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보세요.”“제 생각에 대표님께 일어난 일이 둘째 도련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권씨 가문과 다른 몇 개 가문은 모두 제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째 도련님은.”서다희는 조금 난감해하고 있었다.부하인 그가 상사의 동생인 유남우를 찾아가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았다.게다가 그가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곳을 혼자서 다 찾아갈 수도 없었다.박민정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제가 찾아가 볼게요.”“네.”서다희는 또 당부했다.“만약 곤란한 일이 있으시면 고 사모님을 찾아가세요.”고영란은 분명 큰아들에게 벌어진 일을 앉아서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서다희는 그제야 안심하고서는 부하들과 권씨 가문으로 향했다.권씨 가문의 사람들이 대표님을 데려가지 않았더라도 대표님이 파티 이후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것은 분명 권씨 가문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30분 뒤.권씨 가문은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였다. 권해신은 너무 당황스러웠다.“서 비서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서다희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유 대표님 어디 계세요?”“서 비서님 그쪽 대표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서 비서님이 유남준을 잃어버렸어요?”권해신은 당황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는 밖에 어두운 무리를 바라보며 약간 의문스러웠다.‘유남준은 이미 실권을 잃지 않았나? 왜 저렇게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어?’서다희는 권해신의 말에 바로 손을 들어 콧등에 금테 안경을 밀어 올렸고 다른 한 손으로 권해신의 손목을 부러트렸다. 투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아.”권해신은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말했다.“서 비서. 말로 해. 난 정말 유 대표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다희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다른 한쪽 손도 필요 없으세요?”권해신은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서 비서가 내 양쪽 손목을 다 부러트려도 난 정말 몰라.”시간은 1분 1초 흘러갔고 서다희는 더 이
조하랑은 자기 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열었다.“저기 그만해요. 이 사람은 예찬이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먼저 바지를 잡아딩긴 것도 예찬이고요.”조하랑은 예찬이를 찾은 다음에 왜 다른 사람의 바지를 잡아당겼는지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김인우도 조금 조급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몇 시간 동안 감시 카메라를 보며 이미 짜증이 쌓일 대로 쌓여 인내심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조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요? 내 이름 몰라요?”웃음기를 뺀 김인우의 모습에 조하랑은 겁을 먹었다.김인우는 미간을 문지르며 부하에게 지시했다.“그럼 그냥 쫓아내.”“네.”조하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감시 카메라 영상을 봤다.김인우는 또 부하에게 밖에 있는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라고 했다. 하지만 예찬이는 애초에 밖에 나가지 않았다.“이 녀석이 설마 아직도 호텔 안에 숨어 있는 거 아니야?”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바로 호텔 매니저에게 말했다.“오늘 이 호텔에 묵고 있는 손님들 전부 비워요. 그럼 꼬맹이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조하랑은 김인우가 정말 예찬이를 걱정하는 모습에 더는 그를 비난하지 않고 호텔직원과 함께 예찬이를 찾았다.유씨 가문.유남우는 이때 집에 앉아 잠도 자지 않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윤소현은 이미 윤씨 가문으로 돌아가서 그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그는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고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전화를 받았다.“서방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유남우는 이미 문자를 받아 서다희가 유남준을 찾으러 갔으니 분명 박민정이 와서 유남준의 일을 물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민정 이렇게 늦었는데 무슨 일이야? 난 이제 자려고.”박민정은 그가 이제 자려고 한다는 말에 서다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남준이 갑자기 실종된 것이라면 유남우와 반드시 관련이 있을
유남우는 과거의 추억이 떠오를수록 더욱 기분이 안 좋았다.“나도 파티에 참석했어. 근데 형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네.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형을 찾고 있었어?”“네. 서방님도 모른다니까 이만 가볼게요.”어쩌면 과거가 유남우에게 한 겹의 빛을 선사하고 있는 것인지 그와 관련된 기억에는 한 겹의 필터가 깔린 것처럼 박민정은 그가 나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박민정이 차에 타려고 할 때 유남우가 먼저 그녀의 앞을 막았다.“나도 같이 형 찾으러 가자.”“아니에요. 가서 쉬세요.”박민정은 바로 거절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를 불러낸 것만으로 그녀는 이미 미안했다.“안 돼. 이렇게 늦었는데 너 혼자서 형을 찾게 하는 건 너무 걱정돼.”유남우는 말을 끝낸 뒤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운전석에 올랐다.“가자. 운전은 내가 할게.”