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튿날 내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터로 옮기고 화장했다. 나는 내 육체를 따라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푸른 불길이 점점 내 시신을 집어삼키는 걸 지켜보았다.화장 과정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가 내 귓전을 스쳤지만 너무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난 생전에 골라둔 유골함에 무사히 안치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들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면 밤마다 꿈속에서 그들을 괴롭힐 작정이었는데 다행히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이제 더는 그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김민수가 내 유골함을 들고 묘지에 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정말 좋은 묘지였다. 김민수는 내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가까이 다가간 후에야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미안하다고? 어차피 이미 늦었어.’나는 이미 죽었으니 정말 사과하고 싶다면 차라리 저승에서 만날 때 하면 그만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영혼은 계속 김씨 가문 사람들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죽은 자들은 다 이런 걸까? 이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김민수는 내 이름으로 어려운 소녀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매회까지 열어 작품 낙찰 금액 전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 덕에 김수아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김씨 가문에 아가씨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그제야 알게 되었다.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날 이후 줄곧 기부에 매진했다.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려는 듯했다....1년 후, 제삿날이 돌아오자 그들은 모여 내 묘비 앞에 서 있었다. 김현우는 여전히 보풀이 일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신선한 이슬이 맺힌 꽃다발이 내 묘비 앞에 놓였다. 먼지 한 점 없는 묘비 위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나는 영혼이 점점 희미해지는 걸 발견했다. 이제 곧 그들 곁을 떠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수아야, 미안해.”“우린 네게 진작에 사과를 했었어야 했어. 이미 모두 늦었지만 그래도 사과하고 싶어.”“다음 생엔 평범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머리 위에 적힌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할아버지 머리 위에 있는 숫자를 보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부모님은 그냥 웃으며 장난으로 넘기셨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후, 아빠 머리 위에도 카운트다운이 보였다. 내가 그에게 말했을 때, 아빠의 미소는 잠시 굳었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를 보지 못했다. 급히 올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엄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엄마는 이미 배가 많이 불러 있었고, 너무 급히 뛰다 문 앞 계단에서 넘어졌다. 그때, 나는 엄마의 머리 위에서 익숙한 카운트다운을 보았다.내동생 김예린이 그날 태어났다. 엄마는 대출혈로 인한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돌아가셨다. 나는 병실 밖에서 어쩔 줄 몰라 서 있었다. 셋째 오빠 김지훈은 나를 밀쳐 넘어뜨리며 괴물이라고 했다. 내가 아빠와 엄마를 저주해서 죽였다고 했다. 손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강하게 부딪혀 피가 조금 스며 나왔다. 나는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나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혐오가 가득했다.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 일어나 치마를 털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몸을 웅크려 구석에 앉아 문 밖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무릎을 끌어안고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아빠, 엄마...” 나는 그렇게 서서히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모두 떠나버린 것이다. 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을까? 난 이대로 버림받은 걸까?나는 당황하며 일어섰지만,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다리가 저려서 넘어졌다. 조용한 복도에는 깜빡이는 형광등만이 보였다. 몸이 아파서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세 명의 오빠들은 김예린에게 매우 잘해주었지만, 나한테는 관심조차 없었다.집안의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종종 배고픈 채로 잠들며 열여덟 살까지 자랐다. 셋째 오빠, 김지훈은 항상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가끔 생각해 보았다. ‘내가 너무 나쁜 아이여서 죽지조차 못하는 건 아닐까?’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걸어가 세수를 했다. 머리카락은 지저분했고, 얼굴은 매우 수척했다. 아무도 나를 김씨 가문의 큰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머리 위에도 카운트다운이 생겼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 빨간색 카운트다운이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이날이 온 것이다.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내 모습을 살펴보았다. 나는 조용히 컵을 내려놓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한테는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이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한참 동안 생각한 후, 나는 천천히 내가 살던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내 원래 방은 김예린이 태어난 후 그녀의 드레스룸으로 바뀌었다.나는 늘 다락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김예린을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아무 걱정 없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숨어 그들의 행복을 엿보는 수밖에 없었다.이 시간에 둘째 오빠, 김현우와 김예린이 아직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 계단을 내려가자 김예린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넥타리를 들며 말했다. “둘째 오빠, 내가 넥타리 매 줄게.” 김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어설프게 넥타이를 매고 있는 김예린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김예린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눈썹을 찌푸린 채 말했다. “약간 비뚤어진 것 같아. 다시 풀고 오빠가 직접 매는 게 어때?”김현우는 넥타이를 풀지 않고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 처음인데 이 정도면 엄청 잘한
