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상은 직접 입을 열지는 않고 옆에 있던 여자에게 주무르라는 듯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그러고는 태연스럽게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신이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경호원들도 팔짱을 낀 채 양유훤과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도대체 이 남녀가 어떤 뒷배를 가졌길래 부문상 앞에서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건지 어디 한번 보자는 심산인 듯했다.“개자식!”부문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장발의 청년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며 하현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부 사장님이 한번 보자고 하시는데 남자를 데리고 와?”“어서 이 남자 보내! 당장!”“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나중에 원망해도 소용없어!”장발의 청년이 입을 열자 그의 동료들은 모두 사나운 미소를 입가에 내걸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하현이 물러나지 않으면 당장 혼내주겠다는 협박이었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며 싱긋 웃어 보이다가 입을 열었다.“양유훤, 보아하니 오늘 밤 이 사람들이 당신과 협상할 준비가 안 된 모양인데?”“날 임시 경호원으로 너무 잘 고용한 것 같아, 그렇지?”“이따가 부문상을 당신 앞에 무릎 꿇리게 만들까?”양유훤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어, 부탁할게. 하현 경호원!”하현과 양유훤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를 도발하고 있었다.장발의 청년은 자신이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이 개자식!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부 사장님 앞에서 어디 함부로 허세를 부려!”“살기가 아주 지겨워 죽겠어?”“이봐!”“어서 손발부터 부러뜨려!”채연을 비롯한 일행들이 모두 고소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경호원들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장발의 청년은 탁자 위에 놓인 맥주병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이 모습을 본 몇몇 예쁘장한 여자들은 그의 거침없는 기세에 반쯤 넋이 나간 눈빛이었다.그녀들이 보기에도 양유훤은 아주 예쁜 얼굴이었다.그런데 제대로 된
부문상은 지그시 실눈을 뜨고 눈앞에 서 있는 하현의 모습을 쳐다보았다.마치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발악을 지켜보듯 느긋한 시선이었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하현이 먼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내 손발을 부러뜨리고 여기서 못 나가게 한다고?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어?”자격이 있냐고?이 말에 채연과 몇몇 예쁜 여자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어디서 굴러온 건지 근본도 모르는 새파란 놈이 세상 물정 모르고 떠들어 대는 말이라니!어디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건가?어디서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거야?부문상 앞에서 이렇게 호기롭게 굴다니!“이봐, 당신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짓 그만해. 나중에 우리를 원망하지 말고.”장발의 청년은 냉소를 흘린 후 술병을 든 채 하현을 가리켰다.“저놈을 해치워!”경호원 셋이 냉소를 흘리며 하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하현의 손발을 부러뜨리려고 했다.그러나 하현에게 다가오자마자 경호원들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이 이미 한 걸음 내디뎌 손바닥으로 그들의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맨 앞에 서 있던 사람은 피할 겨를도 없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뇌가 먼저 반응했지만 몸이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호원은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그리고 그의 육중한 몸은 날아가 벽에 부딪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이에 그치지 않고 하현은 계속해서 손바닥을 날렸다.그러자 나머지 두 명의 경호원도 순식간에 바닥에 널브러졌다.채연을 비롯한 예쁜 여자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잠시 후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부 사장님, 사장님 경호원들이 당했어요!”하현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티슈를 꺼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닦았다.그의 몸놀림을 본 사람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몇몇 여자들은 놀란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하현이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부문상은 냉소를 흘리며 손가락을 뻗어 하현을 가리키며 광기를 드러내었다.“남양 사람도 아닌 자가 남양에서 갖은 위세를 떨치다니! 참 우습군!”“주먹 좀 날릴 줄 알고 몇 명 쓰러뜨렸다고 당신이 아주 대단한 줄 알아?”“유치하게 굴지 마!”“우리 페낭 땅에서는 말이야. 내가 당신을 때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당신이 감히 날 때리는 건 법에 저촉되는 일이야!”