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모든 일은 선후를 잘 따져야 해.”“지금 난 신고자로 여기 온 거야. 난 독극물 사안을 신고하러 온 거고.”만천우는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의 얘기에 따르면 남선 일행은 차를 마셨어요. 차를 마신 지는 이미 시간이 지나서 소화가 되었을 거예요.”“지금 우리가 루돌프 씨에게 의뢰하여 남선 세 사람의 위액을 채취해 검사할 거예요!”“하지만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이는 물증일 뿐 진술이 부족해요.”“경찰은 황소군과 구예빈에게 진술을 받기 위해서 병원에 사람을 보냈어요.”“그런데 황금궁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막아서 할 수 없이 돌아왔죠.”“동시에 황금궁 쪽에서 하현 당신을 고소했어요. 상해죄로요.”“양쪽의 주장 때문에 이 일은 이미 만천하에 알려졌고 조정 쪽에서는 몇몇 거물들이 국전과 나라의 체면이 걸린 일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어요!”“황소군과 구예빈이 정말 남선 일행들에게 독약을 먹이고 외부의 적과 내통했다면 가장 엄중한 벌을 받을 겁니다!”“황금궁이 범죄자를 감싸는 것은 죄악이죠!”“인도인들도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우리 대하가 비록 문명국이라 관대함을 보여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렇게 콧대를 세우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죠!”하현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다행히 조정의 늙은이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는 모양이군.”만천우가 눈썹을 번뜩이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하현의 진짜 신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만약 하현이 정말로 화가 나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면 아마 조정의 그 늙은이들은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뺐을 것이다.만천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현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이 일은 조심해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해!”“이번 용문과 인도의 결전은 국전이야!”“어느 쪽이든 나쁜 평판이 돌게 되면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명예가 실추되는 거야!”“인도인이 감히 사람을
”하현, 당신이 손을 쓰는데 어떻게 인도인이 판을 뒤집을 수 있겠어요?”“다만 인도인들은 음험하고 교활하니 조금 더 신중해야 합니다.”만천우는 조심스럽게 몇 마디 충고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참, 영지루도 이 사실을 알고 매우 화를 냈어요.”“영지루는 우리 대하의 젊은 고수들이 이유 없이 이렇게 당할 수가 있냐고 했어요.”“그런데 그분도 신분이 신분인지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그래서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했어요. 그녀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요.”영지루는 영 씨 가문 공주로서 신분이 특별했다.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국전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다면 여론의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고 인도 쪽에서는 또 다른 억지 핑계를 댈지도 모른다.하지만 영지루까지 나서서 이런 말을 전해 왔다는 건 이 사안이 국가 정서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영지루한테 고맙다고 전해 줘.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내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하현이 엷은 미소를 띠었다.“남선 일행이 쓰러진 것은 뜻밖의 일이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처음에 계획했던 건 나 혼자 인도 고수들을 대적하는 거였거든.”“이제 원점으로 돌아간 것뿐이야.”“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인도의 세 실력자들과 브라흐마 파만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 3대 요승이 나타난다고 해도 난 끄떡없어.”브라흐마 파만의 파렴치하고 선을 넘나드는 행동에 하현은 화가 나서 제대로 인도인들의 얼굴을 뭉개버릴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만천우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하현, 잊었어요? 지금 인도 3대 요승은 이제 두 명밖에 안 남았어요!”“하지만 브라흐마 파만은 브라흐마 커보다 훨씬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그의 계략은 아주 치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먼저 황소군의 사람들을 보내 남선 일행을 독살시키려고 했고 브라흐마 로샨을 시켜 당신을 회유하려 했어요. 결국 당신과
다음 날 아침 6시, 무성 병원.살을 에는 찬바람이 무성을 뒤덮고 있었다.꽁꽁 얼어붙은 무성 하늘 아래 병원 입원 병동 최고층에서는 여기저기 알코올과 피비린내가 진동했다.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운 사람들은 다름 아닌 황금궁의 외문 고수들이었다.그들은 목숨은 부지했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피투성이에 만신창이였다.어떤 사람들은 열흘이나 보름 정도 쉬면 회복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큰 부상이 아니었다.황소군, 구예빈, 그리고 아복 세 사람은 밤새도록 수술을 받았다.아복은 한쪽 손이 완전히 망가졌다.황소군과 구예빈의 다리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되었다.다시 말해 그들 셋은 그 이후로도 모두 장애인이 된 것이다.“절대!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구요!”정신을 차린 구예빈은 이를 갈며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울부짖기 시작했다.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미모를 뽐내던 부잣집 아가씨였는데 오늘 그녀는 완전히 폐인이 된 것이다.이런 일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황소군은 핏기를 잃은 얼굴로 더 이상 땅바닥을 디딜 수 없게 된 두 다리를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황금궁이 무성의 왕이라고?지금부터는 모든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야심만만한 황소군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쾅!”바로 그때 금빛으로 도색한 도요타 랜드로버 한 대가 병원 입구에 세워졌고 금색 도포를 입은 수십 명의 남자들이 재빨리 두 남자를 에워싸고 입원실로 들어섰다.미처 피하지 못한 환자와 의료진들은 모두 그들이 휘두르는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그러나 그들의 옷차림에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뭐라고 대들지 못했다.병원은 온통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졌다.이윽고 170센티미터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약간 구부러진 등을 하고 접은 부채를 든 채 냉랭한 얼굴로 들어섰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절로 위엄이 느끼지는 모습이었다.그의 곁에는 흰 양복을 입은 젊은
