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군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법이야!”하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손뼉을 치면서 돌아서서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방금 인도 3대 요승 중 하나인 브라흐마 파만이 저와 내기를 하기로 했습니다.”“저와 한판 붙겠다고 합니다!”“만약 그가 이기면 나 하현은 브라흐마 파만을 상대할 적수가 못된다는 걸 선언할 것입니다!”“만약 그가 지면 그의 핸드폰에 있는 모든 비밀을 나한테 넘겨주기로 했습니다!”“사회자와 대표들도 잠시 물러나서 모두 함께 장외 경기를 지켜보시죠!”하현의 말이 흘러나오자 자리를 뜨려던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며 수군거렸다.오늘 이미 있었던 세 경기보다 이 경기가 더 흥미진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현과 브라흐마 로샨의 마지막 전투가 흐지부지 끝나서 약간은 아쉬웠는데 마지막에 이런 반전이 있다니!생각지도 못한 흥미진진한 경기에 사람들은 다시 상기된 얼굴로 하현과 브라흐마 파만에게 시선을 모았다.한 쪽은 대하 용문대회 종합 우승자.한 쪽은 인도의 3대 요승 중 한 명.두 사람이 붙는다면 누가 더 강할까?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자리를 뜨려던 각 무맹 대표들과 사회자는 다시 돌아왔다.얼굴을 가리고 있던 조가흔도 마뜩잖은 표정으로 돌아섰다.하현이 브라흐마 파만에게 패배하는 꼴을 누구보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맞습니다, 여러분. 난 어쨌든 연장자이기 때문에 하현을 많이 괴롭히지 않겠습니다.”“딱 한 수만 날리겠습니다!”브라흐마 파만은 천천히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부진 몸을 드러내며 한껏 기세를 모으고 있었다.“우리 인도의 무학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지 보여주겠어!”“당신이 얼마나 천박하고 얄팍한 실력의 소유자인지도 만천하에 보여주겠어!”“천하무공이 인도에서 나왔다는 걸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해 줄 거라고!”“대표 여러분들, 인도 실력자들, 대하 관중 여러분. 기적을 함께 볼 시간이 왔습니다!”순간 브라흐마
”이겼어?”“하현이 또 이긴 거야?”“인도 3대 요승 중 한 명이라고 하면서 하현의 그 한 방도 막지 못하다니!”“이래 놓고 무슨 천하의 무공이 인도에서 나왔다는 거야? 퉤!”“인도인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지나가는 개나 소나 별반 다를 게 없잖아?!”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를 듣고 가까스로 일어난 브라흐마 파만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얼굴이 흉악하게 변했다.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도대체 당신 누구야? 주먹 한 방으로 날 날려? 당신 어떻게 한 거냐고?”브라흐마 파만은 자신의 전투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손바닥 한 방으로 그를 날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하현도 전신이라는 것이었다!그런데 대하에 언제부터 이렇게 젊은 전신이 있었던가?“내가 강한 게 아니라 당신이 약한 거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천하의 무공이 인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해?”“그깟 정도 수련한 걸로 위세를 떨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고?”“우리 대하 속담이 하나 있는데 가르쳐 줄 테니 잘 기억해.”“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거야!”“우리 대하 앞에서 인도인들은 영원히 신하 노릇 밖에 못해!”“이 말을 잘 되새기고 돌아가서 당신의 모든 인도인들에게 전해. 그리고 안심하고 기꺼이 우리 신하가 되길 바라, 어때? 괜찮지 않아?”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 의혹에 가득한 표정이 떠올랐다.설마 정말 하현의 말대로 인도의 무학은 우물 안 개구리였단 말인가?그 정도로 약하다고?하현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니라 인도가 너무 약하다고?!눈가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 뒤 브라흐마 파만은 비로소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억누르며 하현을 노려보고 말했다.“하현, 더 자극하지 말고 그 정도에서 적당히 해. 사람을 사지로 모는 것도 선이 있는 거야.”“이제 와서 말이지만 어떻게 브라흐마 로샨을 매수했는지나 좀 알자구!”“난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하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브라흐마 파만, 내가 당신네 인도인들처럼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그렇게 증거가 확실히 남는 짓을 했겠어?”“카드 한 장 준비했을 뿐이야. 그 안에는 이백억이 들어 있었고.”“식당에서 만났을 때 이미 브라흐마 로샨에게 건네줬어.”“그리고 악수하는 틈을 타서 손바닥에 비밀번호를 알려주었지.”“그녀가 모바일 뱅킹에 들어가 봤다면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었을 거야.”“당신들 인도인들이 나한테 이런저런 혜택을 주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어떻게 되었어? 전부다 공수표였잖아.”“그렇지만 난 달라. 난 그녀가 평생 벌지도 만져 보지도 못한 돈을 손에 쥐어 주었어.”“이백억이 들어 있는 걸 확인한 브라흐마 로샨이 설레지 않았을까?”브라흐마 파만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야.”하현은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충성이란 배신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할 때 입 밖에 내는 경우가 많아.”“난 이백억을 바로 줬을 뿐만 아니라 국술당의 주식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설레지 않을 수 있겠어?”“당신들을 팔고 내 편에 서기만 한다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거지. 얼마나 간단해?”브라흐마 파만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백억이라, 아주 큰돈이지. 하지만 브라흐마 로샨이 이백억 때문에 당신 편에 섰다고? 흥! 난 여전히 믿지 않아.”“브라흐마 로샨도 잘 알 거야. 그녀가 인도를 배신하면 어떤 후한이 남을지.”하현은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브라흐마 로샨도 그렇게 말했어.”“그래서 난 그녀가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로 결정했지.”“말하자면 당신들 인도인의 소소한 행동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할까? 남선을 비롯한 세 명의 실력자가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나도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었지.”“그런데 경기를 못하는 바람에 나에게 나흘의 시간이 생긴 거야.”“나흘 동안 내 부하들을 인도에 보냈