“당신의 이런 행동 때문에 결국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될 거야!”“내가 좋은 말로 충고 하나 하지. 이후에는 절대 주먹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말을 마치며 부문상은 손뼉을 치며 누군가를 불렀다.그의 동작에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수십 명의 남자들이 몰려왔다.가죽옷을 입은 짧은 머리 여자가 부문상에게 곧장 다가왔고 차가운 눈빛으로 하현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이 사람들이 나타나자 부문상은 더욱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당신의 그 패기를 봐서 내가 기회를 주겠어.”“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손을 부러뜨려. 그리고 양유훤은 나한테 넘겨.”“아니면 내가 당신의 사지를 부러뜨려 저 태평양 바다에 물고기밥으로 던져버릴 거야!”“부 사장님,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습니다.”짧은 머리의 여자가 하현에게 눈을 흘기며 냉랭하게 웃었다.“전 이런 생고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놈을 저에게 주시면 사장님께 덤벼든 결과가 어떤 건지 호된 맛을 보여주겠습니다.”“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 호되게 꾸짖어 주겠습니다.”분명 이 가죽옷을 입은 여자는 부문상의 제1 경호원임에 틀림없었다.기세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심보까지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하현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고 그녀는 진작부터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그녀는 자신이 하현을 발로 걷어차기만 한다면 하현이 당장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빌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은 이 여자를 담담한 눈길로 쳐다보았다.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에
”부 사장, 당신 부하들은 나한테 안 된다고 했잖아!”하현은 싱긋 웃으며 오른손에 힘을 주었고 날카로운 칼끝이 부문상의 목을 파고들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일어난 하현의 재빠른 동작에 부문상은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소리 없이 미소 짓고 있던 양유훤도 하현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 사방에 있던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나같이 흉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개자식! 너 죽고 싶어?!”“어서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부 사장님을 협박하다니! 간이 배 밖에 나왔어?!”지수는 부메랑처럼 꼬부라진 남양칼을 손에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개자식! 내가 경고하는데 만약 부 사장님한테 조금이라도 상처가 난다면 네놈을 산산조각 내버릴 거야!”“상처?”하현은 눈꺼풀을 살짝 들썩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고 망설임 없이 부문상의 얼굴을 후려쳤다.“이것도 상처를 낸다고 할 수 있는 건가?”“퍽!”“이건 어때?”말을 하는 동안 하현은 손에 힘을 점점 더 주었다.이번에는 그의 칼끝이 부문상의 대동맥에서 불과 한 치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곳까지 들어왔다.“자, 덤벼 볼 테면 덤벼 봐!”“당신들이 감히 움직인다면 내가 당신들 사장님을 먼저 보내줄 테니까 어서 덤벼 보라고!”지수는 이을 악물고 눈꺼풀을 펄쩍였지만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춰 서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또 우리 사장님을 해친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거야! 각오해!”“됐어! 헛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물러서.”하현은 손을 뻗어 부문상의 얼굴을 툭툭 쳤다.부문상의 수많은 경호원들을 상대하면서도 하현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여전히 매서운 아우라를 풍겼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덤비다니? 뭘 하려는 건데? 날 겁주겠다는 거야?”“만일 내가 당신들의 행동에 놀라서 실수로 칼을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당신들의 귀한 사장님은 오늘 여기서
부문상의 태도에 하현은 싱긋 웃으며 반응했다.“솔직히 말해서 당신 부하들은 내 앞에서 전혀 힘도 못 쓰고 있어.”“그런데 당신이 이런 그들한테 기대려고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하현이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말을 내뱉자 지수는 매서운 눈초리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하 씨! 당신이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사장님은 풀어주고 나와 당당히 붙어 보자구!”“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한다면 성을 갈겠어!”그녀는 분하고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스스로가 고수임을 자처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하현 하나쯤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현 이 개자식이 겁도 없이 부문상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며 그녀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벌써 하현을 백 번이고 더 죽였을 것이다.