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아!”조한철은 만족스러운 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내가 이번에 그들에게 준 많은 혜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어!”“이렇게 고생한 게 헛되지 않았다구!”“하지만 아직은 부족해. 북유럽 무맹도 미국 무맹도 아직 우리 진영에 합류하지 않았어.”“만약 그들이 모두 우리 진영으로 합류한다면 대하 무맹은 그야말로 끝장이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청룡, 미국 뉴욕에 가서 미국 무맹을 설득할 수 있는지 알아봐.”“백호, 당신은 노국으로 가서 북유럽 무맹을 설득할 수 있는지 타진해 봐.”“어쨌든 이번에는 꼭 하현 그놈을 묻어버려야 해!”“알았어.”두 남자와 한 여자가 일제히 몸을 숙여 명령을 받아들였다.조한철만이 옆에 있던 와인 잔을 들고 가볍게 흔들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먼 산에 던졌다....그 후 며칠 동안은 꽤 조용한 날들이었다.하현은 이 기회를 틈타 남양국에 가서 양제명을 살릴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그때 어디선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전화를 건 사람은 용 씨 가문 용천두였다.용천두는 하현에게 용 씨 가문이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현은 용천두와 접촉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용 씨 가문은 용인서가 속한 가문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30분 후, 하현은 차를 몰고 무성 외곽에 있는 요양원에 도착했다.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었다.쉽게 말해 돈이 없이는 이곳에 들어올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하현은 문 앞에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가 용천두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용천두는 흰 양복을 입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용천두는 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뭔가 복잡해 보이는 낯빛을 띠었다.하지만 그는 머뭇거림 없이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하현, 아니지. 소문주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어서 와!”하현은 용천두가 내민 손을 힐끔 쳐다보며 손을 내밀지는 않고 흥미로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용천두, 지금
하현의 눈에서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무성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용인서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용인서가 하현을 만날 의사를 보였을 때 용 씨 가문은 의도한 듯 아닌 듯하면서 용인서를 말렸다.그런데 오늘 용천두가 하현에게 전화를 한 목적이 용인서를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하현은 눈초리를 가다듬고 전방을 주시했다.곧 별채 입구에 사람 그림자 몇 개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그 중 한 사람은 바로 오랜만에 만난 용 씨 가문 주인이자 용문 문주인 용인서였다.그의 모습을 본 하현은 안타까운 듯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용문주, 몸은 좀 어떠십니까?”“문주님의 몸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소문처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야. 소문은 좀 과장되었어.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야.”용천두는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리고 전에 그가 아주 위중하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그것은 어르신께서 우리 셋 중에 누가 가장 적임자인지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거였어.”하현은 담담하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서로 암투를 벌이게 만들었다는 건가?”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용천두의 낯빛이 살짝 창백해졌지만 그는 이내 옅은 미소를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같은 집안에선 흔한 일 아닌가?”“정말로 유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앉혀야 가문이 오래도록 번성할 수 있는 거야. 이런 방법을 쓰는 건 아주 정상적인 거지.”“세상 사람들이 부잣집에는 정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야.”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용 씨 가문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뜻이 없었다.하현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용인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갔다.“하현, 오랜만이야.”하현이 다가오자 휠체어에 앉아 있던 용인서가 고개를 들고 빙긋 웃었다.다만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약간 거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상을 입으신 겁니까? 천인합일을 시도하다 실패하신 거예요?”하현은