박민정은 상황을 보고 더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네.”유남우는 차를 몰고 도시 중심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이렇게 단둘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형은 파티에서 사라졌어?”“아니요. 파티가 끝난 뒤예요.”유남우는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근처 감시 카메라 찾아보라고 할게.”“아니에요. 이미 찾아봤어요. 근데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에서 남준 씨가 사라졌어요.”박민정은 사실을 얘기했다.“그럼 사각지대를 지나간 차량이나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할게.”유남우가 또 말했다.“네.”유남우는 전화를 걸어 부하에게 오늘 밤 안으로 유남준의 소식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두 사람은 호텔 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차의 속도를 줄였다. 그렇게 해야 두 사람이 더 편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진주시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도시였다. 사람 하나를 찾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비슷했다.박민정은 유남우가 아무런 소식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우는 전화를 받았다.그는 차를 세워놓고 진지한 얼굴로 받았다.“어떻게 됐어?”“민
“난 한 번도 남준 씨가 의식을 회복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며칠 전에 내가 남준 씨한테 물었는데 아니라고 했어요.”박민정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유남우에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냥 혼잣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지금 아직 임신 중이었기에 감정 기복이 크면 안 좋았다. 그녀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괜찮아. 또 속은 걸 거야.’‘괜찮아. 화내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자.’‘괜찮아. 이렇게 되면 이제 완전히 유남준에게서 벗어날 수 있잖아.’박민정은 계속해서 마음속으르 자신을 위로했다.유남우는 그녀의 상태를 알아차리고서는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괜찮아요. 내가 있잖아요.”박민정은 멈칫하며 유남준에게 잡힌 자기 손을 바라보고서는 순간적으로 바로 손을 빼냈다.유남준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녀도 같이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남우 씨는 윤소현 씨의 약혼자예요.”그녀는 상기시키며 말했다.유남우는 텅 빈 손을 바라보며 살짝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바로 부드럽게 말했다.“네가 오해한 거야. 내 말은 난 언제나 네 편에 서겠다는 말이었어. 우리 아직 친구잖아? 넌 걱정하지 마. 형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난 형 편을 들지 않을 거니까.”박민정은 그제야 안심했다.그녀는 차 안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새벽 1시였다.“우리 이제 돌아가요.”“그래.”유남우는 차를 몰고 먼저 박민정을 데려다주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유남우는 때때로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며 운전대를 꽉 잡았다.그는 어떤 수단을 쓰든 꼭 박민정을 되찾을 것이다.‘형. 날 너무 비난하지 마. 형이 먼저 내 물건을 뺏어간 거니까.’두원 별장에 도착자 박민정은 차에서 내리며 유남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이 차는 먼저 내가 갖고 갔다가 내일 돌려줄게.”“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혼자서 별장으로 들어갔다.돌아가서 그는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서 비서님. 남준 씨 찾을 필요 없어요.”서다희가 궁금해하고 있을 때
박민정은 유남우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사진을 회상했다. 사진 속 유남준은 제대로 서 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지원과 검은 옷의 경호원, 두 명이 부축해야 서 있을 수 있었다.유남준은 좀처럼 술에 취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는 건 더더욱 드문 일이었다.애초에 박민정이 그에게 술을 먹이려고 했을 때도 성공하지 못했다."윤우야, 엄마가 갑자기 아직 할 일이 생겼어. 엄마 기다리지 말고 어서 자."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박민정이 황급히 나가자 박윤우는 혼잣말했다."저는 당신을 도우려는 게 아니에요, 아빠. 젊을 때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죠. 전 그저 당신이 저와 형에게 부유한 환경을 좀 더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박예찬 말고는 아무도 박윤우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몰랐다.그는 사람들과의 대화, 표정 등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십중팔구는 맞았다.이것은 심리학 전문가와 유사하지만 그의 감은 매우 강했다.방금 박민정이 서다희와 전화하는 것만 듣고도 대충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집을 나선 박민정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다시 차를 탄 뒤 눈을 감고 유남우가 자기에게 사진을 보내준 호텔을 떠올렸다.그녀는 그 호텔을 좀 익숙했고 어디서 본 것 같았다.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녀는 차를 몰고 시내로 가서 내비게이션으로 모든 호텔을 검색한 뒤 하나하나 찾아다녔다.그녀는 유남준과 자기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고, 또한 그를 찾아서 가난한 척을 했던 것과 기억상실증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마침내 박민정은 사진 속 그 호텔과 똑같은 외관을 가진 호텔을 찾았다.마스크를 쓴 채 차에서 내린 그녀는 밖으로 나와 서다희에게 사진과 주소를 보낸 뒤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갔다."방 하나요.""네."프런트 데스크에서 바로 그녀에게 방을 하나 내주었다."여기요, 6층입니다."이 호텔은 총 8층이었다. 박민정에 카드를 가져와서 일단 혼자 찾아보기로 했다."감사합니다."호텔의 로비는
