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종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혜성그룹 진 회장의 남편이 이동혁인데 나와는 특별한 사이라서 말이야.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당연히 도와야지. 환자가 있어서 이만 끊을게. 부탁하마.” 차인표는 질투가 좀 났다. 그는 예전에 하원종한테 자신의 회사 광고에 출연해 달라고 했을 때 욕을 많이 먹었었다. ‘진 회장의 남편인 그 이동혁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그는 서둘러 비서를 시켜 동혁의 정체를 조사하게 했다. “이동혁은 처갓집에 얹혀사는 데릴사위입니다. H시에서 소문난 쓸모없는 인간이지요. 음, 물론 그의 아내가 두 그룹의 회장이지만 그저 H시라는 작은 지역에서만 유명할 뿐입니다.” “선생님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정재계 인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분인데 어떻게 이런 쓸모없는 인간과 특별한 사이라는 거지?” 차인표는 너무 궁금했다. 그는 동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장님, 또 몇 가지 정보가 있습니다. 하 선생님께서 이동혁 장인어른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고 계십니다. 또한 얼마 전 사람을 때린 일로 온 인터넷이 혜성그룹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한데 사람을 때린 범인이 바로 그 이동혁이라는 사람입니다. ” 비서가 계속 보고했다. “아, 그러니까 선생님의 동정심을 이용했고만. 선생님의 명성을 빌려 혜성그룹의 추락한 명성을 되살려 보겠다 이거지?” 차인표는 냉소를 금치 못했고, 마음속으로 혜성그룹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스승인 하원종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H시로 출발했다. ‘선생님께서 기업 홍보를 하시겠다고 하는데, 굳이 혜성그룹의 것을 받아서 스스로 창피당하실 필요가 없잖아?’ ‘차라리 선생님께서 기업 홍보를 받겠다는 소식을 흘려 다른 경쟁력 있는 회사와 경쟁을 시켜 혜성그룹을 제거하는 것이 낫겠어.’ 차인표는 골돌이 궁리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내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대기업들에게 엄청난 인정을 베풀어 내게 필요한 인맥을 쌓을 수 있으니까.’...한편, 리성투자회사. 얼굴에
“그거 믿을 만한 정보야?” 오한민은 천송이에게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하원종이 지금까지 그 어떤 기업의 모델 제의도 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한민은 흥분했지만 의심을 버리지는 못했다. “믿을 만한 정보인 게, 차 사장님이 직접 소식을 전한 겁니다.” 천송이가 말했다. 오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 사장은 어느 자리에서나 자기가 하 선생님의 제자라고 자랑하고 다녔지. 그것으로 회사의 판로를 열고 나에게 도와달라고도 했었어. 차 사장이 소식을 전했다면 분명 사실일 거야.” 오한민은 차인표와 오랜 지인이어서 차인표의 성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차인표는 곳곳에서 자신을 하원종의 제자로 소개하며 하원종의 명성을 이용해 불과 몇 년 만에 N도 재계에 자리를 잡았다. “부사장님, 우리 종합병원 몇 곳을 홍보할 모델을 찾고 계셨잖아요. 하 선생님을 모셔오면 앞으로의 사업이 성공할 겁니다.” 천송이가 말했다. 오한민이 흥분하여 말했다. “그래, 정형외과 최고 의사시잖아. 우리 종합병원들을 모두 정형외과 전문 병원으로 바꾸는 는 거야. ” “그리고 하 선생님의 명성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전국으로 확장시키는 거지.” ‘하 선생님의 명성에 더해 막대한 자본력이 있다면 정형외과 병원을 세포처럼 증식하고 확장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우리 리성투자회사에서 가장 풍족한 것이 자본이니까.’ ‘N도 이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우리 뒤에 있으니 자금 조달은 아무것도 아니지.’ 오한민은 흥분 가득한 눈빛으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하 선생님을 반드시 우리 병원의 모델로 만들어야 해.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병원들이 대박이 날 거야.” “천 실장, 차 사장의 행방을 주시하고 그가 H시에 도착하면 즉시 내게 알려죠.” 오한민은 자신의 예쁜 여비서 천송이에게 지시했다. “예, 부사장님.” ... 한편 차인표는 H시에 도착해 다이너스티호텔에 예약한 스위트룸에 짐을 풀었다. 그는 하원종의
“차 사장님이 왜 오한민을 만나는 거죠?” 세화가 궁금해했다. ‘오한민이라면 N도 이씨 가문 사람이잖아. 전에 제원화와 함께 내 회사를 차지하려고 했던 그 사람 맞지?’ 차인표의 여비서가 공손히 상대방을 위층으로 모시는 것을 보고 세화는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회장님, 오한민이 H시에서 인수한 종합병원들을 활성화시키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아마 저쪽도 하 선생님을 모셔서 병원 홍보를 맡기고 싶은 거 아닐까요?” 이연홍은 약간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같은 전문 경영인인 만큼 그녀는 오한민이 분명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화는 얼굴에 약간의 반감을 드러냈다. “그럴 리가요? 그 몇몇 종합병원은 보험 사기와 허위 선전으로 H시에서 이미 평판이 안 좋잖아요.” 세화는 하원종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오한민의 병원들을 홍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연홍은 하원종이 오한민의 병원을 홍보할지 여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걱정은 오직 하원종과 혜성그룹의 협업이 오한민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회장님, 리성투자회사가 우리 혜성그룹이 하 선생님과 협업하는 것을 암암리에 방해할까 봐 걱정돼요.” “제가 이미 N도의 한 친구를 통해 들었는데 천용훈 사건이 인터넷에서 퍼지자마자 N도 방송국에서 저희와의 계약을 취소한 것도 오한민의 개입이 있었던 거 같더라고요.” 