나는 그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차가운 얼음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현우는 나를 악당이나 살인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심장이 아프고, 위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에 가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했지만, 테이블 위에는 말라비틀어진 빵 반 조각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빵을 집어 들고 호두 두 개를 까서 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지 못했다.아주머니는 지나가다가 나를 보더니, 눈을 흘기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보더니 일부러 놀란 척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가씨, 그거 먹으셨나요? 그건 버리려고 둔 거예요.” “둘째 도련님과 예린 아가씨께서 일찍 일어나셔서, 저희가 좀 일찍 준비했거든요. 아가씨께서 아침 드시고 싶으시다면 지금 만들어 드릴게요.”아주머니의 연기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거절하고, 위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을 참으며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 집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아주머니들조차 늘 나를 무시했다.위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지자, 나는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통제를 꺼내 입에 넣고, 옆에 있던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그러자 통증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 같았다.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가볍게 했다. 창백한 얼굴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먼저 화장터에 갔다.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기에, 유골함을 맞춤 제작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무늬를 골라 내가 앞으로 머무를 ‘집’으로 삼았다.유골함을 안은 채 기쁜 표정을 짓고 있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한참 후, 나는 마침 김지훈의 학교를 지나쳤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학교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활기찬 소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열 살 이후로 학교에 가본 적이
나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또 김예린 때문일 것이다. 방금 전화를 건 사람은 분명 둘째 오빠, 김현우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불길한 존재였다.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모두 내가 이야기한 시간대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그동안 김지훈이 벌인 짓들을 떠올리자 나는 온몸이 떨렸다.엄마께서 돌아가신 날, 착한 의사 선생님이 날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러나 김지훈은 나를 집안의 작은 창고에 삼일 동안 가두었고, 먹을 것은 물론 마실 것조차 주지 않았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그렇게 3일 동안 가둬진 나는 이대로 죽게 될 줄 알았지만, 큰오빠 김민수가 천사처럼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김민수는 나를 창고에서 꺼내주었다. 비록 나한테 관심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한테 가장 잘해준 사람이었다. 김민수도 오늘 아침 내가 한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내가 계속 말을 하지 않자, 김지훈은 내게 겁을 주려고 귓가에 대고 가볍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너 하나 없애는 것쯤은 어렵지 않거든.”나는 몸이 굳은 채 놀란 눈빛으로 그가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후 나는 목적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머릿속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사진관의 여직원은 영정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내 말을 알고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나를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그 순간, 내 마음속의 억눌려있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낯선 사람의 한 마디 위로가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낯선 사람인데도 한없이 따뜻하기만 했다.사진관에서 나온 후, 나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준비한 유골함과 영정 사진을 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김민수를 찾으러 회사에 가기로 결심했다. 회사에 가본 적이 없어서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안내 데스크 직원이 나를 막더니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표님은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자, 미친 듯이 떨리는 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늘 생사에 관심이 없었던 나지만, 카운트다운이 줄어드는 걸 보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조용한 방 안에는 내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이대로 대답을 듣지 못할 줄 알았지만, 김민수는 말 한마디로 날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김수아, 이런 거짓말로 우리가 너를 불쌍히 여길 거라고 생각하니?] [우리를 집으로 불러들이려고 별 짓을 다 하는구나. 어릴 때처럼 우리가 쉽게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절대 잊지 마.]나는 한순간 벼락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내 얼굴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로봇처럼 계속해서 반복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주세요. 부탁이에요.”전화는 결국 끊겼다. 그러나 나는 전화가 끊기기 전, 김예린이 기쁜 목소리로 김민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희망 따위 가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아, 그들이 김예린을 대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잣말을 했다. 정말 미친 게 분명했다. 