”소군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황지군은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가득 내뿜으며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어느 미친놈이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 심지어 아복마저 만신창이가 되다니!”그는 자신의 동생과 동생의 약혼녀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만 알 뿐 다른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입니다! 국술당의 하현!”“그의 곁에는 힘센 여자 보디가드, 그리고 우리 황금궁의 배신자 남궁나연이 있어요!”“그 여자 보디가드는 너무 막강해서 아복도 막지 못했어요.”황소군은 황금궁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얘기했다.그러나 하현이 왜 거길 왔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고 하현의 오만함과 교만한 수법만 강조했다.“하현? 용문대회 무성 도 대회 우승자 말이야?”“그놈이 인도인을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감히 우리 황금궁을 건드려?!”“그리고 뭐? 우리 황금궁에서 배신자가 하나 나왔다고?!”“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구평도는 냉소를 흘리며 눈동자를 살벌하게 굴렸다.그의 딸을 건드린 자는 천왕노자라고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황지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너랑 제수씨가 무슨 잘못을 했든 간에 우리는 황금궁 집안사람이야!”“외부인이 감히 우리 황금궁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 하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지!”“이건 내가 해결할게.”황지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황금궁이 매년 무맹한테 어마어마한 회비를 내고 있으니 이제 거길 써먹을 때가 된 거야.”황지군도 똑똑하기로는 누구 못지않은 사람이었다.비록 하현의 행동에 분노하긴 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을 시켜 벌써 하현의 정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한 터였다.“자, 자네 뜻에 따르겠네!”구평도 역시 무맹이 어떤 수단을 쓸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의사가 두 환자를 특수 병동으로 옮기자 황지군과 구평도 두 사람은 비로소 병원 입원 병동 옥상으로 올라갔다.측근들을 주변에 배치한 뒤 주위에 외부인이
이튿날 아침, 하현은 결전이 이루어질 경기장에 도착했다.손엄명, 구양연, 천정국 등은 이미 와 있었다.하지만 군중 속에 하현의 눈길을 끄는 여자가 있었다.스물일곱, 여덟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통통한 몸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스타일이었다.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위의 남자들이 모두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이런 여자를 보는 남자들의 부류는 둘 중 하나였다.거칠게 그녀를 정복하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구걸하거나.그러나 손엄명 일행은 이 여자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고 뭔가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 듯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손엄명 부문주, 구양연 부지회장, 천 장로, 다들 왜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요?”하현은 진주희가 준비해 준 커피를 받아 마시면서 의아한 듯 눈썹을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오늘 이 경기가 걱정돼서 그러는 겁니까?”“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있는 한 인도인들은 더 이상 날뛸 수 없을 거예요.”“어차피 원래 계획도 나 혼자 저들을 상대하는 거였으니까요.”하현은 손엄명 일행이 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독살 공격을 받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한껏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하현, 오늘 경기에 당신은 참가하지 않아도 돼!”이때 옆에 있던 한 장로가 하현을 쳐다보며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우리 쪽에 14명의 선수가 더 있으니 용문에서 선발해 출전시킬 거야.”“자네는 일이 바쁘니 집에 가서 좀 쉬어.”“지금까지 당신의 공로가 얼마나 큰지 우리가 잘 기억하겠네.”구양연이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입을 열었다.“용 장로, 당신은 비록 용 씨 가문 사람이지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우리 모두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일인데 왜 당신이 하현에게 참가하라 마라 하는 겁니까?”“그게 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거요?”“제 성격이
