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민 도련님이 곧 내 사위가 되면 그가 설마 자신의 장인을 구덩이에 빠뜨리게 하겠어요?”설재석은 당당하게 말했다. “허, 사위?” 설지연은 머리를 한 번 치켜 올리며 비꼬는 얼굴로 말했다.“셋째 삼촌, 먼저 따님을 좀 보세요. 데릴사위랑 이혼을 한 다음 그 때 다시 얘기해요! 저는 삼촌이 꿈에서 깰 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무섭네요!”“너…”설재석은 설지연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거의 말을 잇지 못했다. “됐어. 다 우리 식구야. 떠들지 마!”설씨 어르신은 책상을 툭툭 치더니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밤새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이게 무슨 짓이냐!”“설재석, 하나 물어보자. 왕씨 집안이 우리 설씨 집안과 혼인을 맺으려는 게 사실이야?”설씨 어르신은 사색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설재석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틀림없어요. 당연히 진짜죠. 가짜일 리가 없어요!”“그럼 왕씨 집안이 지정을 했으면 누구하고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거야?”설씨 어르신은 이어서 말했다.설재석은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 “아니요. 왕정민 도련님이 말하길 왕씨 집안이 설씨 집안과 혼인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지명한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제 생각엔, 제 딸이…”“안돼!” 설씨 어르신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은아는 하현하고 이혼할 수 없어!”비록 설씨 어르신이 왕씨 집안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겼지만, 그는 겨우 이 데릴사위에 기대에 안씨 집안의 프로젝트를 따낸 일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 잠시 동안은 하현을 쓸어버릴 수 없었다. 왕씨 집안과 설씨 집안의 결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안씨 집안의 미움을 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왕씨 집안과 관계가 확정되면 데릴사위를 걷어찰 기회는 많다. 이 생각에 미치자 설씨 어르신은 계속 말했다. “왕씨 집안이 우리 설씨 집안의 혼인 상대를 정하지 않는 이상 그럼 잠정적으로는 설지연으로 하자. 우리 설씨 집안 세 명중에 결혼 안 한 사람
설지연과 눈빛을 교환한 설민혁은 일어서서 진지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왕씨 집안과 우리 설씨 집안과의 결혼을 정말 고민하고 계시다면 정말 한 번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그는 설지연이 왕씨 집안과 결혼을 하면 설씨 집안이 남원에 발을 붙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쯤이면 안씨 집안의 프로젝트의 힘을 빌려 안씨 집안에 접근해 안수정의 사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왕씨 집안과 안씨 집안의 지지를 받으면 결국 설씨 집안 말고 누구의 손에 넘어가겠는가?설지연은 이 때도 연기를 하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 우리 남편 집안이 우리 설씨 집안과 합작을 하려고 하는데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해요!”방금 또박또박 반대를 하며 의연한 표정을 짓던 설지연은 표정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변하는지 책보다 더 빨리 뒤집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어쨌든 지금 왕씨 집안에 시집을 갈 수 있는 건 그녀였다.왕씨 가문은 제주의 일선 가문, 진정한 호족이다!이런 왕씨 가문과 비교해볼 때 설씨 가문은 정말 기준에도 못 미쳤다!이렇게 허영심이 많은 여자에게 이런 기회가 온 이상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놓칠 수 없었다. 설민혁과 설지연이 모두 동의한 걸 듣고 이 때 다른 설씨 집안 사람들도 눈을 마주치며 한 목소리로 동의하는 목소리를 냈다. 설은아가 설씨 집안의 재정을 장악한 이후 많은 설씨 사람들은 설씨 집안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하나 둘씩 고생을 하였는데 쉽지 않은 기회에 이제 설민혁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그들이 이전 생활로 돌아가 심지어 이전보다 더 사치스러워질 수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반대를 할 수 있겠는가?방금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설은아가 더 큰 권력을 얻을 까봐 두려워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지금 설씨 어르신이 설은아에게 권력을 쥐게 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게 분명한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겠는가?설은아와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지금 신경 쓰는
