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 나서야 강천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심근염의 가장 큰 원인은 심근 손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심근염을 완전히 낫게 하려면 염증이 생긴 심근을 잘라 심장 우회수술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입니다!”“하지만 이런 방법은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환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금전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고, 한편으로 우리 의사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큰 시험거리입니다!”“수많은 외과계의 쟁쟁한 인물들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줄을 서보지만 이 역시 차례가 오지 않아 적지 않은 중증환자를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병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강천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하지만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의사들이 기술이 뛰어나고 24시간 수술을 한다고 해도 구할 수 있는 환자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이점이 뼈아픈 점입니다!”이 말을 듣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의사들 하나하나가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어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 힘이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많은 의사들이 이미 주말과 휴일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환자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천 주임은 젊은 나이에도 이러한 점을 이해했을 정도로 많은 의사들을 뛰어넘었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를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크고 깊지는 않다. 몇몇 의학계의 태산북두급 인물들은 지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역시 강씨 집안의 자제답고 황천수의 제자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이런 태산북두들은 하나같이 의술이 정밀하고 의학계에서 여러 해 동안 깊이 연구하였으나 그들 중 어떤 것을 얻어낼 만한 진정한 획기적인 연구는 하지 못했다. 눈앞의 이 청년이 오히려 의학을 배우며 이렇게 중대한 연구를 해냈다니!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강천의 말을 들은 황천수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하하. 역시 자신은 사람을 참 잘 본다!자신의 의
그러자 황천수는 껄걸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자, 젊은이들의 일은 젊은이들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합시다. 이 노인도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하지만 오늘은 의학 강좌를 하러 모였으니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좋아요! 강주임이 우리에게 강연을 해주시다니 환영입니다!”“어서 해주세요!”“이런 의학계의 역사적 순간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강천은 환호 속에 단상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동영상 재생을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의학계 선배 여러분, 이번 실험이 성공적이었고, 그 실험의 결과가 이를 증명해줍니다. 이제 기술수단만 통과하면 됩니다. 심근세포의 가속 재생을 촉진하면 신생 세포가 괴사된 세포를 대체하게 됩니다. 심근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피부가 괴사해 피부를 잘라내고 다시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물론 심장에 관한 일이니 더 정교한 기술, 더 효과적인 약물 등을 조합해야 하는데……”“여러분 앞에 대략적인 자료가 있으니 한 번 훑어보시면 제 견해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이 말들을 듣자 모두들 앞에 놓인 자료를 들고 뒤지기 시작했다. 자료를 넘길수록 주위의 탄성이 더 커졌다!천재네! 이 젊은이는 절대적인 천재야!이런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다니. 이걸 현실로 만드는 게 관건이네. 천하에 인재가 나왔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네. 새로운 세대가 옛 세대를 바꿨다!이 젊은이의 의학에 대한 조예는 정말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다! 심장병 분야의 권위자들도 모두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심장병 분야에서 수십 년을 연구해 온 베테랑 전문가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땅에 떨어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근데 강천은 몇 살이지?그는 의대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절대 5년을 넘지 않는다!5년 만에 이 정도 성취를 이룬 것은 유례없이 전무후무하다
강단에 서있는 강천의 눈빛은 반짝였지만 얼굴은 다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고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연아. 이 사람 누구야?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횡설수설 할 수 있어? 설마 그 사람 이 자리가 얼마나 엄숙한 자리인지 모르는 거야?”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황천수가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무슨 상황이지?서연이 남자를 데리고 왔으면 그만이지, 도에 지나친 질문은 상대하기가 싫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남자가 처음부터 강천의 연구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 온 것이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판을 깨러 온 건가?지금 이 순간, 황천수는 분노가 불타올랐다!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이런 것들을 함부로 말하다니!일단 말을 함부로 내 뱉으면 그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 아름다워야 할 엄숙한 순간을 곧 코미디로 바꿔버린다. “이 젊은이는 어쩐 일인가? 딱 보니 의학계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함부로 입을 열면 강주임은 몇 분 안에 당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어.”“젊은이. 아무거나 막 먹는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하면 안돼!”“지금 당장 강선생님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지금 경비원을 불러 내쫓겠어……”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몇 명의 젊은 의사가 걸어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로 해서 안되면 손찌검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필경 강천은 의학계 집안 출신으로 또 서울종합병원의 황천수를 스승으로 모셨으니 그에게 매달리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황천수는 이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말했다.“서연아. 이 친구가 어찌 되든지 간에 지금 우리는 즐겁지가 않으니 네가 내보내라.”분명 황천수는 일이 커질까 봐 지금 이 순간에도 예의 바르게 말을 했다. 그러나 다른 의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강천에게 잘 보이려는 몇몇 사람은 이 순간 하현을 밀쳐 내기 시작했다. 하현이 나가지 않으면 그의 다리를 부러뜨릴 것 같았다.