하현은 지수를 향해 냉랭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기회가 있겠지.”“그때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길 바랄 뿐이야.”“헛!”지수는 기가 차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심정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하현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하현은 울그락불그락하는 지수를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눈을 돌려 부문상을 바라보았다.“부 사장, 다시 한번 묻겠어. 천억, 갚을 거야? 안 갚을 거야?”“갚아? 당신 얼굴에 갚아 주지! 흥! 능력 있거든 날 죽여 봐?!”“그래!”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뒷손으로 탁자 위의 맥주병을 집어 들고 ‘퍽'하고 부문상의 이마에 힘껏 내리쳤다.“앗!”처절한 비명이 울렸다.부문상은 하현이 감히 손을 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채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자, 다시 말해 봐. 돈 갚을 거야? 안 갚을 거야?”하현은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퉤! 그딴 돈 없어! 그냥 내 목숨을 가져가!”“죽일 테면 죽여 보라구!”부문상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버텼다.“퍽!”하현은 다시 술병을 들고 같은 동작으로 같은 자리를 박살
”퍽!”지수의 칼이 먹히기도 전에 하현은 오른발을 짚고 바닥 위로 펄쩍 뛰어올라 맥주병을 쥐었다.그는 오른손으로 맥주병을 쥐고 지수의 이마에 사정없이 내리쳤다.“앗!”비명과 함께 지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이를 보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하현이 이렇게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이를 갈며 앙갚음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지수가 하현이 내리친 맥주병에 맥도 추지 못하고 고꾸라진 것이다.“내가 말했잖아. 당신들은 나한테 안 된다니까.”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지수의 손목에 발을 얹었다.“빠지직!”순식간에 지수의 손목이 부러졌다.하현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지수를 뒤로하고 부문상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쳤다.“부 사장, 난 아직도 우리가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이 강을 건너고 다리를 부숴버릴 줄은 몰랐어.”“이번엔 이렇게 넘어가지만 다음엔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퍽!”말을 마치며 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다시 한번 부문상의 얼굴을 날려버렸다.그리고 포악한 얼굴로 자신에게 덤벼들던 경호원들을 모두 걷어찬 후에야 양유훤과 함께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어수선한 룸 안에서 숨을 헐떡이며 얼굴을 감싸쥔 부문상은 두려움과 원망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양유훤은 룸을 나와 차에 오른 뒤에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비록 천억을 돌려받기는 했지만 부문상 같은 사람을 건드릴 것까지는 없었어.”“난 양 씨 가문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도 날 감히 대놓고 어떻게 할 순 없어.”“하지만 하현 당신은...”“괜찮아. 소인배들일 뿐이야. 그들 몇 명 밟는다고 별일 일어나지 않아. 신경 쓰지 마.”하현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보다 가능한 한 빨리 이 돈을 장부에 넣어 당신 가문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때?”“그래야 어르신한테 절대적으로 안전한 휴식처를 마련할 수 있어.”하현이 그렇게 말
먼 곳에서 자신에게 힘을 보태려 온 손님들을 위해 하현은 그들에게 우선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하현 일행은 하구봉의 주선으로 어느 개인 클럽으로 가서 늦은 식사를 했다.개인 클럽 안의 인테리어가 대하 풍으로 되어 있고 하구봉이 그곳을 너무 익숙한 듯 앞장서 가자 하현은 궁금증이 일었다.“하구봉, 당신 페낭에 대해 잘 알고 있어?”“그런 셈이지.”하구봉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었다.“하현, 솔직히 말할게. 내가 지금처럼 높은 지위를 갖기 전에 가문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을 했었지.”“페낭에 자주 온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인맥이 있어. 그래서 하수진이 당신을 도와주라고 날 이곳에 보낸 거고.”“그나저나 하현, 이번에 페낭엔 무슨 일로 왔어?”하구봉은 하현이 뭐라고 지시만 내리면 당장 불바다에라도 뛰어들 것처럼 한껏 칼날을 갈고 온 모양이었다.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양식 꼬치구이를 집어 들고는 입을 열었다.“별로 큰일은 아닌데.”“우선은 인도 요승 브라흐마 바찬한테 패배해 큰 상처를 입게 된 양제명 어르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왔어.”“그리고 양유훤이 양 씨 가문의 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해.”하현의 말을 듣고 하구봉과 강옥연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강옥연은 약간 망설이는 듯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양 씨 가문의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야?”“양 씨 가문의 진흙탕 싸움이라고?”하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하구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양 씨 가문이 남양 3대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몇 년 전 양제명이 부상을 당한 후로는 많이 쇠락했어.”“이번에 양제명이 남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양 씨 가문 내부의 쇠락은 극치에 달했어.”“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해야 할 큰집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지. 그래서 양 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어찌할 도리도 없이 가문