”문주 어르신. 저...”“거절하겠습니다.”하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면 몇 년 전에 앉았을 겁니다. 뭐 하러 지금까지 기다렸겠습니까?”“게다가 제 성격 잘 아시잖아요! 저는 공명과 관록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하현이 단호히 거절을 하자 용인서는 놀라지도 않고 그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총교관이 거절하니 나도 본부와 용전국에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지.”“그렇지만 그들이 아주 실망할 거네.”하현은 가타부타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화제를 바꾸지도 않았다.용인서는 소리 없이 탄식하다가 화제를 바꾸었다.“이번 일은 어떻게 풀 생각이야?”“인도인 몇 명과 섬나라 사람 몇 명한테 우리 대하가 몰리고 있다니 이건 전혀 우리 대하답지 않아.”“강호의 일은 강호의 일입니다.”하현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인도인과 섬나라 사람들이 천신만고의 노력을 쏟아부어 각 무맹들을 앞세운 목적이 바로 이것이겠지요.”“그들이 자신만만하게 몰아붙인다면 강호의 일은 강호의 일로 날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그렇다면 나도 저들의 놀음에 놀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용인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저들의 놀음에 놀아준다? 하하. 그래야 용문 후계자로서 당당히 명분이 서지.”“명분이 서지 않으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일도 안 돼.”말을 마치며 용인서는 뒤춤에서 옥패를 꺼내 하현에게 건넸다.옥패 위에는 ‘소문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하현, 설마 이것까지 거절하진 않겠지?”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용인서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방금 9대 병부의 총교관이란 직함은 일부러 꺼내신 거죠? 제가 거절할까 봐서요?!”“걱정하지 마세요. 전 이미 문주님과 한배를 탔습니다. 문주님 덕분에 집법당 당주가 되었으니 어찌 되었든 빚은 갚아야죠.”“소문주 영패, 제가 받겠습니다.”“거참 시원시원하군!”용
원래 명예에 별다른 뜻이 없는 하현은 소문주라는 자리가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용인서가 여전히 문주이고 용문의 대소사는 문주가 관할한다.하현은 단주 소문주일 뿐 실제로는 별로 큰 영향력이 없는 자리로 여겼다.그런데 모든 전권을 위임하겠다니?하현이 어안이 벙벙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용인서가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하현, 자네가 이 늙은이에게 응한 이상 이번에는 절대 거절할 수 없네!”“이번 일은 해외 4대 무맹과 맞서는 일이야.”“그들과 강호에서 싸우게 된 이상 용문의 역량을 빼놓고선 절대 맞설 수 없어!”“이제부터 용문의 모든 역량과 인맥은 자네를 위해 쓰겠네!”“이제 자네 몸은 자네만의 것이 아니야!”“용문을 망신시켜서야 되겠는가?”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알아들었어요. 더 이상 절 설득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릿광대 몇 명 해치우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때론 운용하고 싶지 않은 인맥도 있고 이상하게 받고 싶지 않은 전화도 있다.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일이 다 그렇게 되려고 그때 마침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용인서는 하현의 말을 들으며 빙긋이 웃었다.“자, 그럼 나는 느긋하게 눈이나 비비며 자네가 어떻게 이 풍랑을 가라앉히는지 결정적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겠네.”“아이고, 하현 아냐? 아, 이제 소문주라지?”“왜? 속수무책으로 당하나 싶었는데 용인서가 이렇게 나서서 구해주니 천군만마라도 얻은 것 같아?”“설마 용인서가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건 모르는 거 아니지?”“이빨 빠진 호랑이가 어떻게 이번 고비에서 당신을 구해줄 수 있겠어?”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희미한 비아냥거림이 들려왔다.하현의 체면은 둘째치고 용인서의 체면도 무시한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하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조한철이 십여 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을 대동하고 의기양양하게 걸어 들어왔다.그는 하현의 표정을 보
”조 세자!!”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조한철은 용인서에게 속수무책으로 뺨을 맞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십여 명의 남녀는 모두 허둥지둥 달려가 얼른 용인서를 말렸다.예쁜 여자들은 완전히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에게 있어 정말로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늙은이가 감히 조한철의 뺨을 때리다니!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용인서가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대하의 4대 지주 중 한 명인 용문 문주였다!5대 문벌의 문주라고 해도 상당한 신분이 아니고서는 그와 대등하게 맞설 수 없는 정도였다.조한철은 아직 제대로 상석에 앉지도 못한 서북 조 씨 가문 세자일 뿐인데 감히 용인서 앞에서 함부로 큰소리를 치다니!이것은 죽음을 자초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이 늙은이가 미쳤나?! 어디 감히 날 함부로 건드려?”조한철은 완전히 눈이 뒤집혔다.그는 용인서의 정체를 살필 사이도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라 미칠 것 같았다.