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아가 떠날 때까지 기다린 뒤. 그제서야 변백범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왔고, 그 외 박경태 부부도 호송되어 왔다. “회장님, 왜 사모님을 구하러 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시는 겁니까?”변백범은 이해할 수 없었다.“가게 해도 괜찮아. 하씨 가문의 일들을 해결하기 전에 아내가 내 신분을 알아서 좋을 건 없어.”“네, 그 밖에 회장님께서 저에게 찾으라고 하신 몇 사람도 같이 왔습니다. 지금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회장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사람들의 통제권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보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일은 너한테 맡길게. 내 명령을 기다려.”변백범은 마음속으로 조금 기뻤다. 주인이 나를 신뢰해 주시는 구나. 그도 지금 군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양손을 공손하게 늘어뜨린 채 한 쪽 옆에 서있었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대도 경수가 달려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하 도련님,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왕가가 출동했다고 합니다……”……같은 시각 왕가 장원. 지금 왕태민의 인솔하에 모든 왕씨 집안 사람들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별히 나이가 지긋이 든 세대들도 조금도 지체함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관을 보낸 이 일에 대해 그들은 비할 데 없이 불길함을 느꼈다. 앞장서서 수습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왕정민은 고대 복장을 입고 왼손에는 옥 반지를 끼고 이따금씩 돌려가며 헤아릴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왕태민이 건너와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세자님,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호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이 오만 방자한 데릴사위를 해치우러 갈 수 있습니다.” “좋아.”왕정민은 대모산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을 시켜 하씨 가문의 동태를 잘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하씨 가문이 분명 끼어들지 않을 것 같다.“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야. 너희들이 먼저 손
왕정민은 왕 세자라 불렸고, 부하들도 자연히 길바닥의 자원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일도와 같이 남원 길바닥의 일인자에 비하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왕씨 가문은 자금이 많았고,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왕태민이 왕정민의 이름을 내걸고 이일도를 초청하자 그도 기꺼이 온 것이다. 그러자 이일도는 웃으며 말했다.“왕 세자님, 약속대로 오늘 저는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일이 성사되고 나면 성남 땅을 모두 내게 팔아야 합니다.”“당연하죠. 게다가 가장 할인된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이후엔 한 패가 될 거니까요.”왕정민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 땅값이 가장 비싸긴 했지만 이일도에게 선물한 셈 치면 또 뭐 어떤가?왕가는 강남의 하늘이 되기 위해 길바닥의 일인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꼭 필요했다. 왕정민의 이 말을 듣자 이일도는 웃으며 말했다.“좋습니다!” 그는 그 때가면 자연히 왕정민이 몇 백억 정도 되는 것을 반값에 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오늘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왕가를 지탱해 준 것 만으로도 이렇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당연히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 분은 남원의 거의 절반 가까이나 되는 엔터테인먼트를 장악하고 있는 홍씨 아가씨예요. 아주 조용하지만 남원 길바닥에서 이 분의 위치는 상상 이상입니다……”“이 분은 밀가루 장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임귀식 입니다. 수하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하나 같이 목숨을 걸고 하고 있지요……”“이 분은 도박장을 하시는 분이고……”“이 분은……”이번 왕가의 일을 위해 이일도는 정말 체면을 세워주려고 남원 길바닥의 서열이 있는 인물들을 모두 부른 것이 분명했다. 다소 조심스러웠던 왕정민은 마지막에는 아예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왕가의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거물들을 동시에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일로 왕가는 전화위복으로 큰 이익을 얻을 지도 모른다. 만약 이 기회를 잡아 이
대모산 뒷편, 백운별원.하 매니저는 옛 홀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그리고 나서야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하민석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둘째 도련님, 왕가 쪽에서 출발했습니다.”“그 사람과 붙으려고?”하민석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네. 듣기로 그 사람이 그 당시 강변에서 일어났던 동영상을 올려 일부러 왕가를 건드렸다고 합니다.”“그리고?”“왕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길바닥 사람들을 다 불렀고, 이일도의 도움을 받아 남원 길바닥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을 모았습니다……”이번에 하민석은 바둑을 두던 왼손을 멈추고 잠시 후 미소를 지었다.“지금 왕정민이 사람을 보내 나를 감시하고 있는데 만약 내가 움직이면 그는 아무 손도 쓸 수가 없어……”“주변에 있는 사람 아무나 찾아가서 한 번 보라고 해. 내가 제일 먼저 결과를 알 수 있게.” “저……”하 매니저가 잠시 망설였다.“그녀가 갔어?”하민석은 눈썹을 찡그렸다.“네, 아가씨가 어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분명 오시겠지 했는데……”“따라가봐……”하민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차가운 기색이었다.단지 이 순간 홀 안의 전체 온도가 갑자기 조금 떨어졌다. 하 매니저는 온 얼굴에 식은 땀을 흘리며 반 마디도 내 뱉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하민석은 담담하게 말했다.“가봐.”“네……”하 매니저가 떠나자 냉담했던 하민석의 얼굴에 갑자기 흉악한 빛이 떠올랐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옥으로 된 바둑판이 박살이 났다.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그래, 그 사람을 보러 가는 게 좋아? 그럼 충분히 봐! 그가 도대체 어떻게 죽는지 직접 보라고!”“너는 지금이 여전히 3년 전인 줄 알아! 그가 발을 구른다고 남원이 흔들릴 거 같아?”“하수진, 넌 날 너무 실망시켰어……”……같은 시각, 설씨네 별장. 설씨 집안에서 파견된 사람이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전하자 하나 같이 부들부들 떨었다. “남원 길바닥의 1