유남준이 저 말을 들었다면 그들을 모두 죽였을 것이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서다희에게 문자를 보냈다.서다희에게서 답장이 왔다."지금 가고 있어요."그는 박민정이 왜 갑자기 변했는지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일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다희는 사람들을 데리고 호텔 전체를 에워쌌고 위층의 모든 관리자를 통제한 후에야 8층으로 올라갔다.유남준의 방 번호를 알게 된 경호원들은 문을 부수었다.들어가자마자 박민정은 욕실에서 나와 목욕 수건을 두른 유남준이 눈에 들어왔다.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가 이지원과 관계를 가진 줄 알았던 박민정은 샤워를 마치자마자 축 늘어진 손을 살짝 조였다.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그를 애태웠다.유남준은 곧장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유남우?"서다희는 대표님이 이러는 것을 보고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다.‘옷을 이렇게 입었으면... 정말 이지원이랑 잠자리를 가진 거야?'유남준이 다치지 않은 걸 보고 그는 경호원더러 먼저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부부 싸움을 방해하지 말고 말이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누군가가 그의 여자 친구에게 약을 먹였다고 해도 다른 남자와 잤다면 그는 한동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었다.박민정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유남준은 방에 들어온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정말 유남우인 줄 알았다."이런 걸 한다고 해서 민정이가 날 떠날 것 같아? 민정이는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박민정은 어리둥절하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유남준은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여인의 몸에서 나는 희미하고도 익숙한 체취를 맡더니 그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민정아...""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유남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민정아... 민정아... "그는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말
"병원에 안 가면 어떡해요? 당신... 읍..."박민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은 입으로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약 효과 때문이 아니라고 확신했다."남준 씨, 그러지 마..."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박민정은 거절하고 도망치려고 했다.그럴 때마다 유남준은 그녀를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입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당신 입에서...""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서 혀를 깨물었어."그는 목이 메었다.박민정이 멍해 있을 때, 그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몸에 걸쳤던 가운이 벗겨졌다. 그녀도 찬물로 샤워를 한 탓에 그의 몸이 시뻘겋게 언 것을 보았다.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유남준은 그 틈을 타서 그녀를 자기의 아래에 눕혔다. 하룻밤이 지난 후 천천히 눈을 뜨자 바닥에 흐트러진 옷이 보였다. 그녀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유남준의 품에 안겼다.어젯밤 그는 그녀가 아무리 거절해도 듣지 않았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한참을 뒤척였지만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박민정이 잠에서 깬 것을 눈치챈 유남준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비록 그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자기와 많이 가까워졌다고 느꼈다."민정아, 민정아..."그는 목젖을 굴리며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 그리고 유남우가 한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당신, 지금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기억... 이미 회복된 거 맞죠?""그리고 또 무슨 빚이 많다고 했던 건 다 거짓말인가요?"유남준이 멍해졌다."누가 그래?""누가 알려줬든 상관하지 말고 먼저 말하세요, 맞죠?"이제 와서 계속 거짓말을 할 정도로 그는 어리숙하지 않았다."응, 맞아."박민정이 순간적으로 화를 냈다.원래 그녀는 어젯밤에 유남준의 모습을 보고, 또 유남우가 이지원을 데려왔다는 걸 듣고 유남우가 자기를 속인 줄 알았는데 유남준이 속인 게 사실 일 줄 몰랐다."왜 거짓말 했어