이연홍은 천용훈의 영향력이 절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즉시 N도 방송국과 관련한 조사를 지시했었다. 그 결과 오한민이 뒤에서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한민이 왜 우리에게 이러는 거죠?” 세화가 놀라며 물었다. “지난밤 태백산장에서 이 선생님께 맞은 사람 중에 천용훈 외에 오한민의 아들 오반석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연홍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전에 오한민이 이미 이 선생님께 3일 안에 이천성을 돌려보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회장님께서 이번에 이 선생님을 설득하시면 어떨까요
“이것은?” 차인표가 서류를 받았다. 오한민이 웃으며 말했다. “차 사장, 일단 일만 잘 성사되면 하 선생님의 모델료 외에도 차 사장의 회사가 100억의 투자를 받을 수 있어요. 차 사장이 여기에 서명하는 즉시 자금이 회사 계좌로 들어갈 겁니다.” 차인표는 흥분하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다. ‘투자 금액이 크긴 하지만 이건 하나의 거래일뿐이야.’ ‘오한민은 이 거래로 내 회사에서 상응하는 주식을 가져갈 테니까.’ 차인표는 하원종의 영향력이라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사장님, 절 어떻게 보시고? 좀 섭섭합니다. 투자라니요? 부사장님이 예전에 절 어떻게 도와주셨는데...” 허세를 부리는 차인표의 모습에 오한민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차 사장이 잘 모르겠지만, N도 이씨 가문도 우리의 이번 협업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이씨 가문의 천기 도련님이 두 다리가 부러져 예전에 하 선생님께 치료를 부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씨 가문에 무슨 오해가 있으신지 이씨 가문에서 여러 번 연락을 취해도 모두 거절당했지 몹니까?” “이씨 가문은 이번 협업으로 양측의 앙금이 풀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차 사장은 하 선생님의 제자로 이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될 겁니다.” ‘N도 이씨 가문과 연이 생긴다고?’ 차인표는 더 크게 흥분하여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고, 그의 두 눈이 빛났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꿈에서라도 바라는 일이야.’ “좋습니다. 제가 반드시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설득해 이번 협업을 성사시켜 보겠습니다.” 차인표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이 오한민의 제안을 승낙했고 주저하지 않고 하원종을 팔았다. “역시 우리 차 사장이 아주 시원시원해서 좋다니까. 하하.” 오한민은 일어서서 차인표와 악수를 하고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쳐다보며 웃었다. “밥 먹을 시간이네요. 차 사장에게 제가 식사를 대접하죠. 우
이연홍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문 실장은 차 사장의 비서이니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면 이런 문 실장의 태도는 분명 차 사장의 생각을 반영하는 거야.’ ‘설마 차 사장이 하 선생님께서 우리 혜성그룹과 협업하는 것을 방해하는 건가?’ 세화 역시 마음속에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문 실장님, 말 조심해 주세요. 제 남편은 하 선생님의 환심을 사려고 아부나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두 사람은 원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입니다.” 세화가 앞으로 나서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우리 혜성그룹이 왜 하 선생님을 홍보대사로 모실 자격이 없다는 거죠?” “그걸 제가 일일이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H시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회사의 회장이 얼마나 대단한 신분이길래 이렇게 무례한 거죠?” 문채원은 딱딱한 태도로 세화를 대했고 눈빛에는 세화에 대한 무시가 가득했다. “진세화 회장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죠. 하 선생님을 홍보모델로 모실 계획이라면 포기하세요. 리성투자회사가 이미 하 선생님을 전속홍보모델로 모시기로 했거든요.” 문채원은 냉소적으로 이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 “뭐? 하 선생님의 전속홍보모델권을 오한민이 가져갔다고?” 세화와 이연홍은 모두 놀라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리성투자회사가 하원종을 홍보모델로 삼았다면 그리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잘 나가는 스타들은 여러 브랜드들을 동시에 홍보했고 자신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전속홍보모델은 달랐다. 한 업계 안에서 기본적으로 한 브랜드만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실장 말대로 리성투자회사가 하 선생님의 전속홍보모델권을 샀다는 건.’ ‘우리 혜성그룹이 하 선생님을 홍보대사로 위촉해 태백산 프로젝트를 살리려는 희망을 접어야 한다는 뜻이잖아.’ “회장님, 오한민은 역시 제가 말한 대로 우리 혜성그룹을 겨냥해 고의로 이러는 거 같아요.” 이연홍이 분노하며 말했다. 세화의 안색 역시 불쾌함으로 좋지