문이 벌컥 열리자 지방시의 검은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비틀거리며 뛰어들어오더니 그대로 하현의 발에 넘어졌다.하구봉과 강옥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를 쳐다보았고 입구에서는 흉악한 표정에 양복을 입은 남자 서너 명이 들어왔다.그들은 거침없이 들어와 젊은 여자를 끌어내려고 했다.젊은 여자는 머리를 풀어헤친 상태여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유려한 몸매가 아주 매력적이었다.하현은 왠지 이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술독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여자는 가쁜 숨을 들이쉬며 무력감에 서려 있는 눈빛을 보였다.“야! 이년아! 어딜 감히 도망가?!”“죽을래?”장발의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앗!”젊은 여자는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헝클어져 있던 머리가 날리며 예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자 하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한눈에 여자를 알아보았다.원가령?양유훤의 절친?“이년아! 이송겸이 네년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술을 사주는데!”“거짓말도 모자라 술도 못 마신다고 버텨?”“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이송겸은 그저 일을 제대로 하라고 격려 차원에서 너한테 약을 먹을 것뿐이야!”“성공하면 두둑이 챙겨 주겠다고까지 하는데 거절을 해?!”“잘 들어! 더 이상 얼굴 붉히게 하지 마!”“순순히 내 말 안 들었다간 바로 죽여버릴 테니까!”장발의 남자는 폭언을 퍼부으며 원가령의 뺨을 두 대 때렸다.원가령은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퍽!”장발의 남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무릎으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원가랑의 복부를 가격한 뒤 냉소를 흘렸다.“제대로 해! 더 이상 우리 힘 빼게 하지 말라고!”말을 하면서 흉악한 남자들 몇 명이 원가령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방에서 끌고 나가려고 했다.장발의 남자는 뒤돌아서면서 하현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잘 들어. 당신들은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알겠어? 혹시라도 주둥이 놀렸다간 내 손에 바로 죽을 줄 알아!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
정상적으로 데릴사위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는가?블랙골드 카드까지?백억이 무슨 장난인가?몇몇 아리따운 여직원들도 하나같이 입꼬리를 치켜들고 경멸의 빛을 쏘아보냈다.남자가 되어서 여자한테 빌붙어 얻어먹고 사는 것도 모자라 여자의 돈을 몰래 빼내서 블랙골드 카드까지 만들다니!이런 남자는 그 자체로 망신이고 도덕적으로도 완전히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돼지우리에 가둬야 딱 맞을 정도였다.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안에 있는 돈, 내 돈이야.”“뭐? 당신 돈이라고?”김나나는 냉소를 흘렸다.“밥벌이도 못해서 은아한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어떻게 이 많은 돈이 났다는 거야?”“설 씨 집안의 돈을 훔친 게 틀림없어!”“당신, 이거 불법인 거 알아? 하늘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김나나는 핸드폰을 꺼내 설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분명 이 일을 빌미로 하현을 설은아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속셈인 것이다.그런 다음 정정당당하게 그녀의 오빠를 설은아에게 소개해서 둘을 연결할 생각이었던 것이다.“당신이 이러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하현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행장님을 만나야겠어.”“뭐라고? 당신이 만나고 싶다고 하면 행장님이 어서 오세요 하고 만나 준대? 허!”김나나는 혐오와 경멸이 가득 뒤섞인 얼굴로 계속 퍼부었다.“은아가 와서 당신이 설 씨 집안 돈을 훔친 걸 알면 당신은 완전히 끝장이야!”하현과 설은아가 재혼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생각을 떠올리자 그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나나, 무슨 일이야?”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에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추었고 설은아는 쏜살같이 차에서 내렸다.하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설은아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감돌았다.“하현, 당신 여기서 뭐 해?”이때 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띵’소리를 내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아한 분위기의 중년 남자가 몇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걸어왔다.