유남우는 그 문자를 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이지원이 실패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가 호텔 밖을 지키라고 보낸 사람들은 모두 서다희가 데리고 간 사람들에 의해 처리되었고 기자들은 하나같이 호텔로 가지 않았다.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기침을 심하게 했다."둘째 도련님, 의사를 불러올까요?"부하가 물었다.유남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말을 마친 그는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박민정의 연락처를 열었다가 한참 지나서 다시 닫았다.한편, 유남준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어젯밤 모든 것이 다 유남우가 시킨 짓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녀는 믿지 않았다. 어젯밤에 유남우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 유남준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유남우가 보여준 사진이 없었더라면 그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이지원을 만나고 싶어요.""그래."이지원은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서 마음이 불안했다.이번에는 누가 그녀를 구하러 올 수 있겠는가.갑자기 지하실 문이 밖에서 열리면서 빛이 들어왔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빛을 막았다. 강렬한 빛에 한참을 적응하던 이지원의 시선은 박민정을 향했다.그녀는 멍해졌다.박민정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낭패한 모습으로 지저분한 곳에 버려진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의 연민의 감정도 없었다."이지원 씨, 오랜만이네요."그녀가 입을 열었다.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간 듯했다.박민정은 아버지를 따라 보육원에 후원하러 갔었고 그녀는 누더기 차림으로 고아들 틈에 서 있어 부잣집 아가씨인 그녀와 비교가 되었다.이지원은 자기가 이젠 신데렐라가 아니라고, 이젠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처음대로 돌아갔다.하느님은 너무 불공평했다.이지원의 눈에는 질투와 한이 서려 있었다."왜? 왜 당신은 여전히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 거죠?"그녀의 달갑지 않은 말을 들으면서도 박민정은 여전히 평온했다."제가 여기에 온 건 어젯밤 일을 물어보기 위해서예요. 정말 유남우가 계획한 것이 맞나요?"이 말을 들은 이지원은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남준
고영란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윤소현의 말투를 들으며 왜 이런 여자가 유씨 가문에 시집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혀 상류층의 여인 다운 기품이 없었다.“그럼 남준이는? 아직도 안 왔어요?”잠시 망설이던 집사가 대답했다.“큰 도련님은 지금 두원 별장에 계십니다. 설날엔 안 오실 거라고 하셨어요.“박민정을 찾지 못한 유남준이 아직도 우울에 빠져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고영란은 더 묻지 않았다.“알겠어요. 이제 음식 준비 부탁해요.”“네.”집사는 곧바로 사람들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영란은 두 아이를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식탁에는 윤소현, 박윤우, 박예찬 그리고 고영란 이렇게 네 명뿐이었다. 오늘따라 식탁이 아주 썰렁하게만 느껴졌다.“고기 많이 먹어.”고영란은 두 아이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윤소현은 두 아이에게 지나친 애정을 쏟는 고영란을 바라보며 질투심으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음식을 먹었다.그때, 식탁으로 다가온 집사가 말했다.“사모님, 정 대표님이 오셨는데요.”정수미는 박민정이 자신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박민정의 행방을 찾는 동시에 네 명의 외손자들을 자주 찾아왔다.그녀는 이제라도 박민정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해 외손자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쏟아붓고 있었다.“고마워요.”고영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미를 맞이하러 갔다. 그리고 윤소현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고영란의 뒤를 따라나섰다.하지만 박윤우와 박예찬은 식사에만 집중하며 정수미의 등장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아이들 역시 이제는 정수미가 엄마의 친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엄마, 저녁 식사 중이었는데, 같이 드실래요?”윤소현은 웃는 얼굴로 정수미에게 말했다.하지만 정수미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이미 먹고 왔어. 이번에는 그냥 아이들 보러 온 거야.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네.”윤소현은 정수미의 냉한 태도를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
1년 후, 설날.해외의 어느 한 소도시.박민정은 직접 송편을 빚으며 설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유남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남우 오빠, 언제 도착해?”유남우는 이미 공항에 도착한 상태였다.“아마 저녁 9시쯤 도착할 거야.”“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박민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유남우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그래도 배고프면 먼저 먹고 있어. 알겠지?”“알겠어, 나도 바보 아니거든.”박민정이 웃으며 대꾸했다.곧 비행기를 타야 했던 유남우는 아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비행기에 올라탄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지난 1년 동안 그는 박민정을 여러 장소로 옮기며 정기적으로 그녀에게 최면을 걸어왔다.그로 인해 박민정은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이제는 유남우와 유남우가 만들어준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었다.유남우는 가족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가지는 않았다. 해외로 나간다고 해도 그저 일 때문이라고만 둘러댔다.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설날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마침 걸려온 박민정의 전화에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올해 설 만큼은 박민정과 함께하고 싶었다.그 시각, 유씨 가문의 집.윤소현은 방 안에서 쉴 새 없이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짜증 내고 있었다.“왜 이렇게 울기만 하는 거야?”베이비 시터가 다가와 말했다.“배가 고픈 모양이네요. 제가 데리고 나가서 우유 먹일게요.”“얼른 데리고 가, 얘 정말 짜증 나 죽겠네.”윤소현은 아들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돌이 지난 두 남자아이와 함께 있던 고영란의 모습을 보자마자 질투심이 밀려왔다.“어머님, 편애가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다혜 울고 있는 건 들리지도 않으세요? 손자들 돌봐주실 시간은 있으시면서 손녀는 신경도 안 쓰시네요?”고영란은 그녀의 불평에 눈살을 찌푸렸다.고영란은 손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다혜에게는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았다.윤소현이 낳은 딸은