차인표는 웃으며 세화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음흉한 그의 두 눈이 세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세화는 제자리에서 말했다. “술은 나중에요. 그것보다 방금 밖에서 문 실장에게 리성투자회사에서 하 선생님의 전속홍보모델권을 따냈다는 말을 들었어요.” “차 사장님, 이 일이 사실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어요.” 차인표는 쓸데없는 말을 했다며 문채원을 노려보았다. 그는 세화의 미모를 보고 음흉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세화를 끌어다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모두 허사가 되었다. “진 회장님, 제게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는 건가요?” 차인표는 웃음을 거두고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분명히 말씀드리죠. 네, 사실입니다.” 세화는 속으로 실망감을 느꼈다. ‘문 실장의 말이 정말이었다니.’ 오한민이 물었다. “차 사장, 듣자 하니 진 회장님의 혜성그룹도 하 선생님을 홍보모델로 모시고 싶은 건가요?” 오한민은 혜성그룹이 하원종을 홍보대사로 삼으려고 할 줄 정말 몰랐었다. 차인표는 오한민을 보며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오 부사장님, 하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혜성그룹의 홍보모델을 맡으려고 하셨습니다.” 차인표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부사장님도 알다시피 저희 선생님이 인심이 좋으시잖아요. 아마 진 회장님의 그 쓸모없는 남편이 하도 애걸복걸하니까 불쌍하게 생각하셔서 승낙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혜성그룹의 희망을 내가 가로챈 건가요?” 오한민이 웃었다. 혜성그룹의 위기 극복을 막고 하원종과 같은 명성 있는 인사를 빼앗아 자신의 병원을 홍보할 수 있어서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차인표가 동혁을 헐뜯자 세화는 분통이 터졌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차 사장님, 하 선생님은 전에 전화로 우리 혜성그룹의 홍보대사가 되기로 직접 약속하셨어요. 그분의 제자라는 분이 선생님의 뜻을 무시하고 리성투자회사 쪽에 서서 다른 홍보모델을 맡으라고 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
오한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세화가 천송이에게 얻어맞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장님, 그냥 가시죠. 오한민 부사장님, 방금 이 뺨은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이연홍은 서둘러 세화를 데리고 나가며 떠나기 전 분노로 한마디 던졌다. 단순이 말로 독설을 퍼붓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세화의 배경이 대단하고 생각했고, 최소한 B시 최씨 가문이 세화를 위해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한민은 그저 이씨 가문의 개일뿐 진 회장님과 비교할 수 도 없지.’ “그럼 그 대가가 뭔지 기쁘게 기다릴게요. 아, 그 쓸모없는 남편이 직접 오면 더 좋겠어요.” 오한민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천송이을 데려다가 엉덩이를 툭툭 쳤다. “천 실장, 방금 그 뺨 두 대 아주 잘 때렸어. 내 속이 다 시원해.” “부사장님, 저 진 회장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부사장님 손까지 더럽혀요? 이런 일은 제가 대신해도 충분해요.” 천송이는 애교스럽게 말했지만 눈빛은 섬뜩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사실 세화를 질투했다. 세화가 그녀보다 젊은 데다 예쁘고, 두 그룹의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천송이는 오한민의 여비서일 뿐이었고, 그의 아들에게 희롱을 당해도 참아야 하고 차인표 같은 사람에게 비위나 맞추어야 했다. ... “여보, 하 선생님 홍보모델 계약은 잘했어?” 혜성그룹에서 동혁이 세화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동혁은 현소와 몇몇의 반 친구들을 예약한 호텔에 데려다주고 함께 점심을 먹고 와서 세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몰랐다. 눈시울이 붉어진 세화를 발견한 동혁은 어리둥절해하며 얼른 다가가 물었다. “여보 왜 그래? 또 누가 괴롭힌 거야?” “이 선생님, 하 선생님의 홍보모델 계약이 리성투자회사에 의해 발목을 잡혔...” 이연홍은 다이너스티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설명했다. 퍽!동혁은 화가 나 원목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오한민,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감히 또 내 아내를 건드려?” 동혁은
“오한민이 하 선생님에게 종합병원 몇 곳의 홍보모델을 하게 한다면 선생님의 명성까지 망가질 수 있어. 그렇다면 우리가 더더욱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여보, 일단 여기서 안심하고 기다려. 내가 가서 하 선생님을 모시고 올게.” 동혁의 말을 듣고 세화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이 사장님, 회장님 식사 좀 챙겨주세요.” 동혁은 이연홍에게 한마디 던지고 혜성그룹을 떠났다. 그는 곧바로 선우설리를 통해 하원종의 광고 촬영 장소를 알아보았다. “건강난임병원? 우리가 홍보영상을 찍는 곳이 여기인가요?” 한편 하원종은 검은색 벤츠 마이바흐에서 내려 이상한 표정으로 병원 간판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런 종합병원의 명성을 알고 있었고 조금의 호감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홍보영상을 찍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맞아요, 바로 여기서 찍을 겁니다.” 