”당신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설 씨 집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데도 그걸로 모자라?”“그래서 이젠 은아의 돈까지 훔쳐 쓰려고 하는 거야?”“그 돈으로 뭘 할 생각이야? 설마 내연녀 명품백이나 사 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김나나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하현을 도둑만도 못한 남자 보듯 헐뜯었다.은행 직원들과 고객들도 모두 하나둘씩 고개를 갸웃거리며 데릴사위 주제에 주제를 모른다는 둥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얘기 다 끝났어?”하현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말 다 했으면 저리 가. 업무 방해하지 말고!”만약 상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하현은 벌써 뺨을 후려갈겼을 것이다.“경고하는데! 잘 들어!”“3일 주겠어!”“3일 안에 은아 곁에서 사라져!”“재결합이라니! 흥 재결합이라니?!”“꿈도 꾸지 마!”“내 말 똑똑히 들어. 은아는 당신이 그렇게 갖고 놀 여자가 아니야!”김나나는 세상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세웠다.눈을 아래로 한껏 내리깔고 하현을 바라보던 그녀는 매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무엇보다 우리 오빠가 이제 곧 퇴원해.”“우리 오빠가 보는 앞에서 감히 당신이 은아한테 찝쩍거린다면 우리 오빠한테 혼쭐날 거야! 알아?!”하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김나나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곧장 VIP 창구로 가서 블랙골드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안에 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솩!”하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나나는 얼른 돌진해 그의 카드를 중간에서 가로챘다.“내가 부행장이야. 어디 당신 카드나 좀 보자고!”“뭐? 블랙골드?”고혹적인 빛을 띠는 블랙골드 카드를 보며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블랙골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신분이 아주 높거나 재산이 많다.금정 같은 곳에서도 블랙골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상류층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잠깐만! 블랙골드에 당신 이름이 여기
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무슨 충고?”“옛날부터 불로장생하는 것과 풍수는 깊은 연관이 있어.”“당신이 그들의 이목을 끄는 거야. 뱀을 동굴에서 나오게 유인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증거가 될 만한 뭔가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우선은 유명한 풍수지리사가 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그래서 말인데, 풍수관을 차리는 건 어때?”“한편으론 조심스럽게 그들의 동태를 살필 수도 있고 한편으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목을 끄는 거지.”“더욱 중요한 것은 금정이 오래된 고도로서 기괴한 일이 적지 않다는 거야.”“소문난 풍수지리사로 이름을 날리며 금정에 많은 인맥을 쌓는다면 당신한테 나쁠 것도 없잖아?”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일리가 있어. 역시 금정 간 씨 가문 아가씨다워!”“풍수지리사라, 흥미로운 직업이지.”“하지만 난 풍수를 전문적으로 보는 풍수지리사가 아니야.”간민효는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당신이 관심만 있다면 내가 나머지는 모두 처리할게!”“가게든, 직원들이든, 자격증이든 모든 것들 다!”“고개만 끄덕여 준다면 다른 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게 내가 다 준비할게!”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그렇게 해! 아무 문제없어!”말을 하는 사이 차는 어느덧 금정은행 입구에 도착했다.하현은 전에 이슬기에게 현금 이천억을 마련하라고 한 일이 있어서 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설은아는 돈 쓸 곳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불시의 상황에 미리 대비해 놓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금정은행 로비에 들어서자 하현은 로비 매니저를 향해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VIP실이 어디죠?”어쨌든 이런 고액의 업무는 귀빈실에서 처리해야 한다.“어머? 당신 그 데릴사위 아냐?”바로 그때 주변에 향기로운 꽃향기를 풍기며 높은 하이힐만큼이나 콧대를 치켜세운 아름다운 여자가 하현 앞에 나타났다.하현은 눈앞의 여자를 희미한 눈길로 바라보
형나운은 결국 하현을 주인이라 불렀다.그때 간민효가 하현을 데리러 왔고 형 씨 가문 집사가 공손하게 백억짜리 수표를 건네는 것을 보았다.형 씨 가문은 골동품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형홍익이라는 거대한 수장이 없다면 형 씨 가문의 사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진정한 후계자가 생기기 전까지는 형 씨 가문에게 형홍익의 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하현이 형홍익을 구한 것은 형 씨 가문 전체를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래서 형 씨 가문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에게 사례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비록 돈을 받을 뜻은 없었지만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받았다.그러고 나서 간민효의 페라리에 올라타 형 씨 가문을 떠났다.차 안에서 하현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간민효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민효, 당신은 내가 어르신을 구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액셀을 밟던 간민효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엄도훈의 팔괘경과 삼촌의 구안천주가 같은 곳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당신이 엄도훈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삼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어.”하현은 어안이 벙벙한 채 눈을 크게 치켜떴다.“같은 곳에서?”간민효는 담담하게 어조로 말했다.“같은 조직이라고 해야 하나?”“역사의 그늘 속에서 신비롭게 존재하는 조직.”“이번에 그들이 엄도훈과 삼촌한테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마 십중팔구 금정의 몇 개 은둔가를 직접 겨냥하고 저지른 게 틀림없어.”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장생전?”하현이 이 세 글자를 꺼내자 간민효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며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차는 굉음을 내며 멈춰 섰고 간민효는 놀란 눈을 한 채 가쁘게 숨을 들이마셨다.“하현, 당신이 어떻게 장생전을 알아?”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말했다.“남양의 페낭에서 이 조직과 한 번 맞붙어 당한 적이 있어.”“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번에 내가 금정에 온 이유가 아내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