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는 예쁜 웃음을 지으며 홀에서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한 쪽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살짝 고개를 젖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습니다.”“우리 회장님이 말씀 하시길, 그는 지금 하씨 가문의 후계자, 하 세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하 세자라는 명칭은 매우 부적절합니다.”“앞으로 모두 하 회장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이 말이 나오자 온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하 세자가 더 이상 하 세자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말이지?설마 소문대로 인 건가?하 세자가 3년 전 남원을 떠난 것이 하씨 가문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실패했기 때문인 것일까? 하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그는 오늘 왜 돌아온 것인가?하씨 가문이 백운외원에서 그를 위한 환영 만찬을 베풀어 주다니.하지만 지금 하씨 가문에서는 하씨 대문호는 말할 것도 없고, 하 매니저도 오지 않았다. 이건 또 뭘 의미하는 것일까?모두가 추측하고 있을 때 슬기가 이어서 천천히 말했다. “여러분, 추측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 회장님이 남원으로 돌아온 이상, 당연히 휴가를 보내러 돌아오신 것이 아닙니다!”“수일 후면 남원에 새로운 그룹들이 세워질 겁니다. 수십 개의 분야를 독점한 대형 그룹, 천일 그룹입니다! 그 때 오셔서 참관하시길 바랍니다.” “저희가 반드시 갈게요!”“하 세자의 그룹인 만큼 저희는 합작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맞아요. 하 세자는 진정한 사업의 귀재에요!”“이번에 하 세자가 어떤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희의 몫이 있는 지 모르겠네요.”이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조 되었다. 하 세자, 단독으로 20조 그룹을 만들어 냈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하씨 가문을 제2의 봄으로 환하게 빛나도록 다시 재탄생 시킨 인물. 지금 그가 하씨 가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간에, 그가 돌아온 후 그는 강력한 그룹을 만들었다. 지금의 하 세자가 그 시절의 후계자임을
하 세자는 언제 도착하나요?벌써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었다. 슬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 회장님께서는 이미 이곳에 와 계십니다. 회장님께서는 원래 조용히 계셔서 줄곧 이런 만찬에는 참석하시지 않으셨는데 오늘 오셔서 저도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슬기가 이 말을 내뱉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그러자 모두들 사방에서 찾기 시작했다. 슬기가 차갑게 말했다.“여러분,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 회장님을 존경하지 않는 태도입니다.”“회장님께서 저에게 여러분을 접대하라고 하셨으니, 일이 있으시면 제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에게 오셔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이 말을 하자 설재석의 안색이 변했다.“완전히 망했다. 다들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우리는 선물을 준비를 못했으니 완전히 망한 거 아니겠어?”희정의 안색도 순식간에 칠흑 같이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선물을 달라는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 “왕씨 집안은 하 세자를 위해 골동품 비휴 한 쌍을 선물했어.”“고씨 집안은 하 세자를 위해 야명주를 선물했어.”“남원 상업연합회에서 하 세자를 위해 강 부근의 단독 별장 한 채를 선물했어.”“……”지금 이 순간, 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미친 듯이 계속해서 선물을 보냈다. 오늘 하 세자의 총애를 받을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받칠만한 가치가 있었다. 말하자면, 오늘 여기에 올 때 모두 수많은 선물들을 준비했었다. 심지어 외국에 있는 섬들도 보냈으니 정말 놀라웠다. 다른 사람들의 씀씀이를 보니 심지어 선물로 자신의 집안의 재산이 비견될 정도였다. 지금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모두 부끄러운 기색이었다. 이 순간, 설은아도 떠나고 싶었다. 너무 창피했다. 곧, 슬기 주변의 책상 위에는 온갖 귀한 선물과 어음이 가득 찼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슬기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순간 차가운 구름으로 짙게 깔렸다. “당신들, 지금 우리 회장님을 모욕하는 겁니까?”