”내가 졌어. 완전히 졌어!”인도 사람들은 절망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몇몇 동맹군들의 눈에는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영을 배반하고 상대편 쪽에 조용히 앉아 있는 브라흐마 로샨을 바라보았다.브라흐마 파만의 얼굴에 비통하고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야심가였던 그가 이런 궁지에 몰리다니!순간 그는 돌아서서 인도 황실 쪽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퍽!”브라흐마 파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장내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인도인들은 완전히 혼란에 휩싸였다.그러나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브라흐마 파만을 쳐다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손가락을 닦은 휴지를 그의 얼굴에 덮어 주며 마지막 존엄을 남기고 죽은 그를 남겨두고 돌아섰다.국술당에 돌아오자 남궁나연과 10대 교관들, 그리고 진주희와 조남헌이 소식을 이미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그들은 일찍이 축하연으로 술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많은 이들을 불러 서로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구양연, 천정국, 영지루, 만진해 등도 와서 하현을 축하해 주었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일일이 답례하며 깍듯이 예의를 차렸다.그로부터 3일 동안 국술당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하현이 용문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용문 장로회만 거치면 하현은 이제부터 용문의 유력한 문주 후보자가 된다.이런 지위는 지금 용 씨 가문에서 가장 권세가 높은 용천두도 따라올 수 없었다.이렇게 되자 하현이 운영하는 국술당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많은 사람들이 인맥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자식들을 국술당에 들여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어쨌든 국술당에 들어오기만 하면 하현의 문하생이 되는 것이다.무성 각 방면의 권력자들의 이런 의중을 하현도 충분히 이해했다.그는 이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고 남궁나연에게 선택적으로 알아서 받아들이도록 지시했다.조건에
”큰일이 생겨서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었습니다.”“무슨 일인데? 말해 봐!”공해원의 태도를 보고 하현도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다.“설마 인도인들이 이번에 억울하게 졌다고 국제적으로 보복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겠지?”“인도인이라면 그나마 처리하기가 쉬울 거예요.”공해원은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 정말 이번에는 큰일입니다.”“그게 그러니까요...”“얼마 전 당신한테 패배한 인도 실력자들이 브라흐마 파만의 시체를 가지고 인도로 돌아가 이번 국전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인도 측에서는 이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이번 싸움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인도인들은 브라흐마 로샨을 찾아서 당신과 대질을 하려고 했어요.”“하지만 당신의 치밀한 계획 때문에 인도인들은 사람을 찾기는커녕 브라흐마 로샨의 그림자조차도 찾지 못했어요.”“그래서 이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되는 듯싶었어요.”“그런데 갑자기 대하인이 나타나서 인도인을 도와 뭔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바로 무맹을 건드린 겁니다!”“방금 인도 무맹, 남양 무맹, 극동 무맹, 섬나라 무맹 등이 손을 잡고 선언했습니다.”“인도와 대하의 국전은 무효라고요!”“그들은 공정성을 해친 책임을 당신에게 묻고 있습니다!”“인도 황실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구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그들이 오라고 하면 난 가야 해? 흥!”“웃기는 일도 다 있군!”공해원은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하현, 당연히 그들을 무시해도 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4대 무맹과 손을 잡고 우리 대하에 선전포고를 할 것입니다!”“대하에 선전포고를 해?”하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떠올랐다.“그들이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을까?”공해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이 직접 여기까지 찾아올 용기는 확실히 없겠지만 우리 대하의 국