”무엇보다 난 용문대회 도 대회 우승자입니다!”“인도인에게 진 적도 없어요!”“내가 출전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하현은 마음에 품었던 의혹을 제기했다.특히나 인도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설명을 요구한 것이다.조가흔은 하현을 곁눈으로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하현,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당신이 도 대회 우승한 거 맞아. 실력도 아주 출중하지.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지금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야.”“믿을 수 없는 사람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내보내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 그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 기회를 양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그럼 모두들 걱정도 덜 할 테고.”“날 신뢰하지 않는다고?”하현은 눈꼬리를 가늘게 움츠린 후 말을 이었다.“조 대표가 제대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군.”조가흔이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도대체 당신은 왜 생각이 없는 거야?”“미안하지만 난 정말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가 충분히 설득할 만한 이유를 댄다면 기권할게!”하현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날 설득하지 못하면 당신은 나한테서 멀리 사라져 줘야 할 거야!”“용문의 일은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야!”“뭐?”하현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쏘아붙이자 조가흔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난 원래 손 부문주의 체면을 봐서 얼굴 붉히지 않고 물러설 여지를 남겨두려고 했었어!”“하지만 하현 당신이 고집을 꺾지 않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대드니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나중에 날 원망해도 소용없어!”“어젯밤 브라흐마 로샨을 만났지?”하현이 당당하게 대답했다.“맞아.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만난 일은 이미 용문에 다 보고했어.”“인도인을 대표해 날 매수하려 왔지만 단칼에 거절했지.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야?”손엄명은 좋지 않은 안색을 보이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이 확실히 보
조가흔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하현, 우린 당신이 직접 인도인한테 돈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어.”“외부의 적과 내통해 대하를 배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어쨌든 우리는 당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그러니 당신도 우리를 이해해 줘야 해. 안전을 위해 우리가 당신을 출전시키지 않는 것은 당연해!”“생각해 봐. 당신이 브라흐마 로샨과 만난 이후 남선 일행이 의식을 잃었고 당신 계좌에는 이천억 달러라는 거액이 입금되었어!”“길거리에 지나가는 아무나 잡고 물어봐! 이런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대승적 차원에서 오늘은 당신이 출전하지 않는 게 좋겠어!”“모든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우리에겐 아직 출전하지 않은 선수가 14명이나 있어. 그들이 인도의 상대가 되지 못하더라도 닷새는 버틸 수 있어.”“그동안에 우리는 충분히 조사를 마칠 수 있을 거야.”“하현, 우린 지금 당신한테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명령하는 거야.”“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린 관심없어. 우린 단지 남선 일행이 독살을 당한 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진실을 원한다면 황소군한테 물어봐. 그가 다 알고 있을 거야!”“뭐라고?! 어젯밤에 황금궁 별장에 가서 당신이 소란을 피운 일을 우리가 모를 것 같아?”조가흔의 얼굴이 살짝 비틀어졌다.“이 일 때문에 황금궁의 황지군한테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왔었어!”“하지만 그는 내 체면을 봐서 당신을 귀찮게 하지는 않았어!”“그런데 뭐? 황금궁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라고?”“하현, 당신이 브라흐마 로샨과 만난 후에 일어난 일을 두고 황소군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울 셈이야? 그걸 우리가 믿을 거라고 생각해?”“당신 실력이 대단하건 말건 지금은 그런 것을 논할 필요도 없어. 어쩌면 우리 14명의 선수들이 이번에는 부끄러움을 알고 분발해서 용감하게 인도인들을 뭉개버릴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무성 도 대회 우승자 따위
구양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무성에 재산이나 가족이 얼마나 많은지 이 사람들이 알아낼 수 없었을까요?”“인도인이 이천억에 날 매수한다구요?”“말도 안 되죠!”“브라흐마 커크를 없앴던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어떤 시각으로 보든지 간에 내가 그들의 복수를 아무리 두려워할손 치더라도 인도인들은 감히 날 매수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예요.”“그래서 매수하려던 수작은 그냥 음모일 뿐이에요.”“내가 출전하는 게 위험하다고 딱 잘라 막아버리는 건 분명 뒤에서 누군가가 날 눌러버리려고 하는 수작일 뿐이죠.”“특히 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인도의 젊은 실력자들을 휩쓸고 나니 인도인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겠죠.”“한편으론 내가 용문대회 최종 우승자가 되어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가 되는 게 싫었을 것이고.”“또 한편으론 나머지 14명 중에 그들이 심어 놓은 사람들이 있는 거죠.”“그들이 심어 놓은 사람이 혹시 기세를 몰아 우승한다면 그들 사람이 용문 문주 후계자가 되는 거니 그들에게도 많은 이익이 돌아가지 않겠어요?”“인도인들이 날 매수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해요.”“기세를 몰아 날 억압하는 게 진짜 목적이죠.”구양연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하현, 자네 말이 맞아.”“곧 출전할 사람 중에 손정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손엄명 부문주의 조카야.”“그리고 또 다른 조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서북 조 씨 가문 사람일 거야.”“그렇게 보니 확실히 그들은 자네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고 싶었던 거야.”“이번에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우느냐에 따라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특히 현재 세 명의 젊은 실력자들이 의식을 잃고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거지...”“용문 문주 강력한 후보자라면 권세가 높고 미래의 4대 초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