나는 한 가족의 오붓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바보처럼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마지막에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시간이 계속 흘러갔지만, 아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밤새도록 기다렸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3분밖에 없었다. 나는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너무 단순해서 돌이켜볼 만한 것조차 없었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비극이었다.나는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며 조용히 식탁에 엎드려 있었다. 옆에는 내가 준비한 유골함과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5, 4, 3, 2, 1...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방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영혼이 위로 떠올랐을 때, 나는 왜 아직도 집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식탁에 엎드린 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나 자신을 보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이미 죽었구나.’입구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의 주의를 끌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머니가 돌아온 것이었다. 내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식탁에 엎드려 있는 나와 옆에 놓인 영정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떨리는 손가락을 내 코 아래에 대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비명을 질렀다.아주머니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네, 네, 주소는...”그녀는 전화를 끊은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그녀는 점점 멀어졌고, 나도 굳이 따라가진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내 앞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두 손을 모아 내 몸 앞에서 무언가 중얼거렸다. 곧 문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경계선을 치고 방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자연사였다.“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김민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와 어수선한 집 안 상황을 보며 눈에 띄게 짜증을 내었다. 상황을 파악한 후, 그는 경찰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 나는 김민수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다가와 두 손가락을 내 목 옆에 대어 내가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나는 그가 내 시체를 화장할지 말지 추측하고 있었다. 유골함이 옆에 놓여 있었으니, 그들은 내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모른 척한다고 해도 죽은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나는 허공에 떠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의사 선생님, 사진관 직원, 그리고 만두 가게 사장님. 그들은 모두 나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준 사람들이다.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김씨 가문의 나머지 사람들도 차례로 도착했다. 김민수는 그제야 평소의 차가운 표정으로 되찾았다.김예린은 입을 가린 채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금세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언니, 언니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야?”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마음이 아팠다. 김지훈은 그녀를 안고 부드럽게 위로했다. “예린아, 울지 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야.”‘운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운명을 믿지 않지만, 때로는 내가 불길한 존재가 된 것이 운명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지훈의 입가에 숨겨진 미소를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내가 죽은 것을 기뻐하는 것이 분명했다.내 몸은 그들로 둘러싸였다. 그들은 아마도 내 영정 사진과 유골함을 보고 오랫동안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김민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오후, 김수아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며 우리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어.”그는 김현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에게도 말했었어?” 김현우는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침에 나에게 했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 경매는 그가 지어낸 말이었고, 그들은 김민수와 함께 공석에 나타날 필요도 없었다.그들의 말을 통해 나는 그들이 김예린이 키우던 고양이 생일을 축하해 주러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결국 나는 고양이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나는 조금 아픈 가슴을 만졌다. ‘이상하네, 나는 죽었는데 왜 아직도 가슴이 아픈 게 느껴지는 걸까?’김예린은 그들의 위로를 받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김현우는 영정 사진 속 미소 짓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혹시 우리가 잘못한 거야?” 나는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김지훈도 말을 이었
그들은 이튿날 내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터로 옮기고 화장했다. 나는 내 육체를 따라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푸른 불길이 점점 내 시신을 집어삼키는 걸 지켜보았다.화장 과정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가 내 귓전을 스쳤지만 너무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난 생전에 골라둔 유골함에 무사히 안치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들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면 밤마다 꿈속에서 그들을 괴롭힐 작정이었는데 다행히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이제 더는 그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김민수가 내 유골함을 들고 묘지에 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정말 좋은 묘지였다. 김민수는 내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가까이 다가간 후에야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미안하다고? 