설재석은 뒤엉킨 얼굴빛이었다. 하현은 마음 속으로 탄식했다. 자신의 장인은 큰 일을 이룰 그릇이 못 된다. 이 생각에 미치자 그는 설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아야. 너 내 말을 믿고 지금 나가봐.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야!”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일어섰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다 그녀에게 쏠렸다. 슬기의 시선은 설은아에게 떨어졌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아 아가씨네요.”“회장님이 얼마 전까지도 아쉬워하고 계셨어요. 서울을 떠나셔서 이후에 설은아 아가씨와 합작할 기회 없을 것 같다고요.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그래서 회장님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셨군요. 당신들이 이렇게 회장님을 존중하다니 제가 돌아가서 반드시 사실대로 말씀 드릴게요!”주위 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전에 그들은 설은아 식구가 어떻게 속여서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 그들은 알았다. 원래 이 집안 사람들과 하 세자는 일찍부터 합작 관계를 맺은 사이었구나. 보아하니 기회가 된다면 이 집안과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다. 아마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설씨 아가씨, 우리 천일 그룹이 개업할 때 왕림해주시면 좋겠어요. 우리 회장님이 분명 아가씨를 환영해 주실 거에요.”슬기는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이 말은 많은 일류 가문들을 포함해 용의주도하고 노련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었다. 그들은 슬기의 표현에 주목했다. 왕림!하 세자는 어떤 인물인가?슬기는 어떤 인물인가?슬기에게 왕림이라는 두 글자를 내뱉게 하다니 그 자체로 이미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곳에서 놀라움과 부러움의 눈빛들을 받았을 때 설은아 일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이렇게 좋은 일이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특히 이전에 설은아를 좋게 봐준 하 회장이 뜻밖에도 하 세자라니, 이건 더더욱 꿈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설은아 식구들은 여전히 흥분하고 있었다. 설은아는 하 세자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전혀 믿지 않았다. 설은아의 이런 태도를 보고 그들은 오히려 약간의 의심을 하였다. 자신의 딸이 하 세자의 은밀한 여인이 아닐까?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들의 이혼을 강요하지 않아도 될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그러면 만에 하나 자신의 딸이 배가 불러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혹시 하 세자가 이 데릴사위를 엄청 싫어하면 어떡하지?이 생각에 미치자 두 부부는 복잡해졌다. 위병이 날만큼 뒤엉켰다. 하지만 오늘 밤은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특히 설씨 집안 앞에서 한시름 놓았다. 나중에 설씨 집안에서 누가 그들 일가를 업신여기는지 좀 보자. 그러나 바로 이때, 갑자기 설씨 어르신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 “설재석, 너희들은 내일부터 우리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돼.”설씨 어르신의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일 설씨 회사는 남원의 본사가 정식적으로 출범하는 날이었다. 모두 출근을 해야 했고 직책도 배치가 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설씨 어르신에게 전화가 왔고 설씨 집안에서 설은아 식구들이 가지고 있던 권력 기반을 쓸어버렸다. “뭐!?”설재석의 얼굴은 까맣게 변했다. 그는 갑자기 이런 변고가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화 저편에서 설씨 어르신의 목소리는 차갑고 매정했다. “너희 일가는 나를 너무 실망시켰어! 지금부터 너희들은 더 이상 설씨네 식구들이 아니다……”“아버지, 제가 설씨 집안을 위해서……”설재석은 잠시 말문이 막혀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라고 부르지마! 너희들이 오늘밤 뭘 했는지 스스로 돌아 봤어?”“너희들 마음속에 설씨 집안이 없으면서, 여전히 설씨 집안에서 죽을 때까지 먹고 마실 생각이야? 꿈도 꾸지마!”“앞으로 너희 식구들 알아서 잘 지내라……”“뚜뚜뚜……”“찰카닥___
설민혁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이렇게 소심하게 굴지 않을 수 없어?”“무슨 사고가 난다고 그래?”“무슨 사고가 날 수 있겠어?”“우리와 왕씨 집안의 합작은 이미 결정된 거야.”“하물며, 우리는 이미 왕태민 도련님 라인에 올라 섰어.” “왕태민 도련님이 있는데 셋째 삼촌 식구들이 뭘 할 수 있겠어?”“게다가 내가 듣기로 환영 만찬에서 셋째 삼촌네 식구들 때문이 왕태민 도련님이 피해를 봤대.”“우리가 셋째 삼촌 식구들을 쓸어버려야 설씨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어?”이 말을 꺼내자 다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재석 이 식구들은 정말 자기들이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줄 아나?하 세자의 환영만찬에서 왕태민 도련님의 체면을 구겼다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건가?“거기다 내가 듣기로 만찬에 갔던 사람들은 모두 후한 선물을 준비해 갔다고 하는데 그 집 식구들만 빈손으로 갔대!”“그쪽에서 선물 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정말 그렇게 믿고 있나 봐!”“하하하……”이때 설씨 집안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다!이전에는 설은아가 순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들 부녀가 똑같이 순진하구나!게다가 순진한 게 너무 우스울 정도였다. 설재석은 어쨌든 남원에서 십 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순진하다니,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과 섞여서 지낼 수가 없지. 설씨 어르신은 차갑게 말했다. “보아하니, 그들 일가를 우리 설씨 집안에서 쫓아내는 것이 옳은 선택인 거 같다!”“할아버지, 정말 잘하셨어요! 지금 그들 식구들은 진퇴양난에 빠졌을 거에요. 남원에도 길이 없고 서울에서도 할 일이 없어요. 저는 이들이 어디까지 떨어지게 되는 지 보고 싶어요!”설민혁이 맞장구를 쳤다. 오늘밤 그들은 너무 창피를 당했다. 지금 기회가 있을 때 설은아 식구들을 혼내줘야 한다. 당연히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다. 설지연도 지금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 집안은 독하게 대해야지, 친절하게
