳐다보았는데 메인 요리 옆의 장식조차 꽃으로 빚어 놓았다. 저녁 만찬이 끝난 뒤 부남진은 젊은 사람들까지 시간을 보내라며 먼저 자리를 떴다.오늘 이 자리에서 민연주는 부장경에게 어울릴 만한 여자를 찾아주려 했다. 이 연회에 참석한 여인들을 전부 명문가의 귀한 자제들이었기에 전부 고급지고 학력 또한 높았다.이 자리에 참석한 여인들은 집안 배경이든 학벌이든 뭐 하나 빠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민연주는 부장경을 한쪽으로 끌며 말했다. “어쩌다 집에 돌아와 있는데 이 시기를 빌어 결혼까지 해결해 버리면 좀 좋아? 몇 명 좀 둘러봐.” 부장경은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니, 나 아직 결혼할 생각 없어요.” “너도 벌써 30이 넘었는데 아직도 생각이 없으면 어떻게 해? 저기 도윤이 좀 봐. 애가 커서 벌써 임무도 나갔어. 그런데 너만 아직도 짝이 없잖아. 어찌됐든 여자들과 조금씩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여자들 귀찮아요.” “뭐가 귀찮아? 얼른 가봐. 오늘 이 자리에 명문가의 예쁜 자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성격이고 학벌이고 다 너와 어울리는 애들이고 말이야.” “기억해. 이건 네 아버지의 명이야. 좀 있다가 반드시 함께 춤 줄 파트너 데려와야 돼.” 이에 부장경은 물고 있던 담배를 던지며 말
지아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왜 저러냐는 표정으로 도윤을 쳐다보았다. 도윤은 별 말 하지 않고 지아의 옆에 앉았다. 이때 미셸이 다가왔고 기대에 찬 얼굴로 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좀 있다가 내 춤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어?” “아니, 난 이미 파트너를 찾았어.” 도윤은 지아를 가리켰다. 이에 미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여자 말이야?” “왜 그러는데?” 도윤은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네사 씨, 저희 춤 추러 가시죠.” “그래요.” 도윤은 몸을 일으켜 아주 신사적으로 지아에게 손을 건네며 요청했다. 그러자 지아 또한 손끝을 가볍게 도윤의 손바닥에 댔고 도윤의 커다란 손은 마치 꽃 한 송이를 잡는 것처럼 지아의 손을 움켜잡았다. 가면 아래의 지아는 볼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이건 아마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춤 추는 것일 것이다. 도윤은 당당하게 지아의 허리를 감쌌고 지아 또한 가볍게 도윤의 가슴에 기댔다. 분명 두 사람은 몇 명의 아이를 둔 부모였지만 이 순간 마치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 같았고 도윤의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도윤과 함께 춤 추려던 미셸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 후 하용이 다가왔다. “설아 동생, 내 춤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싫어.” 미셸은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면서 자라왔기에 그녀가 원하는 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고 절대 물러나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항상 가장 좋은 것만 추구했다. 때문에 비록 도윤에게 거절당했어도 절대 하용과 춤 파트너를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부장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많은 여자들이 부장경에게 함께 춤을 출 것을 요청했지만 전부 다 거절했고 결국 미셸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셸은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이제 나이도 적지 않게 먹었으면서 춤 파트너 하나도 제대로 못 찾아? 쪽 팔려, 정말.” 이에 부장경이 웃으며 말했다. “파트너 못 찾은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내가 원하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