어차피 이미 늦었어.’나는 이미 죽었으니 정말 사과하고 싶다면 차라리 저승에서 만날 때 하면 그만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영혼은 계속 김씨 가문 사람들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죽은 자들은 다 이런 걸까? 이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김민수는 내 이름으로 어려운 소녀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매회까지 열어 작품 낙찰 금액 전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 덕에 김수아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김씨 가문에 아가씨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그제야 알게 되었다. 김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날 이후 줄곧 기부에 매진했다.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려는 듯했다....1년 후, 제삿날이 돌아오자 그들은 모여 내 묘비 앞에 서 있었다. 김현우는 여전히 보풀이 일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신선한 이슬이 맺힌 꽃다발이 내 묘비 앞에 놓였다. 먼지 한 점 없는 묘비 위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나는 영혼이 점점 희미해지는 걸 발견했다. 이제 곧 그들 곁을 떠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수아야, 미안해.”“우린 네게 진작에 사과를 했었어야 했어. 이미 모두 늦었지만 그래도 사과하고 싶어.”“다음 생엔 평범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
김현우는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몸을 조금씩 떨었다. 그는 내가 쓰레기통에서 이 조각들을 주워내는 것을 보았고, 그때 내 뒤에서 독설을 퍼부었다. “망가진 건 망가진 거야, 아무리 다시 꿰매어봤자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 그의 말은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 뜻을 이해했다. 목도리를 잡은 손이 공중에 굳어버렸지만, 결국 나는 고집스럽게 가져갔다.침실 안에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민수와 김지훈은 문 옆에 기대어 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마 처음으로 내 방 안을 보게 된 것이다. 내 방은 좁고 어두웠다. 김지훈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한 번도 내 방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그는 내 옷장 앞으로 다가갔다. 작고 낡은 옷장 안에는 내가 사계절 내내 입던 옷들이 들어 있었다.방 안의 모든 것은 오래된 것이었지만, 중간에 놓인 작은 침대만은 예외였다. 이 침대는 한밤중에 침대가 무너져서 바꾼 것이었다. 부러진 나무 조각이 찢어진 침대 시트와 매트리스를 뚫고 내 몸에 박혔었다. 지금도 내 허리에는 아마도 그때 박힌 나무 조각이 남아 있을 것이다.“십 년이야, 우리는 수아를 십 년 동안 오해했어.” “수아는 원래 김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어. 그런데 이 허름한 곳에서 자그마치 10년 동안 지냈어.” “우리가 수아를 병들게 만들었고, 예린이한테 사과하게 만들기 위해 집에 가둔 바람에 수아는 수능을 놓치고 더 이상 공부를 못 하게 했어.”김지훈이 이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머릿속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김예린의 소중한 머리핀이 사라졌을 때, 나 혼자 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늘 꿈을 품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면 나가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간단한 꿈은 그들이 잔인하게 짓밟았다.그날, 김예린은 김민수의 어깨에 기대어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머리핀을 보았던 상황을 설명했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보탰다.“언니가 그때 예
의사 선생님, 사진관 직원, 그리고 만두 가게 사장님. 그들은 모두 나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준 사람들이다.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김씨 가문의 나머지 사람들도 차례로 도착했다. 김민수는 그제야 평소의 차가운 표정으로 되찾았다.김예린은 입을 가린 채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금세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언니, 언니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야?”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마음이 아팠다. 김지훈은 그녀를 안고 부드럽게 위로했다. “예린아, 울지 마.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야.”‘운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운명을 믿지 않지만, 때로는 내가 불길한 존재가 된 것이 운명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지훈의 입가에 숨겨진 미소를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내가 죽은 것을 기뻐하는 것이 분명했다.내 몸은 그들로 둘러싸였다. 그들은 아마도 내 영정 사진과 유골함을 보고 오랫동안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김민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오후, 김수아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며 우리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어.”그는 김현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에게도 말했었어?” 김현우는 보기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침에 나에게 했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 경매는 그가 지어낸 말이었고, 그들은 김민수와 함께 공석에 나타날 필요도 없었다.그들의 말을 통해 나는 그들이 김예린이 키우던 고양이 생일을 축하해 주러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결국 나는 고양이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나는 조금 아픈 가슴을 만졌다. ‘이상하네, 나는 죽었는데 왜 아직도 가슴이 아픈 게 느껴지는 걸까?’김예린은 그들의 위로를 받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김현우는 영정 사진 속 미소 짓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혹시 우리가 잘못한 거야?” 나는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김지훈도 말을 이었