설은아, 하현, 희정 이 세 사람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설씨네 가족회의는 끝이 나버렸다. 만약 하현이 그 곳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 왕씨 집안과 설씨 집안의 협력을 막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왕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왕씨 가문과 합작했던 사람들은 머리도 남지 않고 뼈까지 다 삼켜졌기 때문이다.……하현과 두 사람이 설씨네 별장 홀에 왔을 때 텅 빈 공간에 오직 설재석 혼자만 어두운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아버님……”“아버지……”“죽지도 않는 늙은이가 가족회의를 연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당신 혼자 있는 거야? 당신이 한 가지 일을 발표한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일이야?”희정은 지금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에 설재석과 통화 할 때 그의 말투로 그가 지금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화장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늦게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늦게 온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설재석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 보였고, 이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나운 짐승처럼 차갑게 희정을 한번 보고 또 설은아를 쳐다보았다. 제일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은 하현에게 떨어졌다. 다시 그 성질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말했다.“폐물! 빌어먹을 놈! 내가 남원에서 몇 년간 노력했던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어!”“하현, 내가 경고하는데 비록 지금 설씨 어르신이 너랑 은아를 이혼시키려 하지 않지만 너는 내 딸과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걸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해! 만약 네가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네가 자진해서 이혼을 하겠다고 해야 해!”설재석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내 딸은 애지중지하면서 자란 딸이야. 호족에게 시집을 가야지, 너 같은 폐인한테 시집을 가서는 안 된다고!”“너 말해봐. 네가 우리 설씨 집안에 온지 3년이나 됐는데 너를 어디에 써먹을 수 있겠나?”“너 먹는 거 말고! 자는 거
한밤중 서울은 매우 한산했다. 하현은 쫓겨났을 때 자신의 포르쉐를 타지 않았고, 그저 전기차를 타고 갔다.밤 10시가 넘어 회사 쪽에는 이미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경비원조차 없었다. 하현은 온 몸을 뒤져보고는 자신이 한 푼도 안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어 김겨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기는 아직도 치료를 받는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불편하더라도 김겨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휴식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 맞은편의 김겨울은 지금 아파트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랐다. 전화를 사이에 두고도 그녀는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뭐 지시하실 게 있으신가요?”하현도 약간 난처했으나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잘 곳이 없는데 혹시 내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을까?”김겨울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얼굴이 빨개지더니 멍해졌다. 회장님이 뭔가 암시를 하는 건가?비서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들 하던데 자신의 지금 직무는 비서와 같다. 근데 문제는 슬기언니도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진 않았는데 내가 이것에 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김겨울은 생각이 뒤엉켜 죽을 지경이었다. 만약 하현이 결혼을 안 했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이런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겠지만 지금 하현은 가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자신이 그의 결혼관계를 망가뜨리면 아마 수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제 3자가 된다는 것은 김겨울의 오만함 정도로는 결코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 편에서 뒤엉킨 것이 마무리되지 않자 전화 맞은편에 있는 하현 역시 난처했다.“불편하면 슬기한테 전화하면 돼. 쉬는 거 방해하지 않을게…”김겨울은 잠시 망설이다 급히 말했다.“괜찮아요. 회장님. 괜찮으시다면 여기로 오셔서 쉬세요. 객실이 하나 더 있거든요.”“그리고 지금 시간이 좀 일러서 제가 지금 서울 청년 모임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
종업원은 ‘피식’ 웃었다. 그는 하현을 위아래로 잠시 훑어본 후 가장자리에 있는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선생님. 당신이 운전하는 차를 한 번 보세요. 무슨 옷을 입고 있는 지도요. 그리고 여기에 주차된 차들은 어떤 차들인지 다시 한 번 보세요. 당신이 여기에서 돈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우리가 여기서 하룻밤에 쓰는 돈은 당신이 평생 벌어도 안 되는 돈이에요.”“누구든 이 모임에 오려면 반드시 고급 차를 몰고 와야 하나요? 공용 전기차를 몰고 오는 게 어때서요?” 하현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 개인 클럽의 종업원조차 이렇게 사람을 깔볼 줄 알았다면 그는 자신의 포르쉐를 몰고 왔어야 했다. “동생아, 솔직히 말해봐. 너 잘난 척하고 싶지? 여기서는 여자를 꼬시려고 해도 어쨌든 너한테는 안 어울려!”종업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개인 클럽이라 서비스도 미리 예약을 해야 돼. 네가 예약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해? 내가 예약할 자격이 없다고?”하현이 물었다. 종업원은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너 여기서 함부로 굴지마. 우리 클럽은 오늘 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어. 거기다 지위가 높으신 손님도 한 분 계시단 말이야!”“오늘 밤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서울 출신이고, 엘리트들이야. 네가 이런 모임에 무슨 자격이 있어서 참여할 수 있겠냐?” 종업원은 노파심에 거듭 충고를 했다. 얼굴 가득 경멸하는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자 하현도 할 말을 잃었다. 이러는 자기 자신도 빈궁한 출신이라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 너는 돈도 몇 푼 벌지 못하면서 사람을 얕잡아 보는 법을 배웠구나. 정말 기가 막힌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포르쉐 718 한 대가 들어왔다. “종업원, 너 장님이야? 빨리 주차할 자리 좀 찾아줘!” 누군가 차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종업원을 향해 소리쳤다. 이 종업원은 지금