옆에서 하원종을 마중 나온 오한민의 여비서 천송이가 말했다. 하원종은 당연히 그녀를 몰랐지만 혜성그룹의 직원인 줄 알고 그저 퉁명스럽게 말했다. “홍보영상 촬영 장소가 제법 괜찮네요.” 불만이 좀 있었지만 어쨌든 스스로 혜성그룹의 홍보대사를 하겠다고 약속한 그였다. 그래서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천송이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아직 영업 중이었다. 국립의료원의 하원종이 병원에 온다는 소식에 병원 스태프들이 다 몰려나와 있었는데 각각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하 선생님께서 우리 병원의 홍보영상을 찍으시다니 정말 다행이야. 이제 우린 병원 영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하하, 그러게. 그동안 우리 병원 평판이 안 좋았는데 하 선생님께서 홍보를 해주시고 병원을 정형외과로 바꾸면 돈을 벌 수 있겠어.” “크크, 하 선생님은 돈을 쓰레기처럼 여긴다는 외부의 말이 사실이 아닌가 봐? 우리 병원 홍보영상을 찍겠다고 하시다니. 나도 나가서는 여기 병원에서 일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인데.” “말이 돼? 돈을 쓰레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부끄러운 게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
[사해 상공호의소에서 우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살펴봐야 해.] 세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H시의 시장은 너무 작아. S시의 세방그룹이든 혜성그룹이든 앞으로는 반드시 전국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해.] [그리고 N도의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N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해상공회의소의 문을 두드려야 해.] [마침 사해상공회의소에서 고급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연락을 해 온 거야.]세화도 이 기회를 잡으려고 했기에 쌍방은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남편이 별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알아차린 세화가 동혁에게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가. 이미 사해상공회의소 대표하고 약속을 했어,] [새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야.] 동혁의 주량이 좋기도 하지만 동혁을 데리고 가는 데에는 세화가 고심한 또다른 목적이 있었다.바로 사해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만나면서 동혁을 위한 인맥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세화의 말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느낀 동혁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아내가 이렇게 나를 챙겨 주는데 내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너무 눈치가 없는 것이겠지?’동혁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 알겠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야지.” “하물며 술마시는 건데 말이야. 오늘 술 마시러 온 사람들은 다 뻗게 해주겠어!” 동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좀 진지하게! 이번엔 사고 치면 안 돼. 지난번처럼 술 마신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지 말고!] 지난번에 동혁은 몇 개 부문의 책임자들과 술을 마시고 전부 뻗게 만들어서 세화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알았어. 쓸데없는 말은 안 할게. 명성호텔로 와서 나하고 합류하면 돼. 내가 지금 차를 가지고 갈게.]다시 한마디 한 뒤 세화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출발했다.세화가 명성호텔 근처에 왔을 때, 옆 차선에서 오픈 스포츠카 한 대가 세하의 차에 접근해서 나란히 달렸다. 빵! 빵!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천진과 주다정의 귀에도 들렸다. 이는 자신들에 대한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다.30분도 안 되어 천진이 주다정을 폭행한 사실이 인터넷어 폭로되었고, 사방으로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이로써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주다정과 천진이 결탁해서 간통을 저질렀고, 항난그룹을 삼키려고 작당한 두 사람은 오히려 동혁과 수소야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던 것이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지!’두 사람을 향한 욕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악명을 세상에 날리게 된 주다정과 천진은, 모든 사람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이튿날 H시 방송국에서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혁과 세화 일가에 사과하는 동시에 경병수와 주다정을 파면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뒤로 이 양아버지와 수양딸은 H시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소문에 따르면, 주다정은 한 지방 도시의 고급 클럽에서 명문가의 자제들과 고위 관리들을 정성껏 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자신이 기꺼이 원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억지로 웃음을 보여야 했다.