영혼이 위로 떠올랐을 때, 나는 왜 아직도 집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식탁에 엎드린 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나 자신을 보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이미 죽었구나.’입구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의 주의를 끌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머니가 돌아온 것이었다. 내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식탁에 엎드려 있는 나와 옆에 놓인 영정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떨리는 손가락을 내 코 아래에 대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비명을 질렀다.아주머니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네, 네, 주소는...”그녀는 전화를 끊은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그녀는 점점 멀어졌고, 나도 굳이 따라가진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내 앞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두 손을 모아 내 몸 앞에서 무언가 중얼거렸다. 곧 문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경계선을 치고 방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자연사였다.“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김민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와 어수선한 집 안 상황을 보며 눈에 띄게 짜증을 내었다. 상황을 파악한 후, 그는 경찰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 나는 김민수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다가와 두 손가락을 내 목 옆에 대어 내가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나는 그가 내 시체를 화장할지 말지 추측하고 있었다. 유골함이 옆에 놓여 있었으니, 그들은 내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모른 척한다고 해도 죽은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나는 허공에 떠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자, 미친 듯이 떨리는 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늘 생사에 관심이 없었던 나지만, 카운트다운이 줄어드는 걸 보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조용한 방 안에는 내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이대로 대답을 듣지 못할 줄 알았지만, 김민수는 말 한마디로 날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김수아, 이런 거짓말로 우리가 너를 불쌍히 여길 거라고 생각하니?] [우리를 집으로 불러들이려고 별 짓을 다 하는구나. 어릴 때처럼 우리가 쉽게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절대 잊지 마.]나는 한순간 벼락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내 얼굴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로봇처럼 계속해서 반복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주세요. 부탁이에요.”전화는 결국 끊겼다. 그러나 나는 전화가 끊기기 전, 김예린이 기쁜 목소리로 김민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희망 따위 가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아, 그들이 김예린을 대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잣말을 했다. 정말 미친 게 분명했다. 나는 한 가족의 오붓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바보처럼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마지막에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시간이 계속 흘러갔지만, 아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밤새도록 기다렸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3분밖에 없었다. 나는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너무 단순해서 돌이켜볼 만한 것조차 없었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비극이었다.나는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며 조용히 식탁에 엎드려 있었다. 옆에는 내가 준비한 유골함과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5, 4, 3, 2, 1...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방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나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또 김예린 때문일 것이다. 방금 전화를 건 사람은 분명 둘째 오빠, 김현우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불길한 존재였다.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모두 내가 이야기한 시간대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그동안 김지훈이 벌인 짓들을 떠올리자 나는 온몸이 떨렸다.엄마께서 돌아가신 날, 착한 의사 선생님이 날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러나 김지훈은 나를 집안의 작은 창고에 삼일 동안 가두었고, 먹을 것은 물론 마실 것조차 주지 않았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그렇게 3일 동안 가둬진 나는 이대로 죽게 될 줄 알았지만, 큰오빠 김민수가 천사처럼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김민수는 나를 창고에서 꺼내주었다. 비록 나한테 관심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한테 가장 잘해준 사람이었다. 김민수도 오늘 아침 내가 한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내가 계속 말을 하지 않자, 김지훈은 내게 겁을 주려고 귓가에 대고 가볍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너 하나 없애는 것쯤은 어렵지 않거든.”나는 몸이 굳은 채 놀란 눈빛으로 그가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후 나는 목적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머릿속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사진관의 여직원은 영정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내 말을 알고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나를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그 순간, 내 마음속의 억눌려있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낯선 사람의 한 마디 위로가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낯선 사람인데도 한없이 따뜻하기만 했다.사진관에서 나온 후, 나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준비한 유골함과 영정 사진을 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김민수를 찾으러 회사에 가기로 결심했다. 회사에 가본 적이 없어서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안내 데스크 직원이 나를 막더니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표님은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