“너 나가면 안돼! 오늘 하현은 무참하게 맞아 죽을 거야. 너도 나가면 안돼!”설재석과 희정은 설은아를 필사적으로 감시하면서 어떻게든 그녀가 밖으로 나갈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집에서 오직 설유아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하게 형부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아쉽게도 하현은 지금 그녀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그녀는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현은 벌써 박재민의 묘소 앞에서 새 향로에 향 세 다발을 직접 꽂았다. 변백범과 사람들도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이때 똑같이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박경태 부부는 이 광경을 보며 흥분이 되면서도 두려워 타이르며 말했다. “하현, 이만하면 됐어!”“왕가는 너무 강해서 우리는 이길 수 없어. 진실을 안 것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만족해!”“우리는 이미 아들을 하나 잃었어.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하현이 웃는 얼굴로 안심시키며 말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보잘것없는 왕가 따위는 아예 신경 안 써요.”변백범과 대도 경수와 사람들도 타이르며 말했다. “박 선생님, 박 부인. 어떤 사람이 적수가 되든, 우리 도련님을 만나면 여기에 순순히 무릎 꿇게 될 겁니다!”한창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이따금씩 자동차의 굉음이 들려왔다. 장사진과 같은 차량 행렬이 나타났다.주변에 공터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차를 세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박경태는 눈 앞에 수백 대의 차를 보고 너무 놀라 멍해졌다. 고급차는 많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승합차와 상용차였다.하지만 이런 차가 사람을 가장 잘 속일 수 있었다. 차 안에 도대체 몇 명이 있는지 숫자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곧 가장 앞에 있던 고급 차 안에서 왕씨 집안 사람이 천천히 내렸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신비롭고 강한 왕정민은 고개를 쳐들고 가슴을 펴고 있었다. 기세 등등한 모습이었다. 안하무인격이다.그들은 오늘 하현, 이 데릴사위만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남원
하지만 대도 경수 무리들이 두려워한다고 해서 하현이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니다.지금 하현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서서 산천을 집어 삼킬 듯한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눈앞에 이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어떤 감정적 변화도 없었다. 왕가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하나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너는 네가 직면하게 될 일이 어떤 일인지 전혀 파악을 못했구나!”왕태민이 비웃으며 말했다. 왕씨 가족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하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맘껏 웃어! 네 엄마도 웃으시네! 나중에 네가 어떻게 웃는지 보자!”“네 곁에 있는 몇 사람도 이일도 앞에서는 꼬마들일 뿐이야!”왕가네 사람들은 차가운 비웃음을 연발했다.하현은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른다. 곧 이일도 뒤에서 회칼을 든 수십 명의 남자들이 걸어 나왔다.“이 사람들은…… 이일도 수하에 있는 도마단이다! 하나같이 사람을 베는 고수들이었다!”이 사람들을 보았을 때 공해원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소식통이었고, 이런 것들에 대해 가장 정통했다. 이일도 수하에 있는 도마단은 하나하나 모두 엄선해서 뽑은 길바닥 고수들이었다. 보통 한 사람이 3-5명을 상대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일도가 평소 일을 처리할 때 아무나 몇 명 보내도 바로 일이 해결됐다. 오늘 모든 도마단이 함께 나타난 것은 남원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도마단 외에 지금 뒤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수백 명이 있는데다가 홍 아가씨의 부하들까지 합치면 적어도 천명은 될 것이다. 이 순간 수천 명이 한데 모여 난폭하게 굴며 하나 같이 살을 에는 듯이 싸늘하게 웃고 있으니 이 싸움은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같은 일류 가문인 구씨 가문이나 안씨 집안이라 할지라도 이 싸움을 보면 겁을 먹었을 것이다. 남원 전역에서 이런 싸움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집안은 하씨 가문 밖에는 없었다. 이 싸움은 왕씨 가문에게는 힘의 최정