상대의 움직임을 느낀 하현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동시에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짝!”쟁쟁한 소리에 이 젊은이는 어리둥절해 졌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말씀하시는데! 넌 뭐하는 자식이야! 감히 나한테 손찌검을 하다니! 너 같은 대리운전 기사가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넌 죽었어!”젊은이는 이를 갈고 화를 내며 욕을 퍼부었다.“너에게 호의를 베풀 테니, 더 이상 날 건드리지 마. 그렇지 않으면 보기 흉하게 죽여버리겠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곧장 클럽을 향해 걸어갔다. 그 종업원은 얼떨떨했다.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이 대리운전기사가 감히 포르쉐를 운전하는 사람을 때리다니?살기 싫은가?그는 얼른 젊은이 쪽으로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괜찮아. 오늘 밤 반드시 어떤 놈에게는 큰 일이 생길 거야!”이 젊은이는 차가운 웃음을 연발했다. 오늘 밤 이 클럽은 이미 전세를 냈기 때문에 지금 클럽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도망 갈 수 없었다. 이때 그는 오히려 화를 내지 않고 차에 올라탔고, 종업원이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 순간 그 차는 하현의 전기차를 들이받아 날려버렸다. 종업원은 얼떨떨했다. 어떻게 된 거지?요즘 부자들은 돈 쓰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런 일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 이때 마침 BMW가 오더니 차를 세우고 포르쉐 쪽으로 다가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장영일, 너 무슨 일이야? 너 이 전기차를 받으려고 한 거야? 너 미쳤어?” ”대리운전 기사가 감히 내 주차자리를 뺏길래 그냥 날려 버린 거야.”장영일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가겠다면 가는 거지.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내 차가 낡아서 마침 바꿀 때가 됐는데 오늘 밤 그 사람한테 보상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정영일은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전기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무슨 돈을 물
장영일 옆에 있던 사람이 하현을 보며 말했다.“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가를 받고 대리운전을 하면서 우리 비위를 맞추려고 섞여 들어온 가난뱅이 아닐까? 장영일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마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우리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 같은 거를 구해서 자기가 이 모임에 참여할 자격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우리 안에 녹아들 수 있을까? 재밌는 녀석이네!”“저런 사람은 정말 자신의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천진난만하게 섞여 들어온다고 해서 그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정말 없을까? 실제로 우리 울타리는 너무 작은데 누가 누군지 왜 모르겠어?”“어때, 저 녀석과 놀아 보는 게?”“가자, 저런 쓰레기가 감히 우리 모임에 끼어 있으니 혼을 내줘야지. 오늘 밤 할 일이 없을까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장영일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내가 먼저 널 때린 사람에게 가볼까? 우리 도련님을 위해서?!”이 사람은 분명 장영일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 이 순간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영일도 실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신분이 있는 사람으로, 지금 누군가가 그를 도와 손을 대준다고 하니 다른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장영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술 한 잔을 들고 하현의 앞으로 걸어 갔다. “듣자 하니 당신 전기차를 몰고 우리 모임에 왔다면서요?”이 사람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온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빛을 띠고 있었다.“나랑 너랑은 모르는 사이지.”하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김겨울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그는 가고 싶었다. 그는 이런 자리에 정말 흥미가 없었다. 이전에 너무 많이 와봐서 짜증이 났다. “당신 같은 쓰레기는 당연히 나를 알 자격이 없지. 근데 우리는 이런 모임에서 어떤 쓰레기와도 함께 섞이고 싶지가 않아. 쓰레기는 우리 모임에 나올 자격이 없어!” 이 말을 마치자 하현의 얼굴에 술 한잔이 쏟아졌다.