나는 그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차가운 얼음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현우는 나를 악당이나 살인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심장이 아프고, 위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에 가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했지만, 테이블 위에는 말라비틀어진 빵 반 조각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빵을 집어 들고 호두 두 개를 까서 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지 못했다.아주머니는 지나가다가 나를 보더니, 눈을 흘기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보더니 일부러 놀란 척하며 말했다. “아이고! 아가씨, 그거 먹으셨나요? 그건 버리려고 둔 거예요.” “둘째 도련님과 예린 아가씨께서 일찍 일어나셔서, 저희가 좀 일찍 준비했거든요. 아가씨께서 아침 드시고 싶으시다면 지금 만들어 드릴게요.”아주머니의 연기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거절하고, 위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을 참으며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 집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아주머니들조차 늘 나를 무시했다.위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전해지자, 나는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통제를 꺼내 입에 넣고, 옆에 있던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그러자 통증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 같았다.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가볍게 했다. 창백한 얼굴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먼저 화장터에 갔다.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기에, 유골함을 맞춤 제작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무늬를 골라 내가 앞으로 머무를 ‘집’으로 삼았다.유골함을 안은 채 기쁜 표정을 짓고 있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한참 후, 나는 마침 김지훈의 학교를 지나쳤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학교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활기찬 소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열 살 이후로 학교에 가본 적이
세 명의 오빠들은 김예린에게 매우 잘해주었지만, 나한테는 관심조차 없었다.집안의 아주머니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종종 배고픈 채로 잠들며 열여덟 살까지 자랐다. 셋째 오빠, 김지훈은 항상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가끔 생각해 보았다. ‘내가 너무 나쁜 아이여서 죽지조차 못하는 건 아닐까?’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걸어가 세수를 했다. 머리카락은 지저분했고, 얼굴은 매우 수척했다. 아무도 나를 김씨 가문의 큰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머리 위에도 카운트다운이 생겼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 빨간색 카운트다운이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이날이 온 것이다.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내 모습을 살펴보았다. 나는 조용히 컵을 내려놓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한테는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이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한참 동안 생각한 후, 나는 천천히 내가 살던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내 원래 방은 김예린이 태어난 후 그녀의 드레스룸으로 바뀌었다.나는 늘 다락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김예린을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아무 걱정 없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숨어 그들의 행복을 엿보는 수밖에 없었다.이 시간에 둘째 오빠, 김현우와 김예린이 아직 집에 있을 줄은 몰랐다. 계단을 내려가자 김예린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넥타리를 들며 말했다. “둘째 오빠, 내가 넥타리 매 줄게.” 김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어설프게 넥타이를 매고 있는 김예린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김예린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눈썹을 찌푸린 채 말했다. “약간 비뚤어진 것 같아. 다시 풀고 오빠가 직접 매는 게 어때?”김현우는 넥타이를 풀지 않고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 처음인데 이 정도면 엄청 잘한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머리 위에 적힌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할아버지 머리 위에 있는 숫자를 보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부모님은 그냥 웃으며 장난으로 넘기셨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후, 아빠 머리 위에도 카운트다운이 보였다. 내가 그에게 말했을 때, 아빠의 미소는 잠시 굳었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를 보지 못했다. 급히 올리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엄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엄마는 이미 배가 많이 불러 있었고, 너무 급히 뛰다 문 앞 계단에서 넘어졌다. 그때, 나는 엄마의 머리 위에서 익숙한 카운트다운을 보았다.내동생 김예린이 그날 태어났다. 엄마는 대출혈로 인한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돌아가셨다. 나는 병실 밖에서 어쩔 줄 몰라 서 있었다. 셋째 오빠 김지훈은 나를 밀쳐 넘어뜨리며 괴물이라고 했다. 내가 아빠와 엄마를 저주해서 죽였다고 했다. 손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강하게 부딪혀 피가 조금 스며 나왔다. 나는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나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혐오가 가득했다.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 일어나 치마를 털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몸을 웅크려 구석에 앉아 문 밖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무릎을 끌어안고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아빠, 엄마...” 나는 그렇게 서서히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모두 떠나버린 것이다. 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을까? 난 이대로 버림받은 걸까?나는 당황하며 일어섰지만,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다리가 저려서 넘어졌다. 조용한 복도에는 깜빡이는 형광등만이 보였다. 몸이 아파서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