지금 인도 황실과 서북 조 씨 가문을 등에 업고 치밀한 전략을 짜서 해외 4대 무맹을 이용해 대하 무맹을 압박하고 있는데 어찌 이런 늙은이한테 뺨을 맞을 수 있단 말인가?이 늙은이는 조한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인가?조한철이 이 상황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무성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겠는가?어떻게 큰소리 뻥뻥 치고 다니겠는가 말이다!조한철의 명령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십여 명의 사람들은 쏜살같이 앞으로 나가 용인서에게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어서 해치워!”십여 명은 모두 서북 조 씨 가문 출신으로 문중에서 고수로 이름난 사람들이었다.그들의 주먹은 매섭기도 했지만 한꺼번에 덤벼드니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그들은 어떤 악랄한 짓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용천두가 이 광경을 보고 한 발짝 발을 떼려는 순간이었다.하현이 냉담한 표정으로 재빨리 걸어 나와 땅바닥을 힘껏 굴렸다.“우지직!”둔탁한 소리와
”그래?”하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그럼 내가 건드려 주지.”“그래, 좋아. 하현, 당신이 소위 링 위에서 하는 경기에 몇 번 이겼다고 해서 정말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알아?”하현이 감히 자신 있게 덤비려는 것을 보고 조한철의 안색이 일순 움츠러들었다.그는 얼른 알약을 꺼내어 삼키려고 했다.약을 먹고 강해져서 하현 개자식에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새겨 주고 싶었다.그러나 이때 용인서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지금까지 어린아이 같아서 조 씨 저 사람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오늘은 내가 손수 손을 써 보려 하네.”“그렇지 않으면 내 이 늙은이 얼굴을 어찌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말을 마친 용인서가 휠체어에게 벌떡 일어섰다.비록 편안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굳은 의지로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디뎠다.“흥흥! 용문주, 용 씨 가문 가주가 감히 날 건드린다고? 정말입니까?”“서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조금이라도 날 건드려 보세요! 혹시 알아요. 실수라도 어떻게 하다가 날 엎어뜨릴지도 모르잖아요?!”“나중에 나한테 제대로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그때 가서 나이가 들어서 그랬느니 어쨌느니 핑계나 대지 마세요!”“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는 아무도 당신을 구해 줄 수 없을 테니까요!”분명히 조한철의 눈에는 천인합일에 실패해 만신창이가 된 용인서가 아무 힘도 없는 종이호랑이처럼 보인 듯했다.방금 뺨을 맞은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가 준비를 하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다.이제 그는 완벽히 준비가 되었다.조한철은 절대 자신이 밀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용인서가 감히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퍽!”조한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나아간 용인서는 손바닥을 휘둘렀다.조한철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반발짝 밀려났고 얼굴에는 검붉은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조한철은 격노했다.“용문주님! 정말 제가 만만하다고 생각
”당신, 정말?!”조한철은 화가 나서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그러나 막상 손을 쓰려는 순간 그는 꾹 참았다.용인서 같은 인물이 감히 손을 썼으니 분명 계략을 마련해 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조한철이 계속 덤빈다면 용인서는 이를 핑계로 대고 바로 여기서 그를 죽일지도 모른다.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완벽하고 깔끔한 처리가 될 것이다.그러자 조한철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용문주님, 농담이에요!”“아까는 내가 그만 선을 넘은 것 같네요!”“한순간의 말실수였으니 용서해 주세요!”“이런 실수 앞으로는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퍽!”용인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팔을 뒤로 끌어당겼다가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쳐서 순식간에 조한철의 몸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왜? 아까는 아주 큰소리 잘만 치더니?!”“왜?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른 건가? 내가 뭔가 계략을 준비해 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그래서 겁을 먹은 건가?”“아까는 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은 모양새던데? 아니야?”“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서북 조 씨 가문 조 세자 아니었어?”“인도 황실의 피가 흐르는 인도 황실 후계자 아니었어?”“왜? 갑자기 나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간이 콩알만 해진거야?”“어서 반격해 보시지! 네놈이 반격했다가는 내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용문 문주를 암살하려 했다는 죄명을 씌워 옴짝달싹도 못하게 해 주지!”용인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조한철을 몰아세웠다.조한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꺼풀이 자꾸 떨렸다.원래 그는 용인서가 몸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서 별로 힘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이 카리스마 강한 용문주는 여전히 전성기 때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호랑이 바로 그 모습이었다.조한철은 아직 젊었고 앞으로 할 것들이 많은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였다.그런데 어떻게 이유 없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죽임