그리고 이 여론을 통해서 먹칠을 했던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수소야도 여러 매체들이 공동으로 증인을 서는 가운데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천진의 파렴치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데다가 동혁도 이 소송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두 사람의 이혼을 판결했다.결국 천진은 원래 자신의 가문에 속했던 재산을 제외하고, 항난그룹에 대해서는 동선 하나도 건질 수가 없었다.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천진은 수소야가 보유한 항난그룹의 지분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므로 당연히 자신이 절반을 가져야 한다고 항변했다.하지만 수소야는 항난그룹의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동혁이 전후로 나눠 준 지분은 처음부터 백마리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천진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항난그룹의 지분을 수중에 넣으려고 할 때마
경병수는 마침내 주다정이 요 며칠 동안 온갖 방송국 자원을 동원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해서 얼굴에 먹칠을 하게 만들었던 대상이 동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경병수가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동혁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동혁이 냉혹한 말투로 경병수에게 말했다.“경 국장,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해고하는 건 못 봤어. 오히려 당신이 가지고 놀다가 질린 음탕한 여자를 나한테 꽂아 넣으려고 한 걸 봤는데.”“경 국장, 당신은 나 이동혁을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털썩-경병수는 눈빛마저 초점을 잃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이제는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동혁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작정임을 드러낸 것이다.더 중요한 건 경병수가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건 바로 경병수가 생각한 방법이었기에.동혁은 경병수를 더 이상 보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임창호에게 말했다.“방송국 위아래 모두 대청소를 해야겠군요.”“시 방송국의 바로 H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인데, 오히려 온갖 오물과 비리가 난무하는 곳이 되었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네!”임창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병수의 접견을 자신이 주선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자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이제는 자신이 시장에게 점수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반드시 만회해야 해!’임창호는 곧바로 사정 파트의 직원들을 호출했다.“경병수와 주다정은 모두 즉시 파면 처분했다고 공고하도록 해. 그리고 내가 직접 방송국에 주재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임창호의 말은 경병수와 주다정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은 완전히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다주다정은 자신이 어떻게 시청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줄곧 멍한 표정이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천진이 나와서 문을 열었다.그러나 주다정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냈다.“다정아,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동혁의 이런 비난에 경병수는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다.‘주다정 저 멍청한 X이 자기만 망친 게 아니라 나까지도 망쳤어.‘시장님의 말은 우리 방송국 전체에 아주 불만이 많다는 걸 드러낸 게 분명해.’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경병수는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시, 시장님... 저 주다정이 갑자기 미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방송국 직원들은 모두 시장님을 존경하고 있고, 불경한 의도를 품은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경병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의 싸늘한 태도를 보자 주다정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이 멍청한 X이 나까지 말려들게 하다니!’경병수는 갑자기 주다정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지게 만들었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발로 계속 거세게 걷어찼다. 퍽! 퍽! “아악! 아파요. 양아버지 제발! 제발 그만 때리세요!!”주다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누가 네 양아버지야!”