조한철?그 이름을 듣고 하현의 동공이 살짝 움츠러들었다.그는 용문대회에서 조가흔과 조한철이 자신에게 연달아 뺨을 맞은 뒤에도 계속 자신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조한철이 국익까지 팔아먹었다는 것이다!“이 개자식! 10대 가문과 4대 문벌이 손을 잡고 죽이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두렵지도 않은 거야?”“어쨌든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닌 거야.”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공해원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사실 내가 들은 바로는 10대 가문과 4대 문벌들 중 상당수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합니다.”“손을 쓰려고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가문은 영 씨 가문, 항도 하 씨 가문 등인데 그들도 다른 문벌과 최고 가문한테 견제를 받을 수도 있구요.”“한 마디로 말해서 이번 상황은 굉장히 곤란합니다.”“물론 조한철이 4대 무맹을 끌어들여 우리를 상대한 배후에는 조가흔 일행이 적지 않은 힘을 썼을 겁니다.”이 말을 하고 공해원은 잠시 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게다가 이번에 4대 무맹과 손을 잡은 이유는 우리를 죽이려는 목적 외에도 대하를 상대로 다른 꿍꿍이를 벌이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몇 년 전 유라시아에서 총교관이 5대 강국을 휩쓸고 난 뒤 국제사회에서는 감히 우리 대하를 향해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도 우리를 상대로는 기껏해야 입만 뻥긋하는 수준이죠!”“이번에 4대 무맹이 이렇게 빨리 서로 손을 잡고 우리 대하를 공격하고 심지어 다른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 대하인들을 추방하는 행동은 우리 대하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대하가 너무 나약하게 반응한다면 4대 무맹의 행동은 더욱 탄력을 받을 거예요.”“안타깝게도 무맹은 무학의 성지가 좌지우지하고 있어요.”“현재 무성은 무맹에서 지배력이 강한 황금궁, 서북 조 씨 가문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구요...”“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만 씨 가문?”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했다.“이 일이 만 씨 가문과 무슨 상관이 있어?”공해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요.”“만 씨 가문 어르신은 은퇴 후 대하무맹의 명예 맹주가 되셨어요. 그래서 그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었죠.”하현은 만진해에게 이런 직위가 있었는지는 몰랐다.“그러나 대하무맹은 대하의 여러 무학 성지의 연맹일 뿐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권력은 거의 무학 성지가 장악하고 있어요.”“명예 맹주로서 거의 실권은 없는 셈이죠. 무맹의 실권은 각 무학의 성지에서 파견된 부맹주들이 쥐고 있어요.”“그런데 지금 이런 큰일이 났고 무맹 내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어요. 심지어 외부의 적과 내통한 사람도 있어요.”“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만 어르신에게 대국을 주관하라고 압박하고 있어요.”“한편으로는 그의 명성에 기대어 후방을 안정시키려는 의도이구요.”“한편으로는 만 어르신을 앞세워 당신에게 겁을 주려는 의도이기도 하죠.”“어쨌든 당신이 인도에 가서 지난 경기는 음모와 계략으로 거둔 승리라고 모든 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강력한 문주 후계 자리는 당신한테서 물 건너 가는 거니까요.”“정말 이 사람들, 약삭빠르기가 아주 말도 못 해요!”“하지만 만 어르신은 젊었을 때부터 강하고 곧으신 분이었어요. 이번에 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한 걸 잘 알고 혼자서 감내하려고 하신 거죠.”“그래서 어르신은 심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당신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던 거예요.”“그런데 이 압박을 얼마나 견디실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황금궁의 구평도가 며칠 동안 어르신께 적지 않은 압박을 했거든요.”“구평도는 황금궁 외문 장로로 구예빈의 아버지이자 황소군의 장인이에요.”공해원은 만진해가 직면한 정세와 구평도의 정체를 설명했다.“어쨌든 구평도는 만진해 어르신이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이로 인해 4대 무맹과 국외에서 연루된 국민들에게 빨리
만진해는 하현에게 격의 없이 친절하게 말했다.곧이어 그들은 비서와 보좌관의 안내를 받아 청사 아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손님을 맞이하며 내려오는 만진해를 보고 곧바로 미소로 응대했다.“어르신, 어서 오세요.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늘 모시던 곳으로 안내해 드릴까요?”만진해는 웃으며 말했다.“그러지. 늘 가던 특별실로 부탁하네. 대표 요리 몇 개랑 최고급 술도 같이.”말을 하면서 만진해는 하현을 향해 미소를 던졌다.“하현, 여기 요리가 종류가 많은 건 아니지만 맛은 일품 중의 일품이라네. 조금 이따 직접 맛을 보게!”하현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던 찰나였다.뒤에서 의미심장한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만진해 맹주 어르신 아니십니까? 맹주 어르신 맞죠?”“여기서 뵙게 되네요. 그런데 우리가 조금 일찍 온 것 같군요.”“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특별실은 오늘 이미 예약되어 있습니다.”하현이 무의식적으로 뒤돌아보니 황색 무도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그 남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왔고 그의 곁에는 하현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는 조한철이 서 있었다.서북 조 씨 가문 조한철!하현은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감히 조한철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늘 이곳은 자신의 본거지도 아니고 조한철도 아직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하현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조한철은 이전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 보였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이번이야말로 자신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조한철의 눈에서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부맹주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이때 만진해의 옆에 서 있던 비서가 앞으로 나오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특별실은 우리 무맹이 맹주 어르신을 위해 늘 사용되던 곳입니다.”“게다가 오늘 어르신이 귀한 손님을 대접하려고 왔어요.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