황천수의 안색이 다시 변했다. 이 순간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형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네 말은 강천이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뺏어 온 거라는 거야?”“너 말할 때 먼저 뇌를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5년 전에 강천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내가 직접 도와서 조율을 해줬어!”“프로젝트 초창기에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를 찾아봤지만 아무도 그런 연구를 하지 않았어!”“나 황천수는 한국 의학계에서 아직 지위를 가지고 있고 내가 오늘 나의 인격을 이 자리에서 보증할 수 있어! 내가 직접 강천이 조금씩 의학적인 성과를 이뤄내는 것을 확실히 봐왔어!”“여기에 있는 이렇게 많은 의학계의 태산북두들은 내 일평생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의학적 표절이라는 것을 다 알아!”이 말이 나오자 주변의 많은 의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천수는 의학계에서 지위가 너무 높아 심지어 국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학술 조작을 가장 싫어했다. 이것은 많은 환자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강천은 그의 손안에서 자랐고, 그의 눈과 귀의 영향을 받아 의사로서 지녀야 할 도덕적 품성이 높은데 어떻게 남의 연구결과를 강제로 뺏거나 훔칠 수 있겠는가? 이때 서연도 정신이 번쩍 들어 조금 쑥스러웠다. 방금 자신이 조금 눈이 멀었었다. 서연은 가볍게 하현을 한 번 끌어당기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현씨, 이 일은 정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예요.”“강 선배는 제주에서 강씨 가문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이고, 강씨 가문의 의학적인 업적은 역사에 기록 될 수 있을 정도예요. 이런 집안이 이런 사소한 일로 꾸며댈 필요가 없지요.”“그들이 정말 한 번 책임을 묻게 되면, 저는 당신이 곤경에 빠질까 봐……”말을 마친 후 서연은 조금 후회했다. 하현은 오늘 하현을 데리고 의학강좌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하현을 보지 못해서 그와 단
보아하니 이 놈은 서연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한 모양이다. 근데 이 사람은 여기가 외부인이 마음대로 입을 열고 제멋대로 비평할 수 있는 곳인 줄로 여기나? 하현은 강천의 기세에 전혀 눌리지 않았고 오히려 웃으며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방금 제가 강선생님의 훌륭한 의론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쭉 봤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 안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그가 훌륭한 작품에서 인용한 학술 자료, 원문은 모두 5년 전 것으로 최근 5년 안에 나온 자료는 없었습니다……”“당신 정말 어리석네요.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훔치려면 인용한 문헌과 자료도 최신 것으로 수정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연구한 프로젝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용한 문헌자료를 수정하면 문제가 되는 문장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그러니까 강선생님께서 남의 연구 결과를 가로채는데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학계에서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면 반드시 결과를 대표하는 타당성 있는 논문이 필요하다. 이런 논문은 보통 많은 문헌과 자료를 인용한다. 인용할 때는 원본의 출처와 년도, 원작자의 이름을 기재해야 한다. 이렇게 인용된 문헌이나 자료는 수정하기 어렵다. 한 번 고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현이 지금 이러한 점을 지적하자 오히려 현장에 있던 많은 전문가들과 의사들이 모두 서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 논문은 확실히 약간의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올해 발표된 연구 결과인 만큼 최근 몇 년간의 문헌과 보고자료가 어느 정도 인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인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 잘못된 것이었다. 모두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자 황천수는 지금 이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의학계에서 여러 해 동안 명수로 불리며 단 한 명도 가짜 학생을 데려간
하현은 웃으면서 단상으로 올라갔다. 손이 가는 대로 강천의 손에서 지휘봉 하나를 빼앗아 화면 속 몇 곳을 가리켰다. 그의 동작을 보고 적지 않은 전문가, 의사들은 영문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 뭐 하는 거야?논문의 내용을 가리키지 않고 인용문헌 자료 속의 몇몇 저자를 가리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나 황천수는 그의 동작을 보고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앞으로 나아가 제지 하려 했으나 한 발 늦었다. 이 순간 강천도 뭔가를 생각한 듯 숨을 들이 쉬었다. 하현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코 그 문헌 저자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생년월일이었다!그 순간 그곳의 절대다수가 약간 얼떨떨해졌다. 네가 가리키는 이것이 뭘 증명할 수 있다는 거야?너는 보고논문 중의 허점과 조작된 부분을 지적하고 몇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하지만 네가 가리키는 이건 무슨 뜻이야?설마 몇몇 저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같다고 표절했다는 거야? 