“너희들 아직도 무릎 안 꿇어?!”“너희들 간이 크구나? 그까짓 실력으로 감히 우리 형님과 맞서겠다고!?”“말은 자기 얼굴이 긴지 모르는 법이지!”홍 아가씨와 임귀식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연발했다. 분명 그들이 보기에 이 사람들은 사리분별을 못하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다. 대도 경수와 공해원이 서로 눈이 마주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둘은 동시에 이일도에게 시선을 떨어뜨렸다.“형님, 우리 남원 길바닥의 가장 큰 형님이십니다. 저희는 당연히 형님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희는 우리 보스를 위해 싸울 겁니다.”“그래, 오늘은 옛날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보아하니 너는 목숨을 걸고 이 데릴사위를 보호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이일도는 비아냥거리는 얼굴이었다.“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 사람이 너희들에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너희들이 이렇게 목숨까지 바치는지!” 공해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님, 과거의 정도 있고 하니 제가 기회를 한 번 드릴게요!”“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계시겠죠!”“제가 아무한테나 주인이라고 한다고 생각하세요?”“형님은 모를 거예요. 오늘 형님 맞은편에 있으신 분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하하하하……”공해원의 말을 듣고 장내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공해원, 네가 엉터리 사설 탐정소 하나 차렸다고 여기서 귀신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우리도 진작에 다 들어서 확실히 알고 있어. 데릴사위일 뿐이야!”“기껏해야 다른 집 동생일 뿐이야. 그것도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너희들 아직도 너희들이 귀인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이일도와 사람들은 큰 소리로 비아냥거렸다.그들이 보기에 공해원이 한 말은 가장 웃긴 소리였다. “하하하하……”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공해원과 대도 경수 두 사람이 비웃기 시작했다.이 장면은 이일도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너희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의
“맞아! 너 같은 쓰레기, 땅강아지가 무슨 자격으로 이 어르신과 대화할 자격이 있다고?”“하찮은 데릴사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허세를 부려!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빨리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그럼 오늘 너의 시신은 그대로 남겨주지!”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외쳤고, 하현에게 분노의 시선들이 떨어졌다.이 데릴사위는 너무 건방져!이런 사람은 바로 죽여서 꽃이 왜 이렇게 붉은지를 알려 줘야 해!하현은 소리 없이 웃으며 왕정민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왕가, 남원의 일류 가문, 과거에는 일류 가문들 중에서도 실력이 중위권일 뿐이었는데……”“근데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로 왕가가 남원에서 일류 가문 중에 최고라고 하더라.”“나는 원래 왕가가 자진해서 나왔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나온 줄 알았어……”“근데 지금 보니 왕가가 실력도 좀 있고 인맥이야 어떻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강한 거 같네.”하현은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래 왕가는 하민석의 개 한 마리일 뿐이라고 여겼었다. 지금 보니 역시 일류 가문은 일류 가문이었다. 아직 실력이 있었다. 오늘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보니 왕정민이 감히 자신을 세자라고 칭할만한 실력이 조금 있었다. “하하하하…… 우리 왕가의 강함을 알았나?”“하현, 너는 데릴사위일 뿐인데 감히 우리 왕가에게 싸움을 걸려고?”“내가 경고하는데, 지금이라도 무릎 꿇어. 혹시 우리가 네 목숨은 살려줄지도 모르잖아!”“실력 하나 없이 감히 우리 왕가를 도발하다니 왕가의 원수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친구 한 명 죽은 거 가지고 자기도 죽으려고 하다니?” 왕가 사람들은 비웃으며 말했다. 하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치 한 무리의 어릿광대를 보듯 바라보다가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3일 동안 준비할 시간을 줬다는 건 내가 당신들이 무엇을 준비 하든 전혀 두렵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너희 왕가 사람들은 이거 하나 생각하
이때, 아무렇지도 않았던 왕정민의 얼굴색이 살짝 달라졌다.현장에 있을 때부터 그는 줄곧 몰래 하현을 관찰했다.그는 이 데릴사위가 날뛰는 것이 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가 비정상적인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 놈은 자기 아내를 남에게 내주는 것을 아까워하면서도 엄청난 권력과 바꾸었다. 설마 그는 자신이 공해원과 대도 경수, 변백범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왕가를 움직일 방법이 없는 건가?그렇다면 왜 그는 도발하려고 한 걸까?몇 명의 기성세대를 제외하고 지금 남원 길바닥 사람들은 전부 현장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남원 길바닥의 70%가 넘는 보스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째서 이 데릴사위는 이렇게 날뛸 수가 있을까?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이 배짱은 뭐지? 대도 경수와 공해원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지 왕정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보니 변백범이 변수인 걸까?본인은 변수라고 할 수 없지 않나?결국 왕정민의 시선은 하현을 지나쳐 그의 뒤에 있는 몇 사람에게로 떨어졌다. 거기에는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네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고대 복장을 입고 있었다. 잠깐 얼굴을 보았지만 확실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하현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매우 공손하면서도 동시에 주위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설마 이 네 놈이 하현의 비장의 카드인가?하지만 문제는 이 네 사람이 길바닥을 주름잡는 금메달 타자라 해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과 싸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왕정민은 아직도 깊이 생각 중이다. 하지만 왕태민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하현을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너 이 폐물아! 애당초 너랑 네 마누라랑 이혼 시키려고 했을 때 넌 시큰둥했었지!”“결과적으로 상석에 앉기 위해서 네 아내를 내팽개친 거 아니야!”“너 같은 바람둥이는 이 세상에서 살 자격이 없어!”하현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