“장 도련님이 너 스스로 무릎 꿇도록 분명 준비했을 거야.”이 때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테두리는 일치되게 단결된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속고 속이는 일이 너무 많았다. 오늘 밤은 김겨울이 조직한 모임으로, 적지 않은 재벌 2세 독신 남성들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를 원했다. 이때 장영일로 하여금 어떤 일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김겨울이 실증이 나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기회가 많아지지 않겠는가?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맞은 편에서 장영일은 약간 오리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 장영일은 원래 너무 시끄럽게 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오늘밤은 김겨울의 홈 그라운드이고, 이때 일이 커지면 그녀의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김겨울은 지금 하엔 그룹의 고위직이다. 게다가 최근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슬기를 대신해서 한 명 아래 만 명을 거느리는 하엔 그룹의 그 신비한 새 회장의 비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때 누가 감히 그녀의 미움을 사겠는가?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을 대표해서 얼마나 하엔 그룹의 총애를 많이 받으려고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고 장영일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만약 그가 오늘 이렇게 넘어간다면 그의 체면은 어디에 서겠는가? 이 일이 만약 소문이라도 나면 아마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쓰레기. 오늘은 재수가 없군. 모두들 재미가 붙은 김에 내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지.”장영일은 사납게 웃으며 탁자 위의 양주 병을 손으로 집어 들고는 하현의 면전 앞으로 향해갔다. 군중들은 웃기 시작했고 모두 함성을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구경거리를 보면서 일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의 눈에는 지금 쓰레기를 때리는 것일 뿐이니 무슨 동정이 필요하겠는가?어차피 매번 모임을 할 때마다 몇 명의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번 모임에도 자극하는 일이 하나 추가된 셈 치면 된다. 소란스럽던 소리가 이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
그들의 눈에는 하현이 간민효를 잡아먹기라도 할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민효의 손을 놓았다.하지만 그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간민효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보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쨌든 당신 덕에 위기를 모면했어요.”“내가 미리 독을 넣긴 했지만 비행기가 그대로 출발해서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은 모두 나한테 책임이 있었을 거구요.”간민효는 멍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래저래 난 하현 당신에게 신세를 졌어요.”“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 간민효의 친구가 된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나 간민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예요!”“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내 진심이에요!”“내가 없어도 내 명함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혹은 약혼자를 찾아가도...”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명함을 꺼내 하현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들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하현은 손안에 든 명함을 보았다.이것은 특수 목기로 조각한 것이었다.이름 하나와 전화번호만 새겨져 있어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명함은 딱 봐도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히 명함을 살피기 시작했다.명함 모서리에 몇 가지 비밀 문양 같은 것이 있었다.역시 금정 간 씨 가문다웠다.5대 문벌 중 문벌의 기원지인 금정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금정 간 씨 가문!금정 간 씨 가문은 다른 오래된 문벌보다 신비에 가까운 기세를 가진 강력한 집안이었다.이 여자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신분도 간석준보다 훨씬 높았다.이런 생각들이 하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그는 간민효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아, 고맙습니다.”그러나 하현은 간민효의 명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특히 깁스를 한 여자가 죽기 직전에 한 ‘독’이라는 말에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 아름다운 검은 옷의 여인에게 신의 경지에 가까운 독술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의외의 실패를 맛볼 수가 있다.동시에 하현은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신분이 비할 바 없이 높고 독극물에 대해서도 해박하다.게다가 간 씨 성을 가지고 있다.이쯤 되고 보니 상대의 신분은 알 만할 것 같았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하현은 그녀의 신분을 캐지 않았다.하현은 이제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상대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관심을 둘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곧이어 중년 수사대장이 하현을 찾아와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다.하현은 금정으로 가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스튜어디스에게 공을 넘겼다.양효리라는 이름의 스튜어디스는 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다송이 그녀를 막았다.이 모습이 하현의 흥미를 끌었다.양효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다송 같은 여자와 절친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와 뒤엉키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양효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부지불식중에 이다송에게 물들어버릴 것 같았다.하지만 이미 자신과 얽힌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았다.곧 일등석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특수 약물을 뿌린 뒤여서 그런지 좀 전의 피비린내는 모두 싹 사라졌다.하현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그러자 간 씨 성을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