“정말 실망이다.”정수미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윤소현은 힘겹게 일어나 그녀를 쫓아가며 말했다.“엄마, 함미현 일 기억 안 나세요? 저도 그때처럼 될까 봐 두려워서 그랬어요. 엄마도 아시잖아요.”정수미는 함미현 얘기가 나오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정말 함미현한테 진실을 안 물어봤을 것 같니?”그 말에 윤소현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설마 정수미가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조사를 마쳤을 줄은 몰랐다.“함미현 일은 제가 다 말씀드렸잖아요. 엄마가 어렵게 찾은 딸을 잃게 될까 봐, 혹시라도 진실을 알게 되면 상처 받으실까 봐 그랬던 거예요.”정수미는 그 말에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내가 상처받을까 봐 그랬다고? 그런데 미현이는 네가 박민정이 친딸이라는 걸 알고 그랬다고 하던데. 내가 평생 친딸을 못 찾게 하려고 미현이한테 연기시킨 거라더라.”윤소현이 변명해 보려고 했지만 정수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제 거짓말 좀 그만해. 너 계속 이럴 거면 나도 더는 너 내 딸로 인정 못 해.”그 말에 윤소현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정수미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윤소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진짜 딸을 찾았다고 이제는 날 버리겠다는 거야? 박민정을 원한다는 거야? 하지만 이걸 어째. 박민정한테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윤소현이 중얼거렸다.밖으로 나온 정수미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비서의 기척을 느꼈다. 비서는 애써 정수미를 위로해주며 말했다.“아가씨께서는 아무 문제 없으실 겁니다.”정수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난 정말 실패한 엄마야. 친딸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바로 옆에 내 딸을 두고도 못 알아봤어. 그런 주제에 양딸이 그렇게나 버릇없이 굴었는데도 난 계속 감싸기만 하다가 내 친딸을 해칠 뻔했어. 아마 민정이는 지금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비서를 통해 알아본 박민정은 마지막으로 정수미를 만났던 날, 심각한 모욕을 당하고 조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소식
박예찬은 연락이 닿는 순간, 박윤우가 서둘러 물었다.“형, 엄마 어떻게 됐어?”박예찬 역시 박윤우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금방 수술을 마치고 나온 동생을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무슨 소리야, 그게? 엄마 잘 계셔.”박윤우는 형마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스럽게 이마를 찌푸렸다.“형까지 나를 세 살 먹은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가 날 보러 안 왔다는 건, 분명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잖아. 그리고 요즘 아빠도 거의 매일 밖에만 있고, 정민기 아저씨도 요즘 사람을 찾고 있다는 걸 들었어. 엄마 실종된 거 맞지?”박예찬은 동생이 이 정도로 많이 알고 있을 줄 몰랐다.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더는 숨기지 않았다.“맞아, 엄마 실종됐어. 그리고 아직도 못 찾았고.”“어떻게 그럴 수 있어?”박윤우는 확신 어린 소식을 듣는 순간, 밀려오는 걱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엄마 납치당한 거 아니야?”“그럴 가능성도 있지.”박예찬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넌 이제 막 수술을 끝냈으니까 잘 쉬어야 해. 절대 다른 사람들 걱정시키지 말고, 엄마 돌아오실 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야 해. 그래야 엄마도 기뻐하실 거야.”박윤우는 자신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알겠어.”전화를 끊은 아이는 다시 병상에 누웠다.최근 며칠 동안 정수미도 손자들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다.지금 그녀는 밀려오는 후회를 멈출 수 없었다. 만약 박민정을 조금만 더 일찍 찾았더라면,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그날, 윤소현은 풀려났다.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장 정수미에게 달려가 울음을 터뜨리며 하소연했다.“엄마, 저는 다시는 못 돌아오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그 나쁜 놈이, 유남준이 저를 가둬놨어요. 너무 어둡고, 너무 조용해서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임산부를 그런 곳에 가둬놨어요!”정수미는 그런 윤소현의 불쌍한 표정