설씨네.설은아는 자신의 투명하고 밝은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고, 근심이 가득한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현이 위로하며 말했다. “은아야, 이게 무슨 큰 일이라고 그래? 지금 우리 집안이 권력을 잡고 있는 건 어르신이 아니라 하엔 그룹이잖아.”“너와 이 비서의 관계상, 일단 그녀는 네가 말없이 회사에서 쫓겨난 것을 발견하면 절대로 가만 두고 보지는 않을 거야.” 설은아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어? 하엔 그룹이 비록 그날 우리 설씨 집안의 지분 51%을 가져가긴 했지만 우리 회사는 이렇게 작은데, 그렇게 높은 사람들이 관리를 하겠어?”하현은 고개를 저었다.“누가 그래? 오늘 너 이 비서 만났잖아”“그녀가 천일 그룹 출범식 때 오라고 초청한 거 아니었어?”“그때 너 말고 설씨 집안을 대표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설씨 집안은 지금 하엔 그룹이 지배하고 있는 기업인 셈이야. 만약 천일 그룹의 출범식에 가지 않았다가 그쪽에서 화가 나서 한 마디만 하면 설씨 집안은 쓸려 나가게 될 뿐이야!” “그니까 안심해. 설씨 집안은 네가 없으면 안돼. 우리 집 식구들도 없어서는 안되고……”설은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하현이 자신을 걱정해서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 정도로 생각했다. 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밤새 슬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튿날.설씨 어르신은 방금 전에 일어났고, 천일 그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쯤 되면 설씨 어르신도 천일 그룹은 하 세자가 설립했으며, 서울의 하엔 그룹 새 회장이 하 세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설씨 집안의 51%의 지분도 당연히 천일 그룹의 소유로 이전되었다. 현재 설씨 회사는 천일 그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설씨 집안도 천일 그룹의 높은 위치에 간신히 오른 셈이다. 지금 이런 전화를 했다는 것은 천일 그룹의 출범식에 설씨 집안의 현 책임자를 참석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설씨 어르신은
설씨 어르신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그 말도 틀리지는 않네. 이전에 서울에서 은아가 하엔 그룹과 관계가 있었으니 이번에 그녀에게 이 대표를 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네!” “그래요, 할아버지. 설은아가 우리 밥을 먹고 지낸 지 오래 되었으니 지금 우리를 대신해서 마땅히 일을 해야지요!”“맞아요! 지금은 그들이 설씨 회사에서 뭣도 아니니 지금 우리가 그에게 직무를 주면 그녀는 분명 감지덕지 하면서 우리 일들을 잘 처리해 줄 거에요.”“맞아요. 은아한테 가라고 하세요. 그녀가 제일 부탁을 잘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전문적이라……”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끊임없이 맞장구를 쳤다. 설씨 어르신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좋아, 설동수, 그럼 네게 책임지고 셋째네 집에 가서 말해. 천일 그룹과의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으면 다시 출근 시켜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설씨 집안에 돌아올 수 없다고!” ……지금 하현과 네 사람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설유아는 며칠 전 전학수속을 마치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식사 자리에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고 설은아는 약간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그들은 이미 집 주인으로부터 통지를 받았다. 설씨 집안 쪽에서 임대료 지불하는 것을 멈춘 상태이고, 다음 달에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들은 모두 이사를 해야 했다. 이번에 남원에 오기 위해서 설씨 집안 사람들의 현금은 거의 끊겼고, 설은아네 식구들도 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원의 비싼 월세를 내는 건 1년 반 정도는 견딜 수 있겠지만 더 길어지면 곤란해 질것이다. 이때 설은아는 일을 찾아 출근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놀고 먹다가는 금세 바닥이 보일 것이다. 이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갑자기 설동수가 들어왔다. 예의라고는 조금도 없이 방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남원에서 이렇게 큰방에서 지낼 수 있다니 분명 당신들 인생의 최고 절정기
“설은아. 너 오늘만 설씨 집안 대표로 천일그룹에 가!”“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 세자와 잠자리를 가져서라도 너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야 돼!” “그렇지 않으면! 흥!”전화 맞은편에서 설씨 어르신의 말투는 굉장히 무거웠다. 사실 그의 신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설동수가 나갈 때, 설민혁이 옆에서 유치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아무튼 설은아를 무조건 대표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때 설은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설민혁 일가를 편애하고 그들 집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하현이 다가와 설동수의 핸드폰을 ‘탁’하고 땅바닥으로 내리쳤다. 전화 맞은편에서 잡음이 한바탕 들려오더니 그 후에 소리가 뚝 그쳤다. 설동수는 어리둥절했다. 설재석도 멍해졌다. 설은아 역시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하현이 지금 화를 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희정은 초조했다. “하현, 너 뭐 하는 거야? 어르신이 우리 가족에게 기회를 주는데! 너 정말 우리 식구들이 설씨 집안에서 쫓겨나길 바라는 거야?”설재석도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설씨 어르신이 이런 말까지 꺼냈다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정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랐다.“어머니, 그들은 우리를 모욕 하는 거에요! 은아보고 다른 사람한테 가서 잠자리를 하라니요? 이게 할아버지가 손녀한테 할 수 있는 말인가요?”말을 마치고 하현은 싸늘하게 설동수를 응시하였다. “내가 3초 시간을 줄게. 꺼지지 않으면 내가 네 다리를 부러뜨려버리겠어!”“너……”설동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현 이 정신 병자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때렸던 것이 생각 나자 그는 순간 두려웠다.설동수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설은아 가족들은 모두 하현을 노려보았다. 비록 방금 설씨 어르신이 듣기 거북한 말을 하긴 했지만 아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