주다정의 입에서 양아버지란 말이 나오자, 경병수는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재빨리 달려들어 주다정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연달아 따귀를 때렸다.짝! 짝! 짝!“악! 제발 그만!” “나는 너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 함부로 친척이라고 하지 마!”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때려 죽여버리겠어!”경병수는 이번에 정말 필사적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주다정을 때렸기에, 주다정은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경병수가 아무리 둔하다 해도 동혁과 주다정 사잉에 원한이 쌓여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주다정은 이미 시장님의 마음 속에서 끝났어.’‘지금 만약 주다정이 내 수양딸이라는 게 들통나면 이동혁이 나를 그냥 두겠어?’주다정의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때리던 경병수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때리던 걸 멈췄다.지금 주다정은 갯벌의 진흙처럼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마치 숨이 간들간들한 강아지마냥 입으로는 연신 끙끙 신음소리를 내
“이, 이동혁?!” 주다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요즘 내가 너무 잠자리에 탐닉하느라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자시을 때려 죽인다 해도 동혁이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시장님의 관저이자 H시 권력의 중심지야. H시에서 가장 존귀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이동혁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자세히 보고는, 주다정은 다시 한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상 뒤에 있는 남자는... 정말로 이동혁이 맞아!’주다정은 완전히 멍한 상태였다.요 며칠 동안 주다정은 전력을 다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모두가 욕을 퍼붓자, 동혁은 H시에서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주다정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동혁은 집 밖에도 못 나오고 쥐 죽은 듯이 지내거나, 몰래 H시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동혁이 당당하게 시장실 한가운데 서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주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야, 이동혁! 너 같은 쓰레기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넌 인간 말종인 쓰레기야! 이곳이 어디라고 너 따위가 감히 들어와?” 주다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장실 안은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시장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부시장 임창호와 방송국 국장 경병수.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시장실 직원들까지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마치 바보를 보는 것처럼 주다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자, 주다정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불안해진 주다정이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실 안에는 동혁 외에 임창호 부시장과 시장실의 직원들이 있었다.‘시장님은?’주다정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동혁이 이런 중요한 장소에 버젓이 나타난 데다가, 부
“시장님, 경병수 국장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H시 내에서도 명망 있는 인물이고도 하고요. 만나보시겠습니까?” 임창호가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국 국장이?” 동혁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답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곧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임창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시장님, 이쪽은 시 방송국의 경병수 국장입니다.” 임창호가 간단하게 소개했다.동혁을 본 경병수는 첫눈에 새 시장이 과연 바깥에 떠도는 소문 그대로라는 느낌이 들었다.‘정말 너무나 젊은데!’시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경병수가 겸손하게 인사했다. “시장님, 그냥 ‘경 국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가볍게 대답한 동혁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임 부시장이 보고할 게 있다고 하던데 이번 우수직원 선발과 관련된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순간 당황했던 경병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번에 저희 시 방송국에서 선발된 우수직원은 주다정이라는 경제 뉴스 앵커입니다.” “어제 시장님께서 지시하신 뒤에, 저희도 내부적으로 철저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동혁은 담담하게 물었다. “아 그래요? 조사 결과는 어떤가요?” 