유남준의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있었고 정돈되지 못한 모습이 전반적으로 초췌해 보였다.“이지원 조사하고 왔는데, 민정이의 실종과는 아무 관련도 없던데요.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예요?”만약 윤소현이 임신 중인 아이가 유씨 가문의 아이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정수미의 양녀만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당장이라도 윤소현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윤소현의 수려한 얼굴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그럴 리 없어요, 이지원이 분명 저한테 그랬다고요. 박민정이랑 그 두 아이들 처리해준다고...”윤소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남준은 천천히 윤소현의 앞으로 다가갔다.“말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정말로 이지원이었어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요.”윤소현이 다시 대답했다.유남준은 바닥나버린 인내심에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윤소현은 다시 어둠과 침묵 속에 갇혀 버렸다.“남준 씨, 얼른 저 내보내 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발 나 좀 꺼내달라니까!”그제야 윤소현은 자신이 유남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밖으로 나온 유남준은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찍혀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정수미에게서 온 것들이었고, 다른 몇 통은 고영란에게서 온 것이었다.그는 제일 먼저 정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무슨 일이시죠?”“유 대표, 민정이 소식은 있나요?”정수미가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 없습니다.”유남준이 대답했다.정수미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더욱 절망스러워졌다.“그럼... 소현이는 어떻게 됐나요?”윤소현은 어릴 때부터 정수미가 직접 지켜봐 왔던 아이였고, 그 아이와 깊은 정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었다.“소현 씨도 아무 일 없습니다.”“그럼, 소현이 좀 풀어줄 수 있을까요? 내가 직접 물어볼게요.”정수미가 다시 물었다.정수미는 어렸을 때부터 온갖 호사만 누리며 살아온 윤소현이 그런 감금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수미 본인 역시 윤소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엄마...”이지원은 떠보듯 정수미를 부르고는 말을 이었다.“엄마, 언니가 사라졌어요.”그녀는 박민정의 일부터 처리한 후 윤소현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도무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정수미는 멍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뭐?”“소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저도 모르겠어요. 오늘 언니랑 같이 산부인과 검진 가려고 했는데, 어딜 갔는지 갑자기 사라졌어요.‘이지원이 대답했다.정수미는 멍한 표정으로 이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상황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유남준이 사람들을 데리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윤소현은 제가 가둬놨습니다.”유남준이 말했다.정수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현이는 왜 가둔 거죠?”“민정이의 실종은 분명 윤소현이랑 관련이 있으니까요.”유남준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이지원에게로 옮기며 말했다.“윤소현이 그러더라, 이지원 네가 내 아이들 데리고 갔다고. 민정이는 아이들 찾으러 간 거라고 하던데, 어디로 데려간 거야?”그 말에 이지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준 오빠?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어요? 저랑 민정 언니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하지만 유남준이 그녀의 말을 믿어줄 리 없었다.곧바로 몇 명의 경호원이 다가와 이지원을 제압했다.“끌고 가!”이지원은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유남준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그녀가 스스로 이곳에 등장한 것도 전부 유남우 때문이었다. 그가 이지원에게 직접 유남준을 찾아가 박민정의 실종이 자신과는 관련 없다는 사실을 어필하라고 조언해주었기 때문이었다.“오해예요, 오빠. 소현 언니가 왜 그런 얘길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민정 씨 아이들 데리고 간 적 없어요.”뒤이어 그녀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엄마, 엄마.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그동안 집에만 있었고, 어디 간 적도 없어요.”하지만 정수미는
정수미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대답했다.“유 대표는 이미 내가 민정이 친엄마라는 걸 알고 있었죠?”유남준은 그 말에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그런데 대표님은 제 말 안 믿었잖아요.”정수미는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내 잘못이에요... 저도 너무 후회 중이에요.”그동안 윤소현이 늘 박민정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늘어놨던 탓에 정수미는 박민정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못했다.그 탓에 정수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박민정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줘버렸다.박민정이 자신을 찾아왔던 그때도, 정수미는 그녀를 가차 없이 비웃고 쫓아내 버렸다.“지금 민정이 어디 있어요? 찾았어요?”눈시울이 붉어진 정수미가 다시 물었다.유남준은 폐허로 시선을 돌리며 자신의 손에 꽉 쥐고 있던 반지를 보여주었다.“마지막으로 추적된 곳이 여기인데, 방금 민정이 반지를 찾았어요.”그가 낮게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정수미는 몸을 휘청이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기색을 보였다.놀란 비서가 다급히 정수미를 부축해 주었다.“대표님.”“얼른, 얼른 주변 수색해!”정수미가 지시했다.“알겠습니다.”비서는 곧바로 인력을 충원해 폐허 속에 남았을지도 모를 박민정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밤이 깊도록 폐허 속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박민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박민정과 관련된 물건만 몇 가지 발견되었을 뿐이었다.비서는 멍하니 서 있는 정수미의 곁에 서서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아가씨 말이에요,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죠?”그 말에 정신을 차린 정수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비서를 올려 보았다.“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대로 봐야 할 것이고, 죽었다면 죽은 대로 시체를 봐야만 했다.정수미는 박민정이 이렇게 실종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민정이 여기 없는 거 확실해. 다른 데서 계속 찾아봐.”“네.”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유남준도 폐허