조한철이 달갑지 않은 얼굴로 떠나는 것을 보고 하현은 감탄해 마지않으며 용인서를 쳐다보았다.역시 용문주는 달랐다.설령 천인합일에 실패해서 예전 실력의 절반도 안 되는 실력일지라도 지금 보여준 그의 실력은 여전히 강했다.4대 지주란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다.조한철이 감히 용인서를 화나게 하고 건드리려 했다는 건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다행히 조한철은 아직 머리가 돌아가는지 벼랑 끝에 몰린 자기 처지를 깨닫고 물러났다.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그는 이미 시체로 변했을 것이다.게다가 용문주를 암살하려는 명분마저 그에게 씌워진다면 정말로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된다.“하현, 봤지?”“아무리 음험하고 간교한 상대라도 절대적인 실력자 앞에서는 종이호랑이나 다름없어.”떠나는 조한철을 보고 용인서는 안타깝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용문주께서 오늘 저한테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신 모양인 듯합니다.”“그러나 문주께서 오늘 준비하신 것이 예전만큼 배포가 크지도 대범하지도 못했습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번 수업에서 더 많은 걸 보여주셨을 겁니다.”용인서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어쩔 수 없네. 사람이 늙으니 수단도 적어지고 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말이야.”“사람이 가진 게 많으니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예전 같으면 하현 당신도 이번 수업에서 충분히 만족했을 거야.”하현이 별로 탐탁지 않은 듯한 눈빛을 보이자 용천두가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예전 같으면 용 씨 가문 세 후계자가 든든히 있었기에 용인서는 스스로 아무리 강하게 몰아붙여도 두렵지가 않았을 것이다.이 일로 용인서는 용 씨 가문 세 후계자를 시험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지금 용 씨 가문 세 후계자 중 남은 사람은 용천두밖에 없었고 용인서는 그마저도 죽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감히 전력을 다해 목숨을 걸지 못했다.어찌 보면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
”확실히 이 외지인놈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도 뭐?”“우리 황천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맞아! 하현이 부 사장 무릎을 꿇게 한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그런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땅강아지가 운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진짜 실력자를 만나면 아무 힘도 못 써!”“결국 실력 없는 자가 스스로 무능함에 분노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야!”“황천화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곧 알게 되겠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대하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페낭에서는 이신욱의 저력을 능가할 수 없다.“형님!”“황 선생!”“황 도련님!”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황천화에게 몰려들었고 선두에 선 이신욱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신욱,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까지 나서서 체면을 세워 줘야 할 일이 도대체 뭐냐구?”황천화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먹거렸다.마치 세상에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는 듯.이신욱은 차가운 눈초리로 비아냥거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외지인 주제에 우리 페낭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다니!”“그래?”황천화는 실눈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신욱을 힐끔 쳐다보았다.그의 코는 푸르덩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이빨도 두어 개 비어 있었다.안색이 나쁜 건 말할 것도 없었다.비록 황천화는 이신욱을 그리 높이 보진 않았지만 이신욱은 일찌감치 황천화의 가능성을 보고 명절 때마다 그에서 그득한 선물을 보낸 덕분에 꽤 황천화 덕을 보고 있었다.그래서 황천화도 이신욱에 대해 슬슬 좋은 감정이 생겼다.그런데 지금 그런 후배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다.황천화의 안색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이신욱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