조작이라고? 장난해?이때 하현을 쳐다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은 이미 바보를 보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 녀석 딱 보니 소란스럽게 날뛰는 광대네. 정말 창피하다! 어느 집안에서 뛰쳐나온 정신병 환자인지 알 수가 없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나? 이때 하현은 다시 의사를 비웃으며 말했다.“황천수씨. 방금 본인이 말했듯이 만약 이 보고논문이 가짜면 강천 이 사기꾼을 문 밖으로 쫓아내실 건가요?”황천수는 마치 뭔가를 생각한 것 같았지만 그는 그다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지위가 있기 때문에 식언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사람을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하현을 노려보며 냉혹하게 말했다.“좋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만약 이 보고논문이 조작이라면 내가 바로 강천을 여기서 쫓아내겠어!”“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한국 주요 언론에 사과문을 게재해야 해! 기억해! 전부다!”하현은 웃으며 계속 말했다.“사실 나는 문
“역시! 이 몇 명의 외국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돌아가셨군요…”“어떤 문헌은 이미 제 3판으로 더 최신 것이었지만 자료에는 제 1판으로 표시되어 있어요.”“그리고 여기 인용한 문헌은 원작자가 3년 전에 자신의 논문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고 인용하지 말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이 논문은 인용을 했네요…”방금 현장에 있던 전문가들은 모두 논문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평소에 쉽게 지나쳤던 부분들을 자세하게 살펴보았고, 적지 않은 허점들을 발견했다. 황천수와 서연 두 사람 모두 연거푸 이상한 얼굴빛으로 강천을 쳐다보았다. 이 보고 논문이 설마 정말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를 가로챈 것일까?왜냐하면 이런 논문자료는 어디서부터 어떤 문헌을 인용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마음대로 고칠 수가 없다. 오히려 이것이 가장 큰 허점이 아닐까?서연이 고개를 돌려 하현을 바라볼 때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고, 하현을 바라보는 눈빛은 존경과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약 전문가라면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허점을 꿰뚫어보지 못했고, 오히려 문외한이 이것을 발견해낸 것이다.그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모르는 게 없다!강천은 이 순간 표정이 굳어졌고 목에 뭔가 걸린 듯 반박할 수 없었다.자신은 황백현의 제자인데 어떻게 이런 문외한에게 체면이 깎일 수 있겠는가? 지금 강천은 이미 멋있었던 풍채와 문질빈빈한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의 얼굴빛은 극도로 나빠지며 순간 차갑게 말했다. “너 이 문외한 자식!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연구를 시작할 때 자료들을 모아 놓았다가 다시 고치지 못한 거야. 학계에서 이런 건 지극히 정상이야!”“인용한 문헌으로 나를 성가시게 해봐야 기껏해야 네가 증명할 수 있는 건 내가 조작한 것을 은폐했다는 것, 여기에 머물러 더
하현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한 선생님은 예지력이 있고 통찰력이 있으신 분이에요. 그러신 분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연구라고 포기하신 거예요. 그런데 그걸로 다시 후배들을 양성한다고요?”“그럼 한 선생님이 일부러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고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너…” 강천은 하현을 가리키며 안색이 극도로 얼어붙었다. “내가 지금 한 선생님께 전화해서 네가 지금 개처럼 짖어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지!”“뭐라고? 한 선생님께 전화를 한다고?”“강 주임이 한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고?”“듣기로는 국내에선 한 선생님과 연락이 안 된다던데, 강 주임이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지?”황천수는 온몸이 떨렸다. 그는 자신의 제자가 한상현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역시 한상현이 이끌어줬다는 것인가!스승 복이 있구나!이 생각에 미치자 황천수는 기침을 하며 말했다. “강천, 문외한이 제멋대로 소란을 피운다고 너도 같이 소란을 피울 셈이냐?”“한 선생님은 외국에서 요양 중이시잖아. 지금 그쪽은 새벽일 텐데 네가 함부로 전화해서 쉬시는 걸 방해하면 안되지!”“맞아! 듣기로 한 선생님은 최근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잘 쉬시도록 하는 게 좋겠어!”“강 주임. 충동적으로 어르신을 괴롭히지 마. 너한테도 좋을 것이 없어!”이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한상현 선생님은 팔순이 넘으셨고 또 외국에 있어서 지금 전화를 걸어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은 확실히 적합하지 않았다. 하현은 허튼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과연 진짜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는 의학계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한상현 선생님을 알 수 있겠어?강천은 매우 차갑게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전히 제가 정말 이것을 빼앗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당신들 중 누구도 저를 가로막지 못할 겁니다!”말을 마치고 강천을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연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