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가 내놓은 조건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적어도 설씨 집안이 숨통을 틀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하엔 그룹이 뒷받침을 해주면 후에 설씨 집안은 남원에서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주주의 권리를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 일단 눈앞에 있는 고비는 넘기고 봐야지. 하지만 설씨 어르신이 동의하자, 설씨 집안 사람들은 오히려 조급해졌다. “할아버지. 이건 정말 동의할 수 없어요!”“그래요! 만약 동의하시면 이후에 우리 집안은 설씨 회사에서 어떠한 발언권도 가지지 못해요!”“할아버지!”“우리 다시 방법을 생각해 봐요!”이 순간, 설씨네 식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었고 표정 하나하나가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하엔 그룹이 주인으로 들어서서 비록 설씨 회사의 발전에 이익을 얻긴 하겠지만 51%의 지분이 없어진 것이다. 설씨 집안 모든 사람은 하엔 그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셈이다. “그만해, 입 다물어!”설씨 어르신은 일어서서 장내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노하며 소리쳤다. “이미 끝난 일이니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설씨 어르신이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보자 설씨 집안 사람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사실상 따지고 보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손실은 크지 않았다. 심지어 많은 이점이 있었다.필경 설씨 집안은 이후에 80%는 설민혁의 것이 될 텐데 그들이 퇴출당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심지어 하엔 그룹이 제어를 하고 나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 질 것이다. 방금 표명한 것은 더욱 자신이 가문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도록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회장이 예상한 장면을 보자, 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고 스태프들은 미리 준비된 법률 문서를 건넸다. 설씨 어르신은 비록 마음이 아파 눈가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어쩔 수없이 이를 갈며 서류에 서명을 했다. 이 순간, 설씨 회사의 소유권은 하엔 그룹이 장악했
“저 사람?”설씨 어르신은 피식 웃으며 주저 없이 말했다. “이 데릴사위는 당연히 자격이 없는데 남원에 가는 이렇게 중요한 일에 언제 그가 갈 차례가 오겠어?” “하지만 셋째 삼촌은 반드시 가야하고 설은아도 가야겠지? 하현, 내가 정말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네 마누라 가족은 전부 남원으로 가야 돼. 너 혼자 서울에 외롭게 남겨두면 굶어 죽으려나?”설민혁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하현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남원을 다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바보 같은 놈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설은아가 입을 열지 않았고, 설지연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안돼요! 하현은 반드시 남원으로 가야 돼요!”설씨 집안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설지연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뇌가 고장 났나? 뜻밖에도 하현을 위해 말을 하다니?”설지연은 이때도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설은아가 남원에 가야 되면 이 폐물도 반드시 같이 가야 해요. 게다가 모두에게 그녀의 남편이 데릴사위라는 것을 알려야 돼요.”분명 설지연은 왕정민이 설은아를 마음에 들어 할 까봐 겁이 났다. 그녀가 왕씨 집안에 시집갈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어떻게든 하현을 같이 보내야 했다. 설씨 어르신은 원래 설민혁을 지지하려고 했는데 지금 설지연이 이렇게 상기시켜주자 하현을 의미심장하게 본 후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리가 있다. 이 폐물이 여전히 이용가치가 있으니 그도 데리고 가자.” “하지만 설씨 집안 사람들은 일등석에 탈 거야. 이 폐물은 이코노미석 하나 내줄게!”이 말에 설씨 집안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사람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할아버지, 어르신은 정말 마음씨가 좋으시네요. 이 폐물은 평생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을 것 같아요.” “얘야. 몇 번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는데 모처럼 이코노미석 한 번 타면 사진을 몇 백장씩 찍어서 반년 넘게 친구들끼리 돌려 본
보름 뒤 남원.제주 공항에 이날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었다. 제일 이른 시간에 대기업에서 중요인사들을 이곳으로 파견했다.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특전사들이 중요한 장소를 순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최근 보름 동안 소문이 돌았다. 3년 전 일찍이 남원을 군림하던 거물, 왕이 돌아왔다!남원의 상류층들은 일찌감치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거물의 진면목을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비행기에서 막 내린 많은 승객들은 이 광경을 보고 궁금해했다. 수소문해본 결과 그들은 오늘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전설 속의 거물은 듣기로는 3년 전 남원에서 변덕이 죽 끓듯 했었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최고 정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 갑자기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그가 죽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자기 가문의 사람을 몰래 음해하려고 했다고도 하고, 성과 이름을 감추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요컨대, 각양각색의 판본과 전설이 있었다. 게다가 이 거물은 그 당시 매우 절제되어 있어서 얼굴을 내미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남원의 상류층이라도 그의 진면목을 목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의 전설은 매우 많았고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무슨 자수성가인가?한 사람이 천억 상업 제국을 건설했다. 남원의 금융가가 발을 동동 구르면 전부 파산했다. 아직 시집가지 않은 부잣집 따님들은 하나같이 가능성을 가지고 우러러 보았다. 그녀들의 마음 중심에는 남신이 있었다. 자신도 이런 남자에게 시집갈 기회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때 공항 귀빈 통로에서 설씨 집안의 크고 작은 짐 꾸러미가 나왔다. 설씨 어르신은 비록 서울에서 상류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앞장서서 나갔을 때 감탄하는 빛이 역력했다. 남원! 얼마나 많은 기업이 밟고 싶어하는 곳인지 강남의 많은 가문들도