경병수가 몰래 동혁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주다정이 앞서 시장이 단독으로 자신을 접견하기로 했다고 말한 걸 떠올리고, 시장이 주다정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주다정의 직속 상관인 자신이 주다정에게 좋은 얘기를 하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경병수가 얼른 입을 열었다.“네! 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내부 조사 결과 주다정 기자는 진지한 태도로 업무를 책임지고 있고 업무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게다가 도덕성과 인품 면에서도 방송국 내에서 아주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다정 기자가 몇 년 간 연속해서 우수직원에 선정된 것은 바로 방송국 전체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오 사장님, 과찬이세요. 오 사장님은 리성투자회사에 명문가인 이씨 가문을 배경으로 가지고 계시기에, 언론계도 오 사장님 앞에서는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지요.” “오 사장님에 비한다면 저는 감히 비교할 가치도 없는 미미한 존재지요.” 주다정이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이 전화를 한 이유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거야.’ “오 사장님이 갑자기 전화를 주신 게 혹시 저한테 시키실 일이라도...?” 전화기 너머에서 오한민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킬 정도는 아니고, 주 기자가 요즘 이동혁과 이동혁의 아내를 상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어.] ‘휴... 다행이야.’ 그 말을 듣자 주다정은 한숨을 돌렸다.주다정은 오한민이 이씨 집안을 대표하는 동혁과 원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게다가 이전에 오한민과 어정쩡한 관계였던 대니얼도 동혁에 의해 폐인이 되어 참혹한 모습으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동혁을 싫어하는 오한민이 이동혁을 도우려고 전화한 건 분명히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주다정은 곧바로 억울하다는 듯이 가장하고 말했다. “오 사장님, 저는 정말 억울해요! 그 이동혁과 진세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저를 무시했는지 아세요? 심지어 제게 무릎을 꿇고 구두를 핥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 부부하고 끝까지 싸우려는 거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부부의 힘이 너무 강해요.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여전히 그 부부를 넘어뜨릴 수가 없어요.” “오 사장님께서 좀 도와주신다면, 제게는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주다정은 자본시장의 큰손인 오한민은 자신은 꿈도 꿀 수 없는 언론 매체 장악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한민이 일단 힘을 쓰기만 하면 이동혁 일가의 오명을 전국적으로 퍼지게 할 수 있어!’ 침묵하고 있던 오한민이 차갑게 말했다. [이동혁은 내 아들을 망가뜨린 놈이야. 나도 그 개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지.] [하지만 지금 그놈은
경병수의 말이 당연히 사실임을 잘 알고 있기에 주다정은 속으로 득의양양했다.하지만 경병수의 말과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저는 시장님이 너무 빨리 저를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쉽게 얻게 된다면 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쉽게 얻은 건 쉽게 버려지니까요.” “그래서 우선 시장님의 비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서 국장님이 이번엔 꼭 도와주셔야 해요.” “저하고 같이 가서 시장님께 업무 보고를 하시면서, 저를 비서로 적극 추천해 주세요.” 주다정은 언제나 명문가에 시집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내 육체를 팔아서 단기간의 이익은 얻을 수 있겠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새 시장의 부인이 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쟁취할 거야.’‘남자의 그늘 아래서 늘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정부 말고!’ 주다정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경병수에게 속삭였다. “국장님, 꼭 도와주실 거죠?” “앞으로 제가 더 잘 챙겨 드릴게요.” 방송국에서 십여 년 동안 국장으로 있었기에, 경병수는 H시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했고 인맥도 넓었다.자신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면, 자신의 체면을 고려해서라도 시장이 틀림없이 주다정을 비서로 채용할 거라고 생각했다,경병수는 잠시 고민했다. ‘주다정은 예쁘지만 솔직히 몇 년 동안 즐겨서 이젠 좀 질렸어.’ ‘마침 방송국에 젊고 예쁜 인턴들이 들어왔으니, 주다정을 대신할 새로운 타겟을 찾을 때가 됐지.’ 하지만 주다정은 너무 영악해서 줄곧 정리할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제 기회가 온 거야.’‘주다정과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다정이 정말로 시장 비서가 된다면 앞으로 아주 쓸모 있는 백 그라운드를 가지게 되겠지.’ ‘정말로 시장님 여자가 된다면 그럼 금상첨화지.’ ‘원래 주다정의 행실로 봐서는, 시장님과 같은 큰 인물은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다정 같은 여자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하지만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