“뭐라고요?”정수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어떻게 실종됐다는 거예요?”“저도 잘은 몰라요.”설인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아무튼 벌써 이틀이에요. 이틀 동안 찾아 헤매는 중인데 도통 안 보이네요.”그 말을 들은 정수미가 몸을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지만 그런 그녀를 비서가 붙잡아 주었다.“조심하세요, 대표님.”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정수미는 비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겨우 찾았는데 실종이라니?”“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누가 데려갔는지는 알아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비서가 애써 정수미를 위로했다.“그래, 얼른 사람 보내서 민정이 좀 찾아내.”정수미가 말했다.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박민정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박민정을 찾아낼 것이다.“알겠습니다.”정씨 가문에서도 사람들을 시켜 전국적으로 박민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힘없이 자리를 뜨는 정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인하는 의아했다. 정수미가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민정 씨, 제발 빨리 좀 돌아와요.”설인하가 혼자 중얼거렸다....한편, 유남준은 거의 진주 시내 전체를 뒤집다시피 했지만 박민정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유남준은 주변 지역에까지 사람을 보내 수색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그렇게 마침내, 단서를 발견했다.유남준은 즉시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그리고 정수미는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 역시 박민정을 찾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결국, 두 세력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박민정을 수색하기로 했다.그렇게 수색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사람들은 곧장 단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오직 불에 다 타버린 집뿐이었다.차에서 내린 유남준은 망설임 없이 까맣게 불타버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민정아!
그녀가 쥔 친자 확인 감정서에는 두 사람이 모녀 관계라고 적혀 있었다.비서는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온 서류들을 건네며 말했다.“이번엔 틀림없습니다, 대표님. 박민정 씨는 대표님의 친딸이 확실합니다. 지난번엔 저희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친자 확인 감정서를 쥔 정수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어떻게... 그 걔가 어떻게 내 딸이야?”박민정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수미는 너무 갑작스러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그녀 역시 자신이 친딸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 짓들이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제 어떡해야 하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어떻게 날 이런 식으로 갖고 놀아?”정수미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친자 확인 감정서를 손에 꼭 쥐고 있던 그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괴로웠다.“내가, 내가 그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라는 작자가 딸한테 오히려 모욕감만 잔뜩 줬으니...”정수미의 마음은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오랫동안 찾고 있던 딸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왔다.더군다나 친딸을 괴롭히는 자신의 양딸을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돕기까지 했다.비서 역시 이런 운명의 장난에 착잡함을 느끼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잖아요. 조금 더 일찍 아셨더라면 민정 씨를 해치지 않으셨을 겁니다.”정수미는 비서의 위로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책을 멈추지 않았다.“그 아이가 날 찾아왔을 때도 난 상처만 잔뜩 줘버렸어. 얼마나 아팠을까.”오랜 세월 동안 눈물이라는 것을 거의 흘려보지 않았던 정수미였지만 하늘의 장난과도 같은 이 상황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난 정말 나쁜 년이야! 어떻게 친딸한테 그럴 수가 있어!”만약 이 세상에 후회 약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전 재산을 내걸고서라도 얻고 싶을 지경이었다.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정신 차리라며 자신의 뺨을 수차례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