설재석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버지, 오늘 밤 우리 설씨 집안이 처음 남원에 왔다고 왕씨 집안에서 만찬을 베풀어 우리를 초대해 주었어요. 이름있는 인물들도 많이 모셨다고 하네요.”“아니면 우리가 이 거물급 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낼까요? 우리가 같은 날 공항 귀빈통로로 나온 이상 인연인 셈인데 약속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설씨 어르신은 격양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이런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저녁연회에 참여한다면 설씨 집안은 절대적으로 남원에서의 명성이 높아질 것이다!설씨 가문의 향후 남원에서의 위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게 격상할 것이다. 무리들 뒤에서 설은아는 앞이 북적거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약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뒤를 힐끗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내가 뒤에 가서 좀 보고 올게. 하현이 아직 안 나왔어……”“보긴 뭘 봐?”희정은 눈을 부릅떴다. “오늘은 설씨 집안의 큰 날인데 그 폐물이 안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늘 밤 아마 왕씨네 자제분이 올 거야. 설지연 그 야비한 여자는 너 때문에 그녀가 각광받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 그래서 하현이 꼭 와야 한다고 하는 거야. 나는 정말 그녀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 희정은 욕지거리를 해댔다. 설은아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엄마, 지연이 말도 틀리진 않아. 나는 이미 시집을 갔는데 어떻게 설지연의 좋은 일을 망칠 수가 있겠어?”“너…… 시집갔으면 이혼도 할 수 있는 거야! 만약에 어르신이 편애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네가 꼭 호족에게 시집을 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없었을 거야……”희정은 스스로 말을 꺼내면서도 점점 화가 나서 기절할 뻔했다. “지금 네가 여전히 그 놈을 보러 간다고 하니 난 정말, 난 정말……”“알았어, 엄마. 오늘 엄마를 잘 모실게. 그 사람 다 큰 사람이니 잃어버리진 않겠지. 내가 이따가 주소를 보내주면 돼.”설은아는 하현이 조금 걱정
남원으로 돌아갈 때 그는 이코노미석을 타지 않았고 전세기를 탔다. 하씨 집안이 떠보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비밀 루트를 통해 새어 나갔다. 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면은 바로 그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지금 하현은 서둘러 나가지 않고 물었다. “슬기, 확실히 알아봤어?”며칠 전 남원에 와서 모든 일을 알아봤던 슬기는 지금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회장님, 회장님의 행방은 저와 회장님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인데, 이게 어떤 통로를 통해 유출됐는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하지만, 회장님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하수진 아가씨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뭐라고 그러든?”하현은 잠시 멈추었다. 하수진은 하씨 집안의 양녀이지만 하씨 집안에서 그녀의 위치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그녀의 몫이 있었다. “왕이 돌아왔다고 하던데요?” 슬기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네. 시간을 내서 그녀를 한 번 만나자. 내 여동생이 날 위해 도대체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지 궁금하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적어두고는 이어서 말했다. “천일 그룹의 일은 이미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번에 회장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일은 조용히 처리했고, 조달한 자금도 비밀로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하씨 집안 쪽에서 회장님과 천일 그룹의 관계를 눈치채게 될 것 같습니다.”“괜찮아. 그들을 속일 필요 없어. 게다가 겨눌 대상이 있어도 그들은 밤에도 비교적 잘 자거든.”“그 밖에, 듣기로 오늘 W호텔에서 설씨 집안을 위해 왕씨 가문이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방금 설씨네 집안 사람이 뜻밖에도 사람을 보내서 회장님을 저녁 만찬에 초대했습니다.”슬기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씨 집안 사람들은 정말 웃긴다. 거물이 바로 자기 옆에 있으면서 왜 초대장을 보내지?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하현이 물었다.“시간은?”“오늘 저녁 8시입니다.”“
원래 왕태민은 이런 영문도 모르는 연회를 주관하는데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만약 가족이 이 임무를 자신에게 강행해서 맡기지 않았다면 그는 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자신이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태민 이 인물은 진정한 사냥꾼이다. 지금 비록 그가 설은아와 설유아 두 자매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는 기름기 많은 남자처럼 행동하지 않았고 품위 있게 행동했다. 이때, 왕태민은 잔을 들고 얼굴이 붉어진 설씨 어르신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오늘 이 왕태민이 왕씨 집안을 대표해서 설씨 집안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설씨 집안 분들은 모두 뛰어나신 인재들이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원 상업계에서도 강한 세력이 되어 우리 남원의 귀하신 몸이 되실 겁니다. 제가 어르신께 한 잔 드리지요.” 설씨 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분이 왕씨 집안 사람이구나! 왕씨 집안 사람이 설씨 집안에게 저녁 만찬을 베풀어 줄 뿐만 아니라 직접 와서 술을 권하다니, 이건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희 설씨 집안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설씨 어르신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입을 열었다. 왕태민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설은아를 한 번 쳐다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왕 아무개가 아직 혼인을 안 했는데 설씨 집안의 사위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이 말이 나오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왕태민은 비록 왕씨 집안에서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았고, 후계자도 아니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왕씨 집안 사람이었다. 평일 낮에는 많은 부잣집 따님들이 그의 양복바지에 엎드리려고 했다. 그가 오늘 적극적으로 이것을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씨 어르신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전에 제가 저희 집 셋째가 하는 말을 듣기로 왕씨 집안에서 저희 설씨 집안과 혼인을 맺기를 원한다고 하던데 보아하니 왕씨 집안 사람에서 자제님를 선택하
“맞아요! 듣기로 거물급 인사가 남원에 왔다면서요. 게다가 오후에 공항에 도착했다던데 당신들 설씨 집안 사람들은 운도 좋네요. 아마 이 거물급 인사와 앞뒤로 도착했을지도 몰라요!”“안씨 집안이 말하기로는 일류 가문의 고씨네 후계자도 왔었대요. 이 거물급 인사를 한 번 만나보려고 준비했었는데 아쉽게도 자격이 안되네요!”“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하씨 가문의 하수진 아가씨도 나타났었대요. 만나보려고 공항에서 몇 시간은 기다린 것 같은데 아쉽게도 만나보지 못했어요.”“당신들 설씨 집안 사람들은 이런 큰 인물들을 우연히 만났을지도 모르겠네요……”“……”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설씨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말하자면 이 일은 정말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설씨 집안은 이 일을 알고 나서 이 거물급 인사께 초대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우연히 마주쳤을지도 몰라요. 혹시 그분이 우리 이 만찬에 참석할 수도 있어요.”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그런 거물급 인사가 어떻게 이런 만찬에 참석할 수 있겠어요?”“하씨 가문도 만나보기 어려운 사람인데!”모두가 믿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설씨 어르신도 자신은 없었지만 그저 계속 지켜볼 뿐이었다. 이때 설동수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아버지 그 거물급 인사의 비서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분이 우리 만찬에 참석하시겠다고 해요. 지금 오시는 중이래요. 금방 도착하신대요!”“뭐! 설마 정말 하늘이 우리 설씨 집안을 돕는 것인가!”“우리 설씨 집안에 이런 기연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흥분한 기색이었다. 한 집안의 흥망성쇠는 하나의 운이 굉장히 중요하다.그리고 오늘 그들은 한 걸음 더 하늘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다른 하객들은 하나같이 부러움과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이 설씨네는 과연 복이 많구나. 이런 추세라면 아마 얼마 안 가서 남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 설지연은 꽃처럼 웃으며 말했다. “
순간, 그곳에 있던 설씨 가족들의 얼굴빛은 비할 데 없이 이상해졌다. “이 폐물이 아직 안 왔다는 걸 잊고 있었군!”희정은 이 순간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이 데릴사위는 조금도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나?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게다가 이렇게 극적인 순간에 오다니! 빌어먹을! 이때 희정은 참지 못하고 설재석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서울에 왔을 때 나약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일찍 이 데릴사위를 쓸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방금 왕태민이 우리 딸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못 봤어?얼마나 좋은 기회야!이 모든 게 다 이 쓸모없는 놈 때문이야!설재석도 눈빛이 어두웠다. 서울에서는 설씨 어르신이 마음대로 정하긴 했지만 여기서는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반드시 이 쓸모없는 인간을 굴려버려야 한다!하현은 지금 오히려 뭇 사람들의 의아한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설씨 어르신 앞으로 갔다. “어르신, 오늘 설씨 집안이 정식적으로 남원에 발을 들여 놓으니 너무 기쁘네요. 축하드립니다.” 하현의 웃음은 의미심장했고, 말 속에 또 다른 뜻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 곳에서 이것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설씨 어르신은 이 때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하현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너 이 폐물아! 너 우리가 여기서 연회를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누가 너더러 여기 오라고 했어!” “거기다 올 거면 그냥 올 것이지, 왜 허풍을 떨면서 와? 너 사람들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까 봐 무서워서 그래?” “말은 자기 얼굴이 길다는 걸 모른다는 말처럼, 이 보잘것없는 데릴사위야, 너는 정말 아직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는 거야?”“오늘 이 자리가 우리 설씨 집안에 얼마나 중요한 지 너 몰라? 감히 여길 오다니? 징그럽다!”뒤쪽에서 설민혁이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하현, 너 무슨 자격으로 여기에 온 거야!?”하현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왜 여기 올 자격이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